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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28
허균 원작, 박윤규 다시 씀 / 네버엔딩스토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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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학생에게 진로지도를 할 것으로 선발된
커리어 코칭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미래 사회는 끝없는 변신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가,
날은 무더운데 다들 늘어져 계셔서,
김범수가 부른 '님과 함께' 동영상을 구경했다. 

전문가조차도 변신하지 않으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가 생각하니 씁쓸하지만,
한편으로 미래가 두렵기도 했다. 

그런 관점에서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조선 후기, 변화하는 세상을 보면서 이 소설의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몹시 궁금했다.
물론 홍길동전은 작가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으며,
이 책 역시 구전되면서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부분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군주제 국가와 양반 사회의 질서라는 중세 봉건 시대적 사고가 금이 가던 시기.
신분제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던 시대를 반영한 소설. 

어린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려운 옛말투를 부드럽게 잘 바꾸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참고하여,
아이들에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조금 설명이 곁들여 졌더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길동은 모친에게는 '소자'라고 스스로를 칭하지만,
부친에게는 '소인'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다.
소자는 부모에게 자식이 스스로를 칭하는 법이고, 소인은 상전에게 하인이 일컫는 법이니,
이런 단어로도 호부호형이 금지되었음을 설명하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18쪽의 장충의 아들 '길산' 이야기가 나오는데,
홍길동전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4대왕 세종때이고,
허균의 활동 시대는 조선 14대왕 선조때이고,
장길산은 조선 19대왕 숙종때임을 고려하면,
구전의 삽입 결과임이 비교적 분명한 소재다. 

이야기 전개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장길산 이야기는 없앴더라도 무관했겠다. 

중고생들이라도 굳이 한자어가 가득한 고전을 읽을 필요는 없다.
현대어로 쉽게 풀이된 책이나마, 많이 읽어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온고지신이라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창의력'에는 반드시 옛것이 도움이 되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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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7-03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강의내용 궁금합니다. 저에게도 조금만 나누어주심이......
님과함께 동영상 보면서 샘들 잠이 확 달아나셨을듯. 센스있으신 강사님^*^

글샘 2011-07-04 02:29   좋아요 0 | URL
제 강의 내용은 공부 열심히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학습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치만 제 자식에게는 가르치지 말라고 해요. ㅋㅋ
부모의 페르소나와 선생님의 페르소나는 다르기 때문이죠.
공부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자식이래도, 공부 이야기 맘편하게 하긴 쉽지 않을 걸요. ㅎㅎ

hakim 2011-07-0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책을 깊이 있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지적하신 길산에 대한 언급은 익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서술해 나간 것은
홍길동 연구가인 설선경 교수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장길산이 조선 숙종조 인물이 아니라
중국 전진시대의 인물이고
운봉산 역시 중국 도교의 성산 가운데 하나임이 수긍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충과 길산 부자는 각각 태산과 운봉산에서 도교를 수련하여 한 경지에 올랐으며
그로 인해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장길산은 임꺽정과 더불어 도적이 대표인데 결코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이런 정황들을 토대로 장황하게 다 설명할 수 없어 간단하게
'저 먼 나라 장충의 아들 길산도..'하고 설명하였던 겁니다.

지적하신 바들을 참고하여 차후에 각주를 달까 생각중입니다.
깊은 독서 감사합니다.

박윤규 드림

글샘 2011-07-10 21:54   좋아요 0 | URL
아, 저자께서 이렇게 왕림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ㅎㅎ
장충과 길산에게 그런 이야기가 담겼군요.
도교의 성산이라 하니 홍길동전과 연결이 잘 되는 거 같습니다.

새로운 걸 하나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
 
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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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경식은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서승, 서준식 형제의 동생으로도 유명했고, 프리모 레비의 인간에 대한 고뇌도 알려주었다. 

그의 비평들을 모은 책인데, 상당히 무겁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모어와 모국어에 대한 사고 전개는 그만이 펼칠 수 있는 세계가 있으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3부의 일본 사정에 대한 글들은 일본의 속내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어차피 탁상공론이니 그렇다 치고. 
남북 정상이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외의 통일 논의는 모두 헛소리일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라면 '모어'와 '모국어'를 구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경식에게 모어는 일본어고 모국어는 한국어다.
그는 '모어'로 사고할 수밖에 없고, 그에게 모국어는 외국어이다.
모국어로 기본적 의사소통이야 되겠지만, 깊은 사고는 모어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특히 2부의 평론에서 '재일 조선인, 자이니치'에 대한 역사적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일은,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늘 겪는 일이지만, 아픈 일이다.
남과 북의 분단,
남한의 독재 정권에 의한 기민정책, 북조선의 동포 북송정책은 모든 자이니치들을 '있지만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청도 운문사 앞마당에 가면 규화목이란 나무가 있다.
나무 속에 규소 성분이 가득 들어차서 이젠 나무의 형태를 갖추곤 있지만,
내부는 광물이 되어버린 나무. 

규화목을 나무라고 하기에는 그 성분이 속속들이 모래알과 같은 규소고,
그걸 돌이라고 하기엔 그 생김새와 조상이 명확한 나무인 셈. 

자이니치의 처지가 규화목처럼 서글픈 거나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일본인이라고 하기엔 삶의 곳곳에서 한국인의 핏줄이 펄쩍이고,
한국인이라고 하기엔 그 삶의 양태가 더욱 일본인의 삶이 되어버린... 

서경식이 본문에서 간혹 사용하는 '스테레오 타입' 역시 자신의 그런 애매한 위치에서 날카롭게 찌르는 용어라 더욱 남다른 감정이 묻어나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남들과 통념상 비슷한 거, 개성을 드러내기보단 비슷하게 가는 거, 운동에서도 반복 연습해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거, 한국인이라면 보통 그렇고, 화장하는 여자라면 보통 그렇고, 경상도 문디라면 보통 그런... 고정관념이나 통념과 가까운 스테레오 타입. 

한나 아렌트도 자주 인용되는데,
개개의 행위의 '죄'는 개인으로 귀속되지만,
공동체의 성원에게는 언제나 정치적 의미에서의 집단의 책임이 부과된다
는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한다. 

한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만행은,
미국의 앞잡이인 한국의 군사독재정부가 저지른 것이 아니다.
개별 한국인의 '따이한'들이 저지른 일이다. 그들이 퍼질러 낳은 아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언제나 정치적 집단의 책임이 부과된다.
한국인의 베트남 사람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무죄가 아니란 말이다. 

일본인들은 '이제 일본인을 그만두고 싶어'라고 하지만, 그것은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이승연이 위안부 복장을 입고 화보를 찍든,
임재범이 히틀러 복장을 입고 노래를 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고려했다면,
자기의 여성스러움과 섹시미를 더 강조하려고,
자신의 남성다움과 터프함을 더 강조하려고,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컨셉트를 차용하는 일은 사전에 조율했으면 지혜로웠을 거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공동체의 성원에게는 언제나 정치적 의미에서 집단의 책임이 따른다는 말 같은 걸 덧붙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이나 눈에 상처를 주면서,
보복에 대해서는 관용을 주장하는 그런 인간과는 절대로 가까이 지내지 말라. (루쉰, 죽음, 322) 

일본이 지배했던 식민지 조선은 '남한, 북조선, 연변 조선족'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박정희 군사 독재 정부가 일본과 맺은 밀약과 한일협정으로 '화해'와 '관용'을 내세우는 자들이
일본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다.(여기서 한국이라는 말은, 한국의 민중보다는 한국의 친일파 족속 몇몇을 일컫는 말이어야 한다.)

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인가?
왼뺨을 맞았으니 오른뺨도 내밀라는 말인가?
일본의 우익은 <도의적 책임>이라는 레토릭(정치적 수사)으로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정치적, 물리적 책임>은 회피하려 한다.
또 식민지 조선을 괴롭힌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었다는 말도 뻔뻔스레 한다.
거기 부화뇌동하여 <화해>와 <관용>을 내세우는 '대 학자'들이 한국에도 계시단다.  

견강부회라는 말이 있다.
끌 견, 강할 강, 붙일 부, 모일 회.
소를 강제로 끌고 가서, 암수를 모아 놓고 붙이려고 하듯이,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강제로 들이대는 통속을 비판하는 말이다.
속속들이 일본의 논리를 사랑해 마지않는 자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다. 

'화해'라는 미명으로 '굴복, 굴종, 타협'을 강제한다.
이것을 작가는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썼다.
전두환이 그렇고 지금의 장로 대통령도 그렇다.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는 화해를 거부할 수밖에 없음을 서경식은 잘 알고 있다. 화해 이전에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함을, 그처럼 절실하게 느끼는 위치도 드물 것이다. 

자본주의는 <장벽>이 있어야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Free Trade는 말이 자유 무역이지, 장벽을 쌓고, 그 장벽을 넘는 데 따른 이득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
자본주의 강국들이다. 

이 구조는 새로운 디아스포라들을 양산한다.
끝없이 재편성되는 <장벽>과 <디아스포라>의 흐름은 갈수록 난맥상인데,
그 복잡한 잎맥들도 잘 찾아보면, 줄기에서 물길을 끌고 오는 원맥이 있게 마련이다. 

이 복잡한 세상을, 힘이 지배하는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경식같이 세상을 읽는 힘을 가진 이들이 글을 써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나처럼 눈이 부족한 사람은 그런 책을 읽어야 하고, 그래야 극복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게 된다. 

언어의 감옥에서 창밖의 자유로운 새와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디아스포라만의 처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약자일수록, 난민일수록, 외국인노동자일수록,
자신의 언어는 <자유의 수단>, <소통의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속박의 수단, 남들보다 뒤처져보이게 하는 열등의 도구가 되기 쉬운 것이다. 

언어가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는 <장벽>을 낮추고,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
난민도 살 수 있는 사회.
약자를 이해해 주는 사회.
이것이 앞서야지,
기업이 살기좋은 나라,
국가가 파워풀한 나라...
이것은 역시 약자를 짓밟는 구조를 재생한하는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언어의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는,
그래서 감옥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생각하는 굳센 길을 걷는 일이 되기도 한다.
서경식의 글들이 더욱 탄탄한 힘으로 그 길을 다지길 바란다.

 

 ---------- 수정할 거 하나(편집자님이 보시면 댓글 달아 주세요. 지우겠습니다.)

191. 북위 16도선을 기준으로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하고... 베트남의 38선은 북위 17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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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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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마다 선호하는 단어가 있고,
끌리는 카테고리가 있다.
'오늘 아침 단어'라는 신선한 제목으로 만난 유희경이란 시인.
매일 아침 단어 하나씩 붙안고 브레인스토밍이라도 한다면...
창의력 기르는 공부로는 꽤나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밥벌이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니, 뭘 만나도 제 하는 일에 대입하려 하게 마련이다. 

이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그늘', '우산', '지도' 같은 단어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맨 앞에 시인의 말에서 '수십 개의 단어와 한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
나는 아직도 이런 일을 생각한다. '라고 적었다.
결국, 자신은 어떤 단어들과 맥락을 같이 하며 떠오르는 시인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 바,
'우산'이 들어가는 시, 우산의 고향, 우산의 과정, 우산의 반대말
'지도'가 들어가는 시, 지워지는 지도, 다시, 지워지는 지도,
'그늘'이 들어가는 시는 '부드러운 그늘' 한 편이지만,
나는 그의 시에서 짙은 그늘이 벗겨지지 않음을, 그의 시는 거기에서 연유하는 것임을 보고 있다. 

그의 시는 그의 마음을 반영하지 않는다.
거울처럼 그의 마음이 이렇게 생겼다고 비춰주지도 않고,
은유처럼 그의 마음과 유사한 것들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다만, 그늘처럼... 어떤 지도를 찾아 더듬는 과정에서 그가 있음직한 지형을 그늘처럼... 만나게 될 뿐. 

  나는 당신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사람이다 당신 발밑으로 가라앉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다 당신이 눈감으면 사라지는 그런 이름이다 내리던 비가 사라지고 나는 점점 커다란 소실점 복도가 조금씩 차가워진다 거기 당신이 서있다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것은 모르는 얼굴이다 가시만 남은 숨소리가 있다 오직 한 색만 있다 나는 그 색을 사랑했다 당신은 내 오른쪽의 사람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사람이다 내 머리 의에 흔들리는 이가 있다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그토록 나를 지우는 사람이다 (당신의 자리) 

이 시는 누구의 시점일까 골똘히 생각한다.
그림자일까? 시인의 그늘의 자리에 선...
발밑으로 가라앉는 그늘... 
이 노래는 통째로 '그늘의 노래'가 아닐까...
당신이 선 그자리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돌다가
발밑에서 한 색으로 존재하는 그의 그림자, 그의 그늘...
그늘의 마음의 색을 언어로 드러내려는 힘든 숨소리,
가시만 남은 숨소리...

오늘은, 날이 참 좋구나. 라는 말씀이 있었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니.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은 하늘이 참 파랗구나. 거실은 어두웠다. 

  아플 때마다 그늘이 생각나 바람이 불면 휘우듬 기울어지는 그녀. 어릴 땐 울지 못하고 다 커서 우는 게 뭘까. 개구리? 아니 사람. 사람이? 그래 사람이, 그렇게 살아. 거짓말. 너는 몰라. 내가 뭘 모르는데. 좀 더 어른이 되면 알 수 있어. 꼭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처럼, 말하는 구나. 그늘을 내내 앓는 창문 

  컵에 물을 따르는데, 내가 울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좀더 어두워진 거실에서. 잠깐만, 너는 내가 아니니? 하고 물었다. 컵에선 물이 넘쳐흐르고, 나는 울고, 대답하지 않는다. 어둑어둑해진 거실에, 너무 많은 햇빛처럼, 그치지 못해? 컵을 집어던졌다. 깨진 것은 컵이 아니라 다 담지 못한 물. 나는 너무 슬퍼서 더, 좀더 

  그러니 가말 수밖에. 너무 많은 답장처럼 추워, 몸을 떨었다. 누가 있는 걸까. 복도를 텅텅 울리며 지나간다. 모든 것이 비뚤어진다. 말씀은 더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날은 이미 너무 좋았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휘어졌던 그늘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고, 나는 속으로 

  그래도 될까, 그제야 울음을 그친 내가 묻는다. 어깨에 손을 올리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울다가 웃으면 큰일난다. 어깨에 손을 올리려고 노력하는 내가 말했다. 조각조각난 물방울이 어두운 거실을 채워간다. 나는 흔하고, 어디든 있고, 그러니 내가 혼자서 울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더듬대며 말하는 소리. 

  그냥, 거실이, 사람이, 그러니까 내가, 오늘이, 참 좋은 오늘의 날씨가, 말씀이, 그녀의 병과 내가, 누군가의 복도가 마냥 어둡고 축축한 아니 서럽고 또 흘리고 (오늘은)

 오늘은 화창한 하루였을 것이다.
그러나, 화자의 마음 한켠엔 계속 짙은 '그늘'이 드리운다.
<그늘을 내내 앓는 창문>으로는 결코 화창한 햇살 따위 드나들 수 없음을,
이미 햇살조차 '반투막'처럼 걸러내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그의 <창문>은 늘 '어둡'고 '컴컴'하고 '가말' 수밖에... 

그의 삶 속 지도는 뚜렷한 방향성과 길을 제시하지 않는 형상이다. 

방금 불어온 바람을 등지고 어리고 슬픈 내가 공을 주우러 뛰어간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글러브는 누구의 가죽이고 날아가는 것을 보면 왜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가 

계집애가, 오빠를 쫓다 터뜨리는 울음을 빙그르르 돌리는 저녁이다 더는 돌릴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참는, 어쩌면 생활의 무늬란 그런 것이지 꼭  다문 입술의 주름 같은 것 (지워지는 지도, 부분) 

버스는 오지 않는다, 대기는 멈춰있다 물컹한 촉감으로 구름이 자라고 습도는 일 초의 힘으로 공중을 당긴다 

음악이 시작될 것이다, 악보 위로 교복 치마가 흔들린다 예보에 따르면 우리는 장마 속에서 살고 있다 정류장은 굳어 버렸다 가로등이 딱딱한 빛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백지장의 사내들이 어깨를 다문다, 공중에 몸을 감추고 있더니 가 모습을 드러낸다 먼 거리는 없어도 좋다 왼쪽 가슴 오 센티 위에서도 는 태어난다 

갓난비를 맞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의 걸음에는 지도가 새겨져 있다, 나는 지도를 훔쳐보는 사람 

음악 속으로 뛰어가는 모든 것은 사랑스럽다 를 피한 울음이 커다란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어미가 아비를 사랑하고 아비가 어미를 찾아 헤매는 밤이 오면 

예견된,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들이 등고선의 허리를 구부리고, 쏟아진다 지도의 모든 것 나에게로 쏟아지는 모든 것들 (다시, 지워지는 지도)

그의 삶은 지도에 비유되지만,
그 지도에는 방위 표시도 도로 표시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알 수 없는 사태들이 <장맛비처럼> 쏟아지고
왼쪽 가슴 오 센티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비처럼 당혹스러움 투성이다. 

그래서, 그의 '우산' 사랑은 당연한 걸까?
왼쪽 가슴 오 센티 위의 쏟아지는 비를...
우산 따위 받친다고 어찌해볼 수도 없는 사태인 것이지만,
그의 우산은 어찌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한 마디 변명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죽는다 이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감아 담아온 풍속이 쏟아진 다음, 투명한 손이 더듬어 내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잠든 사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사진을 떨어뜨린 여자가 있다 여자가 죽는다 죽어 찰랑이는 몸을 남긴다 그것참, 가는 살을 가진 빗 같다 이렇게 아플 줄이야 

저기, 나눠 가질 수 없도록 이 죽는다 죽은 다음에야 찰랑이는 빛을 남긴다 촘촘히 빗어 넘긴 검은 머리칼이거나 머리칼로 비유되는 것들 

창문 너무 고요가 펄럭이고, 죽고 없다 저리 먼, 눈 먼 곳까지 가볼 리가 없다 뒤가 죽어 사라진다 서늘하다 달래기 힘든 아이가 울기 때문에 

죽은 것이 죽었다 계절이 남긴 계절은 그래도 된다 손에 들었던 것들이 죽는다 죽었던 것들이 죽으려 한다 조용히, 그렇게 (검은 고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아픈 비가 내리면,
그의 왼쪽 가슴 오 센티 위에서 '검은 머리칼'로 비유되는
서늘한 비가 내리면,
그는 검은 고요 속에서 우산을 받아야 한다. 

우산은 그렇게 태어난다 우리는
젖은 채 태어나고 젖으려고 사는 것들
답 없는 질문처럼 꼭 그렇게 

지금은 우산의 색을 떠올릴 시간
얌전히 들어서는 어둡고 익숙한,
곁에 머물고 이따금 스치던 손의 차가움. 

아무도 올지 않는 이런 날엔 또 모두가 울고
날아간 것은 새들의 아득한 꿈이었을지도
젖어가는 것은 속속들이 빗물이었을지도 (우산의 고향) 

우산에 대해서라면 오래오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검은빛이고 나는 펼쳐진 시간을 사랑한다. 

예를 들어 점점 어두워져가는 거리, 어깨를 감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가로등 켜지고, 그림자 사라지고, 나는 머뭇거릴 때, 

검은 물로 태어나는 것 혹은 젖은 몸으로 살아가는 것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방법 혹은 혼자서 걸어가는 일 

그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나뿐, 비가 온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나는 긴 우산을 들고 있었고 하늘은 우울한 색으로 빛났다. 인부들은 동시에 신음을 쏟았다. 휘청이는 구덩이. 그러나 죽은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날의 색은 기억나지 않는다. 

또 한 번 불붙은 것은 우산이었다 토요일이었고 나는 침착하게 걸었다 빠른 속도로 차들이 미쳐가고 웅덩이마다 가득한 멍이 넘쳐나, 토할 수밖에는 

그러니 어떻게 우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길거나 짧고 접거나 펼쳐진 채, 기억과 함께 동시에 불어나는 존재를... 

... 우연히 알게된, 나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던 사람 왜 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나는 아직도 그녀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알지 못한다. 여자의 머리 위에서 조금씩 조금씩 흘러 내리던 검고 가느다란 실핀 그러나 아무도 우산을 펴지 않는다. 

... 이것은 나의 오랜 철학이다 그것에 대해 나는 오래오래 이야기해왔고, 또 오래오래 이야기할 것이지만, 우산에 이름을 붙이는 미친 남자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것을 고백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예뻐하지 않는다 그것이 없더라도 나는 그것을 그리고 그것과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쓰디쓴 추억일지라도  (우산의 과정) 

고이면 좋겠어... 

이렇게 끝내주는 소리는
천년 전의 것... 

비가 내리는 만큼
입을 다문 사람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날씨 앞에서는
누구나 넓고 너무 투명하다 

떠오른다 침묵하지 않는,
하고 싶은 말 지우고
젖어간다 모서리부터 (우산의 반대말) 

이렇게 그의 우산은

젖은 채 태어나고,
젖어가며 살아가고,
젖으려고 사는 것들에게, (우산의 고향)
유일한 위안이 된다. 

검은 물로 태어나 젖은 몸으로 살아가는 것들에게
우산을 함께 받고 가는 행위에 대하여,
삶의 과정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산의 과정)
우산은 또 하나의 <단어>가 된다. 

우산의 반댓말은 '비'일까?
내리는 비를 막는 것이 우산이니깐, '고인 물'일까?
우산에 토독 두두둑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가 우산의 반댓말일까? 

그늘에 주목하는 그에게,
날씨는 흔히 젖어 있다.
빗줄기는 하얗고 가는 뼈이거나,
검은 머리칼, 또는 실핀처럼 온갖 형상을 하고 그의 곁에서 늘 서성댄다.
가야할 길이 제시된 지도조차 펼치지 못하는 그에게 필요한 건,
오늘 아침 그에게 필요한 건,
우산, 이란 단어가 아니라,
우산을 함께 쓸 사람인 거나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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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북로거(Power Booklogger) 모집 공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다양한 독서콘텐츠를 담은 파워블로거를

파워 북로거(Power Booklogger)’로 선정하여 지원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모집개요

   1. 모집기간 : 2011.7.1(금)~7.20(수)

   2. 모집인원 : 총 15명

   3. 신청대상 : 2011년 7월 현재 블로그를 지속적으로 운영 중인 블로거 
   

  4. 신청방법 : 자신의 블로그에 모집 공고문 게재 후 참가신청서(첨부 파일)를 작성하여 담당자 이메일로 발송


   5. 접수확인 : ‘독서인(www.read-kpec.or.kr)’ 게시판 또는 블로그 http://soa8267.blog.me/ 에서 가능



   6. 결과발표 : 7.22(금) 오전 11시, 독서인 홈페이지 공지 및 유선 연락 예정


활동안내

   1. 활동기간 : 2011.8.1(금)~11.30(수) [4개월]

   2. 활동내용 : ‘책’ 또는 ‘독서권장’과 관련된 글 게재

     예) 서평 또는 책 소개, 책 관련 동영상 또는 그림, 독서 관련 행사 소개 및 참관기, 자신의 독서경험 등  

   3. 지원사항

     (1) 활동비 지급 : 매월 문화상품권 10만원, 총 40만원

         - 지급시기 : 익월 초(예 : 8월 활동비는 9월 초에 지급)

         - 지급방법 : 우편 발송

     (2) 엠블럼 제공 : 위원회가 제공하는 엠블럼을 반드시 블로그 메인 화면에 게재 
     (3) 독서분야 자료 제공 
        - 위원회 추천도서 목록, 위원회 독서권장 활동 안내 등 

   4. 활동시 유의사항

     (1) 매월 최소 5건 이상 게재

       - 블로그 및 독서인 홈페이지 동시 게재

     (2) 다른 사람의 글을 복사하여 올린 글은 제외

     (3) 단순 비방글과 위원회의 판단에 의하여 부적합한 글은 삭제 요구 가능하며, 이 경우 블로거는 삭제요청 24시간 이내에 해당 글을 삭제 조치해야 함. 
 

     (4) 지원 활동에 의해 작성된 글의 저작권은 위원회에 있음.

     (5) 해당기간 동안 활동 미흡시 교체 가능


● 접수문의

   1. 접수 : 독서진흥팀 파워블로거 지원 담당자 이메일 soa8267@naver.com

   2. 문의 : 전화 02-2669-0746

●  블로그 : http://soa826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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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7-0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신청하시어요. 님이 딱 맞으실듯.
만약 글샘님 활동하게 되면 저에게 일부는 커미션으로 주셔야 해요^*^ ㅋㅋ

글샘 2011-07-01 21:27   좋아요 0 | URL
북로거 하시라니까는,
브로커 하시려는... 좋아요. 커미션... ㅎㅎ

pjy 2011-07-0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당연히 더욱 멋진 활동 기대합니다^^

글샘 2011-07-01 21:28   좋아요 0 | URL
더욱 멋진...은 어렵구요. ㅎㅎ 2학기땐 좀 줄어들 거 같은데요.

순오기 2011-07-01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준백수인 나는 월 10만원의 활동비가 욕심나긴 하지만...
글샘님을 위한 모집공고군요.^^

글샘 2011-07-01 21:29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이야말로 해 보세요.
월 10만원의 활동비 넉 달이라면, 사보고 싶은 책 맘껏 사볼 수 있잖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