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기행 - 나를 찾는 또 하나의 순례
이시현 지음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내와 '법정 스님의 의자'란 영화를 보았다. 

법정 스님의 손길이 묻은 빠삐용 의자와,
스님이 거쳐가신 삶의 궤적, 그 허무한 줄기를 따라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간혹 스님의 근영도 만날 수 있어 반가웠고,
스님의 말씀과 글귀를 구수한 최불암의 목소리로 듣는 일도 즐거웠다.
아내가 '숫타니파타'를 구해 읽고 싶다고 해서 찾는 중에 이 책도 같이 만났다.
시절 인연이란 그런 거다.
구태여 구하지 않아도 우연한 골목에서 툭 어깨를 스치게 되는 것. 

이시현이란 작가는 방송 작가인 모양이다.
그가 힘겹게 살아오는 길목에서
내려 놓아야 했던 것과 지고 가려고 안간 힘을 썼던 것을 생각하면서,
법정 스님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 본다. 

이 책은 그래서 법정 스님의 책이면서,
이시현의 책이다. 

그러나, 이시현의 책도 스님의 책도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이시현의 생각들은 대개 스님의 사유로 인한 결과물이기도 하고,
스님의 글을 읽고 나서 느낀 감상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스님의 고적하면서도 상쾌한 삶의 발걸음을 만나는 일은 반가운 일이었고,
작가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힘을 얻어나가는 모습을 만나는 일도 고마운 일이었다. 

거문고의 줄이 너무 팽팽해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해도 안된다는 부처님의 법문처럼,
삶의 줄을 너무 당기도록 살아도 안 되고, 너무 풀어버려도 안될 일이다. 

법정 스님을 만나고 싶은 이나,
마음의 고단한 짐을 부려놓고 싶은 이가
시원스런 사진과 함께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삶의 향기를 누리고 싶다면 한번쯤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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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5-30 23:30   좋아요 0 | URL
비교하지 말고 시샘하지 말고 성내지 말고...
에고... 그러려면 성자가 되어야 겠군여. ㅎㅎ
행복한 유월을 맞이해 보세요. 법정 스님과 함께...

마녀고양이 2011-05-3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당겨야 할 때이니 바짝 당기고
곧 이 시점이 끝나면 저도 <법정 스님의 의자>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개봉관 다 내리겠죠?

글을 읽으니, 숲의 피스치톤 향과 절의 향불이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글샘 2011-05-30 23:31   좋아요 0 | URL
지금도 법정 스님의 의자는 하루 세 번 하던데요.
아니, 벌써 내린거 아닌지...
마음에 향불 하나 피워 두시고,
님이야말로 정서적으로 스스로를 잘 파악하고 계시던데요. ^^
님의 글이 피톤치드보다 신선한 거 아세요?

마녀고양이 2011-05-30 23:50   좋아요 0 | URL
제가여, 글샘님의 댓글에 피톤치드를 보고 허걱해서
다음으로 달려가 피스치톤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나왔을까 검색했답니다.
그런데........... 피스치톤이라고 잘못 쓴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더라구요.

대체 이 단어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갸우뚱~
이러나저러나 오늘 단어 하나 제대로 배우고 가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글샘 2011-05-30 23:56   좋아요 0 | URL
phytoncide...네요. 저도 지금 찾아보니...
그러게요.. 저도 피스치톤을 찾아보니 그렇게 틀리게 적은 사람이 많은데, 대부분 산악회원 블로그인 걸로 봐서... 안내판에 틀리게 적은 곳이 많은 모양이군요. ^^

얄밉죠? 글자 틀렸다고 말도 안해주고, 그러니깐... ㅋ
직업병이려니 하세요~
 
반크 역사 바로 찾기 3 : 요코 이야기의 진실을 찾아라! - 일본 역사왜곡 1편, 개정판 반크 역사 바로 찾기 3
이다 글, 키네마인 기획 / 키네마인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요코 이야기'란 책이 있었다.
한 일본인 여성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쓴 책인데,
이 이야기가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되어 가르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용에 말도 안 되는 구석이 많고,
일본이 피해자라는 식의 서술이 많이 한인 사회에서 강하게 항의했고,
나중에는 교재로 채택되었던 일이 무위로 돌아간 학교가 많다고 한다. 

요코 이야기 뿐만 아니라, 독도 문제도 그렇고, 동북 공정도 그렇고...
한국의 대응은 정말 냄비와 같다.
문제가 생기면 뽀로로 끓어 오르고, 열받아서 무슨 사고를 저지를 것만 같다가도,
금세 잊어 버리고 만다. 

어쩌면 정부는 권력의 쟁취에만 관심이 있지,
올바른 역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한국에는 '우익' 따위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익'은 그저 자기들에게 '돈되는 이익' 뿐이다. 
권력을 잡고 돈을 먹기 위해서라면 역사 서술에 대한 편견도 '국익'을 앞세워,
엉터리로 수정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입에 게거품을 무는 자들.
그들이 말하는 한국사는 어디까지나 '친일 사관'에 묶인 한국사에 한정한 것이다.
국사 교사가 재량껏 다양한 교재를 선정한다면 그들은 빨갱이 운운하면서 또 게거품을 물 것임은 자명하다. 

역사 서술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 서술에서는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코 이야기를 쓴 작가는 자신이 정말 그렇다고 착각해서 쓸 수도 있다.
역사란 것, 특히 미세사일수록 일그러진 면을 보여주기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피폭은 가장 큰 피해라고 여길 수 있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여 널리 알리고,
다른 나라의 역사 수준들이 어떤지 다양한 번역을 통하여 접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우물 안에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제삿상 차림은 미래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기도 하고. 

암튼, 반크 시리즈로 역사 바로찾기 등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일은 중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는 세계사의 퍼즐 중 한 조각으로서만 가능하므로,
국수주의적 편견이 들어갈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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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1-05-3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에 우익이 없다는 말씀.. 절절하게 와 닿아요~~
친일 매국노와 사기꾼, 가끔 괜찮은 듯한 -의심스러워서 판단이 안 섬- 정치인 몇 몇..
한숨만 푸욱 쉬다가 갑니다.ㅠㅠ

글샘 2011-05-30 23:28   좋아요 0 | URL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 건전한 우파는 이승만 시절에 다 암살당하죠.
장준하나 함석헌, 문익환 ... 뭐, 전부 우파인데도 맨날 감방생활이었지요.
한국에선 좌파가 설 자리는 애초에 없었구요. 우파도 조금만 정권에 위협적이면 바로 제거했던 슬픈 역사가... 고 노무현 대통령도 뭐, 전혀 좌파가 아니었잖아요. 제거됐죠. ㅠㅜ

pjy 2011-05-30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익이든 좌익이든 각자의 편협한 해석이든 제발 말할수 있고, 그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기다 아니다 죽어라.. 어디 뭔 말을 꺼낼 수가 있겠느냐 말입니다요--;

글샘 2011-05-30 23: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말할 기회를 안 주죠. 아니, 말하면 빨갱이니까 말입니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의 거창 읽다보면, 정말 눈물만 납디다. 이게 나라인지... 쪽팔리죠.
 

곧 6월이구나.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추운데,
금세 여름이 될 모양이다.
건강한 여름 맞기 바란다. 

오늘은 김지하의 시를 몇 편 읽어 볼까 해.
중학교때 김지하의 '새봄'으로 국어 교과서를 시작했던 너희라,
김지하 이름은 들어 봤을 거다. 

우선 아빠가 대학시절 참 좋아했던 노래, '새'를 한번 읽어 보자.

저 청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저 눈부신 산맥
왜 날 울리나
날으는 새여
묶인 이 가슴

밤새워 물어 뜯어도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피만이 흐르네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땅을 기는 육신이 너를 우러러
낮이면 낮 그여 한번은
울 줄 아는 이 서러운 눈도 아예
시뻘건 몸뚱어리 몸부림 함께
함께 답새라.
아 끝없이 새하얀 사슬 소리여 새여
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

낮이 밝을수록 침침해가는
넋 속의 저 짧은
여위어가는 저 짧은 볕발을 스쳐 떠나가는 새
청청한 하늘 끝

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덧없는 가없는 저 구름
아아 묶인 이 가슴 <새>


다섯 연으로 된 시인데,
각 행이 아주 짧고,
전달하려는 내용도 복잡하지 않아. 

1연의 '새'는 자유롭지.
청청한(푸르고 푸른) 하늘, 흰 구름, 눈부신 산맥,
그 위를 날으는(시적 자유, '나는'이 맞지) 새.
그 새가 화자를 울려.
화자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야. 
<묶인 이 가슴>이기 때문에 새가 부럽단다.

밤새
자신을 물어 뜯는대도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
이건 좀 정신이 나간 사람의 행동 같지.
정신질환자들이 자해를 잘 한대.
스스로가 가치있게 여겨지지 않을 때,
스스로를 해칠 때,
살이 아프고, 피가 흐르는 걸 보면서, 자기가 살아 있음을,
스스로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는 슬픈 역설을 쓰는 것 같구나. 

피만 흐르는 감옥 안.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는 세상.
감옥에 갇힌 자신은 과연 '존재'감이 느껴지는 걸까? 

김지하는 사회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한 시 <오적>을 썼다고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 들어가서 온갖 고초를 겪었단다. 

3연에선 고문을 받고 처절하게 비참함을 겪는 신체의 슬픔을 적고 있다.
발랄하게 걷지 못하는 육신,
땅을 기는 육신이,
너, 곧 자유인 너 - 새를 우러러보면서
낮이면 낮마다 그예 한번은 눈이 뻘겋게 부르트도록 울어대는
그래서 몸부림치게 되는,
함께,
함께 답새라(뜻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새처럼 되고 싶다는 의미일 것 같아.). 

육신은 정신을 놓아 버렸지만,
끝없이 어디서 새하얀 사슬 소리가 귓전에 올리는데,
새여,
죽어서 너 되어,
자유를 얻는 날까지를 기다리는 이 나약한 육신의 멀고 먼 기다림이여...

그러나,
화자가 지금 있는 곳은,
낮이 밝아가면 밝아갈수록 침침하게 어두워가는
감옥.
밖의 세상이 밝을수록
이곳은 어둠이 짙어지는
감옥의 역설. 

낮이 밝아질수록
화자의 넋은 침침해지고,
저 짧은 볕발
저 짧은 햇살의 토막난 사각형,
철창 사이로 내려앉은 네모난 햇살 위로
여위어가는 창살의 네모를 스쳐 떠나가는 새. 

푸른 하늘 끝,
푸르른 산맥 너머
덧없이 흐르는
끝도 없이 흐르는 저 구름을 보면
화자는 묶인 이 가슴이 원통하고 한스러워
눈물이
원통한 분노의 눈물이 흐른다. 

이 시는 80년대 어두운 사회에서 불리웠던 슬픈 노래였단다.
이 시는 1연과 5연이 마주보는 수미상관의 형식을 띠고 있고,
파란 하늘과 침울한 감옥 안의 분위기가 대조적인 시구나. 

초기 김지하의 시는 이렇게 억압적 현실에 저항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의 노래가 많단다.
마찬가지 저항시 중 '녹두꽃'을 읽어 보자.

빈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타네
불타네
깊은 밤 넋 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모질수록 매질 아래 날이 갈수록
흡뜨는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살아
열쇠 소리 사라져버린 밤은 끝없고
끝없이 혀는 짤리어 굳고 굳고
굳은 벽 속의 마지막
통곡으로 살아
타네
불타네
녹두꽃 타네
별 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 횃불 아래
횃불이여 그슬러라
하늘을 온 세상을
번뜩이는 총검 아래 비웃음 아래
너희, 나를 육시토록
끝끝내 살아. <녹두꽃>

<녹두>는 콩보다 작다고 해서 키가 작았던 전봉준을 일컫던 말이지.
감옥에 갇히고,
사형 선고까지 받은 시인은,
감옥 안에서
왕조 국가, 양반과 상놈 국가의 질서에 반대하다 죽어간 녹두 장군 전봉준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노래를 떠올렸을지도 몰라. 

앞서 이야기했든,
녹두 장군과 시인은 모두 감옥에서 <죽음>을 맞게 된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그들의 '의지'는 죽지 않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지.
그것을 이 시에서눈 <살아>라는 말로 계속 반복하게 돼. 

빈손 가득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이렇게 말이지.
화자는 감옥의 쇠창살 틈으로 비집고 내려 앉은 햇살을 보고 있어.
거기서 살아있는 자신을 느끼게 되지.
그 햇살은 따스했을까? 눈부시게 따가웠을까?
감옥 안에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빈 손>이었지만,
햇살을 가득 움켜쥔 화자.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이 붉게 비치는 저녁에도 화자는 죽지 않고 살아 있어. 

화자의 열정은 불타고 있지.
깊은 밤 고문당한 깊은 상처를 이기고,
강한 넋으로 살아 있어.  

모진 매질 아래
날이갈수록 두 눈을 흡뜨면서(치켜뜨면서)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사는 화자와 녹두 장군. 

감옥에 갇힌 화자에게
열쇠 소리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달콤한 유혹인데,
그 소리마저 사라져버린 밤.
혀는 잘리고 굳고 굳고 굳어.
굳은 벽속의 마지막 통곡으로 살아있는 화자의 애절한 목소리. 

목이 다 쉬도록 꺼이꺼이 울 것같은 이 목소리가
어쩜 이렇게도 절창이었는지.
그래서 1970~80년대 대학생들은 이런 슬픈 시를 읽고,
이런 시를 노래로 만든 것들을 부르면서 저항의 의지를 다지곤 했단다. 

시구문은 시신이 나가는 문이야.
별이 푸르게 빛나는 밤,
시구문 아래서
횃불 아래서
목 베어진 전봉준, 녹두 장군. 

그를 생각하며
횃불로 세상을 그슬러 버리고 싶은 마음 가득해.
하늘을 온 세상을 그슬러 버리고 싶은 분노.
번득이는 총검으로 민중을 비웃는 독재자들.
너희는 화자와 녹두 장군을 육시(살육하는 것)하더라도
나는,
우리는 끝끝내 살아 있는 것이다... 

이런 비장감이 가득 묻어있는 시야.
김지하의 <민주주의여 만세>로 유명한 <타는 목마름으로>는 전에 읽어 본 적이 있으니 한번 더 소개만 할게.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절박한 상황이 금세라도 느껴질 것 같은 시란다. 

황토의 민중을 노래하던 김지하 시인이 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란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세상이 나뉘어져있던 이전에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착취의 대안으로,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곤 했었지만,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는 걸 보면서,
시인은 마음에 큰 변화를 일으킨 것 같아.



그 이후의 시들을 아빠가 관심깊게 본 것은 아니지만,
1994년쯤 상을 받은 시 중에 이런 시가 있단다.
한번 읽어 보렴.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중심의 괴로움>

제목이 '중심의 괴로움'이야.
자신이 중심에 서 보니 괴롭더라... 뭐,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한다. 

봄에 꽃대를 바라보고 있는 화자.
가만히 꽃대를 바라보니
꽃대가 흔들리더래. 

흙 밑에서
꽃대를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이
꽃이 피고
꽃이 사방으로 퍼지고 흩어지려고 하니,
괴롭지만 흔들린대. 

이 시는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본 시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자신은 무얼 위하여 이적지
단 하나의 <중심>을 위하여 싸워 왔던지...
허무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지. 

다들 흔들리는데,
다들 흩어지는데,
자신만 중심을 지키고 서있으려니 말이지. 

그래서 시골에 내려가서,
비우겠다는 생각을 해.
비움으로써 <꽃피움>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김지하가 이런 시를 쓰던 때가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되던 시절이라면 이런 시를 쓰든 말든 상관이 없었겠지.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으니 말이지.
그렇지만,
이 시대는,
김영삼이 평생 민주화 운동하던 야당 생활을 접고,
광주 학살의 주역들이 창당한 바로 그 당으로 들어가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그런 시기란다.
대학생들은 거기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시위를 하다 경찰의 몽둥이에 맞아 죽던 그런 시기.
그 불안한 시기에 자기는 중심을 버리고,
흔들리겠다,
다 비우고,
꽃을 피우겠다. 
이런 이외수같이 도사같은 투의 시를 쓰고 있으니 이전의 시들과는 상당히 달라 보이지. 

내가 보기에 그가 쓴 시 중 가장 이상한 시가 바로 중딩 1년 국어책에 실렸던 그 시야.
기억나지? 

한번 읽어 보렴.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김지하, 새봄>

푸른 솔은 전통적으로 절개를 상징하는 자연물이었단다.
'매화, 난초, 국화, 대'처럼 추운 계절에도 변치 않는 사물들을 사군자니 어쩌니 하면서 칭송하고 했지. 

그렇지만 일본의 국화인 벚꽃은 화사해서 아름답긴 해도,
시에서 칭송하기엔 조금 주제가 애매한 자연물이지. 

너무 빨리 변하는 바람에,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지조 없는 정치가를 일컬어서 '철새'라거나 '사쿠라(벚꽃)'라고 풍자하거든. 

벚꽃(쉽게 변함) 지는 걸 보니 푸른 솔(불변함)이 좋았던 화자는,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진대. 

물론, 그저 자연물로서야 벚꽃의 아름다움을 따라올 것도 찾기 드물지.
1994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로,
서로 경쟁하듯 도로변에 심는 나무가 벚꽃나무인 걸 보면,
벚꽃의 아름다움을 뭐라고 할 순 없을 거야.
그렇지만,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김지하,
그가 이런 시를 쓰는 일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지.
차라리 그가 절필을 선언했다든가 했더라면 더 멋진 사람 대접을 받았을 것 같단다. 

세상은 늘 변하는 거지만,
우리는 어떻게 변해갈지,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세상은 점점 경쟁 중심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어.
경쟁에 적응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그렇게 변해가는 사회를 비판하고,
자기 것을 굳세게 지켜가는 사람도 멋진 사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단다. 

너의 앞에 놓인 인생길에,
어떤 중심이 놓일지,
어떤 변화가 놓일지,
너는 어떤 시간과 어떤 일에 흔들릴지, 모두 미지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적응하길 바라고,
굳센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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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5-3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는 목마름으로...제 고등학교 시절에 저를 잡고 놔주지 않던 시였습니다. 나중에 학생회장을 하면서 학회에 김지하씨를 초청하려 갔었는데 무작정 찾아간지라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초청은 못하고 몇마디 대화만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아마 출소하신 후 생명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 많이 실망했던 기억이.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그것을 포기한 것 같아서...뭐 사상의 전환같은 거라고 오해를 했던 거죠...^^아직도 김지하하면 타는 목마름입니다. 그 시로 만들어진 민중가요도 정말 좋아합니다. 어두운 써클실에서 땡삼이 아저씨의 답답한 짓을 보면서 많이 불렀던 기억이....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글샘님 항상 감사합니다.

글샘 2011-05-30 23:32   좋아요 0 | URL
김지하의 생명이라...
뭐, 생명이 소중한 거 누가 모릅니까?
그러면, 4대강 반대라도 제대로 하든가... 사쿠라도 나는 좋아... 이건 아니거든요. ㅎㅎ
 
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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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미국.
산업 개발 시대의 일꾼이 부족하여,
유럽의 가난한 민중들이 미국 노동자로 이주한다.
그러나,
모든 사용자는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기 위하여 태어난 듯,
노동자들은 힘든 생활 끝에 파업을 일으키고... 

어머니의 파업,
선생님의 파업에 대한 비판,
가난. 

이런 곤란한 상황 속에서 글자도 모르던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시위에 쓸 문구를 적게 한다.
주인공 소녀는 '빠네 에 로제'라는, 'bread and rose, too'라는 문구를 적게 되고,
시위가 격해지게 되면서,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응원군들의 숙소로 떠난다. 

낯선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독자를 당황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들에게 닥친 파업이라니...
그렇지만, 실제로 부모가 파업이란 상황에 닥치면 아이들도 온갖 갈등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지 우리의 배를 채워줄 빵만은 아닌 거 같아요.
우리에게는 빵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죠.
우리는 우리의 가슴과 영혼을 위한 양식도 원해요.
그 뭐냐, 푸치니의 음악 같은 거예요.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것들도 어느 정도 필요해요.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파업의 끝은 원래 억압과 승리로 마감되게 마련이다. 

   
 

왜 여자들과 어린애들을 패고 엄마에게서 아기를 뺏어가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그런 끔찍한 짓을 하냐고요?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지. 두려움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야. 

그 사람들이 무서울 게 뭐가 있어요?
다들 총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런 유의 싸움은 총으로 못 이기지.
가슴으로 이기는 거야. 이 안에 있는 강한 가슴으로... 

 
   

가슴으로 싸우는 시절의 힘.
그런 것들이 있었던가... 

가끔 대학가요제 노래를 듣노라면 눈물이 와락 달려 드는 때가 있다.
정오차의 바윗돌이나,
내가... 같은 노래. 

그 순수했던 가난하고 볼품없던 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난했던 청춘에게 바치던 송가가 아름다움과 쓰라림으로 상상되는 것인데... 

   
  먹는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을 원한다면,
그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331) 
 
   

이 소설에서 파업 이야기에 걸림돌마냥 끼어들었던 제이크 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클라이막스를 울린다. 

   
  제이크는 달리기 시작했다.
좀스러운 범죄나 끔찍한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빵이 넘치고 돌에서 장미가 자라는 새로운 삶.
그것을 향해 달리는 기분은 정말 야릇하고도 황홀했다.(352)
 
   

제이크의 시궁창같은 삶에서 다시 피어난 빵과 장미,
제이크가 달리는 앞날에 무궁한 행운만이 따르기를 빌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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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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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 소설 속에선 정상적인 인간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이 불시에 출몰하고,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처럼,
어디로든 튀려고 장전된 총알처럼 가관이다. 

이 소설의 문체는 가볍고 발랄하여 읽는 맛이 좋다.
언어가 적절한 기회에 끊어지고 이어져,
눈으로 글을 읽으면서 눈꼬리는 저절로 빙긋이 웃게 된다.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함마란 덩치인 첫째,
저질 영화 찍는 주제에 말만 많은 둘째, 
싸가지 없는 민경이를 데리고 사는 셋째,
모두 나이든 모친 아래 얹혀사는 별볼일 없는 작자들이다. 

그들은 어느 하루 조용한 날 없이
들어오고 나가고
싸우고 떠벌리고,
갈등은 없는채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죽도록 얻어맞는 주인공을 캐서린이 도와주고,
그 캐서린은 원래 사모하던 캐서린이 아니었다고도 하지만,
뭐, 어쩌랴. 삶이란 게 원래 청사진대로 답이 나오는 건축물은 아닌 것을... 

주인공의 아내를 묘사한 대목은 기가 막히다. 

   
 

그녀는 한마디로 기내식 같은 여자였다. 별로 당기지는 않는데 안 먹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고,
그래서 억지로 먹기는 먹되 막상 먹으려고 보니 뭔가 복잡하고 옹색하기만 하고,
까다로운 종이접기를 하듯 조심스럽고 겨우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식후에 구정물 같은 커피를 마시다보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갖출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고,
결국 포장지만 한 보따리 나오는 그런 여자.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 '안전벨트를 매 주시겠습니까, 손님?'이라고 쓰여 있었다.(185) 

 
   

사람의 속성을 이렇게 비유할 줄 아는 작가는 천재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 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222) 

 
   

건달 형인 오함마를 그리면서 분노를 품은 인간의 자존심에 대하여 적는 대목도 작가가 삶에 대하여 관조한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캐서린과 살면서 영화를 보며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삶전체가 뿌리없이 이리 저리 휘둘리며 
신기루를 쫓아 살아온 원숭이짓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실소를 지었다.(266) 

 
   

고 쓰고 있다.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하여 작가는 서술자를 등장시킨 건지도 모른다. 

어차피 삶은 부평초처럼 부유하는 신기루를 쫓아 살아온 원숭이짓에 불과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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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1-05-2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고령화가족 ^^ 이 책 재밌죠? ㅋㅋㅋ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으로 기억이 되요^^ 오 함마 때문에 간간이 크게 웃었는데.
옷상에 올라가서 모기한테 뜯기는 대목에서도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나요 ㅋㅋㅋㅋ

글샘 2011-05-27 15:32   좋아요 0 | URL
해학이 가득하죠.
씁쓸한 세상에 대한 묘사지만, 웃을 수밖에 없도록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비로그인 2011-05-27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를 묘사한 저 인용문은 저도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던 부분인데 다시 봐도 재미있는 문장이에요ㅎㅎ^^

글샘 2011-05-27 15:32   좋아요 0 | URL
어쩜 사람을 저런 식으로 표현할까... 감탄하면서 읽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