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아틀라스 시원의 책 1
존 스티븐슨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린이라면,
어린이날 선물로 이런 책을 받았다면 아마 밤새워 잠을 자지 않고 책 속의 세계로 빠졌을 것이다. 

올해 어린이날 전날, 4일 11시에는 전국적인 대규모 재난 대피 훈련을 실시한다고 한다.
아마도 내년 총선이나 대선 전까지는 뉴스에 재난과 북한이 연이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한나라당을 왜 찍었는지, 그러다가 이제 왜 안찍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이날 전날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축제따위엔 관심이 애초에 없을 것이다. 

모든 판타지 소설은 두 세계를 상정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삼총사' 트리오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그 트리오가 남매라는 것.
그리고 남매의 첫째 케이트가 첫 번째 '시원의 책'의 주인공이 되고,
그렇다면 이어질 2,3권에서는 둘째, 셋째가 주인공이 될 터이다. 

해리 포터를 읽고난 뒤엔 판타지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나니아 연대기나 반지의 제왕도 비슷하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 구조로 이뤄진 판타지물이다. 

에메랄드빛 책이 세 권의 '시원의 책'중 한 권이며,
그 책을 통하여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아이들을 통하여
어린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꿈꿀 기회를 가지게 되기도 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 만화방 지배인을 하면서 만났던 만화들의 해피엔딩은
유치하기는 커녕 삶의 희망이 되어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삼 남매가 버려지고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알고 보면 그 아이들이 세계를 구할 인물일 수 있음은,
비록 현실에서 경쟁에 뒤떨어진 아이들이라도,
매일 경쟁에 내몰리는 생활에 지친 아이들이라도,
이런 책을 통해서 마음 속에 자신만의 꿈을 가지는 일도 아름다운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제1권이 '시간의 아틀라스'였다면, 다음 권은 '공간의 아틀라스'와 '삼차원의 아틀라스' 정도 될까?
판타지 소설의 정석처럼 다음 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재미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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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법륜 스님은 결혼해 보지 않아서 결혼 생활을 모른다.
그렇지만 스님의 법문을 읽는 일은 마음 공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꼭 지옥엘 가 봐야, 아~ 지옥은 이런 곳이겠구나 하고 알게 되거나,
몽둥이로 매맛을 봐야, 아~ 나도 맞으니 아프고나 하고 깨닫는 어리석음을 버리라는 거다. 

불교의 4성제, 고집멸도의 뜻풀이에 불과한 이야기다.
그러나, 인간의 집착에 의한 고통, 그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단 하나의 진리, 

놓아 버려라. 
그리고 네가 있는 그 자리를 바라보아라. 

이걸 몰라서 맨날 결혼하기 전부터 이러니 저러니 복잡하게 싸운다는 것이다.
주로 이 법문을 듣던 이들이 여성들이다 보니,
남편이 속을 썩이는데 이렇게 마음을 가져라...라는 식의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물론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을 이겨내야 할 사람은 <자신>이다.
자신의 집착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정말 좋은 법문이다. 

그러나, 법문으로 된다면, 종교가 무슨 필요가 있으랴.
삶은 고해와 같아서 늘상 또다른 고뇌가 뒤따르고 있는데 말이다. 

결혼에서 상대방에게 대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반쪽끼리 만나면 안 되고, 온전한 두 인간이 만나야 한다. 

이런 진리를 몰라서 다투는 건 아니다.
알지만, 또 남녀 사이란 그렇지 않다.
상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되려면, 오랜 삶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자니, 마음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갈등이 틈바구니로 파고들 때마다 수행을 하라는 스님의 말씀이 옳고 또 옳다.
그렇지만, 절벽에 매달린 주제에,
꿀 한 방울에 맛을 들여 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머저리가 인간인 바에야. 쉽지 않은 일이지. 

나만 이로우려 하고 상대방은 생각 안하는 것은 성추행과 같단다.
적절한 비유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고 산다면, 그건 일종의 범죄다. 

상대를 사랑해서 만났다면 상대의 아픈 곳을 치료해 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이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기쁠 때 사랑이고, 그것이 싫다면 스님 말대로 헤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아직 한국 사회는 고리타분하지만,
그래서 더욱 스님의 법문은 필요하다. 

싫으면, 헤어져!
이런 자세가 정말 필요하다.
물론, 정말 싫은지를 곰곰 따져보는 일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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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365
신해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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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이란 만화가가 있다.
북해의 별, 테르미도르, 비천무 등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만화 속 주인공들은 섬세하고 길쭘한 손가락을 가지고 있고,
우수에 젖어 있으면서도 무지 고귀한 눈빛과,
노천명이 노래한 고귀한 족속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가득 등장한다.
뭐, 터프한 대목에서도 우아한 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의 만화의 특징이다.  

신해욱의 이름만 보고 남자인 줄 알았다.
표지에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지만,
스쳐지나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첫 시부터 섬세한 여성의 선이 오롯이 떠올라서 인물을 확인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니, 시집을 여는 작가의 말부터 천상 여성스런 선이다.  

내가 그의 '말'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김혜린의 선을 떠올린 것은,
그의 언어들의 가벼움과 우아함, 가득 차있지 않으면서도 가득찬 것처럼 느껴지는 질감과 양감에 기인한 것이다. 

날짜와 요일을 배당받지 못한 날에
생일을 조금 빌려
일기를 쓰게 된 기분입니다.
산소가 많이 부족한데
저는 공들여 숨을 쉬기나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시인의 말 중에서) 

공들여 숨을 쉬면서
일기를 쓰듯 시를 쓰는 사람.

1. 한 번에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 

매일 다른 눈을 뜬다. 

아침은 어김없이 오고 

뜨고 싶은 눈을 뜬 날엔
은총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뜨고 싶지 않은 눈을 뜬 날에도
키스를 받고 싶다. (눈 이야기 중 부분)

숨 쉬는 일에 이렇게 공들이기도 힘든 노릇 아닐까? 

그의 시 '방명록'에는 많은 자신이 등장한다. 

옆집의 주소로/ 하얀 가발과/ 제2의 얼굴이 왔다.//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온/ 초대였다...
그렇다면/ 세수를 해야한다.//
세수를 한 얼굴로서/ 나는 옆집을 찾는다.//
다으엔 문지방을 밟은 채로/ 제2의 얼굴에/ 하얀 가발을 쓰고/ 난색을 표한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이야."
바로 뒤에서/ 얼굴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리 집에 가자.// 우리 집에는// 이름이 아주 많아.(방명록, 전문) 

어려서부터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을 법한 인물이다.
체육 시간을 싫어하고, 숨쉬는 일조차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달인.
자신을 찾아온 또 다른 자아에게 방명록을 내미는 일이 없었다면,
시인은 숨막혀 이 세상에서 녹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등을 맞고/ 고개를 돌렸다.//
그게 아니라/ 다른 일이 일어날 거야. 틀림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는 인간과 같은 감정을 몇 개씩/ 달그락거려본다.//
이럴 때 인간이라면 보통/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이상하다.//
이렇게 시간이 많은데/ 죽지 않은 지/ 참 오래된 것 같은데.//
나는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데.(과거의 느낌, 전문) 

화자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금세라도 증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삶을 산다.
살아있음의 지속도 그에겐 '죽지 않은 지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삶이 여려지고 여려져서 최소한의 '생물성'마저 휘발된 포르말린 냄새라도 날 것같은 모양새다. 

생물체인 자신이 여기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사회 속의 일원일 때, 비로소 시간은 의미가 있게 된다.
그러나, 생물성이 증발한 화자에게 시간이 가지는 무게는 탁구공보다 가벼울 것이다. 

월요일이 오고 있을 것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나면/ 내 방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고/ 나는 수요일이 아닌 채로/ 수요일을 대신하며/ 옷을 벗게 된다. //
키가 없는 몸으로서/ 문틈으로 내 방을 훔쳐보면/ 모서리, 면, 각/ 수요일과 내가 함께 없는 방은/ 사각의 본질로 충만하다.//
지금 이대로 내 방을 꼭 끌어안고/ 벽에다가 얼굴을 비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수요일이라 할 수 없는 나를 대신 끌어안고/ 수치를 견디는데/ 언제 끝날지 알 수없는 수를 세며/ 월요일 같은 것을 기다리는데//
그런데 누군가 나보다 먼저/ 내 방을 사랑하고 있다./ 키가 크고 있다./ 사소한 훼손도 없이/ 수요일과 중력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손님, 전문) 

방향성 없는 시간은 요일을 잃고 흐느적거리며 부유하는데,
화자는 존재를 느끼고 싶어한다. 

천사에게
몸을 꾸었다.

부족하지 않을 만큼 나에게도 있었는데
시간과의 비례가
나는 아주 좋지 않은 경우였다고 한다.

천사의 몸으로서
앞으로 나는 빚에 시달리게 된다.
 
날개로 간신히 숨을 쉬며
무거운 어깨가 영영
어쩔 수 없어져 가게 된다.
 
천사는 거의 뒷모습으로 웃으며
눈보다 하얀 생각에
파묻혀야 한다고 했다.
 
천사의 몸은 언제나
돈보다 비싸고
시간보다도 길어서
갚을 길이 없다고 했다.

쓸모가 없어진 나의 표정을
결국 나는
몇 번 밖에 본 적이 없게 된다.
 
깨질 것처럼
단단하게 굳은 얼굴이던 순간

그러나 천사의 눈물이
나의 앞을 가로막게 된다.(빚, 전문) 

급기야 그는
몸을 꿈꾸는 천사가 된다.
자신의 현실은 '빚'이 된다. 

빚이 됨으로써 빛이 되는 그의 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역설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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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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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 년의 고독'을 읽다보면 혼자서 키득거리게 된다.
아주 두꺼운 소설이지만 참 재치있는 작가의 필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상당히 설화같은 이야기들이 엮여 있는데도,
주절주절 떠드는 수다 속에서 삶의 진실이 진하게 묻어나는 마르께스의 소설 '백 년의 고독'을 나는 사랑한다.  

손홍규라는 작가의 이 책을 읽으면서 마르께스가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페이소스가 가득 묻은 어휘들을 통해서 삶의 진실의 한켠을 오픈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거다. 

소설은 '내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시작해서,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끝난다.
시의 수미상관처럼, 혈연과 모순된 의붓아버지의 관계. 그 역설을 설명하는 것이 소설가의 책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남아 도시빈민으로 살고있는 터키인 하산,
그에게 입양된 주인공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겪는 이야기는 한국 속의 이국적 풍광이 비쳐진다.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와 충남식당 안나 아줌마.
동네에서 좀 모자라는 아이들과 술주정꾼, 퇴역군인 대머리... 
누구 하나 제대로 정신이 박힌 인물이 없지만, 그들의 삶은 치열하지 않은 순간 하나도 없다. 

   
  추억.
나는 사원에 고인 뭉근한 햇살을 보면서 훗날 내가 이 순간을 생생하게 추억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이 시간은 과거에서 불려나와 재현될 것이다.
어떤 의미는 탈각되어 사라질 것이고 어떤 의미는 덧붙여질 것이다.
그런 재구성을 통해 새롭게 하나의 과거로 다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현재는 미래를 향한 충동이다.(237) 
 
   

결국 이 소설은 서술자의 과거의 사념의 궤적을 재구성한 것이며,
과거의 재구성의 충동이 소설을 이룬 것처럼,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는 미래의 한 지점에서 회상될 추억임을 강조하며 소설을 맺는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에게 통과의례 운운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저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할 일이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을 두번 다시 겪지 못할 것이다.
아무 것도 그냥 우리를 통과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우리 역시 그 무엇도 무심하게 통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 복판이다.
통과의례란 없다. 비밀은 바로 여기에.(239)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역시 미래를 향한 충동을 살고 있는 작가가 할 법한 이야기다. 

   
  운명은 면식범이다.
운명은 우리 주위에 기거하면서 호시탐탐 우리를 수렁에 처넣으려고 기를 쓰는 녀석이다.
우리는 녀석을 안다고 믿기에 방심하게 되고 운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초이면서 최후인 발길질로 우리를 간단하게 끝장낸다.
그러니까 얘야. 네가 겪어보지 못한 운명이란 없단다. 
 
   

운명도 시간의 문제로 푼다.
작가에게 모든 것은 현재라는 이름의 사북에 서있는 것이다.
마치 부챗살이 사북을 향하여 열을 지어 도열해 있듯이...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 구석진 귀퉁이에 터잡고 사는 농경민족의 한계렷다. 

   
 

차이는 유사성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 자는 행복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차이가 유사성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걸 안다 해도 자연스레 생겨나는 불쾌감과 공포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
한번 오줌을 누기 시작하면 방광이 텅 빌 때까지 멈추기 어렵듯이
타인에 대한 혐오감은 그러한 감정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제거되거나
그 혐오감을 정당화할 적당한 이유를 찾아낼 때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그 말을 한 사람은 행복했던 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행복한 자들이라고 한다.(51)  

불우한 청소년들의 꿈은 하나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추상은 구체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행복은 추상에 속한다.
다시 말해 행복은 의사가 되고 싶다거나, 변호사가 되고 싶다거나.
핵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거나,
이런 구체적인 희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는 것이야말로 구체가 아닌 추상으로만 꿈꿀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다.(71) 

너무나 개성적이어서 단조롭기까지 한 나의 언어.
안나 아주머니를 비롯해 이 동네 사람들의 대부분의 언어는 생명이 없는 언어였다.
비유하자면 격발하기도 전에 과녁에 꽂힌 탄환 같은 몰염치한 언어였다.(117)

 
   

차이에서 차별을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문제가 쉽게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차이라는 말에 눈과 귀가 사로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규칙동사처럼 걸어가더니 불규칙 형용사처럼 울어버렸다.(105) 

대머리와 맹랑한 녀석은 둘다 명사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 둘이 함께 걷기 시작하자 일종의 합성 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새로운 합성명사가 되어 거리를 누볐다.(129)  

고통받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언어의 목록은 너무 간단하다.
우리에게는 남을 위로해줄 능력이 다른 능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155)

 
   

문법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의 개성을 표현하는 일도 재미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부자지간이 모두 왼손잡이라는 표지를 달고 있듯이,
하산과 주인공은 가슴팍에 흉터를 달고 있다. 

   
  그 흉터는 역사가 날염된 것이야.
내 몸의 모든 흉터들 역시 내 개인사가 날염된 것들이지.
역사가 날염된 흉터.(221)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인이 정육점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삶의 역설과,
흉터처럼 감추고 싶은 곳에서 그 사람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 모순된 역리를 통하여,
작가는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그것이 흉터처럼 감추고 싶은 것이지만 그 사람의 역사는 거기에 정확하게 기록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게다. 손홍규의 발걸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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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4-2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잘 안먹는 라면이 엄청 먹고 싶었고,
저 규칙동사, 불규칙 형용사 대목에선 독일어시간이 떠올랐었다죠~

글샘 2011-04-28 12:16   좋아요 0 | URL
독일어... 저는 외국어 공부를 참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요즘엔 중국에 갈 일이 있어서 중국어 공부하고 있는데요,
중국식 희한한 향냄새가 언어에 묻어있는 거 같아요. ㅎㅎ
 

오늘은 외로움에 대한 정호승의 시를 한편 읽어 보자.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의 시다.
왜 수선화에게 위로를 주려 했을지 궁금한데 한번 읽어 보렴.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 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수선화는 물가에서 흔히 피는 꽃이다.
그래서 물을 내려다보다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스가 빠진 자리에서 핀 꽃이란 전설도 전해지지.
왜 청자를 '수선화'라고 불렀을까?
물가에서 고개숙인 수선화가 외로워보였는 모양이다. 

화자는 인생은 힘들고 외롭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느님도 때때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인간의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
이 시의 언어는 비비 꼬이거나 배배틀리지 않고 직설적 어법을 쓰고 있다.
그래서 시를 설명할 것은 별로 없다. 

다만,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임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고,
그래서 늘 충분히 사랑받고 위로받아야 하는 갈대같은 존재임을 알 필요가 있기에 읽어보자고 했던 거지.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보라  둘째딸 인혜는 그 소리를 대나무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라 했다 
언젠가 청진기를 대고 들었더니 정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우긴다 

나는 저 위 댓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대나무 텅 빈 속을 울려 물소리처럼 들리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 뒤로 아이는 대나무에 귀를 대지 않는다

내가 대숲에 흐르는 수천 개의 작은 강물들을
아이에게서 빼앗아버렸다
저 지하 깊은 곳에서 하늘 푸른 곳으로 다시
아이의 작은 실핏줄에까지 이어져 흐르는 
세상에 다시없는 가장 길고 맑은 실개천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고 들어보라

그 푸른 물소리에 귀를 씻고 입을 헹구고
푸른 댓가지가 후려치는 회초리도 몇 대 아프게 맞으며 <복효근, 대숲에서 뉘우치다>

 

화자는 대나무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하면서 시를 시작한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그러다가 딸아이가 동심에 젖어 한 소리를 사실적인 자연 현상으로 냉정하게 설명해버린 자신을 반성한다.
대나무 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상상하는 순수한 딸아이의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도록 지켜주지 못한 아빠는 마음 아파하고 있다. 

전에 아빠도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오래오래 설명하다가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했더니 네가 막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지?
동심의 순수함이 그만큼 소중하게 자라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란다. 

이 시에서 '대숲에서 들어보라'는 구절이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다.
처음의 구절은 호기심을 불러오는 구절이라면,
마지막의 구절은 어른의 반성을 촉구하는 구절이 되겠다. 

어른들은
귀도 씻고,
입도 헹구고,
회초리도 맞아야 할 정도로 순수하지 못한 존재임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이 오히려 순수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떤 걸까?
사람을 믿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
사람은 모두 외로운 존재임을 알지만,
그래서 서로 기대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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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8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8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4-3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딸네미가 피리를 귀에 대고 불더군요.
그래도 소리가 들린대요. 대숲이랑 비슷하게.

올려주신 시 두개 모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시입니다.
외로움을 견디는 수선화와 물 소리 치유하는 대나무와 함께 감기도 치유해야겠습니다.
너무 좋네요.

글샘 2011-04-30 12:22   좋아요 0 | URL
피리처럼 관이 있은 물건을 귀에 대면 소리가 들리죠.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면 먼 바닷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40이 넘으면 감기가 툭하면 온답니다.
이불 두 개 덮으면 금세 나아요. 이불 두 개 덮고 주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