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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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의 뜨락'이란 이름으로 KBS 인간 극장에 나온 이야기라는데...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고...) 

이 책은 그림이 독특하다. 김정수란 화가가 아마포 위에 유채로 그린 그림들의 느낌이 포근하면서도,
진달래꽃의 촉감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어떨 때는 밥처럼 소복하게 담겨 있고,
어떨 때는 꽃비가 내리듯 사선으로 휘날리기도 한다.
아, 수업 시간에 진달래꽃을 가르쳐야 하는 나로서는,
죽은 임 앞에 바치는 진달래꽃의 슬픈 헌사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임의 상여 앞에 바치는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 - 진달래 꽃.' 

어머니 홍영녀씨는 늙어 한글을 깨우친 분인데,
감수성이 상당하다.
많은 부분은 유행가 가사와 겹치기도 하지만, 삶의 진실은 유행가 가사만도 못한 경우가 숱한 걸 보면,
삶과 노랫말이 하나가 되다 보니 자연스레 우러난 것들이 많을 것이다. 

   
 

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죽은 우리 무남이.
쓸쓸한 바람 부는 계절이 오면 깨끼옷 입은 불쌍한 무남이가 추울 것만 같아서 가슴이 저리다 못해 애간장이 다 녹는 것 같다. 

 
   

이런 것이 글의 힘이다.
마음을 적실하게 표현할 줄 알게 하는 글의 힘. 

   
 

여자는 남자 집에 발 한 번 잘못 들여놓으면 일생을 망친다.
이제와 생각하면 걸어온 길이 너무나 험한 가시밭길이었다. 

외로운 들창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돌아눕는 어깨가 시리다. 

 
   

아, 이런 글은 읽기가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온 길이란...
이 책에서도 주로 어머니와 딸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닐까 싶다.
어머니와 아들 또는 며느리의 관계가 저절로 멀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겠지. 

   
  내 마음 속에 낀 근심처럼 하늘에 시커멓게 구름이 끼더니
내 가슴의 응어리가 터져 소낙비가 내린다.
모란 잎에 떨어져 구르는 빗방울들이
쏟아지는 내 눈물같다.
팔십 평생을 살아왔건만 돌아보면 흔적도 자취도 없다. 
 
   

모란 잎에 떨어져 구르는 빗방울과 쏟아지는 눈물을 시적으로 쓰실 수 있는 솜씨라면,
진즉에 시인이 되실 수도 있었을 양반이다. 시대를 잘못 나신 게 한스러웠을 것이다.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편지.
무슨 사연 그리 많아 밤새도록 내리는가.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안부.
혼자 누운 들창 밑에 건강하냐 잘 자느냐 묻는 소리.
그대 안부.
 
   

아, 몽혼(이옥봉)이란 한시가 떠오른다.
꿈에서도 자취가 있다면 그대 문간이 모래밭이 되었을 거라는...
한은 한으로 통하는 지경을 만난다. 

   
  고향집 창호지 문
창호지 문은 말소리가 새 나온다.
창호지 문은 말소리를 막지 못한다.
창호지 문은 따뜻하다.
고향의 문들은 창호지 문이었다. 불빛이 비친 창호지 문은 아주 정답다.
문풍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창호지 문이다.
유리문은 말소리를 막고 공기를 막아주지만 따뜻하지 않다.
정답지 않다. 
 
   

짧지만 수필 못잖은 내용을 담고 있다. 

   
  잠은 오지 않고 몸은 너무 아프다.
아무도 없으니 너무 쓸쓸해
천장에 매달린 파리도 반갑다.
 
   

세계에서 가장 노령화가 급속히 전개된다는 나라.
아이를 가장 적게 낳기 시작한지 오래된 나라.
세계에서 가장 경제성장률이 가팔랐으나, 가장 복지에 무관심했던 나라.
노인 사회의 악몽이 가장 두렵게 현실화될 나라.
노인 연금 등 사회복지에 애쓴 역사를 한방에 무화시키는 무서운 나라.
한국에서 노인이 되어가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딸 없는 노인네는 쓸쓸하다>고 할 정도로 급격히 장자 중심의 사고방식이 무너져버리는 현실에서,
<아파트 이름을 어려운 외국어로 쓰는 이유>는 노인네가 못 찾아오게 하기 위함이란 농담이 씁쓸한 판국에,
천장에 매달린 파리도 반갑다는 시는 가장 현실적이다. 

할머니는 도시로 가자고 하는 자식들에게
"난 여기가 좋다. 뭐든 내 맘대로니 너무 편하고 자유스럽다.
자유를 누리려면 외로움도 견뎌야 한다."고 하셨다. 

외롭다고 혼자서 일기를 쓰면서도,
외로움을 견디고 혼자 사신 할머니.
외로움은 견딜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닳아가면서 '사랑'이 되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노인들의 삶을 알기에,
그것은 차마 견딜 수 없기에, 황혼의 나이에도 외로움을 택한 지혜로운 할머니. 

이 책을 어머니를 잃은 딸들이 읽는다면 많은 공감을 보낼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어머니들이 우선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어떻게 나이들어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
종교적 개입없이 혼자서 밀고나간 생각들이어서 글의 힘이 단단하다.
그리고 나처럼 부모님과 거리를 두고 사는 아들들이 읽는다면, 글쎄,
마음 속에 복잡한 생각들만 가득 들어찰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늙어가는 일에 대하여,
지혜롭게 늙어서, 늙은이로 4,50년을 살아야 하는 세대로서,
영광스럽지 못한 질병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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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5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6-06 23:43   좋아요 0 | URL
겁낼 거 없습니다. 알라딘이 있잖아요. ㅎㅎㅎ

hnine 2011-06-06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영녀 할머니, 얼마전에 돌아가셨지요. 황안나님이 제 친정어머님과 연세도 비슷하시고 하시던 일도 비슷하시고 해서, 이분 책들은 저도 읽고 어머니께도 사드리고 이분 블로그에도 종종 들어가보고 했었어요. 최근에 이 책 나온 것 알고 있었는데 아직 못 읽어보고 있던 차에 글샘님 리뷰로 만나보게 되었네요.
저 책 표지 그림은 다른 책의 표지 그림으로도 사용되었던데 한번 보면 인상에 오래 남을 그림 같아요. 누구의 무슨 그림인가 궁금했는데 그것도 알려주셨네요. ^^

글샘 2011-06-06 23:45   좋아요 0 | URL
네, 돌아가셨더군요.
황안나님, 연세가 있으신데, 참 활동적인 분이시더군요.
나이들어 활동적인 것도 좋지만, 요즘 생각해보면, 정말 잘 늙어야 해요. 그쵸?
 
여름방학 불청객 카르페디엠 26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재희 옮김 / 양철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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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따뜻한 청소년 소설 한 편이 배달되어 왔다. 

1989년 출간되었다는 독일어권의 소설로 독일어 교재로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이번에 양철북 <카르페디엠> 문고로 '여름방학 불청객'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독일어권의 오스트리아에서도 영어 공부가 중요한 모양으로,
에발트라는 열네살 짜리 주인공 남자아이가 영어 실력이 딸린다고 생각한 엄마가 교환학생으로 영국으로 보낼까,
하다가 교환학생을 받기로 한다. 

그런데, 교환학생으로 오기로 되어있던 얌전한 모범생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좌충우돌 골때리는 꼴통 재스퍼가 공수되어 오고... 

그 날부터 재스퍼의 난리법석 전반부가 펼쳐진다.
그렇지만, 누나 빌레와 에발트는 재스퍼와 친해지게 되고,
우여곡절끝에 재스퍼의 상처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애정 결핍에 시달려 삶의 끈을 잡을 곳 모르던 재스퍼에게 사랑을 쏟는 가족이 된다. 

하지만, 애초에 갖고 있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재스퍼는 6주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귀향하게 되는데,
빌레와 <약혼?>이란 특이한 우정을 남기고 세 번의 키스를 남기고 뒷걸음질쳐 사라진다. 

중간중간 농담처럼 익살스레 나오듯, 인생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지,
정말 안전한 곳에서 사고가 터지고,
평화롭던 곳에서 전쟁보다 심한 문제가 생겨나고,
얌전하기 그지없던 녀석이 가장 꼴통이 되고,
또 비할데 없이 사납던 인간도 성자 비스무레한 것이 되기도 하는,
이런 아이러니한 순간들이 인생의 곳곳에서는 숨어있는 비밀 폭약이라도 터지듯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편견과,
아이들의 좁은 시야,
닮은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히 평행선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선은
사실 곳곳에서 겹칠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있는 법이다. 

부모가 이해못하는 아이들의 세계와,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어른들의 세계는 쌍둥이처럼 닮게 마련이다. 

부모의 불화하여 늘 뾰루퉁한 얼굴로 사람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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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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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매력'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한자로 매력을 쓰면 魅力 '도깨비 매(홀릴 매, 미혹할 매), 힘력'으로 도깨비에게 홀리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신형철의 문학 비평집을 읽은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매력덩어리라 말할 만 하다. 

숱한 시인들의 언어가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세상.
사람들은 시인들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시인들의 언어가 삶과 동떨어진 조각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극심한 비유로 낯설어진 시의 언어들,
그 사금파리들을 붙여 원래의 의미를 재구성하듯,
큐레이터가 작품 너머에서 반짝이는 작가의 사고를 짚어주듯,
시인을 소개하고 시인의 작품을 마음에 남겨주는 역할을 하는 글들이 그의 글이 가진 매력이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라지만,
삶의 궤적과 살아온 궤도에 따라 '느낌' 자체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일들이 많다.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여주겠다는 거짓말로 당선된 대통령은
반값 등록금에 일언반구 말이 없는데,
선거가 다가오자 갑자기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반값 등록금을 '선점'하려고 난리다. 
오세훈같은 사람도 두 딸 대학보내면서 허리가 휘었다는 개그를 해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김경주를 말하면서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고 말하는 벗이여, 너의 현생까지도 음악이다.
이런 칭찬을 보았나. 

'미친년 널 뛰듯이'라는 말은 폭력적이다. '미친년'을 미치게 한 미친놈들의 존재가 생략돼 있기 때문이다.
날카롭다.
날카롭지만, 그의 눈은 결코 <공동체>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공동체를 해체하려는 자들에게 날카로운 펜을 겨누고,
우리는 이렇게 <느낌의 공동체>로 뭉쳐서 너희에게 승리를 거두련다! 하는 전의를 다진다.
그러나 결코 전투적이지 않다.
마치 서울대 아이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거기서 붉은 머리띠를 매고 투쟁을 외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하고 앉은 모습이 훨씬 더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시위인 것처럼,
신형철의 문학 읽기는 부드러운 칼, 환상적인 총알로 무장한 공동체다. 

"내 거북은 염산을 타 마시고 목구멍이 타버려서 점자처럼 안들리는 노래를 부르지. 내가 너를 네가 나를 껴안고 뒹굴어야 온 몸에 새겨지는 바로 그 쓰라린 노래"를 부르는 김민정,
점자의 노래를 듣지 못하는 우리가 오히려 불구임을,
미련곰탱이 아저씨는 모르지만 고슴도치 아가씨들은 아는 그 '점자의 노래'를 읽어주는 사랑스런 문학 큐레이터. 

"그는 따뜻하고 슬프다. 이를 두고 자비라 한다. 몰인정의 시대에 그의 시는 갸륵하다.(어디서 이런 단어를 찾아오는지)
그의 다정 때문이다. 이조년은 '다정'도 병인양 하여 라 했다. 병 맞다.
이를 다정증이라 부르려 한다. 이 환자가 우리 딱한 정상인들의 가슴을 찌른다.
저 환자의 눈에 우리는 얼마나 휑하고 빤한 인생일까 싶어진다.
서정시란 그런 것이다. 언제 그 맥이 끊어질지 모를 이 소중한 환후를 우리는 아껴 기린다. 그는 낫지 마라.
그래야 우리가 산다." 이건 문태준에게 보내는 따스한 야유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네 말이 내 모서리를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너의 사연을 받아 안지 않으면 내 말이 둥글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손택수를 읽으면서 방심, 마음을 내려 놓기와 마음을 열기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 방심은 "추석날 고향에도 못가고 화장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채로 흐느껴 우는 안마사 김양 누나"에게로 꽂힌다. 

"모든 감정의 끝에는 슬픔이 있다.
기쁨, 분노, 증오, 사랑이 그 극단에 이르면 인간은 결국 슬퍼진다."
은희경의 '비밀과 거짓말' 사이에서 슬픔과 기쁨의 스펙트럼을 줄타기한다.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김소연의 마음사전을 떠오르게 한다.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내에게
이봐, 그 여자 말고도... 이걸 위라라고...
사내가 잃어버린 것은 '이 여자'다. '여자'가 아닌 '이'에 포인트.
적어도 그 순간, '한' 여자도 '이' 여자를 대체할 수 없다.
'이 여자'가 '한 여자'로 전락될 때 고통은 사라진다.
가라타니 고진이 단독성과 특수성 을 구별한다. 

이해한다는 말, 이러지 말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을 할수록 사무치던 사람, 한 번 속으면 하루가 갔고, 한 번 속이면 또 하루가 갔네. 날이 저물고 밥을 먹고, 날이 밝고 밥을 먹고, 서랍 속에 개켜 있던 남자와 여자의 나란한 속옷, 서로를 반쯤 삼키는 데 한 달이면 족했고, 다아 삼키는 데는 일 년이면 족했네. 서로의 뱃속에 들어앉아 푸욱푹, 이 거추장스러운 육신 모두 삭히는 데에는 일생이 걸린다지.(김소연, 불귀 2 중)

역시 김소연을 그도 떠올렸다. '한 사람'이 '이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문학은 절망적인 세계 앞에서 사력을 다해 절망할 수 있을 뿐이다.
문학은 절망의 형식이다.
우리의 나약하고 어설픈 절망을 위해 문학은 있다.
그리고 희망은 그 한없는 절망의 끝에나 겨우 있을 뿐이다."
허수경의 시를 이야기하면서 흘린 절망과 희망, 문학론은 오래 남는다. 

심보선더러, 반성하는 시인보다 엄살떠는 시인이 더 애틋하다. 간만에 제대로 된 엄살의 기록을 읽었다, 고 적었다. 귀엽다.^^ 

나도 정말 간만에,
포스트 잇에 빼곡히 글자를 옮겨 적으며 책을 읽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성자는 못 되겠지만, 죽어도 꼰대는 아니될 것 같은 사람들이 쓰는 실존적 '깽판'으로서의 시.
그래서 형이라 부르고 싶어진다. 나, 형의 기분 알 거 같아요. 저도 이 시대가 지긋지긋해요.
'장석원'의 시를 그는 형의 시라고 한다.
그 빛나는 폐허에 나도 끼워줘요.
그러나 시적 엄살은 전염성이 높지만 흉내내기는 어렵다.
아름다운 '엄살' 이전에는 숱한 '몸살'의 시간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 사랑이지만,
더 많이 아파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 시다.
'엄살'도 이 정도면 '철학'의 반열에 오를 만한 소재의 하나가 되시겠다.  

꽃이 지니 몰라보겠다. 

용서해라.
蓮. <목련에게, 윤제림>

아마 저 '련' 한 글자는 사람 이름인 게다.
련이가 늙었나. ㅋㅋ 몰라보겠단다. 
무릇 좋은 시란 '분단된 영혼의 내전' 같은 것이라서
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종군기자처럼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 행갈이 하나에서조차 화약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
목련...을 읽으면, 화약 냄새 정말 난다. 
그 냄새는 쌉쌀한 이별의 냄새와 나이든 만남의 냄새의 슬픈 맛이다. 

성기완은 '화음에 정통한 자만이 소음으로도 시를 쓸 수 있는 법'이라며 부추기고,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이소라의 노랫말에도 그는
바람이 든다. 정말 면도날같이 날카로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김경주의 '무릎'을 베고는,
무릎은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삶을 맴도는 자리,라는 정의에 자지러진다.
몸,
몸의 파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삶을 맴도는 무릎의 파문, 몸의 울림...
그 몸을, 인간을 이야기하는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도 그에겐 시다. 

용산의 아침 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 넣어 무모했습니다. ...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빠져 있었습니다.(문화방송, 2009년 1월 20일 뉴스데스크)

21세기의 선동의 아침은 이렇게 온다.
붉은 화염으로,
검은 시신과 피눈물로,
그리고 이어지는 촛불로... 

시에서 보여준 그의 매력에 빠지다 보니,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밋밋하다.
신형철의 산문을 읽는 것은 또다른 하나의 문학 장르인 '평론'을 접하는 기쁨을 준다. 

바람이 불면,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되어버린 추억처럼,
그러나 서로 '이 사람'이었던 '두 사람'에게
추억은 다르게 적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도깨비처럼 홀리게하는 언어의 마력이 시라면,
그 시를 읽어주는 평론가의 산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의 순간을,
휘딱 지나가 버려 '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독자에게,
차근차근 친절하게
확대하고 느리게 재생하지만,
그래서 감동은 더 증폭되도록 도와주는 큐레이터이자,
느낌의 '복원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이 책과,
신형철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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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6-0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저도 도서관에서 후다닥.. 읽었습니다.
저는 꽤나 기대하는 책을 마치 탐험을 하듯, 가방에 넣어 집 책상의 10배쯤 되는 도서관에 들고 가서 나무 책상에서 메모도 하면서 읽는 걸 좋아하는데요. 이 책도 그렇게 해서 읽게 되었네요.

이 책과 신형철의 매력에 대해 글샘님의 마지막 적어 놓으신 구절이 참 멋집니다. ^^

글샘 2011-06-06 23:47   좋아요 0 | URL
저는 침대에 뒹굴면서 새벽 2시까지 읽느라 요즘 좀 피곤했답니다. ㅎㅎ
도서관 큰 나무책상에서 책읽고 싶네요. 여름 방학엔 해보고 싶습니다.
이 책과 신형철의 매력, 느낌을 증폭시키고 복원시키는 그런 거... 맞죠?
 

요즘엔 시조를 연속 읽어보고 있다. 
오늘은 부정적 세상에 물듦을 경계하도록 주의를 주는 시들을 살펴볼까 싶다.
워낙 세상은 다양한 인생들이 교차하는 곳이니,
자기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을 해코지하는 일도 많은 곳이니 말이다.

 

가마귀를 뉘라 물드려 검따하며 백노를 뉘라 마전하여 희다더냐
황새다리를 뉘라 이어 기다하며 오리다리를 뉘라 분질러 자르다하랴
아마도 검고 희고 길고 자르고 흑백장단이야 일너 무삼하리오 (무명씨)

(해석)
가마귀를 누가 물들여 검다하며, 백로를 누가 하얗게 바래도록 만들어서 희다더냐.
황새 다리를 누가 이어 길다하며, 오리다리를 누가 분질러 짧다고 하느냐.
아아! 검고 희고 길고 짧고의 흑백(黑白) 장단(長短)을 따져서 무엇하랴?

* 마전하여 : 햇빛에 쬐어 흰빛이 나도록 하여

이 시조는 역시 사설시조지.
재미있는 것은 보통은 까마귀를 싫어하고 백로를 좋아하니깐,
까마귀 나쁘다 생각하는데
발상을 바꾸면 백로가 나쁜 놈일 수도 있다, 이렇게 전개하기 쉽거든. 

이 시조에서는
까마귀는 검고 백로는 희다.
그런데 누군가는 까마귀는 물들여 검고 백로는 마전하여 흰 것이라 우기지.
황새는 다리가 길고 오리는 짧아.
그치만 억지부리기 좋아하는 누군가는
황새 다리도 원래 짧은데 이어서 길어 진 거고, 오리다리는 분질러 짧아진 거라 우긴대. 

세상에!
우길 게 따로 있지. ㅋ
그치만, 사노라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걸 우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특히 정치가가 그렇지. 

화자는 '흑백장단'을 가려서 뭐하겠느냐!
다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어.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모양이지.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기네 편이 아니라고 상대방을 모해하여 곤경에 빠트리는 경우가 많거든.
그러려면 이런저런 말로 옭아매야 하는데,
그런 세태를 비판한 시로 읽으면 되겠다.  
이 시조와 유사한 시조가 있어.

가마귀 거므나다나(검다고 하거나) 해오리 희나다나
황새다리 기나다나 올해다리 져르나다나
세상에 흑백장단은 나난 몰나 하노라(무명씨)

(해석)
가마귀가 검다고 하거나, 해오라비 희다고 하거나
황새다리가 길다고 하거나,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거나
세상살이의 검고, 희고, 길고, 짧은 것을 나는 몰라 하노라.

흑백장단을 나는 모르겠다.
그걸 가려서 뭐하겠느냐~는 위의 시조와,
나는 모르겠다!는 아래 시조는 쌍둥이처럼 보이는구나.
그만큼 세상이 혼란스러운 곳이었단 이야기겠지. 

세태를 풍자한 시를 하나 더 읽어 보자.  

발가버슨 아해들이 거믜쥴 테를 들고 개쳔으로 왕래하며
발가숭아 발가숭아 져리 가면 죽나니라 이리 오면 사나니라 부르나니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 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이정신)

(해석)
발가벗은 아이들이 거미줄 채를 들고 개천으로 오고 가며,
발가숭아 발가숭아, 저리 가면 죽고 이리 오면 산다하고 부르는 것이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일이 다 이처럼 속고 속이는 것인가 하노라.

이 시의 재미는 '발가버슨 아이들'을 가리키는 '발가숭이'가
'고추잠자리'를 가리키는 '발가숭이'와 동음이의어가 되어
앞의 발가숭이가 뒤의 발가숭이를 잡으려 한다는 말이 된다는 점에 있어. 

세상사는 이렇게 비슷한 존재끼리 서로 속이고 속는 것이라는
왠지, 씁쓸하구만~ 이런 어조로 읊은 시가 되겠지.
세태를 풍자한 대표적인 시조로 문제에 잘 등장하는 편이란다.  

가마괴 눈비 마자 희난 듯 검노매라
야광(夜光)명월(明月)이 밤인들 어두오랴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변할 줄이 이시랴. (박팽년)

(해석)
까마귀가 눈비를 맞아 희어지는 듯하다 다시 검어진다.
밝은 달이 밤이라고 해서 어두울 리가 있는가?
임금(단종)을 향한 한 조각 붉은 마음이야 변할 수 있겠는가?

다시 까마귀 이야기.
시조를 보면 까마귀가 정말 많이 등장해.
박지원의 이야기를 봐도,
까마귀는 검지만은 않다, 는 주장을 하거든.
까마귀를 보면 붉고 푸르며 누런 빛들이 모두 반짝이는데 사람들은 '검다'고 표현한다는 거지. 

세상의 다양성을 살려 읽지 못하고,
제 눈에 비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여 '고정'시키는 사태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 것이겠지. 

이 시에서는
까마귀가 눈을 맞아 희어지는 듯 하지만 다시 검어진대.
까마귀의 본질은 검은데,
눈비를 맞아 잠시 희어지는 듯 하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단 거지. 
아마도 까마귀는 수양대군을 가리키는 듯 해.
조카를 죽이고 임금이 된 세조 말이야.
원래 음흉한 까마귀인데, 잠시 희어지는 듯 하지만, 본질은 시꺼먼 놈이란 비아냥이 들었지.

야광주는 밤이라도 어두워지지 않는 구슬이지. 
까마귀의 빛이 변치 않고 드러나듯,
야광명월은 아무리 어두워도 변치 않고 빛나는 거야.
그러니 화자의 단종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한 조각 붉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충성의 표현이지. 

초장의 '가마귀'는 '세조를 지지하는 세력'을 가리킬 수도 있고,
중장의 '야광 명월'은 '단종을 잊지 못하는 세력'이고 말이지.

왕조 시대에는,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했을 거다.
그에 따라서 출세를 하기도 하고, 귀양을 가기도 하고 했으니 말이야. 

이렇게 꼿꼿했으니 세조가 권력을 잡았다고 굽히지 않았지.
그래서 역모를 꾸미고 고문당하다 죽게 되는데, 아버지, 동생, 아들까지 다 죽였대.
그치만 며느리가 손자를 잘 숨겨둬서 후손이 전한다는구나.
왕조 시대는 '왕'의 안존을 위하여 참 비극적인 일도 잘 꾸몄다 싶어. 

가마괴 디디는 곧애 백로야 가디 말아
희고 흰 긷헤 거믄 때 무칠셰라 
딘실로 거믄 때 무티면 씨을 낄히 업사리라 (이시)

해석
가마귀 발 디디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희고 흰 깃털에 검은 때 묻힐세라.
진실로 검은 때가 한번 묻으면 씻을 길이 없으리라.

이 시조는 어렵지 않지?
까마귀는 전형적인 '악'의 대표,
백로는 '선'의 대표자인 거야. 

청렴결백을 모토로 삼았던 학자에게
검의 때가 묻으면 그것을 씻는 길은 참으로 어렵고 먼 길이라
그런 세상을 경계하며 깨끗한 이는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시조야.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란 한자 성어가 있단다.
먹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검게 되고,
인주를 가까이 하면 저절로 붉어 진다.
주변의 친구나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때가 묻기도 하고 더러워지기도 하는 법이지.

가마귀 검거라 말고 해오리 셸줄 어이
검거니 셰거니 일편도 한져이고
우리도 수리두로미라 검도셰도 아녜라

* 검거라 말고 : 검다고 비웃지 말고

(해석)
까마귀 검다고 하지 말고, 해오라기 희다하지 말 것을
검거나 희거나 너무 치우쳐 외곬수로구나.
우리는 수리두루미처럼 검지도 희지도 않기를.... 

까마귀가 검다고 비웃고 욕을 했나봐.
아, 저놈은 엄청 더럽고 치사한 놈이야~ 이러고.
해오라기는 희고희다고 했는데 어이하랴~ 

검고 흰 것이 <일편 :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침>하구나.
우리는 수리두루미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권하고 있어. 

세상은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거든.
그렇지만, 또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는 일도 많아서
그것의 중도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단다.
어렵지만, 치우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시조겠지.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것치 거믄들 속좃차 거믈소냐
것 희고 속 거믄 즘생은 네야 긘가 하노라(이직)

cf) 이본(異本)에서는 종장이 '아마도 것 희고 속 검을슨 너 뿐인가 하노라'로 되어있는 곳도 있다.

(해석)
까마귀가 겉보기에 검다하고, 해오라기야 비웃지 말아라.
비록 겉이 검을지라도 속마음까지 검을쏘냐?
겉이 희면서 속이 검은 짐승은 바로 너인가 하노라.

이 시조가 가마귀 시조의 대표작이지.
겉이 검은 가마귀, 
겉이 흰 백로.
그러나 중장에서 <가마귀는 겉이 검지만 속조차 검겠는가>하며 반전을 기하지.
종장에선 대놓고 백로를 비판해.
<겉 희고 속 검은> 너야말로 비판의 대상이야!
알겠어?
겉만 흰 척 하지마!
우린 다 알고 있다고!!! 이런 말이야.

이 시의 작가 이직은 조선의 개국 공신이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될 때,
고려 유신들은 절의를 지킨다면서 <맥수지탄>의 노래를 부르곤 했지.
새 왕조의 개국 공신들에게는 강한 비판을 던지고 말이야. 

개국 공신으로서 <가마귀> 처지가 된 화자.
절의를 지킨다는 <백로>들이야말로,
이적지 고려 왕조에서 부유층으로, 귀족으로 배불리 잘 먹고 잘 살았으면서,
그야말로 썩어빠진 고려 왕조의 몰락에 기여한 공이 큰 넘들이면서, 
우리를 비웃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러는 시조란다. 

늘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우국지사인 체하는 인사들은
시대가 불안할수록 더 많은 법이지.
자기가 살아 남으려고 남들을 욕하는 자들 말이야.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셩낸 가마귀 흰 빗츨 새올세라
청강에 조히 씨슨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정몽주 모친)

해석
까마귀들이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아라.
성이 난 까마귀들이 새하얀 너의 몸빛을 보고 시기하고 미워할세라.
맑은 강에서 깨끗이 씻은 너의 결백한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 모친이 자식을 백로에 비유했어.
까마귀 옆에 가면 흰 빛을 시샘할까 두렵구나.
맑은 강에 깨끗이 씻은 몸이 더러워질까 두렵다고 했는데,
역시 백로 정몽주는
까마귀 이방원의 무리에게 당하고 말지.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긔 엇더하료
우리도 이갓치 얼거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이렇게 '하여가'를 부르며 회유하는 이방원에게
거부의 뜻으로 남긴 '단심가'는 정말 유명하지.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 주거
백골이 진토되야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정몽주)

결국 정몽주는 돌아가는 길에 선죽교에서 제거되고 만단다.
세상 만사가 그런 거야.
필요하면 쓰고,
반대하면 버리고...
비정한 시장통 같은 곳이지.
비장성시라고 하던가.

검으면 희다 하고 희면 검다 하네
검거나 희거나 올타하리 전혀없다
찰하로 귀먹고 눈감아 듣도보도 말니라 (김수장)

(해석)
검으면 희다하고 희면 검다하네.
검거나 희거나 간에 옳다할 사람 전혀 없다.
차라리 귀먹고 눈을 감아 듣지도 보지도 말리라.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남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야.
검은 걸 희다고 우기지.
흑백간에 옳다고 인정해주는 이가 전혀 없대.
그러니 차라리 귀멀고 눈감아 듣고 보지 않겠대. 

아, 얼마나 세상에 회의적인지...
얼마나 세상에 대하여 염세적인지...  

구룸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이셔 임의로 다니면서
구태야 광명한 날빗츨 따라가며 덥나니 (이존오)

(해석)
구름이 사심(邪心)이 없다는 말이 아무래도 허무맹랑하다.
하늘에 높이 떠 있어(떠서) 제멋대로 다니면서
하필이면 구태여 밝고 밝은 햇빛을 따라가며 덮는단 말인가? 

고려는
왕조 국가였지만,
지방의 귀족들이 상당한 패권을 가지고 있던 국가였던 모양이야.
상대적으로 왕권은 약화되었겠지. 

조선에 비하면 왕권이 약하던 고려는,
몽고의 침략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단다. 

고려 말, 새로운 사상으로 성리학이 들어오게 된다.
성리학은 '자신을 꼿꼿하게 가다듬는 철학'이기도 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경륜의 철학'이기도 했지.
출세하기 전에는 '위기지학'으로서 자신을 가다듬고,
세상에 나간 다음엔 '위인지학'으로서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베푸는 것이야. 

출세하기 전의 '사'와 출세한 뒤의 '대부'로서의 <사대부>가 새로운 세력이 되고,
이성계 역시 그런 신진 세력의 의지를 틈타 임금자리를 얻게 된 것이고. 

흔들리던 고려 말,
공민왕 때 개혁가 신돈이란 사람이 있었단다.
그는 승려였지만 고려는 불교국가였으니 승려가 주요직책에 오를 수 있었지.
공민왕은 신돈을 꽤 믿었던지 신돈의 개혁 정책에 힘을 실어주었지.
그는
토지개혁 관청을 두어 부호들이 권세로 빼앗은 토지를 각 소유자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해방시켰으며,
국가 재정을 잘 관리하여 민심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렇지만 귀족국가 고려의 부호 세력들은
그의 개혁 정책이 달갑지만은 않았겠지.
결국 신돈은 제거되고, 역사 속에는 <나라를 망친 요망한 승려>로 남게 된다. 

역사는 패자에게 먹칠을 하는 경우가 많단다.
백제 의자왕이 삼천궁녀랑 놀아 나다가 나라를 망쳐 먹었다는 둥,
(실제 의자왕은 성실한 왕이었대.)
신라 경순왕이 맨날 술이나 마시며 포석정에서 놀았다는 둥,
승자 위주의 역사 서술을 하곤 하지. 

이 시조는 고려 말의 '신돈'을 풍자한 시조래.
구름이 '무심'하다고 하지만,
정말 욕심없는지... 아닌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해.
하늘 가운데 멋대로 다니는 구름은, (신돈이 임금의 총애를 받고 활동이 많은 걸 비꼬는 거지.)
구태여 밝은 햇빛을 따라다니면서 덮는 존재라고 하고 있단다. 

역사 서술에 남은 어떤 것이 신돈의 본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빠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개혁에 반대하다가 투옥까지 된 작가가
신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쓴 시가 아닌가 싶어. 

오늘 다룬 시조들은,
혼탁한 세태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시조들로 엮었다.
흑백을 가리기 어려운 곳이 세상이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제거하려는 곳이 세상이야. 

암튼,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조심조심 건너야 하는 곳이 세상이란다.
이 시조들이 들려주는 함축적 의미를 두고두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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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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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사라진 손바닥, 전문) 

연꽃이 피고 한들거리다가 연밥 익으면서 꺾여가는 모습을 보고는
존재의 삶과 시듦의 방식을 끌어온다.
'격물치지'
사물(대상, object)을 바라보고 궁리함으로써 앎에 이르는 경지. 

존재가 시드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썩는 것과 마르는 것.
아름다움이 절정을 다한 뒤에도 물기가 남아 있으면 썩기 시작한다.
그것이 꽃이든, 음식이든, 영혼이든.
그러나 썩기 전에 스스로 물기를 줄여 나가면
적어도 아름다움의 기억은 보존할 수 있다.
이처럼 건조의 방식은 죽음이 미구에 닥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선취함으로써 영속성을 얻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시인의 자평) 

오스트리아 마을에서
그곳 시인들과 저녁을 먹고
보리수 곁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어떤 손이 내 어깨를 감싸쥐었다
나는 그 말을 알아 들었다
그가 몸을 돌려준 방향으로 하늘을 보니
산맥 위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달 저편에 내가 두고 온 세계가 환히 보였다 

그후로 초승달을 볼 때마다
어깨에 가만히 와 얹히는 손 있다 

저 맑고 여윈 빛을 보라고
달 저편에서 말을 건네는 손
다시 잡을 수 없음으로 아직 따뜻한 손 

굽은 손등 말고는 제 몸을 보여주지 않는 초승달처럼 (초승달, 전문)

이심전심, 심심상인, 염화시중, 염화미소
굳이 말이 필요없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도 귀가 없는 사람은 가르치지 못하셨다. 

누군가 맵찬 손으로
귀싸대기를 후려쳐주었으면 싶은 

잘 마른 싸릿대를 꺾어
어깨를 내리쳐 주었으면 싶은 

가을날 오후 

언덕의 상수리나무 아래
하염없이 서 있었다 

저물녘 바람이 한바탕 지나며
잘 여문 상수리들을
머리에, 얼굴에, 어깨에, 발등에 퍼부어 주었다.  

무슨 회초리처럼, 무슨 위로처럼 (상수리나무 아래) 

나와 시인은 동갑이다.
우리 나이가 되면,
회초리가 그립기도 한 나이다.
위로는 더 그리운 나이다. 

그렇지만, 하염없이 상수리나무 아래 서 있는 외에,
회초리와 위로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나이기도 하다. 

땅속에서만 꽃을 피우는 난초가 있다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기 때문에
본 사람이 드물다 한다
가을비에 흙이 갈라진 틈으로 향기를 맡고 찾아온
흰개미들만이 그 꽃에 들 수 있다.
빛에 드러나는 순간 말라버리는 난초와
빛을 피해 흙을 파고드는 흰개미,
어두운 결사에도 불구하고 두 몸은 희디 희다 

현상되지 않은 필름처럼 끝내 지상으로 떠오르지 않는
온몸이 뿌리로만 이루어진
꽃조차 숨은 뿌리인 (땅 속의 꽃, 전문) 

상처와 고통과 울음이 뒤섞인 저 어둠과 그늘과 그림자 속에서 눈뜨는 시인, 나희덕.
그는 빛과 꽃을 바라보지만,
숨은 뿌리까지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까닭은,
그의 시선은 밝은 곳만 더듬지 않는 까닭이다. 

빛이면서 어둠인 그늘이
오히려 어울리는 시인, 나희덕. 

어느 하나보다는 빛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그림자와 그늘이 사라지는 어둠이,
더 어울리는 시인, 나희덕.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마른 손바닥을
마른 눈길로 쓸어보는 일처럼 쓸쓸하기도 하고,
쓸쓸하고 건조한 눈길이기에 찾아낼 수 있는
꺾인 연꽃 줄기,
꽃조차 숨은 뿌리인 땅속의 꽃, 

잎을 위해서
꽃 피우기도 전에 잘려진 꽃대들,
잎그늘 아래 시들어 가던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 

툭, 툭, 목을 칠 때마다 흰 피가 흘러
담뱃잎은 그리도 쓰고 매운가(담배꽃을 본 것은, 부분) 

담뱃잎 줄기의 흰 즙까지를 생명으로 쓰다듬는 그의 사랑은 바삭하고 쓸쓸하다. 

<마른 물고기처럼>의 사랑처럼...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 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그 빛나던 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마른 물고기처럼, 전문) 

* 장자의 '대종사'에서 빌려옴.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 준다.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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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3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6-03 08:4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디 가면 있는지는 시집에 없던 걸요. ^^
혹시 찾으면 알려 주세요.

sslmo 2011-06-0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나희덕은 읽을때는 쓸쓸하고 건조하지만,
읽은 후엔 따뜻한 온기가 스물스물 차올라요.

초승달을 볼때면, 누군가도 저 초승달을 같이 올려다 보겠구나
마른 물고기를 읽을때면, 함께여서 취허할 수 있겠구나...뭐, 그런 생각으로다가.

사라진 손바닥, 밑에서 둘째 줄 '흰 꽃'이죠.
샘이 그리 쓰시면 새로운 시어인줄 알고 그리 외워요~^^

글샘 2011-06-03 15: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자기도 쓸쓸하고 건조한 마음을 쓰는 거지만,
그 건조함이 썩음은 아니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죠.

힌꽃으로 외우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