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얼굴 보기가 힘들구나.^^
집에서 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잠잘 때만 들어오니 같이 살아도 낯설다.
이제 고3이 되는 중요한 시점이니, 마음을 잘 가다듬고 정신의 날을 세워보기 바란다. 

오늘은 오세영 시인의 시를 몇 편 읽어 보자. 
우선 그의 <10월>을 읽어 보자.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10월)



인생에서 10월은 어떤 계절일까?
1월에 태어나고 12월에 죽는다면, 인생의 마무리를 지을 시점이 되었단 이야기일거야.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있었단다.
심은하와 한석규가 주연이었지.
한석규는 사진관을 하는 남자로 나오는데, 글쎄 죽을 병에 걸려 인생을 마무리하게 되었어.
아직 30대 한창때였으니깐, 인생에서 8월 정돈데, 그냥 <연말> 분위기인 <크리스마스>가 와버린 거지. 

이 시에선 역설이 많이 등장해.
'잃는 것'은 '성숙하는 것' 같은 말이 그렇지.
역설이 뭐랬지?
동시에 두 가지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했지?
'얻는 것'이 '자라는 것'과 관계있기 쉬운데, 화자는 '잃는 것'이 '성숙'의 길이랬어.
그러니 역설이지.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은 한창 청춘의 시기일거고,
식물은 청춘에 꽃으로 에너지를 다 보내서 짝짓기(화분)에 안간힘을 쓰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은 한창 일할 나이. 30대 정도 되겠구나.
식물도 여름엔 광합성을 하여 씨앗을 영글게 하고 열매를 살지게 만드는 데 온힘을 기울인다.
인생도 그런 것 같아.
봄에는 짝짓기를 위하여 치장도 하고, 이성에게 관심도 가지고,
그러다 여름에는 식물이 광합성 하듯,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 

떨어질 열매, 낙과에게 너무 슬퍼하지만은 말라네.
과실이 떨어짐은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이라고 했어.
그건 바로 자연의 순환을 노래한 거겠지?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 오늘 또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도 역설이지.
만남이 아름답지, 이별이 아름다운 건 아니잖아. 보통...
그런데, 역설적인 말로 이별을 더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구나. 
늙는 일, 나이드는 일을 보통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화자는 <나이듦과 함께하는 영혼의 성숙>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 나이 든 것을 거부하고 '동안'이 큰 재산인 양 뻐기는 풍조가 있다.
좀 아쉽지.
어차피 태어나면 죽기까지 한 평생 사는 건데...
물론 좀더 화려하게 꾸미고 싶기도 하지만, 단단한 그릇이 되어,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면 뭐, 아쉬울 것도 없을 텐데 말이야.           
'그릇'의 시인으로 유명한 오세영을 이야기하니깐, 그의 '그릇'을 만드는 재료,
'모순의 흙'도 살펴 보자꾸나.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 그릇. (모순의 흙)


이 시의 1연부터 역설적 기운이 가득하구나.
순서를 조금 다듬는다면 이렇게 되겠지. 

흙으로 빚어진 그릇, 접시는 언젠가 깨져서 흙이 된다.
이렇게 적으면 그저 하나의 설명문인제, 행을 뒤섞어 놓으니 그럴듯 하지 않니?

그릇은 잔치에 쓰일 수도 있겠지.
잔치처럼 흥성거리던 삶의 어느 날,
잔칫상에 올리듯 여느 날과 다름없이 쓰이던 그릇이 바싹 깨진다.
죽음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란다. 아무런 준비 없는 그 날에...
버나드 쇼라는 유명한 극작가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런 말을 남겼대.
"내 우물쭈물하다 이리 될 줄 알았다."
바싹 깨지는 그릇하고 뭔가 통하지 않니?

인간은 그릇이 빚어지는 것과 같이,
물에 젖고 불에 탄다고 표현했다.
물은 왠지 좀 슬프기도 한 것 같기도 하고, 불은 조금 바삭거리는 마음이기도 하다.
흙반죽도  물에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야 쓸모가 있는 물건, 그릇이 되듯
인간도 슬픈 일도 겪고 마음 힘든 일도 넘겨야 쓸모있는 그릇이 된다는 비유 같다.
왜,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기도 하잖아. 그릇이 크다, 작다... 이렇게. 

화자는 접시가 되어 살리라고 외치고 있다.
그 접시는 깨어짐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도 죽는 날, 비로소 그 인간에 대한 평가가 완성되는 것과 마찬가지겠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처럼,
죽음 뒤의 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흙과 같은 무기질의 원소로 이루어진
모순의 그릇,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릇에 빗대어 하고 있는 시다.

생명의 완성이 '그릇의 깨어짐'에서 비롯되듯,
인간의 생명도 '죽음'의 순간에 완성되는 느낌을 받으면 될 것 같구나.
다음엔 그의 '그릇'을 읽어 보자.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그릇 1)


이 시에서도 앞의 <모순의 흙>의 연장선에 놓인 그릇을 읽으면 되겠다.
원래 '둥글게' 빚은 그릇.
그 그릇이 깨지면 '모가 난' 면이 드러나면서 '칼/칼날'이 된다고 했다.
그 칼날은 나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화자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처에서 <성숙하는 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겠다. 

그만큼 인생에서 '성숙'은 만나기 어려운 존재인 모양이다.
인생을 둥글게 둥글게, 원만하게 살아나가고 싶지만,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가는 순간, 그저 좋게만 살 수는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 중심을 빗나가는 순간이 또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만은 아니다.
설혹, 그 깨진 그릇의 칼날에 발이 베인다손 치더라도,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맨발이 베어진 살은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을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같은 시인의 <등산>을 읽는 것으로 오늘은 마치자.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生涯)의 중량(重量)
확고(確固)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암벽(岩壁)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無明)의 벌레처럼 무명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벼랑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接近)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등산) 

보통 문학에서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인생은 새옹지마이기도 하고 뭐 그렇게 나오지.
그런데, 이 시에서 등산은 암벽 등반 같구나.
가파른 암벽을 자일 하나에 의지하고 조금씩 조금씩 위로 나아가는 그런 행위 말이야. 

나는 돈을 들여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말이야.
그 사람들이 추구하는 '조금씩'은 조금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단다.
많이 오르려는, 꼭대기에서 만세부르려는 자세가 아닌,
지금 여기서 조금 조금씩만 미래를 향하여 <가까이, 가까이> 가는 것이 그이들의 발자국일테니...

삶은 그 높은 곳까지 도달하는 거시적인 일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은 조금씩 가까이 갈 수 있을 뿐임을 들려주는 시야.
이런 시들을 읽고 있으면, 왠지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지 않니?

삶의 온갖 역정을 다 겪어 오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이야기를 문학을 통해 듣는 것.
그게 문학이 살아남은 힘이 아닐까 싶다.

세상의 모든 진리라 외치는 것들도 언젠가는 흔들릴 수 있단다.
그 때, 삶의 자세를 생각해 보는 그런 시가 되겠지. 

민우도 고3이란 높은 고지를 앞두고,
<함부로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이런 자세로, 조금씩 나아가는 마음씀씀이를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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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1-1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무언인가에 몰두하는 삶이 훌륭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시를 쓰든, 그릇을 만들든, 암벽을 타든... 멋집니다.
몰두하는 시간엔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죠. 시만이, 그릇만이, 암벽만이 그 세계의 전부이죠.
저도 몰두한 일이 끝났으니 좀 쉬었다가, 새로이 몰두할 수 있는 무엇을 찾으려고 해요.
저에겐 독서와 글쓰기가 될 듯...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를 찾으려 해요.
(추천 누르고 감)

글샘 2011-01-14 17:35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세요. ^^
저도 찾아 가서 읽고 할게요.
 

날이 제법 차구나. 

아까 저녁 나절에, 우리집 앞 지하도에 불이 나는 바람에 정전 사태가 있었다.
잠시의 정전으로도 우리는 어쩔 줄을 몰라야 했구나.
촛불을 켜 놓고, 수돗물도 끊긴 집에 있자니... 인간이 참 나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수익의 '결빙의 아버지'와 나희덕의 '못 위의 잠'을 읽어 보자.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 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零下)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이수익, 결빙의 아버지)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시간의 흐름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구나.
1연에선 과거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으로, '예닐곱 살 적 겨울 외풍을 막아주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2연에선 성년이 된 현재 '자기 자식을 통하여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모습이,
3연에선 오늘 영하의 한강 얼음을 통하여 '아버지를 연상'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동일한 감각적 이미지가 나타나 있어.
'차가운 얼음'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통해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표현한 소재가 되겠구나.
이 시의 주제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정도가 되겠지.

'목조 적산 가옥 이층 다다미방'은 일본식 가옥이란다.
적산은 '적군의 재산'인데, 일본놈들의 가옥을 적산가옥으로 불렀지.
일본은 '온돌'과 같은 난방이 없어서 '다다미'방에서 살았대.
기껏 난방기구라고는 밥상 밑에 난로를 넣고 이불을 덮은 '고타츠' 정도였지.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날마다 뜨끈한 물에서 몸을 녹이곤 했다고 해.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민우는 어떤 기억이 떠오르니?
화자는 <추위>라는 '촉각'이 떠오르는 모양이구나.
추위로 인해 아버지의 가슴팍이 떠오르고...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화자의 자식들이 옹송그리며 잠든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추억한단다.
오늘은 문득 한강물의 얼음을 보고, 그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단다.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의 이미지는 차가움 속에서 뜨거운 사랑이 보이는 것이지.  

민우도 나중에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거다. ^^ 
이 시는 과거 회상이 드러난 감각적이고 고백적인 시다.
분위기가 차분하면서도 애틋하지.

대화체를 사용한 특징, 시간의 흐름에 따른 주제의 심화. 이런 것들을 읽을 수 있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이 <불과 얼음의 콘서트(2002)>라고 하니 재미있는 제목이구나. 

지난번에 읽었던 김종길의 '성탄제'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이 형상화되기도 했었지.
비슷한 주제가 드러난 '나희덕'의 <못 위의 잠>을 한번 읽어 보자.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 못 위의 잠)

이 시에서 공간적 배경이 되는 <저 지붕 아래 제비집>은 '화자의 보잘것 없는 집'에서 '가난'을 떠올리게 한다.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도 가득 차는 작은 집.
어미는 새끼들에게 보온을 해주느라 날개로 둥지를 덮고 간신히 잠들었대. 

그 둥지 옆에, 누군가 박아 놓은 못 하나가 있는데,
바로 그 못에서 아비는 밤을 지냈단다. 
아비 제비는 그 못 위에 앉아 가족을 걱정하며 밤새 꾸벅거리고 졸고 있단다.
화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이 뜨거워> 진다.
바로 제 아버지를 떠올리기 때문이겠지.

화자가 살던 동네는 서울에서도 조금은 외진 곳, 종암동이었던 모양.
흙먼지 섞인 바람이 부는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아버지와 세 아이가 엄마를 마중나와있어.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오래오래 기다리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엄마가 내렸어.
창백한 엄마 얼굴과 하늘의 반달은 가냘프게 새하얀 게, 조금 슬퍼 보이는구나.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도 잡고 재잘거리며 떠드는데,
정류장에서 멈춰서 있는 그 사내, 남편의 안쓰런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밤 늦도록 일하고 오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였겠지. 

직장을 잃고 집에서 쉬고 있던 아버지.
그 실업의 힘겨운 나날에,
심심할 때면 주머니 속에서 두 알의 호두를 만지곤 했는데,
그럴듯한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마치 못 위에서 잠든 제비 아빠처럼,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화자의 아버지.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그 여자가 힘들게 퇴근하는 길.
희미한 달빛에 비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는 그런대고 따스하기도 했지만,
그 좁던 골목길은 너무도 가난했고,
실업자의 잃어버린 자신감과 놓쳐버린 자존심이
지친 아내의 한 걸음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갈 수밖에 없던 아비의 발걸음. 슬픈 그림자. 

과거의 그 아버지의 꾸벅거림을 떠올리게 하는,
오늘의 못 하나, 그 위의 제비 애비의 잠. 

흙바람이란 시련 속 과거를 회상하는 화자의 시구나.
아버지는 실업의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는데,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떠오르고,
그 궁핍한 삶이 영위되던 '골목'의 추억은 화자를 애상에 잠기게 만든다. 

벽에 박힌 못 위에서 잠을 자는 아비 제비를 보고 떠올린,
유년 시절의 화자의 아버지의 모습은 쓸쓸하고 처량하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는 화자의 눈에 보이는 '못 하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아비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재였구나.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삶의 의의를 찾는 시로는 '고정희'의 '우리 동네 구자명 씨'도 있다.
한번 읽어 보렴. 

맞벌이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일곱 달 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고정희,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아침 출근 버스에서 정신없이 졸고 있는 어머니.
일곱 달 된 아기 엄마인데, 오늘도 출근을 하는구나.
왜 그렇게 졸고 있나 곰곰 살펴 보니,
아기에게 젖도 물리고, 시어머니 약시중도 들고, 남편의 술주정도 좀 받아 주고
그렇게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
마약처럼 달콤한 통근 버스의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구나. 

'팬지꽃 아픔'과 '안개꽃 멍에'는 역설법으로 볼 수 있겠다.
팬지꽃과 안개꽃같이 이쁜 꽃에다가 '아픔과 멍에(동물의 머리나 목에 끼워 짐을 끌도록 하는 막대)'가 붙었으니 말이다. 

여성 한 명에 하나씩 부여된 <부엌>이란 공간은,
한 식구의 '안식'을 위하여 어머니가 희생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집에 천사들을 보낼 수 없어
어머니를 대신 보내 주셨다는 이야기도 있지.
<죽음과도 같은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을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고 표현했구나.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일해야 하는 어머니의 삶과 그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 보자. 
왜 잠을 못 잔다고 하지 않고 <거부>한다고 했을까?
못 자는 상황이라기보다는, 안 자는 상황이라고 봐야겠지?
어쩔 수 없이 깨있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깨어있는 어머니 말이야.

구자명 씨에게는 동정과 연민을 느끼지만,
그건 그저 불쌍한 상황이 아니란다. 가족의 안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모습이지.
시인은 출근길에서 정신없이 졸고 있는 한 여성을 보았겠지.
그래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여성의 <전형>으로 구자명 씨를 창조했겠지.

생계를 꾸려나가는 여성의 고단한 삶이 잘 형상화 된 시란다.
민우도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도와드리려면 네 방 청소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겠지?
오늘은 시를 통해서 힘들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잠시 들여다 보았단다.
시를 읽는 일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는 길이란다.
매일 간단하게나마 시를 읽고, 인생을 배우자꾸나.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임을 잊지 말자고, 만화 한 편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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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1-1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10월 30일날 시작하신게...어느덧 32회네요.
거의 매일 한두 편씩 올라올 때에 비하면 못내 아쉽지만, 이런 글 쓰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근데, 요즘 좀 심하게 뜸한 건 알고 계시죠~?^^

전 시를 한 연, 한 행 헤쳐 분석하는 것도 그렇지만,
시 한편에서 연결되는 삶과 생각의 깊이를 만나게 되는 게 참 좋아요.
민우는 참 좋겠어요, 이런 글샘을 아빠로 둬서...

글샘 2011-01-13 22:05   좋아요 0 | URL
요즘 심하게 뜸했던 게요...
1월 5일부터 10일까지 합숙으로 시험문제를 내는 팀에 들어가서 콘도에 갇혀 살았거든요.
인터넷 없는 데 가서 사니깐 좋더군요. ㅎㅎ

시를 이렇게 읽노라면, 저도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곤 한답니다.
아들 덕에 시를 많이 만나서 저도 좋습니다. ^^
 
철학, 역사를 만나다 -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
안광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중동고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안광복 선생님의 이 책은,
일단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어 아이들의 관심을 이끄는 책이다. 

윤리 시간에 배우는 서양 철학, 동양 철학은 암기하자니 너무 많고,
이해하자니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 종목이다. 

인간의 숱한 생각들은 흩어져 있어 정리가 되지 않는데,
그걸 조목조목 모으는 일이 '철학'이라면,
인간의 삶의 편린들은 또 날마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인데,
그걸 의미있는 것으로 갈라서 모으는 일이 '역사'가 될 것이다. 

역사라는 씨실을 밑천삼아, 철학적 날실을 엮어가노라면,
이렇게 멋진 이야기책이 탄생하기도 한다. 

9.11 테러 이후로도 반성하지 못하는 강대국에게는 철학이 없다.
역사적인 반성 없는 '힘'은 결국 무철학의 결과일 뿐이다.
스파르타가 지혜롭지 못한 국가였음을 플라톤이 발견했을 때,
결국 강대국이 철학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몰락으로서 보여주는 이야기라든가,
조선의 권력과 성리학이 어떻게 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임란때의 임금의 도망과 호란때의 불필요한 논쟁들이 어떻게 국가를 몰락시켜가는지를
쉬우면서도 분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고등학생 정도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인문반 학생들이라면 역사와 철학을 모두 정리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읽을 거리.  

도판도 깔끔하고 설명이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풍부해서 좋다.

155쪽에 오타가 하나 있다. 사적 유물론은 유물사관인데, 한자로 '역사 사' 史자를 써야 한다.
거기다가 '사사로울 사' 私를 썼으니 개인적 유물론??? 이런 용어가 탄생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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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5점 이상 나왔다. 치료가 필요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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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1-1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3번에 4,5번만 찍어도 가뿐히 12점 인걸요. ㅋ
전 1번에 3번, 2번에 5번은 확실합니다^*^
웬만한 남자분 15점 나올듯. 신경 안쓰셔도 되겠어용.

글샘 2011-01-13 21:59   좋아요 0 | URL
2번에 5점이면... ㅎㅎㅎ
저는 혼자 있으면 괜찮은데, 회식자리 가면 폭주 모드로 가서... 몸이 못 이겨요. ㅠㅜ

비로그인 2011-01-13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밤에 혼자 소주 반병 정도씩 마시는 사람은 매일 마신다 해도 얼마 안 나오네요.
저야 물론 매일 마시는 건 아니지만
혼자 마시는 사람들은 다른 기준을 적용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ㅋㅋ^^

글샘 2011-01-13 21:59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야 겠죠. ^^
재미로 하자는 거든지, 한번 돌이켜 보자는 정도겠죠.

sslmo 2011-01-1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지표잖아요.
자가진단을 할 정도면, 아마 알콜리즘은 아닐거예요.

저에게 진단표를 만들라고 하면,
1.한 잔이 됐든 한 병이 됐든...양에 관계없이 매일 마십니까?
2.혼자도 마십니까?
이 두개면 땡이겠는데요.
요즘 키친 알콜리즘이라고 하여, 주부 우울증의 수단이 되기도 해요~^^

인터넷 중독도 자체 치료 들어가시던 분이, 이쯤이야~~~

글샘 2011-01-13 22:00   좋아요 0 | URL
뭐 알콜리즘까진 아니더라도... 술이 몸을 나쁘게 하는 정도로는 마시는 것 같아서...
그치만 올해도 술을 안 마실 순 없는 분위기입니다. ㅠㅜ

cyrus 2011-01-1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간신히 12점 나왔네요. 그런데 이 테스트는 남자들에게는 12점 넘게 나올 수 밖에 없는
질문들만 만들어져 있네요.^^;;

글샘 2011-01-13 22:0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질문에 문제가 있는 거야, 설문조사의 한계구요.
근데, 한국형 음주 습관이 나쁘긴 나쁜 모양입니다. 그러니 다들 높게 나오는 걸 대수롭잖게 생각하죠. ㅎㅎ
 
디킨슨 시선 지만지 고전선집 574
에밀리 디킨슨 지음, 윤명옥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잇다면,
내 삶은 헛된 것이 아니리.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달랠 수 있다면,
혹은, 하나의 괴로움을 위로할 수 있다면,
혹은, 쓰러져 가는 한 마리 울새를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리.(919)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다사롭기도 하고, 한편 우울질의 어두움이 비추이기도 하지만,
그의 다양한 시들을 읽는 일은 다소 쓸쓸하면서 높고 외로운 정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초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포기 클로버와 한 마리 꿀벌이 필요하다네.
한 포기 클로버와, 한 마리 꿀벌.
그리고 몽상이.
꿀벌이 없다면,
몽상만으로도 충분하다네.(1755) 

그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시다.
자연을 만나면서 외로움에 사무시는 정신. 

오늘 오랜만에 정전이 되었다.
인근 지하도에 불이 나면서 우리 마을에 정전 사태가 빚어진 것인데,
촛불을 켜두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현실에 다소 낯설기도 했지만,
왠지 촛불 앞에서 마음이 다스한 손길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에밀리의 시를 읽는 마음은 그런 기분이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높은지 결코 알지 못하네.
우리가 승천하도록 부르심을 받을 때까진,
그때, 우리가 섭리에 충실하다면,
우리의 위상은 하늘에 닿으리- 

그때, 우리가 암송하는 영웅전은
일상적인 것이 되리.
왕이 되는 게 두려워
우리 스스로 완척을 휘게 하지 않았다면- (1176)

삶은 경건한 것이어야 하리.
날마다의 삶에서 만나는 그 사람에게, 또는 그 순간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당신을 보여야 하리. 

고통스러운 표정이 나는 좋아,
그게 진실하다는 걸 알기에-
사람들이 임종 때의 경련을 흉내낼 수 없고,
임종의 고통을 모방할 수 없기에- 

한 번 멍해진 눈들을 - 그러면 그것은 죽음인데 -
거짓으로 흉내낼 수는 없으며,
누추한 고뇌가 꿰어놓은
이마 위의 구슬방울들을 거짓으로 흉내낼 수는 없기에.(241) 

콘도에 갇혀서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중, 동물의 세계를 보는데,
목을 물린 임팔라의 눈이 어두워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빛을 볼 때는 반짝이던 동물의 눈은, 삶의 빛을 놓는 순간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빛을 잃고 멍해진다. 그것이 죽음이다. 거기 죽음이 있다. 

나는 미를 위해서 죽었네 - 하지만
무덤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네.
그때 진리를 위해 죽은 자가
옆방에 눕혀졌네 - 

"왜 내가 죽었는지?" 그가 살며시 물었네.
"미를 위해서"라고, 내가 대답했네 -
"난 - 진리를 위해서요 - 그들은 하나요 -
그러니 우리는 형제라오." 그가 말했네 - 

이렇게, 밤에 만난, 형제의 정으로 -
우리는 방 이웃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네 -
어느새 이끼가 우리의 입술까지 차오르더니,
마침내 우리의 이름마저 - 덮어버렸다네 - (449)
(미와 진리는 서로 통하는 것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죽은 후에 오히려
그 생명력이 번성하게 된다는 의미)   

신비로움은 여기, 혹은 거기 놓여 있다.
그리고 진리는 신비로움 바로 곁에서 울고 있다. 

어떤 신비로움이 샘에 서렸는가!
물의 세계는 너무도 아득하다네 -
각기 다른 세계에서 왔어도
한 항아리에 담기니 이웃이 되고,

어느 누구도 물의 윤곽을 본 적이 없으니
심연의 얼굴을 보려 할 때마다 -
표면만 보이듯, 물도 보려 한다면
유리 같은 수면만 보일 뿐이겠지! 

풀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네.
내겐 경외인 것을 그가 어찌
그렇게 가까이 서서 그렇게 대담하게
볼 수 있는지 종종 나는 궁금하다네. 

왠지 저 둘은 친척일지도 모르지. 
사초가 바다 옆에 서서 -
발아래 바닥없는 심연을 딛고서도
조금도 겁을 내지 않듯이. 

그러나 자연은 인간에겐 늘 이방인.
자연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자들도
자연의 유령 집을 결코 지나본 적 없고,
자연이란 유령을 정의 내린 적도 없으니,

자연을 모르는 자도 불쌍하지만,
자연을 안다는 자가
자연을 가까이할수록 자연을 더 모르게 되는 것이
더욱 가련할 뿐이라네.(1400) 

인간은 그래서... 더욱 가련할 뿐. 

외로운 자리에서 인간을 가련하게 바라본,
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목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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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1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만지에서도 디킨슨의 시선집을 냈군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고전까지 번역하고
지금까지 나온 책만 해도 수백권 넘는데 인지도가 낮아서 안타까워요.
읽어보면 좋은 책들이 있을텐데 말이죠.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에서 소개된 디킨슨의 시를
읽고 시인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다른 작품들까지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글샘 2011-01-13 22:02   좋아요 0 | URL
디킨슨 시는 조용히 읽어보면 좋은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참, cyrus 님 덕택에 펭귄클래식에서 시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ㅎㅎ
안 그래도 사서 보려고 하던 책이었는데 말이죠. 감사~~

cyrus 2011-01-14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덕분이라뇨.^^ 카페 매니저님이 글샘님의 좋은 글을 알고 계서서
이번 리뷰어에 선정하신거 같아요.

글샘 2011-01-14 17:36   좋아요 0 | URL
매니저님이랑은 서평단으로 같이 활동하는 곳이 있긴하지만, 님 아니었음 그 카페엔 잘 가지 않았을 거거든요. ^^ 암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