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벽 1 - 거대한 슬픔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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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민중 운동의 한 획을 그은 교육운동이 활발하던 그 시기,
아직도 학교의 주역을 맡고 있는 80년대 초반 학번들이 밑줄 그어가며 읽던 소설, 인간의 벽.
나도 해직된 교사들을 생각하며 군생활을 보내던 시절에 이 소설을 읽으며 교실로 돌아오면 정말 아이들을 끝없이 사랑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밤들이 있었다. 

이번에 양철북에서 새로 인간의 벽1,2,3권으로 탄생한 신간을 읽다 보면,
20년도 더 전에 이 책을 읽던 가슴벅참과 슬픔으로 가득하여지는 마음은 여전하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단 핑계만 가득하던 내 머릿속 어딘가엔
아직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의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고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초반의 일본.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지독한 가난과 부정부패 덩어리의 정치 체제로 시작된 현대 일본의 교사는,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지독한 가난과 부정부패 덩어리의 모순된 정치로 시작된 현대 한국의 교사와 출발점이 같았다.
한국의 모든 학교 제도가 일본의 그것을 본딴 것이었고,
서양의 학교 제도가 동양으로 이식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학교를 본따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모자지간처럼 꼭 닮은 일본과 한국의 교육은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을 모질게 몰아치지만, 효율성은 제로인 국가 교육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일본보다 더욱 학교를 지겹게 생각하는 아이들로 가득한 한국. 

교사와 부모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본자리가 어디이며,
마치 담쟁이 덩굴처럼 손에 손을 잡고 넘어야 할 벽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뜨거운 책을 다시 읽으며 나는 감동했다. 

이런 저런 일로 책을 자꾸 놓게 될 때마다 아쉬움에 노란 책갈피를 갈무려두던 일은,
23년째 하고 있는 나의 이 일이,
누군가는 간절히 합격하고 싶어 몇 년을 눈물을 삼키며 공부하는 그 일임을,
그리고 나의 사소한 한 가지 결정이, 몇십 가정에서는 이런저런 논란이 되는 사업이 되기도 하는 것임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이 소설의 두 맥락은 교육과 교사운동이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학생에 대한 교사의 관점, 가정과 교실을 어떻게 연관짓고 구별지을 것인가,
학생은 과연 야단쳐야 하는 존재인가, 그저 감싸 안아주는 것만 필요한 존재인가... 이런 관점을 보여주는 부분과,
교육 운동의 문제점과 현황, 방향성을 밝히는 일이 왜 중요한지, 그것에 대한 견해 차이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지만,
그 견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여야 할 것이며, 교사 운동의 관료화에 대한 경계는 또 어떻게 이겨내야 할 것인지 하는 부분으로 나눠가며 읽어야 한다. 

5학년 부장인 세련된 교사는 학생을 잘 다스릴 줄 알고, 학부모와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할 줄 안다.
냉철하면서도 지적으로 일을 잘 처리한다. 그러나...
B반의 사와다 후미코는 아이들을 사랑하면서도 부부가 돈을 벌기때문에 해고 위기에 처한 교사다.
아이들의 가난에 마음아파하면서, 자신도 해직의 위기에 서서 떨고 있다.
C 반의 사와다 선생은 작은 소리로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교사다.

무뚝뚝한 말투 속에 자상한 애정이 넘쳐난다. 아이들은 애정에 민감하다.
누군가 자신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아주 기뻐한다....
한 마디뿐인 선생의 짦은 말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154) 

이런 사랑스런 구절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이 책을 조심조심 읽으면서, 놓칠 수 없는 구절들을 만나고 느끼는 일은 독서의 즐거움 중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 

반성의 시간을 운영하면서 와다 고스케가 영화 포스터의 키스 사진 등을 가방에 가득 넣고 다니는 것을 조용히 처리하는 시노다 후미코는 따뜻하면서 현명한 교사다. 그러나 가정의 어머니가 그 <성장을 일그러뜨린 바깥의 억압>임을 이 소설에서는 강조한다.  

그 어머니 와다 스미에는 PTA에는 열심이지만 정작 자기 아이한테는 관심이 없다. 그 여자에게 PTA는 자신의 허영심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일 뿐이다.(261)

아, 세상은 어느 곳이나 그렇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곳인지... 오랜만에 옛날옛적에 젖어들었던 감상을 오롯이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과 며칠동안은 연애하는 기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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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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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오십 년 전의 소설을 이제 읽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금의 시간을 사는 사람과 백오십 년 전의 시간을 살았던 사람의 삶 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거리감만이 놓여있다면, 그걸 읽는 일은 시간 낭비일 것이다.
그렇지만...
백오십 년 전을 뛰어넘는 생각이 작은 글자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올 때,
내 머릿속에 그 글자들이 각인되고,
그 시대와 현 시대의 유사성이 너무도 분명하게 느껴질 때,
소설을 읽는 일은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역사를 읽는 것 이상의 사고에 대한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위대한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벨리코프는 자기 생각마저 상자 속에 숨기고 싶어했어요.
그 사람음 무언가를 금지하는 상부의 명령서와 신문 기사만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죠.
하생들이 저녁 9시 이후에 밖에 나가는 것을 금하는 명령서나,
육체적인 사랑을 금하는 기사 같은 것은 그 사람한테 아주 분명하고 명쾌했어요.
금지되었으니 그걸로 끝인거죠.
하지만 허락이나 허가에는 늘 뭔가 의심스러운 요소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끝까지 말하지 않은 불분명한 게 숨겨져 있다고 느낀 거죠.
온갖 종류의 위반이나 일탈, 규칙 파괴 때문에 그 사람은 절망감을 느끼곤 했어요.
사실 생각해 보면 자기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말이에요.(상자속의 사나이 중, 149)

이런 구절을 읽는 동안 나는 어느 수련원에서 쉬고 있었다.
아이들은 훈련소와 같이 규정이 정해져 있고 교관들이 따라다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그렇지만, 이런 소설 속에서 백오십 년 전의 어느 남자가 뇌까린 말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아니,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구절에서,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락하는 일의 불분명함과 금지하는 일의 명확함. 그 사이의 성찰은 대문호의 작품이 가지는 위대함으로 불릴 만 하다. 

행복한 사람이 평안한 건 불행한 사람들이 말없이 자기 짐을 지는 덕분이라는 게 명백하니까요.
불행한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으면 행복이란 불가능하겠죠. ...
만족을 느끼며 행복하게 사는 모든 인간의 문 뒤에 누군가 작은 망치를 들고 서서 계속 두드려대며,
이 세상에는 불행한 인간들이 있고,
그가 지금 아무리 행복해도 삶이 언젠가는 자기 발톱을 드러내 병, 가난, 상실 등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지금 그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듯이,
아무도 그의 불행을 보거나 들을 수 없게 될 거란 점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망치를 든 사람은 없고, 행복한 사람은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거죠.
사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 일상의 소소한 걱정거리들이 그를 조금은 동요시키겠지만,
모든 게 아무런 문제없이 잘 흘러가죠.(산딸기, 183) 

이런 분위기는 프랑스 혁명의 부산물이었을 수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1917년 불행한 사람들이 자기 짐을 내려놓으려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었을까? 

사랑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을 생각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선행이나 악행보다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랑에 관하여, 202) 

이렇게 근대적인 애정관을 표출하기 시작하는 것도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 시대는 찢어지게 가난한 시대였고,
굴 하나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목숨을 잃던 시대이기도 했다. 

"뭔가 방도를 찾아 보자고."
"어떻게..."
"어떻게?"
그러자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멀고도 먼 길이 남아있으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두 사람 모두 분명히 알 수 있었다.(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229) 

안톤 체호프의 많은 작품들 중 몇 작품의 몇 구절로 그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가 찾으려 노력했던 비상구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소설로 분명히 이해할 수 없지만,
진창같이 추악한 일들로 가득한 현실에서,
적어도 그는 그만의 '벚꽃동산'을 찾아 헤매었던 사람이었던 것을 읽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다음은, 그의 '벚꽃동산'을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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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8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이에요 정말... 더군다나 요즘처럼 세월이 하수상할 땐 조용한 곳에서 체호프의 소설을 읽고 싶어져요^^

글샘 2011-03-28 11:59   좋아요 0 | URL
조용한 곳에서 체호프의 소설을 읽는 일... 참 좋더군요. ^^
벚꽃동산은 좀 있어야겠습니다. 학기초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바쁘네요. ㅠㅜ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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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한국은 돈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길바닥에 넘쳐나는 돈이 잡아먹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격이요, 인간성이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시간이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섬, 그런 것들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느린 삶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느림 속에 비로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시간'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갈 시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는 영양떼처럼 경쟁상대 아닌 경쟁상대가 되어
절벽으로 달릴지, 연못으로 뛰어들지 앞을내다보지 못하는 상태로 뛰고 있다.
그들에게 뭔가 시니컬하면서도 묵지근한 훈계를 하려면, 글쎄다. 고미숙의 글로는 역부족이 아닐까 싶다. 

장자에서 죽어가는 물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연못이 말라들어가 죽어가는 물고기에게,
촉강의 물을 내밀어 너를 살려주겠다는 이야기는 너를 죽이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그 물고기를 살리는 것은 한 양동이의 물이라고... 

과연 그런가? 그럼, 그 한 양동이의 물은 누가 누구에게 줄 수 있는 것인데?
사회 시스템이 불비한 시대, 각개전투가 생존의 유일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정답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한 양동이의 물도 물론 필요하지만, 장차 촉강의 물을 내밀어 줄 사람도 필요한 건데 말이지. 

'수유+너머'의 삶을 마치 커뮤니티의 성공한 사례처럼 이야기하며,
박사 학위를 따서 글을 써 먹고 사는 자신의 삶이 무에 엄청 잘 나가는 모범 사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정말 '돈의 달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이 책을 집어던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부모의 가난은 자식한테는 차라리 축복이다.(80)
이런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되는 것 같은데...
물론 한시적으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온 386세대로서 치기어린 한마디를 할 수는 있다 치자.
그렇지만, 부모의 가난을 축복이라 말하는 자는,
가난은 한낱 남루(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자와 비슷한 오류에 빠질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 땅에서 부는 대대로 물려지고, 가난도 대대로 물려졌다.
몇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여 상위층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축복일 리는 없다.  

부유한 집안이 계속 재생산되는 기제를 가진 국가 경제 시스템을 눈 번히 뜨고 보면서,
가난이 차라리 축복이란 말이 나올까?
아이들이 잘 사는 지역에서는 온갖 수를 쓰더라도 아이들이 상류사회로 가는 길을 걷고 있고,
빈곤한 지역에선 어떤 수를 쓰더라도 아이들은 하류 문화에 빠지는 길로 가기 쉬운 현실에서,
가난이 축복이라니...  

그에게 아파트는 '괴담'일지 몰라도, 한국 사회처럼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심하고,
남의 집안 이야기에 과도하게 간섭이 심한 사회에서,
아파트처럼 고립된 편의시설을 즐기는 사람들이 과연 불행하다고 느낄지,
또 아랫목과 윗목이 얼마나 윗목 편향의 비중으로 추운 가옥구조였던지를 떠올린다면,
아파트를 허물고 공동 생활을 즐기자는 주장은 좀 현실감이 심히 떨어지는 것 같다. 

공동체를 최선의 생존전략이라고 부르는 그에게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예전의 시어머니-며느리로 불리던 여성의 공동체가 아름다운 생존의 집단이었다고 생각하냐고.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자는 이야기냐고.
가정이 해체되는 중심엔, 그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동체의 기억이 담긴 거 아닐까 하고... 

간디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던 것은 당시 인도의 사회 구성을 염두에 두었던 발언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마을'을 운운한다는 것은 좀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마을은 없다.
오로지 땅값이 오를만한 '마을'에는 짬짜미로 이뤄진 담합 공동체가 있을 뿐이고,
현관문만 딸깍, 잠그면,
시어머니도 찾지 못한다는 영어로 씨월렁거리는 무슨 프레스티지, 메르디앙...이 앞을 가로막을 뿐이다.
그 단절된 유리창 속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만나서 짓밟혀 보겠느냐고 묻는다면, 다들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의 인문학 역전 프로젝트는 관심을 가지고 읽는 편인데, 커뮤니타스 편에서는 실망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읽기가
숨쉬기 힘들어하는 물고기에게 물 한 양동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촉강의 물을 내밀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을 거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돈의 달인'에 관심이 많다.
그들에게 물 한 양동이도, 촉강의 물의 약속도 없어보이는 이 책은,
호모 코뮤니타스로 살아왔던 고단한 과거가 인식된 유전자로 가득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글쎄, 어떤 의미일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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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3-22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의 서평을 읽으니 마치 책을 읽은 것과 같은 느낌이 납니다. 예전 고미숙씨의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면서요. 저는 (과거의) 386 (이미 486)세대인데, 사회 조건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신분? 상승의 희망이 있던 시대를 살아, 그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있습니다.

글샘 2011-03-25 15:11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을 읽으면, 읽는 동시에 뭔가 부글부글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제대로 몰입이 되질 않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책임질 부분도 많죠.
 
북카페 인 유럽
구현정 글 사진 / 예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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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성'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큰 기준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적으로 독특한 역사를 가졌기에,
향학열이나 학구열보다는 '교육열'만 엄청 강한 나라였기에,
이제 약발이 떨어져가는 단계에서 <자기주도적 학습>에 대하여 엄청 강조하지만,
역시 인프라가 없는 단발성 마약류의 교육은 국민의 무지함으로 결말을 짓는 것 같다. 

대형 서점도 픽픽 자빠지는 현실에서,
소형 서점들이 파는 거라곤, 오로지 이 무서운 나라의 <수험용 문제집 뿐>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하나 끼고 있으면, 문제집 파는 데서 남는 수익으로 적어도 망할 일은 없다.
나도 어디 인문계 고등학교 앞에 가서 서점이나 하나 열까 생각도 했다.
뒤져보면 서점없는 학교도 있지 않을까? 젠장~~~ 

요즘 아내랑 시내 구경을 갔다가 잠시 쉬려고 커피전문점엘 몇 번 간 적이 있다.
시내에 웬 커피숍이 그렇게도 많은지, 그리고 왜 거기엔 그렇게 인간들이 많은 건지...
도무지 커피 한 잔을 맘 편하게 즐길 공간이 못 되었다. 

그런 판국에, 북 카페라니... 이건, 완전히 염장질이잖아.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커피를 한 잔 마실 수도 있고, 맘에 들면 살 수도 있는, 그런 데가 있단 말인가?
조용한 곳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돈을 주고 대여하는 곳이 커피숍인데,
거기서 혼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한국에선 어디까지나 제 책이고,
그나저나 조용히란 단어가 커피숍에선 도무지 먹혀들지가 않는 곳이거늘... 

작가는 베를린을 비롯한 수많은 도시에서 북카페를 찾아다니며 짜릿한 전율을 느낀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라곤. 오로지 부러움, 그것 뿐이었다.
교사가 책을 읽으며 학생을 지도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한국의 교육 풍토에서
학교엔 도서관이 있지만, 거기엔 낡은 지식들이 일렬종대로 정렬해 있을 뿐.
다사로운 커피향과 아울러 도란도란 오가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기는 힘들다. 

우리학교 어디 한구석이라도 빌려서 북카페를 하나 차려볼까?
커피메이커도 하나 들여놓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사진집도 몇 권 구비하고,
사람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도록 스탠드도 한 두개 준비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든 모습은 세상의 어떤 걸작을 구경하는 순간보다 가슴이 뜨거워지게 한다.   
   

이런 구절 하나만 만난 것으로도 나는 가슴이 뜨거워 이런 글을 두드리고 있다. 

스위스에서 불어와 독일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독일어판과 불어판 신문을 자유로이 읽는 노인들 이야기를 읽으면,
이 좁은 땅에서 사는 일이 왜 이렇게도 초라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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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3-2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져요. 도서관에 커피향 가득하게 하고 싶어라. 방향제라도 준비할까봐요. ㅎㅎ
여긴 그러기엔 이용자가 너무 많아요.
자주 가는 카페를 그런 분위기로 만들려고 했는데 오는 손님들이 거의 단골이라 늘 시끌벅적하고 의자가 불편해요.

글샘 2011-03-27 20:03   좋아요 0 | URL
몇 사람하고 이야기해본 결과, 북카페를 만들긴 힘들거 같구요.
제가 앉은 자리에서 향기 강한 커피나 좀 내려야겠습니다.
손님한테 책도 좀 권해 주고. ㅋㅋ
너무 일만 많고 사람을 멀리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건 슬프잖아요.
 
회복탄력성 -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유쾌한 비밀
김주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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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개념은 쉽다.
회복탄력성... 그저 탄력성이란 말만 써도, 회복이 잘 되는 성질이란 뜻이 있을 텐데...
굳이 회복이란 말을 붙인 것은 삶은 좋은 것이었다는 긍정의 힘을 강조하려는 뜻이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피곤한 곳이다.
원인은 '식민지', '분단과 전쟁', '잘못된 정치', '인간의 욕심', '외세의 개입' 등 끝도 없겠으나,
암튼 그 결과로 가장 아이 낳기 싫어하는 땅이 되었고,
젊은이들이나 중년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곳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살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는지...
어차피 살기 힘든 땅, 극복할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저자는 안간힘을 쓰며 다양한 심리학적 실험을 끌어다대면서 독자를 다독거린다. 

그러나... 결론은 초큼 허무하다.
감사하고 운동하라!
십계도 아니고, 이계다.  

189쪽의 실험은 재미있다.
펜을 입술에 물고 있는 실험자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만,
펜을 이빨로 물고 있는 실험자는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같은 환경이지만, 얼굴 근육의 활용이 달라지면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
즐거워서 웃을 수도 있지만, 웃으면 복이온다는 말, 소문만복래가 현실화된 것이다. 

인간의 뇌가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곳임은 널리 알려졌다.
그 뇌를 회복탄력성 높은, 그러니깐 쉽게 말하면 긍정적이고 즐거운 뇌로 만들자면,
자기조절과 대인관계에서 성공해야 한다.
이런 다양한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인데,
일반인들에게 조금 딱딱한 면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표준화된 자료들이 실려있다.
295쪽의 <강점 찾기> 작업도 훌륭한 회복탄력성 찾기 도구가 될 수 있겠고,
66쪽의 <테스트>도 자신의 입지를 찾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겠다. 

이런 도구를 통하여 학생들과 상담과 대화의 장을 펼칠 계기가 된다면 즐거운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 이런 도구를 통하여 발굴된
심각한 문제를 가진 아이들의 경우,
함부로 조언하기 힘든 가정적 문제, 개인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많아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도 하다. 

177쪽에서 활짝 웃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 등이 교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도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늘 학생들을 엄하게 짓누르는 것이 베테랑 교수법의 시초라고 말하는,
학기초에 잡아야 아이들을 잡을 수 있다고 쉽게 말하는 교사들에게,
과연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는 수업이 좋을지, 아이들을 잡는 일이 옳을지...
묻는 일은 어리석으면서도 그 답은 쉽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교사는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딱딱하게 '2호선을 타자', '자습 시간엔 속삭임마저 죄다' 이런 경구들을 급훈으로 모시고 사는 한국의 교실.
거기서 '사랑 바이러스를 퍼뜨리자'가 설 구석이 얼마나 될는지... 올해 시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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