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통신 2011-1호(2011. 3. 3)


1학년 6반 학부모님께

꽃샘추위가 한창입니다. 교실에 오전에는 히터를 틀어 주기도 하지만, 학생들도 따뜻하게 입혀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1학년 6반 담임을 맡게 된 000입니다. 올해로 교사 생활이 23년에 접어드는데, 제 자식도 고3이 되고 보니 이제 아이들이 귀엽게만 보입니다. 담당 과목은 국어이지만, 학생들에게는 가장 쉬운 영어, 매일 해야 하는 수학의 자습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국어는 다양한 독서와 체험이 종합적으로 쌓이는 과목이라 다소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정통신을 보내는 것은, 아들들이 고등학교라는 낯설고 힘든 환경에 입학한 것을 한편 뿌듯하게 생각하지만, 한편 우리 아이가 잘 할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이 험하다는데 우리 순둥이가 왕따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실까 싶어 몇 자 적어 봅니다.

학생들과 교육에 관하여 드릴 말씀이 많지만, 제가 틈나는 대로 통신을 보내 드리겠사오니,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 보시고, 연락 주실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010-9000-0000)

혹시 상담이 필요하시면 미리 연락주시고 언제든 학교를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예전처럼 학교 문턱이 높다고 걱정마시고, 자녀의 발전을 위하여 마음 편하게 찾아오시거나 전화주시면 됩니다. 촌지나 과도한 선물은 학생의 발전에 저해가 되오니 사절합니다. 마음이 있으시면 간단한 음료수나 과일 정도는 선생님들과 나눠먹어도 좋겠지요.

고등학교 공부는 중학교와 다릅니다.
수업만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 중요합니다.
부디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하는 계획을 세우고, 체크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 될 수 있도록 학교와 가정이 협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내일부터는 아침 7시 55분까지 교실에 입실하도록 지도하였습니다. 지각하지 않도록 꼭 챙겨 주시고, 가능하면 아침을 간단하게라도 먹고 오도록 해 주십시오. 점심 식사는 12시 50분 경이 되어야 하게 됩니다.

학생이 교재나 비싼 물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름을 잘 쓰고 잘 챙기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요일 하루는 연습삼아 자습을 시켜 9시에 하교할 것입니다. 미리 공부할 것을 챙겨와서 복습하고 예습하도록 지도하였습니다. 스스로 하는 공부가 중요함을 몸으로 깨달아야 학생도 발전할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정상 수업과 9시까지 자습을 매일 실시합니다.

학생들이 피곤하지만 잘 버틸 수 있도록 정신적, 육체적 지원이 아주 필요합니다. 쉬는 시간에 매점에서 보충할 수 있도록 용돈도 필요하고, 학기 초엔 교재를 구입하는 경우도 많으니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1학년 때부터 영어, 수학에 흥미를 붙여 따라 붙어야 3학년 때 신나서 입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다음 주 3월 10일에 있는 시험부터 시작하여 언어, 수리, 외국어의 성적이 잘 유지되고 향상될 수 있도록, 모의고사 성적 관리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1학년 때부터 정기고사 및 모의고사 성적표, 각종 행사 참가 경험 등을 모을 수 있도록 지도하여 주시고, 학교에서 지도하는 <나래로 노트> 작성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나래로 노트는 학생이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고, 관심있는 특정 교과목에 대한 학습과 독서 지도, 성적 관리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노트입니다. 

학생들이 부산00고등학교에 입학한 이상, 학생들의 모교가 될 우리 학교가 가장 좋은 학교이고, 우리 학교에 재직하시는 선생님들이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믿어주시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인근의 사립학교들을 선호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만, 공립학교의 장점도 많습니다. 학생들과 소통하는 학교 생활도 가능하고, 학생만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진학 성적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진학 지도에 있어서도 우리 학교는 인근 사립고등학교 못지않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 진학은 어느 고등학교를 다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주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이 학교와 교사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시는 만큼 학생들도 학교를 불신하게 됩니다. 그 불신으로 인한 피해를 입는 것은 학생이므로 상호 신뢰가 그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체벌이 없어지면서 학교가 혼란스럽다고 떠들지만, 그런 것은 특정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위하여 떠드는 소리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학교에는 천여 명의 학생들과 70여 명의 교사들이 함께 살고 있으므로 사소한 의견 차이는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의문나시는 것은 언제든 연락주시면 소통이 가능하겠습니다. 혹시 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겠습니다. 제 자식이라 생각하고 야단칠 것이니 혹시 의견이 다르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입니다. 학생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어 하지나 않는지 잘 살펴 주시고, 과도하게 성적이 향상되기를 기대하시거나 원대한 꿈만을 강제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청소년기엔 학생들도 예민한 시기이니 뾰족한 말로 상처를 입은 상태로 등교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 주시고, 좋은 말만 들려주시려고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학생들이 게으르고 느릿느릿한 특성이 있습니다만,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학생들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란 것을 저도 남학생들을 많이 기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믿고 보충수업, 자율학습, 방학 중 생활까지 맡겨 주시면, 반드시 학생들이 업그레이드 되어 진학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지도하겠습니다.

학교와 가정이 힘을 합하여 학생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이 성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바라며, 처음 드리는 가정통신에서 잔소리와 우려의 말이 많았어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담임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아래 회신란에 적어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특별한 이야기가 없으시면 ‘잘 읽었습니다.’라고 적어 주시면 됩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1년 3월 3일 아이들 입학식 날, 1학년 6반 담임 000 드립니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11-03-0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끝!! 요렇게요?

드디어 고3 담임에서 해방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편지네요. 좋은 담임 만난 부모들이 흐뭇하겠습니다.
빵이나 떡은 어떨까요? 아 빵 먹고 싶어라. 설탕 묻어있는 팥 도너츠요. ㅎㅎ

글샘 2011-03-03 23:01   좋아요 0 | URL
착한 학부모네요. ^^시킨대로 잘 하고.
같은 학교에 아들이 고3이어서, ㅋㅋ 다행히 빠질 수 있었답니다.
아니었음, ㅠㅜ 고대로 고3 부장을 해야했을 거예요.
설탕 묻어있는 팥 도너츠... 담에 만나면 사 드릴게요. ㅎㅎ

BRINY 2011-03-0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1학년 6반 담임이랍니다. 글샘님께 고1 담임 노하우를 많이 많이 배워가야겠습니다.

글샘 2011-03-03 23:0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같은 반 담임샘 ^^
오늘 첫날이라 야자가 없었는데 피곤해서 이적지 잤어요. ㅠㅜ
뭐, 노하우랄 건 없고, 하도 많이 해서 안 빼먹는 거죠.
담임의 노하우란, 아침에 일찍 가서 애들 챙기고, 지나갈 때마다 반장이라도 불러서 동태파악하고, ㅋ
저녁때 담임이 없어도 자습이 잘 되도록 애들한테 겁도 주고 부탁도 하고 하는 거죠.
남교사라서 언제 터질지 모른다... 이런 걱정에 애들이 알아서 기는 것도 있어요. ^^

저는 올해 '자율형 공립고' 담당 부장이랍니다. 담임은 덤이고요. ㅋㅋ
이름은 <학교발전기획부장>이라고 그럴싸하게 지었는데(자율형 부장은 쫌 아니잖아요. ㅎㅎ)
되지도 않을 창의적 체험활동이니, 독서활동이니 계획서짜려면 오늘 날밤 까야할 거 같군여. ㅠㅜ

sslmo 2011-03-04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줄 한줄 꼼꼼히 챙겨서 읽었어요.
이거 잘 갈무리 해뒀다가 내년 저희 아들 고1되면 써먹어야겠어요.

청소년기엔 학생들도 예민한 시기이니 뾰족한 말로 상처입은 상태로 등교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라는 구절에는 형광펜으로 칠하여 별표 다섯개 했어요.

진짜 다정하고 꼼꼼한 선생님이시군요~^^

글샘 2011-03-04 09:30   좋아요 0 | URL
말만 앞세우고 실제론 좀 게으르죠. ^^
다정하기보담은 몽둥이로 잘 패구요.
그래도 애들이 무서워하지 않는 거 보면, 폭력교사까진 아닌 거 같고...

무스탕 2011-03-04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저희 큰 아들이 고 1이 되었고 6반이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도 귀하시다는 남자선생님이 되셨구요.
그래선지 어쩐지 저희 담임선생님의 편지를 받아보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아침을 거르고 등교 시킨적이 없는게 유일한 위안거리입니다.
앞으로도 꼭 지키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글샘 2011-03-04 09:31   좋아요 0 | URL
ㅎㅎ6반이 많군요.
남자 담임 참 귀해요.
오죽하면 저도 부장하면서 담임을 겸하겠습니까...
우리도 10반에 3명 남자예요. ㅠㅜ
고딩이 되었으니 긴장되시겠지만, 남자애 기르시면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

BRINY 2011-03-04 13:27   좋아요 0 | URL
사립이라, 저희는 10반에 3명이 여자담임이네요.

비로그인 2011-03-0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 돌아가기 싫은 그 시절에 이런 편지를 써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때 계셨더라도 제가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요. ㅎ

종종 들리지만 오늘은 흔적을 좀 남겨보고 싶게 만드네요. 읽다보니 옛 기억도 떠오르고 말이지요. ^^

글샘 2011-03-04 17:47   좋아요 0 | URL
요즘엔 여선생님이 많아서 이런 아기자기한 활동이 많이 늘었습니다.
저도 따라하고 있는 거구요. ㅎㅎ
옛 추억들은 저도 좋지 않습니다.
과도하게 폭력적인거 저도 싫어하구요.
그렇지만 질서 없는 것도 저는 싫더라구요.
그래서 질서있는 학급은 만들려고 노력하는 일환입니다. ^^

울보 2011-03-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딸은 이제 초3학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12시50분이라더군요ㅡ, 그래서 아침은 정말 필사적으로 챙겨 먹이고 있습니다,예전에 늦잠을 자면 그냥 보냈는데 이제는 절대로 그런일은 없을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나하나 고등학교 학부모는 아니지만 많이 새겨들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글샘 2011-03-04 17:48   좋아요 0 | URL
ㅎㅎ 애들은 에너지를 많이 쓰거든요.
고딩들은 매점에서 뭐 사먹고 해서 좀 낫습니다.
한국이란 특수한 상황은 애기든 엄마든 교사든 다 힘들게 하지만,
우린 어른이니까요. ^^

그랑블뤼 2011-03-0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장승진을 축하드립니다... 한잔 안사면 승진이 취소될수도 있사오니, 시간나실때 한잔 베푸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침은 학생들만 챙기시지 마시고 우리 부장님도 꼭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제 아침에 암것도 안먹으면 안아픈데가 없어요... 1달뒤에 승진 축하파티 기대하겠습니다...^^*

글샘 2011-03-04 17:49   좋아요 0 | URL
요즘 부장은 승진이 아니라 피박이다.
학교마다 부장 할 사람이 없어서 새로 오는 사람한테 뒤집어 씌우는 분위기야.
난 그나마 민우가 3학년인 덕에... 3학년 부장은 안해서 다행인 거라는... ㅠㅜ

책가방 2011-03-0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 했답니다. 그리고 내년엔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구요..^^
엄마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중학교는 초등학교와는 달리 담임의 역할이 크지 않으니 누가 되던 크게 신경 안 쓴다고들 하더군요. 큰아이를 먼저 보내본 제 생각은 다른데 말이죠.
글샘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면 학부모들도 한해가 든든할 것 같아욤~~^^
거꾸로 저도 아이 담임샘께 편지를 한번 써볼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서른 두명의 아이들 모두 골고루 사랑해 달라는 그런 편지요...^^

아이 초등학교 저학년때... 음료수조차도 예민하게 반응하시던 선생님을 겪었던지라 그 후론 매번 빈손으로 선생님 뵈러 갔었는데... 실례였을까요??

글샘 2011-03-04 17:51   좋아요 0 | URL
크게 신경안 쓴다는 게 촌지 들고 안 온단 이야기겠지요. ^^
그러다보면 소통이 안 되는 단점도 있거든요. 초등땐 청소다 배식당번이다 뻔질나게 만나면서 애들 생활에 관심도 갖지만 말입니다.
사내아이들은 집에 가서 말도 안 해요. ㅋㅋ 심할 땐 미납급이 100만원이 넘어도 부모가 모르는 일도 있거든요. ㅎㅎ
저는 음료수는 좋아합니다. ㅎㅎ 만원 얻어먹고 고발당할 일은 없잖아요.

소나무집 2011-03-0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 읽으면서 그냥 무지하게 감동~~~

글샘 2011-03-04 17:51   좋아요 0 | URL
감동을 쉽게 받으시는 편? ㅎㅎㅎ
 
사랑 바이러스
김자환 지음, 김상섭 그림 / 문공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백혈병에 걸려 생명이 길게 남지 않은 젊은 여자가 마지막 혼을 불사르겠다며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한다. 

이름도 예쁜 금나래 선생님은
별나기로 유명한 초딩 6학년 3반으로 들어간다. 

주머니에 재크나이프를 들고 다니는 진우를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선생님의 마음씨는 참 다사롭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 마음으로 교실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꿈과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물론 진우가 까불이 경훈이를 때려서 다치게 하기도 하고,
장애자 동생을 놀려준 3학년을 패줘서 선생님께 혼나기도 한다.
그런 진우를 대신하여 무서운 조광호 선생님을 마구 때리며 욕하는 대목은 순진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사랑이 없이 오로지 질서만을 위하여 학생들에게 겁을 주는 일은 학생들이 안다.
그것이 매든 체벌이든 거기 '사랑'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아이들은 잘 안다.
아무리 심해도 사랑이 담겼음을 아는 체벌은 약이 될 수도 있다.
한국처럼 특수한 국가에서 특수한 학교를 두고 그저 '체벌 금지'란 명사만 달랑 던져두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 명사 뒤에는 정말 많은 '동사'들이 움직여 줘야 하는 것인데...
아직도 진보는 '명사'에서 머물고 있다. 
물론 한 발자국 앞서야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에게 해가 될 건지를 잘 따져야 한다.
진보의 이름을 대고 무지막지하게 '명사'부터 들이밀고 보는 사람들은 독재자와 다를 게 없다.
상처를 입을 사람에겐 그렇다는 것이다. 

교사들을 제발 수단으로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밥벌려고 수업을 하는 사람들은 적다.
밥벌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교사들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다 내 새끼처럼 보이고, 아이들의 처지가 몹시 안쓰럽고, 사회가 원망스러운 매일이다. 

금나래 선생님처럼
열정적으로 학생을 사랑하며 지도할 수 있는 기간은,
발령받고 10년 정도다.
10년이 지나고 나면 숙련된 교사의 테크닉으로 학생의 학습과 생활을 지도한다.
20년이 지나면 아이들이 제 자식처럼 보인다.
신규 교사를 많이 뽑아 배치하는 일이 학교를 살리는 길이다.
근데... 돈 없다고 학교 문을 닫고 있으니 한숨만 날 뿐이다.
우리 학교 교사들의 평균 연령은 40대 후반이다.
열정...은 글쎄다. 신규 교사에 임용되려면, 열정 따위는 애초에 버리고 들어와야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학교에서 <사랑> 바이러스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날 밤 늦게까지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선지, 오늘 입학식날, 우리 반 신입생 서른 명이 왜 그리 귀여웠는지 모른다.
별로 열정은 없지만(23년이나 다닌 직장에서 열정은 휴=3=3)
슬렁슬렁해도 하나도 빼먹지 않는 노하우로 아이들은 금세 순한 양이 된다.
아이들 고등학교에 입학시켜 두고는 불안해할지도 모를 부모님께 편지를 가득 썼다.
다 사랑 바이러스 덕이다. 

급훈을 '사랑 바이러스'로 할까 생각중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1-03-0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사랑 바이러스. 저도 가훈을 사랑 바이러스로 할까봐요.
경력 20년 넘으니 열정은 사라지고 없는데 왜 아직도 열정이 있다고 믿는건지 원.
전 진짜 일 욕심 없는데 말입니다. 에이~~~

글샘 2011-03-03 23:04   좋아요 0 | URL
괜찮을까요? 사랑 바이러스...
저도 열정은 별로 없는데, 일복은 독판 차지하고 있답니다. ^^
운명이려니 하고 있어요.
이제 일 시작해야 해요. ㅠㅜ
 

개학이다.
오랜만에 열 시까지 자습을 하고 오려니 좀 힘들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이제 적응해야 하는 생활이니, 그러려니 하기 바란다.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뭐, 모두 좋을 수야 있겠냐마는,
거기도 적응 잘 하기 바란다. 

오늘은 좀 쉬운 시를 몇 편 보자.
맨날 사회에 불평 많거나 문제점 제기하는 시들을 들이밀면 마음이 무겁겠지.
또는 인생에 쌓인 고뇌를 더듬노라면 아빠의 수업도 쉽지만은 않단다. 

<왜 사냐건, 웃지요>로 유명한 시를 우선 보자.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오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화자 김상용(金尙鎔,1902~1930)은 스물 아홉에 죽은 아까운 시인이다.
화자의 시는 자신과 자연의 동일성을 보여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나와 자연의 어떠한 대립도 있을 수 없고,
나와 자연의 화해,자연의 품에 안긴 삶,
어떠한 인위적인 삶도 극복하면서 남으로 창을 내어 푸르고 고요한 안식처인
자연의 품 안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조명하고 달관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동경한다.   

화자가 살아간 시대는 이 땅의 민중에게 가장 척박한 역사를 던져주었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그는 햇볕 잘 드는 남으로 창을 내고,
웃으며 산단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사는 건 무의미 하잖아.
일제 강점기인데, 독립운동이라도 해야 하지않겠어? 넌 도대체 뭘 위해 사니?
이러고 물으면, 그저 웃겠대. 

아빠는 저 웃음이 가슴아프게 이해가 간단다.
아빠가 대학다니던 시절엔 누구나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와 집회에 참여하곤 했어.
아빠도 광주에서 학살을 일으킨 정권에 저항하는 집회엔 매번 참가했지.
그렇지만, 지식인의 길을 버리고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사회 변혁을 꿈꾸지 않겠니? 이런 풍토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아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것 역시 내 길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거든. 

넌, 왜 그따위로 사니? 이렇게 묻는 사람은 암튼간에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잖아.
화내거나 짜증낸다고 이해해 주지도 않을 거잖아.
그저 피식~ 웃을 수밖에 없겠지. 딴 데 쳐다보고...

화자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나 부역자가 아니란다.
그저 자신의 나날을 평온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이야.
욕심도 없다. 구름이 꼬여도 갈 리가 없다.
그저 자연의 노래를 공짜로 들으며 살아갈 따름이래.
그런 사람더러,
너 일제 강점긴데 이따위로 살아서 되겠냐, 도대체 넌 뭔 생각으로 사냐?
이렇게 묻는다면, 글쎄. 아빠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구나. 

세상은 반대와 투쟁으로 이뤄져 있어.
가진 자들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못 가진 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힘을 합치고 말이지.
그렇지만, 그 반대와 투쟁의 길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니란다.
맨 앞에서 주먹쥐고 목숨걸고 나서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뒤에서 눈치보며 소리나 질러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어찌 보면 싸우지 않는 듯이, 세상 일에 무관한 듯이
한눈 감고 세상을 관망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란다.
한 편에서 다른 편을 무조건 욕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 

다음의 <사슴>도 마찬가지야.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 사슴>

화자는 사슴을 관찰하고 있어.
사슴은 슬프고 점잖게 말이 없고, 좀 고상하지.
뜻이 높고 우아해 보이는 사람을 고상하다, 고고하다 이렇게 말하잖아. 

물 속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낸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은?
나르시소소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인물.
이 시의 주제는 그런 <자기애> 또는 <나르시시즘>과 관련 깊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프단'것은 이상이 높단 이야기 일거야.
'슬픈 짐승'은 감정 이입으로 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독한 화자를 반영하고 있단다.
1연에선 사슴의 외면이, 2연에선 사슴의 내면이 표현되고 있어.
주제라면 <이상향에 대한 동경, 이상적 생명에의 향수> 같은 것이 되겠지.

이 시는 노천명을 문단에서 중요한 시인으로 확정시킨 유명한 시란다.
사슴과 고독의 시인, 노천명.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사슴처럼 고고하게 살다간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숙명적으로 결정지어진 여자로서의 슬픈 운명을 수용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상적 향수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사슴'은 고고함과 귀족성을 상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시에선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단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시인의 고독한 내면을 '사슴'을 통해 형상화 한 시가 되겠지. 

다음엔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는 관조의 시 한 편 보고 마치자꾸나.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 시력을 회복한다. <박성룡, 과목>

과목은 과일 나무고, 과물은 과일이다.
나는 '과일이 열린 것'을 보면 깜놀한다.(경악) 

뿌리는 비옥하지 않은 땅(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시련(비바람) 속에 놓여있는 과목과 과물. 

모든 것이 소멸하는 가을에,
과일은 홀로
황홀한 빛깔을 띠고, 황홀한 무게의 은총을 보여주는구나. 
4연에서 수미상관으로 일단락이 된다.  

마지막 연.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무기력하게 보내버린 부정적인 현실을 돌아보지만,
화자는 이 과목의 과물 앞에서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있단다. 

이렇게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경탄을 드러낸 시들은 참 많단다.
그렇지만 이 과목에서 보여주는 직접적인 경이와 경탄의 소리는 독자에게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얻게 되지. 

과목, 과물, 경악, 박질 같은 시어들은 보드라운 시어들이 아니지.
투박하고 생경한 한자어의 사용을 통해서 화자는 강인한 자신을 드러내고 있어.

'사태', '경악' 같은 용어도 독자에게 신선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다.
시에서 늘상 쓰는 용어들이 아닌 말들이 오히려 신선할 수도 있지. 

오늘 다룬 시들은,
시대의 핵심에서 조금은 어긋난 듯한 시들이다.
그렇지만,
삶의 핵심은 무엇인지,
<남으로 낸 창>을 통해서 타협하지 않으면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사슴>을 관찰함으로써 자기애를 확인하는 삶을,
<과물>의 익어감을 보면서, 힘빠지는 시의 힘을 회복하는 시인의 삶을 읽을 수 있었단다. 

삶은 그런 것 같아.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누구나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똑같은 월급을 들고도 누구는 불평하고 누구는 감사할 줄 아는 것.
똑같은 성적표를 보고도 우는 아이도 있고 웃는 아이도 있는 것.
그래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살 줄 아는 지혜를 얻는 것. 그런 것 말이야. 

열 시까지 자습이 힘들더라도 힘내서 하자.
누구나 다르지만, 또 남들 다 하는 걸 못하는 것처럼 힘빠지는 일도 없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2)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8
황수대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책들을 읽노라면,
고 이오덕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의 책들을 읽던 내 뜨거운 젊은 날들이 생각나고,
자라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문학이란 것들도 생각난다. 

이오덕 선생님의 비평은
비판적이면서도 날카롭지 않았고,
체계적이면서도 한편한편의 각편의 시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으셨다. 

황수대의 평론을 읽노라면,
오랫동안 '어린이 문학'을 노심초사 연구하신 이오덕 선생님을 좀 배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다.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은 자칫 시인을 주눅들게 할 수 있고,
두루뭉술한 칭찬은 시인의 자존심을 치켜세우긴커녕 평론의 본령을 망각하는 일일 수도 있다. 

황수대의 평론을 평할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의 글들을 즐겨 읽던 내 눈에는 아직 그의 글이 꼭지가 덜 떨어진 과실처럼 보였다.
애정이 지속되다 보면, 선생님의 글처럼 농익어 떨어지는 경지를 바라볼 수도 있으리라. 

78쪽과 90쪽의 서덕출의 글에 대한 비평에서 '7.5조의 정형시'란 말을 두 번이나 썼다.
'7.5조의 외형률'은 말이 되지만, 그런 걸 두고 <정형시>라고 할 순 없다.
<정형시>란 '한시'나 '하이쿠' 또는 영어의 '소네트' 같은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시평을 한다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못마땅하다. 

할머니가 옛날 사탕을 하나 주면서, 사탕 하나에 든 달고 고소한 맛이 얼마나 긴 줄
아느냐고 물었다 맛의 길이를 어떻게 재느냐고 되물었더니, 걸으면서 재 보면 운동장
열 바퀴도 넘는다고 했다 뛰면서 재면 스무 바퀴도 넘겠다고 했더니, 자동차를 타고
재면 서울에서 천안도 갈거라 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도 가겠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탕 하나 물고 다녀올 수 있는 거리
황해도 옹진이 고향이신 할머니 (곽해룡, 맛의 거리) 

이런 시들은 재미도 있고 아이들을 생각하게도 하는 시다.
문제제기로 좋은 시들이다.  

좋은 시란, 좋은 동시란 어떤 것인가를,
지나치게 <환경 생태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어차피 인간은 환경 속에서 파괴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심정을 잘 드러내 좋은 시도 있고,
아이들 모습을 잘 드러내 좋은 시도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얘기를 들려줘 좋은 시도 있다. 

환경 문제를 제기한다고 좋은 시도 아니다. 

문제는, 그 시가 얼마나 시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시인가... 이런 관점을 평론가가 정립해 나갈 필요성을 정면으로 돌파하였는가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남의 이야기를 들고 긁적이는 일은 '가죽신 신고 가려운 발 긁는' 격화소양의 우를 범할 수 있다.
평론가라면 자신의 관점을 세우고,
그 관점에서 시인들의 시를 조물거려 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오로지 생태주의를 논하는 것은, 남성보다 더 뻣뻣한 페미니스트를 보는 일처럼 재미없다.
친환경적인 글쓰기는, 독자들에게 말랑말랑하게 다가서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이 오려는지
날씨가 몹시 변덕스럽다.
꽃이 피는 일을 시샘하여 추위가 온다는 의인법을 쓴
꽃샘추위는 말은 예쁘지만,
고 성깔은 꼬마 마녀가 부리는 성질머리같다. 

날이 며칠 추울 모양이니 따뜻하게 입고 다니렴.
오늘은 얼마 전 기형도의 '안개'와 함께 다뤘던  '그날'의 시인 이성복 작품을 몇 편 살펴 보자.
우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대표작, '남해금산'을 읽어 보자.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남해금산>

남해대교로 유명한 남해섬에 가면 비단 금 錦자를 쓰는 멋진 산이 있다.
바로 남해 금산이다. 
남해 금산은 바위가 멋지게 튀어나와 많은 전설을 담고 있는데,
이성계가 임금이 되도록 해달라고 빌었다는 전설도 있고,
특히 금산의 상사바위에 얽힌 전설은 유명하다.

금산의 상사바위에 얽힌 전설에서는 호남지방과 생활권을 같이 했던 남해의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여수 돌산에 사는 한 총각이 남해에 고기잡으러 왔다가
우연히 만난 과수댁을 사모한 끝에 상사병에 걸려 죽을 처지에 있었다
이를 안 과수댁은 상사병을 고칠수 있다는 이 바위에서
총각과 만나 사랑을 나눈 뒤 백년해로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상사바위>는 잊지못해 상사병에 걸린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바위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전설을 떠올리면서 이성복의 남해금산을 읽어 보자. 

이 시는 전설 한 토막을 듣는 듯 하다.
한 여자가 바위 속에 있었고, 그 여자를 사랑한 나도 돌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랑은 순탄치 않아 그 여자 울면서 떠나갔다.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 주었고,
나 혼자 남은 남해 금산,
나는 바닷물 속에 잠긴 섬이 되었다는 이야기... 

남해섬 앞바다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다도해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남해금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노라면 이런저런 전설이 떠오르기도 하겠지. 

화자는 돌 속에 묻힌 한 여자를 사랑했대.
돌 속에 묻힌 여자란 건, 그 여자가 쉽사리 사랑해선 안될 존재라고 상상해 보자.
그러다 그 여자가 떠나가고, 나 혼자 남아 오른 남해 금산.
거기서는 <상사 바위>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이들을 이어준다는 전설을 품고 서있어.
화자는 떠나간 그 여자를 해와 달이 잘 끌어 주었기를 빌었나봐.
이별했다고, "에잇, 고얀 년, 고만 가다가 확 자빠져서 다리라도 부러져라~"
이런 심술을 부린 건 아니고,
"해님, 달님, 그 여자 앞길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빌어 주세요~" 이런 순정한 마음이겠지.
혼자 남은 화자는 하늘 가까운 남해 금산에 올라 푸른 바닷물을 바라보며
혼자서 잠잠히 침묵에 잠겨 시를 쓰겠지. 

이성복은 개인적 삶을 통해서 얻은 고통스런 진단을
보편적인 삶의 양상으로 확대하면서,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시인이란 평을 받고 있어.
먼저 이야기한 <그날>이 그런 시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날)

이런 구절은 시대의 아픔을 드러낸 구절이었단다. 
다음엔 어머니의 사랑을 드러낸 시를 한 편 보자.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발 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또 비가 오면>

이 시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어.
마치 <아버지의 사진>이 중의성을 띠듯.
이 사진은 아버지를 찍은 사진, 아버지가 찍으신 사진, 아버지가 사들인 사진, 아버지가 빌린 사진,
아버지가 소유한 사진, 아버지가 소지한 사진, 아버지가 훔쳐온 사진, 아버지가 주웠다 버린 사진... 등
무한하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사랑하는 어머니>도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 또는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등으로 볼 수 있지. 

그 어머니가 비에 젖고, 물에 잠기신대.
이 얘기는 <청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니?
평소엔 늘 반대로만 하던 청개구리 자식이 죽은 어미가 "강가에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해서
그대로 말을 듣곤, 비가 오면 어미 무덤이 떠내려갈까 슬피 운다던 이야기. 

이 시에서 어머니는 무덤 속에 계신 것 같아.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슬픔이 되어 애상적 분위기를 심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유사한 구조가 반복되어 운율을 형성하고 있지.

다음은 이성복의 <꽃 피는 시절>을 읽어 보자.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꽃피는 시절>

아빤 이 시를 첨 읽고, 이별하는 상황을 떠올렸어.

1연 : 당신은 멀리 있어요.
2연 : 자꾸 당신이 고개를 들어요.
3연 : 내 안의 당신은 나를 벗어나려 하지만
4연 : 내게서 당신이 떠나면 내 몸 다 찢어져요.
5연 : 온몸이 당신과의 이별을 아파해요.
6연 : 어떻게 당신을 보낼까요.
7연 : 당신을 어떻게 보낼까요...

뭐, 하는 이야기는 이런 것 같구나.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5연)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7연)

히야~ 민우는 사랑하다 이별하는 심정이 어떤 건지 겪어 봤니?
이렇게, 울다가 웃다가 토할 지경이 되고, 벌컥벌컥 물 마시고 길길이 날뛸 지경,
이별해 본 사람은 알 거야. 이렇게 육신이 아픈 지경을...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아, 얼마나 애절한 이별의 메시지인지~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을 보렴. 제목은 '꽃피는 시절~'이야.
꽃피는 시절에 이별을 한 걸까?
이 시를 다시 읽어보자. 



이제 나는 <나무>로 변신을 할 거야. 

나는 뻣뻣한 나무입니다.
내 안에서 봄이 오면, 꽃이 피어나려 움트고 있겠지요.
다시 1연 : 겨울에도 나는 꽃이 올 것을 알아요.
2연 : 봄이면 당신은 당연히 올 거예요.
3연 : 내 안에 너 있다~
4연 : 꽃이 피려면 내 몸으 갈라지는 고통을 겪어야 해요.
5연 : 희고 고운 꽃이 잎잎이 피어날 거예요.
6연 : 그러나, 어떻게 꽃잎을 떨굴까요? 미치겠네~
7연 : 내게 매달린 조그만 꽃잎과 어떻게 이별할까~

이런 노래야.
꽃이 피었다 떨어지는 것을.
나무에서 꽃이 솟아나고, 이별하는 것을,
남녀간의 이별의 상황과 유사한 점들을 추출해서,
<이별>이란 추상을 <낙화>란 구체로 비유한 것!

이런 것이 비유의 짜릿한 전율이 아닐까 해.
어쩜 이렇게 감쪽같이 이별하는 사람처럼 시를 써 놓고는
제목을 <꽃 피는 시절>이라고 붙일 수 있을까. 

시인은 늘 삶의 장면들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지를 가다듬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겠지.
삶의 어떤 면과 언어의 어떤 것을 연관지어서 표현하면 멋진 작품이 될지를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 삶의 어떠한 단면을 발견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이기도 하단다.
시를 읽으면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지.
삶은 혼자서 살 수 없으니,
늘 사회를 이야기하고, 사회는 늘 변하니깐, 
역사를 이야기하고 그런 거야.
자, 새학기다.
부디 건강하게 힘내서 잘 보내라~
힘내, 아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