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터키의 정치 역시 어지럽기 짝이 없는 모양이었다.
필화 사건에 얽혀 '유배형'을 받은 아지즈 네신.
그는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겪으면서 느낀 것들을 이 작은 책에 적고 있는데,
그가 뛰어난 작가인 이유는 그 고난의 시절에서 결코 비통한 슬픔이 우러나지 않고,
가벼운 우스개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고 있는 점에 있다. 

H2O도 모르고 HOH도 몰라서 호흐란 별명의 사관생도 시절의 친구를 어려운 시절에 만났으나, 그는 아는 체도 않는다.
나중에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다시 만난 그가 부정부패에 불평을 털어놓을 때,
아지즈 네신은 묻는다. "댁은 뉘시오?" 

유배온 그에게 "내가 책을 많이 안 읽은 게 다행이야. 안 그랬다면 나도 화를 입었을 거야."하고 자위하는 경찰도 한심한 시절을 잘 보여준다. 

모든 사람에게 바위처럼 단단한 저항 정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크나큰 욕심이며 
어쩌면 부당한 처분일지도 모른다.(53) 

어려운 시대를 겪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인간에 대하 욕심을 줄이게 되는 모양이다. 

정해진 시각이면 국가가 연주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한국 상황과 비슷해서 어쩌면 독재자들이 하는 짓은 모두 비슷한지...
"당시 터키 국민들은 모두 극심한 두려움에 빠져있었다. 남에게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했고,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신만 빠져나가려고 했다."(96) 

너무도 춥고 배고픈 시절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변에서는 유배자의 몇 푼을 울궈먹으려는 이들로 가득하다.
치킨을 나눠먹지 않으려고 이웃 청년을 심부름 시키는 대목처럼 웃기는 이야기들 속에 담긴 시대는 참으로 쓰라리다. 

어떤 생각이 국가 이익에 어긋나거나
국가 이익에 들어맞는다는 것은,
그 생각이 발표된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떤 생각이 사회에 이익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모든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한다.
당신들은 미국의 원조가 터키에 이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원조라는 핑계로 우리 나라를 착취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생각이 맞는지는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다.
아직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이 확연히 밝혀질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형을 선고받는 것은 부당하다.(218) 

이렇게 독재정권과 말도 안되는 투쟁을 벌였으나, 결과는 당연히 독재자의 승리다. 

당시에 그가 쓴 팸플릿의 제목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단다.
지금의 한국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당시 그는 교도소와 유배지로 갔다. 

아지즈 네신의 풍자 문학을 읽는 일은 유쾌한 경험이지만,
정말 형제처럼 꼭 닮은 정치 지형도를 가진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참 씁쓸한 경험임을 부정할 수 없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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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술집에서 일흔이 된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어디에서나 "튤슈, 당신을 사랑해~." 이런 외침으로 비웃음거리가 되는 사람이다.
그에게 도대체 언제 어떤 사랑을 했기에 그러고 다니냐 물으니,
다섯 살 무렵부터의 여러 사랑을 이야기한다.
튤슈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한 여성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튤슈는 어디에도 없고 어느 순간에도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서의 연인이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저는 튤슈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도 그녀만을 사랑할 겁니다.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에 목을 매고 있죠." 

"하루는 이십사 시간, 터무니없이 짧죠. 잠 잘 때조차 사랑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며 싸워왔던 아지즈 네신의 목소리로 듣는 튤슈의 사랑론은 어쩌면 지극히 메마른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대리석 조각 남녀의 사랑이 '찰나에 만나'는 이뤄짐처럼,
사랑은 시간의 길고 짧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하고, 

독수리와 물고기의 사랑의 춤에서 '빛나는 것 그것'을 발견하듯,
사랑은 조건이 맞춰졌을 때만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담쟁이 덩굴의 사랑이 감아 안아야 할 사랑이고,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도 서로 '품을 수 없고, 안을 수 없는' 공존이 불가능한 상황을 인정하는 사랑처럼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에서 영원을 꿈꾸는 이들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세상의 사랑은 서로 이해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화성 사람과 금성 사람처럼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사랑은 여섯 가지 뿐 아니라 더 많은 이름의 모습을 그저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를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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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중간고사가 다 끝났구나.
사는 게 그런 것 같아.
세상사는 그저 그런 하루가 반복될 뿐인데,
사람은 늘 그 세상을 분절적으로 바라보는 것. 

1년은 그대로 더워졌다 추워졌다 날씨가 변할 뿐인데,
봄인데 춥다는 둥, 금세 더워졌다는 둥, 인간의 변덕이 쉽게 변할 따름이지. 

오늘은 시인에 대한 시를 두어 편 보자.
전에 김광균 시인의 '노신'이란 시에서,
시인의 고달픈 살림살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있었고,
정희성의 '길'이란 시에서도,  
시인으로서의 삶이 주는 가난한 복을 보여주고,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에서도,
굳이 애써 힘든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했던 구절이 등장한단다.  

무수히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
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김광균, '노신' 중>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정희성, '길' 중>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긍정적인 밥)

시인은 남들에 비해서 눈이 밝은 사람일게다.
그러다보니, 남들의 눈에는 쉽사리 보이지 않는 것,
잘 들리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들리는 사람.
그러니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  

관세음보살처럼 세상 사람들(세)의 고난이 보이고(관)
힘겨워하는 소리가 들리는(음) 사람이 시인일 거야.
그저 책을 읽어도 남들은 읽어내지 못하는 구절들을 아파하며 읽어내는 사람들 말이지.

우선 김광섭의 <시인>을 한번 읽어 보렴.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 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김광섭, 시인>

제목이 '시인'이다.
화자는 도대체 시인은 뭐하는 사람이지?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을 거야.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답변이 이 시의 내용을 이루고 있단다. 

1연에서 시인이란 ~~한 '천직'이라고 하고 있구나.
천직이란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란 뜻인데,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거나 힘든 일을 일컬을 때 쓰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업이나, 사람을 가르치는 교직, 성직자 같은 사람들. 
화자는 시인을 그래서 '소중하지만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봐도 좋겠지? 

꽃은 피는 대로 보는 시인.
<보는> 행위가 나왔잖아. 관세음의 볼 <관 觀>
관조한다 할 때 그 '관'이야.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지. 시인의 일이란.
이렇다 저렇다 자신의 판단을 억지로 우겨넣지 않고 바라보기.
꽃은 이래서 핀다 저래서 핀다고 욱대기지 않고,
꽃이 피면 피는 대로 보는 시인의 역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는 시인.
여기선 <노래하는> 행위가 나온다.
시인은 '노래부르는' 사람이지.
세상의 모든 힘든 소리<세음 世音>을 다 듣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 
사설 시조 중에 이런 시조가 있단다. 

 

 '이흠'의 시존데... 뜻은 이런 거야.
노래를 만든 사람, 걱정도 많기도 많았나 보구나.
말로 일러서는 다 못 일러서, 노랠 불러서나 풀었던가.
(노래로 불러) 진실로 풀릴 것이라면 나도 불러 보리라. 
노래는 즐거운 노래보다는 힘겨운 시름의 노래가 더 많은 것도 그런 사연인가 보다. 

그 다음 구절에선 세상 가득한 물건도 다 안지 못하여,
전신을 다 시에 담는 시인이 등장해.
세상의 모든 것을 시 안에 담기 위해서는 온몸을 불사르는 노력이 필요하단 이야기겠지.
그렇지만 한 편에 몇 천 원밖에 주지 않는 세상.
시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원망의 마음도 내지 못하고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게 시인이래.

시인은 늙을 때까지 언어를 아끼는 사람이래.
어리석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부터
세상의 슬픔을 다 껴안아 볼 수 있는 늙음까지,
마라토너처럼 장거리의 고독을 안아보는 시인. 
그렇다고 힘겨워하지 않고 '터덜터덜' 꾸준히 가는 자세를 보여주는 시인. 

<쌀알 만한 빛>이라도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 희망의 씨앗을 영원처럼 품고서 사는 시인.
신이 안 날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땐 보는 척도 안 하는
먼산바라기도 좀 하는 시인. 

나무와도 하나가 될 수 있고,
돌과 냇물과도 일체가 될 수 있는,
나무의 소리도 듣고,
돌과 냇물의 마음도 읽어낼 수 있는 <관세음>의 눈과 귀를 가진 사람, 시인. 

연애를 하면 시인이 된다는 말도 있잖아.
그건, 그만큼 세상의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섬세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말일 거야.
아빠가 민우와 시를 읽자고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란다.
시를 통해 녹아든 세상 이야기를
민우와 나눠보고 싶었던 그런 이유지. 

시인의 삶은 <타는 저녁 놀>처럼 금세 지나가고 없지만,
그의 <시>는 <자국>으로 남아있다는 그런 이야긴가봐.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시인을 드러내기 위해서 '꽃'과 '사랑'을 들먹이고 있지.
시인은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그래서 깊은 고독의 늪에서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
그리하여 평생 오직 인생의 진실이 아로새겨진 시 한 편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사람들임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거란다.

이흠의 '평시조'와 형식은 다르지만,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지 않니?



다음엔 나희덕의 '귀뚜라미'를 감상해 보자.
이 시는 화자를 귀뚜라미로 설정하고 있어.
지금은 미미한 소리지만,
언젠가는 감동적인 소리로 울려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시란다.
한번 읽어 보렴.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나희덕, 귀뚜라미>

1연에서 <매미소리>에 묻힌 귀뚜라미 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라고 했어.
아직은 자신의 시가 세상을 울리는 감동적 시가 아니란 거지. 

2연에서도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할 뿐인 울음.
풀잎도 없고 이슬도 내리잖는 지하도 차가운 바닥,
콘크리트 벽 좁은 틈의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숨막힐 듯>한 노랫소리지.
아직은 인정받지 못하는 무명 시인의 처지를 노래한 것 같아 보이는구나. 

한국의 시단은 어쩌면,
능력있고 시 잘 쓰는 사람보다는 서로서로 자기들끼리 편먹고 인정해주는 시인을 쳐주는지도 몰라.
그래서 이런 시를 썼는지도.
어쩌면 가수가 되고 싶은 꿈으로 가득하던 허각 같은 이가,
노래도 제대로 못하는 가수들을 보면서, 이런 시를 읊은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내 소리로 세상을 울릴 수 없어.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이라서...
매미는 높은 나무 위에서
온 세상 사람 다 들으라고
매웁게 매웁게 울어대는 곤충이잖아.
그렇지만, 세상은 늘 한결같지 않은 거야. 수시로 변하는 것. 

가을이 오면,
지금은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겠지?
됐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가득 담긴 노래란다. 

화자 자신이 귀뚜라미로 변신하게 되지.
자신의 울음이 누군가의 가슴에 실리기를,
시인이 자신의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감동으로 묻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쓴 시겠지.

누구나 지금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지만,
언젠가,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라고 알지?
소파는 '작을 소, 물결 파, 小波'라고 일본의 유명한 어린이 운동하던 분의 이름이래.
고가와라고 읽었을 거야. 아마도... 

엊그제가 어린이날이었잖아.
방정환 선생님이 쓴 동시중에 귀뚜라미 소리란 노래가 있단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어쩌면 더 추워질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셨는지도 모르지.
일제 강점기를 살기는 참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요즘 인기인 아이유란 가수가 있지?
영어론 IU라고 쓰지만, 중국어로 '아이'는 '사랑한다'는 뜻의 동사니깐,
너를 사랑한다는 뜻의 의미도 담고 있겠다. 

어린 나이의 가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으로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해 보이는 모습이 이쁘더구나.
민우도 뭘 하든
자신의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살자꾸나.
세상은 넓어 보이지만,
또 매미나 귀뚜라미 한 철이듯,
시절은 금세 지나가는 것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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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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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압이 작용하는 물 속도 그닥 자유로운 공간은 아니다.
물 속에 녹아있는 산소는 대기 중의 산소에 비하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아가미의 작용으로 운동에 충분한 산소를 얻을 수는 있는 모양이다. 

인간은 물 속 인어공주의 삶이 인간의 삶을 동경하여 다리를 얻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곤 하지만,
물의 수압을 견디기 위해 심해 바닥에 납죽 엎드려버린 광어란 놈도 있게 마련이다.
폐를 얻어 뭍으로 나온 것을 진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쓰나미로 모든 것을 한방에 잃게 되는 미약한 삶의 방식을 인간은 보지 못하는가. 

아가미를 단 소년이 있었다.
호수. 이래호.
강하. 강과 하천. 
해류. 바다의 흐름. 

이렇게 상징적인 이름들은 이녕이라는 여성, 그를 아름답다고 했던 여성과 화해하지 못한다.
이녕은 '곤'에게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소설은 줄거리가 빈약하다.
그리고 뒤섞여있는 시간 구조인 '복합 구성'이 긴밀한 플롯을 짜맞추지 못한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부유하듯,
불쑥 튀어나와 불쑥 사라진다. 

단편 소설로 썼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많이 드는 아쉬운 작품이다.
서사가 드러낼 수 있는 인생의 복잡한 단면들의 뒤엉킴을 드러내기엔,
지나치게 단순한 관계망으로 전체를 포괄하려 했다는 느낌. 

서정시로 승화시켰더라도 좋았을 꼭지들도 많았는데,
욕심이 앞선 소녀들이 창작한 소설들이 흔히 저지르듯,
세상살이에 경험이 없는 자신의 단점을 감추려고,
몽롱한 시간과 몽롱한 공간과 단조로운 인간관계, 그리고 치열한 삶의 부재로 단조로운 소설을 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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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게 해 준다는 것을

그대. 

아파하지 말게나. 
슬퍼하지도 말게나. 

설혹,
어느 날,
뒷머리가 너무 무겁고 지쳐서
병원을 들렀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몇 시간만 늦었더라면 뇌혈관이 터져서 큰 병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삶에 무거운 경고를 들었다손 치더라도, 

몇 시간 일찍 병원에 들렀던 덕분에,
그리고 삶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사는 나날임을 배울 기회를 얻은 것에
우리 고맙게 사세. 

비록
건강에 자신감을 가진다고 오만하진 않았지만,
삶이란 놈은
내가 제어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는 아직도 젊은 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오던 나날이었음에 부끄러워할 것도 없을 걸세. 

고통의 순간을 겪음으로써,
인간의 한 호흡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루며,
살아있다는 단 하나, 그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의 존재만이 천상천하 최고의 가치임을 배우게 하지 않았던가. 

그대가 배운 교훈은 
비록 날마다 운동을 하는 단조로운 삶을 영위하며
존재하기 위해 힘써야 함이라는 사실일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하나의 교훈을 모르는 인간들이 만드는 세상사는
또 세상을 아픈 줄도 모르고 아프게 사는 일에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하네. 

그대,
절망을 만났던 그 곳에서,
비로소 희망이 터질 수 있음을 배웠다고 하는가?  

그렇게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네.
길을 잃어 봐야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던가를,
풀포기 그늘진 나무 그늘의 향그런 내음새들이
얼마나 사랑스런 것이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군. 

아니,
길을 잃어 보면
모든 아름다움과
향기로움과
세심한 고마움으로 얽힌 것들의 연속이고 지속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
그리고 잃고 나서야
비로소 향기와 아름다움의 가치가 고마운 것임을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르고 말이야. 

길을 잃었을 때,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람이,
저 멀리서
멀리서 밝히는 하나의 불빛이
그렇게 의지가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게 살다 가는 존재인 게지. 

길을 읽었을 때,
비로소
세상은 막무가내의 어둠 속임을 깨닫게 되는 거지.
그래서 좌절하려는 순간,
비로소,
맞잡을 손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이적지,
지옥이었던 타인이,
타인과의 비교가,
타인으로 인한 부러움과,
타인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이 모든 것들이 속절없이 가벼운 것들이었음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른다네. 

내가 굳이 이것은 버리고 저것은 얻으려 애썼던
그 가치라고 내세우던 것들 역시,
아무런 가치로움 없는 것임을,
내 몸을 통해 가르치려 하는 운명의 힘을
고맙게 여길 수 있게 된다네.
고맙게도. 

산 속에서  
어둠 속에서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아본 사람만은 알 거야.
산줄기들의 어두움은
새까만 어두움보다는 두렵지 않음을...
산줄기가 보이는 정도의 어두움은
새까만 어둠의 지경보다는 밝은 것임을...
아무리 작은 지붕 속의 삶이라도,
아무리 팍팍한 삶들의 연속일지라도,
죽음의 그 거리감 앞에서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 동지가 되는지 말일세. 

그대,
만나 보았나?
만나 보기나 했던가? 

그저 쉬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꾸던 그대가
쉼보다 계속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느끼게 되는 그 순간을 만남이,
삶의 본질보다,
실존의 가벼움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순간임을,
그리고,
먼 곳의 불빛이
비로소 나그네 삶의 쉼보다
나그네의 걸음걸이에 더욱 즐거운 노랫가락을 덧붙여 줌을 말이지. 

그대,
거기 살아 줘서 고맙네.
그리고
나도 이제 욕심내지 않기를 빌어 줘서 진정 고맙네. 

삶이란
그대나 나라는 인연의 고리를 벗어나,
한 순간 숨 쉬는 것임을 배우는 일임을,
불빛을 바라보며 걸어갈 때,
마음을 내려 놓고 그저 걸어가는 것이 소중한 일임을
배우는 순간들에서야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일세. 

먼 곳의 불빛이란,
이름이 불빛일 뿐. 

삶에 불빛도, 팔뚝도
내가 지금 숨쉬는 것에 비한다면,
해골바가지의 한 모금 물인지도 모른다고 그랬던가.
그토록 달디 달았던 물도,
한 순간,
한 호흡 돌이키고 나면,
그토록 역겨운 물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고 그랬던가. 

고마우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길을 걸어가고 있음의 고마움을 알게 됨을 가르쳐 준 그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네. 

이슬맞은 나그네라야만,
비로소 추녀 밑의 차가운 자리라도
고마운 베풂임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임도...
비로소 배울 수 있다네. 

산 속에서 만난,
그대와,
그대의 먼길과,
나의 앞길과,
지금 이 순간의 삶. 

그대.
고맙네. 

그리고,
우리 부디 잊지 말고 사세.
지금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야말로,
나의 호흡에 가장 방해물이 되는 것임을. 

그리고, 나의 호흡만큼 중요한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음을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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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5-0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과의 비교가,
그로인한 부러움이 저를 곧추 세우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말이죠.
절, 좀 부끄럽게 만드시는군요~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__)

글샘 2011-05-04 12:50   좋아요 0 | URL
비교와 부러워함이
그리고 적절한 스트레스가 삶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적절한 스트레스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괴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마주하게 되잖겠습니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쉬운 사실을
매일 되뇌고 살아야 할 나이입니다.
나도 그대도... ^^

세실 2011-05-0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만 걷지 않아도 목이 뻣뻣해요.
요즘 제가 길을 잃은 걸까요? 저는 똑바로 가고 있는거 같은데.....
포용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비 오는 토요일 아침은 참 운치있어요. 오늘처럼요^*^

글샘 2011-05-07 20:49   좋아요 0 | URL
늙었어. 늙었어요... ^^
저는 목은 안 뻣뻣한데,
밤에 잠을 못 잔답니다. ㅠㅜ
너무너무 피곤해서 누웠는데,
두시간 세시간, 꿈지럭거리면서 일거리가 떠올라서요. 이거 나쁜 징조예요.

비 오는 토요일 아침... 지금은 안개낀 토욜 밤인데, 참 운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