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
다음 한 주도 보람차게 보내자꾸나.
일요일은 푹 쉬고, 월요일에 슬슬 계획을 짜서 시작하는 조금은 느린 삶도 좋을텐데...
현대는 너무 빡빡하게 사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마음만이라도 좀 느긋하게 가져 보자. 

오늘은 '유치환' 시인의 시를 몇 편 살펴 보자.
유치환의 '깃발'은 배운 적 있니?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발)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고 시를 썼단다.
그런데 처음에 '역설'이 쓰였지? 소리없는 아우성.
전에 역설 할 때 설명했는데...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던 한 남자의 목소리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마음은 들끓고 있는... 그런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야. 

영원한 노스탤지어... 향수, 돌아갈 수 없는 향수란 말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사랑해선 안 되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이 느껴질까? 

그렇지만, 불륜은 아니래. '순정'이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맑고 곧은' 깃대 끝에서 깃발은 나부끼다가,
백로가 날개를 펴듯, '애수(슬픔)'가 펼쳐진단다.
깃발을 보면서 슬픔이 가득한 마음이 된 거지. 

아아,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서 감탄사가 많이 나온다 그랬지? 전통적으로...
마지막 두 줄은 읽기 좋게 음률을 맞춰 두었지. 몇 음보인지 읽어 보렴.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4음보로 읽을 수 있겠지? 

이 시의 주제를 보통 '이상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라고 참고서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이성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 가깝단다.
유치환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시라고 봐야지. 

자, 깃발은 화자와 어떤 점에서 <유사성>이 있는 것일까?
깃발은 깃대에 묶여서, 가고 싶은 곳으로 못가는 존재지.
화자도 역시 결혼한 사람이란 관습에 묶여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도.
깃발이나 화자나, 그 묶인 것만 아니라면, 어딘가 훨훨 날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유사성이 있지.
그래서 <화자의 처지 = 깃발> 이렇게 표현한 거란다. 이런 것이 은유법이지.
유사성에서 이어진 두 사물의 연결.
전에 <상징>은 마법적으로 이어진 거라고 했잖아.
'햇볕'은 사랑이고, '어둠'은 악이라는 이런 게 상징이야.
잘 알아 두렴. 은유법. 

은유법, 그러면 제일 많이 들은 설명이 있지?
바로 A=B다. 그러면서 나오는 예가, '내 마음은 호수다.' 이거지.
그런데,  이렇게 하나 물어볼게.
내 마음은 호수다. 내마음과 호수 사이에 뭔가 유사점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잔잔함? 고요함? 조용함?

그건 답이 아니야.
내 마음은 호수~란 비유의 뜻은 그 뒤를 다 읽어봐야 돼.
은유법은 무조건 <유사점>을 찾아내야 되는 거지.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김동명, 1연)

어때?  호수와 내 마음의 유사점이 뭐지?
거부하지 않음이야. 이런 거지.
내 마음은 호수야.
언제나, 언제까지나... 당신의 마음만 내키시면, 마음을 내서 노저어 오시기만 한다면,
나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가득해서,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겠어요~
이런 사랑의 표현.  

이제 비유법, 은유법을 좀 알 것 같아?
비유는 '유사성'에 근거하여 빗대어 표현하는 거란다.
내가 잘 드는 예로, '사랑은 피자'란 게 있어.
사랑은 피자와 뭐가 유사할까?
피자 위의 토핑은 먹기 싫은 거 골라 내버리면 피자가 아니잖아.
그건, 피자 도우지~
먹기 싫은 토핑도 같이 먹어야 맛이 나듯이, 사랑도 입맛에 맞는 상황만 즐긴다면, 그건 진실한 사랑이 아니겠지?
그런 비유라면, 사랑은 피자다!
사랑과 피자는 둘 다 <입맛에 맞을 때도 있지만, 괴로울 때도 견디는 것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다고 봐야겠지.  

다음엔,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를 한 번 읽어 보자.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 어떤 것이 더 행복할까?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참 행복할 거야.
그런데, 이 사람은 사랑하는 일이 더 행복하대. ^^
그 설명을 아래에서 붙여 두었겠지. 

그래서 화자는 우체국으로 가지.
자신의 사랑을 <주는> 행위로 편지를 보내려고 말이야.

3연이 아마도, 편지의 내용과 비슷해 보인다.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고달픈 세상에서 만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은,
바람결에 나부끼며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피어난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 같다~는 연애 편지. 
화자는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큰 사랑을 느낀단다. 
주제라면 이런 거겠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행복> 정도. 

 

이 꽃이 진홍빛 양귀비 꽃이야. 자기의 사랑과 양귀비 꽃을 같다고 했으니, 유사성을 찾을 수 있겠지?
<연련(강하게 정을 느끼는)한 사랑> <강렬한 사랑> 이런 것 아닐까? 

앞의 두 편은 유치환이 <사랑>을 노래한 시였다면,
이제 살펴볼 세 편은 유치환의 <생명력에 대한 갈구>에 대한 시들이야.
우선 <생명의 서 書>란 시부터 읽어 보자.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나’와 대면(對面)ㅎ게 될지니.
하여‘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생명의 서)

책 이름을 <~~의 서>라고 붙인 책으로 <티벳 사자의 서>란 책이 있다.
티벳 지역은 지금 중국이 강점하고 있는 지역인데,
죽은 자의 책이라고 해서, 죽은 뒤 영혼이 어떻게 사는지, 그 준비를 하도록 적은 책이야. 

이 시는 좀 어려운 한자도 많고, 딱딱하구나.
화자의 지식이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 같을 때,
회의는 자꾸 의심이 드는 거야.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그래서 회의적이다~ 그러면, 부정적인 거랑 통한단다.
삶이 힘들어 병든 나무처럼 시들었을때, 화자는 <사막>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사막은 백일(白日, 태양)이 작열(이글거리고 불타는)하는 '모래의 땅' '사멸의 땅'이지. 

거기서 고독(孤獨)한 가운데 호올로 서면 ‘나’와 대면(對面)하게 될 거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비춰질지, 늘 눈치를 보며 사는 존재잖아.
그런데, 아무도 없는 사막에 가서 혼자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면... 제대로 '자아 성찰'이 가능하겠지?

거기서 <나의 생명>, <본연의 모습>을 깨닫고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데,
깨닫지 못하면 모래언덕에 후회없이 죽어서 백골이 되리라~ 이렇게 강하게 적고 있단다.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한 강한 의지가 드러난 시라고 할 수 있지. 이런 게 주제란다. 
이 시가 워낙 유명해서 유치환을 <생명파> 시인이라고도 해. 

다음은 비슷하게 딱딱한 <바위>란 시를 보자.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바위)

정말 단단한 시 같지 않니? 연 조차도 나뉘지 않았어. 시어들이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인 것 같아.
화자는 <바위>가 되고 싶대.
바위의 '속성'의 어떤 점을 닮고 싶은 것일까? 

2연부터 그걸 열거하고 있단다.
애련(사랑과 연민)에 흔들리지 않고, 희로(기쁨과 성냄)에 움직이지 않고,
오랜 세월 침묵하며, 내적 성찰을 하고,
흐르는 구름과 먼 우레(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바위.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죽어서 바위가 되고자 했을까?
지금의 삶은 너무도 '애련', '희로', '정', '말들'에 시달려서 힘들다는 표현이 아닐까?
그래서 죽어서 바위가 되어, 사랑도 모르고 정도 없이, 말도 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시로 쓴 것 같아.

다음에 쓴 시는 유치환이 1960년 4.19 일어나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시래.
4.19 혁명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이승만 정부가 부패하는 꼴을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고,
온 국민이 일어서서 싸운 훌륭한 사건이란다.
그렇지만 1년 뒤, 박정희가 탱크를 몰고 국회를 해산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독재를 시작하지.
그 4.19 직전이니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참 부족한 사람이었대.
빨갱이를 잡으려고 제주도에 미군을 비롯한 토벌대를 보내서 사람을 엄청 학살했단다.
1948년 4.3 이야기지.
그래서 제주도에 여자가 많은 섬이 되고 만 거야.
1950년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제일 먼저 도망가서 한강 철교를 폭파하도록 한 부족한 대통령.
그래놓고도 권력을 오래 잡고 있으려고 부정선거를 저지르다가 4.19로 쫓겨나고 말았지.
그 시대를 노래한 시를 한 편 보자.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엔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1960. 3)

고독은 욕되지 않고, 견디는 사람에겐 영광이래.
독재 권력 아래의 치욕스러움을 <영광>이라고 표현했으니까 역설법이라 할 수 있지.
부정에 저항하는 일이 오히려 <영광>스럽다는 말이니깐. 

2연에서 '겨울(독재시대)'엔 요조(아름다움)하던 빛깔, 설레이던 몸짓이 모두 사라졌어.
마치 마술사의 모자 속처럼.
독재시대는 그래서 앙상하고 차가운 하늘뿐이어서, 지조를 지키는 저항하는 사람에겐 오히려 좋대.
정막 독재가 좋을까? 반어적인 표현이겠지? 

참된 것, 옳은 것은 학살하는 독재의 시대.
자신의 뜨거운 노래는 언 땅(독재)에 깊이 묻겠대.
땅에 묻는 것은 '싹이 트기를 기다림'의 표현이라 해도 좋겠지? 
마치 이육사의 <광야>에서 '노래의 씨를 뿌려라' 했던 표현이나 마찬가지 의미지.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나의 <노래>, 화자의 <의지>가 있어.
나를 죽여도 좋지만, 절대 죽일 수 없는 <의지>.
바로 <독재>에 굴할 수 없다는 <자유의 의지>겠지.

차라리 자기 노래를 땅에 묻을지언정,
비도(非道, 도리가 아님, 부정함)를 치레(꾸밈)하기에 쓰이도록
비리, 부정함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지. 

거짓의 거리에서는 '행복한 나라~'라는 구호와 '훌륭한 지도자'를 찬양하는 소리가 울리지만,
다들 옳은 정신을 팔고, 독재 국가에 봉사할지라도.
자신만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마지막에 다시 의지를 단단히 하지.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이번 주엔 G20 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대.
Group of 20 은 2008년 미국의 자본이 크게 흔들린 사태 이후,
세계 강대국 7개국(미프영독일이캐)과, 12개의 신흥공업국, 유럽공동체까지
20개 국가의 <재무장관>회의가 열린 데서 시작된 거래. 

결국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지.
한국같은 신흥 국가는 언제나 강대국 사이에서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된단다.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나 협력해야 하는 처지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계적 모임을 우려하곤 한단다. 

강대국의 <자유 무역> 의지는 늘 약소국의 희생을 강요하게 마련이지.
한국같은 어정쩡한 나라에선 늘 <재벌>의 이익과
<민중>의 희생을 다시 만들어내는 구조로 작용하게 된단다. 

이런 사회의 흐름에도 관심을 조금은 가지기 바란다.
어차피 사회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다시 한 주일의 시작이다.
날이 차니깐, 감기 조심하고, 늘 기쁘게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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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0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 없는 아우성. 역설법으로 시험문제 보기에 자주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글샘님 같은 내용을 쉽게 재미있게 설명하시는 선생님을 만났으면 국어 수업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국어 시간 중에서 고전시가 수업 빼고는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글샘님 수업에는 요즘 시세와 재미있는 표현들이 섞어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고전시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학생들은 국어 시간 중에 고전 문학에 대해 어렵게 여기고 재미없어 하더군요.
글샘님이 바쁘신건 알지만 글샘님의 고전문학 특히 고전시가 수업을 기대 해봅니다.
오늘도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08 13:11   좋아요 0 | URL
요즘엔 수능에 고전이 반영되는 비율이 낮아서, 고전은 현대문으로 번역된 걸 분위기 파악만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전 문학도 나름대로 가르칠 맛이 있는데 말입니다.
틈틈이 조금은 다룰 겁니다. ^^

반딧불이 2010-11-0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치환의 시에서는 한자가 참 견고하고 확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를 저는 처음 보는데 익숙치 않은 탓인지 느낌이 좀 다르네요.

글샘 2010-11-08 19: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아무래도 한자들이 자의식을 드러내기 좋은 역할을 한 시들이 있죠.
그래도, 연애시 <깃발>과 <행복>에선 그렇지 않거든요. ^^
<뜨거운 노래~>는 신문에 실렸던 건데, 4.19 전야의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어제 썼던 윤동주와 함께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육사.
감옥에서 번호가 264번이어서 원래 이름을 버리고 이육사로 불리기도 한대. 

이육사 시는 뭘 배웠지?
고등학교 책에서 <광야> 배웠고, 중학교 때 <청포도> 배웠나?
우선 '청포도'랑 '광야'부터 간단하게 보고 시작하자.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이육사 시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이 <단정>하다는 거야.
마치 조선의 강직한 선비처럼 단정한 한복을 다려 입은 듯한 형식이지.
연의 길이가 비슷해서 시각적으로 단정하단 느낌을 준단다. 

이 시에선 <시각적 심상>이 많이 나오지?
<심상>이란 글을 읽고 마음에 그려지는 '감각'인데,
직접 감각이 보거나 만지지 않아도 마음 속에 그려지는 것이지. 

청포도의 푸른 색, 하늘과 바다의 푸른 색과 흰 돛 단 배, 푸른 도포의 엷은 옥색,
은쟁반의 은빛과 하이얀 모시 수건...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진 시라고 하지. 

그리고 전설에 따라서 화자가 간절히 기다리는 대상은 누굴까?
가장 힘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
희망을 품게 해 주는 존재. 그런 것이겠지.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게 해 주는 존재.
일제 강점기임을 고려하면 독립이나 해방 같은... 

그래서, 준비를 하자고 하네. 하이얀 모시 수건과 은 쟁반.
마지막 연의 '아이야,'는 시조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감탄사>와 유사한 구절이지.
전통적 형식을 이어받은 거라고 볼 수 있단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도 '아아'로 4/4/2의 세번째 부분이 시작하고 있었던 것 기억하니?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일까?
'손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럼, <광야>를 보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5연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연이 몇 행?
가지런하다는 걸 알 수 있겠지?
<절정>도 4연이 모두 2행이었고, <교목>도 3연이 모두 3행으로 일정했단다.
물론 더 넣고 싶은 말이 있었어도 퇴고 과정에서 많이 뺐겠지. 

이 시 '광야'는 참 스케일이 큰 시란다.
보통 이육사의 시를 <남성적>이라고 하는데, 꼭 남성만이 웅장한 건 아니지만,
규모가 크고 웅장한 것을 보통 '남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
수능에 그런 용어가 나진 못해. 고발당하거든 ㅋㅋ 

이 시는 1,2,3연과   4연,      5연의 세 부분이 
             '과'거     '현재'    '미래'로 되어있단 건 배웠겠지?
1연을 줄이면 "옛날에"가 되고,
2연을 줄이면 "광야에서"가 되고,
3연을 줄이면 "역사가 열렸다"가 되지.
보통 '강물'은 '역사'를 <상징>하니깐. 

잠깐, 상징을 이야기할게.
<상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생각나는 걸 말해. 마법적 연결이라고 하지.
'비둘기'는 더럽고 지저분한 새일 수도 있는데 무엇의 상징?
그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평화!
'십자가'는 형틀인데 무엇의 상징?
그렇지, 예수님 또는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이지.
보통 '강물'은 흐르는 '역사'를 상징해. 

다시 4연으로 가서. <현재> 기상 상태가 어떻습니까? 지금 눈 내리고... 지.
상태가 안 좋아. 일제 강점기.
근데, 그 눈 속에 핀 꽃이 있어. 절개가 곧은 꽃.
추워도 핀다면 피는 꽃. 매화지.
매화는 지조가 곧은 선비의 상징으로 쓰인단다.
예로부터 '매화, 난초, 국화, 대'(매난국죽)을 4군자로 불렀어.
선비의 상징.
화자는 그 일제 시대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추워도 할 일은 하는 거지.
윤동주 처럼,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소명 의식.
또는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붉은 피를/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하는 희생 정신. 속죄양 의식.
이런 게 드러나지.

내가 <현재> 뿌린 씨앗이 '천고의 미래' 나중 나중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목놓아 노래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 
이 시의 주제는 배웠지?
이육사 시의 대부분의 주제는 이거야.
<앞부분에서는 고난>, <뒷부분에서는 극복> 합치면, <시력, 고난의 극복>
이 시도 그래. 고난 극복의 의지. 강한 의지적인 시라고 할 수 있지.

<절정>과 <교목>은 전에 했으니 패스~
이 시들도 가지런하고,
시련 극복의 의지가 들어있는 시란다.
이육사의 선비 정신이 가득한 시.
다음엔, 이육사의 '꽃'을 보자.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꽃)


이 시도 역시 3연이 모두 4행으로 형식은 어때?
단정하고 가지런하지.
앞에서 시련을 뜻하는 단어 뭐가 있을까?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은 그때,
북쪽 툰드라의 찬 새벽, 이런 거지. 

그럼, 희망과 의지를 나타내는 시어는?
1연의 가뭄에도 오히려 빨갛게 피는 꽃.
2연의 옴작거리는 꽃 맹아리. 저버리지 못하고 날아올 제비와 피어날 꽃의 약속.
3연의 꽃이 성을 이룬 장면, 나비처럼 <의지>를 갖고 <희망>을 부르는 무리들(우리 민족)

이 시의 1연의 <오히려>, 2연의 <마침내> 3연의 <불러 보노라> 이런 시어들은
아주 강렬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니?
이육사의 특징이 잘 드러난단다.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 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노정기)

노정은 '어떤 지점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나 시간'을 뜻하는 말이야.
<노정기>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이야기, 또는 기록이지. 

이 시도 역시 5행이 각각 3연으로 가지런하다.
1연에서 초라한 '목숨'을 이야기하지.
2연에서도 '작은 배 쩡크선'처럼 세상에 찌든 모습이고.
3연에서 '암초, 태풍'과 싸우는 시련 가득한 인생.
2연에서 <남들은 기쁘다는 인생>, 3연에서 <산호섬>도 <남십자성>도 없는 슬픈 인생을 회고한단다. 

4, 5연에서 쫓기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뭍에 오르면
시궁창과 거미와 다 삭아빠진 소라껍질에 붙어 온 자신의 인생.
흘러 흘러 먼 항구로 흘러들어간 자신의 슬픈 생활을 들여다 보는 시.
아빠가 이야기한 것이 하나 다르지?
이 시에는 <시련, 고난>은 있는데, 뭐가 없어? 
그래. 이 시는 <회고적, 비극적>인 시일 뿐이지, <의지적>, <희망적>인 시는 아닌 거야.
이 시의 주제는 <쫓기는 삶의 비애, 과거의 어두운 삶 회고> 정도가 되겠지.

이육사는 1904년 안동에서 이퇴계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단다.
이 시절 선비의 자녀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육사도 어린 시절에는 전통적인 한학을 공부했어. 
그는 1925년에 폭력도 서슴지 않던 항일투쟁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한다.
1931년 북경으로 다시 건너간 육사는
이듬해 조선군관학교 들어가서 두 해 뒤에 조선군관학교 제 1기생으로 졸업한다.
1943년 일본 형사대에 붙잡혀 해방을 일년 남짓 앞둔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무려 열일곱 번이나 옥살이를 했다.
육사(陸史)라는 그의 아호는 그가 스물네 살 되던 해인 1927년 처음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의
그이 죄수번호가 264번이어서 그것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어.
육사는 투쟁론의 입장에 선 독립운동가이며 또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시험에 엄청 나오지.

이렇게 시에는 시인이 살아온 <시대>와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이
물결이 지나가고 난  뒤의 모래밭처럼 남게 되어 있단다.
민우도 살고 난 뒤,
어떤 모랫결을 남기게 될는지...
잘 생각해 보는 주말이 되기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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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철로 된 쌍무지개
    from 男兒須讀五車書 2010-11-07 23:47 
                   요즘 읽고 있는 미술 도서가 사바나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명옥 씨의 <아침미술관> 2권이다. 작년에 발간된 1권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올해 나온 2권에 대한 기대도 컸다. 365일 매일 아침 그림 한 점씩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1권은 1월에서 6월까지, 2권은 7월에서 12월까지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1
 
 
cyrus 2010-11-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육사 시인은 어두운 시대 속에 살면서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차분하게 시로 표현하고 있어서 좋습니다.
글샘님에서 소개되지 않았지만 저는 <절정>이라는 시도 좋았습니다.
제가 쓴 페이퍼 중에 <절정>에 대한 글 한 편 썼는데 여기 먼댓글로 올려도 되는지요?
그리 잘 쓴 글은 아니고, 이육사의 시에 대한 감상이 없지만,,
이육사의 <절정>과 어울리는 그림 한 편이 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샘님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봅니다. 글샘님뿐만 아니라 글샘님의 서재에 들리시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샘 2010-11-07 20:48   좋아요 0 | URL
'절정'은 전에 <역설> 공부할 때 한번 다뤄서 여기선 뺐습니다.
먼댓글로 붙여 주세요. 어떤 그림일지 궁금하네요.

cyrus 2010-11-07 23: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글샘님.

반딧불이 2010-11-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포도>를 처음 읽었을 때 포도는 온데간데 없고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이 도드라져보였던 기억이 있어요. 모시수건에 포도물이 드는걸 걱정하기도 했었구요. 청포도 사진과 함께 하니까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글샘 2010-11-07 20:4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푸른 이미지보다는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 이미지가 정말 선명하죠.
ㅋㅋ 포도물이 드는 걱정까지...
 
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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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는 그의 프로필, 얼굴, 키, 말빨, 직업,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이름조차, 조국인가. 

조국의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노무현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부엉이 바위의 비극은 없었을 것을...
이런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
바보 노무현이 남긴 것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진보>의 유능함에 자부심까지 가지게 된다.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는 사람이다.
악마적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내가 넘어가고,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른다.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막스 베버, 253)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힘을 줘도 못 쓴 부분. 

노무현은 두개의 전선을 만들었어야 했다.
개혁 입법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2중 전선을...
전자에 올인 할 것이 아니라 후자에 제도적 말뚝을 박는 데 힘을 배분했어야 했다.(138) 

정치적 기본권과 <밥>의 문제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 그만 놓쳐버린 그 것을 한나라당이 주워가진 것이다.
"밥 먹여준다"가 승리한 것이다.
진보의 과제는 "더 좋은 밥을 행복하게 먹여줄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진보가 꿈을 꾸는데만 그친다면 맨날 무능하단 소리밖에 못 듣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꿈을 다른 사람과 같이 꾸면서 현실화해야, 일상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진보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조국의 <진보, 개혁>의 범주는 명쾌하지 않다.
2007 경향신문 <한국 사회 지식인 지도>에서 '중도 좌파 탈민족주의 진보적 사회시민론자'로 분류된 그의 시점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지형도는 <수구 꼴통>과 <진보, 개혁>의 연합체 구도를 살피게 된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난 한국 사회는 러셀의 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를 해 왔다.

   
  어리석은 자들은 독단적으로 자신만만한데 반하여,
똑똑한 자들은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 세상의 문제다.
 
   

그래서 분열과 반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을 비극 속에 보낸 국가로서,
이제는 진보의 집권을 준비하고 학습 효과를 드러낼 때가 되었다. 

그러기에 이 책은 노무현의 유작들에 비하여 훨씬 비중있게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를 그려 보여 준다. 

그러나 정치권의 행태도 한심하다.
"왕이 되기를 포기하고 영주에 머물고자" 하는 봉건적 야당 민주당(72)도 개조해야 한다.
촛불 정국 이후로 지친 386도 끌어 안아야 한다.
그럴 때, 그는 적절한 시구절 하나 옮겨 온다.
이렇게 시까지 아는 완벽한 남자, 좀 징그러울 지경이다.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네.
그러나 잠들기 전에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더 걸어가야 할 몇 마일이 남아 있다네. (로버트 프로스트, 79) 

386이 앞으로 더 걸어가야 할 길을 이 시 한 구절로 마무리되는 걸로, 그의 이야기의 간결함이 돋보인다. 

세네카가 했다는 말,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일어나는 것(312)'도 한국 정치에 거는 기대와 부합하지만,
"뭐든지 애매하게 방치해 두면 안 된다.
그것은 후배들, 후세대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
짚을 것은 붐명히 짚고 넘어가는 풍토가 진보, 개혁 진영에서 만들어 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223)"이 그와 오연호의 기대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모두 신자유주의 추종자이므로 <진보>로만 뭉치자는 사람들은 더욱 반성해야 하고,
'영주'에 머물려는 우스운 야당도 과거를 통해 많이 배워야 한다. 

결국, 부엉이 바위에서 배우지 못하는 시민은, 독재 세력의 젯밥이 되어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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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6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6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0-11-0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책 살꺼예요.^^

글샘 2010-11-06 21:32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 봐야 하는 책이라 생각해요. ^^

북극곰 2010-11-1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나오기도 전에 글샘님의 소개글을 보고 미리 구매?해놨더라지요. 요즘은 책을 안 읽기로 한 상황인지라 조금씩만 보고 있어요.^^ 자주 들러서 많은 것들 배우고 갑니다.

글샘 2010-11-12 12:05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선 배울 점이 많습니다. 차분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죠. ^^
그나저나 조국 교수도 인권위에서 나오고... 인권이 없어지는 판국이네요.
 

어제 김영랑을 이야기했지.
1930년대 어두운 시대에 '언어를 갈고 닦은 조탁자, 세공사'란 이야기를 들었던 김영랑. 

오늘은 1940년대 중요한 작가 윤동주 이야길 하자.
그럼 내일은 이육사가 되겠구나. 

윤동주의 시중에 가장 유명한 시가 뭘까?
알겠지? 서시(序詩).
우선 서시부터 한번 읽어 보자꾸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참 단정한 시다.
일제 강점기 후반, 윤동주는 감옥에 갇혀서 죽어가는데,
이런 시를 쓰면서 자신을 단정하게 가다듬었겠지.
'나한테 주어진 길'
이런 것을 '소명'이라고 한단다.
민우 앞의 길에는 어떤 길이 주어져 있을까?
일제 강점기가 아닌 것이 참 다행이잖니? ^^ 

다음엔 문학 교과서에서 배운 '쉽게 씌어진 시'를 보자꾸나.

1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2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를 적어 볼까,

3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4 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5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6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7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8 육첩방은 남의 나라/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9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0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 

전체적으로 10개의 연으로 이뤄져 있는데, 수미 상관이 있단다. 바로 1연과 8연이지.
그럼, 화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1연과 8연 사이에서 다 나오겠지? 
나머지 2연은 조금 분위기가 다른 연이란다.  

1연에서 6첩방은 다다미가 6장 깔린 방이란 뜻이야.
다다미는 일본식 바닥재인데, 일본이 공간적 배경이지.
시를 쓰는데, 3,4연에선 조금 부끄럼을 느끼고 있단다.
부모님이 힘겹게 보내주신 학비로 '늙은 교수의 강의'나 듣는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지.
윤동주는 일제 때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을 갔던 거야. 

5,6연에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 걸 '자아 성찰'이라고 해.
무얼 하겠다고 유학을 온 건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유학생...
7,8연에서는 자아 성찰의 결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지. 반성. 

그래서 9,10연에서는 변화된 자아가 도출돼.
아마 이 시는 밤중에 썼을 거야.(밤비가 속살거려...라고 했구나.)
밤중엔 감정이 잘 변하고 스스로 생각이 이리저리 바뀌곤 하지.   

 

 

 

 

 

 

 

 

윤동주는 아주 강인한 사람은 아니었단다.
일제 강점기만 아니었다면 부드러운 학자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르지. 생긴 걸 봐. ㅎㅎ
'어둠'이나 '밤'은 전통적으로 <악의 무리>를 <상징>하지.
그런데, 부드러운 윤동주란 남자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겠다고 해. 조금.
그리고 역사는 당연히 새로운 아침을 맞게 되겠지. 그걸 기다리는 '최후의 나'가 있어. 

'최후의 나'란 어떤 의미일까?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며 싸울 때, 최후에 죽는 전사도 있을 거잖아.
그런 의연한 결의가 담긴 말로 볼 수 있겠구나. 내가 최후에 죽더라도... 나는 아침을 기다린다. 

마지막 연에서 '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시도한다.
<자아 성찰>을 통해서 <자기 반성>을 했고, 그래서 <최후의 나>가 되었잖아.
자아 성찰 이전의 '나'는 <좀 부끄러운 나>였고,
자아 성찰 이후의 '나'는 <최후의 나>를 각오하는 사람이야. 의지적 인물로 변했지.
그래서 앞의 '나'가 뒤의 '나'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성찰 이후의 나>가 <부끄러워하는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되는 거지. 어렵나? ^^
바뀐 나를 '본질적 자아'라고 하고, 바뀌기 전의 나를 '현상적 자아'라고도 해. 

자기 반성을 통해서 각오를 다지는 그런 시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조금' 부드러운 사람이었어. 

여기서 잠시,
그와 상반된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이육사'의 시어를 한 번 보자꾸나.
전에 '강철로 된 무지개'란 절정을 썼던 시인이지. '광야'는 수업 시간에 배웠잖아.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이육사, 교목 喬木>

교목은 <높을 교, 나무목>을 써서 곧고 높게 자라는 나무를 뜻해. 키다리 나무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옆으로만 퍼지는 나무를 관목 灌木 이라고 하지. 떨기나무라고 그래.
이 시에서는 교목처럼 우뚝한 이육사의 높은 기상, 기개 이런 것이 느껴지잖아. 

특히 '차라리~말아라', '아예~아니라', '차마~못해라' 이런
'강한 부사어'와 '부정어'가 정말 강철같은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
이런 시와 비교해 보면 윤동주의 시어가 얼마나 보드레한지 느껴지지.

이번엔 동시 풍의 시를 한번 보자꾸나.
윤동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동시가 많단다.
시작은 동시야. 중간에 돌변하긴 했지만 말이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十字架))

쫄래쫄래 걷다보면 해가 따라오잖아. 그러다 교회당 꼭대기에 해가 걸렸어.
동시같은 화자의 상상.
저렇게 높은 뾰족탑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종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맘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서성일 때까진 평범한 사람이지. 

그러다가 갑자기 4연에서 분위기가 바뀌지.
'괴로웠던'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는 역설 다룰 때 했던 기억 나니?
죽음을 예정한 '괴로움'과 인류 구원으로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지. 

<처럼>을 행을 바꾼 이유는 뭘까?
그 앞에선 그저 옛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린 건데,
<처럼> 뒤에선 누구 이야기가 나오겠니?
그렇지. 화자의 이야기가 나와야 돼.

나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그래서 나의 죽음으로 우리 민족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잖아.
그런데, 잠깐.
여기서 또 윤동주의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 나온단다.
피를 흘리는 '희생'을 하는데 어떻게 흘린다고 했지? 

응, <조,용,히>...  
이렇게 부드러운 남자를 죽게 만든 시대라니... 참 잔인하다. 

윤동주 시 중에 제일 어려운 시가 <또 다른 고향>이야.
2년 전에 교육청 시험이 이 시가나왔는데 애들이 바짝 쫄았지.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안 났지만, 대부분은 어려운 시를 보고 쫄게 돼.

1 故鄕(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내 白骨(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2 어둔 방은 宇宙(우주)로 통하고/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3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풍화작용)하는 /白骨(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白骨(백골)이 우는 것이냐/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4 志操(지조)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5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6 가자 가자/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白骨(백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

좀 어렵고 낯선 시를 보면, <제목>부터 보는 습관을 들이자.
제목이 '또 다른 고향'이지.
'고향'은 자기가 나고 자란 동네. 농경 사회에서 가족이 사는 동네를 뜻해. '공동체 문화'의 기억이 있던 곳. 
그런데, '또 다른 고향'이라면... 고향이 두 개로 분리된 것 같지?
아까 '쉽게 씌어진 시'에서 <자아>가 두 개로 분리된 것처럼 말이야.  

고향에 돌아왔더니, 내 백골이 한 방에 누웠대. 내 백골은 <가치있는 존재>로 보이냐? 반대일까?
그래. 무가치한 존재로 보이지. 아주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마음. 

판타지 소설로 생각하면 될 거야.
어두운 방(침울한 분위기)은 안정적이지 않아서, 우주 어디론가 가버릴 거 같아.
방 안에 하늘에서 소리나듯 바람이 썰렁하게 분대.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되어 가는 백골을 보는 <나>
그 백골은 남의 뼈가 아니라 <나의 뼈>야. 가치없는 나의 모습. 부끄러운 나의 모습.
눈물이 나는구나.
그 눈물은 내가 흘리는 것이고,
가치 잃은 나의 백골이 흘리는 것이고,
높은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혼이 흘리는 것이지.  

자, 여기까지에서 <지금의 고향>, <돌아온 고향>은 어떤 분위기지?
춥고 썰렁하고 으시시한 고향.

개가 짖는다. 그런데 그 개의 짖는 소리가 <지조 높은 개>로 들리는구나.
지조 높은 개의 소리는 나를 일깨우는 소리야.
5연에서 <나를 쫓는 소리>라고 하잖아. 
시험에 <지조 높은 개>는 화자에게 어떤 존재인지 물었어?
답은 <일깨우는 존재>였지. 쉽지?

마지막 연에서는 어디론가 가자고 해.
그 지향처는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이야.
지금 백골이 풍화되어 누워있는 이 무기력한 곳, 우울한 공간 말고,
평화롭고 따사로운 행복함이 있을 곳,
김소월이 <엄마랑 누나랑 가고 싶던 강변> 같은 곳.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있는 곳.
그런 <또 다른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희망. 

역시 윤동주의 소심한 표현이 등장하지.
후딱 가지도 않고, 뚜벅뚜벅 가지도 않고, 눈보라를 헤치고 가지도 않아.
백골 <몰래> 가재. ^^ 아빠는 윤동주의 이런 시어를 보면 혼자 싱긋이 웃음이 난단다. 

<서시>처럼 맑고 고결하게 살고 싶던 윤동주가,
<쉽게 씌어진 시>나 <십자가>, <또 다른 고향>처럼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의지를 가지게 되지. 
그렇지만 그는 해방을 보지 못하고 해방이 되던 1945년 2월 16일 27세의 나이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해. 

그의 죽음은 일제 말 생체실험의 결과라는 이야기도 있어.
남긴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전해지지. 

아, 오늘은 시험에 많이 나오는 윤동주를 읽었다.
좀 분열적인 자아를 가진 시들이지만, 시대가 시대였으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 

민우가 사는 지금은 일제 강점기의 청소년에 비한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시대인지, 이 행복을 다 누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주말이 되는구나.
아빠의 강의를 듣는 소감이 어떤지 답장 한 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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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정에 갔을 때 들렀던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 허허벌판의 확신할 수 없는 묘지도 생각하며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글샘 2010-11-06 08:41   좋아요 0 | URL
공부 젤 열심히 하시는 거 같아요. ㅎㅎ 보람이 있습니다. ^^

마노아 2010-11-0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윤동주를 읽는 밤이라니, 즐거웠던 문학 수업이 떠올라요. 모의고사 보던 날 시간이 남아서 별헤는 밤을 외웠어요. 그 다음날 야자 시간 쉬는 시간에 친구랑 별을 보면서 시를 읊었어요. 그랬던 여고 시절이 생각나요.^^

글샘 2010-11-06 08:42   좋아요 0 | URL
십여 년 젊어 지셨나요?
자~ 별 헤는 밤 외워 보세요. ㅎㅎㅎ
시 읽는 일은 이렇게 즐거운데, 애들은 왜 싫어할가염... ㅠㅜ
누구나 시험 치면 싫을 거 같네요.

울창 2010-11-0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에게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40시간쯤 되는 것 같아요.
저 많은 책들을 언제 보시고, 이 많은 글들을 언제 쓰시는지...
게다가 대충 쓰시지도 않으니.... 감탄할 따름입니다.
아드님께 보내는 연서(?)이기도 하니 남의 편지를 훔쳐보는 기분을 느끼게까지 하십니다.
열심히 출석 중입니다.

글샘 2010-11-06 21:33   좋아요 0 | URL
하루가 원래 240시간 아닌가요?^^
책은 대충 봐서 그렇구요, 글도 대충 써서 그렇습니다. ㅎㅎ
열심히 출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0-11-0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 시절에 <별 헤는 밤>을 공부하면서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국어 선생님이 이 시의 훌륭함과
윤동주 시인의 생애에 대해 자주 언급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랜만에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07 20:47   좋아요 0 | URL
학창 시절에 엄청 모범생이었나봐요. ^^

부산의 준영맘입니다 2010-11-2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윤동주 시인 대신 정지용 시인이 자꾸 떠오르네요

어제 샘의 블로그를 발견한 후 컴을 켜면 손길이 이리로 이끄네요.

좋은 시에 쉬운 설명을 곁들이니 제 마음이 호사를 누립니다.

글샘 2010-11-21 21:11   좋아요 0 | URL
정지용도 언제 한번 다루게 되겠지요.
천천히 읽어 주시길...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 (특별부록 : 이크종 캐릭터 수첩) - 뭘 좀 아는 이크종의 백수지향인생
이크종(임익종) 글.그림.사진 / 예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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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니 77만원 세대니 하는 위기섞인 말이 흔히 나돈다.
우석훈처럼 '명랑'을 외치는 사람은 한 마디를 해도 조심해야 되는데, 말이 좀 흔하다.
명랑하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패배의식'을 절대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는 '삼성'의 가족이 되었다면 좋아할지 모른다지만, 많은 SKY 졸업생들이 삼성 입사를 꺼리거나,
입사 몇 년 후 나오고 만다고 한다.
그 비인간적 근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통령조차도 주어진 휴가를 찾아먹지 못하는 더러운 나라.
이명박도 불쌍하다. 

그런데, 멀쩡한 Y대를 나온 넘이, 혼자서 백수 생활을 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그 DKNY(독거노인)의 삶 그 자체다. 

그런 통 큰 넘이, 왜 그렇게 책은 쪼잔하게 해 놨는지, 돋보기 들이대고 읽었다. 나쁜 넘! ㅋㅋ 

아마 A4로 그려서 A5로 인쇄한 탓이 클 게다. 제발 담번엔 이런 포악 부리지 마라.
나처럼 근시인 사람도 잘 안 보이는데, 하긴, 주 독자층인 젊은애들이야 잘 보겠지만... 

그의 만화는 유쾌해서 좋다.
그의 하루하루를 보는 일은 나의 젊은 '자취 생활'의 단면들과 만나게 돼서 재밌었다.
나야 백수로 살지 않아 그와는 다르지만, 자취생의 대부분은 혼자서 뒹굴고 혼자서 즐기는 뭔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의 이 책을 뭘로 분류할까 하다가 '역사'에 넣었다.
이 책은 '만화'지만, '그림이 뛰어난' 예술은 아니고, 뭐 맨날 홀랑 벗고 있지만 하나도 야하지도 않고...
이야기가 있지만, 글타고 '문학'적이지도 않고...
그런데 딱 보면, '한국형 21세기 백수의 미시사'에 딱 맞다. 

힘겨운 88만원 세대들에게, 취업 준비로 토익 공부에 형광빛 도서관 안에서 열중하고 있을 시들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살아도 즐거울 수 있다~ 이런 유쾌함을 날리는 메시지를 읽는 일은
깨알같은 글자에도 적응하며 웃게 만든다. 

 

<최호철, 도서관 풍경> '을지로 순환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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