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8 - 5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8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제 강점기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시점,
시대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강퍅한 성품의 인간상이 이 권에선 돋보인다. 

홍이네 집으로 쳐들어온 임이는 온갖 포악을 부린다 주질러 앉는다.
그러나 홍이 부부의 구속으로 임이는 만주에 남게 되는데... 

   
 

집을 나서다, 상의는 되돌아섰다.
"외삼촌 잠시만."
하고 그는 집으로 달려간다. 지갑을 꺼낸 상의는 돈을 다 털어냈다.
"고모 이거 받아요."
하면서 눈물을 닦고 급히 달려나왔다. 

 
   

어린 상의가 노인 임이보다 낫다.
비록 임이가 횡포를 부리긴 하였지만, 그리고 지 에미와 같이 물질욕으로 번득거렸지만,
수전노였던 임이네와 달리 임이는 악랄하다 할 수 없는 정신박약이었다.
어린 아이가 정신박약을 돌보아주는 대목은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영광이와 양현이가 자신들의 신분에 대한 한탄을 하다가 "허송세월"이란 낱말을 입에 담는다.
허송 세월이라... 그렇다면 세월을 가득 채우는 길은 무엇인지...  
영광이 극단 선배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는 거지. 사는 거요. 산다는데 누가 말려? 염라대왕말고는 아무도 못 말려."
이렇게 되뇐다.
맞상대인 여성은,
"나 남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살고 있어요.
생각해 보아요. 운다고 해서, 웃는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것 없잖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데 집착할 것 없더.
문이 닫혀있으면 발길 돌리고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가고 그러는 데야 누가 뭐라겠어?"
<허송세월>과 <삶>의 거리는? 한 치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걸 느끼는 인간의 마음은... 수백 년이 지나도 이겨내지 못할 듯, 힘겨웠을 것이다. 
백정의 자식과 기생의 사생아라니... 

영광은 인생의 의미를 되짚는데,
"한 위인이 살다간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서가 아닐까? 시일까?
타인에게 투영된 그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갖가지 정서로 재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자체는 보는 사람에게는 풍경이며 시다. 위대하다는 그 자체가." 

홍이 찾아온 평사리는 많이 변했다.
굴곡진 역사로 가득한 평사리.
섬진강가에서 목욕을 하던 홍이는 "산천은 무릉도원이되, 사람들은 무릉도원에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를 참 잘 비유한 구절.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떠나 <경자 유전>을 믿는 땅의 사람들은
세대를 타고 넘어 거기서 죽고 또 땅을 파고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세월은 무상하여 마을을 두 쪽으로 갈라 놓았는데,
개동이 에미는 한복이네 인호를 탐내어 행패를 부린다.
책읽는 내가 다 흥분이 될 정도로 말종이다.  

그런 흥분은 양현을 무시하는 시누이 덕희를 읽으면서도 일어난다.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서있는 곳이 한 뼘 높다고 낮은 곳에서 떨고있는 사람을 야멸차게 능멸할 수 있는지... 

험난한 시대, 뱀 혓바닥처럼 위험스럽게 돌아치는 배설자 같은 인간이나
일동이 개동이와 그 에미 우서방댁네 같은 인종 말자들이 제 세상 만난 듯 살아가는 꼬락서니는,
백년을 넘어 오늘 일어나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나머지 인간들도 또 두 패거리로 나뉘어 이러쿵저러쿵 싸우는 모습도 역시 꼭 같고... 

역시, 산천은 무릉도원이되, 인간은 무릉에 살지 못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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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11-01-0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벌써 18권을 읽으셨네요. 저도 힘내야겠어요.
박경리 선생님의 전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글샘 2011-01-07 23:46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 님도 복 많이 지으세요.
이제 20권 읽고 있습니다. 빨리 읽고 인문고전의 바다로 풍덩! 하려구요. ㅎㅎ
박경리 선생님 전기... 글쎄요. 이 책만한 전기가 있을까요. ㅎㅎㅎ
 
토지 17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7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5부는 아무래도 이 소설의 마무리 부분이다 보니, 맺을 건 맺고 끝내려는 생각이 많이 작용한 느낌이다.
4부에서 '교술'적 내용이 늘려있었던 것이 비하면, 이야기 진행이 빠른 물살을 탄다. 

아픈 것은 관수가 죽은 것인데, 뜻밖의 호열자로 그리된 것이다.
관수의 죽음을 둘러싸고 '백정'이란 계급의 갈등과 떠돌이 아이들 '숙이'와 몽치, 영선과 휘
무엇보다 큰아들 영광이까지 돌아오게 된다.
색소폰 연주자 영광이의 이야기에서, 그의 외로운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왜 사람들은 남들에게 이런저런 옷을 입히기를 좋아하는 거지요?
아름다우면 추하게 입히려 하고 추하면 아름답게 입히려 하고.
온통 빈 껍데기, 빈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화려한 무대에서 관객들은 환호합니다. 열광합니다.
껍데기만 보구요....
인생이란 따지고 보면 본시 그런 모습.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럽고 과히 아름다울 것도 없는, 
그게 삶의 현실 아닐까요? 대체 신성한 곳은 어디 있습니까? 

박경리의 인생을 스스로 돌아보고 외치는 못소리같아 맘이 짠하다. 
이런 예술가의 마음은 조병수를 통해서도 드러내 준다.
송영광은 왜놈에게 맞아 다리를 조금 절게 되었을 뿐이지만, 조병수는 배냇병신인 곱추다. 

   
 

일을 다 끝내고 나면 왜 그리 허기가 드는지요.
밥을 먹어도 허기는 가시질 않고, 알 수 없는 허기,
속이 텅 비어서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아서 말할 수 없이 쓸쓸해 집니다. 

일을 다 끝낸 뒤 다 된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내가 한 일일까 의심이 들지요.
정말 저걸 내가 만들었는가. 일한 시간은 간 데 없고 흔적도 없는데 물건이 하나 내 눈앞에 있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가 않소.
내 손은 연장에 불과한데 무엇이 나로 하여금 만들게 하는가.
생각이야 늘 하는 거지만 그것이 어떻게 물건으로 나타나 있는가.

 
   

예술가의 저린 속을 이렇게 인물을 통해 털어놓는데, 그걸 엿듯는 맛도 졸깃한 것이 쏠쏠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지감과 환국의 대화에서도 얼핏 비치는 예술혼의 고독. 

   
 

사로잡히지 말아야, 사로잡히지 말아야지.
예술가도 어떤 면에서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자유는 쓸쓸하고 고독한 거야.

 
   

임명희와 강선혜가 마흔이 넘어 수다를 떤다. 여기도 작가의 목소린듯 싶을 정도로 생생한 소리가 들린다. 

   
 

세월이 무섭다. 늙는 것보다 사람이 변하는 게 무서워.
옛날 친구들을 만나면 늙었다는 것보다 
맑은 샘이 없어진 듯 생각이 말라버린 느낌이 들 때 슬퍼. 

 
   

그래서 사는 일은 쓸쓸한 것인데...
맑은 샘물 가득한 소녀 시절의 생각이 말라버린 중년기. 슬플 만도 하다. 
임명희의 말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죄가 있어 벌 받나요?
불운이지요. 아무리 도망가도 불운이 따라오면 도리 없어요.
뛰든 멈추든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멈추어서 불운과 친해질밖에요. 

 
   

임명희에게 양현이 묻는다. 

   
  의과 잘못 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고 박애정신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저의 꿈이었고
지성적인 그런 여성을 선망했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오고 보니 하루하루가 사막을 걷는 걷 같은 기분이에요.
실제 우리는 사막을 걷고 있는 거야. 매일 매일...
그럼 사막을 걷기 위해 사람은 사는 걸까요? 
 
   

서희는 양현을 최서희에서 이서희로 바꾸어 준다.
그 속내가 드디어 드러난다. 남 주기 너무 아까운 딸을 윤국이와 맺어주려는...
최서희의 강한 개성은 여기서도 여지없다.
그 양현이 이상현네 박씨 부인과 서먹한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부분이 두려운 복선인 듯 하여 소름끼친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빗방울은 이네 세찬 빗줄기로 변했다.
그리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흔든다. 

마치 양현의 앞날이 그러할 것이라는 듯... 불길하다. 

   
  동네가 두 패로 갈리어 큰일이다.
옛날의 조준구 시절에도 두 패로 나뉘어져서 원수맨키로 으르렁거리더마는... 
 
   

마을의 독오른 가족 우서방네의 아이들은 면서기가 되어 횡포가 자심하다.
최서희가 개동을 군수에게 따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대목에서 나온 구절인데...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패거리로 갈리는 일이야 무상한 일이지만,
못가진 자들조차도 수시로 두 패로 갈리어 웬수가 되는 일이 잦다. 큰일이다. 

5부에 들면서 속도가 붙는다.
제발... 모두들 행복하게 끝났으면 좋겠다.
이제 조준구도 벽에 똥칠하게 살았고,
양현이도 행복하게 해 주고, 길상과 서희도 맘 편하게 좀 자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세상은 아직도 먹구름 가득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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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김광규의 70년대 시 이야기를 하다가 황동규와 황지우 이야기가 나왔다.
나온 김에 이야기를 계속 하자.

황동규의 시는 상당히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데,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는 조금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단다.
바퀴는 원래 굴러가라고 만든 것인데,
왜 화자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 것인지... 한번 읽어 보자꾸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어렵니? 아니면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한지... 

바퀴는 원래 마찰력을 줄여서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지.
그러니, 바퀴는 잘 돌아야 하는 것이야. 잘 굴러가야 하는 것.
그런데, 이 바퀴가 잘 구르지 않는구나.
뭔가 문제가 많은 현실이지?
그래서 화자는 세상이 잘 굴러가기를 희망하는 거야. 

3연에서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이런 구절이 나오지?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상반된 주장이니까, 한 문장 안에 상반된 주장을 나타내는 것.
역설법이지.
근데, 뭐가 '안 보이고, 보이는' 걸까?
3연의 <숨찬 공화국>이 힌트가 될 수도 있겠구나. 

<공화국>이란 말은 <republic>을 옮긴 말인데, '함께 공', '화할 화', '나라 국'을 쓴단다.
말 그대로 옮기자면 '함께 사는 나라'라고 볼 수 있지.
정치의 대상은 'public'일거고... 대중. 민중을 위해 함께 살도록 정치를 하는 나라.
반대는 군주제겠다.
민주주의 국가를 용어로 만든 것이 공화국이라고 보면 되겠다.
어떤 나라든, 약한 계층이 있게 마련이니 그들에게 복지적 차원이든 시혜적 차원이든
국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미의 소극적 공화국에서부터,
인종과 민족을 차별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자는 적극적 공화국까지...
참 바람직한 정체 체제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부패 공화국> 이니 <삼성 공화국> 같은 말은 어불성설(말도 안 됨)이지.
어떻게 공화국이 부패할 수 있겠느냐고... 

그 공화국이 <숨찬 공화국>이 되어버렸구나.
말로만 공화국이지, 사실상 <독재국가>였던 시절.
너무도 구르지 않는 사회를 보니 굴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 



반복되는 문장 구조(통사 구조라고 부르기도 한단다)를 통해 시상을 강조하고 있지.
마지막 구절.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이 말은 조금 숙연한 마음이 들게도 하는구나.
모든 존재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만들어진 그릇은 깨어지게 마련이고,
낙엽은 떨어지게 마련이고... 인생도 그렇지.
모든 건 마침표를 찍게 마련인데,
그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화자가 하고 싶은 것은?
바퀴를 굴려보고 싶은 거겠지.
삐걱거리고 사고투성이인 이 세상에 윤활유가 되듯,
제 한몸 바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그래서 세상이 구르는 모습을 보면, 화자는 <떨어져 한번 날아가서> 끝이 나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 같구나.

다음엔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쓰는구나>를 읽어 보자.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을 썼다.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강제로 암기하게 하였으며,
'교련'이라는 수업으로 학생을 군사화하였다.
무엇보다도 아침 저녁으로 국가 게양과 강하식을 하면서 온국민에게 '얼음'을 외치기도 했지.
길거리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모든 사람이 스톱하게 되어있었단다.
무서운 사회였지.
우스운 것은 '가장 은밀한 곳' 영화관에서 조차도 영화보기 전에 '애국가'를 틀었단다.
블랙 코미디지. 

그 애국가 장면을 보던 화자는
화면 속에서 자유롭게 나는 새들과,
애국가의 노래 가사와,
국민의 삶의 현실이 어디선가 삐걱거리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아름답기만 하고,
'을숙도의 새떼들'은 자유롭기만 한데,
'민중의 삶'은 부자유스럽고 가난하기만 하지.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애국가는 끝이 나는구나.
그래서 좌석에 앉으면서, <주저 앉는다>는 표현을 하여 <좌절감>을 나타냈단다.

강요된 애국심, 군사문화의 맹목적 복종... 이런 것에 강하진 않지만 반발의식을 드러내고 있지. 

오늘은 황동규와 황지우의 시 두 편을 간단하게 살폈다.
책을 읽는다는 일은...
시험 공부를 하는 일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뭘 외워서 시험을 치는 일은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한다는 전제가 들어있어.
근데, 평생 살면서 인간답게 살고, 보이지 않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알렉산더 대왕이
자유로이 살기로 유명한 '통'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더니
"저쪽으로 비켜 서 주십시오. 그늘이 집니다." 라고 말했다는 것은 생각해볼 만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
대왕은 자신이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다고 하는 말도 그렇고... 

자유롭게 산다는 일은 어떤 것일지...
평생 머릿속에 담아두고 살 만한 가치있는 구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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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광규란 시인을 소개해 볼까 한다.
김광규의 시는 우리가 늘상 보는 것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선 <도다리를 먹으며>를 보자.

일찍부터 우리는 믿어왔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우리의 몸과 똑같은 모양으로
인형과 훈장과 무기를 만들고
우리의 머리를 흉내내어
교회와 관청과 학교를 세웠다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붙었다고 웃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오른쪽과 왼쪽 또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결코 나눌 수 없는
도다리가 도대체 무엇을 닮았는지를 (도다리를 먹으며)

도다리는 가자미과에 속한 생선 이름이다.
생선 머리를 잡고 봤을 때,
눈이 <왼쪽>으로 붙은 놈은 <광어>, 2글자 ㅋ
눈이 <오른쪽>으로 붙은 놈은 <도다리>, 3글자 라고 '국립수산과학관' 박사님이 가르쳐 주시더구나. 

도다리를 보면서 화자는 의문을 가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그런 것인가를...
그것은 그저 <통념>에 불과할 뿐이지, 진실이 그러하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 부호를... 

첫 연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비슷하다고 <믿어> 왔다는 주장을 한다.
알고 있다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그렇다고 <믿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2연에서는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들이댄다.
세상에는 '입'이나 '성기'처럼 가운데 하나만 있어 구분할 수 없는 것도 많은데 말이다.

20세기는 <좌우>의 시대였단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 세력과 자본주의 세력이 서로 발돋움을 하며 키재기를 해왔다.
그 와중에 세계대전도 일어나고 온갖 내전과 지역전쟁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벌어진 한국 전쟁도 <좌우>의 전쟁이었단다. 

도대체 인간은 왜 그렇게 <좌우>로 나뉘어 싸우는 것인지...
3연에서 화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라고... 
그래서 산과 들을 좌우로 나누고,
그것을 나누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잘난 체 하지만,
인간은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붙었다고 웃>는 징그러운 존재다.
그런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낯설지 않은가? 

세상은 결코 <좌우>로 나눌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도다리>도 나눌 수 없는데, 진실이 무엇인지...
화자의 생각은 이렇다.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얼마나 자기가 옳다며 서로 싸우고 죽도록 헐뜯는 존재인지...
인간의 <허위 의식>을 밝혀서 고발하는 시로 보면 되겠다.
인간 본위의 사고방식에 얽매인 무지한 존재인 주제에
<허위 의식>으로 가득차서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존재임을...
그런 세상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시다.

그의 유명한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좀 길지만 한번 읽어 보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 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마로니에 공원>

이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1960년 4.19가 나던 해의 <순수한 젊은 시절> 이야기와,
그로부터 18년 지난 1978년 <생활에 찌든 소시민>의 이야기. 

제목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도 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옛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옛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볼이 발그레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 옛사랑의 시절은 '희미한' 것이고, '그림자'로만 남았다. 

1961년 5.16에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기 전까지,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한국에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울 절호의 찬스였다.
젊은 혈기들은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적었다.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토론을 <끝낸 밤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그 젊은이들의 순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18년 후.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인 그들은
회비를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묻고
물가를 걱정하며
세상을 개탄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소심한 소시민들의 평범한 삶이지만,
젊었던 시절의 뜨거운 열정에 비하면, 반성할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73년 지금의 서울대학교 자리로 옮기기 전까지는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자리가
옛날 서울대학교 자리였다. 지금은 대학로라고 부르는 그 거리다.
툭하면 서울대에서 길거리로 시위를 나가곤 하던 그 혜화동, 동숭동, 이화동 거리...
나이든 화자는 그 젊었던 시절을 <옛사랑>에 비유하곤 하는 것이다.
이제는 <희미해진 옛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화자는 좀 부끄러워진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그렇지만 생활 속으로 그 늪 같은 깊이로 발을 옮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을 안고... 

젊은 시절의 대가 바라지 않던 뜨거운 마음이 사라진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반성.
순종적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하는 이 시는,
'3등 3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하고 부푼 꿈을 소리지르던 젊은 시절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고백이다.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세대들에게 가슴 뜨끔한 기억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세밑은 연말이라고 했다.
연말이면 송년 모임이 많은데, 그 모임 속에서 속물적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삶에 반성의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시.
다음은 그의 <상행>이란 시를 읽어 보자.
상행은 서울행이란 이야기다.
시골에서 서울로 서울로 살아 보겠다고 올라가는 그 기차를 <상행선>이라고 불렀다.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 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상행(上行))

이 시가 씌어진 1970년대는 '서울 중심의 불균형 개발'로 '농촌 황폐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던 시기였다.
어려운 한자어로 이촌향도라고 하지. 촌을 떠나 도시를 향하는...

가슴 속에 가득 '발전해가는 세상과 뒤처지는 자신'의 괴리감이 점점 커져감을 느끼게 되는 화자의 마음은
이 시의 서술어들을 모아 보면 잘 드러난다.
말이 기니깐, 서술어들만 모아 볼게.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고개를 끄덕여 다오.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고속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스스로 부끄럽고 소외된 인생이라고... 낯선 얼굴을 발견하게 될 지라도...
너의 모습을 잊어 달라는 부탁.
국가에서 세뇌세키는 대로 제발, 문제의식을 갖지 말고 고개를 끄덕여 달라는 부탁.
자동차 소리도 경쾌하니, 즐겁게 여행을 해 달라는 부탁.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라는 부탁.
놀라운 일이 날마다 일어나겠지만, 그저 '아!'하고 나서 입 다물어 달라는 부탁.
그래서, 그저 시시한 축구 이야기나 증권 시세에 대한 이야기나 하라는 부탁.
그것은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그래야 한다는 것인데... 

화자는 <독재 시대> 날마다 벌어지는 사건 사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여기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 다오> <생각지 말아 다오> 하는 이야기는 반어법으로 보는게 좋겠다.
<현실에 관심을 가지자> <생각을 바로 하자> 이렇게... 

텔레비전에서는 회형적 성장 위주의 획일적인 근대화를 과장하여 자랑하고 있지만,
실제는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처럼 <근대화로 황폐해진 농촌>이 죽어가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용비어천가>만 틀어지고 있었지만,
낮은 소리로 <듣기 힘든 소리>는 부정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았던 시대다.
확성기에선 '새마을 노래' 소리 높아갔지만,
성장 위주의 근대화는 <재벌들>에게만 <당신들의 천국>을 안겨주었다. 

독재 시대에 찍소리도 말고 있어야 한다.
그게 <너>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다.
이건 정말 화자가 하고 싶은 목소릴까?
찍소리도 못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소시민적 근성에 대한 반성이다. 

이런 것을 시인 '김수영'은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부분) 

중요한 일에 대하여는 비판하지 못하고, 그저 사소한 일에만 욕을 해대는 사람으로...  

'왕궁'과 '왕궁의 음탕함'은 '권력자의 부패'가 되겠다.
박정희는 말년에 엄청 술자리를 많이 가졌다고 그러더구나.
그런 데는 비판의 혓바닥을 놀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 
갈빗집 주인에게 옹졸하게 욕을 할 뿐인 자신. 

소설가가 정권을 비판했다고 붙잡아가고,
신문이 맘에 안 들면 광고주를 협박하고,
국민의 아들들을 제멋대로 월남에 파병하던 무서운 시절.
그런 정권에 비판의 날을 세우지 못하고,
잡부금을 걷으러 오는 야경꾼에게나 욕설을 날리는 자신에 대한 반성. 

무서운 시대였다. 지금 그 딸이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겠다고 어리대고 있다만,
그 무서운 시대를 잊지 않았다면, 독재자의 딸이 다시 권력을 잡는 일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 무섭던 시대...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그저 침묵하거나
별볼일 없는 이야기나 주절거리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부끄러워,
김광규는 서울 가는 기찻간(상행)에서 들었던 좌절스런 생각을 그렇게 시로 쓴 것이다.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하여 제대로 비판의 날을 간 시가 <어린 게의 죽음>이다.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어린 게의 죽음) 

어미게와 어린 게가 잡혀서 게장수의 구럭에서 허우적댄다.
<바다의 자유>를 찾아 <구럭을 빠져나와 아스팔트를 기어가>는 어린 게는
저항의 상징이다.
그러나 <군용 트럭>으로 상징된 <군사 독재>의 억압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죽는> 어린 게.
먼지 속에서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그러나, 그 저항 정신에서는 <찬란한 빛>을 만나게 된다.
저항 정신의 숭고함. 이런 이야기다. 

김광규의 시 몇 편을 보다 보니,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나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도 이야기하고 싶다만,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 수업 끝! (누가 수업 끝이래~ 하던 왕비호도 이제 박수칠 때 떠난다더구나. ^^) 

세상은 갈수록 뻔뻔스런 나쁜 놈들로 뒤덮이고 있다.
<슈퍼 배드 Super-Bad>로 부족해서,
<메가 마인드 Mega-Mind>까지 생겨났다. 

  

비록 만화영화지만, <아주 나쁜 놈>부터 <왕비호>까지
그 이름이 세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세상을 바로보는 눈들을 읽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내일 계속하자꾸나.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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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인문고전>을 읽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그 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들어있었는데,
마침 펭귄 클래식에서 좋은 해설서가 나왔다고 한다.
나의 <인문고전> 독서에 때맞춰 나와준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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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클래식 신간 리뷰어 모집합니다.
리뷰 기간은 넉넉히 드리는 대신 확실히 리뷰를 작성해주셔야 합니다.
책만 받고 리뷰는 건너뛰겠어! 하시는 양심 없는 분들은 펭클 친구들 중에 안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만일 책만 받고 아무런- 까닭 없이 예고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에게는 무시무시한 일이^^;;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으니 좀만 연기해주삼- 음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렇담 좀 연기해드리겠습니다~
대신 미리 제게 쪽지나 메일로 알려주셔야 합니다. 

 리뷰 형식은 성심성의껏 써주시면 됩니다.
펭클 서평 공간에 작성해주시면 되구요, 온라인 서점 2곳 이상에 리뷰 올려주시고 URL 첨부해주세요. 리뷰 기간은 책을 받으신 후부터 3주 이내에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1월 10일까지 지원자 받겠습니다.

이 게시글을 스크랩하신 후, URL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잎새] [자기만의 방] [시학] 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댓글로 작성해주세요. 댓글 작성시 작품 제목 먼저 써주세요.

각 작품 5명씩 리뷰어 모집합니다.

펭클 친구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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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글샘님도 리뷰어 신청으로 펭귄클래식 카페에 가입하셨나요?
가입하셨더라면 글샘님을 카페에서도 뵙게 되어서 무척 반갑네요.
글샘님이 소개하시는 시들을 카페에서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

글샘 2011-01-03 21:21   좋아요 0 | URL
네. 펭귄클래식에 제법 좋은 고전들이 많더라구요. 자주 애용할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1-01-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그 세 권을 다 읽었답니다.
<시학>은 오래 전 드라마 작법을 공부할 때 읽었구요,
<자기만의 방>은 역시 오래 전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 읽었구요,
<마지막 잎새>는 제 블로그에 써 놓은 리뷰가 있습니다. ㅋ

글샘 2011-01-10 00:00   좋아요 0 | URL
아, 펭클의 팬이셨군요. ㅎㅎ
시학도 조만간 다시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