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7
황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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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어린이의 자리'라고 되어있어 아동 문학에 대한 이야긴줄 알았는데,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청소년 문학'에 대한 것이었다.  

<평론>이란 것은 '훈수'와는 조금 다르다.
그냥 이렇다 저렇다 책임없이 말을 거드는 것이 훈수라면,
평론은 작가의 창작에 분명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조금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 평론가는 다부지게도 '아침햇살'을 닮은 평론가가 되겠다고 한다. 

밋밋하게 뭉뚱그려져 있는 것에 또렷한 미적 시점을 제공하는 아침의 그 밝은 빛처럼... 

그런데, 이 책에 쓰여진 글들은 애초에 하나의 구도로 묶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각종 잡지 같은 공간에 쓴 칼럼 같은 글들을 한 권에 묶어두었을 뿐이다. 

구성 중에 '피카레스크식 구성'이 있고 '옴니버스식 구성'이 있다.
이 책은 '옴니버스'는 될지 몰라도,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서의 평론집은 아니다.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서의 의도로 편집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옴니버스식 구성'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를 늘어놓아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아동 문학 내지 청소년 문학'이란 <공통 주제로 몇 편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들을 늘어 놓아 한 편의 소설이 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피카레스크식 구성'은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 방식>이다.
그러니 이 구성이 되려면, '포켓몬스터'나 '명탐정 코난'처럼 매번 같은 등장인물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응집력이 있기 위해서는 미리 구도를 잡았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면, 사계절 출판사의 작품을 한 꼭지, 푸른책들의 작품을 한 꼭지, 청소년 소설을 한 꼭지, 외국 청소년 소설을 한 꼭지, 이런 식으로 품을 조금 더 들였더라면 훨씬 좋은 책으로서 '훈수' 두는 사람의 볼품없음을 벗어날 뻔 했다. 

아동 문학에 대하여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비평을 가하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되나 모르겠지만,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의 책이 아쉽게도 산만하게 발표된 글들의 짜깁기일 뿐이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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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유래없는 폭설~은 '유례없는'으로 고침이 옳다.
유래~는 ~~에서 전해진 것이고, '유사한 사례'가 없다는 표현은 '유례'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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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시인의 시들은 조용하다.
그렇지만, 시를 읽고 나며 왠지 마음 속에 아련한 여운이 남는단다.
그래서 나는 장석남의 시를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그의 '번짐'부터 읽어 보자꾸나.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수묵정원 9 - 번짐> 

처음에 '목련꽃이 번져 사라지고'라는 구절이 있다.
목련꽃이 물감 번지듯 번지는 것이 아니지.
목련은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인데, 그 바뀜을 화자는 <번짐>이란 멋진 말로 치환했구나.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좀 우스운 말이지.
어제까지는 <봄>이고 오늘부터는 <여름>이다.
이런 사고를 바뀜이라고 한다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계절이 바뀌었구나... 이런 생각을 <번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구나. 

계절보다도 더 <번짐>이 적절한 표현이 바로 인간관계라 볼 수 있지.
내가 너에게 영향을 미치고, 네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명확한 관계라면 세상 참 편하겠지만,
사실 인간 관계는 그렇지않지.
옷깃이 스치듯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저런 인연을 맺고,
그 사람들과 감정이 얽혀 있는데, 그걸 '번짐'이라고 표현하니 참 아름답구나.

화자는 <번져야 살지>라고 말한다.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어야 생명이 진행되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 또 봄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야.
음악과 그림 역시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야.
음악을 들으면 마음 속에 희미하지만 아름다운 '풍경'하나 떠오를 수 있고,
그림을 봐도 멋진 음률이 마음 속에 자리할 수 있단다.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도,
여기까지는 삶이고, 이제부터는 죽음이다. 이렇게 경계할 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삶의 끝이 죽음이 아니라,
사람의 죽음 뒤에도, 그 사람의 삶은 환하게 밝혀져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이름은 출세한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아름답게 사람들에게 추억되는 이름일 수도 있고, 또 욕을 퍼먹는 이름일 수도 있겠지.

시간이 흐르는 것도 번짐과 같다.
어떨 때는 또렷하게 시간의 구분이 지어지지만,
어떨 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뒤바뀌어 있기도 하지. 

화자는 세상의 이치를 '번짐'이란 단어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란다.
주제는 <번짐을 통하여 살핀 세상의 이치>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
세상의 이치, 세상의 사랑이란 언제나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번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시를 한 편 보자.
복효근의 <토란 잎에 궁구는 물방울 같이는>이라는 시다.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복효근, 토란 잎에 궁구는 물방울 같이는> 
 

 하트 모양으로 생긴 토란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아름다운 언어들과
사랑을 거기 밀어 넣었다.
이처럼 세상의 이치를 어렵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아닐까 한다.
문학을 가르칠 필요 있을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떨 때는 철학적인 생각과, 역사를 한 편에 담고 있는 것이 문학일 수도 있단다. 

그의 <시론>을 읽어 보자.
장석남의 '시론'은 잔잔한 물과 같다.
낮고, 고요하면서, 샘물이면서 갈증 그자체인... 시인 

시에도 자원이란 게 있다면 그건  갈증
그건 아무도 모르게 영혼을 찢어놓는,
남은 모르는 갈증
갈증

시에도 자원이란 게 있다면 그건 물
맛있는 물

이끼 낀 돌처럼 조용히,
한번 더 낮게
조용히

시에도…… <시법(詩法) - 샘물이며 갈증인>

 

시를 쓰는 일은 그만큼 절실한 표현의 '갈증'이 있을 때이다.
그리고, 맛있는 물처럼 그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 <시>의 효용이기도 하다.
철학자의 웅변처럼, 역사가의 사변처럼 명확한 교훈을 드러내주지 않지만...
문학은
이끼 낀 돌처럼 조용히,
그리고 낮게
조용히
사람의 갈증을 채워주는 힘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일은
사람을 읽는 일이고, 세상을 읽는 일이다.
사람과 세상을 읽는 일을 <인+문>학이라고 부른다.
세상 살이를 <문화>라고 부르니 말이다. 

사람과 세상살이를 읽는 문학을 읽는 일도 그래서 때론 의미가 깊숙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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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귀족피부 만들기 - 한방 피부 전문가
김소형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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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에 따라 건강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며, 대해야 하는 방식도 다르고 공부 방식도 다르다.
칭찬법도 다르고 꾸중법도 다르며, 무엇보다 먹어야 하는 음식과 생활법도 다들 다르다. 

특히 피부는 몸속의 건강이 그대로 드러나는 기관으로 볼 수 있는데,
현대인의 삶은 불규칙한 일과, 스트레스, 음주 습관, 나쁜 공기, 냉난방의 과도함 등으로 피부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하기야, 농부들은 피부를 매일 자외선에 노출시켜 두고 있었으면서도 행복한 것에는 지장이 없었겠지만,
허여멀건한 형광불빛 아래 생활하는 사람들은 피부색이 어쩌면 그 사람의 인상을 좌우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냉체질과 열체질에 따른 피부 관리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피부 관리는 그저 씻고 닦는 데 그치지 않고, 먹는 음식이나, 피로를 푸는 것에까지 설명을 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 

말로만 하면 이해하기 힘들 혈에 대해서도 사진을 첨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피부 건강에 아주 안 좋다고 하는데, 직업상 그건 어렵겠고,
기름진 음식과 음주를 피해야 할 일은 마음에 새겨 둬야겠다.
우리처럼 남들과 얼굴을 마주대하는 직업은 일종의 서비스 직종인데, 미용 수준보다는 건강 차원에서 살필 필요가 있겠다. 

한방 서적들을 읽노라면, 기름진 고기류와 밀가루가 대체로 장에 좋지 않다고 나온다.
사는 일은 그날그날 주어지는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큰 원칙들을 가끔 읽는 일은 도움이 된다. 

이런 책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아마, 내가 평생 돈 주고 이런 책을 구입할 일은 없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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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 파이돈·크리톤·향연·프로타고라스
플라톤 지음, 최현 옮김 / 집문당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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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의 강의를 하는 일은 부담스럽다.
각종 전문가와 고학력자들이 웅크리고 강의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대로 책을 읽지 못하고 강의할 내용을 중심으로 몇 권 집중해서 읽다 보니 정작 빌려두고 미뤄뒀던 책이 이 책이다.  

플라톤의 저작이라고는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주연이다.
대부분이 희곡 형식으로, 다시 말하면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것을 받아쓴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마치 동양 고전의 '논어'가 공자 선생님이 '논하신 것'과 '말씀하신 것'을 받아쓴 것과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대학 시절에 한번 배웠던 기억이 난다.
세로 쓰기 책으로 읽었던 기억인데,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조목들에 대하여 조목조목 반박하는 논리적인 글이다.
지혜를 사랑하였을 뿐인 소크라테스에게 선동죄와 불경은 얼토당토 않은 죄목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적대자들에게는 얼토당토 않은 죄목을 붙이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인 모양이지만...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유일한 진리임을 역설하는 일흔 노인의 역설이 감명깊다.
세상에 뚜렷한 것이 많다고 내세우는 자들이야말로 색즉시공의 원리를 욕보이는 일인 법. 

'파이돈'은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영혼과 육체, 현세와 내세'의 문제에 대하여 논한 것을주로 다루고 있다.
독배를 마시면서 다리가 굳어가는 시절의 사형을 대하는 마음은 무척 슬펐다. 

'크리톤'은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자신이 탈출하는 것이 옳은가?'를 다룬 대화이다.
논리적인 언설이기만 하다면 별것 아니지만,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는데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지하는 자의 단단한 논리는 빈틈이 없다. 목숨을 걸고라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의 문제에 천착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칸트처럼 논리를 앞세우는 글쓰기에 비하자면 격이 달라 보인다. 4대 성인에 들어가는 이유가 그런 것이기도 할 것이다. 

'향연'은 그리스어 '심포지움'으로 '함께 마심'의 연회석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적었다.
상당히 대화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사랑'에 대하여 토론과 연설이 난무하고 있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에게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영혼의 양식이 될 학문을 마치 도소매상처럼 판매하는 소피스트들'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논리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다. 소크라테스 특유의 산파술로 인한 논리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긍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전개가 특징적이다. 

소크라테스의 언술에 대한 플라톤의 <대화록>은 모두 25편에 이르는데, 여기 다룬 다섯 편은 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과 인접한 것들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화편>은 비록 플라톤의 사상을 느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에 대한 그의 연모의 마음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예전에 읽었던 '메논'같은 것도 찾아 읽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고, 본격적으로 플라톤의 '국가,정체'도 읽을 기회가 닿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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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날이 유난히 차구나.
겨울이 추우면 그해 풍년이 든다니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생기는 법인 모양이다. 

오늘은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같이 읽어 보자.
시인은 신경림의 '농무'가 노래하던 1970년대, 노동자의 삶을 이 시에서 이야기하고 있단다.
독재시대의 산업화는 농촌의 몰락을 예고하였던 것이었고,
도시로 도시로 몰려나온 농민들은 도시 빈민의 하층민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곳에 남은 것이라고는,
삶의 팍팍함 뿐이었을 것이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고된 노동자의 삶의 모습을 한번 느껴보기 바란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처음 시작이 좀 슬프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물뿐이 아니란 이야기지.
그럼 물뿐 아니라 무엇이 더 흐를까?
시간도 흐르고, 세월도 흐르고, 인생도 흐른다.
바로 <우리>가 저 흐르는 물과 같다는 이야기지.
늙어버린 노동자, 노가다 인생의 삶이 휘리릭 흘러갔는데,
남은 것이라곤 한숨 뿐인 그런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일이 끝났는데, 강물은 어둠 속에서 깊이를 알 수 없게 놓여 흐르는데,
무기력한 노동자는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라고 했다.
참 무능력해 보이는 모습이잖니? 

노동자의 생애가 저물고 저물어, 흐르고 흘러 늙어버렸다.
하루가 저물고 저물어, 이제 샛강 바닥 썩은 물에도 달이 비친다. 
샛강은 강이 섬을 지날 때 좁아진 '사이'에 흐르는 물을 뜻한다.
얕은 물이겠지.
썩은 물에도 달이 비친다는 것은,
한편 희망적인 빛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물이 썩어버렸는데 달이 비친들 무엇하냐는 자조의 씁쓸함도 묻어난다. 

슬픈 노동자는 저와 같아서,
바로 썩은 강물과 같고,
거기 비친 슬픈 달빛과 같이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다시 가난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길은 어두운 길이다. 부정적 현실이 어두움으로 표현되었구나. 

소외받은 도시 빈민의 삶을 담담한 어조로 풀고 있는 시다.
강물에 고뇌를 퍼다 버리려고 했으니 무언가 고뇌를 해소하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썩은 강에 비치는 달빛처럼 무기력한 현실은
노동자의 비애를 해소하지 못함을 반영하기도 한다.
무기력하게 '돌아갈 뿐'인 소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힘겨운 인생들...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이다.

이 시가 담고 있는 주된 정서는 무력감(우울감, 실의) 같은 것이다.
주제는 <도시 빈민의 삶의 비애>를 표현했다고 보면 되겠지.

다음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라는 시를 한번 보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골목길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 있다면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이 시는 '만남'을 간절히 희망하는 시다.
그 간절한 바람의 주체는 '한 그리움'이라고 했고, 바람의 대상은 '다른 그리움'이라고 했다.
간절한 바람의 내용은 <만남>이니
분단되어있는 <남북의 만남>으로 읽어도 좋겠고,
서로 단절되어 있는 <계급적 갈등의 해소>로 읽어도 좋겠다.
아니면 <세대간 갈등의 해소>로 읽어도 문제가 없다.
암튼, 지금은 헤어진 대상들의 '만남'을 희구하는 시라보면 되겠다. 

날과 씨는 베틀에서 나온 용어란다.
베틀에는 '날실'이라는 줄을 세로로 죽 묶어 두고는
그 날실에 엇갈리게 '씨실'을 건 것을 기본으로 하여 시작한다.
베틀을 움직이면 '씨실'이 압축되고 그 사이로 실꾸리인 <북>을 통과시켜 다시 '씨실'을 압축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베올에 북 지나듯' 하는 구절은 (규원가)에서 세월이 훌쩍 빨리 흘렀음을 형용한 것이었지. 
씨줄을 한자로 '위'라고 하고, 날줄을 한자고 '경'이라고 한다.
지도의 '위도'와 '경도', '위선'과 '경선'이 거기서 나온 용어지.

날과 씨가 만나 옷감이 되듯,
그렇게 너와 내가 만나기를 바라는 노래다.
우리의 만남이 '비단'처럼 가치있는 것이 된다면 나는 기다릴 것이다.
고통스러울지라도... 

서로 마음을 나눈다면 추위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는 화자.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 있다면> 이렇게 가정법으로 마친다.
그것은 곧,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의 간절한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이 시는 별로 어렵지 않지?
<아름다운 사랑의 승화>를 위하여 지금 <인고>의 시간을 보내겠다는 '의지'도 드러나 있어.
<추운 겨울>이니깐, 고통의 계절을 지나고 있음도 알 수 있고 말이다.

이 시의 주제는 '고통의 인내와 재회를 위한 기다림' 정도로 보면 되겠다.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사람'이든 시련을 견뎌야 하는 것인 모양이구나.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정희성은 이렇게 험한 세상을 조금 다사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시선이 돋보이는 시인이다.
부정적 현실에 대한 시를 썼다고 해서 '참여시인'으로 보기도 한단다. 

날이 요즘 제법 차다. 감기 조심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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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1-01-2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외우고 읽고 하던 시들을 오늘 다시 보니,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샘 2011-01-26 16:46   좋아요 0 | URL
예전에 문학 소년, 소녀 아니던 시절이 있었나요. ㅎㅎ
옛날 것을 우연히 만나면 좋죠.
저야 뭐, 밥줄이라 맨날 만나는 것들이지만 말이죠.
방학 잘 보내고 계시죠?

순오기 2011-01-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시인이 반갑네요~~
추운 날에도 열강중이신 글샘님도 평안하신가요?^^

글샘 2011-02-01 23:10   좋아요 0 | URL
저야 맨날 시를 가르치니깐 만나지만 일반인들이야 시인들 만나기 쉽지 않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님도 설 잘 쇠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