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6 - 2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6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공간적 배경이 간도로 뛰면서 봉순이를 놓쳤다.
이제야 봉순이를 만났는데, 기방으로 간 봉순이는 삶이 역시 팍팍하기만 하다. 

사고가 난 서희와 길상이는 병실 수발로 극적인 화해를 하지만,
아무래도 난 이 결혼 반댈세~ 쪽이다.
뭐,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생기는 법이지만, 이 소설에서 꼭 서희를 길상이와 맺어야 하겠냐고 묻고 싶다. 

   
 

부모 마음하고 하느님 마음은 고르다고들 하는데 어이구,
세상사를 가만히 보믄 그것도 빈말이라.
어질고 착한 사람은 도처에서 고생을 하고
남으 입에 든 밥이라도 뺏아 묵을 듯이 해구는(날뛰는) 사람들만
떵떵울리고 사는 거를 보므는... 

 
   

이런 게 작가가 보여주려는 세상이다.
김정한의 <수라도>처럼... 세상은 온통 수라장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수라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내비치는 36도의 미지근한 온기.
그 온정으로 또 삶은 이어지는 것이리라. 

이 권에서는 환이가 벌이는 동학 잔당의 이념 논쟁의 한켠이 비춰진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벌이는 세력 다툼에 잇속이 바른 정치가들에게 작가가 들려주고픈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대승적 경지에서 통합이 필요하고, 분파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목적아래 상생을 꾀하지 않으면 다 죽게 되는 일. 
그것이 정치라는 더러운 물살이고,
아무리 무지랭이 백성이라도 그 더러운 물살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는 법임을 묵직한 소설은 들려준다. 

봉순이가 오랜만에 길상이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 빼는 구석은 여성 작가의 섬세함을 빌렸다.
그러면서도 환이가 밀어제친 여인이 목을 매는 구석은 또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풍자이기도 하다. 

사필귀정... 그것을 '빈말이라'... 이렇게 정리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준엄하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0-11-2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경리 선생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길상이와 서희를 맺어주고도 윤국이와 환국이에게 최씨 성을 붙이는 건 좀 억지스럽죠?

순오기 2010-11-29 13:58   좋아요 0 | URL
오늘 고딩 자녀를 둔 독서회 엄마들에게 글샘님의 문학수업을 소개했어요.
독자가 몇 몇 더 늘어날 듯합니다.^^

글샘 2010-11-29 15:50   좋아요 0 | URL
삶이란 또 그렇게 억지스런 구석이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이겠지요.
조선시대 양반의 삶이란 모질게 억지스럽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던 것 아닐까요?

소개한다고 찾아올 정도로 순진한 분들? ㅋㅋ

BRINY 2010-11-2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결혼 반댈세~'에요. 길상이와 봉순이가 맺어졌다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너무 평범할까요?)(평범하게 행복한 게 뭐가 나빠서?!)

글샘 2010-11-29 15:51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이 결혼 반댈세~ 길상이랑 봉순이가 정말 행복하게 평범하게 막노동하고 살았음... ㅠㅜ

소나무집 2010-11-3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대~~
윤씨부인과 김개주의 만남은 쥐도 새도 알면 안 되는 절대 비밀...
별당아씨와 환이의 만남은 쉬쉬거리지만 그래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
환이와 서희의 만남은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드러내놓고 축하해주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거겠죠.

글샘 2010-11-30 21:53   좋아요 0 | URL
특히 여성들의 입장에서 세상이 열리고 있단 걸 보여주는 소설이죠.
길상과 서희는 이를테면 정략결혼인데요. 그래서 행복이란 없는... 뭐, 그당시 결혼에서 행복을 찾는 건 이상할 수 있지만요... 소설의 재미를 뚝 떨구는 것 같습니다.
 
토지 5 - 2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의 토지는 '이념'의 허망함을 '삶'을 통해 그대로 형상화한다. 

조선이 쥐어잡고 있었던 '양반'의 생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김훈장'을 통하여 발겨내고 있으며,
부처를 팔아서 부를 불리고 '공'을 팔아서 '색'을 거둬들이는 절간의 허사를 '법회'를 통하여 살을 붙이고 있다. 

박경리의 이야기를 따라 흐르노라면,
바리데기가 지옥 끝까지 가서 떠온 생명수와 빨간 꽃, 파란 꽃이 뼈를 되살리고, 살을 되살리고, 숨결을 불어 넣는 신비를 부리듯, 백년 전의 살림살이들이 오롯이 떠오른다. 

독립운동 하겠다는 자들의 허망한 탁상공론과,
그 사이에서 논쟁에 재미만 붙였을 뿐, 실상이 없는 이론의 헛된 놀이.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일파의 앞잡이가 되는 지식인과 무뢰한들의 모습에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 

작가가 되살려낸 인물들 중에 원래 그렇게 잔인하게 태어난 놈은 없다.
거복이도 잔인한 본성을 가진 자처럼 보이지만, 살인 죄인의 자식으로 목매달아 죽은 어미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몽당나무를 만들어버린 이웃들의 강파른 성정을 보지 않았다면 평범한 농민이나 장사치로 살다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용정에서도 걍팍해져만 가는 임이네와 당하기만 하는 월선이를 용이가 힘차게 떼어 놓아서 다행이다.
남도 사내 주갑이가 등장하여 불행한 인물들의 군상이 점점 무채색으로 살아가게 될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림에 제법 살뜰한 채색을 입혀준다.  

일은 올바르게 돌아간다는 '사필귀정'도 역시 인간이 억지로 만드는 노릇같다.
일은 바르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얼키고 설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것이 강물의 흐름이다.
곡류 하천은 원래 더 곡류를 심하게 휘도록 발달하게 되어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곡류가 그저 곧은 흐름으로 통해버리고, 강하던 곡류의 커브 부분은 우각호처럼 퇴화되기도 하는 것이 강물의 도리이거늘... 

이렇다 저렇다고 원칙만을 되뇌는 삶의 강파름을 나이 들면서 알아 가는데,
박경리의 토지를 읽는 일은 그래서 썩 상쾌한 일이 된다. 

어제 결혼식 뒤풀이 자리 덕택에 영화 <해운대>에 등장했던 미포의 멋진 빌딩에 올라가서 회를 한 점 했다.
그 빌딩의 건조에 파묻힌 이야기들도 많이 있으리라마는,
거기서 내려다본 등대와, 바닷새와, 반짝거리며 눈길에 오래 남은 바다 물결에 얼비친 햇빛은 한결같은 그것이었으리라. 

비틀리고 뒤틀리는 것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련만,
또한 쉬이 풀리고 스러지는 것도 인연이고 연기인 셈이다. 

필연적인 얽힘의 원리가 있기도 하는 법이지만,
또한 개별적인 풀림의 원리가 있어서 삶은 눈물 속에서도 싹이 트는 모습을 보게 되는 법인 모양.  

올 겨울 토지를 읽으며, 마음에 싹이 트는 기분이다.
길상이와 함께 뱃속 뜨거운 독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0-11-2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를 읽는 2010년 글샘님의 겨울은 독한 술 아니어도 뱃속이 뜨거울 거 같아요.^^

글샘 2010-11-29 15:56   좋아요 0 | URL
줄거리도 없는 제 리뷰에 댓글을 착실히도 달아 주셔서... ㅋㅋ 감사합니다. 뜨겁네요. ^^

소나무집 2010-11-30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 겨울 토지를 읽으면서 마음에 싹이 트고(넘 멋진 표현이에요) 있습니다.^^

글샘 2010-11-30 21:51   좋아요 0 | URL
마음에 싹이 튼다고... ㅋㅋ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삶이 어디로 가는건지... 한 해가 지난다고 마음 속 그늘에만 숨어있지는 않는 힘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담에 원주 가면 꼭 토지학교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ㅎㅎ
 

며칠 피곤해서 쉬었다.
민우도 곧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고 하니, 간단간단하게 읽을 거리를 마련해 둘게. 

오늘은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는 시를 두어 편 골라 볼까 해.
우선,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를 읽어 보자.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 

참깨를 터는 일은 이런 거야.
참깨가 가득 붙어있는 줄기를 잘라서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말린단다.
바삭하게 마르면 마당에 넓게 비닐 포장을 깔고 참깨를 툭툭 턴대.
그러면 참깨가 들어있는 씨주머니가 톡톡 터지면서 참깨가 튀어나오는 거지.  

이 시에서 화자는 할머니와 함께 참깨를 터는구나.
젊은이인 나는 빨리 일을 하고 가려고 힘을 들여서 탁탁 털었나봐. 

그런데, 할머니는 '모가지까지 털어지'는 나의 작업을 보고, 그러지 말라고 야단을 하지.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시는데, 나는 신이 나서 마구 쏟아지는 참깨를 보면서 속도를 냈던 거야.
도시의 삶은 <속도>와 <양>으로 승부하잖아.
빨리 많이 해야하는 것.
그렇지만 할머니의 철학은 '빨리와 많이'가 아니라 '천천히 해도 정확히'였던가봐. 

할머니는 오랜 연륜을 통한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일지도 몰라.
나는 여유로움이 없이 조급해하는 모습으로 할머니와 대조되는 젊은이고.
세상을 살다 보면 빨리와 많이라는 <욕망>에 휩싸이기도 한단다. 그럴 때,
지혜로운 할머니의 말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하는 말을 되새길 필요도 있겠지.
한자 성어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있잖아.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다고... 적절하게 필요한 만큼이 중요하단 이야기겠지. 

매년 노벨 문학상에 후보로 거론되곤 하는 고은 시인의 시도 한 편 보자꾸나.
문학 교과서에 실린 '머슴 대길이'도 참 멋진 시다.
한국어란 낯선 언어가 비록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기에는 시기상조란 생각도 들지만,
고은이란 시인의 한평생이 <한국적인 인물> 만 명의 삶을 노래하리라던 '만인보'에 어우러진 것이라면,
이미 그는 노벨상 이상의 업적을 쌓은 거나 마찬가지 일거야.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얼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고은, 머슴 대길이) 

이 시를 보면, 머슴이란 신분이 등장한다.
머슴은 '종, 노비'와 달라.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는 모두 철폐되었단다. 그렇지만 그건 공식적인 서류상 이야기고,
실제로 종들은 주인집에서 땅을 부쳐먹고 살았지.
그런 신분을 머슴이라고 했고, 머슴에게는 사경(새경)이라는 급여를 줘야 했단다.
그렇지만, 양심적인 주인이야 사경을 제대로 쳐 줬겠지만,
대부분의 주인은 그저 먹이고 재우는 일로 넘어가다가 아이들 혼사라도 있으면 재산을 좀 주고 했다고 그래. 

머슴 중에도 상머슴은 일을 아주 잘 하는 사람으로,
주인의 신임을 얻어 나중에는 '마름'처럼 관리자가 되기도 했단다. 

머슴 신분인 대길이는 일 잘하고, 성실한 젊은이었어.
그런데, 그는 <까막눈>이 아닌 <먹눈>이었지. 글을 알았단 의미야.
지식인은 무식한 사람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지.
그리고 글자로 증거를 남길 줄도 알고 말이야. 
화자도 대길이 아저씨에게서 글을 배우고,
일제 강점기 36년이 지났단다. 

근데, 해방 이후 이 땅은 참으로 살기 힘든 곳이었단다.
가진 자들은 더욱 많이 가지기 위해서 온갖 협잡을 다 벌이고,
무산자들의 정권이라는 북한 정권도 부패하긴 마찬가지였지.
대길이 아저씨는 먼데 바다를 바라보듯, 세상 일에 관심을 가졌을 거야.
바다 울음소리 듣듯, 세상의 고통에 마음 아파했을 거라고.  

근데, 세상은 너무 잘 사는 놈들 위주로 돌아가고 말았지.
일제 강점기가 끝났는데도, 친일파와 지주 놈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떵떵거리고 살았고,
독립운동하던 이들의 후손들은 거지처럼 살고 있었지.
아니, 오히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기도 했단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가 가진 철학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었단다.
그저, '도리'라는 것이지.
인간은 <혼자서 너무 호강하는 저밖에 모르는 존재>여서는 안된다는 도리.
인간은 <남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도리.

대길이 아저씨는 화자에게 <등불>같은 존재였어.
시적 화자가 주장하는 바가 뭘까?
어떤 삶을 살자는 걸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쉬운 도리를 지키며 살자는 것이겠지.

이 시의 언어는 친근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투로 이뤄져 있단다.
그럼으로써 진실된 민중의 삶,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지. 

박남수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를 읽고 마치자.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젠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박남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이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시제'야.
과거 시제였을 <받으셨다>를 <받으시다>로 표현한 거지.
그저 과거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이던 <받으셨다>를
할머니가 남긴 큰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받으시다>라고 표현한 것 같아. 

<방공호>는 공격을 방어하려고 파 놓은 참호인데,
그러니깐, 전쟁 중이고, 그 위에 핀 작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대. 

<아예> 방공호에는 들어오지 않으시는 할머니.
<숫제> 말도 없으신 할머니.
<그저> 노여우신 할머니. 

이런 두 글자짜리 부사어로 할머니가 뭔가에 무척 집중하고 계심을 표현하고 있구나. 
3연의 말씀을 통하여, 살아서 보고 있는 세상의 참혹함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어. 

전쟁 중에 <꽃씨>는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란다.
늘상 죽음의 위협에 가득한 전쟁 중에, 할머니는 생명따위 돌보지 않고,
꽃씨를 거두시는 모습으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

사랑이 가장 강하게 부정되는 전쟁이라는 부조리한 상황.
거기서 할머니의 정성스런 마음을 통해서 애정의 숭고함이 꽃핀 것이란다.
남들이 숨는 방공호 그 위의 안전하지 못한 곳에 핀 채송화 꽃씨. 

생명이란 것은, 그 소중함은 그런 것이란다.
꼭 활짝 핀 장미만, 상품성이 있는 것만 소중한 것은 아니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인지... 

머슴 대길이와, 참깨터는 화자를 통해서, 또 채송화 꽃씨 받는 할머니를 통해서 생각해 보자꾸나.
정말 돈 많이 벌고, 남들 위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일만 소중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가치를 위해서 소중한 자신의 삶을 투자할 것인지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10-11-29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낮에는 이거 안 보였는데...^^
참깨를 털면서, 전에 내가 참깨 사진이랑 올렸던 시라 반갑네요.
김준태 시인과 김남주 시인은 광주의 5월을 노래한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분들이죠.

글샘 2010-11-29 21:45   좋아요 0 | URL
착실한 학생이군요. ㅎㅎ
어제 엉뚱한 폴더에 넣어 뒀더라구요. ^^
맞습니다. 김준태, 황석영... 뜨거운 시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죠.

반딧불이 2010-12-0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준태, 박남수 시인의 시를 요즈음 학교에서도 배우는가요? 글샘님 덕분에 누렇게 변한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을 꺼내보았어요.
 
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5편에 가냘픈 희망이 그네를 뛴다, 고국 산천을 버리는 사람들...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는 토지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서야 간도로 이주하는 이야기가 펼쳐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뜻밖에 1부가 끝날 무렵, 벌써 조국을 버리고 떠야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박경리가 가장 아끼는 두 인물 길상이와 봉순이가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그러면 이 소설의 많은 인물들도 평탄한 삶을 사는 것처럼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토지를 밑천삼아 살던 그 사람들의 삶은,
하루살이처럼 수천리 떨어진 곳으로 버러지처럼 기어가고 몰려가며 살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길상이가 살아가는 날들이 평화롭지만은 않듯, 그렇지만 길상의 마음 속 불길은 스스로 잘 가다듬을 수도 있었듯,
이 세상은 언제 어디든 전화의 분란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죽음을 앞두었던 것처럼 보였던 서희가 농발이 사라진 자리의 희망을 안고 먼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잡도리를 해준 혜안도 가멸차지만, 오막살이의 소리꾼을 찾아간 봉순이 뺨을 후려친 길상이의 뜨거운 가슴도 사랑스런 것이다. 

이 소설을 예전에 읽었다는 것이 참 부질없음을 느끼며 다시 읽고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0-11-2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발을 금으로 만들어 둔 윤씨 부인의 지혜~ 놀라웠어요.
금붙이 한 점 없는 내겐 너무 먼 얘기입니다만...^^

글샘 2010-11-29 21:4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경품 타면 금 모으시죠. ㅎㅎ

BRINY 2010-11-29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렇군요. 어릴 때는 막연히 스토리만 쫓아간 부분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좀 더 깊숙히 이해가 갑니다.

글샘 2010-11-29 21:48   좋아요 0 | URL
요즘 제 머리는 용정에 있답니다. ^^
저도 뭐 스토리 따라 읽긴 하는데, 토지 이야기가 삶이란 것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고 읽고 있습니다.

소나무집 2010-11-30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사람들의 삶이죠.

글샘 2010-11-30 21:5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사는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으니... 살고 보자~ 이런 이야기요.
 
토지 3 - 1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3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3권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조준구'다.
서울서 홍씨를 데리고 내려오고, 두 부부가 최참판댁을 들어먹는 꼬락서니라고는...
인격적으로 낮은 부류가 재산이나 권력을 가지면 어떻게 살게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백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가진자들에겐 가장 천국같은 나라가 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진자들을 위해 골프장을 무진장 늘리고, 세금 혜택도 주는 이런 나라는 드물 것이다. 
졸부를 위한 국가란 생각이 들 정도다. 

박경리 선생이 바라보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박경리 선생이 가장 아끼는 인간상 중 하나가 임이네와 같은 인물일지 모르겠다.
오로지 본능에 따라 살아나가는 인간. 그런 인간이 결국 살아 남게 되어있다는 역설. 

오히려 김훈장이나 이동진, 조준구처럼 세상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세상의 흐름은 그들의 논리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일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지식인의 말빨은 늘 아둔하고 못배워먹은 본능에 비하자면 잘난 것도 아니라는 삶의 원리를 보여주는 건 아닌지... 

질병 앞에서 나약하게 나자빠질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를... 

3권에서 제법 쓰이는 '국으로'라는 부사는  '제 생긴 그대로', '자기 주제에 맞게 잠자코'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모두가 와글와글 떠들어댈 때는 가만히 국으로 있어주는 사람도 고맙거든.
이렇게 쓰인 용법이다. 

그런데, '국으로'의 어원이 한국 전쟁 때 '한국군'을 부르는 별명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군이 워낙 '한국군'을 물로 보아서 'gook'으로 불렀다는 건데, 찍소리 말고 고대로 있어라~ 이런 개무시하는 표현에서 쓰이는 말이다. 국으로 있어라~ 이렇게. 

이 어원설이 정설이라면, 1900년대 초가 배경인 박경리 소설에서 '국으로'라는 부사어가 쓰인 것은 틀린 것이 되겠다.
뭐, 언어란 것이 언제 생겼는지, 어원이 뭔지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것도 많아서 정답은 없지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나무집 2010-11-25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경리 선생이 가장 아낀 인물은 용이와 인연이 닿은 주갑이랍니다.
처음 의도와 상관 없이 가는 바람에 실패한 인물은 길상이구요.
요즘 볼 만한 드라마도 없는데 드라마 토지나 다시 했으면 좋겠어요.^^

글샘 2010-11-26 16:50   좋아요 0 | URL
토지... 다시 읽다 보니, 참 인간이란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과연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길인지를...

무해한모리군 2010-11-26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가다를 참 좋아해요.
이념이든 민족이든 그 모든 것위에 사람다움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인듯 해요.

참 달력 보내드리게 주소를 주세요 ^^;;

글샘 2010-11-26 16:51   좋아요 0 | URL
그래요. 사람다움. 그 이상은 없죠.

순오기 2010-11-2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뻔뻔한 조준구 같은 인물이 우리네 곁에도 있긴 있어요.ㅜㅜ
소나무집님 댓글처럼, 막장드라마만 하지 말고 토지를 다시 했으면 좋겠어요.
한혜숙(?이건 제가 안 봐서 정확히 몰라요) 최수지, 김현주에 이어 네번째 서희는 누가 좋을지...^^

글샘 2010-11-29 15:53   좋아요 0 | URL
저는 드라마를 한 번도 안 봐서... 삐쩍 마르고 걍팍한 서희는... 글쎄요. 요즘 애들은 낯이 모두 '원장님표'로 똑같이 생겨서리...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