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이 갑자기 차가워졌구나.
따뜻하게 입고 다니자. 감기 안 걸리게~ 

1930년대라면 일본이 제국주의 전쟁을 본격화하던 시기란다.
그 시대엔 독립 운동 같은 것 하기는 정말 어렵던 시대였지.
그래서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모양이야. 

김영랑의 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란다.
한 번 읽어 보자.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무서운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시답지 않지?
시는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따사로운 분위기란다.
그러면서도 험난한 세상을 극복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다는 <시의 가슴>이 다가서지 않니?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발음(ㄹ 같은 소리)을 고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지.
또 순수 우리말을 살려 쓰려고 한자어를 모두 빼버린 노력도 대단해.
에메랄드 같은 외래어가 있지만,
그건 1930년대가 서양 문물이 밀려들면서 그런 언어에 대한 동경도 드러난 시대기 때문일거야.
모더니즘 시라고 해서, 이 시대의 시들에 서양 말들이 많이 튀어 나오기도 한단다. 

한 행은 대체적으로 3음보로 끊어 읽을 수 있겠다.

돌담에 /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이렇게 말이야.

같은 시인의 시 중에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음들을 골라 쓴 시가 있단다.
왜 그를 '언어의 세공사' 내지는 '조탁자(갈고 쪼아대는 사람)'라고 하는지 느껴 보렴.

내 마음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마음 속 어딘가에서 강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느껴져.
돋아오르는 아침 햇빛이 빤짝, 은빛으로 빛나는 강물이야.   

마음은 어디 있을까?
이 평화롭고 잔잔한 마음은...
가슴에, 눈에, 핏줄에...
어디에서도 보이진 않지만, 
그 모든 곳에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겠지. 

시인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그런 잔잔한 마음이 우리 안에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고,
그런데, 세상은 날마다 힘든 일 투성이라서...
이런 시를 조용히 앉아서 쓴 걸 거야. 

이 꽃이 뭔지 알까?
모란이야. 우리 학교 교화.
작약하고 비슷한데, 모란이 더 꽃이 크고 화려해.


김영랑 시인의 유명한 시를 하나 더 보자꾸나.
제목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야.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이 피기까지는) 

처음하고 끝이 같게 끝나지.
수미상관, 수미상응... 뭐 이런 거란다. 

똑같은 말이지만, 느낌은 달라.
처음엔, 이야깃거리(토픽)를 던져주는 것이고, 
중간 부분에서 그 토픽을 왜 이야기하는지를 전개하겠지.
그러다가 같은 구절을 반복하게 되면서 시상이 강조되고,
더 깊은 뜻을 느끼게 되는 거야.  

이 시에서 말하는 건 뭘까? 
편의상 세 부분으로 나눠서 한번 설명해 볼게.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모란이 필 때까지는 '나의 봄'을 기다린다네.
'봄'이란 '활짝피는 날'이지.
즐겁고 기쁜 일만 일어나는 계절. 희망으로 가득찬 느낌.
실제 봄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봄'은 그런 계절을 <상징>하지.
청춘(靑春).
이 말에 벌써 '봄'이 들어가잖아. 

봄이란 계절은 동사 '보다'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어.
겨울은 아무 것도 볼 게 없는 계절이고, 뭔가 자꾸 보게 되는 계절이 봄이지.
보고 싶고, 볼 게 자꾸 생기고... 뜨거운 피.  

모란이 필 때까지 희망을 가지고 살던 화자는,
모란이 떨어져 버린 날,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거래.
저 큰 모란이 뚝뚝 떨어진 어느 날.
'봄을 여읜 설움'이 마음에 가득차겠지.
희망이 사라져 버린 느낌.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실제 모란은 5~6월에 피었다 져.
이 시가 쓰여지던 시기만 해도 음력 5월(양력으로 6월) 쯤이었을 거야.
무더워지는 여름인데,
모란이 떨어지고,
천지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그동안 가졌던 희망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일대 사건>이 일어난 거야. 

그동안 모란이 필 것만 기다리면서 살아왔는데,
며칠 피어있던 모란은 금세 지고, 금세 시들어 버리니, 낙망이지. 

요즘 9988234란 말이 있더라.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앓다 4망하는 게 복이래.
내 주변에 어떤 선생님은
엊그제 월요일까지 멀쩡하다가
몸이 피곤하다고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판정을 받아서 다음 날 돌아가시고 말았대.
아직 아이들도 중,고생인데 말이야.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거란다.
기대를 가지고,
좋은 날을 기다리며 살아 가는 거지만,
어느 날,
뚝뚝 떨어져버린 모란 꽃잎처럼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수도 있는 게 인생이겠지. 

그치만, 이런 허망함만 그렸다면 이 시는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
뭔가가 그 다음에 나올 거야.
기대해 보자.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내 희망과 기대의 모두였던 모란이 지면, 1년은 아무 의미가 없대.
그래서 남은 날들을 하냥 섭섭해 울고 있다는구나.
그렇지만,
처음의 이 구절이 다시 반복되면서, 그 울음 속에서 반짝이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지 않아?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겠다는 화자의 의지를. 

내년에 다시 필 모란을 위해서,
기다림을 간직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화자의 결연한 눈빛이 보이는 것 같구나. 

전에 '역설'에서 배웠지?
찬란한 슬픔.
나는 모란이 떨어져서 슬픕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역설이 느껴져.
그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닌 까닭은? 

다시 필 모란을 기다리는 일은
그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야.
다시 기다림의 '찬란한' 기쁨이 담긴 슬픔이겠지. 

김영랑의 앞의 두 시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
앞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나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에서는
정말 깨끗하고 순정하게 살고 싶은 화자의 욕망이 반영되어 나타났지.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살아지지 않더란 거야.
일제 강점기.
우리 말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던 그 암흑의 시기에
화자는 이런 시를 쓰면서 이겨낼 수 있었던 건지도 몰라.
모란을 기다리는 것은,
김영랑만이 알고 있는 어떤 '희망'에 대한 상징인지도 모르고... 

아, 오늘은 희망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그림이 생각난다.
 

워터하우스란 작가가 그린 <판도라>의 그림이야.
세상 모든 악덕이 빠져나간 뒤에 급히 닫아버린 판도라의 상자 안에 갇힌 녀석.
그 희망이란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빛내고 있는 것 같지 않냐? 

일제 강점기처럼 힘든 시기도 저렇게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줬는데,
우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지?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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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4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도 즐거운 하루 되셨길....

글샘 2010-11-04 23:14   좋아요 0 | URL
네, 반딧불이님두요...

비로그인 2010-11-05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는 노래로 만들어진 그 시가 맞죠, 글샘님?

글샘 2010-11-05 10:48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참 예쁜 시죠. 어쩜 저런 말을 골라내는지 몰라.

cyrus 2010-11-0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랑 시인의 시는,, 한편의 음악인거 같습니다.

글샘 2010-11-06 08:41   좋아요 0 | URL
정말 음악이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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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은 아마도...
제목에 '언젠가'를 밀어 넣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을지도 모른다.
새벽 세 시부터 아침 아홉 시까지 온 몸으로 쓰려고 했던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 언젠가.
그런데, 어떤 과정에서인지, 언젠가는 너무 시적인 제목이라선지,
여기 쓰여진 서사의 제목에는 '언젠가'라는 시간적 상념이 밀려나고,
'어디선가'라는 구체적 공간의 상념이 핵심 자리에 들어서 버렸다. 

이 소설을 다 읽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그가 오후 세 시에서 저녁 9시까지 소설을 썼더라면... 언젠가, 그가 다시 그 시간에 소설을 낸다면...
단이도 미루도, 미래 누나도, 명서 마저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을... 이런 생각을... 

글을 읽는 내내 쓸쓸함이 가슴을 휘젓고 갔다.
그가 유리창에 검은 도화지를 붙이고 지냈던 시절,
나는 온 마음에 검은 도화지를 붙이고 찬바람부는 세상에서 이만큼 떨어져 지낸 기억을 끄집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표정없는 미루를 만났을 때부터,
미루는 불안했다.
외자 이름인 단이도 그랬다. 처음부터 뿌리가 없는 아이들처럼 보였다.
결국 그 뿌리없는 삶은 '훅' 부는 입김에도 날아가 버렸다.
삶은 '풀뿌리'처럼 끈질긴 것인데, 신경숙의 '인물들'은 너무 가볍다. 

윤교수의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풀뿌리같이 끈질김에 대한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비록 강물을 건너야 하는 불안한 존재이긴 하지만,
억세게 삶을 부여안고 긍정해야 하는 존재 말이다. 

이미 지나간 '언젠가'가 그렇게 가벼운 것이라면, 다가올 '언젠가'도 가벼운 것일 수밖에 없잖은가.
지나간 '언젠가' 내가 그에게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라고 말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다가올 '언젠가'도 그 말은 언어가 되어 미끄러지지 못하고, '가슴처진 여자가 슬픈' 것처럼 콤마 속에 끊긴 생각들로 머물 수밖에 없을지도... 내,가,지,금,...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언젠가' 

신경숙의 글은 이래서 안 보려고 하지만, 또 안 볼 수 없다. 베스트 셀러니깐. 
국어 교사는 내가 깊은 독서를 해서 깊은 수준의 학문을 가지기 이전에, 얄팍한 독서라도 넓은 수준의 독서가 미덕이라 여기기 때문에 베스트는 읽어야 한다는 굳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차가운 날씨처럼 스산한 소설을 읽자니, 마음이 시리다.
따끈한 바닐라 향 커피로도 녹아내리지 않는 마음...
정윤처럼 하염없이 세 시간쯤 걷고 나면 조금 나을까 싶은데,
신경숙이 다 죽여버린 젊음들 사이에서 가득 남은 수업은 오히려 무겁다. 

다 죽고 말았는데, 오히려 고양이 에밀리는 살아 남았다.
신경숙은 에밀리에게 자신을 투영시킨 것일까?
인터넷에 찾아보니 고양이의 20살은 인간의 100살에 맞먹는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개나 고양이의 수명은 15년 안팎이다.) 
사촌 언니의 뱃속 아이가 대학생 채플 시간에 앉아있었다면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건데,
자의식이 에밀리 속으로 들어앉은 건지 아프다고만 하고 고양이는 살아 남았다.
새벽 세 시에서 아침 아홉 시 사이의 시간이 고양이에겐 견디기 즐거운 시간이었던 걸까? 

신경숙이 다음에 '언젠가' 쓰게될 소설에서는 젊은 시절이, 청춘이 더 가볍고 경쾌했으면 좋겠다.
외딴 방에서 일곱 시에 떠나갈 기차를 생각하는 우물같은 여자, 신경숙.
그의 프리 허그가 부디 성공하기를...   

언,젠,가,는... 

-------  

16쪽. 새해 첫날에 불길에 휩싸여있던 숭례문... 그 밤을 누가 잊을 수 있으랴마는...
숭례문이 불타던 2008년 2월 10일(일)~11일은 새해 첫날이 아니었다.
7일이 '설날'이었으니까, 6,7,8일이 연휴였고, 토요일까지 끼었다면 설 연휴 5일의 마지막 날이었으니 그가 그렇게 착각했을 법도 하다. 

42쪽. 청솔모... 청설모, 청서라고도 한다. 오타가 바로 잡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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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더할 나위 없는 '절망'을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는 언어의 마술사,
역설의 달인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 <님의 침묵>을 보자.
우선 한 번 읽어 보렴.

1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2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3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4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5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6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7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읍니다
8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9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0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너무 길어서 내가 10행을 번호를 붙였어.
향가 같은 거 배울 때, 4구체, 8구체 이런 말 들어 봤니?
우리나라 노래의 전통 형식이 4줄이야. 한시와 유사하단 말은 전에 했지.
그런 걸 4/4/2로 쓰는 일이 많아. 축구의 442 전법처럼...

우선 수비수로 도입부의 4행까지,
수비수는 뭐 축구에서 얼굴도 잘 안 나오지.
늘 골 넣는 사람만 인정하는 더러운 게임 ㅋㅋ
4행까진, 어려울 거 없어. 그냥, 우리 헤어졌어요~~ 이런 거. 전부 '갔습니다'로 끝나잖아.

그 다음 4줄. 8행까지가 박지성의 미드필더 자리야.
수비도 하고, 공격도 이뤄지는 그야말로 축구의 최강자들이 접전을 벌이는 곳.
5행에서 '역설'이 나온단다.
역설, 기억 나?
두 가지 상황이 서로 모순이 되는, 하나가 일어나면, 다른 하나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 함께 놓인... 모순 관계.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이런 상황 이해가 가니?
그이의 목소리만 들으면 세상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귀먹고 마는 사랑의 경지.
지독한 사랑에 빠진 거야.  

근데, 일상 언어로는 '향기로운 말소리에 귀가 뜨이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걸 역설이라고 그래.
(한글 맞춤법에는 '님'이 아니라 '임'인데. 고전이라서 그냥 님으로 적을게.) 

6행에서 이별로 놀란 마음이 나와. 슬픔. 대놓고 슬퍼요~
그치만 7행에서 반전이 돼.  
이별을 쓸데없이 '울음, 슬픔'으로만 만들면 제 스스로 사랑을 깨뜨리는 결과가 됨을 이 화자는 알아.
그래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견디며 희망의 정수를 만들지.
회자정리 거자필반(만난 이는 이별하고, 떠난 이는 돌아온다)...
이런 윤회의 진리를 믿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 두 줄. 이 부분은 최전방 공격수야.
독일의 클로제나 아르헨의 메시의 자리.
폼도 죽여주지. 앞의 4,4에서 패스해준 볼을 골로 연결시키고,
골을 넣고 세레머니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축구 선수의 꽃.
이 시에서도 이 부분이 가장 화려한 꽃에 해당하는 부분이야.
두 줄이지만, 짧고 굵게! 강하게! 가는 겁니다.

한국의 시들은 향가, 고려가요, 시조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계속 저 4/4/2 전법을 구사하고 있는데,
마지막 부분의 2행 앞부분에 감탄사를 넣는 경우가 많아.  

여기 또 나오지. 역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안 보냈다...
함께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더 간절한 화자의 마음이 느껴지니?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부재, 님이 가서 현실에 없는 상황을 '님의 침묵'이라고 이름붙인 거야.
그렇지만, 님이 현실에 없다고 화자는 "굿바이, 세상에 반은 남자!" 이렇게 쿨하게 변하지 않고,
님이 없지만, 사랑의 노래를 불러.
그 사랑의 노래는 님의 부재를 둘러싼 화자의 마음을 계속 감싸고 있고...
마치 향 연기가 번져서 방 안이 향 냄새로 가득하듯... 

아빠는 저 마지막 구절에 참 애착이 간단다. 
축구로 몰아붙이자면, 완벽한 드리블에 완벽한 슛으로 '골~~~'을 얻은 거 같은 느낌이랄까.
님의 침묵과,
스스로 이기기 힘든 사랑의 노래와,
그리고 님의 부재를 휩싸고 도는 나의 사랑 노래...
어쩌면, 종교적으로 승화된 느낌까지 나지 않니? 
그 사랑은 얼마나 깊고 큰 사랑일는지.

만해 한용운의 일생으로 보아, 님을 조국, 또는 부처 등으로 해석하지만, 그저 사랑하는 님으로 봐도 멋진 시인 거 같아. 

자, <반어, 역설 끝내기> 특강! 대 공개~~ 

우선, 반어부터 연습하자꾸나. 반어는 무조건 반대로 말하면 돼. 

잔칫집에 너무 음식이 먹을 게 없어. 뭐라고 말할까?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지려 하네요... 이럼 되겠지?
시험을 완전히 망쳤어. 반어로 뭐라고 할까? 완전 잘 쳐서 120점 나오겠다. 잘쳤다고 하면 되겠지.
너무 못생겼으면, 엄청 잘 났다~
지각했으면, 참 일찍 왔다~ 

시험, exercise!! 

현진건의 소설 중에 "인력거꾼" 김첨지가 나오는 소설이 있어.
유난히 영업이 잘 되는 날인데, 날씨가 궂어서 눈도 오고 하지.
집에 아픈 아내가 있는데, 술을 한 잔 하고 집에 설렁탕을 사가지고 들어갔어.
근데 그날 아내가 죽어서  아기만 울고 있는 거야. 이 날을 뭐라고 제목 붙였지? 

>> 접힌 부분 펼치기 >>

이런 게 '반어'야. 

다음은 '역설'을 연습해 볼게. 역설은 모순된 두 가지를 늘어 놓으면 돼. 

민우는 학생이다. (                                   )
(      )에 뭐를 넣으면 역설이 될까? 

>> 접힌 부분 펼치기 >>

근데, 왜 이런 표현을 하지?
강조하기 위해서야.
앞에서는 민우는 그냥 신분이 학생일 뿐이란 이야기고,
뒤의 학생이 아니란 것은 '일반 학생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이거나,
'일반 학생에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이란 걸 강조하는 거야.  

이런 거지.
민우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냥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완전 깡패 두목이었다.
민우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예사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바둑의 고수로 소문이 났다. 

아빠는 선생님이셨다. (                              )  

여기 들어갈 말은 '보통 직업으로서의 선생님'을 뛰어넘는 훌륭한 점이 있거나,
희한한 점이 있는 경우에 '그러나 아빠는 선생님이 아니셨다.'를 넣으면 되겠지. 

강우식의 '어머니의 물감상자'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단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딱 보니 알겠지? 역설.
이 뒤에 무슨 말이 나올 거 같아? 어머니가 꼴통이었다? 그건 아니잖아.
어머니는 여느 물감 장수와는 다른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이래야지 강조지.
그 뒤는 이래.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운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십니다.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여느 물감 장수는 물감 팔아서 먹고 사는 데 목적이 있을 뿐이지만,
어머니는 무엇에 관심이 있었을까? 

사람들의 마음이지.
싱그럽고 포근한 사랑의 마음.
그래서 어머니의 물감 상자를 통해 화자가 느끼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로 가슴을 물들이라"는 어머니의 정신이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화자는 역설을 쓴 거란다. 
평범한 말로 주제를 표현하는 것보다 '역설'을 써서 '강조'하려는 의도지.

이제, 역설법 마무리.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 승무) 

'곱다'는 '기쁘다'와 가까운 감정인데, '서럽다'와는 모순되지.
얼굴이 고운데 왜 서럽냐. 그치? 못생겨야 서럽지.
여승이 참 고운 거야. 그러니깐 그걸 본 사람이 맘이 아프대.
야, 너같이 이쁜 애가, 어쩌다 이렇게 비구니(여승)가 된 거냐~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유치환, 깃발) 

 '소리없다'는 '침묵'과 어울리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사랑을 표현하지 못할 때 쓰던 말이었단다.
이미 결혼했던 화자는 과부인 상대에게 '들끓는 마음'을 '소리'로 표현할 수 없었지.
그래서 그 마음을 역설적으로 쓴 구절이야.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윤동주, 십자가)

윤동주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움을 쓴 시야.
'괴로웠던 예수'가 '행복한' 이유는 이해가 가니?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야 하니 괴로웁지만,
예수는 죽어서 인류를 구원했잖아. 그게 '괴로운 행복함'으로 표현된 거지.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은 가지 않습니다. (한용운,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시간이 흐르면 남강은 당연히 흘러가지. 근데 왜 가지 않는다고 했을까?
제목에 힌트가 있지.
논개의 '애국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표현이겠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할 때 (이형기, 낙화)

이별을 축복이라고 했어. 헐~ 그럼, 사랑하지 말고 맨날 이별해야 되게~ 그치. 
나무에서 꽃이 떨어져야 씨앗이 영글어 열매를 맺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이별을 통하여 '영혼의 성숙'을 이룰 수 있다는 구절이야.

제일 어려운 역설 하나만 하고 오늘 수업 끝!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절정) 

4연으로 된 시는 기승전결!
앞의 두 부분은 '마음의 풍경', 뒤의 두 부분은 '화자의 감정' 선경, 후정. 
강철과 무지개는 반대잖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강철, 실제로 있지도 않은 허상 무지개...
저항시인 이육사의 절정은 '일제 강점기의 절정'에서 느끼는 고통을 나타낸 시란다.
아, 일제 강점기는 제발 좀 끝났으면 좋겠는데... 끝이야 나겠지.
어차피 폭력으로 강점한 것은 망할 수밖에 없으니... 무지개 같은 거야.
그런데, 그 일본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더럽게 강한 거야. 그게 '강철로 된 무지개'란다.  

이육사 나온 김에 절정을 다 한번 보자.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절정)

1연에서, 일제 강점기의 채찍질의 고통으로 북쪽 한계까지 갔어.
2연에서, 높은 고원까지 올라갔는데, 칼날처럼 좁은 곳이야.
3연, 이제 생각한단다. 발 디딜 곳도 없구나.
4연, 좌절하지. 일제는 엄청 센 놈이구나. 망하긴 망하겠지만, 쉽게는 안 망하겠구만~~ 

아빠가 인쇄해 준 걸 매일 2번 정도 읽어 보면 문학에 대해서 좀 가까워 질 거라고 생각해. 

다음 시간에는 1930년대 김영랑의 시로 만나자.    

잘자, 아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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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면서 간만에 학창 시절의 국어 수업이 떠올렸습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 장래희망이 국어 선생님인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글샘님의 수업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중간에 축구 선수들을 언급해서 내용은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의 수상 네루가 자신의 딸을 위해서 편지 형식의 <세계사 편력>을 썼다면,
글샘님이 쓰신 글들은 아들분을 위한 <국문학 편력>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04 10:40   좋아요 0 | URL
어젠 몸이 피곤해 하루 잤습니다.
역시, 지나친 음주는... 감사합니다.(술집 주인 말씀)예요. ㅎㅎ
오늘 시간날 때 김영랑을 쓰죠.

sslmo 2010-11-0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저런 뜻이란 거 오늘 처음 알았어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졸았나 보네.

아빠가,"잘자,아들,사랑해~"라고 한단 말이죠.
저희집에선 엄마가 하는데요~^^

글샘 2010-11-04 10:41   좋아요 0 | URL
새겨보지 않으면 쉬이 넘어가는 게 언어죠.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안 졸았어도, 밑줄 쫙 하느라고 기억에 남지 않았을 듯 싶네요. ^^
이제 사랑해~ 이런 말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아서요. ㅎㅎ

반딧불이 2010-11-0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시들은 향가, 고려가요, 시조의 전통을 이어오면서'를 '신라 향가, 고려가요, 조선시조' 이렇게 각각 불러주면 각 시대와 장르가 더 잘 정리되는 않을까요?

글샘 2010-11-04 15:48   좋아요 0 | URL
그러기 어려운 게요... 향가는 고려시대에도 많이 만들어 졌거든요.
고려가요는... 고려와 조선이 단절된 국가였기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고려때 노래가 급조된 국가 조선의 궁중음악으로 쓰이다가 훈민정음으로 창제되었구요.
시조도 고려말 사대부들이 부르기 시작했던 거여서 이름붙이기 좀 어렵죠.
 
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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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 생활할 때는 4호선도 사당이 종점이었는데, 요즘엔 서울 가면 도무지 방향을 잡기 어렵다.
내게 서울 골목길은 요령부득이었는데 87년에 시내를 많이 구경한 덕에 시내 지리는 환하다. 

최호철의 을지로 순환선은 만화이면서 회화다.
그의 대작 '와우산 1995' 국립 현대 미술관에 소장된 것이다. 105*74니까 엄청 크다.
'우리 사는 땅 2000'은 서울 시립미술관에 있는데 390*160이다. 헐~ 승용차만 하다.  

만화풍으로 우리 사는 곳의 살림살이를 그려넣어주니 보는 맛이 나고,
그림 속에서 서사가 풍겨나온다. 

그림 속의 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아 그려서, 그 어느 한 명을 잡고 물어도, 눈물 쏙 빠질 이야기 한 꼭지씩은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의 느낌도 들지만, 광각렌즈를 사용한 사진처럼 화면은 자유롭게 변형된다.
그 변형은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칼같이 자르지 않고 부드러운 선들로 구획지을 뿐이다.
마치 어제와 오늘이 두루뭉술하게 붙어 있는 것처럼... 

그림이 더욱 이렇게 인간 곁으로 붙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와우산'에서 여의도를 보니, 63빌딩은 금괴처럼 번득이는 자본을 상징하는 것 같고,
그 옆의 쌍둥이빌딩은 독점 재벌의 상징이고,
그 옆의 순볶음 교회는 뒤틀린 종교적 상징이고,
그 옆의 국회의사당은 썩은 정치의 상징으로 승화되어 모두 강가에 나란히 있다. 

박지성이라도 불러다 그냥 한강물에 확 차넣어 버리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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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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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길가다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지요. 밤새우며 글자락을 스치면 얼마나 큰 인연일까요. 

이외수의 글은 기발한 따스함이 있다.
수수하면서도 속되지 않고, 기품이 없어보이지만 탈속의 멋이 있다.
블로그질 하는 이의 정서를 저렇게 잡아내기도 쉽지 않다.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그럼, 내가 흘러야, 시간도 흐른다? 내가 흐른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일까? 유연하게 살자는 것일까? 세상 흐름을 느끼며 살자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맞춰 흐르자는 건지...
뭐, 이런 것들이 자유자재로 두루뭉술 뭉쳐진 것을 '흐름'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외수는 한국에서 책으로 먹고 사는 3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나머지는 공과 황.
써 놓고 보니 좀 웃긴다.
하나는 바깐 外
하나는 빌 空
하나는 거칠 荒 ... 농담이다. 

이외수의 짧은 생각들을 적은 이 책을 시집이라 하기엔 좀 뭣하고, 단문집으로 부르련다.
괜찮은 글들이 많다. 좀 적어 둬야겠다. 

7. 친구가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꿈을 꾸고 울다가 일어났는데 친구가 머리맡에서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햐아, 이 개쉐키, 내뱉는 욕 한마디의 정겨움이여. 

15. 대한민국 정부가 진실로 녹색성장을 꿈꾼다면 먼저 갈색으로 변해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부터 녹색으로 바꾸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자연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녹색으로 성장한다. 

74. 바로 앞에서 마주보고 있어도 천 리나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로 앞에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대가 생각하는 사람과 그대 사이의 간격은 어느 정도인가요. 

82. 지구에도, 우주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 물론 사람들 인생에도.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인생 전체가 봄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124. 지갑이 빈곤해서 친구와 술 한 잔, 밥 한 끼를 같이 먹지 못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친구와 술 한 잔, 밥 한 끼를 같이 먹지 못하느냐. 결론은 하나. 지갑은 두둑해졌는데 감성이 빈곤해졌기 때문이다. 

140. 그리움이 얼마나 간절하면 저토록 아름다운 빛깔로 불타겠느냐. 가을 단풍. 

145. 고수는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하수는 머릿속이 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175. 이것 봐. 방금 니가 씨팔이라고 말하는 순간, 별 하나가 깨져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니까.  

191. 낱말도 씨앗이다. 하지만 씨앗을 심는다고 다 싹이 트는 것은 아니다. 싹이 튼다고 하더라도 다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꽃이 핀다고 하더라도 다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다. 심었는가. 이제 살과 뼈로 거름을 삼고 피와 눈물로 뿌리를 적실 각오를 하라. 

242. 가을 찻잔에 달빛 한 조각을 녹여서 마셨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44. 사람들은 대개 프라이팬 위의 파전이나 빈대떡은 곧잘 뒤집으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은 좀처럼 뒤집으려들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은 한쪽 면이 타버렸거나 한쪽 면이 익지 않아서 맛대가리가 없다. 

287. 매미가 날개를 가지기 위해 칠 년 동안을 땅 속에서 굼벵이로 살았다는 사실엔 경탄하면서, 대부분 자신이 칠 년을 바쳐 날개를 가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토록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 형국의 인생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311. 어리석은 자의 인생엔 반전이 있어도, 게으른 자의 인생엔 반전이 없다. 

아~ 마지막 이 말은 정말 공감 백 배다.
내가 아이들에게 늘 들려주는 말이다. 게으른 자의 인생엔 반전이 없다.
어쩜,
이런 말을 이렇게 흘려 놓을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다가도,
그가 흘린 말이 아니라,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걸 못 봐서 그렇게 쉬워 보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어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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