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서울 평화시장 앞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한 이후,
1980년 5월 광주에서 숱한 민중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다시 군사독재는 이어지고 있었단다.
그런 사회적 배경으로 1980년대 문학은 <민중 문학>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어.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는 그 당시 민중의 보잘것 없는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로 유명하다. 
우선 한번 읽어 보렴.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발간 난로가 타오르는 대합실(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대기실)의 풍경이 시각적으로 떠오르지.
'역'이란 곳은 애환에 젖은 삶의 행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설정된 것이고.
실제로 '사평역'이 어딘지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단다.
영화 '해운대'가 실제로 해운대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야.
소설 중 '무진 기행'의 안개의 도시 '무진'도 '방황'을 상징하는 상상 속의 도시고,
'삼포 가는 길'의 삼포도 '잃어버린 고향'을 상징하는 도시란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반복되는 구절을 찾을 수 있을까?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이 두 줄인데... '톱밥'이 '눈물'로 바뀌었지.
이렇게 수미상관처럼 생긴 글들은 그 사이에서 뭔가의 '화학적 반응'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커.
그 화학적 변화가 바로 <주제>에 해당하는 것이란다. 

우선 노란 부분을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눠 보자꾸나. 그 앞부분을 읽어 보자.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막차가 오지 않는 작은 역의 대합실.
밤새워 굵은 눈송이가 내려 쌓이는데,
그 시린 유리창을 녹여주는 것은 톱밥 난로란다.
이런 배경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부분이 앞부분이다.
작은 시골 역이니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가난하고 볼품없는 시골 사람들이겠지.
신경림의 <농무>에서 배웠듯이, 농촌은 몰락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화자 <나>가 등장하는데, 그는 톱밥 난로에 톱밥을 던져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야.
간이역의 역무원 정도 되겠지.
그믐은 음력으로 한 달이 마치는 날이니깐,
그믐처럼 졸고 쿨럭이는 사람들은
인생을 마쳐가는 노인들이기 쉽겠지.
이렇게 볼품없는 공간적 배경과 볼품없는 인물의 제시부가 앞부분이야.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몇 사람은 할말들을 가득하게 안은 삶을 살았구나.
누구나 살고 나면 자기 인생이 소설 몇 권처럼 파란만장해 보인다고 하더라마는,
식민지 시대 40년대와 전쟁 시기 50년대.
민주화 운동의 60년대와
군사독재로 농촌이 침몰하고 산업화시대로 탈바꿈하던 60~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은,
하나 하나가 그대로 역사였고 민중사의 대장경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청색의 손바닥은... 차가운 빛의 이미지다. 말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이랄까.
창밖도 차갑고... 사람들도 춥다. 

신경림은 '갈대'에서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이라고 했었지.
이제 곽재구의 시에서는 이렇구나.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 

술에 취한 것은 제정신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지.
위에서 적은 저런 시대에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니.
보잘것 없는 한 두릅(20마리)의 굴비나 한 광주리의 사과를 사서
고향에 돌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떠벌이며 자랑할 것 하나 없는 <민중>들의 모습이 잘 형상화되고 있다. 
그 뒤의 <기침 소리>와 <쓴 담배 연기>도 마찬가지로 민중의 모습이란다. 

그렇지만 '눈꽃의 화음'이라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넣어서,
그 삶은 고달프지만 서정적이고 평온한 분위기의 대합실에 앉아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단다.
자정이 넘는 시각이 오면,
이제 막차가 눈에 가로막혀 언제 올지 하염없이 연착되고 있는데,
낯설던 앞사람의 얼굴도,
삶에서 겪었던 뼈아픔도 모두 눈밭(설원)에 파묻히듯 친숙해지는데,
이 작은 간이역엔 서지도 않는 급행 열차가
빠~~~앙~ 경적이라도 길게 울리며 철커덩 철커덩 바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
그 기차에 탄 사람들은 따스한 공간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이들인지
단풍잎 같이 따스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구나.
그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우리 인생 역정은 참 길기도 하다. 

돌아보면,
그리웠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나도 한때는 농촌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고,
그 순간들을 상기하며(호명하는) 화자는 톱밥 난로에 '톱밥'을 던져 준다.
그 '톱밥'은 '연민'이며 '동병상련의 심정'이어서 왠지 '눈물'겨운 것이구나.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언젠가 꼭 돌아올 아름다운 그날들을 부끄럽게 맞이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진실로 아름다운 그날의 시 한 편을 꼭 쓰기 위하여" 시를 쓴다는 말을 시인이 남긴 적이 있다. 
곽재구 시인이 바라던 '그날'은 어떤 날일까?
70,80년대의 민중이 바라던 '그날'은 '민중을 위하여 국가가 서는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세계화의 물결은 갈수록 '온 세계의 민중'을 힘들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쉽다. 

한때 유명했던 소설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란 소설이 있단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는 '영달'은 넉 달 동안 머물러 있던 공사판의 공사가 중단되자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쳐 나온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정씨를 만나 동행이 된다.
'정씨'는 교도소에서 목공·용접 등의 기술을 배우고 출옥하여 영달이처럼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던 노동자인데,
그는 영달이와는 달리 정착을 위해 고향인 삼포(森浦)로 향하는 길이다.

그들은 찬샘이라는 마을에서 '백화'라는 색시가 도망을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술집 주인으로부터 그녀를 잡아오면 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들은 감천으로 행선지를 바꾸어 가던 중에 도망친 백화를 만난다.
백화는 이제 겨우 스물 두 살이지만 열여덟에 가출해서 수많은 술집을 전전해서인지
삼십이 훨씬 넘은 여자처럼 늙어 보이는 작부였다.
그들은 그녀의 신세가 측은하게 느껴져 동행이 된다.

그들은 눈이 쌓인 산골길을 함께 가다가 길가의 폐가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인다.
백화는 영달에게 호감을 느껴 그것을 표현하지만 영달은 무뚝뚝하게 응대한다.
그들은 다시 길을 나선다. 눈길을 걷다가 백화가 발을 다쳐 걷지 못하게 되자 영달이 백화를 업는다.
일곱 시쯤에 감천 읍내에 도착한다.

역에 도착하자 백화는 영달에게 자기 고향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지만
영달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비상금을 모두 털어 백화에게 차표와 요깃거리를 사준다.
백화가 떠난 후 영달과 정씨는 삼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중 삼포에도 공사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달이는 일자리가 생겨 반가웠지만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마음의 정처(定處)를 잃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소설도 <민중>의 삶에 따스한 시선을 던지던 소설이었다.
그래서 '사평역에서'와 같은 시와 엮여서 시험에 잘 내는 소설이지.
황석영은 장편 민중 소설 <장길산>이나 <객지> 등 민중 작가로 유명했는데 요즘엔 좀 맛이 갔더라.
시대가 변하니 민중은 돈벌이가 안되는 모양이다. 

이 소설의 '정씨'는 감옥에서 굴러먹던 막장 인생이고, '영달'도 막노가다꾼이고, '백화'도 술집 여자일 뿐이지만,
그들이 서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가난하다고 왜 모르겠는가. 하던 신경림의 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로 꾸민 소설이란다. 
줄거리는 이렇다. 

사평역이란 작은 역에서 기침하는 농부와 그의 아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중년 사내,
시위 때문에 제적 당한 대학생, 창녀, 행상꾼 아낙네 둘, 미친 여자 등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다.
시점을 각 인물들에게로 옮겨서 인물들의 침울하고 어두운 삶의 면면들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원작 시의 서정성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데,
눈 내리는 간이역, 톱밥 난로 주위에 둘러 앉은 사람들의 모습,
등장 인물들의 정감 어린 태도와 따뜻한 시선이 소설의 서정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민우야.
사람은 사는 데 무엇을 최고로 쳐야 할까?
무조건 돈만 많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사람이 무조건 성실하고 착하다고 옳은 것도 아닐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주변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일도 삶의 성공 중 하나가 아닐까...
이밤엔 이런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도 생각하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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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27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25회를 맞았군요.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겨울밤, 이렇게 잠 못 들고 있다가 <사평역에서>를 다시 읽으니
제 조그마한 방이 마치 세상의 외진 곳에서 외롭게 불을 밝히고 있는 간이역의 대합실 같네요 ㅎㅎ

한 주가 지나면 또 해가 바뀌는군요.
올 한 해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내년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보내시고 건필하시길...^^

글샘 2010-12-28 00:53   좋아요 0 | URL
매일 한 꼭지 쓰는 것도 쉽지 않네요. ^^
무슨 작가도 아니고...
그래도 수업이니깐... 방학엔 열심히 써보려 합니다.

우리 사는 구석진 곳이 <사평역>의 대합실 같긴 하죠.
거기 한 움큼의 톱밥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 덕에 조금 더 훈훈한 거구요.

한 해가 바뀌는 일이야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후와님이야말로 행복한 일을 많이 지으시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순오기 2010-12-2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에 들러서 시 공부합니다.
언제 읽어도 울컥하는 사평역에서~~~~~~~
우리 독서회 주관 시낭송회에서 으뜸상을 받은 아저씨가 이 시를 낭송했었죠.
좋은 아빠셔요~ 글샘님은!^^

글샘 2010-12-29 10:34   좋아요 0 | URL
울컥 하시기는... ^^
시간이 되는 날 한 편씩 쓰려고 노력중입니다.
 
토지 13 - 4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3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희망이고 실망이고,
그런 거는 잠시잠시 왔다가는 거 아니겄나.
배운 도둑질, 늙도 젊도 않은 나이라 이대로 가는 거지 뭐.
하기야 산놈 무지랭이가 고생은 쇠빠지게 했다마는 운동가 됐이니 출세했고,
신이 날 때도 있었고,
우리 생전에 독립이 된다믄, 세상 나온 보람이 안 있겄나. 
 
   

관수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읊조린 말이다.
신분 사회에서 태어나 신분의 목줄에 이끌려 다니던 삶에서 벗어난 자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그러나, 다시 '자본'이란 '새로운 신분 사회'에서 '할애비의 자본'에 따라 손자의 삶이 좌우되는 시대가 되어버린 이 땅에서 100년 전 토지의 삶을 읽는 일은 참 난감한 기분이다. 

   
  사람은 물에서 배워야 하는 거요.
물이란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난 모양이 되며,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모양이 되고, 그러나 물은 물이 아닌 때가 없었지요.
물은 역행을 안 하면서도 물방울이 되고, 홍수도 되고...
사람이 사람을 담는 그릇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산천이 그릇이지.
한데, 우리 백성을 모두 물이라 비유한다면은 왜놈의 그릇이란 접시 바닥이지.
조선 백성이 홍수를 이룰 만큼 많은데, 그 얇삭한 접시 바닥에 담겨질 수 있겠소?
담겼다 담았다 생각을 한다면 그것도 망상이요,
담으려 하고 담기려 한다면 그것은 역리요. 
 
   

당시 세상의 시평으로 날카로운 해도사의 이야기다.
땅을 부쳐먹는 인간들의 무지러운 이야기일 뿐인가 싶다가도,
독립군이나 동학의 후손들 이야기를 옮기는 체 하면서 시류를 읽는 높은 경개에 올라선 작가의 시선을 풀어 놓는다.
대하소설이라 하는 것은,
자못 이런 통쾌한 높이에 올라서,
박지원의 일갈처럼 통곡할 만한 넓이를 가진 것이어야 할 것이다. 

   
  손은 손대로 산으로 가고
발은 발대로 신작로로 가는 것은 아니지 않소.
우리는 씨뿌리는 사람이며
성급히 걷어들이려 하면 안 되지.
산속에 피는 꽃이 다 같지 않다 해서
꽃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소?
해서 나도 씨는 좀 뿌려 놔야겠다. 작심을 하고... 
 
   

힘겹지만 그들의 삶의 미래를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다. 

4부로 넘어가면서 신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고,
원래 <토지>에 기인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줄어들면서, 서사의 탄성이 확 줄어 버렸다.
서술자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어 죽겠는 남의 이야기, 곧 <서사>가 줄고,
화자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기 이야기, 곧 <교술>이 늘면서, 이야기가 실이 노이 되도록 맥이 풀린다. 

길상과 서희가 적게 등장하는 장면들이 그러한데, 다음 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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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노트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지식여행자 11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석중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일본어판 제목은 'mahiru no hoshizora'이다.
'한낮의 별하늘'이란 뜻이다. 
이 상황은 맨 처음에 실린 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온 말인데,
이 책의 전체 제목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제목이다.
교양 노트에 비해 훨씬 함축적인데, 한국어판은 다소 힘빠진 제목으로 발간되고 말았다. 

각 챕터의 앞장에 그려진 그림이 인상적이다.
유리상자 안에 모래가 들었고, 거기서 낙타들이 쉬고 있다. 한 귀퉁이엔 와인이 얼음에 담겨있는 것 같고,
저 뒤론 오아시스가 있다.
다시 하나의 유리상자 안에는 낙타보다 훨씬 큰 닭이 한 마리 있고,
바깥 유리상자 위엔 비둘기라도 두 마리 그것들을 들여자보고 있다.
이 큰 유리상자는 하나의 기둥에 서 있고, 푯말에 '상식'을 뜻하는 common sense 가 붙어있다.
양복을 입은 뒷모습의 신사, 아가씨로 보이는 뒷모습의 여인, 티를 입은 배나온 아저씨가 그 상자를 들여다본다. 

세상의 모든 판단은 상대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원한 진리란 없다. 태양은 내일 떠오른다? 이것도 어느 날엔간 거짓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은 얄팍한 경험들에서 - 그것도 폭력적이어서 잘살게 된 몇몇 나라의 생각을 '상식'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웃기는 노릇이다.
마리 여사는 자신의 세계적 삶에서 우러나온 경험들로 '상식'의 무용함을 증명하려 한다.
그 경험들은 재미있고, 때로는 통쾌하기도 하다. 

이 글들은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들인데, 어쩜 이렇게 멋진 글들을 다작으로 쓸 수 있었을지...
하긴 그렇게 에너지를 집중해서 쏟다보니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삶의 길이는 짧았겠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정보를 많이 담아넣기만 하는 뇌가 과연 지적이라 할 수 있을까?
지성이란 지식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식에 대한 저작 능력이나 운용 능력에 달린 것은 아닐까? 요컨대 '사고력' 말이다.(186) 

세상은 정보의 바다라고는 하지만, 맨날 누가 누굴 때리고 죽이고 하는 저질스러운 뉴스로 가득하다.
정치가들도 참으로 치사하고 졸렬한 일들을 벌인다고 뉴스는 주절댄다.
이런 것들은 지적인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적인 인간은 뉴스를 보지 않고도, 세상의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사고력의 힘이다. 

한때 신문 활용 교육이란 방편을 마구 떠들던 신문이 있었다.
과연 신문을 아이들에게 읽혀 교육이 될까? 심히 우려된다.
지식에 대한 '저작 능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일.
그것이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는 숱한 글을 쓰면서 그걸 '취미'로 여긴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하다.(198)   
   

나도 이런 생각을 20년 가까이 품고 한 가지 직업에 만족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짜증나는 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길게 보면 아이들은 속도의 차이는 나지만 모두 성장한다.
그래서 모두가 아름다운 아이들이다.
그치만 요즘엔 월급이 많이 오른 반면, 세상이 교직을 두들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뉴스를 듣노라면 마치 나의 가치가 많이 하락한 기분이다.
근데, 방금 전에 032- 이런 국번의 전화가 떠서 받아보니, 군대가있는 제자 녀석이 1월에 휴가나온다고 미리 안부 전화다.
이런... 군바리가 그 추운 전방에서 크리스마스에 기껏 전화한다는 게 2년 전 고3 담임이라니...
이런 맛에 선생한다. 남들은 모를 경험들을 누릴 수 있는 호사가 평범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몇몇 순간에 굵은 줄기를 놓쳐버리는 일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 주제>로 글을 쓰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한 가지 생각'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살다 보면, 글쓸 일이 도처에서 눈에 띈다.
길을 걷다가, 버스에서, 뉴스를 보다가, 운전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일을 하다가,
갑자기 글쓸 주제와 부합하는 순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득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부자유한 편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249)   
   

이런 역설은 역시 겪어본 자들이 공감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이다. 

마리 여사의 책을 읽는 순간은 늘 행복하다.
그 사람이 느낀 생각들도 내 머릿속엔 언전게 스쳐갔던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새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한편 그미의 책을 읽는 일은 늘 불안하다.
그의 책은 이미 한계가 보이는 '끝'을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책에 대한 카테고리라도 하나 만들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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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26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리 여사의 책을 읽을 때도 즐겁고 행복한거 같습니다. 그녀의 생각들이
참신하고 유쾌하기 때문이죠. 제가 좋아하는 마리 여사의 리뷰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글샘 2010-12-28 00:54   좋아요 0 | URL
드디어 저는 마리 여사의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참신하고 유쾌한 사람... 맞죠.
글쓰기의 달인이기도 하고, 이야깃거리 찾아내기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마리 여사는... 기억력이 좋거나 아니면 메모의 달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cyrus 님도 마리 여사에게 푹 빠져 보세요.

세실 2011-01-20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읽으면서 그녀의 박학다식함에 놀라고 있는 중인데 님은 이미 마리여사의 팬이시군요.
제가 은근히 보수적이라 팬티 인문학은 좀 그랬어요.

글샘 2011-01-20 12:5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이렇게 누구의 왕팬이 된 적도 잘 없죠. ㅎㅎ
마리 여사의 책 중에서 팬티 인문학이 제일 재미 없습니다. ^^
다른 책들은 정말 재밌으니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꼭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세실 2011-01-26 20:40   좋아요 0 | URL
프라하의 소녀시대 읽고 나면 프라하 가야 되는건 아닐까요?

글샘 2011-01-26 22:12   좋아요 0 | URL
프라하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거기서 살고 싶으실 거예요. ㅎㅎ
 

한동안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이제서야 시간을 낸다.
부지런히 매일 쓰려고 노력할테니, 너도 부지런히 읽어주기 바란다. 

박재삼 시인의 시 중 유명한 것이 두 편 있다. 

'추억에서' 연작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다. 

진주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마리의
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닿는 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추억에서 67, 전문)  

그의 '추억에서' 연작은 가난해서 서글펐던 추억으로 점철된다. 
그 서글픔의 추억은 평생 그를 '울음'의 시인으로 자라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주를 휘돌아 흐르는 강, 남강.
유서깊은 도시 진주는 양반들은 살기 좋은 곳이었는지 몰라도, 가난한 서민이 살기엔 힘든 곳이었을 거야.
그래서 조선 후기 진주 민란도 일어났고,
박경리는 그 동네 하동 평사리를 배경으로 밑바닥 삶의 끈질김을 <토지>를 통해 풀어냈지. 

화자의 어머니는 진주 장터의 생어물전(마른 어물은 건어물전)에서 생선을 파셨나보다.
오누이(오빠와 누이)는 골방 안에서 머리 맞대고 손시리게 떨고 있었고... 

1연에서 등장하는 배경 <어스름>은 해가 넘어가고 나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이란다.
근데도 엄마는 아직도 생선을 다 팔지 못하고 남았구나.
빨리 팔고 오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와야할텐데... 마음은 바쁘고, 손님은 점점 적어지고...
'은빛' 이미지는 '은전'으로 '돈'을 가리키는데,
생선 눈깔도 은빛으로 빛나는 것이겠고, 생김새도 그런 것일거야. 

4연에서 다시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엄마의 마음이 빛나는구나.
글썽이는... 이것은 눈물을 형상화한 것인데, 마치 옹기(항아리)가 달빛을 받아 번득이듯,
어머니는 오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짓는 마음이란다.
어머니는 그 맑고 고운 진주 남강을
해뜨기 전 새벽과, 해진 뒤 어스름에야 보던 힘든 삶을 사셨던 분이구나. 

어린 시절, 그 추억에서 퍼올린 기억 하나가
이렇게 가슴 시린 것이었다니...
과연 민우의 추억들은 어떤 심상을 퍼올릴 수 있을까? 궁금하구나. 

박재삼의 가장 유명한 시는 역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란다.
가을 강에 노을이 타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시간의 강에 '울음'을 빗댄 것은... 어떤 유사성이 있을지... 생각하며 읽어 보자.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겠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 

이 시는 어렵지 않다.
제삿날 큰집에 내려가 시간이 좀 남아,
가을햇볕, 따가운 햇살 아래, 타박타박 산등성이까지 걸으면서,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동무삼아 올라간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
그러다, 해질녘 노을이 붉게 물든 강물을 본다.
울컥, 서러움이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친다.

첫사랑, 그 다음 사랑, 그리고 미칠 일로 남은 자신의 삶이
막바지에 다 와가는 강물의 처지와 동병상련...  
소리죽여 울고 있는 가을강을 눈물어려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눈망울이 금세라도 붉게 비쳐 올 듯하다. 

이런 유사성의 발견이 시의 은유를 완성하는 것이란다.
자신도 젊은 시절(첫사랑)엔 힘내서 팔딱거리며 살았는데,
좀더 나이들어선(그 다음 사랑) 세상이 힘겨워 울음이 났고,
이제는 인생의 종점에 다 와가는(바다에 다와가는) 나이가 되니
가슴에 미칠 일 하나쯤 숨겨져 있지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소리죽여 우는 가을 강처럼 그렇게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 

이렇게 인생을 바라보고,
자연을 바라보면서, 유사성을 발견해내는 일을 <관찰>과 <조응>을 맺어서 <관조>라고 한단다. 

넓게 보면, 자연과 인생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 속에 인생이 한 점처럼 존재하는 것일 텐데...
인간은 세상을 자연과 인생으로 나누곤 하지. 건방지게...
아무튼, 자연을 관찰하면서 인생의 묘미를 발견하는 관조의 맛을 잘 보여주는 시인이란다. 

다음엔 아빠가 좋아하는 <한>이란 시를 한 편 보자꾸나.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의 내 전 설움이요 전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한(恨), 전문>

 

내 마음에 오롯이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내 마음을 모른다. 

자기가 마음 속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그 사랑을,
화자는 <사랑의 열매가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감나무>에 빗대어 표현했구나.
화자의 사랑은 기대감에 넘치는 사랑이 아니고,
기쁨을 동반하는 사랑이 아니고, 서러운 사랑의 열매가 붉게 익고 있는
그래서 감나무같은 사랑이라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상황을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처럼 '형상'을 드러나게 표현하는 것을
<형상화>라고 한단다.
형상화에 성공한 표현은 이렇게 가슴 속 상황을 다양한 심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지.

그래서, 2연에서 죽어서라도,
내 서러운 나무(나의 마음)는 그 사람 등뒤로 나지막하게 휘드려질까...
아, 소심한 사람.
그렇지만, 한편 생각하면
그 사람도 날 사랑했을지도 모르고,
내 서러운 사랑의 나무를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면,
삶이란게 뭔지... 이런 마음이 되겠지. 

또, 내 사랑만 이렇게 서글픈 게 아니라,
그 사람도 세상살이 눈물로 보낸 건지도 모른겠다는...
결국, 인생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이런 것이니, 서로 동병상련 할 밖에... 

박재삼의 '한'스런 '설움'을 읽는 일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일이기도 하고,
동병상련의 비를 노박이로 함께 맞는 바보같은 웃음이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는 조금 나이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단다.
이런 것을 어린 나이에 읽으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고... 

이제 방학이 되었으니 아빠도 부지런히 매일 두어 편의 시를 읽혀주려고 한다.
방학은 쉬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빠의 철학이지만,
올해 겨울과 내년 여름은 수도승처럼
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아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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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2-2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박재삼의 시를 읽었을 때 저는 대체 왜 눈물의 시인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 글샘님 설명으로 다시보니 이제야 조금 가슴에 닿는듯 하네요.

신묘년이 멀지 않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샘 2010-12-28 00:55   좋아요 0 | URL
내년이 신묘년인가요? 요즘엔 해가는 데 무심해서리... ^^
박재삼의 시는 참 아련한 감정을 갖게 해요.
울컥 눈물나게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이야기 따라가다보면, 글썽, 눈물짓게하는 사람.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
 

[텍스터 371번째 책이야기]


<37일 동안> - 패티 다이




텍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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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 모집기간 : 2011년 12월 23일 목요일 ~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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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일 동안 / 패티 다이 저

행복을 부르는 37가지 변화 (Life is a verb)

살다 보면 누구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단지 37일 남아 있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날은 오늘일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미래의 어느 날일 수도 있다. 만약 우리 삶이 오직 37일 남아 있어도 아무 후회 없이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아버지가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정확하게 37일 후에 세상을 떠나는 황망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37일만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 뼈아픈 통찰로 이 책을 썼다. 그렇게 저자는 37일 동안 우리가 하루하루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후로도 어떻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인지, 늘 미래로 미루는 행복을 어떻게 지금 느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변화를 강요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일상에서 겪었던 사소한 사건들, 때로 기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에서 감동적인 교훈을 이끌어내고, 거기서 변화의 실마리를 찾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삶의 첫날이 되게 하는 지혜를 들려준다.

◆ 참가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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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4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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