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창비시선 32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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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하니 떠오르는 이는 역시 김훈이다.
밥벌이를 <지겨움>이란 한 단어로 일축하여,
생존의 의무에 허덕이는 민중의 마음을 위무하여 주는 작가였으니 말이다. 

정호승은 천안함 발언 이후로 좀 얄밉게 보았다.
그치만 그의 시집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진 않고 또 좋은 시가 있으려나 싶어 찾아 읽는다. 

이 시집에선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화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들이 많다.

한쪽 날개가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겨울 하늘을 나는 청둥오리가 더 아름답다
한쪽 어깨가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다
나는 젊은 마음의 육체를 지녔을 때부터 왼쪽 길로만 걸어가
지금 외로운 마음의 육체마저도 왼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직선의 대로이거나 어두운 골목이거나
내가 바라보던 모든 지평선도 수평선도 왼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기울어진다는 것은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기울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멀리 사람을 바라볼 때
꼭 왼쪽에서 바라본다
왼쪽에서 바라본 사람의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다(왼쪽에 대한 편견)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은,
외로워진다는 것이고,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화자는 왼쪽으로 기울어진 외로운 혼자인 사람을 바라본다.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든 우리 사회의 모습이든,
거기 대하여 연민일지, 애정일지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궁금턴 차에 그가 답을 해 온다.

요즘 어떵게 사느냐고 묻지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 번 세운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 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 안고 산다.
 
가끔은 웃으며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물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마라.
너를 용서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폐사지처럼 산다)

한때 찬란한 별을 노래하던 시인 정호승이,
폐사지처럼 산다니 좀 쓸쓸한 마음이다.
80년대 젊은이들의 마음에 그가 심어놓은 하나씩의 별들은,
아스라이 멀리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폐사지처럼 산다는 말을 시집에서 쓰고 나니,
왠지 서러운 마음이다.

그가 쓸쓸하고 서러워지는데,
그가 한 잔 하자고 붙든다.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나는 나의 가장 가난했던
미소 속으로 사라진다
 
어느 목마른 저녁 거리에서
내가 늘 마시던 물은
내 눈물까지 데리고 땅속으로 사라지고
날마다 내 가슴속으로 눈부시게 날아오르던 새는
부러진 내 날개를 데리고 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쓸쓸한 저녁 바닷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수평선과 함께
인간이 되고 싶었던 나의 모든 꿈조차
꿈속으로 사라져
 
캄캄한 서울
종로 피맛골의 한 모퉁이
취객들의 밤의 발자국에 깊이 어린
별빛들만 사라지지 않고
술에 취한다(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삶의 눈물.
그마저 사라지고,
가슴 속 눈부시게 기르던 새.
그마저 날아 가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수평선.
그것도 꿈이 되어 사라지고... 

다들 사라져
외로운 취객들만
남아있으면서도 사라지는 중인
피맛골의 한 모퉁이
그 모퉁이도 남아있으면서도 사라지는 중일 것인데,
별빛들만 사라지지 않고
술에 취하지만,
술기운 역시 취하도록 남아있으면서 휘발되어 사라지는 중일 것인데,
술에서 깨어나면
그는 별빛들을 찾을 수 있을까?

밥값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 생지옥에서...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밥값)

날마다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서,
지옥도 사람사는 곳임을 애써 긍정하는 화자. 

사람사는 곳이 지옥같을 때,
이래서 쓰겄는가?를 외치던 화자가,
밥값 아래 초라하게,
밥값을 하러 지옥간 인간임을 주억거리며 긍정할 때,
독자는 슬프다. 

해설을 맡은 김유중 선배의 이름을 오랜만에 들어 반갑다. 
선배 역시 해설의 1장에서 아쉬움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어 보인다.
뭐, 시대가 그러하니, 밥값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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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6-1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의 페이퍼를 읽고
부랴부랴 정호승 님의 천안함 발언을 찾아보러 갔습니다. (제가 한 무식합니다.. 아하하)

그런데 왜 저는 정호승 님의 발언에서 처연함을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글샘님의 페이퍼를 읽고, 그 발언을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밥값을 하러 지옥까지 가야 하나요? 아....... 그렇게 나이든다면 참 슬플거 같아요. ㅠ

글샘 2011-06-16 14:40   좋아요 0 | URL
천안함처럼 슬픈 사건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박바가지로 벼락을 막으려는 정권.
벼락을 덤터기로 얻어맞아야 싸지요.
밥값에 지옥을 붙인 건 좀 오버인 거 같아요. ^^ 김훈 정도 시니컬, 지겨움 정도죠.
밥값이 지옥이라면, 정말 출근이 저승가는 길목같겠죠?
 
생각을 발견하는 토론학교 : 철학 - 철학 대신 철학함을 배우는 시간 청소년을 위한 토론학교
최훈.박의준 지음 / 우리학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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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물음들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가 정의될 수 없는 것이기때문에,
이 책의 목차를 잡는 일은 어렵고 또 어려웠을 거다. 

그것도 <토론학교> 철학이라고 했으니,
반대되는 논지가 비교적 명시적인 케이스를 찾으려 했을 터이니 말이다. 

<아름다움>을 철학논쟁의 첫머리로 끌어낸 것 자체가 그 고민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끝없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순환논쟁을 부르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객관적 아름다움은 있는가, 아니면 주관적인 판단일 뿐인가. 

여기서 발전된 것이 과연 <세상에 객관적인 세계와 신>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는 온통 주관적>이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다수를 생각하지 못하고 분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임과,
인간이 이타적일 수도 있고 정의로울 수 있고 소수를 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을 따지는 일도 재미있다.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객관적인 근거를 대기 어려운 혈액형과 성격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컴퓨터가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까지,
과연 인간이 생각한다는 것의 근거가 어디서부터인지,
인식론과 존재론의 수준을 넘어서
이제 뇌과학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와 철학의 범위를 통합적으로 사고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한편, 철학의 논쟁거리들이 서로 어떤 상관관계를 가진 것인지
단편적으로만 제시되어 있고,
줄거리로 엮여있지 않아서, 독자에게 전체를 보는 틀을 제공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철학적인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책들을 더 읽어보면 좋겠다든가,
이런 책들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좋겠다든가 하는 안내가 있었다면 더욱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을...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서로 겹치고 교차하는 유사성들의 복잡한 그물>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을 좇아서,
유사한 것들을 그룹화하고, 겹치고 교차하는 순간들을 파악하는 노력이 철학의 개념임을 알면,
좀더 철학을 즐길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그리고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같은 어찌 보면 살벌한 말도,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는 충분히 친절한 마음일 수도 있음도 배운다. 

---------- 틀린 글자.

216 오장육부의 한자는 다섯 오(五)자가 맞다. 伍는 '다섯사람 오'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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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와글와글 철학학교 톡 꼬마 철학자 1
안느 소피 쉴라르 지음, 강미란 옮김, 파스칼 르메트르 그림, 황경식 감수 / 톡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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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라는 제목으로 나온 철학 이야기다. 

어린이들은 판단의 기준이 어른들과 다를 수 있지만,
아이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올바른 사고 방식으로 자라나는 것은 사회의 건강이 필수적이다.
아이들을 억누르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만큼 어두운 곳은 없을 것이다. 

부끄러움이 뭘까?
공부를 하는 이유는 뭘까?
성공이 뭘까? 

이 책은 그림과 간단한 문제들을 통하여 많은 생각할 거리와
이야기할 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내가 아빠라면,
이 책의 한 페이지를 펴놓고는,
아이랑 저녁 한나절은 보낼 수 있겠다. 

아이를 낳아 실천할 순 없고, ^^
좋은 책이니 아이들이랑 토론하라고 권하는 글을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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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명한 한국 한시를 몇 편 읽어 보자. 
한자가 들어온 것이 1~2세기 정도라면 이제 2천년 가까이 한자가 쓰였는데,
훈민정음을 만든 15세기부터 한글이 쓰이지 않은 걸로 보면,
이 땅의 문화는 한문으로 전승되던 것이 많았겠지.
그렇지만 한문으로 된 것을 모두 내팽개치려는 풍조는 아쉽단다.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는 역사는 고조선까지 우리거라고 우기고,
공부하기 귀찮은 한문글줄은 다 내버리려는 얄팍한 생각은 결국 문화를 멸종시킬지도 모르겠다.

많이 읽었겠지만, 한국 한시의 대표작은 역시 정지상의 '송인'(임을 보내며)이다.

송인(送人)
                            정지상(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연년첨록파)

(기)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승)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전)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결)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파한집(破閑集)>

7언 절구로 이뤄진 한시다.
비가 갠 언덕에 풀빛이 짙어오는데,
그대를 남포(대동강 하류의 큰 도시)에서 이별하니 슬픈노래를 부른대.
'기'구와 '승'구에서는 <선경>이라고 해서 앞부분에서 경치를 내세우는 구절이야.
화자의 심사를 돋우는 배경을 묘사하게 되지. 

봄언덕에 풀빛이 짙어오는데, 이별하는 상황이 된단다.
'전'구와 '결'구는 <도치>되어 있어.
그래서 '결'구를 먼저 읽으면 되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니,
대동강 물은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을 거란다. 

좀 과장이 심하긴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노래지.
화자는 아마도 봄빛 짙어오는 강언덕을 보면 눈물이 핑~ 하고 돌지도 모르겠다. 

이 시를 지은 정지상은 고려 말기의 문인이야.
고려 말기 혼란기에 <서경 천도>파에 가담했다가,
묘청의 난에 휘말려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그래.
김부식이 정지상의 시쓰는 재주를 질투했다고도 하는구나.

지금은 분단되어 가볼 수 없는 대동강.
옛 이야기 속의 대동강 가는 정말 아름다운 유원지처럼 느껴진단다.
부벽루와 연광정, 을밀대 등의 아름다운 경치는 정말 멋지더구나.
언젠가 통일이 되거나, 좀더 긴장이 풀리면 대동강 유람도 멋질 거란 생각이 든다.
거기 가면 이런 노래 한 수 착~ 읊을 수 있어야 멋지겠지. 

 

<대동강 연광정> 

 

<을밀대>

이 시는 <푸른 언덕>와 <푸른 물결>의 색상과 함께,
비, 강물, 눈물의 이미지가 마음을 촉촉하게 만드는 시다.

예전 수능에서 이 시를 이렇게 물은 적 있어.

63. (가)의 결구(結句)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기구(起句)의 '풀빛'과 시각적으로 어울린다.
② 과장된 표현으로 이별의 슬픔을 강조하고 있다.
③ 전구(轉句)의 '언제나 다할런가'와 의미가 호응한다.
④ 이별의 정한(情恨)이 깊은 강물의 흐름과 어우러진다.
⑤ 해마다 더해 가는 현실에 대한 무상감이 푸른 물결과 대응한다.

일단 '결구'가 마지막 행이란 걸 알아야 하겠지?
풀빛의 '푸른색'과 강물의 '푸른색'이 시각적으로 어울린단 이야기고,
눈물로 대동강이 안 마른다는 과장으로 이별의 슬픔을 강조하고 있고,
전구의 '언제나 다하겠는가'와 호응하고,
이별의 한과 깊은 강은 잘 어울리지. 

마지막 답안의 <무상함>은 세상이 모두 변해서 허무함을 뜻하는 말이니 좀 어색하지? 답은 5번! 

다음은 허균, 허난설헌의 스승이라는 '이달'의 한시를 한편 보자.

불일암 인운스님에게(佛日庵贈因雲釋)
                                                   이 달(李達)

寺在白雲中(사재백운중)

白雲僧不掃(백운승불소)

客來門始開(객래문시개)

萬壑松花老(만학송화로)


절집이라 구름에 묻혀 살기로,

구름이라 스님은 쓸지를 않아

바깥 손 와서야 문 열어 보니,

온 산의 송화꽃 하마 쇠었네.   <손곡집(蓀谷集), 이병주 옮김> 


이 시 역시 4행으로 이뤄진 <정형시>로 5언 절구라고 하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가득한 시란다.
구름 속의 절집,
스님이 쓸 수 없을만치 구름에 늘 싸여있는데,
손님이 온 어느 날, 문을 열어 보니,
온 산의 송화(소나무 꽃)는 하마 늙어버렸대.

구름으로 인하여 속세와 단절된 느낌이 강한 절집에 사는 인운 스님,
구름을 쓸지 않는 것은 곧 길도 쓸지 않는단 소리야.
속세와 떨어진 절에서 사는 스님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스님은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에도 관심이 없어.
손이 찾아와서야 비로소 송화가 이미 시들어버린 걸 알게 된다는 거지. 

시간, 세월에 초탈한 마음이 와락, 다가오는 시란다. 

이달은 조선의 학자로, 허균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어.
허균은 천민이 아니지만, 스승 이달이 '서자의 슬픔'을 간직하고 살았던 사람이지.
강원도 원주의 <손곡리>에 살아서 호가 '손곡'이라 불렀대. 

이 시는 마치 세상과 담 쌓고 살 수밖에 없는 스님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던
이달의 마음이 구름 속에 가득 담겨있단다.
분위기가 나른하지만, 쓸쓸하면서 씁쓸한 느낌을 어쩔 수 없다.
허균이 스승 이달의 모습을 보고 '홍길동전'을 구상했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신분의 제약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시대는 참 슬픈 시대였을 것 같구나.
다음엔 지난 번 황진이의 시조에서 <임제>의 시조를 다뤘는데, 그이의 한시를 한편 보자.

무어별(無語別)

                               임제(林悌)

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羞人無語別(수인무어별)

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泣向梨花月(읍향이화월)

현대어번역

십오세 꽃다운 아가씨
남부끄러워 말도 못 하고 이별하네.
돌아와 중문을 닫아 걸고
배꽃처럼 하얀 달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네.

* 월계녀(越溪女) : 아름다운 미인.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히는 서시(西施)는 중국 월(越)나라 약야계(若耶溪) 출신이다. 또한 미인을 지칭하는 성어로 월녀오희(越女吳姬)가 있다. 월나라와 오나라는 대대로 미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이 시는 아빠가 참 아끼는 한시란다.
내용은 뾰족한 것도 없지만,
화자는 열다섯 살 어여쁜 아가씨를 관찰하고 있어.
부끄러워 말못하고 헤어진 아가씨.
돌아와 안채로 들어서는 중문을 닫아걸고는,
배꽃같은 달을 보며 눈물을 흘린대. 

조선 시대의 남녀간 사랑이란 '부부유별'같은 수직적 질서에 눌려 가치없는 것이었단다.
결혼이란 가문간의 결합이고. 

그래서 조선 후기로 가면 '자유연애'같은 가치를 소설 속에서라도 실현시키곤 하지. 춘향이처럼...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나오는 '이생규장전'이란 소설에서는,
남녀가 사랑하다 헤어졌는데 여자애(최랑)가 상사병이 들거든.
그러면 아빠가 그걸 알고 '네 이년, 나가 죽어라!'하는 게 일상적 법도일 터인데,
그 아빠는 최랑을 이생과 결합시키려 여러 번 노력을 해.
그게 바로 신화(新話)겠지, new-story. 

작년에 시험에 났던 '운영전'처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함은 고전적인 주제일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유명한 시 한 수만 더 읽어 보자.
매천 황현 선생은 한일합방(1910. 8. 29)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 시를 쓰고
음독 자살하였다고 한다. 네 수를 지었는데, 그 중 세번 째 시가 유명하다.

절명시(絶命詩)

                                 황현(黃玹)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새와 짐승들도 슬피 울고 바다 또한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버렸구나.

가을의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을 되새기니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가 어렵구나. 


1910년을 경술년이라고 하는데,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긴 참담한 상황에서,
절의(節義)를 지켜 자결하는 심결을 그려 낸 작품으로,
망국에 대한 선비의 통분과 절망을 토로하고 있는 거야.

나머지 세 작품을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흰머리가 되기까지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가물거리는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요망한 기운이 가려서 임금 볕이 옮겨지니
구중궁궐은 침침하여 햇살이 더디 드네.
이제부터 조칙을 받을 길이 없으니,
구슬 같은 눈물이 종이 가닥을 적시네.

일찍이 나라를 버티는 일에 서까래 하나 놓은 공도 없었더니
단지 인(仁)을 이룰 뿐이요, 중(忠)을 이루진 못했어라.
겨우 능히 윤곡(尹穀)을 따르는 데 그칠 뿐이요,
진동(陳東)을 넘지 못했음이 부끄럽기만 하더라.

자결하는 것이 뭐 지식인의 할 일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 당시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일제의 벼슬을 한 놈들도 있고, 
부끄러움을 느껴 자결한 사람도 몇 안 되는 걸 보면,
이런 지조 높은 선비들의 죽음은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 

한문이라고 하면 이젠 완전히 잊혀진 선사시대 유물처럼 생각하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한문 속에 담긴 내용을 곰곰 따져보면,
저것들이 한자로 쓰였다 뿐이지,
한국 문학으로 손색이 없음을 알게 되지. 

이제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하복을 입어도 될 여름이야.
요즘 공기가 나빠 그런지 폐렴도 심하다고 하니 늘 건강 잘 챙기기 바란다.
잘 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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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 - 최고의 멘토들이 전하는 직업 이야기
이영남 지음 / 민음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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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청소년들에게 목표를 가지라고 하고,
야망도 가지라고도 한다.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도시에서 삐까뻔쩍한 삶을 동경할 것이고,
도시 사는 사람이라면 시골의 한가로운 정취를 동경하게 마련이다.. 
시골쥐가 서울쥐를 동경해서 서울쥐네 집에 갔다가 된통 당하고 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주역에서 卑高以陳 貴賤位矣라 해서, 낮고 높은 것이 자리잡으면 귀하고 천함이 생긴다고 했다. 
낮은 것은 가까운 것이고, 높은 것은 먼 것이라,
가까운 것은 천하게 여기고 먼 것은 귀하게 여기는 법이라는 말이다. 

이 책의 작가는 6자매(음기가 엄청 승한 집이다. ㅋ)중 5자매가 모두 교사인 집이라,
자기도 경북사대를 가지만, 매일 같은 수업을 반복하여야 함에 질려 기자가 된 사람이다.
나도 매주 같은 수업을 일곱 반 들어가서 하지만,
미묘한 점은 일곱 번의 수업이 모두 다르다는 데 있다.
나는 그걸 그다지 지겨워하지 않으니 이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모양이다.
사람은 이렇게 모두 다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직업이 '도둑, 강도' 등이 아니라면, 모두 인간의 삶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일게다.
그렇지만, 과연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아이가 의대를 간다 하면 잔치를 벌이지만, 아이가 수학과를 간다 하면 쌍지팡이를 짚을 게다.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직업의 귀천은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거기서 얻는 보수에 따라 분명히 귀천을 가리려 하는 것이다. 

귀천은 주역에서 설명하듯,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천하게 여기고, 얻기 어렵다면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원래 귀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그렇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직업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줄 수 있다면 모두 귀한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그렇게 모순적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다양한 멘토들의 역경 극복 내지는 고민 극복 사례를 싣고 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 책에 등장하는 외과의사, 피디, 회계사, 호텔리어, 기자, 회사원, 아나운서, 외교관, 변리사, 방송작가, 통역사, 법조인, 판사, 승무원, 큐레이터, 조종사, 변호사, 치과의사가 되는 길이 궁금한 아이들은 별로 없을 거란 사실이다. 

이 책의 장점은, 멘토가 될만한 사람을 골라서 인터뷰한 것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생생한 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한계는...
그 꿈을 이루는 데, 과연 한계가 없을까?하는 부정적 생각이 콱, 들게 하는 데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직업군은 한국 사회라면 상위 1% 가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직업의 선호도나 수입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99%의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1%안에 들어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물론 상위 5%의 아이들에게 상위 1%로 진입하는 데 희망을 주는 책으론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 한 아이가 진입하면 밀려날 다른 아이에게 절망은 더 큰 일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집회를 열고 있다.
대통령이란 작자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말을 씹어서 열린 집회지만, 문제는 반값 등록금에 있지 않다.
반값 아니라 무료로 해 준대도, 거길 나와봤자 취업하는 데
또는 세상을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기관이라는 데 있다. 

도움도 별로 안 되는 기관에 엄청난 돈을 내야 하고,
또 가면 갈수록, 로스쿨 제도, 의학 대학원 등으로 인한 학력 인플레는 심각해지고,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비를 감면해주는 사회가 아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서도 다양한 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력과 상관없이
힘든 육체적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 야간 근무나 휴일 근무 등의 일자리엔 고임금을,
사무직이나 단순직에는 비교적 저임금을,
사회적으로 밑바탕이 되는 공무원, 교사, 법관, 의사 등의 직업에는 적절한 임금을 보장하는 사회를
구성원의 합의하에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미 한국은 그 합의를 의논할 시점을 많이 놓친 상태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고도화되어 버렸고,
생활 수준의 상승으로 어두운 미래 속에 최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생지옥도>를 연출하고 있다. 

연출가는 없지만,
그 생지옥도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그저 꿈을 꾸어라~라는 말을 되뇌는 일은,
잠을 자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다음 번 대통령은 제대로 뽑아서,
직장을 많이 만들고,
비정규직의 고충을 덜어 주고,
40대 자영업자의 고뇌를 알아 주고, 그래서 러시앤캐시 광고 좀 망하게 하고...
아이들에게 '공부 덜 해도 다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청춘'의 '봄 춘'자는 'spring'이 아니다.
<청춘>, <사춘기>, <일장춘몽>, <춘화>의 春자는 'sex'다.
청춘은 거기 골몰하는 시기고,
사춘기는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시기고,
일장춘몽은 아 거시기한 꿈을 꾸는데 엄마가 학교가라고 깨워서 안타까워 죽는 헛된 순간이고,
춘화는 거시기 부분이나 거시기하고 있는 장면을 그리거나 찍은 화면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이성의 꽁무니나 쫓아 다니고,
청춘의 젊은이들은 어서 결혼해서 애 낳을 생각이나 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이상 사회 아닐까?
한국 사회가 저출산율 1위란 게 바로 그런 사회에서 멀어진 변종 사회라는 증거 아닐까? 

높은 직업을 얻기 위해 온힘을 다해 공부에 전념하는 '또라이'는 세상에 그리 많이 필요치 않다.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은  
청춘, 을 살아서,
빨리빨리 애를 낳고 그 애들을 잘 기르는 일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열심히 기르려 하지 말고,
진정한 사랑법으로 <실눈 뜨고 볼 것>을 배우는 사회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부모는 아이들을 너무 열심히 기르는 데도 병폐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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