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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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용 소설, 동화는 좀 유치하다.
문제를 가진 아이가 등장하고, 좋은 선생님이나 할머니가 등장하고, 문제는 약간 꼬이는 듯 하지만 극적으로 해결된다... 이런 거. 뻔하디 뻔한 거. 

근데, 최근 들어 청소년 소설이 많이 등장했다.
문제를 가진 아이가 등장하는 것은 같지만, 문제는 여전히 꼬여있고, 극적인 해결이 없는 걸 주인공은 안다.
그렇지만, 마음이 완전히 꼬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해결의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청소년용 시집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시와 소설의 차이는... 표현되는 언어의 방식에 있다.
<자기의 이야기를 스스로 독백>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시'이고,
<들은 이야기를 남에게 전달>하는 형식으로 적는 것이 '소설'이다.
그래서 '시'에는 화자의 처지, 시적 자아의 입장과 분위기가 중요한 반면,
'소설'에선 주인공의 '인물(인간성)', '사건', '배경' 등이 중요한 것이 된다.
어려운 말로, 시는 세계의 자아화(세계의 이야기가 화자 속으로 들어오는)라고 하고,
                  소설은 자아의 세계의 대결이라고도 하는 거다. 

청소년은 아직 주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하지도 못한 주제에 생각만 많다.
그렇다면 시가 많이 등장할 법도 한데, 왜 청소년 시집은 구경하기가 힘든 걸까?
초딩용 동시들도 대부분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법을 흉내낸 쓰기가 대부분이다. 엄밀하게 동시라 보긴 어렵다.
초딩들에겐 많은 글을 쓰게할 시간여유가 있지만, 중고딩에겐 그런 글을 쓰게 하고 발표하게 할 공간이 드문 탓도 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자아> 따위는 기르지 말라고, 그저 문제푸는 기계, 학원가는 기계로 살라고 강압적으로 억압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세계 따위가 자아에 기어들어올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세계가 자아에 기어들어오는 순간 갈등하게 되고, 질풍노도의 풍랑에 휘말리게 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고딩들이 교사들과 갈등하고 세계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 것도 그런 때문이리라.
1980년대 시들이 그토록 찬란한 것도, 그 참혹한 세상이 자아 안에 새겨 넣은 핏덩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청소년 시집치곤 참 괜찮은 제목이다.
시인은 세상의 많은 사물들을 청소년과 비슷하다고 본다.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 발가벗은 겨울 나무, 고장난 리모컨, 꽃피기 어려운 선인장... 

그러나 그들에겐
평생 내 길만 펴느라 굵은 주름 여기저기인 어머니의 다림질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수학여행가서 친구들이랑 몰래 마실 때와는 다른, 왠지 나를 믿어주는 것같은 한 잔의 술맛도 느낄 줄 알고,
내가 밑줄을 긋듯, 누군가 밑줄 그어줄 내 마음도 있었던지 돌이켜 볼 삶의 여유도 가질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을 보면 '한대 치고 싶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럴 때도 있지' 하고 넘기기도 하고,
'이 정도는 웃어 주세요'하고 얼버무리는 아이들은 <지금 우리는> 무언가로 성장하고 있는 중임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중고딩을 보고 있는 일은... 열통 터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다.
바로 부모가 견뎌야 하는 그 일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 옆에서, <그래도 너희를 응원해> 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시집이 좀더 나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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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2-1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대 치고 싶다','그럴 때도 있지'를 넘어
'이 정도는 웃어 주마'를 거치면,
'그래도 너를 응원해'하는 자세를 갖게 될까요?

이 책, 시집으로가 아니라, 마음수련서로 장만해야 할까봐요~^^

글샘 2010-12-16 23:02   좋아요 0 | URL
저 네 꼭지가 이 시집의 네 파트 제목입니다. 제법 그럴듯한 구성이죠? ㅎㅎ
그 제목들의 흐름 빼고는 좀 약한 시집입니다.

cyrus 2010-12-1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청소년 소설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어도 정작 청소년 시집이란
책을 접해본 적이 없는거 같네요. 청소년들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 글들이요.^^

글샘 2010-12-16 23:03   좋아요 0 | URL
시집이나 소설 같은데다가 어린이~~, 청소년~~ 이렇게 붙이는 거야말로 상술이 아닌가 합니다.
어린이 시가 있고 어른 시가 따로 있나요?
어린이 삶이 따로 있고 어른 삶이 따로 있잖듯... 지나치게 갈라붙이는 것도 경계해야할 분야인 듯...
 
토지 12 - 3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2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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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남쪽 자락... 하동 북촌에 가면 논밭을 파헤친 자리에 코스모스를 뿌려 가을이면 코스모스 축제란 것을 벌인다.
들판을 가로지른 색색의 꽃들과 메밀꽃밭 그 소금을 흩뿌린듯한 풍경이 자못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입으로 들어와야 할 곡식을 심어야 할 자리에 비료주고 꽃을 심는 일은 참 슬픈 일이다. 

북촌에서 2번 국도따라 하동을 지나 평사리에 이르면, 악양 벌판에 하얗고 노란 허수아비들이 가득하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최참판댁 아래쪽 부부송이 아늑한 널따란 벌판은 온통 허수아비들 천지다. 별꼴이다.
보통의 허수아비들이 작대기 위에 밀짚모자 하나 얹고 티를 하나 입으면 그만인데, 악양벌의 허수아비들은 온통 도깨비 꼴이다.  

   

토지란 소설이 되어가는 꼴도 역시 그러하다. 

처음부터 시대착오적 인물의 하나인 최서희가 뇌까리는 말. 

과거는 무의미한 것이며, 없는 것이며, 죽은 것이다.
현재만이 살아있는 것, 미래만이 희망이다.
아이들은 현재요 미래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과연 허재비들의 탈놀음에 불과해지지 않았는가 말이다. 
나는 진정 박경리가 이 말을 시대착오적 인물 최서희의 착오라고 비판적 서술을 위해 기록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다 같은 강물이요 다 같은 뗏목인데 혜관은 섬진강과 해란강이 왜 다를까 생각한다.
아름답기론 섬진강 편이다.
조촐한 여자같이, 청아한 소복의 과부같이, 백사는 또 얼마나 청결하였는가.
산간의 강물과 대륙의 강물, 모두 숱한 사연을 흘려보낸 강물.
혜관은 기화를 생각한다. 
 
   

기화를 둘러싼 서의돈, 이상현, 혜관, 그리고 정석...
흘러가는 강물같은 남자들은 누구도 기화의 딸을 맡지 못한다.
거기 대지의 모신처럼 버티고 앉은 앙다문 입술만이 도드라진 창백한 얼굴의 최서희만이 그대로 토지에 남아서 양현을 맡아준다.  

사나이들은 만주 벌판으로 일본으로 뛰면서 역사의 강물을 되돌려 보려 날뛰지만,
아낙네들은 그저 아침저녁 때거리를 걱정할 뿐, 흐름과는 무관한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하여 그닥 집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제 자식 배 불리기에 흐뭇할 뿐.
토지란 그런 것이다. 그 땅에서 어떤 놈이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 성을 내거나 만족할 필요 없는 것이 토지다.
그저 벼가 쑥쑥 자라고, 그 벼를 먹고 당차게 자랄 아이놈들만 있다면... 토지는 만족이다. 

"어떻게 보면 주서방 그 사람은 모든 인간적인 요소를 다 갖추었다고나 할까요?
욕심만 빼고,
그런데 조금도 위대하진 않다 말입니다.
비극적인 요소를 낙천적으로 발산하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어린애같이 무심한가 하면 수천 년 묵은 구랭이 같고..."
"좋으면 화를 내고 싸움할 때 존대 쓰고."
"네 맞아요. 하하하. 염치 바르고 마음이 여리고 소심하면서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지요."
"뭐라할까, 여자들한텐 좀처럼 없는 성질인데 여성적인 걸 느끼거든." 

송장환가 이상현의 대화에 드러난 주갑이의 성품인데...
작가가 대지의 어미 <토지>와 가장 그럴싸하게 어울려 맞는 품성을 가진 인물로 싸안는 자가 바로 주갑이 아닌가 싶다.
위대하다고 하지 않고 늘 남의 밑바닥에서 더럽게 뒹굴지만,
그래서 무심하게 태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을 가진 존재.
올바른 염치로 콩 심으면 콩을 내고 팥 심으면 팥을 내는 그런 존재. 토지와 주갑이. 

"불운할 때는 불운만 찾아 온다."
갈증과 공포,
공포는 갈증을 잊게 하지 않는다.
갈증은 공포를 감소시켜 주지 않는다.
서로가 보강하듯,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간다.
방대한 최참판 댁 땅과 막대한 재산이 마치 허섭쓰레기같이... 

서희가 부산에서 맹장염에 걸려 아픈 것을 걱정하는 환국이.
최서희이 아이들이라면,
바로 그 자존심 깊은 토지의 어머니의 두 자식인 환국이와 윤국일 터인데,
나라를 찾아 돌아가라는, 환국.
그 나라를 윤택하게 하라는, 윤국.
이름을 지은이의 소망이 담뿍 배어있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지적인 인간의 성찰하는 삶이란,
윤택한 토지 위에서 벌어지는 풍족한 남과 스러짐의 과정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힘. 그것이리라.
소심하면서 염치 바르고 자존심 하늘 찌르는 주갑이 성질처럼 넉넉하게... 토지와 하나가 되어...
허수아비들의 굿잔치에 눈물도 보이고, 간혹 웃음도 지으면서 사는 힘.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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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1 - 3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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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금없는 강물처럼 온갖 사물은 매듭없이 흐르고 있다.
아이들은 소를 몰아붙이며 밭둑길을 걸어오고,
늙은이는 채마밭에서 서성거리고, 
장정들은 풀을 베어서 돌아온다. 
 
   

마을의 심술보따리, 연구 대상 봉기가 떠들다가 복동 어매가 죽는다.
그 뒤 해결판의 뒤를 박경리는 <눈금없는 강물처럼 매듭없이 흐르는> 사물이라고 표현했다.
눈금없는 강물처럼... 아... 눈금없는 강물처럼 매듭없이 흐르는 세월... 

4대강을 망치는 데 온갖 국고가 퍼부어진다.
국방 예산이 줄어 온갖 사고가 난무하고,
교육 예산이 팍팍 줄어 학교도 개판인데,
국민은 죽겠다는데, 강가에서 퍼낸 모래로 누군가는 배지에 기름이 좌악 끼고 있다.
예산을 지들 멋대로 통과시키는 짓거리를 풀어 놓고...
역시 뉴스는 1980년대와 같은 <폭력 국회>다.
정치에 염증을 제발 느껴 주세요. 국민 여러분... 이러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민주당 애들도 지들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거든요. 이러고... 

그렇지만, 눈내린 빙판길을 종종거리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하루는 눈금없고 매듭없는 강물처럼 오늘 하루도 흘렀다. 

삶은 그런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저지르는 횡포는
일제 강점기에 비하자면 애교다.
대통령을 뽑은 병신같은 국민의 손가락을 원망할 밖에...
강제로 손가락에 인주묻혀 찍으라 한 건 아닌 세상이잖은가.
그렇지만, 민중에게 칼날을 들이댄 것은,
조선의 왕족과 양반이나, 일제 강점기 친일 세력이나, 해방 이후 이승만 중심의 부자들이나 꼭 같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렇게 강물은 눈금도 없이, 매듭도 짓지 않고 흘러간다. 큰 세상을 보는 큰 눈의 서늘함을 읽는 일은 그래서 무섭다. 

   
 

먼 앞날을 내다볼 때 민족주의라는 것도 한낱 고물이 되어버리지나 않을는지... 

 
   

권필응의 목소리를 받아 나온 말이다.
세상을 넓게 본다면, 민족, 국가란 모두 세도를 잡은 자들이 자기 권익을 늘리기 위하여 써먹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세상엔 매듭도 눈금도 없으니 말이다. 

   
  사회주의 온상같은 형평사 운동의 시발점이 진준가 하면
보수적 기풍이 가장 강하고,
기생 문화에 절은 부패가 있는가 하면
서릿발 같은 열부의 절개를 숭상하고,
민중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근왕사상은 확고하고
상중하의 계급의식은 여전히 투철하지. 
 
   

박경리가 자신의 고향 진주에 대하여 내린 정의다.
보수적인 도시이면서 민중의 생명력이 강한 도시. 

내가 20여년 살아온 부산이란 도시는 '근본없는 도시'다.
그야말로 배울게 없는 도시. 문화의 불모지란 말이 그래서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부산시 교육청이 늘 1등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유서깊은 사립학교 같은 것들이 없으니 시키는 대로 잘도 하는 공립고들이 많은 도시. 

강쇠가 살던 산골 토막에 가엾은 가족이 찾아온다. 화전을 일구며 살자는 강쇠 말에, 가엾은 가장은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사람 사는 마을에는 안 가고,
칡뿌리를 캐묵어도 남의 농사 짓지 말자고 아이 에미도 하더마요... 
 
   

세상은 그렇게 험한 곳이다. 못가진 자에겐 한없이 험한 그런 세상. 

그런 곳에서 꽃처럼 곱던 봉순이가 아편에 쩔어 살다가 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다.
박경리 선생에게 연신 못마땅하다.
왜 봉순에게 길상을 주지 않으셨는지...
그들에게 평범한 눈금없고 매듭없는 삶을 허락하지 않으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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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0 - 3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0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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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내년에 살아 계셨다면 앙코르와트를 가보고 싶다셨는데...
올해를 결국 넘기지 못하고 가셨다.
리영희 선생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작금의 시기를 미국의 식민지로 공고화되는 시기로 보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힘이 부쳐서 긴 이야기는 못하셨지만, 100년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나 현재를 보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역사는 뼈대만 있고 살이 없지만,
힘있는 소설은 굳은 살이 가득 배긴 손길로 우리에게 100년 전 슬픈 이야기를 전해 준다. 

   
 

눈 부릅뜨다가 뺨대기 하나 더 맞는 것이 얼마나 바보짓인가 그걸 깨달았소.
그래 그걸 깨달았으믄 좀 덜 억울할 기다. 잘난 말 몇 마디 하는 것, 그건 아무짝에도 못 쓴다.
바보 시늉, 미친 시늉 뭣이든 빠져 나오는 게 젤이제. 싸움이란 그래야 이기는 법이거든.
감정때문에 힘빼는 것, 그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다. 앞으로 살아가자믄. 
벌써 나뭇잎이 누우렇소.
누우렇다 뿐이가 많이 떨어졌지. 

 
   

이런 말로만 보면 작가의 의식이 기회주의적인 거나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신시대 사형까지 언도받은 김지하의 장모로 죽음과 삶에 대하여 질긴 고민을 하지 않고선 쓸 수 없는 이야기다. 

힘은 없고, 이론만 난무하던 무기력한 유학생들과,
민족 자본론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물산장려운동의 명암.
백정들의 형평사 운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의미.
그 복잡한 속내를 자못 딱딱한 부분도 있으며 펼쳐내는 박경리 선생의 글은 그대로 한 편의 논문이요. 시대를 흐르는 강물이다. 

   
 

몇 사람을 살찌우는 대신 그들은 일본 자본가의 방패가 되는 동시 민족 분열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물산장려운동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인데,
과연 민족을 배려할 것인지, 몇 사람의 이익으로 분열의 길로 나설 것인지는 결과가 이야기해 줄 것이다.
3.1운동이 힘있는 싸움으로 결말을 짓지 못했듯, 10년 뒤의 물산장려운동 역시 결말에 나설 수는 없는 것이었다.
현대사에 미약한 한국 역사에서 물산장려운동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나는 기억하지 못하겠다. 
하여 위키 백과를 찾아 보니, 역시 <한계>가 빤하게 적혀 있다. 아쉽다.

물산 장려 운동은 운동 자체에 여러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예를들어서 토산품만 사용하다 보니 토산품 가격이 크게 폭등하여 올랐고, 이는 곧 상인과 자본가들의 배만 채워주는 결과만 낳게 되어버린다. 이때문에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가들과 지각있는 민중들이 '물산장려운동은 자본가 계급을 위한 것.'이라고 맹렬히 비판한다. 여기에 일본 제국 총독부 당국의 극심한 탄압과 박영효,유성준같은 친일세력들의 관여로 일제와 타협하게 되는등 변질이 되어 감에따라 여러가지 이유가 더해지게 되고, 쇠퇴해 져가게 된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426850  (물산장려운동 : 위키백과)

이 권에서 두드러진 사람은 '관동대지진'과 얽혀 그려지기 시작하는 '오가다'이다.
이 땅을 훑고 간 무슨 무슨 ~~주의가 피를 부르고, 피와 얽혀 있다 보니 '일본놈', '친일파놈', '빨갱이놈' 이런 적대적인 용어를 서슴지 않고 쓰는 비정한 언어가 되고 말았다. 툭하면 축구하는 데서도 출격, 승전보 등 전투 용어가 난무한다.
그런 와중에 박경리가 다시 조명하는 인간상인 오가다는 그야말로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오가다의 행보에 관심이 가는데,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역시 읽었다고 해서 내 책은 아닌 셈이다. 

신여성들과 유학파의 결혼관,
교회를 둘러싼 종교관,
서양식 귀족을 숭상하는 새로운 계급 의식 등...
1920년대를 조망하는 현대 소설로는 역시 토지 3부가 튼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강준만의 19~~년대 이야기가 숱하게 많은 팩트들로 짜여있지만 재미가 없는 데 반해, 이런 소설은 역시 그 시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형상화>의 힘이 돋보인다. 

12장의 홍이와 장이의 연애 이야기에서 홍이는 제 애비의 난봉을 그대로 따르는데...
홍이에게 큰맘먹고 뛰쳐온 장이에게
"시집가서 잘 살아라. 못 살거든 날 찾아와."하고는
"아아리랑 아아리랑 아아라리요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아!"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 있다.
이 시기는 만세 직후인데... 1926년 10월 초연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사운드 트랙에 들었던 '아리랑'이 튀어나오는 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저 노래는 민요가 아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흘린 실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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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2-0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님도 지난 아침,김삼웅 님 인터뷰를 들으셨군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뼈대만 살아있는 역사를 기억해 내지 못해서...맛을 제대로 못 느꼈어요.
일단 역사 공부를 하고 다시 시작해 보려구요.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며 너무 속속들이세요.
제가 읽을 때 반감될까봐 그저 훑고 갑니다.

글샘 2010-12-09 20:23   좋아요 0 | URL
리영희 평전을 읽으려다가, 맨 뒤의 인터뷰부터 읽었거든요.
속속들이 읽는 건 아니구요. 저도 이 참혹한 시절을 옛날 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개같은 시절을 말이지요.

소나무집 2010-12-0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게으름뱅이 독서를 하는 저를 넘어섰습니다.ㅎㅎ
저도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면서 읽고 있답니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소설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구요.
다 읽으시고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에 한번 오세요.

글샘 2010-12-09 20:24   좋아요 0 | URL
차라리 100년 전 민중은 모르는 거나 많았지요.
매일 뉴스에 나오는 거라곤 치가 떨리는 가진자들의 몸부림 뿐이니...
박경리 소설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올 겨울엔 원주 한번 가고 싶네요. ㅎㅎ
처가가 인근이라 맘만 먹으면 갈 수 있거든요.

turk182s 2010-12-14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족이지만 리영희선생에 대해 책몇번 읽은기억밖에 없네요,
학창때 동아리방한켠에 있던 낡은몇권,,당시 김영삼 당선시기였는데 인터넷이없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이미 사회과학 출판책들이 많던시절이라 선생의 저서가 별로 새로울게 없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70-80년대 인테리들한테 많은 길을열어 준듯합니다.
돌아가셨을때 한번조문이라도가고 싶었는데,,

토지 읽으시면서 시대와의 조우를 잘하시네요,,
어떤 소설가가
"XX주의, AA주의는 결국 다 사라진다. 근데소설봐라..
몇천년이 지나도 전해진다 생동하는 역사와 진리가 바로소설이다.."
이런말을했던것 같은데,(좀 과잉인듯)

소설이 요즘 안들어오던데..토지는 전집 구입해놓고 한달째 1권도 못놓고 있고,,
나이는 먹어가고 삶의 동력이 약해지는듯합니다.

무엇이든 함께하는 사람이나,사람들이 있어야 변증법적 상호사투가 일어날텐데..
DKNY 로 살다보니 ,,

제작년인가 자전거로 지리산남쪽을 여행했는데 너른들판에 펼친 길을가자니
하동에서 구례까지 페달질하는데,,강렬한 냄새가 나더군요..
지리산냄새와 함께 민民들의 원초의 냄새가,,,
그래서 언젠가 토지를 읽는다고,,맘먹고 있는데.
지금은
마음에 오욕칠정이 많아 ,,활자가 아른거릴 뿐입니다..









글샘 2010-12-16 23:01   좋아요 0 | URL
오욕칠정이야 저도 많지만... 습관적으로 독서가 몸에 배었을 뿐이죠. ㅎㅎ
토지가 4부로 가면서 재미를 슬슬 잃고 있습니다. 속도가 안 나네요.
아마도... 민초들의 그 원초의 냄새가 휘발된 부분이라 그럴 거 같습니다.
속도를 더 내다보면 또 나오겠죠. 그 냄새가...
 
토지 9 - 3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9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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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로 접어들면서 이야기는 진주에서 최서희가 집을 되찾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조준구는 더럽게도 고개를 숙이고 돈 오천 원을 택하며 사라진다.
최서희가 성도없던 길상이에게 '최길상'이란 문서를 붙여 주고, 아이들도 최씨 성을 따른다.
자신은 김서희로 둔갑을 하고... 집안을 지키려는 아낙의 집념은 시대상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글쎄, 아직도 성씨가지고 사람을 판별하는 사람들도 있는 셈판이니, 백년 전, 그들의 사고에는 그쪽이 낫기도 하겠다. 

최서희가 최참판댁을 사들이면서 용이도 일을 도와주러 들어가지만,
홍이는 월선이 사후 방황의 길을 헤맨다.
박경리 선생이 그린 '핏줄은 속이지 못한다'는 생각은,
윤씨 부인과 별당 아씨, 서희에게 이어지기도 하지만,
용이와 홍이에게도 이어지는 맥락이 있다. 여자에게서 행복을 얻지 못하는 잘난 남자들...  
그 비중은 상당히 크다. 

그 당시의 사회상을 그리는 데는 역시 <신분제>에 대한 고려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백정은 예배당에도 못간다는 이야기나,
백정과 결혼했다고 술청에서 무시하는 이야기는 한국의 현대사까지도 이어지는 맥이 있다. 

   
  밤기차 타고 서울역에 내린 그런 기분입니다.
막막하고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는 그 기분 말입니다.
사는 기이 그런 거 아니겄나.
사는 게 그럴까요? 
이래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양반들 횡포에 이를 갈던 상민들이 양반들보다 더한 횡포를 천민들에게 부리는 것은 왜 그렇지요?
호랑이가 늑대를 잡아먹고, 늑대는 고라니를 잡아먹고, 짐승들 세계와 뭐가 다르다 하겠습니까.
그것이 자연의 법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헛된 꿈이지요.
인간이 인간을 다스린다는 것이 횡포라면 말입니다.
추악합니다.
상민은 천민이라 하여, 지배욕에 굶주린 상민은 그 불만을 천민 학대로서 쏟아내고 언제 끝이 납니까.
학대하고 학대받고, 잡아먹고 잡혀 먹히는 이런 세상이 말입니다.
강한 놈도 약한 놈도 없어질 때 끝이 나겠지... 
 
   

귀녀가 죽음을 맞을 때, 그 여자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었다. 고 썼던 구절이 가슴에 남듯이,
이 권에서는 임이네가 용이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적대시할 때,
용이가 쓰게 웃으며 던지는 말이 있다.

   
  염불하는 기다. 염불로 들어라.  
   

이정도 수준이면 득도의 경지다.
용이 같은 스트레스라면 사리 백 과 정도는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세 직후의 세상 분위기가 온갖 이야기 안에 가득 얽혀 있다.
만주에서 일을 벌이는 길상이와,
반도 내에서 일을 도모하는 환이, 그리고 동학 접주들의 갈등 등, 시대상이 인물들의 형상화에 힘입어 생생하다. 

구천이이 탈출, 귀녀의 음모... 이러던 초창기 이야기에 비하자면 시대상에 많이 기대고 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계획하는 떠오르는 세대와,
지나간 세상을 반추하는 지고 있는 세대의 교체가 3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부르조아들은 <신여성> 바람도 불고,
<학생첩> 바람도 불던 시절.
일본 유학과 <신여성>, <학생첩>은 구시대적 아내를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 정도로나 여길 것이었다.
시대는 토지를 디디고 이렇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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