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 정철의 속미인곡을 읽어 보자.
이 시도 마찬가지의 ‘충신연군(주)지사’에 속하는 노래야.

사미인곡과 마찬가지로 천상의 선녀가 땅에 내려오게 된 형식을 띠고 있지.
유배로 땅에 내려온 선녀는 ‘謫降, 귀양갈 적, 내릴 강’이라고 한단다.
적강 설화가 들어간 가사라고 볼 수 있지.
가사는 읽기 좋은 4,4조의 노래로 길어진 시조라고 보면 된단다.

시조는 왜 노래라고 했잖아.
시조창(時調唱).
그래서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는(서정) 즉흥 노래로는 어울리지만,
가슴에 담아둔 긴 이야기를 담기엔 조금 부족했나봐.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긴 이야기(서사)를 담아낼 ‘가사’도 필요했겠지.

이 노래는 두 선녀의 ‘대화’로 이뤄진단다.
‘꽃보다 남자’에 비유하자면,
구준표하고 싸워서 이별한 상태에 있는 금잔디가
친구랑 우연히 만나서 수다를 떨면서 하소연하는 형식이야.
그걸 구준표는 우연히 듣게 된 것 같은 이야기

맨 앞부분은 친구가 금잔디를 발견해서 말거는 부분이란다.
잘 읽어봐~ 

가) 뎨 가는 뎌 각시 본 듯도 한뎌이고.
天텬上샹 白백玉옥京경을 엇디하야 離니別별하고,
해 다 져믄 날의 눌을 보라 가시는고.

������ 저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한 것 같네.
������ 천상 백옥경(옥황상제가 산다는 곳)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 해 다 저문 날에 누를 보러 가시는고?

   금잔디 친구가 잔디를 발견했어.
“어, 너... 너... 잔디 아니니?
너 맨날 준표랑 놀더니, 준표는 어쩌고
이 어두운 데 누구 만나러 가는 거야?” 이런 거지.


그지? 쉽지?
아빠의 강의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문학 강의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맘편하게 읽어 보기 바래.



나) 어와 네여이고, 내 사셜 드러 보오.

������ 아이고 너구나, 내 이야기 들어 보시오.

   안 그래도 누가 손으로 콕 찌르기만 해도 눈물이 주르륵 흐를 심정인 잔디는
아이고, 너구나~ 이러면서 말문이 열리기 시작해.
‘내 이야기’의 내용은 뻔하지? ㅋ

뭐, 잔디의 준표 사랑 아니겠어?

한문으로 쓰면 충신이 연군하는 노래. 충신연주지사.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한가마난 
엇딘디 날 보시고 네로다 녀기실새, 
나도 님을 미더 군뜨디 전혀 업서,
이래야 교태야 어자러이 구돗던디,
반기시난 낫비치 녜와 엇디 다라신고.


������ 내 얼굴과 내 행동이 임의 사랑을 받음직 한가마는
������ 어쩐지 날 보시고 너로다 여겨 사랑하시기에
������ 나도 임을 믿어 다른 뜻이 전혀 없이
������ 아양이며 교태며 어지러이 굴었던지
������ 반가워하는 얼굴빛이 이전과 어찌 다르신지.

  “내가 첨에 준표랑 사귈 때 말야~
내 처지가 준표랑은 너무 안 어울리잖아. 그거 너도 알잖아.
근데 내 얼굴이나 행동도 남자들이 좋아할 것도 아닌데,
어쩐지 준표는 날 보고 ‘내가 찾던 여자가 너 같은 애야!’하고 인정해 줬거든.
그래서 나도 준표가 넘넘 좋아져서 다른 생각은 전혀 없이
알랑거리고 까불고 너무 어지럽게 굴었는지
어느 날 준표가 날 반기는 얼굴빛이 전과 완전 달라졌더라고. ㅠ&ㅜ" 

누어 생각하고 니러 안자 혜여 하니,
하날히라 원망하며 사람이라 허믈하랴.
내 몸의 지은 죄 뫼가티 싸혀시니
셜워 플텨 혜니 造조物믈의 타시로다.


������ 누워 생각하고 일어나 앉아 헤아리니,
������ 내 몸에 지은 죄 산같이 쌓였으니
������ 하늘을 원망할까 남들을 죄지었다 할까.
������ 서러워 풀어 헤아리니 조물주(운명)의 탓이구나.

   금잔디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져.
“누워도 준표 생각, 일어나 앉아 헤어라도 그 생각 뿐이야.
하늘을 원망하지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도 않아.
내가 지은 잘못이 산처럼 쌓였으니
서러워 풀어 생각해 본들 다 내 운명을 이렇게 정해 놓은 조물주 탓이라고나 할까.
난 이제 완죤 포기했어. ㅠ.ㅠ” 

다) 글란 생각 마오.

������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말아요.

   금잔디, 완전 불쌍하잖아.
차도남, 까도남 구준표한테 상처받고 넘 슬퍼하니깐,
의리 빼면 시체인 친구가 위로를 한단다.
“잔디야, 너무 그렇게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 응?” 


라) 매친 일이 이셔이다.

님을 뫼셔 이셔 님의 일을 내 알거니,
믈 가탄 얼굴이 편하실 적 몃 날일고.

������ 맺힌 일이 있습니다.
������ 임을 모시고 있어 임의 일을 내가 아는데,
������ 물 같은(연약한)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일까.

   그치만 잔디는 계속 맘속 깊은 이야기를 다 털어 놔.
친구는 들을 수밖에 없지.
“있잖아. 난 준표 하나도 원망 안해.
다만 내 맘에 맺힌 게 하나 있어.
준표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너도 알잖아.
준표랑 오래 사귀지 않았어도 난 준푤 잘 아는데,
아~, 그 연약한 얼굴이 편한 날이나 있을지…, 걱정이야.
준표 엄마랑, 준표네 집, 장난 아니거든.”  

春춘寒한 苦고熱열은 엇디하야 디내시며,
秋츄日일 冬동天텬은 뉘라셔 뫼셧는고.
粥쥭早조飯반 朝죠夕셕 뫼 녜와 갓티 셰시는가.
기나긴 밤의 잠은 엇디 자시는고.

������ 봄의 추위, 여름의 더위는 어찌하여 지내시며,
������ 가을 해 겨울 날을 누가 모셨을까.
������ 죽과 아침 저녁 식사는 옛날 같이 드시는가.
������ 기나긴 밤에 잠은 어찌 주무실고.

   여기 ‘춘하추동’의 리듬에서 여름은 일부러 ‘괴로울 고, 뜨거울 열’을 썼단다.
이렇게 리듬을 슬쩍 비트는 것이 한국적 멋의 특징이야.
“꽃샘추위는 잘 버티는지, 더위도 잘 타는데 어찌 지내는지,
가을날 겨울날은 누가 챙겨 주는지.
아침 저녁은 내가 챙겨주는 것처럼 잘 먹고 다니는지,
긴긴 밤에 잠은 제대로 자는지…
난 준표 걱정 하나로 요즘 잠도 못자.”
이렇게 선녀는 자기는 맺힌 게 하나 있는데,
그게 임 걱정 뿐이라는구나. 

   님다히 消쇼息식을 아므려나 아쟈 하니,
늘도 거의로다. 내일이나 사람 올가.
내 마음 둘 대 업다. 어드러로 가쟛 말고.

������ 님 쪽의 소식을 어떻게든 알자 하니,
������ 오늘도 거의 지났다. 내일은 사람이 올까?
������ 내 마음 둘 데 없다. 어디로 가잔 말인가.

“그래서 준표 쪽 소식을 어떻게든 알아보려고도 했는데,
오늘은 거의 지났으니, 내일이나 연락이 올까?
아, 난 요즘 마음 둘 데가 없어. 어디로 돌아다녀 볼까?
명동을 쏘다니면 마음이 좀 풀릴까? 혹시 준표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멀리서나마 준표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잡거니 밀거니 놉픈 뫼해 올라가니,
구롬은카니와 안개는 므사일고.
山산川쳔이 어둡거니 日일月월을 엇디 보며,
咫지尺쳑을 모르거든 千쳔里리를 바라보랴.

������ (나뭇가지를) 잡고 (바윗돌을) 밀고 높은 산에 올라가니,
������ 구름은 커녕 안개는 무슨 일인가.
������ 산천이 어두우니 해와달을 어찌 보며,
������ 가까운 곳도 모르겠으니 천리 밖을 어찌 바라보랴.

 “높은 산에라도 올라가 준표네 집을 볼까 해서 말이야.
비탈길을 나뭇가질 잡고 바윗돌을 밀어 가면서 올라가 보기도 했는데,
어제는 구름은 물론 안개까지 무슨 일로 잔뜩 껴서 준표네 쪽 보이지도 않지 뭐야.
세상이 이렇게 어두우니 준표를, 준표네 집을 볼 수 있겠어?
가까운 코앞도 안 보이니 저 먼 준표네를 어쩌면 볼 수 있을까?" 

   찰하리 물가의 가 배길히나 보쟈 하니,
람이야 믈결리야 어둥졍 된뎌이고.
샤공은 어대 가고 븬 배만 걸렷나니.
江강川텬의 혼쟈 셔셔 디는 해를 구버보니,
님 다히 消쇼息식이 더옥 아득한뎌이고.

������ 차라리 강가에 가 뱃길이나 보고자 하니,
������ 바람이야 물결이야 엉망이 되었구나.
������ 뱃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걸렸는가.
������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 보니,
������ 님 쪽의 소식이 더욱 아득하구나.

“산에선 안 보여서, 차라리 한강에 나가서 배나 탈 수 있을까 나갔더니,
바람도 불고 물결도 높아서 엉망진창이 되었더라고.
뱃사공은 어디 가고 없고 빈 배만 흔들거리고 있었어.
그래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보고 있자니,
준표 생각, 준표 소식이 간절한데 우리 사이는 더 아득해지기만 했어.”

   茅모詹쳠 찬 자리의 밤듕만 도라오니,
半반壁벽靑쳥燈등은 눌 위하야 발갓는고.
오르며 나리며 헤뜨며 바니니,
져근덧 力역盡진하야 픗잠을 잠간 드니
精졍誠셩이 지극하야 꿈의 님을 보니,
玉옥 가튼 얼굴이 半반이나마 늘거셰라.

������ 초가집 차가운 자리에 밤이 돌아오니,
������ 벽 가운데 푸른 등(청사초롱)은 누굴 위해 밝혔는가.
������ 오르며 내리며 헤매며 방황하니,
������ 잠깐 사이 힘이 다하여 풋잠을 잠시 드니,
������ 정성이 지극하여 꿈에 임을 보았는데,
������ 옥 같은 얼굴이 반이 넘게 늙으셨구나.

“아~ 맨날 준표랑 비싼 거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사주고 그랬는데,
준표 침대는 정말 푹신하고 이불도 부드러웠는데,
혼자서 옥탑방 차가운 자리에 누웠으니 죽을 맛이더라.
벽에 걸어둔 스탠드는 신혼방에 어울리는 건데
준표랑 있을 땐 정말 분위기 아늑하던 건데, 혼자 있자니 하나도 안 멋있더라.
하루종일 산에 오르락내리락 헤매고 다니다가 방황하니
잠시잠깐 힘이 빠져서 풋잠이 들었나봐.
내가 하도 준표를 그리워해선지 꿈에 준표를 봤던 거 같은데,
그 해맑던 얼굴이 글쎄 며칠 새 반도 더 늙은 거 같아 보이더라.”  

   마암의 머근 말삼 슬카장 삷쟈 하니,
눈믈이 바라 나니 말인들 어이하며,
情졍을 못다하야 목이조차 몌여하니
오뎐된 鷄계聲셩의 잠은 엇디 깨돗던고.

������ 마음에 먹은 말을 실컷 사뢰자 하니,
������ 눈물이 연달아 나니 말을 어이 하며,
������ 사정을 다 말하지 못하여 목까지 메어오니
������ 방정맞은 닭소리에 잠은 어찌 깨었던지. 

   “꿈에서나마 준표한테 맘 속에 먹은 말 실컷 말하려 입을 여는데, 
눈물이 줄줄 연달아 나서 말이 나오질 않더라.
내 맘 속 이야기랑 있었던 일의 사정이랑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꿈속에서도 목이 막 메이고 그러면서 계속 눈물이 나는데,
어디서 방정맞은 닭소리가 울려서 잠을 깨우고 말았어.”

바) 어와, 虛허事사로다. 이 님이 어대 간고.
결의 니러 안자, 窓창을 열고 바라보니
어엿븐 그림재 날 조츨 뿐이로다.
찰하리 싀여디여 落낙月월이나 되야이셔
님 겨신 窓창 안해 번드시 비최리라.

������ 아아, 헛된 일이다. 이 임이 어딜 갔나.
������ 꿈결에 일어나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 가엾은 그림자 날 좇을 뿐이구나.
������ 차라리 스러져서 지는 달이 되어서,
������ 임 계신 창 안에 번듯하게 비추고 싶어.

   “아아~ 준표 얼굴 한번이라도 보고, 준표 소식 한번이라도 들으려고,
산에 오르고 강에 나가고 꿈까지 꿨건만, 다 허사더라. 준표는 어디도 없었어.
꿈결에 일어나 앉아 멍한 정신으로 창밖을 열고 내다봤는데,
준표 없는 자리를 돌아보니까는 거기 가엾게도,
불쌍한 그림자만 외로이 내 곁에 있더라고. 
그냥, 차라리 내가 죽어서 지는 달이 되고 싶어.
그래서 준표 창문으로 찾아가서 준표를 환하게 비추면서 준표랑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 각시님 달이야카니와 구즌 비나 되쇼셔.

������ 각시님 달은 커녕 궂은 비나 되십시오.

 주인공 금잔디는 임을 위해서 달이 되겠다고 했어.
근데 금잔디의 친구는 바보같은 금잔디를 보고 화를 낸단다. 
"야, 이년아! 니가 지금 그넘을 위해서 기도하게 생겼냐? 달은 커녕 궂은 비나 되지~.”
이렇게 말하는 거야. 

금잔디는 임을 위해
거리가 있더라도 환하게 임을 밝혀주는 달이 되고 싶다고 했어.
그런데 환하게 비치는 달빛은 잔디의 슬픔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
그러니 친구는 ‘궂은 비’나 되라고 이야기한 거야.
궂은 비는 일단 임의 옷을 적시더라도 임에게 가까이 갈 수 있잖아.
그리고 화자의 슬픔이나 눈물과도 관계가 있어 보이고 말이야.

잔디의 사랑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작가는
이런 대화체를 개발했다고 봐야겠지.

지난 시간에 배운 사미인곡은
부유한 화자가 스토커처럼 임을 따라다니겠다는 노래였다면,
오늘 배운 속미인곡은
기둥 뒤에서 지나가던 구준표가
우연히 금잔디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처럼 처리했단다.

곧, 사미인곡은 화자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독백체’를 썼고,
속미인곡은 화자의 대화를 통해 진심이 전달되는 ‘대화체’를 쓴 거지.

연속극이라면, 뭐, 어떤 드라마가 더 인기있을지, 추측이 되지?
게다가 사미인곡에선 부유한 여성의 언어로,
어려운 한자어나 중국의 고사성어, 한시 등이 많이 인용된 반면,
속미인곡에선 순수한 우리말이 소박한 여성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어서,
훨씬 솔직한 이야기로 들린다는 특징이 있단다.

정철이 사미인곡(전미인곡)을 쓰고,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속미인곡(후미인곡)을 썼대.
자기가 봐도 스토킹은 좀 아니었다 생각된 모양이지.

가사는 시조(서정시)를 한정없이 늘인 형식이라고 했잖아.
4.4조의 노래고 말이야. 4음보가 되겠지. 시조도 그러니깐.
근데, 시조에서 출발한 형식이라서,
긴 가사의 마지막 부분은 거의 시조랑 같단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정철, 훈민가)

이 노래는 늙은이를 공경하자는 성리학적 윤리를 나타낸 시야.
윗사람 말은 무조건 잘 들어야 되지.
그래야 ‘왕조국가’인 조선이 안 흔들리지.

이 시조의 마지막 행(종장)은 글자 수가 <3,5,4,3>이잖아.
가사 몇 편의 마지막 행을 보자꾸나.

아모타/ 백년 행락이/ 이만한들/ 어찌하리. (정극인, 상춘곡)

명월이/ 천산만락에/ 아니 비쵠/ 대 없다. (정철, 관동별곡)

님이야/ 날일줄 모르셔도/ 내 님 좇으려/ 하노라. (정철, 사미인곡)

각시님/ 달이야 카니와/ 구즌 비나/ 되소서. (정철, 속미인곡)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 하여라. (허난설헌, 규원가)

이렇게 가사의 마지막 구절을 ‘낙구, 떨어질 락 落, 글귀 구 句’라고 하는데,
낙구는 상당히 시조의 종장을 닮았어.
이렇게 시조의 종장을 닮은 낙구를 가진 가사를 <정격 가사>라고도 부른단다.
뭔가 맞추려 노력한 거겠지.
이 경우에도 낙구의 첫 글자 석 자는 고정불변의 세 글자란다.

자, 속미인곡의 대화 주체를 늘어 놓으면 이렇게 된단다.


갑녀(보조 화자) : 선녀님 아니세요? 어디가세요?

을녀(주 화자) : 나 임이랑 헤어졌어. 다 내 잘못이야.

갑녀 : 그리 생각 마세요.

을녀 : 임 걱정돼 죽겠어. 산에도 가보고, 강에도 가보고, 꿈에도 봤지만.

       난 임을 비추는 달이 되고 싶어

갑녀 : 님 쫌 짱나는 듯, 달은 무슨 달, 궂은 비나 되시지.

어때, 아빠의 설명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학 수업 같지 않니?
고전도 어렵거나 멀기만 한 건 아니란다.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누구에게나 빈번하게 반복되어 일어나기 때문이야.
그 일이 희극으로 결말지어지기도 하고 비극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힘들 땐,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나에겐 비극으로 일어난 거구나.”
그렇지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도 너무 자만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겠지. 이렇게.
“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나에겐 희극으로 일어난 거네.”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고 했어.
나쁜 일도 전화위복이 되고, 좋은 일에도 호사다마인 법이지.

자, 허각의 <하늘을 달리다>란 노래 가사를 보면
어떤 순정이 나오는지 가사를 한번 음미해 보며 오늘의 ‘가장 쉬운 고전 수업’을 마치자.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쫓고 있었고
검은 절벽 끝 더 이상 발 디딜 곳 하나 없었지
자꾸 목이 메어 간절히 네 이름을 되뇌었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내가 미웠지 난 결국 이것밖에 안 돼 보였고
오랜 꿈들이 공허한 어린 날의 착각 같았지
울먹임을 참고 남몰래 네 이름을 속삭였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희망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허약한 내 영혼에 힘을
날개를 달수 있다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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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현대시를 주로 살펴봤는데,
오늘은 고전 운문의 하나인 '가사'를 한편 보자.
그 대표작인 정철의 '사미인곡'이다. 

정철은 '사대부'야.
시골에선 선비지만, 입신양명하면 '왕'을 보필하는 '대부'가 되는 것이지.
왕조 국가의 중심 인물은 무조건 <왕>이란다.
'대부'는 몽땅, 왕의 생각을 펼치는 도구로 쓰이는 사람들이라 보면 돼.
이 시에서 '미인'을 생각하는 것도 결국  귀양간 처지에서 임금을 생각하는 노래라 볼 수 있지. 

충신연주지사. 또는 충신연군지사.
우선 한번 읽어 보자. 

(가)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천생 緣연分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대 노여 업다.

������ 이 몸을 만드실 때에 님을 따라 만드시니,
������ 한평생 함께 살아 갈 인연이며,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 나는 오직 젊어 있고 님은 오로지 나만을 사랑하시니,
������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이 가사는 마치 하늘에서 귀양 내려온 선녀가
헤어진 임을 그리워하는 형식의 특성을 가지고 있단다.
실제로 일어난 일(개별적 사건)은
정철이 귀양온 것인데,
문학적으로 일반화하여 표현한 것은
마치 여인이 임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  

지금 이 부분은 서론부분인데,
나는 임을 따라 생겼으니 우린 천생연분이랍니다.
젊은 나를 임이 사랑하시니 우리 사랑은 최고였지요~ 이런 얘기야.  

평생애 願원하요대 한뎨 녜쟈 하얏더니,
늙거야 므사 일로 외오 두고 글이는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그 더대 엇디하야 下하界계예 나려오니

������ 평생에 원하되 님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였더니
������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 엊그제는 님을 모시고 광한전(궁궐)에 올라 있었더니,
  * 광한전 : 달 속에 있다는궁전. 여기서는 임금(선조)이 계시는 대궐
������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창평)에 내려 왔느냐.

평생 소원은 <한뎨 녜>는 거였지. 임과 함께 살기.
임금님 아래서 사대부로서 최선을 다해 일하기.
근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대.
늙어서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 현실이지.
얼마 전까지도 임과 궁궐에 있었는데,
어느새 하계에 내려와버린 선녀인 나의 신세가 안타깝구나. 

광한전과 하계는 옥황상제와 선녀의 이야기처럼
임금님과 자신의 이야기를 변주한 것이란다.
화자는 여성처럼 묘사되고 있어.
아래 보면 헝클어진 머리와 화장도 나온단다.

올 저긔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삼年년이라.
撚연脂지粉분 잇네마는 눌 위하야 고이할고.
마음의 매친 실음 疊텹疊텹이 싸혀 이셔,
짓나니 한숨이오, 디나니 눈믈이라.


������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하늘에서 선녀가 땅으로 귀양 내려올 때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빗지 않은 게 3년째래.
여성에게 머리카락은 엄청 중요하단다.
세수는 안 해도 머리는 빗어야 하거든. ㅋ
근데, 3년동안 아무 것도 안 했대. 귀양온 화자의 처지와 같지.
신이 안 나는 거야.
연지와 분이 있는데, 임과 이별해 있으니 단장할 수 없지. 

마음엔 근심만 쌓여 있어서
한숨만 나오고 눈물만 흐른대.   

人인生생은 有유限한한데 시름도 그지업다.
無무心심한 歲셰月월은 믈 흐르듯 하난고야.
炎염凉냥이 때를 아라 가는 듯 고텨 오니.
듣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흘러 가는구나.
������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많구나.  

삶은 유한한데 걱정은 무한대다.

요거 좀 재밌는 표현이잖냐?

이런 걸 대구법이라 그래. 

임과 이별했는데 세월도 빨리 가서 벌써 3년 됐지.

계절도 잘 가고,

듣고 보는 일도 많은데

<느껴진 일>도 많아.

앞으로 화자의 느꼈던 일들을 적게 될 거야.  

이별한 여성이 절절하게 그리움을 토로하는 노래.
요즘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소녀시대 <훗>을 보면,

여성의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 

너 때문에 내 마음은 갑옷 입고 이젠 내가 맞서줄게
네 화살은 Trouble! Trouble! Trouble! 나를 노렸어
너는 Shoot! Shoot! Shoot! 나는 훗! 훗! 훗!


독이 배인 네 말에 나 상처 입고도 다시 준 두 번째 Chance
넌 역시 Trouble! Trouble! Trouble! 때를 노렸어
너는 Shoot! Shoot! Shoot! 나는 훗! 훗! 훗!

이제 이별한 상황은 알았으니깐,
본격적인 사랑 고백을 시작한다.

계절별로 나오니 잘 읽어보렴. 


(나) (春怨) 봄의 원망

東동風풍이 건듯 부러 積젹雪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매花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갓득 冷 淡담한대 暗암香향은 므사일고.  
黃황昏혼의 달이 조차 벼마테 빗최니,
늣기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 창 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 느껴 우는 듯, 반가워 하는 듯 하니, (이달이 바로)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매花화 것거내여  님 겨신 대 보내오져.
님이 너를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 저 매화를 꺾어 내어 님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 그러면 님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동풍'이 부는 봄이 왔어.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위세를 부리니 '북서풍'이 강하지만,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하는 봄이 되면 '동풍' 곧, 샛바람이 불어온단다.
그 샛바람이 '동고서저'의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푄'현상을 일으키고,
그게 고온건조한 높새바람이 불어오는 원리란 건 중학교때 배웠지?

솔솔 부는 봄바람, 쌓인 눈 녹이고~ 많이 듣던 동요 아니야? ㅋ
우리학교 정문 앞에도 매화가 가득 피었더구나.
'암향'은 은은한 매화 향기란다.
달빛이 베갯머리에 비치는데, 달이 임처럼 보인대. 

그래서 큰 용기를 내게 된단다.
저 매화를 꺾어서 임 계신 서울로 보내고 싶대.
매화를 보고 임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3년이나 잊고 계셨던 화자를 떠올리실까? 

 


(다) (夏怨) 여름의 원망
곧 디고 새 닙 나니 綠녹陰음이 깔렷난듯,
羅나褘위 寂젹寞막하고 繡슈幕막이 뷔여 잇다.
芙부蓉용을 거더 노코 孔공雀쟉을 둘러 두니,
갓득 시름 한대 날은 엇디 기돗던고.

������ 꽃잎이 지고 새 잎이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 (님이 없어)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 부용꽃 무늬가 있는 房帳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그리도 지루하게) 길던고?

봄엔 임생각에 매화를 보냈지.

이제 여름에도 뭔가 보낸단다. 볼까? 

봄의 녹색은 '신록'이라 하지만, 여름은 '녹음'이라 그래. 

비단 휘장과 수놓은 장막과 꽃무늬 망사장에 공작 병풍까지,(이 여자 은근 공주병이다. ㅋ)
아름답고 화려한 방에서 임과 꿈같은 밤을 보내고 싶지만...
이별한 상황에서 근심 걱정뿐인데, 날은 얼마나 긴지...    

시간은 원래 상대적이잖아.
즐거운 시간은 금세 가고, 괴로우면 천천히 가는...
임이 없으니 시간이 더디 가고 날이 길겠지.
그래서 의욕을 내어 옷을 만든단다.

鴛원鴦앙錦금 버혀 노코 五오色색線션 플텨내여,
금자에 견화이셔 님의 옷 지어내니,
手슈品품은 카니와 制졔度도도 가잘시고. 

������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 실을 풀어 내어
������ 금자로 재어서 님의 옷을 만들어 내니,
������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원앙새 수놓인 비단 베어, 오색실 풀고
금빛 자로 겨누어서 임의 옷을 만든대.(엄청 부유한 가정의 여성이군 흠...)
보통 부잣집 딸이 임에게 추근거리면 꽝!인 것이 연속극의 정석인데 말이지. ㅎㅎ
다음 시간에 '속미인곡'을 하면서 더 비교해 보고... 
 

솜씨는 물론, 격식도 갖추었다고 '자기 그림을 자기가 칭찬(자화자찬)'하는구나.
좀 심한 공주병인듯...   

珊산瑚호樹슈 지게 우에 白백玉옥涵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대 바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쳔里리 萬만里리 길흘 뉘라셔 차자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그 옷을) 담아 얹어 두고
������ 님에게 보내려고 님계신 곳을 바라보니,
������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 천만리나 되는 먼 길을 누가 찾아 갈꼬?
������ 가거든 (이 함을)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그렇게 만든 옷을 임에게 보내야겠지.

근데, 택배 상자도 대충 고름 안 될 거잖아.

이 아가씨, 대단한 부유층인데 말이지. ㅋ 

그래서 산호수 지게, 백옥함을 쓴단다. 음, 역시 부유층의 포스가... 

그래 담아 두고 임쪽을 바라 보니,
아,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대.
임을 가리고 있는 산과 구름은 <장애물>이고
정치 현실로 보자면 <간신>이라 볼 수 있겠다.
자신과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세력.

머나먼 길을 누가 갈 것이며,
간다고 해도 과연 반가워 하시기나 할 것인지... 걱정이 태산이야.


 

(라) (秋怨) 가을의 원망

하라 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 녤 제,
危위樓루에 혼자 올나 水슈晶졍簾념 거든말이,
東동山산의 달이 나고 北북極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 하룻밤 사이 서리내릴 무렵에 기러기가 울며 날아갈 때,
������ 높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 발을 걷으니,
������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 님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이제 가을이 되었단다.
하룻밤 새 서리가 내릴 때 기러기는 울며 가고(캬~ 가을 분위기 물씬 나지?)
누각에 올라 수정 구슬로 엮은 <주렴>을 걷으니,
히~이야, 동산에 달이 돋고 북극성이 보이니
세상을 환히 밝히는 달님, 별님,
임금님이신가 하여 반가우면서도
못만나 괴로운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淸쳥光광을 쥐여내여 鳳봉凰황樓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에 거러 두고 八팔荒황의 다 비최여,
深심山산 窮궁谷곡 졈낫가티 맹그쇼셔.   

������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님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 (그러면 님께서는 그것을)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에 다 비추어
������ 깊은 산골짜기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달빛을 잡아내서 옥황상제 계신 곳에 보내고 싶은 선녀의 마음.
달빛을 보내면 누각에 걸어 두고
온 세상에 밝은 빛을 보내서
산골짜기도 대낮같이 만들어 달라는 선녀의 부탁.
여기서 화자가 단순한 선녀가 아니라
'대부'로서 정치에 참여했던 사람임이 드러나는구나. 

올바른 정치(선정, 善政)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신하의 마음이 보이지. 


(마) (冬怨) 겨울의 원망

乾건坤곤이 閉폐塞색하야 白백雪셜이 한 빗친 제,
사람은 카니와 날새도 긋쳐 잇다.
瀟쇼湘샹南남畔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옥樓누高고處쳐야 더옥 닐너 므삼하리.

������ 천지가 겨울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
������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도 날아다니지 않는다. 
  * 유종원, 강설 -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천산조비절 만경인종멸)  
          
산이란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마다 사람 자취 끊어졌다
������ (따뜻한 곳이라 하는) 소상강 남쪽 둔덕(전남 창평)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겨울이 되었어.  세상은 눈으로 가득찼대.
사람은 물론 나는 새도 못 다닌다는 유종원의 한시를 인용했지.
화자가 있는 남쪽을 중국 소상강의 남쪽으로 빗대었구나.
이 남쪽, 전라도 창평(광주 옆)도 이렇게 추운데,
임금님 계신 대궐(한양, 북쪽)은 얼마나 추울지 말해 뭐하겠냐.

陽양春츈을 부쳐내여 님 겨신 대 쏘이고져.
茅모簽쳠 비쵠 해를 玉옥縷누의 올리고져.
紅홍裳샹을 니믜차고 翠취袖슈를 半반만 거더, 
日일暮모 修슈竹듁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 따뜻한 봄기운을 (부채로) 부쳐내어 님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님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올려,
������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그래서 따스한 햇살을 부쳐서 임에게 쏘여드리고 싶대.

한겨울에도 양지녘에서 따스한 햇살을 쬐면 참 좋거든.

치마를 입고 소매를 걷고, 영락없는 여성의 동작이지.

해저문 저녁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대. 
 

 

댜란 해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쳥燈등 거른 겻에 鈿뎐空공侯후 노하두고,
꿈의나 님을 보려 택 밧고 비겨시니,
鴦앙禽금도 차도찰샤 이 밤은 언제 샐고.

������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 청사초롱을 걸어 둔 옆에 자개로 수놓은 공후를 놓아두고
������ 꿈에나 님을 보려고 턱을 받치고 기대어 있으니,
������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아, 이렇게 홀로 외로이 지내는)이 밤은 언제나 샐꼬? 

짧은 해가 금세 지고 긴 밤 내내 혼자서 꼿꼿이 앉아있는 여인.

독수공방이 얼마나 외로워 보이니?

푸른 등(청사초롱은 붉고 푸른 베로 만든 등이야)은 걸어뒀지만

임이 없으니 낙이 없지.

전공후(멋진 기타같은 현악기)도 임이 없으니 연주할 일도 없으니 곁에 놔 둘 뿐. 

하릴없이(어쩔 수 없이) 꿈에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받쳐 기대었대.

아, 꿈 속에 임은 안 보이고

짝지어 행복하게 해로(함께 늙어감)한다는 원앙 금침은 차기도 차갑대.

임은 없으니 말이야.

잠도 안 오는데 밤은 길고 길구나. 시간의 상대성. ㅠㅜ 

여기까지가 <본사, 곧 본론>이야.
서론에서 '이별한 사연'을
본론에서 '임에 대한 사랑'을 '보내고 싶은 것들(매화, 옷, 청광, 양춘)'을
보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지.

이제 결사, 결론에선 임에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드러낸단다.
계속 읽어 보렴.

(바)

하루도 열두 때 한달도 셜흔날,
져근덧 생각 마라 이 시름 닛쟈하니,
골수의 매쳐 이셔 骨골髓슈의 께텨시니, 
篇편鵲쟉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하리.  

������ 하루도 열두 때, 한달도 서른 날,
������ 잠시라도 님 생각을 말아서 이 시름을 잊으려 해도
������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뼈 속까지 사무쳤으니,
������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자 이제 결말 부분이야.

하루 12시간(예전엔 하루를 12등분했단다. 그 이름은,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라고 불렀지.)

한 달은 서른 날이고.
잠깐이라도 생각을 않으려고 하지만,
뼛속까지 맺힌 임의 생각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전설의 명의, 편작도 못 고칠 지경이래.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찰하리 싀여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대 죡죡 안니다가,
향 므든 날애로 님의 오새 올므리라.

������ 아, 내 병이야 님의 탓이로다.
������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가 되리라.
������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 향기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으리라. 

아이고, 내 병은 임 생각 탓이야.
차라리 스러져서(죽어서) 호랑나비가 되고 싶대.
나비가 되어 꽃가지에 가는 데마다 앉았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앉을 거래. 

 

님이야 날인 줄 모르셔도 내 님 조차려 하노라. 

������ 님께서야(그 범나비가)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님을 따르려 하노라.

이거 분위기가 좀 스토커 같지 않니? ㅋ

꽃향기 묻힌 나비가 되어 임을 쫓아 다니겠대.

근데, 임은 난줄 모르겠지만,

나는 임을 좇으려 하노라~

아이고, 좀 징그럽네. ㅎㅎ 

이상, 사미인곡이었어.

사미인곡의 화자는 <선녀>인 여성으로 상정되었단다.

다음에 배울 <속미인곡>의 화자도 마찬가지야. 

근데, 차이가 좀 난단다.

사미인곡의 화자는 부유하고, 스토커처럼 쫓아 다니잖아.

반면 속미인곡의 화자는 소박하면서도,

임의 변심에 마음아파하고만 있는 화자야.

다음 시간에 계속 보자.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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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1-03-0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읽다보니 수능 치러 가야할 것 같아요..^^;;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불끈불끈~

글샘 2011-03-10 12:29   좋아요 0 | URL
그런 걸 근자감이라 그래요. ㅋ
근거없는 자신감... 그것만으론 절대 시험 잘 못보죠. ㅎㅎㅎ
그래도 이런 학생들이 얼마나 이쁜데요. ^^
이런 학생들은 성적이 잘 오른답니다. 모범학생 요정님.
 

학기초라 몹시 피곤하구나.
민우도 마찬가지겠지?
아빠가 3학년을 여러 번 하다 보니까,
올해 3학년에도 친한 선생님들이 많아서,
부담스럽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아는 체 하는 선생님이 많을수록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기 바란다.
오늘은 인간들이 서로 모여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노래를 몇 편 골라 볼게.
우선 연탄재의 시인 안도현의 <간격>을 읽어 보자.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鬱鬱蒼蒼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안도현, 간격>



한자로 나무가 모이면 ‘수풀 림 林’이 되고,
나무가 더 모이면 ‘빽빽한 삼 森’이 되지.
이 한자들이 모이면 ‘삼림 森林’이 되는 거란다.

그런데, 우리는 머~얼리서, 피상적으로 관찰할 때는 몰랐어.
그저 나무가 여럿 빽빽하게 모여 있으면 그게 숲이 되는 줄 알았지.
나무들은 숲에서 딱 달라 붙어있는 것인 줄 알았지.

그런데,
산불이 휩쓸고간 숲엘 들어가 보고서야,
나무와 나무 사이엔
넓든 좁든 간격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야.

나무들이 꼭 붙어 있으면
서로 햇빛도 가리고
서로 영양분도 나눠먹지 못하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거리감, 곧 간격이 필요했던 거지.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고,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 사이의 간격.
그 간격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대.

산불이 난 숲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관조’라고 보면 되겠지?
그런데 화자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관조란 자연을 보면서 ‘인간사’를 깨닫는 거잖아.
간격이 있는 것이 소중하다는 깨달음인데,
과연 인간간의 간격이란 어떤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공동체의 인간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이나 애정은 맹목적으로 붙어있는 것만은 아님을 강조한 것이겠지.
거 왜, 남녀 관계에서도 둘이 짝 달라붙었다가 평생 이별한 애들도 있었잖아.
견우와 직녀라고. ㅋ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맨날 짝 달라 붙어 사는 건 어찌 보면 ‘히키코모리’나 ‘오타쿠’같지 않니?
적당히 어른이 되면 떨어져 살아도 봐야겠지.
대학생이 되면 기숙사에서도 살아 보고,
결혼하면 부부가 둘이서 고생도 하며 살아 보고,
그러다 애기 낳으면 방학에 놀러도 오고, 그렇게 말이야.

다음엔 ‘그릇’의 시인 ‘오세영’의 시를 한 편 읽어 보자.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번쯤
겨울 들녘에 가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오세영, 겨울 들녘에 서서>

오세영은 ‘그릇’에서 ‘인간은 죽는 존재’임을,
 ‘등산’에서 ‘인생은 조금씩 밀고 나가는 것’임을,
그리고 이 시 ‘겨울 들녘에 서서’에서 ‘위안’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각 연은 간단하게 이런 구조로 되어 있어.

~~로 아픈 사람은 겨울 들녘에 가 봐라~
거기엔 ~~가 있다.
~~를 보면 알 수 있는.

이런 똑 같이 생긴 문장 구조.

문제에선 이런 것들을 ‘같은 통사 구조가 반복’된다고 한단다.
잘 알아 두렴. ‘같은 통사 구조의 반복’!

1연에선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겨울 들녘’에 가 보라고,
2연에선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에게 거기 가 보라고 하고,
3연에선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에게 가 보라고 한다.
모두 마음 속에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겨울 들녘’은 ‘텅 비어 보이는 공간’이잖아.
괴롭고, 슬프고, 아픈 사람에게 왜 ‘텅 빈 공간’엘 가라고 했을까?
거기서 무엇을 ‘보고 깨달으라고?’

1연에선 ‘빈 공간의 충만’을 배우래.
역설이지? 빈 공간이 가득차 있음을 배우라니.
비록 ‘텅 빈 들판’이지만,
그는 이미 아낌없이 주어버린 자의 자부심으로 거기 있대.
가을걷이(추수)가 끝난 들판에
낟알 몇 개만 남은 겨울 들녘.

그렇지만 잃어버린 곡식을 아쉬워하지 않는 겨울 들녘.
이런 걸 발견하고 나면,
네가 가진 괴로움, 슬픔, 아픔이 좀 치유될 거라는 말이야.



2연도 마찬가지지.
이별에 슬픈 사람.
땅에서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있대.
현실에서의 이별은 사랑의 끝으로 느껴지지만,
이별은 하늘에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안식일 수도 있다는구나.

왜 그런 말 있거든.
이쁜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 옆에 두시려고 일찍 데려 간다는 말.
둠벙은 ‘웅덩이’ 같은 거야. 방언이지.
둠벙에 비친 별빛을 보노라면,
먼 하늘에 욕심없이 비치는 별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사랑하는 이의 안식을 배울 수 있다는구나.

3연에서 ‘그리움’은 ‘임과 함께 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마음이잖아.
‘너를 지킴’은 ‘나를 지킴’이래.
‘네가 있으면 나는 없고, 내가 있으면 너는 없’는 관계가 아니라,
‘너도 지키고, 나도 지켜야 하는 관계’란다.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은
역시 역설적 표현이지.
‘홀로’ 있음을 통해서
‘함께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
안도현의 ‘간격’과도 상통하는 의미인지도 모르겠구나.
논둑의 허수아비를 보면,
허수아비는 혼자 쓸쓸히 서 있지만,
그는 외롭기보다는
가을 들녘에서 황금물결 넘실거리는 볏단을 수확하게 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을지도 모를 일이야.
마치 결혼식장에서 시집가는 딸의 손을 잡은 아버지가
아쉬움과 자랑스러움에 흘리는 눈물같은 쓸쓸함과도 유사할지 모르겠다.

역설적 진리를 통해 삶의 깨달음을 전달하는 시.
그리고 사랑과 이별로 괴로워하는 이에게 ‘관조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시.
이런 것이 오세영 시를 읽는 멋이란다.

다음엔 섬의 시인 정현종의 시를 읽어 보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다도해가 생각나지 않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대.
그런 걸로 보면, 사람도 섬처럼 느껴지는구나.
그런데, 화자는 그 섬에 가고 싶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섬에.

이 시는 극도로 짧은 시지?
사람들의 ‘사이’, 곧 ‘단절된 인간 관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시 같다.
그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표현은 그 ‘단절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겠지

그 단절감 사이에서
인간과 인간을 이어줄 수 있는,
의사 소통이 가능한 영역을 ‘섬’으로 표현했단다.
‘섬’에서는 피상적이고 기계적인 현대인의 대인관계가 조금 무너지고,
비교적 자유로운 의사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하는 영역 같기도 해.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어부가 잡아 둔 그물 안에 물고기가 가득했대.
그 물고기들은 숨쉬기도 힘들어 헐떡이고 축 늘어져 있었다는구나.
그런데, 어찌 그 물고기들이 죽지도 않고 살아있는지 신기해 들여다 보니,
물고기 사이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비집고 다니더래.
미끄럽다고 미꾸라진데,
마치 인간관계의 윤활유처럼 매끄러운 역할로 물고기들을 살려주었다는구나.

인간의 삶에는 이렇게 ‘~과 ~의 사이’가 꼭 필요해.
그 사이엔 ‘섬’도 필요하고 ‘미꾸라지’도 필요하겠지.
민우와 아빠 사이가 그닥 멀지도 않지만,
이 강의도 하나의 ‘섬’이고 ‘미꾸라지’가 될 수 있겠구나.

오늘은 연탄재의 시인 안도현의 <간격>,
그릇의 시인 오세영의 <겨울 들녘>, 그리고
섬의 시인 정현종의 <섬>을 통해서,
현대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들의 거리감과 간격, 친밀감에 대한
인간의 목마름에 대하여 좀 읽어봤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설명을 읽고 나면 시를 다시 한두 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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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탄재 시인 안도현, 화성시를 찾다-문인특강 안도현 시인
    from 화성시 공식블로그 화사함 2011-03-18 11:51 
    뜨거운 연탄재 시인, 안도현 화성시를 찾다.감성을 잔잔하게 노래하는 시인, 낮은것을 뜨겁게 사랑하는 시인, 안도현님이 화성시 노작홍사용문학관을 찾습니다. 홍사용문학관에서는 매년 유명 문인을 초청해 작가와의 시간을 마련하고 있는데요. 오는 19일 열릴 유명문인 특강엔 안도현시인을 초청하였습니다. 3월 중순임에도 꽃샘추위가 기승이지만 안도현님의 아름다운 시들로 인해 봄이 성큼 다가 올것같은 설렘이 느껴지네요. 모든 시인들이 봄을 노래 하였지만 특히나...
 
 
울창 2011-03-0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글샘님의 타자속도가 궁금해집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듯.

글샘 2011-03-09 12:36   좋아요 0 | URL
손가락은 보여요. ㅋㅋ
군대에서 행정병한 덕으로 타자는 좀 칩니다.
물론 그때는 4벌식 타자기라고 들어나 보셨을래나...
 
공감을 배우는 토론학교 : 문학 - 문학과 토론의 행복한 만남 청소년을 위한 토론학교
문학토론연구모임 숨은그림 엮음 / 우리학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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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서의 끝에는 <비판적 독서>와 <비판적 글쓰기>가 놓여 있다.
이 비판적이란 수식어는 <자신의 생각>을 쓰도록 하는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의 생각을 읽고 그 생각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
자신의 생각을 넓은 성당의 건물 전체가 울리는 파이프오르간 소리처럼 변주할 수 있는 글쓰기라야 희망이 있다. 

학생들에게 독서 토론 동아리를 만들어보도록 교육청에서 연구과제를 주기도 하지만,
난 늘 3학년 담임이란 족쇄에 묶여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올해 일은 많지만,
일에 치인다고 해야할 일을 못하면, 그건 제대로된 선생 노릇이 아니란 생각에 하기로 맘먹었다. 

그러기에 우리학교 출판사에서 나온 토론학교 시리즈는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한다.
지난번에 읽었던 '사회, 윤리'편은 정말 정통 토론독서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의 인물을 대상으로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을 따져가면서,
과연 그 인물이 악인이었던지,
아니면 시대의 희생양일 뿐이었던 것인지를 토론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토론 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은 아무래도 이강백의 <결혼>이다.
결혼은 미친짓인가? 아니면 사회적 분란을 잠재우는 제도적 장치인가?
그도 아닌 진정 사랑하는 이들의 결합일 수 있는가? 

결혼은 소유인가? 존재인가?
이런 끝도 없는 토론거리를 제공하는 좋은 소재인 반면,
글쎄, 청소년들은 결혼에 대하여 그렇게 고민할 처지가 못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토론 대상으로는 꺼삐딴 리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귀여운 여인의 '올렌카'도 인간적인 고독의 근원을 따지기 힘든 나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고,
비 사감도 마찬가지다.
광염 소나타의 광적인 예술정신에 대한 토론은 자칫 탁상공론으로 흐르기 쉬우며
개미와 베짱이는 토론의 가치로 따지면 광염 소나타에 가까울 수 있단 생각이 든다. 

현대인의 고뇌를 다룬 카프카의 '변신'은 우리 고등학교때 도서반에서도 토론 주제로 삼았던 적이 있었지만,
글쎄, 결론을 내리거나 종합의 과정이 충분하지 않아 용두사미, 중동무이의 기억이 얼핏 남는다. 

문학 작품을 통하여 토론 거리를 구성해 내는 것도 멋지다.
그렇지만, 내 생각엔, 인물 중심의 토론보다는
그 인물과 처한 역사적 현실 사이의 토론이라면 더 열띤 토론의 제재들을 이끌 수도 있을 것 같다.
꺼삐딴 리가 토론 제재로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예를 들면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과 무정 스타일부터 친일 행적까지를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다면 충분히 토론거리가 될 것이다.
미당 서정주의 서정시... 아, 이름에 벌써 서정이 주가 된 사람이란... 그의 친일시들을 보면서도 토론거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독서 토론의 주된 대상은 '사회'의 대립적 구성이지만,
그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 '인물'인 바,
인물의 개성보다는 사회의 역사적 반영이 뚜렷한 작품들을 찾아야 하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작품 선정은 조금 미흡하다는 생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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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3-0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거 괜찮죠. 아이들과 가끔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글샘 2011-03-09 12:37   좋아요 0 | URL
무슨 작품이든 아이들이랑 토론하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감나무에 감꽃이 지고 나더니
아프게도 그 자리에 열매가 맺네
열매는 한창 쑥쑥 자라고
그것이 처음에는 눈이 부신
반짝이는 광택 속
선연한 푸른 빛에서
조금씩 변하더니 어느새
붉은 홍시로까지 오게 되었더니라.

가만히 보면
한자리에 매달린 채
자기 모습만을
불과 일 년이지만 하늘 속에
열심히 비추는 것을 보고, 글쎄,
말 못하는 식물이 저런데
똑똑한 체 잘도 떠들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디다가
자기 모습을 남기는가 생각해 보니
허무라는 심연밖에 없더니라.
아, 가을! <박재삼, 홍시(紅柿)를 보며>

이 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행은 마지막 행이다.
‘아, 가을!’이라는 마지막 행에는 화자의 정서가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데,
홍시와 대비되어 성실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지 못한 화자의 심정을 잘 전해주고 있다.

감나무엔 봄이면 감꽃이 피었다 진다.

그 꽃진 자리에서 열매가 열린다.
그 열매가 자라고 자라 붉은 홍시까지 된다.

2연의 <가만히 보면>을 어려운 말로 하면,
‘관조’가 되겠지?
사물을 가만히 보면서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살포시 떠오르는 경지.
이제 이런 것은 많이 들었잖아.  



감나무가 ‘한자리에 매달린 채 자기 모습만을
일 년 동안 하늘 속에 열심히 비춰보는 것’을 보았어.
그러면서 화자는 반성하는 거야.

‘에고에고, 글쎄, 말 못하는 식물이 저런데
똑똑한 체 잘도 떠들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디다가
자기 모습을 남기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거야.
그래서 생각해 보니 허무하더라는 이야기지.
심연은 ‘깊은 연못 속 같은 알 수 없는 세계’란다.

산다는 일은,
홍시만도 못한 화자가 자신을 반성하는 삶은
허무만이 깊은 그런 것임을 깨달았대.
홍시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된 화자의 마음이 잘 드러났지.

무엇을 보고 생각했다고?
그래. 제목. 홍시를 보고.
왜 이런 생각을 했다고?
<아, 가을!>
이니깐.


열매가 열릴 때 ‘아프게도’가 들어간 것은 성장통(성숙을 위한 고통)으로 볼 수 있겠지.
‘푸른 빛’의 열매가 ‘홍시’의 붉음으로 변하기까지 익어가는 과정은,
단지 식물이 익는 것만이 아니라, 화자의 성숙까지 이야기하는 것 같구나.

‘말 못하는 식물’도 저런데,
말로는 뭣이든 이루려는 인간의 자기 반성, 자아 성찰이 잘 드러나있는 시야.

다음엔 또 ‘도시락 뚜껑’을 보고 ‘관조적 태도’를 보이는 화자를 만나 보렴.

오늘 내가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눈물을 흘린 것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거예요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삽니까
올해로 그분의 나이 아흔 살
오늘은 그분의 아흔한 번째 생신날
마른 북어 몇 마리
연시 몇 개
그분이 좋아하시던 식혜 한 대접
상을 차리고
남한 여자와 북한 사내가
두루뭉수리로 된 아들딸 데리고
꿇어 엎드려
천번 만번 빌고 빌었습니다.

신의주에서 안동까지
열차를 타고 소풍 갔던 그날처럼
임진강 녹슨 철로를 닦고 닦아
붕붕 신나는 을 울리며
당신 품에 이 손주들 한 번만이라도
안아보시라고
천만 번 빌고 빌었습니다.

당신의 생신날 아침,
아내가 싸준 찰밥덩이
무심코 도시락 뚜껑 열다가
눈물 흘린 것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거예요 <송수권,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화자는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울었대.
2연에서는 <그분>이 아흔 살이며,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의 생신이 오늘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어.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삽니까’란 표현에서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드러내고 있지.
화자는 남한으로 피란와서 남한 여자와 살고 있어.
그러면서 간절히 어머니를 만나기를 빌고 빈단다.
그렇지만, 꼭 만날 것으로 여기진 않아.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
요즘에도 90살긴 힘든데 말이야.

오늘은 어머니 생신날이야.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열다가,
어머니 생신임을 떠올리며 목이 메이는 화자의 마음이 읽히는구나.

요런 시험문제가 났다면, 틀린 말을 한 사람은 누굴까?

☆선생님: 화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 동현: '나'입니다. 아마 북한에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친척을 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선생님: 화자는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요?

 - 선준: 오랫동안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도시락을 열다가 북한에 계신 그분 생각과 옛 추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화자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바가 무엇이겠어요?

 - 병록: 이산 가족을 둔 한 가정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확장하면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슬픔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작품의 시상 전개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까?

 - 창욱: '~ 모릅니다', '~ 빌었습니다'를 기본 구조로 하여 그 문장의 앞 내용을 조금씩 변화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 작품에서 화자는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했습니까?

 - 현웅: 화자의 일상 체험에서 문제 의식을 찾아 이를 풍자하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당근, 현웅이가 바보지. ㅋ
이 시에서 ‘문제의식과 풍자, 비판’은 나오지 않으니 말이야.

이 시는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분단된 조국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노래한 작품이야.
화자는 생사조차 분명하지 않은 이북의 혈육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생일날 생일상을 차려 놓고 빨리 만나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만날 수도 없고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지.
한 가족이 겪는 슬픔과 고통의 <특수한 경험>을 통해
민족의 아픔까지 되새겨 볼 수 있게 <일반화한 시>라고 볼 수 있어. 



이 시에서 화자와 ‘그분’을 이어주는 매개물이 무엇이었지?
그래. 바로 ‘도시락’이었단다.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찰밥을 보는 순간,
예전 어머니께서 생일날이면 차리던 찰밥이 떠올랐을지도 모를 일이야.
자, 이번에도 ‘매개물’이 되는 시어를 하나 찾아 보자.

다음 박재삼의 시 ‘매미 소리에’란 시에서,
그리움의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시어는 무엇일까, 한번 찾아 보렴.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한낮은 뒤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

머언 어린 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 하고 잎이 되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이 얼굴이 되기도 하던 것을.

오늘은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까지 어여뻐 기뻐 그려 낼 수 있는
명명한 명명한 매미가 우네. <박재삼, 매미 울음에>

찾았어?
그리운 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바로 ‘매미 울음’이지.

'매미 울음'은 그리워하는 대상의 행위까지도 떠오르게 하는 매개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무심코 들었던 매미 소리가
임의 모습과 행위를 연상하게 하여 그리움의 대상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는 거야.

마지막에 ‘명명한’이란 시어는 중의적으로 쓰이고 있어.
매미의 ‘맴맴’ 소리를 흉내낸 의성어로 볼 수도 있고,
‘밝을 명’자로 보면 또렷한 매미 소리로 볼 수도 있겠다.

오늘은 박재삼의 <홍시를 보며>에서
인간인 화자보다 나아 보이는 홍시의 자아 성찰을 화제로
가을을 맞아 ‘정신적 성숙’을 추구하는 시를 만났고,

또 박재삼의 <매미 울음에>에서는
매미 소리를 통해 만나게 되는 임의 모습, 임의 행동을 그려 보게 되었고,

송수권의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는
남북 분단으로 이산 가족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을
어머니 생신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찰밥을 보며
그 도시락 뚜껑을 열며 오열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단다.

이런 시들을 읽으면,
오늘 우리가 행복하게 함께 살고 있음에,
우리가 누리는 이 아무 것도 아닌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깨닫는 일이 중요함에까지 생각이 번진다.
사랑해, 아들~.
우리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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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07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의적' 이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들어보아요. 국어 시간에 참 잘 나왔던 말인데 ^^
어느 새 70회가 되었네요?
오늘 올려주신 시는,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군요. 잘 잠재워야겠어요.

글샘 2011-03-08 21:50   좋아요 2 | URL
시는 사람을 울렁이게 해요.
울렁일 수 있는 눈,
울렁일 수 있는 마음...
좋지 않나요?
울렁임도, 시도...

주인공 2011-10-12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명한 명명한 을 중의적이라고 쓸 수 있나요?
다른 곳에는 그렇다고 안 되어있어서..;;

글샘 2011-10-12 16:02   좋아요 1 | URL
매미 소리가 '귀를 띄우는' 의미가 있는데, 맴맴 우는 소리를 흉내낸 것이기도 하니 중의적으로 볼 수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