프루스트의 화가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새로운 방법
유예진 지음, 유재길 감수 / 현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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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소설은 문제작이다.
7권이나 되는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장편 소설이 가지게 되는 복잡한 구성이랄 것이 없는 것이다.
주인공 마르셀은 저자의 분신인 듯한데,
마치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언뜻 보아 명작으로 보이지 않는 것과 같아 보인다. 

 

사물의 정확한 묘사보다는 매 순간 변하는 빛에 대한 주체의 인상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그 소설에 조금의 설명을 도와준다면 도와줄 수 있다. 

프루스트의 소설 속에는 숱하게 많은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그림에 대하여 알아야 그 그림이 의도하는 바와 소설가가 의도하는 바가 나란히 마음 속에서 조우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인 바, 반드시 이런 책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의 상태와 화제로 오르는 그림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알레고리를 이루어가는 것을 읽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알레고리는 알로스(다른)와 아고레위에인(말하다)의 합성어로, '다른 이야기'의 뜻을 지닌단다.
다른 이야기를 통하여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쓰이는 기법이다.
그림의 이미지에서 찾게 되는 의미가 소설의 주인공이 삶에서 느끼는 의미와 유사한 것이 된다면 충분한 알레고리가 형성될 수 있겠다. 

그 알레고리는 아는 자만이 즐길 수 있기에 이 책이 필요한 것이다. 

회화 작품을 이해하려면 모티프가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일과 주제가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일, 이 두 단계가 필요한데 모티프 이해에는 일상적 경험만이 동원되지만, 주제의 인식에는 화면의 모티프만으로는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를 위하여 어떤 문화, 문명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필요한데, 그 단계를 파노프스키는 '도상학'이라고 부른다. 

예술 작품 속에서 한 시대나 사회의 정신적 풍토까지 파악하려는 시도를 '도상 해석학'이라고 부르는데,
프루스트의 소설 자체가 '인상'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파편적인 삶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다양한 예술 작품에 대한 알레고리를 통하여 그 시대나 사회의 정신적 풍토까지 읽을 수 있는 장치를 감추고 있고,
이 책은 충분히 그 도상학적 해석에 충실한 답을 제시하고 있어 보인다. 

그림에 대한 풀이도 재미있고, 프루스트의 읽기 힘든 소설에 성큼 다가설 수 있는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표지에 선택된 르누아르의 그림,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 식사'는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의 다양함을 그리고 인간의 심리는 제 의도대로 굴러가지 않음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다. 
서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짐짓 외면하는 시선들을 통하여 인간의 삶이 왜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지를 한 화면으로 보여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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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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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공장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닷내음 가득 머금은 그 비릿한 싱싱함을 그대로 품고 있는 소설.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는데, 이 소설이 읽히던 그 즈음, 나는 소설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통 책을 읽지 못하고 살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사느라 바쁜 거였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도서관의 ㅎ칸을 찾아 한창훈의 책을 찾은 것은 오늘처럼 쌀쌀한 날, 밤 열 시까지 온기없는 학년실을 지키고 있으려면, 따끈하고 짭쪼름한 홍합탕이 생각날 것 같아서였던가...
그런데, 참 잘 빌려왔다. 

아이들은 이제 수능이 20일 앞으로 다가와 마음이 바쁘고,
한 바퀴 둘러보고 오면 한창훈의 입을 타고 해원굿이라도 할 숱한 여인네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문기사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작가의 생각들도 가뿐하고,
승희네와의 탄탄한 로맨스도 달큰함은 없지만 충분히 싱그럽고 아름답다. 

홍합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왠지 좀 외설스럽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양념삼아,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작가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부드러운 맨살"처럼 "교양으로 제 정신의 꽃을 피우는 부류의 언어" 말고,
"일에 혹독하게 달궈진 끝에 반들반들 닳은 굳은 살"처럼 "딱딱한 살로 차가운 바닥을 버텨내 주는 부류의 언어"로 이 소설은 떠받들려 있어 탄탄하다.(10)  

문기사와 로맨틱한 상상으로 마음이 노골노골해진 서른 셋 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고, 시부모 모시고 사는 승희네가 샘가에 가서 읊조린 말은 그야말로 삶의 딱딱한 바닥을 송곳처럼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내일부터 공장에 못 가고 농약 친단다. 씨발것, 독사야 내 발 물어라." 

알콜 중독자 아비를 둔 아이... 하굣길에 뱀을 한 마리 잡아 오는데,
조금 있다가 등에 가방 메고 한 손에 뱀을 들고 한손에 술 취한 아버지의 옷자락을 쥔 아이가 좌우로 흔들리며 걸어가는 풍경이 골목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124) 

이런 글은 흡사 한 편의 서정시다.
서정시는 서정시되, 세상의 이야기가 담긴 서사가 독자를 사무치게 하는 서정시... 

대학생이었던 때의 문기사가 캠퍼스에서 권태롭게 비스켓을 앞에 두고 담소하던 나이의 여학생들과,
한겨울 따뜻한 물에 손을 녹여 가며 쥐치 살 말리는 일을 하고 있는 젊은 처녀들의 모습을 오버랩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80년대의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그래서 눈초리 가장자리로는 최루탄이 원인일지, 누선을 자극하는 이야기 톤이 원인일지 모를 축축하고 뜨끈한 것을 배어 나오게 하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들을 빨리 늙는 부류와 늦게 늙는 부류로 나눌 만했다."는 서술자의 목소리는
읽는 자를 괜히 서러움에 젖게 만든다.
공장 출신의 처녀들은 지금보다는 다음이 더 좋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 기회만 있으면 빨리 연애하고 결혼하고 집 사고 아이 낳고 하는, 세상을 빨리 살아버리려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를 거라는...(213) 

많은 것들이 생생하게 스칩니다.
앞으로도 그 무엇들이 내 앞에 놓여있을 것입니다.
삶의 매순간들은 나를 어디에 이르게 하는 장치들일까요.(289) 

이렇게 작가 후기를 남겼다.
척박한 곳에서 험하게 사는 여성들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푸지게 펼쳐 놓았으면서,
삶을 인간이 주관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삶의 매순간들은 우리 앞을 스쳐가고, 다가서고, 지나가고, 놓여질 것들이며,
그런 장치들은 우리를 어딘가로 끌고 갈 그런 운명지어진 어떤 것일지... 독자를 곰곰 생각의 우물로 인도하기도 한다.  

"애새끼들은 베짱이마냥 가수만 쳐다보고 살고
으른들은 테레비 앞에서 공차고 잡아 넴게뜨리고 달음박질하는 것만 쳐다보고 살믄 잘 되겄다 니미." 

세상사를 이렇게 한 마디에 옹골차게 짚어낼 수 있는 소설을 쓰기도 참 쉽지 않은 노릇인데... 한창훈의 소설은 그런 힘을 가졌다.

힘겨우면서도 건강하고 소중한 여성들의 하루하루가 주는 안식과 힘을 읽으면서, 구자명씨 생각이 났다. 

맞벌이부부 우리동네 구자명씨
일곱달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고정희, 우리동네 구자명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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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지빠귀를 위한 변론 - 너희가 똥을 아느냐?
이영균 지음 / 청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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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장 선생님들이 퇴직 무렵 문집을 한 권씩 내시는데, 좀 낯부끄런 책들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은 충분히 책으로 엮음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권이 오롯이 똥 이야기로 줄기가 잡혀있고, 그 내용도 알차다. 

똥에 얽힌 욕설이나 농담에서부터,
역사 속에 드러나는 똥 이야기,
환경이나 자연과 연관된 똥 이야기 등 화자가 입에 올리는 똥 이야기는 불쾌를 승화시켜 유쾌하다. 

학교에서 수업하실 때도 구수한 옛 이야기 잘 들려주실 법한 톤으로 온갖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잘도 끌어 오고있고,
오랜 설계 시간을 거쳐 탄생한 책임을 내용이 잘 보여준다. 

세상에 똥을 누지 않고 사는 생물은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유독 그 똥을 천대한다.
아니, 농업 사회에서는 똥을 천대하지 않았지만, 양반들은 그걸 싫어했고, 산업사회가 되면서 서구화된 삶의 양식에서는 똥은 돈주고 버려야 하는 '사치품'이 되고 말았다. 원래는 생필품이었거늘... 

남정현의 '분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실 땐 자못 비분강개에 넘치기도 하고,
'똥 분 자 糞'를 '쌀 미 米 자'와 '다를 이 異 자'로 파자하여 쌀의 변형된 다른 형태로 푸는 것은 재미있으면서도 생각을 불러 온다. 

2부의 사회적 배경을 이야기할 때엔 구태를 벗지 못한 구절들도 보인다.
위인의 끄트머리에 '박정희'를 적었는데, 역설적으로도 그 뒤에 '위대한 지도자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린다는 표현이 있어 잠시 웃었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박정희때 사형선고 받았던 김지하의 시니깐...  

-------- 오타 두 개

62. 순명의 한자를 殉名으로 적었다. 殉命이 맞을 듯... 운명에 따른다. 내지는 목숨을 따라 간다는 의미일테니... 

167. 장자 莊子를 長子로 적은 것도 오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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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좌파 : 세 번째 이야기
김규항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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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을 읽으면, 돌아보지 않아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상처들이 쿡쿡 찌른다.
그렇지만 그 상처는 내 몸에 있었던 것인데, 나는 나의 상처라고 여기지도 않았던 것들이다.
내가 무심하게 욕하고, 두고두고 열받던 것들을 그는 국외자의 입장에서 짓쳐들어오는 것 같다.
그가 다 옳지는 않다.
그가 욕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나름대로 사람사는 곳이기 때문인데,
옳은 것을 옳다고 끝까지 밀고 나가기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지옥화되었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지면의 글을 짜깁기한 이런 책을 싫어하는 나의 성벽에도 불구하고, 김규항의 책은 어쩔 수 없이 미뤘다가 사서 보게 된다.
때 지난 시론을 몇 년 뒤에 읽는 것도 못마땅하고, 여기저기 언론 귀퉁이들에 쓰였던 글들을 모아둔 책은 읽기 낯간지런 부분이 많은데, 김규항의 책을 읽는 일은, 무릇 선지식을 얻는 일이기도 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기도 하는 일이어서 마지못해 읽게되는 편이다. 

김규항의 논리는 참 쉽다.
계급의 원칙에 따라 살면 된다는 것인데, 그 계급에 대한 인식을 몰개념화하는 것이 이 나라의 교육이었던지,
아니면 독재 시대의 삶의 원칙이었는지, 계급에 따라 생각하지 말고,
국익을 보고 생각하라는(그의 가진 자의 이익이 국익이란 말은 전적으로 옳지만) 통념이 먹힌다. 

진짜 아는 것은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93)이란 아이들과의 대화에 나는 요즘 공감하고 있다.
자기 생각이란 '실천'하며 사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교육에 대한 관점들이 그렇다. 

보수적인 부모는 경쟁으로 아이들 내몰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그렇게 한다고...
일류대 학생이 되기를 바라지만, 진보적인 부모는 거기다 진보적인 일류대 학생을 바란다고... 

김대중, 노무현 시대 이전에 이미 신자유주의 물길을 트기 시작했는데, 그저 절차적 민주주의만 보고 그 시대를 평가한 것이 한국의 잘못임을 지적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서 민주노동당까지 비판하는 '옳은 소리'는 과연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먹혀들는지...  

정치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몰염치한 닥달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물결의 최고봉이 되고 있다.
연대의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있지만, 전교조 같은 집단에서도 쉽사리 꺼낼 수 없는 것이 중고교의 대입문제다.
초딩까지도 온갖 학원에 내몰리고 있지만, 정작 심한 것은 중고교의 파행적 교육이다.
독서 교육조차도 '스펙'을 위한 것으로 상품화되고 있는 현실, 386은 그 시장을 이용해 돈번다고 김규항은 엄청 까댄다.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고래'보다 더 큰 연대의 목소리가 절실한 것은 중고교의 이야기다.  

물론 '현실은 바꾸기 어렵지만, 바꿀 수 있으며, 그 힘은 나에게 있다.'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는 고맙지만,
현재 비정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8%이고,
임금은 정규 노동자의 49%이며,
노조 조직률은 고작 3%이다.(301)
이런 자료를 학생들에게 들이대야 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진실을 깨닫게 하기도 쉽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체험에서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희망이 없다(303)는 이야기를 그는 잘 한다.
그렇지만, 체험도 '예방주사'처럼 약한 것이었다면 면역이 생길 수 있지만,
한국 사회처럼 '목숨을 건 체험'은 사람을 '살아남기'에 목매달게 할 수 있단 것도 간과해선 안 되겠다. 

그가 원하는 엘리트는 이런 사람이다.
학벌이나 직업이 유별나지 않아 멀리서 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특별한 사람,
아무리 곤란한 일도 마법처럼 해결책을 제시하는 현명한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가슴의 사람,
이 복잡하고 간교한 자본의 체제를 훤히 들여다보는 맑은 눈의 사람,
제 소신과 신념을 '그래도 현실이...' 따위 말로 회피하지 않는 강건한 사람...
어느 하나 가지기도 힘든데, 이 모든 것을 가져야 하다니... 에효... 엘리트다.  

그의 예수전을 하루 30분만이라도 읽으며 예수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좋겠단다.
물질적 욕망과 경쟁심이 스물네 시간 좀먹고 있는 세상에, 30분은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그래, 읽는 일, 먹는 일보다, 생각하는 30분... 이걸로 자신을 채워야 하는 것인데... 

정말 오랜만에 아옌데의 연설을 다시 만난다.
광주의 마지막을 보는 듯 하다. 눈물을 흘리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가슴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게 될 것입니다.
적의 힘은 강합니다. 그래서 적은 잠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의 진보는 범죄와 무력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역사는 인민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곧 다시 역사의 큰 길이 열려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칠레 만세! 칠레 인민 만세! 칠레 노동자 만세! 

이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마치 광주 도청에서처럼 그들은 산화해 갔다.
과연 칠레산 포도가 이국 만리 한국땅 이마트에서 이렇게 팔리게 될 것을 그들이 알았을까?
과연 칠레 노동자들의 만세 소리가 담긴 포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전태일의 문장도 오랜만이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예수전을 읽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소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가난한 휴머니즘>
이시영,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이런 책들을 그를 통해 얻어 둔다.  

그의 이야기 중, '우민'에 대한 정의는 멋지다.
이런 개념 정리가 간혹 잘 된 것을 만나는 일도 김규항을 읽는 즐거움이다. 역시 난 우민이다. 

우민은 '못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도 어리석은 사람'이다.(490)
앞에서 말한, '체험에서 배우려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가 만드는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로고로 <생각하는 힘, 함께 하는 마음>이란 게 있다고 한다. 원래 '언제나 누구나 즐겁게'였다는데, 난 이게 더 맘에 드는데... 생각~은 좀 논술 문제집 생각이 난다.  

어제 시사 2580인가에서 '건강보험 이사장' 정모란 새끼가 '불법 시위로 입은 부상은 보험이 안 된다'고 멋대로 해석해서 돈을 게워내라고 통지서를 보냈단 소식을 듣고 혈압이 뻗쳤다. 역시 텔레비전은 '개콘'만 보고 안 봐야 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뉴스라는 게 알아서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 혈압만 높일 뿐... 

   
  후배 사무실에 들렀는데 완전 찜통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차를 내오는 그에게 에어컨 고장 났냐고 물으니
몹시 겸연쩍어 하면서 말했다.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 생각하니 못 틀겠더라고요.
그래서 며칠 전부터 끄고 지내고 있어요." 2009. 8. 6(511) 
 
   

아,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 안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두 아저씨의 대화가 볼썽사나운 대한민국의 현재를 잘 진단해 준다. 

   
 

"하여튼 니미럴 요새는 장례식장에 가보면 두 가지 욕밖에 없더라."
"뭔데?"
"하나는 이렇게 죽을 걸 그렇게 욕심을 냈나!"
"우하하, 또?"
"이렇게 죽을 거면 보험이라도 많이 들어 놓고 죽지!"
"죽인다. 사람 장례가 아니라 돈 장례구나 시발." 

그러다, 김규항에게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는 말씀이네요."
"저희는 가방끈이 짧아서요."
"배운 사람들은 말만 어렵죠." 

 
   

배운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보다 나을 거라는 착각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배웠다고 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란 걸 가르쳐야 한다.
나은 인간이 아니고, 말만 어렵게 할 거면, 차라리 못 배우니만 못한 걸... 

김규항을 읽는 일은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고,
철저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일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을 욕하는 소리를 듣는 시원스런 일이고,
갑갑한 한국의 옥상에서 '까깝하다~'는 소리도 제대로 못 내지르는 이들에게 소리치라고 부추김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를 읽게 되고, 당분간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

377. 그가 즐겨 본다는 개그콘서트의 '노마진'은 '노우진'의 잘못인 듯... 혹시 그가 알면서도 개그로 '마진없음'이라 붙인 건 아니겠지? ㅎㅎ

410. 오타... 불길이 번질 때가 없는데... 번질 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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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6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 2010-10-2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저녁에 김규항님이 강의를 온다는데..다시 한번 가서 작심삼일을 할까 말까 하네요.
뭔가..여기저기에서 찔리는 데가 많아서도.
강의적마다 '고래가그랬어' 신청서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멋지다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10-10-26 20:51   좋아요 0 | URL
작심삼일을 3일마다 한번씩 해야죠. ㅎㅎ
맞아요. 불편한 게 김규항의 무기죠.
고래가 그랬어... 처럼 어린아이들부터 가르쳐야 되는데... 멋집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비시선 172
신경림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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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시인 신경림 앞에서,
1998년, 사람들은 모두들 어디로 가고들 있었나 보다.
현실사회주의 붕괴와
이름만 민주주의였던 세계화 앞에서...
잔치는 끝났고, 문학도 욕설투성이였던 시기...
그의 시를 '立象盡意 입상진의'
설명이나 진술이 아니라 형상을 통해 뜻을 보여준다고 도종환 시인이 해설을 붙였다.
'선경 후정'의 한시의 단아함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걸 최원식은 '두보'로 읽고,
'당시의 꽃피는 아침 화단보다
송시의 노을진 저녁 나루터 길'이라고 표현했겠다.

 

노파가 술을 거르고 있다
굵은 삼베옷에 노을이 묻어 있다
나뭇잎 깔린 마당에 어른대는 긴 그림자
기침 소리, 밭은기침 소리들
두런두런 자욱한 설레임

모두들 어데로 가려는 걸까 (노을 앞에서, 전문)

모두들 서둘러 내렸다
빈 찻잔에 찌그러진 신발과 먹다버린 깡통들
털컹대며 차는 는개 속을 가고
멀리서 아주 멀리서 닭 우는 소리

그믐달은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간이역에는 신호등이 없다
갯마을에서는 철적은 상여소리에 막혀
차도 머뭇머뭇 서서 같이 요령을 흔드는
물 빠져나간 스산한 갯벌
자욱한 는개 속에
그대들 버려진 꿈속에 (막차, 전문)

길을 노래하던 신경림이 지나온 길을 불빛이 비추인다.
램프불(남포불), 칸델라불, 전등불, 온세계로 나가보는 화자의 눈 앞에
과거의 아련한 기억은 새로운 꿈이 된다.
꿈을 꾸던 사람들이 꿈을 잃어버린 세상에...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전문)


입상진의. 
그리는 것에서 풍기는 짙은 페이소스를 드러내는 신경림의 마음은
사뭇 애린다.

새파랗게 빛나는 잎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찢기고 할퀴어 흠집투성이인 가지가 보인다
벌레와 비바람에 썩고 잘려나간 밑둥이 보인다
돌과 흙에 짓눌린 뿌리가 보인다

얼어붙은 비탈길을 미끄러지는 쓰레기차가 보인다
이른 새벽 셔터를 올리는 시퍼렇게 터진 손이 보인다
새벽길 삼백리를 달려온 찌그러진 작업화가 보인다
농익어 단 열매만을 뽐내는 저 큰 나무에 (찌그러진 작업화, 전문)


삶이란 건,
제각기 무슨 흔적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많이 피우기도 하고,
가지가 휠만큼 열매를 맺기도 하고,
몸단장만 한 나무도 있고,
서슬 푸른 가시 나무도 있지만,
모두들 산비알에 똑같이 서서 하얗게 바래가는 나무들...
어차피 지나간 날들은 장밋빛 노을로 덧칠해도 스러져버릴 노을인 것을...

생전에 아름다운 꽃을 많이도 피운 나무가 있다
해마다 가지가 휠만큼 탐스런 열매를 맺은 나무도 있고
평생 번들거리는 잎새들로 몸단장만 한 나무도 있다
가시로 서슬을 세워 끝내 아무한테도 곁을 주지 않은
나무도 있지만 모두들 산비알에 똑같이 서서
햇살과 바람에 하얗게 바래가고 있다

지나간 모든 날들을 스스로 장밋빛 노을로 덧칠하면서
제각기 무슨 흔적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 (흔적, 전문)

살아보면,
돌로 사나, 꽃으로 사나
한 평생 뒹굴 버석 궁구는 일인데,
길을 떠나 만나는
비구 두엇과 바라보는 매화,
농민들의 농성터에서 보는 개망초,
기성화 장수 봉고의 노래 흥취와,
폐광산 중늙은 주모와 한 잔 한들 어떠랴만,
그럴 때면,
맘 속에 어슷비슷 저며오는 불안감과,
뭐, 때론 그래도 다 꽃이지 하는 안도감이 어울린, 신경림식 인생론.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 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돌 하나, 꽃 한송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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