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박물관에서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는 인문학자 12인의 육성
진중권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야흐로 '서바이벌'이 대세다.
슈스케에서 불붙은 서바이벌은 방송을 온통 서바이벌로 물들였다.
미국식 서바이벌 '팻 다운'을 재미있게 보던 중,
잘 생긴 요리사 한 명이 오더니 '예스 셰프'를 유행시켰고,
작금엔 '가요 서바이벌', 슈스케와 위대한 탄생이 세상을 흔들고,
이제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도 꽤나 자리를 잡았다.
이런 아마츄어의 세상 외에도, 프로 가수들조차 서바이벌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수들의 자존심을 건 '나는 가수다'가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예사롭지 않고,
가수들이 '오페라 스타'에 도전까지 한다.
이제 '예스 셰프 2'도 곧 나온다니, 과연 서바이벌의 종결자는 누가 될지 궁금하다. 

요즘 '종결자'가 남발되고 있다.
종결자라면 '최고, 전문가' 정도의 용어인 모양인데,
아무 낱말에든 붙여 쓰는 데는 좀 짜증이 날 정도다.
이 단어가 사용하고 있는 뉘앙스는 아무래도 서바이벌의 최종 승리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남자의 자격 등에서 추구하는 웃음을 위한 서바이벌이나,
우리말 겨루기, 골든벨, 퀴즈 대한민국 등 상식 프로그램에서 일반인의 서바이벌은
그 결말이 큰 파장을 부르지 않는 잔잔한 재미를 주기때문에 시대와 상관관계는 적어 보인다. 

작금의 '서바이벌' '종결자' 전성시대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오로지 '경쟁'과 '승리'에만 가치를 두고,
'나눔'과 '인간'에는 관심을 접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표상으로서의 모습이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는 바 큰데,
사회 일각에서는 인문학의 위상을 연구하는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 반갑게 읽는다.
그렇지만, 역시 연구는 사회의 흐름을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니,
서바이벌 인문학은 언제나 등장할는지... 

인터넷 세대의 <다중> <다중 지성>이 얼마나 미약한지는 이 정권의 폭력앞에 금세 흩어져버린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다중>이 또한 얼마나 큰 힘을 가진 것인지는 내년에 있을 선거 결과를 보면 증명될 것으로 보인다.
심심찮게 <트위터> 덕에 자살을 막았다는 훈훈한 뉴스도 뜨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이 다중 지성의 시대에,
인터넷을 통해 모인 알지도 못하는 청춘 남녀가 함께 펜션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죽어간다.
오로지 서바이벌의 종결자가 되지 못하는 자의 말로는 그렇다는 듯이 말이다. 

임진왜란 이후 이 땅에 새로운 기운이 퍼졌을 것은 당연하다.
도망가는 임금을 욕하며 도성에 불을 지르고 왕자를 잡아 왜군에게 넘겼다는 이야기는 쇼킹하지만,
그런 전쟁이 끝나고 다시 이씨 조선은 300년을 더 유지된다.
물론 새로운 기운이 가득하게 번졌지만, 북벌론 등 탁상공론에 머무른 윤리도덕은 조선의 한계였다. 

참으로 가혹한 역사가 이 땅에 펼쳐져 있다.
오래도록 지속된 <신분제>와 <군주제>의 상처가,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심화되고 비비 꼬이고 뒤틀린 칡덩쿨과 등나무 줄기가 되어, 말 그대로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웃이 이웃을 죽이고, 동족이 동족을 죽인 역사.
역사는 뒤안길에 파묻힌 채로, 진실과 화해 위원회 역시 삽질 뒤로 파묻혀 버린 역사에,
오로지 <국가주의>로 일관한 개발독재의 구호에 세뇌되어 짓눌리기만 했던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 

비판은 곧 '간첩이고 이적행위고 빨갱이'라고 낙인찍던 가까운 과거의 기억에 치를 떨면서도,
제 자식은 돈 벌어서 양반처럼 행세하며 살게 하기만을 오로지 바라던 사람들.
그들이 쌓아올린 담장들은 이 나라를 <아파트>라는 양식의 종결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농촌 사회의 가부장은 폐기되어 버리고,
아파트 단절된 공간 내의 경제적 주권은 여성이 틀어쥐게 되면서, 시댁과의 관계도 함께 단절되어 간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거리감이 생기고,
삼촌 고모와도 명절때나 만나는 가족이 되어버리고,
외가와 이모 외삼촌과는 가까운 친척이 되어 새로운 가족제도가 터를 잡는다. 

폐기된 가부장은 소외되어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는데,
직장의 회식이란 명목으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2차, 3차를 달리는 문화로 이어지고,
성매매와 외도의 오묘한 접점은 곧 가정 파괴와 불륜을 숱하게 뿌려 놓는다. 

이 책은 파괴되어 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그 원인을 진단하기도 하고,
한국의 학문이 도대체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열두 명의 전문가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깊지 않지만 넓고, 다양한 관심사는 해결책은 없지만 충분히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에 찾아온 <손님>으로서의 기독교와 공산주의,
손님이 그뿐인가. 제국주의와 일본, 러시아, 중국과 미국, 세계최초의 다국적군, 그리고 이주 노동자까지...
이 땅을 단일 민족이라고 떠벌이던 교과서는 이미 예전에 폐기되었지만,
아직도 손님에게 넉넉한 밥상을 차려 내기는 커녕,
손님들의 신상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채로, 엉망 진창인 밥상을 내가고 뒤엎는 판국인 셈이다. 

2차대전 이후 신생국가가 한 200개 생겼는데, 제국주의 협력자가 권력을 잡은 나라가 딱 둘이란다.
남베트남과 남한. 한심한 출신이다. 휴=3=3
남베트남에선 미국이 패전했다.
남한의 분단이 제국주의 협력자를 살린 셈이다.
치욕스런 역사는 거기서 시작된다.
늘,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불후의 고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원래 음계는 여럿 존재하는데, 지금은 서양의 조성음계가 지배하는 사회로 바뀌었다.(182)
그래서 여기 적응하지 못하면 음치, 마녀, 정신병자, 미친놈으로 놀림받고 감옥에 가거나 사형에 처해진다.
하나의 제도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데서 새로운 문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한국의 '토론'은 역시 텔레비전이 가로막고 있다.  

한국의 문제를 외국인 유명 학자에게 물었더니,
"한국의 문제는 한국인 여러분이 스스로 고민해야지 왜 저에게 물어봅니까?"
했다는 상황이 한국의 인문학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253)
늘 남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초점이 잘 맞지 않는 안경을 끼고 바라보려 애쓰는,
찡그릴수록 일그러지는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려는 한국식 대학의 모습. 

그 대학에 가려고, 보내려고 또 사다리를 놓으려 하고,
올라간 것들은 사다리를 걷어차려고 하는 이전투구의 세상의 반영이 바로 <서바이벌>과 <종결자>란 양식이 아닌가 싶어,
인문학을 읽으면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역시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아니, 아이들이 힘들게 공부하는 걸 도와준단 명목으로 아이들을 억업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더 그런 생각의 굴레에서 뒹구는 모양이다.

----------

229. 유래없는 참극... 유가 맞다. 

273. 인문학적 성찰을 배재하고... 배하고... 

312. 청중-지금은 경제적인 가치에 너무 치우쳐 있어 인문적 가치가 시되고 있는 추세인데요... 시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4-1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의 협력자이지만, 북한도 별 수는 없는 듯 합니다.
우리 민족 자체의 문제일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MBC의 위대한 탄생은 보고 있지만, 최근 서바이벌 게임이 정말 싫습니다.
경쟁이란 자체를 IT 산업체에서 심하게 겪어본 저로서는 정말정말 1등이나 경쟁이란 말이 싫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는 그게 행복은 아니라고, 아니 행복이라는 자체를 강요하기 싫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

글샘 2011-04-18 14:37   좋아요 0 | URL
이북은 1960년대까지 상당히 독자적인 나라였대요.
미국 간첩선(푸에블루호)이 잡혔을 때 미국이 설설 기었죠. ^^
경쟁, 적자생존.. 사회가 이렇게 무서워져선 안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더 경쟁으로 내몰고...
결국 아이들이 선택하는 건 막막한 죽임이고요... 무섭습니다.
 

오늘 엄마랑 경주엘 갔다 왔어.
지난 주엔 하동 쌍계사 벚꽃길을 보고 왔는데,
경주 보문단지엔 벚꽃이 다 졌더라.
참 금세 지지.
사람도 금세 늙는단다.
믿을 수 없겠지만. 

엄마랑 돌아오는 길에 카이스트 학생들 이야기가 나왔어.
영어로 수업한다는 이야기 끝에,
과연 영어로 수업을 해야 실력이 느는 건지...
외국인 교수라면 당연히 영어로 수업을 하겠지만, 특히 카이스트야 특별한 아이들이 모여있으니 말이지.
한국인 교수라도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건, 글쎄 수업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겠지. 

오늘은 엄마의 사랑을 가득 담은 시를 한 편 읽어 볼게.
나희덕의 '허공 한 줌'이야. 우선 한번 읽어 보렴.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나희덕, 허공 한 줌> 

보통 액자 소설이란 말을 많이 쓴다. 소설의 서술자가 다른 이야기를 하나 꺼내는 경우를 말하지.
이 시에선 액자 시처럼 시가 전개돼. 

처음엔 '이런 얘기를 들었어~'로 시작하지.
그리고 마지막엔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하고 말이야. 

그러면서, 화자는 이 시 속의 이야기를 곰곰 생각하면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비어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어.
화자는 손아귀에 아무 것도 없을 때조차도 욕심으로 가득차 있었던 모양이지.
텅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있곤 했다는 걸 보면 그렇게 보여. 

화자는 버스 안에서,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자신이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려 욕심을 부렸구나.
어리석게도 집착에 눈이 멀었구나... 반성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려 노력했나봐. 

'허공 한 줌' 까지도 자기 소유로 가지려 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그 허공 쯤이야 허공 속으로 돌려주려고 했던 거겠지. 

허공 한 줌.
소유할 수도 없고, 소유할 필요도 그다지 없는 것을 뜻하는 말이겠구나.
그렇지만, 화자는 그걸 소유하려고 했던 일을 돌아보고 헛됨을 느끼는 거야.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 시 속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 보자.  

이야기 속엔 우선 <엄마>가 등장해.
엄마가 깜박 잠든 사이 아기가 난간 위에 올라갔지.
난간 밖은 허공이었고,
잠깬 엄마는 깜놀했고, 이름도 못 부르고... 안타까이 아가를 바라보았단다. 

엄마가 아기에게 다가가 끌어안았어.
그런데 엄마는 아기를 잡지 못했단다.
엄마는 그 뒤에 나오지만, 이미 죽은 엄마였기 때문이야. 
엄마가 아기를 받으려 내민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 줌> 뿐이었지. 

그래서 엄마는 그만 <숨이 멎어> 버렸단다.
이미 죽은 엄마지만 숨이 멎을 정도로 긴장했단다.
다행히 아기는 난간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이쪽으로 떨어졌대.  

 

아기가 놀라서 울자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대.
아까는 죽은 엄마 손에 아기가 받아지지 않았지만,
얼마나 간절했는지,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달린단다.
오로지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만 가득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결국 이 이야기는,
이미 죽은 엄마지만 아기의 안위를 걱정하려 차마 죽지 못하고 눈감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지.
아기가 안전하게 자라는 것을 믿게 되어서야 죽은 엄마는 마음놓고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겠지. 

엄마는 죽어서도 아기만을 위해서 자신을 잊고 애쓰는데,
화자는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을 위해서 애쓰고 살았던지를 되돌아 보았단다.
그러자 자그마한 손아귀 안에 참으로 많은 것을, 많은 지위와 많은 재물과 많은 상들을 얻으려 애썼겠지.
허공 한 줌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것들을 말이야. 

그래서 그것을 깨닫고 허공 한 줌까지도 놓아준다는 화자의 목소리가 쟁쟁 울린다.  

 

국어교과서의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가 생각나는구나.
여친을 위해서 해도달도 다 따다주던 머저리가 여친의 꾐에 빠져 '니 애비의 심장'도 빼오란 말을 듣고 실행하지.
여친을 위해 달려가던 머저리는 그만 엎어져서 심장을 땅에 떨구었는데,
그 땅의 심장이 말했다잖아. "얘야, 어디 다친 데는 없니?"하고. 

민우를 바라보며 기르던 엄마의 심장이 그런 심장이었을 거야.
하마나 엎어질까, 깨질까 조심조심 기르던 엄마 말이야.
민우가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도 언젠가는... 민우 곁을 떠나가겠지.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즐겁게 잘 지내자. ^^
엄마 아빠는 네 옆에 있지 않더라도, 저 시 속의 죽은 엄마처럼 민우의 행복을 위해 힘쓰고 있을 거야.
멀리 떨어져 살든,
오랜 뒤에 세상을 떠나서든,
우리 아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온 마음으로 저렇게 너를 안아주고 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래.
그러면, 삶이 조금 팍팍해도,
폭신한 구석이 있음을 느끼게 될 거야. 

폭신한 주말 밤이다. 
일 주일간 고생 많았어.
푹 쉬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꿈꾸는 다락방 -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꿈은 이루어진다.
2002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가 카드섹션으로 보여준 멋진 문구였다.
과연 월드컵 1승의 꿈은 이루어졌고, 무시무시하게 4강까지 올라가는 기세를 보여주었다. 

장미란 선수도 운동하기 전에 마인드 콘트롤을 위하여 성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매일 꿈꾼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미래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과거에 성공한 몇 사람을 거명하면서, 그들이 성공한 것은 모두 '생생하게 꿈꾸었기 때문'이라는 귀납적 결론을 내리는 일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넘어, 오히려 반례가 더 많은데도 억지로 일반화하려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미래 사회는 불확정성의 사회이고,
다원화되는 것이 극도로 당연시될 사회이다.
그런 이들에게 꿈꾸라는 것은 당연히 다양한 꿈을 꾸고,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자신을 그려 보라는 말과 이어져야 할 것인데,
내 치즈를 가져간 쥐들을 찾으려 노력하기 전에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고,
겅호에서처럼 '함께 변화해야 하'는 것이 미래 사회의 미덕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저자는 인문학을 리딩하면 리더가 된다고... 강변했지만,
리더가 되는 일이 과연 중요한지,
리더의 리더십이 올바른 철학에 기초하지 못했을 때, 삽질로 끝나지 않고 다시 제2의 4.19를 부를 수 있는 시대로 퇴보할 수도 있음을 공부하지 못한 책으로 읽혔던 것처럼,
이 책의 긍정적 심리학도 그 거명된 사례들이 과연 적절한가를 살펴본다면... 내 생각은 글쎄요... 이다. 

그의 철학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 '피카소'와 '반 고흐'의 대조다. 

화가 아버지의 빈틈없는 교육과 후원 아래 네 살부터 그림을 그린 피카소.
그리고 27살부터 그림을 스승이나 인도자 없이 그린 고흐.
고흐가 더 천재지만(?), 피카소는 생생한 꿈꾸기를 했다고?
그래서 고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우울질이었고, 꿈꾸는 피카소는 돈도 많이 벌었다고? 

저자가 스스로 피카소의 환경을 꿈꾸기 좋다는 것을 적었으면서,
그리고 고흐의 환경이 얼마나 화가되기 힘들었는지를 적었으면서도,
고흐가 더 천재인데 피카소가 돈을 벌었다...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공해야 제대로 산 삶이라 볼 수 있다.
돈을 벌어야 성공한 삶이라 볼 수 있다.
우울증 걸리고 자살한 인간은 실패한 인간이다.
돈도 없고 우울한 인간은 실패한 인간이다. 

이런 철학에 기초한 이야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도 아이들에게 의욕을 북돋우려고 긍정적 심리학을 많이 쓰는 편이다.
네스멧 소령처럼 감옥에서도 정신적 승리를 거둔 이들 이야기도 단골이다. 

그러나 "사람의 성공은 돈이나 학벌, 능력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꿈꾸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도,
그가 거명한 이들은 모두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람 또는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다.
꿈꾸는 능력은 물질적 성공이 아니더라도 성공한 삶을 살게 하여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좋다.
그러나, 자신까지 거명하면서 성공의 부류로 잡는 것은 좀 오버액션이다. 

사고라는 것은 하나의 물체다. 사람의 사고가 부를 부른다. 

이렇게 카네기처럼 '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든가,
성공과 부를 동격으로 놓는다면... 이 좁은 나라에서 부를 움켜쥔다는 것은, 글쎄,
견리사의 견위수명이라고 일갈했던 안중근 의사도 꿈이 적었던 인간으로 격하당하는 걸까? 

노력하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는 말도 있다.
그것은 돈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돈을 따라 사는 삶은 결코 부자일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돈만으로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집착은 파멸을 낳는다고 하였다.
생생하게 꿈꾸기가 <권력>과 <물질>을 향한 것이라고 할 때,
그 집착에서 모든 <고통>과 <파멸>이 인과지어진다.
생생하게 꿈꾸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미래>여야 한다.
그 미래는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삶 자체>여야 하는 것이지, <소유의 정도와 가치>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레 꺼내기도 쑥스럽다. 

저자는 마치 어떻게든 네 잎 클로버를 움켜잡으려 생생하게 꿈꾸고 몸부림치라고 외치는 전도사 같다.
주변에 널린 세 잎 클로버를 소중히 여기면서 아름다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말이다.  

근래의 카이스트나 설대 졸업생 자살 사건을 보면서,
네 잎 클로버만 추구하는 철학없음의 경쟁적 공부가 어떤 결말을 보여주는지,
정말 필요한 것은 세 잎 클로버의 소중함과 철학 속의 인간적 가치를 공부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겹쳐 하게 된다. 

다락방에서 꿈꾸는 일은 일생의 보배다.
그러나, 다락방에서 꿈꾸는 자가 이현세의 '마동탁'처럼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달려갈 때 그의 출세에 그저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는 일이기에, 이렇게 딴지거는 글을 끄적이는 것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인생 2011-04-1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나게 글을 쓰셨네요.
저도 솔직이 이 책을 읽고 좋은 점도 있었지만, 과연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숙고가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오해가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인 올바른 성공이고, 진정한 성공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네요.
좋은 책도 추천해 주세요.
항상 좋은 글 올려 주셔서 종종 들르고 있습니다.

글샘 2011-04-17 23:35   좋아요 0 | URL
재밌다니 감사합니다.
이지성의 책이 인기를 끄는 데 저는 종교적 입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해 보이는 저자들이 삶의 리더인 체하면서 자기계발서를 쓰는 일이 가짜 약의 역할을 하면서 진실한 성찰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비판의 글을 쓰긴 하는데... 글쎄요. 성공한 자를 질투하는 글로 비칠지도 모르지요.
종종 들러주신다니 영광입니다. ^^

sslmo 2011-04-17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제가 꽈배기를 먹어 비비꼬였나 봐요.
위의 저런 훌륭한 글을 놔두고 이런 글 앞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걸 보면은요~^^

글샘 2011-04-17 23:35   좋아요 0 | URL
'위의 저런 훌륭한 글'은 뭐고 '이런 글'은 뭐예요?
꽈배기라... 갑자기 먹고 싶다는... ㅋㅋ

sslmo 2011-04-19 02:28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별 하나인 것도 저랑 똑 같았고,
님의 비비 꼬인 리뷰가 재치발랄하게 느껴진걸 보면요~
저, 한참을 키득거렸어요~^^

글샘 2011-04-19 11:26   좋아요 0 | URL
음... 비판적인 글을 비비꼬인 글이라시니.. ^^
간혹 이런 글에 완전 흥분한 댓글이 달리기도 한답니다. ㅎㅎ

castle67 2011-05-03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다 후련합니다. 최근 우연히 경향신문 한바닥 가득 저자에 대해 소개된 글을 보고 일부러 이지성씨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한데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역량에 대해 의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쁜 글은 아닌데 아니 꿈을 구제적으로 꾸며 살아보라는 일말의 자극은 줄지언정 시종 같은 의미의 내용만 뒤풀이 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이 오로지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일종의 로또 복권식의 엉성한 글의 짜임과 전개방식에 화가 나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빌게이츠 부분에선 꼭지점을 이루었습니다. 1만 시간 이상의 노력과 시대적 배경이 맞아 떨어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말콤 그레드웰의 아웃라이어와 너무나 대조가 되면서 정말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훌륭하기만 하다는 찬양에 별다섯, 모두 이런 계발서에 광분한다는 생각이 들고 도대체 문학적 가치는 안두에도 없는듯해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그런차에 접한 글샘님의 글은 시원한 단비 같습니다

글샘 2011-05-03 23:3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들에게 늘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라고, 그러면 이뤄지지라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 비극적인 시대에 특정 종교의 배경을 가지고 이런 책으로 돈을 버는 일은 또 다른 죄악일 수도 있을거란 생각도 합니다.

2012-04-01 0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4-01 13:19   좋아요 0 | URL
저도 흉보는 일은 싫지만,
객관적으로 이렇게 보는 시선도 있다, 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배배꼬인 글을 남긴 거죠. ^^
 

아침 저녁으로 날이 차서 감기가 떨어지질 않는데도,
한낮엔 여름이다. 

요즘 뉴스거리는 인터넷 도박 자금 백억 원을 마늘밭에 숨겼다가 빼앗긴 형제에 대한 것이다.

처남이 인터넷 도박으로 번 돈 백억원 이상을 마늘밭에 숨겨 주었고,
또 그걸 빼서 쓰려다 적발되고 하는 인간의 추악한 욕심과 재물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주는 뉴스였다. 

이런 <이야기>는 많은 생각들을 낳는다.
황금 만능주의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돈을 많이 준다면 어떤 일이라도 벌이겠다는 사람들도 나서는 판국이다.
이야기하자면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인간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시>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자.
우선 최두석의 <노래와 이야기>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 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최두석, 노래와 이야기>

첫 행이 인상적이다.
노래는 심장에 가 닿고, 이야기는 머리로 이해된다는 것.
얼마 전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이 있었든데,
명가수들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노래 경연은 정말 볼만했다.
피디가 좀 편집만 잘했더라도 정말 괜찮은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일곱 명이 정말 쟁쟁한 가수들이니,
하나를 떨어뜨리더라도 일주일에 하나씩 떨구는 건 좀 심하니깐,
3주의 점수를 합친다든지... 뭐, 그랬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훌륭한 가수들의 노래를 듣노라면,
가슴 속이 쓰라려 오기도 하고 간질간질 하기도 하다.
요즘 아이유란 가수가 인긴데, 그 아이의 '레몬 트리' 같은 노래는 참 새침떼기같은 느낌과
뽀송뽀송한 청춘의 멋이 잘 담겨 있더구나. 

왜 인간은 시를 짓고 노래를 했던 것일까?
시의 언어가 <독백>으로 개인의 역사를 펼쳐낸 것이니만큼,
개인의 역사 와중에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것일게다. 

처용가라는 노래가 향가중에 있단다.
처용은 밤늦도록 노닐다가 돌아와보니,
아내와 역신이 동침하고 있었다는구나.
설화 속 이야기인 만큼, 이것은 어떤 상징을 담고 있겠지.
역신이란 질병의 신이기도 하니깐,
질병을 퇴치하는 한 방편으로 무당의 굿과 같은 노래를 불러 퇴치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큰 작용을 하던 노래라도,
음률과 성악을 떼어내고나면 가사만 남는데, 아무 힘이 없다는구나.
처용의 이야기는 오래 남는데 말이지.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는 것은 시간이 흘러 현대로 오면서 시절이 바뀐다는 거야.
정간보는 조선 세종때의 악보로,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칸을 나눠 율명(律名)을 기입하였다고 그래.  

예전의 정간보에 노래가 기록되던 때에는,
시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심장의 펄떡거림>이 담겼었는데,
요즘의 오선지에는
단순한 노래일 뿐, <심장>에 감동을 주는 노래는 없다는 거겠지. 

그래서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박동>을 골라 넣어야 한대.
그러려면, <격정으로 상처난 노래>에 <이야기>란 처방으로 다스리는 수 밖에 없다고 그러는구나. 

왜 그는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는지>
마지막에 밝혀 놓았어.
그것이 <뇌수>의 합리적 사고를 끌어내는 이야기가
<심장>의 펄떡거리는 감성과 어우러진 <이야기시>를 쓰는 이유라고 밝히고 있지.
사실 최두석의 이야기 속에는 뭔가 이야기가 하나씩 담겨있곤 하단다.

그의 '고재국'이란 시를 읽어 보렴.

유난히 뚝심 세었던 동갑내기 고종사촌 고재국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상경해 쟉크 염색 기술을 배웠다. 지독한 염료 냄새에 콧구멍은 진즉 마비되고 늘 골머리까지 띵하더니 상경한 지 삼 년 만에 한 모금 피를 토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굼벵이로 술을 담거 먹었다. 초겨울 마람 엮어 지붕 갈 때 썩은새 속에 굼실거리는 살진 굼벵이로. 매미의 유충이 굼벵이라던가. 농사일 뒷전에서 거들며 지내기 일 년 만에 매미 소리처럼 가슴이 시원해진 그는 다시 상경하였고 굼벵이술을 계속 먹으며 십여 년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쟉크 염색 공장을 차렸다. 비록 동업이지만 바야흐로 찌든 얼굴 펴지고 내 선생 월급을 묻고는 미소짓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 그는 요즘 미칠 지경이란다. 아니 미쳐서 돌아다닌단다. 예비군 훈련간 사이 공장 들어먹고 잠적한 동업자를 찾으러. (최두석, 고재국) 

이 시 속에는 고모의 아들 고재국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는 지적이지도 않고,
인간성이 뛰어나지도 않아.
아니, 오히려 좀 멍청한 인간 같단다.
그렇지만, 그는 <바야흐로 찌든 얼굴 펴지>는 정도로 돈도 벌었고,
그리고 나더니 <내 선생 월급>을 묻고 미소짓는 좀 속물이지.
그러던 그가 미쳐서 돌아다닌대.
자기 재산을 동업자가 들어먹고 날랐다지 뭐야. 

산다는 건 이런 거라는 이야기지.
시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삶이 다 그런 것임을 넌지시 보여주는 것이야. 

뭐, 세상에 잘난 사람도 없고,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그런 거.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그런 거.  

그렇지만 또 세상은 한 세상 살만 하다는 거. 

다음엔 강은교 시인의 '시'를 한편 읽고 오늘은 마치자.

십이월 햇빛 내리는 소리보다도 작게 

낮달 뜨는 소리보다도 작게
노을 지는 소리보다도 작게 

그렇게 그렇게 

바람 소리보다는 크게
바다 우는 소리보다는 크게

벼락 소리보다는 크게
눈물 출렁이는 소리보다는 크게 

공기의 소리이게
떠돌 곳도 없이 가득 떠도는
별의 소리이게
눈뜨지 않고도 하늘 한가운데 눈뜨는.

소리없는 소리이게
그렇게 그렇게 

나를 엎드리게 해다오
구름 밑 흙 속속
시여
캄캄한 밝음이여. (강은교, 시) 

강은교 시인에게 '시'란
작고 작은 소리도 크게 듣는 장치란다. 

나직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시지만,
때로는 강렬하기 그지없는 힘을 가진 것이기도 하지. 

그렇게 시는 화자를 꼼짝 못하게 엎드리게 한단다.
마치 하나님을 믿는 신도처럼 그 권위와 권능의 힘에 경건하게 무릎꿇지. 

시는 <캄캄한 밝음>이라고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예찬하는 어조를 내지른다. 

캄캄한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것이 바로 <시>이고,
구름 밑의 어두운 세상, 흙 속의 답답한 세상을,
그 캄캄한 세상을 환히 밝힐 수 있는 권능을 가진 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지. 

어제도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이야기하면서 시의 힘을 이야기했지? 

시는 그렇게 독자 스스로 상채기를 치유할 수 있는 베타-엔돌핀을 내뿜을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길러주는 역할도 하는 도구이기도 하단다.
어쩌면 이 시의 화자에게는 시가 삶의 목적이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적어도, 인간은 돈을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하는 존재로 살아서는 안되겠단 생각을 많이 하는 봄이다.
일교차가 크다. 건강 조심하렴.


댓글(2) 먼댓글(1)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반딧불이 2011-04-15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두석의 <노래와 이야기>라는 시는 글샘님을 통해 처음 접합니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는 첫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이군요. 좋은 시 소개 감사드립니다.

글샘 2011-04-17 23:32   좋아요 0 | URL
이야기 시를 쓰는 이유를 시로 적은 시론이라 볼 수 있죠.
멋진 시죠?
 
국어 교과서 시에 눈뜨다 - 고등 국어 교과서 문학 읽기 10
김상욱 엮음 / 상상의힘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6수의 시를 풀었다. 

내가 썼던 문학 교실에서 풀이한 시가 이백 여 수였으니, 이 책의 설명과는 많이 겹친다. 

문학 공부, 특히 시 공부는 인생 공부와 함께 하여야 한다. 

시란, 시의 언어란, 
한 사람이 오랜 세월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낸 독백의 결과물이기 때문이고, 
결국 그 언어 속에서는 관조의 아름다움이 짜릿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두고 찬찬히 읽을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한 것인데,
아이들은 모의고사 시간에 시간에 쫓겨 가면서 시를 읽는다. 슬픈 일이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1980년대의 치열한 역사 속이었다.
결국 저자의 시점은 시대를 읽어주는 데 또렷한 새벽별 노릇을 한다. 

시를 문제집이나 해설서로 어렵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1-04-15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런류의 책 많이 나오네요.
제가 읽고 있는 책은 <교실 밖으로 걸어나온 시> 해설 읽는 맛이 좋고, 친근한 시가 많아서 좋아요^*^

글샘 2011-04-17 23:31   좋아요 0 | URL
올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가 왕창 바뀌었거든요.
작년에 중딩 교과서가 바뀌고...
국어는 이제까지 1종이었는데 이제 다종이라서... 해설서가 갑자기 왕창 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