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뎅이가 부은 소설가가 나타났다. 
그의 간뎅이가 부은 것은,
인간에게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고래'를 소재로 소설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는 '고래'란 소설에 별로 '고래'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맘내키는 데다가 '법칙'을 멋대로 붙이는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것들 모두 아니기도 한데,
그의 이야기는 보르헤스나 마르케스 풍의 너스레와 풍자가 웅장하게 펼쳐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읽는 사람을 그냥 제 침을 맞든지 말든지 앞에 두고 눈도 깜작이지 못하게 만드는 그의 말발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이야깃속 '서사'들은 플롯을 이루기에 뭔가 어색하다.
긴밀하게 이른바 '일관성' 내지는 '통일성'을 가지기에는 점도가 낮은 접착제로 붙은 이야기들은
짝 소리 나도록 한 꿰미에 꿰어진 <플롯>을 이루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신화의 세상에서는 '우연성'이냐 '필연성'이냐를 따지는 것이 쪼잔한 넘인 것과 같이,
이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거인 나라의 전설 내지는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세상의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한편으론 징그럽기 그지없도록
인간의 원초적 삶의 시대가 신화의 시대와 엉겨 그려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가 가진 온갖 협잡과 비리와 오염과 치사가 여과없이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일견 통쾌하면서도 한켠에선 불길의 복선이 가셔지지 않는 울렁거림을 남기는 일이다. 
마치 삶이란 괴물이 그러하듯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 수는 없다.
인간의 육신으로는 도무지 이 상상의 세계를 묘파해 낼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넘쳐나는 이미지의 세상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린다면 어떨까?
누들누드나 변강쇠 이야기와 넘나드는 이야기들의 풍이 고래 뱃속에 그득하니 말이다. 

일은 해야하는데,
하기는 싫고,
마음만 답답할 때,
천명관의 고래를 만나라.
어차피 답답할 마음이라면,
고래처럼 숨을 쉬는 신화를 숨쉬는 일도 유의미할 것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김제동의 화법은 '나비'같다.
직선으로 중심으로 날아가지 않고,
나풀~나풀~ 접근하지만
그 접근에는 긴장감이나 공격성보다는 친근감으로 다가오기에 인터뷰가 수다처럼 들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종다양하다.
안희정, 남경필 같은 정치가에서부터
이외수, 김용택, 조정래 등의 문학가,
고현정, 김씨, 황정민 등의 배우까지 폭넓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스물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요령부득의 횡설수설을 남긴 이는
역시 김회장 댁 둘째아들이다.
뭐라고 씨부렁거리는지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스타의 반열에 든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어느 구석인가는 멋진 곳이 있다. 

양신으로 불리는 양준혁이,
땅볼이라고 뛰다 말고 돌아오는 거, 난 인정 못해.
공 하나하나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안타가 아니더라도 전력을 다하면 송구 에러가 나고 그게 안타를 만들거든.
그게 진정한 프로지.
야구뿐 아니라 인생이 그렇다 아이가.(178) 

그 투박한 말투로 이런 섬세함을 보여주는 것이 김제동 화법의 미학이다. 

김제동은 철학자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부조리한 정치가들은 김제동같은 개그맨조차 내치는 것이 현실이다.
김제동의 행보에서 일관성이 느껴지고, 그것이 자칫 정치가들은 정치 철학으로 내비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영석 피디가 제 살 길 찾아 가듯,
김제동도 토크 콘서트 등의 방식을 찾아내고 있어 다행으로 보인다. 

고현정, 윤도현, 최유라, 엄홍길 등하고 언제 술 한잔 하자는 소리 참 많이 한다.
왠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그와 술이 한잔 하고 싶다. 

삶의 질이 갈수록 빈익빈부익부의 경향이 커지고,
중간계층보다 하위계층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김제동의 토크가 심심한 위로의 말로 다가오는 시대도 있는 것 같다.
자칫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전문적 용어로 포장되기 쉬운 반면,
김제동의 언어는 서민적이다. 

그렇지만, 좀더 욕심을 내자면, 이야기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으면...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1-06-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셨군요. 저는 진도가 느려서 책을 쌓아 놓고는 아주 천천히, 음식으로 말하면
천천히 씹고 있느라 다양하게 책을 읽지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 속도를 내야겠어요.
그래서 리뷰 읽기는 유용하죠. 하루에 백 권 이상의 책이 출판된다는데, 어찌 다 읽어보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저기 블로그를 기웃거리죠.
좋은 정보 얻어 갑니다.

글샘 2011-06-28 22:01   좋아요 0 | URL
제가 완전 다양한 책을 읽고 있을 때는... 음, 무지 바쁠 때입니다.
생각없이 마구 읽는 편이에요. ㅠㅜ
여유가 있으면, 읽고 싶어하는 좀 두꺼운 고전같은 거 들입다 파는 편이거든요.
요즘엔 이런저런 경로로 얻는 책들이 많아서 좀 잡다하게 읽고 있네요. ^^
 
골목길이 끝나는 곳 동화 보물창고 34
셸 실버스타인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몇달 전에 도서관에서 양장본으로 된 이 책을 절반쯤 보고 왔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다. 

이 책은 아주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유익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같은 작품이 나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야기의 씨앗들이 '상상력 보따리'안에 들어있을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무릇 작가라면,
이런 상상력의 '씨앗 주머니'인 뒤웅박 하나쯤 철철 넘치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어른을 위한 동화를 1,000페이지 가량 써낼 수도 있을 씨앗 주머니인데,
간략하게,
그렇지만 경쾌하게 읽는이를 콕 찌르기도 한다. 

자루에 뭐가 들었니? 

자루에 뭐가 들었지? 자루에 뭐가 들었니?
버섯이 들었니? 달이 들었니?
연애 편지니? 솜털 같은 거위 털이니?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큰 풍선이 들었니? 

자루에 뭐가 들었니? 모드들 내게 묻는 건 그것뿐.
팝콘, 구슬, 아니면 책이 들었니?
2년 동안 쌓인 빨랫감이니?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고기 완자가 들었니? 

누가 내게 이런 것 좀 물어 줘.
"네 생일은 언제니? 모노폴리 게임을 할 줄 아니?
콩 좋아하니? 유고슬라비아의 수도는 어디니?
아니면, 네 청바지에 누가 수를 놓았니?"

자루에 뭐가 들었니? 모두들 관심있는 건 그것뿐.
바위가 들었니? 돌돌 만 기린이 들었니?
오이절임, 동전, 아니면 펑크난 자전거가 들었니?
우리가 알아맞히면 반만 줄래?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얼마나 오래 머무를 건지,
어디로 갈 건지, 언제 돌아올 건지,
아니면 "안녕?", "무슨 일이야?", "왜 쓸쓸해 보여?"
이런 것 좀 물어 주면 안 되겠니?
하지만 모두들 자꾸자꾸 묻는 건
"자루에 뭐가 들었니? 자루에 뭐가 들었니?"
다음에 또 그렇게 묻는 사람에겐 화를 낼 거야.
뭐라고?
오, 맙소사, 너마저도! 

이걸 책 한 권으로 쓴 사람은 '소유냐 존재냐'란 제목을 붙였더랬고,
소설로 쓴 사람은 '어린 왕자'란 제목을 붙이기도 했더랬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
거기서 작가는 거기까지 왔던 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피식 웃으며 뭔가 이야깃거리 하나쯤 주워 돌아섰으리라.
아니, 거기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암튼,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네 자루엔 뭐가 들었는지,
갑갑한 거 묻지 않는 선생이 되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6-2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쉘 실버스타인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페이퍼를 읽으니 반갑네요.
저는 '나-찌게' 라는 시를 오랫동안 간직했었답니다.
국물을 끓이고, 마지막에 '내가 퐁당 뛰어드는거야, 맛있게 먹길 바래, 잘 있어'
대략 이런 뉘앙스였는데...... 정말 인상이 강했었어요.

오늘처럼 흐린 날 어울리는걸요.

글샘 2011-06-28 00:11   좋아요 0 | URL
ㅋㅋ 좋네요. 찌개...
흐린 날은 찌개에 소주 한 잔! 캬~

2011-06-27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8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홀가분 - 마음주치의 정혜신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정혜신.이명수 지음, 전용성 그림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두바이 칠성 호텔인가 어딘가에서 주방장을 하다 온 젊은이는 독설의 원조다.
한편으로 포스가 느껴지지만,
거침없는 반말과 '당신의 자격이 없다'는 등의 직설은 많이 심하단 생각도 든다.
과연, 저런 중세식 도제 교육만이 교육일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나도 학교에서 아이들과 교사란 자리에서 만난 것이 20년이 넘다 보니,
제자식보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웃자고, 아이들의 가능성을 예단하지 말자고 늘 마음을 가다듬지만,
매일 지각을 일삼는 녀석, 자주 엎어져 자는 녀석을 보게 되면,
비비 틀린 언어가 튀어나오곤 하는데,
내 앞에선 뻘쭘하게 웃는 녀석들은 아침부터 재수없단 생각을 할 것이다.  

세상엔 끝없는 위아래가 있고,
해야할 것만 같은 일들이 각각의 순간 앞에 놓여 있다.
언제나 "예스, 셰프!!!"만을 외쳐야 한다면 인생 참 피곤할 것인데,
가끔은 '홀가분'한 마음을 느끼며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임을,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드물고,
날카로운 심판자는 주변에 가득하다.
너처럼 능력있는 애가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 동료를 일구덩이로 파묻고,
그따위로 할 거면 나가, 하면서 부하직원을 술구덩이에 파묻는다. 

프랑스 파리에는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다는데,
한국인들은 파리 사람과 같은 기준으로 판별한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시간 한움큼씩 신경정신과 약을 타먹어야 할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타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노란 승합차에 오르고,
학생들 역시 <미래의 욕망>을 꿈꾸기 위하여 형광등 파랗게 켜진 교실에서 졸고 있고,
어른들도 <실업의 불안>을 미루기 위하여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불안한 술잔을 부딪치고,
여성들은 <시>자만 들어가면 시금치도 싫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위안을 받는다.
노인들은 <복지>의 축소로 죄인처럼 살게 되고 죽지 못해 사는 날이 대책없이 길어지기만 해 한숨이다. 

과연, 한국인에게 <당신은 누구인가>처럼 남의 이야기로 치부된 주제가 있을까 싶다.
시속 100킬로로 달리는 버스에서 춤을 추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눠야 할 만큼 바삐 살아온 사람들.
조선이란 봉건제 신분 사회가 해체되기도 전에 식민지 하류 인생과 전쟁 이후 총구 앞에 선 불안한 생들에게,
찾아온 서양식 인생은 <공동체 없는> 학교, 교회, 가정을 만든 거나 아닌가 싶다. 

백 살도 넘게 살도록 과잉 의료 시대와 초고령 사회를 맞으면서,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쌩지랄을 떠는 정부와 여당을 떠받들고 사는 국민.
미래와 우리의 <복지>보다는 무조건 <나>의 돈벌이만이 해답이라 믿는 사람들,
그래서, 너네 집 인근을 뉴타운으로 만든다거나 잘 사는 나라 만들겠다면 무조건 뽑고 보는 사람들. 

그 정신 세계가 황무지같은 것임은 살펴보지 않아도 등잔불인 터.
정혜신의 홀가분,은 쉽고 가벼우면서도 <당신은 누구인지>를 묻게 한다.
부담스럽지 않게, 누구인지 모르면서 아는 체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당신, 좀 울어도 좋다고, 아니, 울어야 풀린다고 등허리를 토닥거리고 다독거려준다.
한참 울고 나면, 페이셜 티슈 한 장 주면서 잘 울었다고,
울고 싶을 때 우는 거지, 나라 망했을 때 우는 게 아니라고
아니, 그냥 옆에서 웃어 주리라. 

조용필의 글발이 양인자만 못하다고 혀를 차기 시작하면 견뎌낼 장사가 없다.(45) 

그렇지만 한국에선 조용필더러 양인자를 못따라간다고 난리고,
세 시간만 자면 양인자 뺨칠 거라고 속색인다. 휴=3 

100의 출력을 가진 오디오 기기를 70 정도 해놓고 음악을 들을 때 가장 편안한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허드레 공간이 있어야 인간의 마음은 정상적으로 순환됩니다.(67)

100의 출력 이상으로 고성을 지르다 지직거리는 성대결절이 생긴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은 안쓰럽다.
그래서 나가수의 가수들은 어떤 날은 가수답지 않은 흉한 목소리로, 그러나 그날도 역시 쌩고함을 지른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지 않기 위해서... 알면서도 지른다.
누군가는 그걸 알면서도 지르지 않는다. 결국 잘린다. 세상은 그렇게 무섭기도 하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의 모든 심리적 문제를 사람이 숨을 참고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71)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음인'이 되도록 교육받고 있다.
음인은 농경사회처럼 1년을 텀으로 살아가는 생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현대처럼 숨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엔 숨을 참는 일처럼 고통스런 일도 없다. 

'임신부 식성론'
자기 결정에 불안해하고 그 결정을 확인 받고 싶은 간절함에 외로운,
모든 이들에게 무한의 지지와 격려를 보냅니다.
당신이, 늘, 옳습니다.(101) 

이기적인 태도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흉보기도 한다.
<개인>적인 것은 <이기>적인 것으로,
아니, 건강한 이기심을 <개인적 이기심>은 모두 비판받아야 할 것으로 매도하곤 한다.
뒤집어 보면, 그 비판은 욕하는 자들의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다. 

결혼에 대한 만족도는,
정서적으로 친밀하고 대화가 잘 통할 수 있는 부부가 제일 높다고 한다.(106) 

나이 들어가면서 진짜 친구는 아내밖에 없다. 그래야 한다.
직장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아내와 보내는 시간을 할애할 순 없다. 그래야 한다.
아니면, 혼자 살든가. 난 그건 못하겠다. ^^ 

나희덕의 시에서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을 인용하는데, 그렇다.
유홍준의 글에서도 높은 산을 <깊은 산, 깊은 절>이라고 표현했듯,
인생의 묘미는 깊이에 있다.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주었다
- 나희덕, 「俗離山에서」<그곳이 멀지 않다> 
천재지변의 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가 한 세미나에서
자신이 겪은 감정을 말하는 도중
눈물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발표가 중단되자,
사회자가 슬며서 겨텡 다가와 물컵을 건네주며 속삭이듯 말한다.
"눈물도 말(言)이에요." (176)

이런 지혜와 아량을 만나면, 축복이다. 

죽기 전에 '나 자신(眞我)'과 만나보고 싶다는 작가를 만나는 일도 꽤 멋진 일이다. 

매 순간, 숨쉬기 힘겨울 정도로 직장에서 피곤한 당신,
피곤해 죽겠는데, 누워서도 일거리가 머릿속을 빙빙돌아 한밤중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았으면 눈물이 핑, 돌아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다 뒤엎어 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도 아니고,
뿅, 하고 사라져 버리고 싶은 당신, 

홀가분해 지고 싶다면, 정혜신의 홀가분도 한 잔의 시원한 물 정도는 될 일이다. 

딸꾹질이 멈추지 않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시킨다.
물을 한 컵 뜨고,
그 물을 열 번에 나눠 마신다고 생각해라.
자, 물을 조금 마셔라.
그리고, 컵을 180도 돌리고, 다시 조금 마셔라.
다시 컵을 180도 돌리고, 마시고,
됐어?
그리고 다시 컵을 90도 돌리고, 마시고,
다시... 돌리고, 마시고,
... 
열 번이 아니라, 다섯 번 정도 물 마시는 데 몰입하면서
호흡을 조절하면 딸꾹질은 똑, 떨어진다. 

호흡 사이에 고통스런 생각도 딸꾹질처럼 똑, 떨어지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6-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요, 저렇게 하면 딸꾹질이 멈추나요?
삶이랑 비슷하네요........

글샘 2011-06-28 00:12   좋아요 0 | URL
딸꾹질 나면 꼭 해 보세요.
사는 건, 근데 똑 안 떨어지잖아요. ㅎㅎ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김선우가 인도의 오로빌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마음이 아플 때,
사람은 가장 힘들다.
마음이 아플 때 사람은 자기가 아픈 줄 모른다.
힘든 줄로만 착각한다.
그러다 마음이 죽고 나서야,
아, 내가 힘들어 죽겠다고 떠들던 그 말이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마음의 죽음, 마음 심 변에 죽을 망, 바쁠 망 忙 이란 글자다. 

오로빌은 '새벽의 도시'란 뜻이다.  

인도 남부의 생태 공동체, 영적 공동체로 조성된 곳.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먼 것으로 나아가라.
자신의 성장은 자신의 마음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이런 교육의 원칙을 곰곰 곱씹을 필요가 있겠다. 

이 책은 치유의 목적으로 읽는 책이 아니다. 
자칫 이 책을 읽다가 현실을 비관하고 훌쩍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어질는지도 모를 일이므로.
오르빌에 대한 소개의 책이자,
열심히 일한 당신이 쉴 때, 이런 곳도 있음을 생각해 두는 정도여야 할 것이다. 

 

 

231쪽. 귀여운 오타 하나... 

우리는 둥 우주의 품 속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죠?
우리가 태어난 자궁도 둥글고
생명을 품은 알도 둥글고
해도 달도 둥근 것들의 이 생명력.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6-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 요책도 요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본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만, 또 생각외로 삶의 문제들이 여전히 대기중이지만, 그래도 생각하고 고민하고 삶을 진지하게 살려는 모습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더라고요.

저는 242페이지. 플루트를 부는 아이(?)의 모습이 왜이리 인상적인지 모르겠습니다. ㅎ

글샘 2011-06-25 21: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사진... 참 인상적이죠.

조명을 받으며 조용히 앉아 피리부는 아이와,
그를 둘러싸고 눈길 모으며 마음을 집중하는 아이들과,
형광등 아래서 몸을 뒤트는 우리아이들이 대조돼서... 저는 오히려 가슴이 갑갑하더군요.

한국에서 태어난 게 원죄라면, 할말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6-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의 새로운 이미지가 이 책에서 나온거군요.
꽃이 떠 있는 것은 알겠는데, 이게 어떤 사진인지 잘 모르겠어요. 색이 참 곱네요.

바람결님과 글샘님 글로 인해, 장바구니에 넣겠습니다.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글샘 2011-06-28 00:12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있는 건 아니구요. 오로빌에 있는 사진 검색해 본거예요.
인도는 열대기후라 꽃이 참 탐스럽게 크거든요. 그걸 저렇게 장식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