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두어 편 읽어 보자. 

수녀...
수도자의 길에도 몇 종류가 있지만,
가톨릭에서 여성은 신부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야.
이름이야 신부든 목사든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하느님이 이 땅에 뿌리신 선한 마음의 씨앗을 싹틔우겠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곳이 곳 수도원이겠지. 

우리와 가까운 광안리에서 매일을 하느님께 바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는 시를 써오신 수녀님의 시를 읽어 보자.
아빠가 고딩때 좋아하던 시야. 살아 있는 날은...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이해인, 살아 있는 날은>

제목부터 딱 보면, 긍정적이지.
살아 있는 날은... 엉망으로 살자... 이런 건 말이 안 되잖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엔 향기롭게 맑고 투명하게
정말 인간답게 살자.  

사랑하며 살고, 나쁜 짓 하는 사람 꾸짖으며 살자는 이야기가 등장하겠지.
물론 수녀님의 삶은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는 겸손까지 가미해서 말이야. 

마른 향내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화자는 경건하고 반성적인 삶을 떠올리게 된단다.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이게 화자가 추구하는 인간상이야.
이 시에서 당신은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그분.
운명이랄까. 하느님이랄까.
암튼 우리 삶을 건방지게 살지 말고,
겸손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살자는 태도가 아주 역력하단다. 

오늘이 4.19 기념일이야.
이승만의 독재에 저항해 싸우던 51년 전의 이야기.
삶은 늘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단다.
많은 것을 가지면,
더 넉넉하고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소유하는 것과 행복하게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지? 

꼿꼿하게 살겠다는 다짐.
한번쯤 깊이 생각하며 읽어볼 만한 시란다.
다음엔 기~인 산문시를 한편 마음을 비우고 읽어 보렴. 

긴 두레박을 하늘에 대며

                                         이해인

1

하늘은 구름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 나는 세월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날엔 항상 하늘이 열려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하늘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2

그 푸른 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그 들판에서 꿈을 꾸는 내 마음. 파랗게 파랗게 부서지지 않는 빛깔.


3

아아 하늘, 하늘에다 나를 맡기고 싶다. 구름처럼 안기고 싶다. 서러울 때는 하늘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순하게 흑흑 느껴 울고 싶다.

4

하늘에 노을이 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온통 피로 물들이듯 타오르는 노을. 나의 아픈 그리움도 일제히 일어서서 가슴 속에 노을로 타고 있다.

5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다. 타다가 타다가 검붉은 재로 남은 나의 그리움이 숨어서 숨어서 노을로 지고 있다.

6

‘하늘’이란 말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하늘빛 향기. 하늘의 향기에 나는 늘 취하고 싶어 ‘하늘’, ‘하늘’ 하고 수없이 뇌어 보다가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또 하늘을 생각했다.

7

하늘을 생각하다 잠이 들면 나는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 연두색 부리로 꿈을 쪼으며 하늘을 집으로 삼은 따뜻하고 즐거운 새.

8

하늘은 환희의 바다. 날마다 구름으로 닻을 올리고 당신과 함께 내가 떠나는 무한의 바다. 하늘은 이별의 강. 울어도 젖지 않고, 흐르지 않는 늘 푸른, 말이 없는 강.

9

하늘은 속일 수 없는 당신과 나의 거울. 당신이 하늘을 볼 때 보이는 나의 얼굴. 내가 하늘을 볼 때 보이는 당신 얼굴. 하늘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도 흔들림이 없다. 깨어지지 않는다. 자주 들여다보기가 갈수록 두려워지는 너무 크고 투명한 나의 거울.

10

지구 위에 살다가 사라져 간 이들의 숱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하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또한 기억하는 하늘. 하늘은 그래서 죽음과 삶을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

11

하늘이 내려 준 하늘의 진리―

하늘은 단순한 자에게 열린다는 것.

하늘은 날마다 노래를 들려 준다. 티없는 목소리로 그가 부르는 노래. 나 같은 음치도 따라할 수 있는 맑고 푸른 노래. 온몸으로 그가 노래를 하면 나는 그의 노래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싶다.

12

오늘도 하늘을 안고 잠을 잔다. 내일도 하늘을 안고 깨어나리라. 나의 모든 것, 유일한 기쁨인 사랑. 사랑엔 말이 소용없음을 하늘이 알려 주도다. 살아 있는 동안은 오직 사랑하는 일뿐임을 하늘이 알려 주도다.

13

오늘, 당신은 몹시 울고 있군요. 나의 모든 이를 위해서 통곡하고 있군요. 그래요, 실컷 쏟아 버리세요. 눈물 비를 쏟아 버리세요. 세차게, 아주 세차게.

당신이 울고 있는 날은 나도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마음으로 함께 울고 있어요.

14

하늘의 파도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오늘의 내 슬픔 위에 빛으로 떨어지는 당신의 푸른 소리. 당신의 파도 소리.

15

나는 늘 구름이 되어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 “나의 집이 하늘인 것도 다 당신을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요. 높이 떠도는 외로움도 어느 날 비 되어 당신께 가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요. 멀리 멀리 있어도 부르면 가까운 구름인 것을.”

16

꼭 말하고 싶었어요. 지나가는 세상 것에 너무 마음 붙이지 말고 좀더 자유로워지라고. 날마다 자라는 욕심의 키를 아주 조금씩 줄여 가며 가볍게 사는 법을 구름에게 배우라고―

구름처럼 쉬임 없이 흘러가며 쉬임 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하라고 꼭 말하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의 구름이라면.

17

하늘은 희망이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에 댄다. 내가 물을 많이 퍼 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18

내가 소리로 말을 걸면 침묵으로 대답하는 당신. 당신을 부르도록 나를 지으셨으며 나의 첫 그리움인 동시에 마지막 그리움이기도 한 당신. 당신은 산보다도 더 높은 내 욕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세상에서 치닫는 나의 허영의 불길을 단숨에 꺼 버리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일체의 그리움도 당신이 거두어 가신 뒤에 나는 세상에서의 자유를 잃었으나 당신 안에서의 자유를 찾았습니다. 당신의 가슴에서 희망을 날리는 노란 새가 되었습니다.

19

하늘색 연필을 깎아 하늘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글을 쓰는 아침. 행복은 이런 것일까. 향나무 연필 한 자루에도 온 세상을 얻은 듯 가득 찬 마음. 내 하얀 종이 위에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빛 바다. 나에겐 왜 이리 하늘도 많고, 바다도 많을까. 어쩌다 기도도 할 수 없는 우울한 날은 색연필을 깎아서 그림을 그렸지. 그러노라면 봉숭아 꽃물 들여 주시던 엄마의 얼굴이 보이고, 소꿉친구의 웃음소리도 들렸지. 오늘도 나는 하늘을 본다. 하늘을 생각한다. 하늘을 기다린다. 하늘에 안겨 꿈을 꾸는 동시인(童詩人)이 된다. 끝없이 탄생하는 내 푸른 생명의 시를 하늘 위에 그대로 펼쳐두는 시인이 된다.

이 시는 풀이를 하지 않을래.
어떤 연이 가장 맘에 드니?  

아빠는 10번 연이 가장 맘에 든다. 맘이 뜨끔하지. ㅋ

지구 위에 살다가 사라져 간 이들의 숱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하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또한 기억하는 하늘. 하늘은 그래서 죽음과 삶을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고 거짓되지 않게, 올바로 살려고 노력하며 산단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구나 평가받게 되거든. 



화자는 연약하고, 그리움에 애태우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어.
절대자 앞에선 왜소한,
그러면서도 절대자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화자.
절대자는, 하느님은 화자가 아무리 두레박으로 우물물 긷듯 욕심을 내도
모든 것을 허락하는 존재로 상정되어 있구나.  

절대자 안에서 마음의 안식과 평강을 얻는 이는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
모든 것을 그이 앞에다 내려놓고,
그야말로 진인사 대천명의 마음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하느님의 운명이 내려온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말이야.
교회를 다닌다고 되는 건 아니고,
이런 건,
스스로를 믿으며 삶의 철학을 가다듬는 일이 더 중요하겠지.
이런 시를 읽으면서, 겸허하게 삶을 돌아보는 일도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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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0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4-20 08:42   좋아요 0 | URL
어제도 읽었는데... 새벽 4시 40분에 깨어있는 인간이... 기자군요. ㅎㅎ
 
조용헌의 백가기행 조용헌의 백가기행 1
조용헌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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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그룹의 4가지없는 광고 카피였다.
당신이 어디 사는가가 당신이 누군지를 보여준다고...
비싼 집에 사는 당신, 가치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근데, 그 집이 멋진 한옥이었거나 으리으리한 주택이었다면 그럴 만도 하지만,
아파트 광고였으니 참 한심한 일이었다. 

조용헌이 멋진 곳에 지은 집, 아늑한 풍광을 느낄 수 있으며,
주인의 고요하면서도 넉넉한 삶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글을 쓴 것이다.
수십 평의 넓은 아파트를 개조하여 다실로 쓰는 집도 있고,
한평 반의 좁은 공간에서 차 마시며 글 쓰는 사람의 집도 있다 

결국, 집이 얼마나 비싼지를 묻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사는 곳을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겠다.
꼭 비싼 집에 돈 많이 들인 인테리어를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사는 곳을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만날 수 있을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역설적으로
당신이 어디 사는가는 당신이 누군가를 보여준다. 

여유있게 사는 사람들이 인스턴스 커피를 마실 리 없으며,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서로 아웅다웅 다툴 리 없다.
조용한 음악을 즐기면서 욕심내지 않고 제 할일 하고 살아갈 것이다.
조금 더 큰 밥그릇 잡아채려고 다투는 바보들에게 최부잣댁 교훈은 찬물을 끼얹는 일과도 같다.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 논 사지 마라.', '주변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과객 대접을 후하게 하라.',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마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 옷을 입어라.'(91)  
   

한 잔 차를 앞에 두고 은은히 풍겨오는 아릿한 맛과,
찻물 마신 뒤의 달착지근한 물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부터가 있어야 한다.
빡빡한 삶의 모퉁이에 고요한 찻집 하나 숨겨둘 노릇이다. 

   
  차는 풍류가 아니다.
혁명이다.
차를 마시면 우리의 의식주 전체가 바뀐다.
의식주가 바뀌면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다.
다법을 행하다 보면 채식을 많이 하게 된다. 과식을 피하고 소식을 한다.
담백한 먹을거리를 좋아하게 된다. 옷도 그렇다.
복장을 갖춰야 한다. 사는 집도 달라진다. (21)
 
   

멋진 집들의 사진은 부러움을 부르기도 하지만,
이런 책을 읽는 일로도 나는 호사를 누린 듯이 흡족하다.
꼭 자연의 소리가 가득한 공간에 가야만 누릴 수 있는 경지라면, 그곳은 인간 세계가 아니다.
인간 세계 속에서도 곧 '非風流處風流足'을 누릴 수 있어야 함을 작가는 잊지 않고 가르친다.
마음이 있는 곳에 얼,흥,정,멋,맛,격 (75)은 따라올 수 있다.
그리고 어디나 차, 그림, 글씨, 시, 민족 사상 (250)의 5풍류는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거겠다.

마음을 고요하게 밝히는 곳.
그곳이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집이다. 

   
  고요함이 중요한 이유는,
고요함이 있어야만 긴장이 풀리고,
긴장이 풀려야만 내면 세계로 깊이 침잠할 수 있고,
침잠해야만 신비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비 체험은 깊은 행복감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체험의 기본은 정 靜이다.(140)
 
   

사회가 아무리 돈만 밝히는 천박한 사회가 되어서 굳이 사장님이 아니라고 해도, "부자되세요. 대박이요! "하는 인사를 건네는 판국에 이런 고요한 책을 읽는 일은 마음의 밭을 일구는 호미질이 된다. 

당신이 사는 곳.
거기는 얼마나 넓고 비싼가, 투자 가치가 있는가보다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당나라 유우석은 '누추한 방에 거는 글(누실명)'에서 이렇게 썼다.

   
 

산이 높다고 전부가 아니다.
그 산에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
물이 깊다고 전부가 아니다.
거기 용이 살아야 신령한 곳이다.   

군자가 거처하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공자) 

 
   

명당은 정기를 받은 곳인데, 한자로 풀면 밝은 집이 된다.
환경이 밝은 집이기도하고,
공기가 밝은 집이기도 하고,
마음이 밝은 집이기도 하다.
그 중에 제일은 역시 마음이 밝아지는 집이 '명당'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자신의 '휴휴산방'을 벽암록에서 빌려왔다.

 '휴거혈거 철목개화,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  

쉬고 또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라야 한다.
집이 돈을 버는 도구가 되면, 그 집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쉼은 망하는 거고, 이뤄지는 일이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마음을 밝히는 땅, 명당에서, 쉬고 또 쉬노라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피는 일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다 이룰 수 있는 법이다.  

넓지 않은 아파트, 초가집 안에서도 넉넉하게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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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4-20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분의 말씀 중에 새겨들었던 게 운명을 바꾸는 법이인데, 바꾸어 말하면 잘 사는 법 쯤 되겠죠.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 책이랑 관련하여선 명당이 있겠고,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운명을 바꾸는 법 중 한가지래요.

그런 의미에서 님 적선하고 계시는 거니(적어도 제게는요~) 복 받으실거예요.^^

글샘 2011-04-20 08:49   좋아요 0 | URL
운명이 바뀐답니까?
그게 오만한 인간의 사고의 한계죠.
전 운명따윈 있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마치 지구의 온난화나 기후 변동이 불규칙적인 것처럼,
운명의 파동도 말날 때마다 넘어야 하는 파도처럼... 서핑을 즐기려 노력해야겠죠.

그게, 실존(존재)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말 아닐까 하며 산답니다. ㅎㅎ
본질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명리학'이거나 '주역'이라면, 저는 실존의 흔들림에 주목하려고 하는 거죠.

아침부터 스승님 되는 기분도 좋은걸요? ㅎㅎㅎ

2011-04-2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4-20 21:00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제가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한 건, 운명처럼 완전히 고정된 건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는 것이고,
또 운명을 변화시키려 하는 이야기는 고정된 것처럼 인간을 옥죄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자는 것이겠죠.

파도가 파도를 만나면 더 큰 파도가 되는 이치는 참 멋지네요. 고맙습니다. ^^
운명 따윈 없다고 깍두기처럼 살 건 아니겠죠. ㅎㅎ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뭐, 이런 거랄까.

잘 지내는지는 모르겠네요.
일구덩이에 파묻힌 채로 매일 보내는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 하지만, 일 자체는 많아요.
바쁜 와중에 대~충 쓰는 리뷰라 필력이랄 게 없을 터랍니다. ㅋ
책을 억지로라도 읽으려 하고, 리뷰도 억지로 남기려 할 뿐이죠.

최성각은 ... 좋네요. 읽고 보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창비아동문고 43
톨스토이 / 창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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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첫 독서토론 교재로 이 책을 나눠줬다. 

토론 주제는 1.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물질적 가치인가, 정신적 가치인가.
2. 과연 세상은 '바보 이반'의 편인가?
3.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이런 것이었다. 

날카로운 아이들은 동화같은 이야기와 세상은 다르다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아직 이런 책을 읽을 수준이 안 되는 녀석들도 있어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토론은 자유로운 것이어야 하는데,
정답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아이들이 아직 많다.

아이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그리고 나는 바보처럼 사는 걸까, 권력이나 재물을 위해 사는 걸까.
그리고 나는 뭘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성실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나의 성실은 정말 국가 정책의 한켠을 디디고 선 관료제를 유지하는 일이 아닌지... 

요즘 회의감에 무기력해지는 스스로를 추스리기 어렵다.
그런 주제에 아이들의 독서토론을 듣고 있자니...
어쭙잖은 어른인 내가 부끄러웠다. 

역시 근원을 묻는 책을 읽는 일은 늘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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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안녕하세요.
가장 마지막 문구가 가슴에 와닿아서요.
근원을 묻는 책을 읽는 일은 저 역시 늘 부끄럽습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아 그렇구나 하구요.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글샘 2011-04-18 14:39   좋아요 0 | URL
애들을 잘 가르치는 건 어떤 건지... 갈수록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적은 말이에요.
근원을 묻는 일.
월욜인데 벌써 TGIF만 기다리는 마음... ㅠㅜ

sslmo 2011-04-19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결말이 사람에게 한평 땅이면 족하다 였던 것 같은데...
요즘 세상으로 치면 정답이 바뀌어야 하는 결말인 거네요.

전 직업 자체가 근원을 물어야 하는 것의 연속인데,무뎌질려구요~

글샘 2011-04-19 11:25   좋아요 0 | URL
죽는 데는 한 평이면 되지만, 사는 데는 글쎄요...
근원을 묻는 일... 무뎌지면 또 부끄럽잖아요.ㅎㅎ

낙지날다 2012-02-2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독후감 내용 일부를 아고라 유명 논객이 인용했더군요.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글을 쓰는 분인데, 경제를 돈만으로 해석하지 않는 분입니다. 경세제민, 즉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구한다'는 의미가 '경제'라는 말에 있듯이 사람을 빼고 경제 본질을 보기는 어려운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톨스토이의 생각을 비유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학부모로서 글샘님과 동일한 고민을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하니까요. '나의 성실에 대한 회의'는 정확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나찌 수용소 가스실을 성실하게 운영했던 아이히만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현대인은 그런 무감각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궤도에서 잠시 이탈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힘든 일을 하시는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글샘 2012-02-28 02:32   좋아요 0 | URL
누가 되다뇨.
관료제 사회에서 사는 일은 늘 자기 반성을 필요로 한답니다.
더 높은 중심으로 달려가려고만 하다보면, 뒤처진 영혼을 수습하기 힘들겠지요.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잘 가르쳐야죠. ^^
 
문학시간에 소설읽기 2 문학시간에 읽기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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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소설을 읽고도,
도대체 <어른들의 사회>에서 문제시된 초점을 찾아내지 못하기 일쑤다.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세상을 읽으라는 것은 좀 무리이기도 한데...
그래서 시험에 적당한 소설을 찾는 일은 어렵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들 역시 아이들에게 적당한지는 알 수 없다.
아이들이라고 해도, 나보다 무서운 세상을 많이 겪은 녀석도 있을 수 있고,
고딩이라고 해도, 초딩처럼 순수한 세상만을 살아온 녀석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시리즈의 최고 장점은,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줄거리와 생각할 점>을 잘 적어준 친절함에 있다.
어른들에겐 물론 필요없는 과정일 수 있으나,
학생들에게는 세상엔 이런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네가 읽은 많은 이야기 토막들을 일관성있게 줄세우면 이렇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이런 생각할 거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친절함이 특징이다. 

그러나, 친절함이 지나치면 해가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책을 읽는 일이 힘든 요즘, 이렇게 친절하게 읽히는 것이 과연 좋은지는 모르겠다. 

이 책에서 난쏘공의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와 고골의 '외투'로 독서토론을 시켰는데,
역시 사회적 배경에 대한 부족으로 토론이 어려웠다.
역사에 대한 독서가 병행되어야 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독서가 의미있음을 본다. 

오정희의 <순례자의 노래>는 이해받지 못하는 한 여자의 삶같지도 않은 삶의 단절감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마음에서 비가 내렸다. 

루쉰의 <고향>은 정지용의 <고향>의 원본같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느낄 수 없는 고향.
그래서 윤동주도 <백골>이 함께 누웠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한씨연대기> 등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들인데, 적절하게 실었다.
다만, 학생들이 이런 책을 충실하게 읽을 여유가 없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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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올 에이지 클래식
안네 프랑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안네의 일기를 삼중당 문고 작은 책으로 첨 읽은 게 중학교 때쯤이었나보다.
상상 속의 안네는 옹색한 공간에서 갑갑한 생활을 하면서도 톡톡 튀는 끼를 발산하지 못해 안달이다.
늘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멋진 일기를 완성한다.  

  

그러나, 안네는 영원히 소녀 시절에 묻히고 만다. 

 

실제 무덤이 아닌 상징적 무덤 속에서 안네는 웃고 있을까?
인류의 가장 잔혹한 역사 중 한 순간인 시클로 가스실 안에서 안네는 어떤 생각을 하며 눈빛을 잃어 갔을까. 

 

살고 있어도 사는 것이 아닐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안네가 펼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그의 부재를 기화로 하여 오히려 안네를 영원히 남게 하였다. 

1944년 8월 1일 '모순 덩어리'로 시작하는 일기를 쓰고,
안네는 언니 마고트와 아우슈비츠로 간다.
베르벤-벨젠 수용소에서 언니 마고트는 티푸스로 죽고, 안네도 충격으로 죽는다고 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영국군은 수용소를 모두 태웠고, 시신도 모두 태워 한 구덩이에 묻는다.
그들의 무덤도 상징적 무덤일 뿐이다. 

안네가 1944년 3월 14일에 쓴 일기에서,
아, 전쟁이 4년째 접어들었어. 지긋지긋해.
이 썩어빠진 비즈니스가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쓰고 있다. 

열 세 살 소녀가 전쟁을 <비즈니스>라고 표현했다니.
아마도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훌륭한 통찰력을 가진 사회학자가 되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반전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한나 아렌트처럼 폭력에 대한 연구를 평생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누군가와 간절히 이야기 하고 싶어져서...'
이런 구절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래서 '키티'를 창조하고, 페터와 대화를 나누지만, 안네의 마음을 채워줄 상대는 없다.
그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싶지만, 그는 없다.
무서운 세상은 무심히 돌아간다. 

안네가 지긋지긋해하던 비즈니스는 아직도 지구 어느 모퉁이를 돌아,
여전히 바삐 일하는 넥타이 맨 사내에 의해 자행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는 일도 참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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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4-19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삼중당 문고로 읽었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글샘 2011-04-19 11:26   좋아요 0 | URL
삼중당 문고의 손에 꼭 들어가는 세로쓰기 책을 읽던 시절의 가난함이 참 풍족하던 거였죠. ㅎㅎ

북극곰 2011-12-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삼중당으루. ^

글샘 2011-12-20 09:47   좋아요 0 | URL
그땐 그게 행복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젠 책들이 너무 기름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