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개는 이제 그만!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9
고든 코먼 지음,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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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주인공 월러스는 중학교 미식축구 스타다.
월러스는 결코 거짓말을 않기로 유명한데,
그 꼿꼿함때문에 근신을 받고 미식축구를 쉬게 된다.
연극반과 인연을 맺게 된 월러스는 연극 무대의 연출에 월등한 재능을 보여주게 되고,
거기서도 역시 스타가 된다. 

그런데, 연극을 가로막는 사고가 빈발하고 그 사고는 월러스가 저지른 것으로 오해받는데...
마지막 연극 무대에서 범인을 알게된 월러스는 친구 레이첼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 청소년 소설의 테마는 '진실과 거짓말'일는지도 모르겠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라든가,
팬으로써 지나친 집착은 어리석음 이라든가. 

근데,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 아이들이 눈에 밟혀 마음이 아팠다.
학교라는 공간은 다양한 특별 활동을 통하여 아이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우리가 만든 학교에서는 남녀가 섞여 생활할 수도 없을 뿐더러,
공부 이외의 활동은 모두 제약을 받도록 구조화되어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소설을 읽는다면 어떨까. 
마치 70년대에 우리가 일제시대나 전쟁시기의 무서운 이야기들을 교과서로 접했던 것처럼,
무서운 현실과 자유로운 이야기 속의 대조가 아이들의 현실을 상처로 인식시키지나 않을는지... 

연극을 통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아이들의 재능 같은 것을 보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윤기를
빛나는 눈동자와 향기로운 살결로 보여줄 수 있는 아이들더러
형광빛 퀭한 교실만을 주장하는 어른들이야말로 행복을 논할 가치가 없는 자들이기도 하다. 

연극을 꿈꾸거나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들,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재미같은 것들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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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8-2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 시절중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축제때 참여했던 "이수일과 심순애" 공연이었어요. 전 당연히? 심순애...ㅋ
연사가 있어서 몸짓으로만 표현하면 되는것인데 참 재미있었어요. 이런게 추억이었는데..요즘 애들은 학원다닌 기억밖에 없을듯. ㅠㅠ

그나저나 왜이렇게 뜸하셨대요?

근데 저 today수는 진짜일까? 와 대박^*^

글샘 2011-08-22 22:51   좋아요 0 | URL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학교엔 축제가 없죠. 뭐, 우리 삶에 청춘이 없다던 박민규 말처럼, 우리 삶에도 축제는 없었던 거 같아요. 음... 심순애, 그렇게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사랑한 것이냐... 스...은해!

중국 다녀오고 나서 몸살도 좀 나고, 여행도 다녀오고, 지리산 극기훈련 인솔도 하고 해서 몹시 바빴답니다. ^^ 요즘 며칠 겨우 썼어요. ㅋㅋ
오늘 467 오셨군요. ㅎㅎ 정말 진짜일까?
 
호랑이 발자국 창비시선 222
손택수 지음 / 창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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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의 시를 가르치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통증이 남는다. 

통증엔 격렬한 통증도 있겠지만,
그건 치료가 끝나면 잊혀질 수도 있는 통증이다.
통증 중엔
잊힐 만하면 찾아오는 만성 통증도 있게 마련인데,
손택수는 이 만성 통증 전문 시인인 거 같아 마음이 자꾸 쓰인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가 그랬다
병든 사내를 버리지 못하고
버드나무처럼 쥐여뜯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흐느끼던 울음에도
저런 청승맞은 가락이 실려 있었다

채식주의자의 질기디질긴 습성대로
죽어서도 여물여물
살가죽에 와닿는 아픔을 되새기며
둥 둥 둥 둥 지친 북채를 끌어당긴다
끌어당겨 연신 제 몸을 친다 (소가죽북)

소와 북과 어머니.
죽어서 북이 된 소가죽과,
북도 아니지만 얻어맞던 어머니의,
청승맞은 흐느낌의 통증. 

어쩜 한국의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련한 애절함의 판소리 가락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질기디 질긴 통증은 죽어서도 살가죽에 와 닿는 아픔으로 살아나는 그런 것이다.

  가지 하나가 휘어져서 땅거죽을 찌르고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예사로만 보아오던 조무래기 새떼며
  눈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꽃을 탐하느라 고집스레 가지를 끌어내리던
  어스럭송아지하며

  원을 그리며 흐르는 차디찬 물소리, 환한 달이 떴다
  소를 잡고 난 뒤에 집안에 코뚜레를 걸어두면
  복이 들어온다 했던가 한평생
  소를 몰던 할아버진 땅속으로 돌아가고

  이랴, 이랴 땅의 콧김을 받아 반들반들 윤이 나는 나뭇가지
  휘묻이한 몸을 코뚜레 삼고, 한쪽 끝을
  놓칠까봐 팽팽하게 조바심하고 있다 (물푸레나무 코뚜레)

코뚜레...
요즘엔 거의 잊혀진 이 단어는
예전에 동화로 읽은 적이 있다.
코뚜레는 그 작은 도구 하나로 소처럼 큰 동물을 제압하는 힘을 가진 기구다.

이 시에서는 통증보단 삶의 순환에 대한 생각이 주로 드러났지만,
나에게 코뚜레란 단어는 통증으로 앞서 다가선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자식의 소원 하나 들어주신 아버지,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의 마음엔 비가 내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보여주시고 만 삶의 낙인. 

그 지게자국은 아픔이고 통증이다.  

 

탁구공 튀는 소리다
스님들도 목탁대신
탁구를 칠 때가 다 있네
절집 처마 아래 앉아 비를 긋는 동안
함께 온 귀머거리 여자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숫저운
미소만, 미소만 보이는데
통도라면 인도까지 갈까
저 빗소리, 내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그 머나먼 서역까지 이를까
흙이 아프지 말라고,
흙의 연한 살이 다치지 말라고
여자는 처마 아래 조약돌을 가지런히
깔아주고 있는데, 그
위에서 마구
튀어오르는 빗방울,
저 빗방울
하늘과 땅이 주고 받아 치는 탁구공 소리다 (통도사 빗소리)

비가 내리면
흙이 아플까?
흙의 연한 살이 아플까? 

처마 아래 조약돌을 가지런히 깔아주는 여자의 마음이 오히려 저리게 다가선다.
그 여자의 삶이 아파서...

언뜻 내민 촉들은 바깥을 향해
기세 좋게 뻗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제 살을 관통하여, 자신을 명중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고 있는 가지들

자신의 몸 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동심원, 나이테를 품고 산다
가장 먼 목표물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으니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하는, 시윗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산길 위에서 (화살나무)  

나도 살면서 배웠다.
남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아픈 사람임을.
그는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기에 가장 아플 수밖에 없음을... 

가장 먼 목표물은 언제나 내 안에 있음을 가르쳐주는
화살나무의 아픈 진실. 

기세 좋게 팽팽하게 살아가는 날에도,
살아갈수록 동심원이 멀어지는 것처럼 살아가는 날에도,
사실은 나이테는 바깥에서 하나씩 생기는 게 아니라,
가장 안에서 하나씩 생기는 것임을 생각하게 해 주는 시집. 

아픈
통증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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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04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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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의 시어는...
간명하거나 화끈하지 않고 침묵에 가깝다.
선승의 공안 한토막처럼
뜬금없기도 하고 친절하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장석남의 시는
마음으로 번져가는 시이고,
마음으로 읽는 시이다.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슨 길을 걸어서
새파란 
새파란 
새파란 미소는,
어디만큼 가시려는가
나는 따라갈 수 없는가
새벽 다섯 시의 감포 바다
열 시의 등꽃 그늘
정오의 우물
두세 시의 소나기
미소는, 
무덤가도 지나서
화엄사 저녁 종 지나
미소는, 
저토록 새파란 수레 위를 앉아서

나와 그녀 사이 또는
나와 나 사이
미소는, 
돌을 만나면 돌에 스며서
과꽃을 만나며 과꽃의 일과로
계절을 만나면 계절을 쪼개서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표제 시인데,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를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인 나 사이... 
'새파란 이파리'를 보면서, 
새파랗게 존재하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한다. 

인간 존재는 혼자서 있지 않다.
<사이>에 있고, 그 사물들을 <지나서> <스미고> 만다.

미소처럼,
빙긋이 순간 머물다 사라지는 것.
인간 삶도 그런 걸까? 

3일에 걸쳐 지리산을 넘었다.
칠선 계곡 쪽의 임도를 따라 벽소령까지 오르고,
세석 평전을 거쳐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올랐고, 중산리로 내려왔다. 

비가 내리고 신발은 젖어드는데,
등허리에 매어달린 배낭과 무릎의 통증만이 나의 존재함을 뜨겁게 알려왔다. 

비가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 위로 빗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툭 툭
그러면
배낭을 둘러싼 우의 위로 떨어지는 후두둑 툭 툭하는 빗방울소리.
나도 빗소리 따라
나뭇잎이 되는 것 같았다. 

자욱한 안개 따라
앞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저쪽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산장의 그림자가 하염없이 반가운 것.
거기 산장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그렇게 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까풀막을 섹섹거리는 숨소리도 가쁘게 오르고 나면,
반드시 온갖 들꽃들이 한들거리며 손을 흔들어 준다.
괜찮다고...
우리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산다고... 

내가 지나온 길, 넘었던 등성이, 디뎠던 돌팡구 하나하나가
모두 지나가 버린 시간 속에서
무엇 하나와 무엇 하나의 사이에 속한 것이었다.
그 소중한 기억도 금세 사라진다.
마치, 미소처럼... 

이런 순간을 말로 붙잡으려는 장석남의 시는
그래서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허해서 말이다. 

못 보던 얼룩이다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빙판 언덕길에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수줍고 수줍은 저녁 빛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천수천안의 노을 든 구름장들 장엄하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야 하리 (얼룩에 대하여)

살면서 얼룩을 만들게 된다. 
장마를 노래하는 시인 장석남에게 얼룩은 으레 따라붙는 소재다.                

장마가 지나자 악취가 나기 시작하였다
우선 가까운 데를 두리번대고
다시 참아보자고 앉았다가
안되겠다 싶어 다시 일어나 두리번댄다
그건 興行과도 같은 것 ?     
諷刺와도 같은 것 ?
점점 圓을 넓혀 두리번댄다
집 바깥까지, 남의 집 담 너머까지 두리번대다
돌아온다 
그건 禪과도 같은 것 ?
깨침과도 같은 것 ?
다시 제자리
이번엔 政治的으로 고쳐 앉는다
고요하다 (두리번 禪) 

삶은 장마같이 구질구질 내리는 비처럼 속절없을 때가 많다.
하느님이나 운명의 신에게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냐고 울면서 물어도 대답은 없다.
삶은 장마나 마찬가니니까. 

이유도 없이 '대기 불안정'이란 말로 일기 예보를 대신하는 뻔뻔스러움이 '장마'의 특징이다. 

두리번거려봤댔자, 답은 없다.
악취가 번지는 일,
그건 흥행과도 같다고 했고 풍자와도 같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선이나 깨침과도 같을지도 모르겠다고 물음표를 붙여주는 의뭉스러움. 

결국 정치적으로,
의도적이며 스스로를 다스리려는 목표를 지니고
제대로 고쳐 앉아 본다.
악취는 '고요하다' 

흥행에는 정석이 없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를 고용해도 실패할 수 있고,
동네 할머니를 등장시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
풍자의 시니컬함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그저 한마디의 지나간 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장마철.
빨래 보송하게 마르지 않는 계절.
툭하면 비가 내려 벽에 얼룩을 만들고,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철.
불쾌한 시절. 

그러나, 장마가 나를 불쾌하게 한 것인지는... 정치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노릇인 셈. 

……안팎을 다해서 저렇게 깨어진 뒤라야 완성이라는 것이, 위안인, 아침이었다.
그 곁을 지나며 옷깃을 여미는 자세였다는 사실은 다행한 일이었으니
스스로 깨어지는 거룩을 생각해보는 아침이었다 (석류(石榴)나무 곁을 지날 때는)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눈을 생각한다. 

석류 알알이 벌어진 모습에 그저 감탄하기를 지나서,
자신이 옷깃을 여밀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거룩을 생각할 수 있어,
위안을 받는 자세. 

시인의 마음 가짐이 오히려 거룩하다.

산 넘어 온 비가
산 넘어 간다
비단옷으로 와서
무명옷으로 간다

들 건너 온 비가
들 건너 간다
하품으로 와서
진저리로 간다

물 건너 온 비가
물결 건너 간다
뛰어온 비가
배를 깔고 간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국밥집에 마주앉은
가난한 연인의 뚝배기가 식듯이
이슬비가 되어서
비가 간다 (장마 끝물)

장마가 빨리 지나면 좋겠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장마는 간다.
그렇지만, 장마가 가기를 바라고 바라지만, 그리 반길 일은 아닐 수도 있음을 왜 모르는지...
장마를 즐겁게 사는 것 이외에,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은 없다는 걸 왜들 모르는지... 

장마가 가면 화창한 봄날이 오던가?
장마가 가면,
남는 것은 쇠락의 가을.
황량한 겨울이 아니던가... 

비단옷으로 와서 무명옷으로 가는 것.
이게 삶이 아니냐.
하품나게 지루하던 삶이 진저리치게 아쉬움으로 남는 것.
이게 삶이 아니냔 말이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 남긴 <시인의 말> 보자.

시인의 말

문 : 문 열고 들어가도 될까요?
답 : 그래요. 그 대신 문은 돌로 막아버려요.

문 : 나가고 싶은데 문은 어디죠?
답 : 당신!

무너질 데라고는 나 자신뿐!
거길 깨고 나갈 밖에.

나갈 문도 없이 집을 짓는다. 그게
사랑이다.
(그리고 능청이다.
삶 말이다.)

능청스럽다.
그래.
삶이 그렇단 말이다. 

문도 없는 집.
이른바, 무문관.
그게 사랑이란다.
말이 사랑이지, 그게 삶의 진리란다.
스스로 깨어지고 나가지 않으면 길이 없는 방.

벽에서 얼룩 하나 걸어 나오신다
벽에서 얼룩 한 벌 걸어 나오신다
벽에서 얼룩 한 분 걸어 나오신다
펄럭이는 얼굴과 쏟아진 소매
속에 모아쥔 손.
속에 예쁘디 예쁜, 웃음으로 싸맨 울음 한 움큼
얼룩 한 채 걸어 나오신다.

작년, 재작년의
모란꽃 속을 황홀하게 걷던 영광
너무 컸던지
다 젖은 얼굴 펄럭이며 오신다
신발 머리에 이고 오신다*
신발 머리에 이고 오신다 (장마) 

* 조주 선사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도통 모르겠다.
그렇지만,
신발이 과연 발에 신어야만 하는 것인지,
머리에 이고 오시는 거 또한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거 아닌지,
시인은 오히려 시를 통해 묻고 있다. 

솔직히 이 시집은 쉽지 않다.
그게 이 시집의 매력이기도 하다. 

등산하는 이에게 왜 그 힘든 산을 오르냐고 물으면,
거기 산이 있으니까... 했다는 이는 엄청 그럴싸한 말을 한 거고,
숨쉬기도 힘들고, 온몸을 짓누르는 중력의 억압을 느끼면서,
자신이 숨쉬지 않으면 죽을 것임을 배우고,
그래서 자신이 아주 작고 작은,
순간에 불과한,
미소에 지나잖은 존재임을 배우러 가는 것이라 대답할는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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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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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85년에 일본에서 나온 유명한 소설이다.
1968년, 일본은 전공투의 회오리에 휩쓸리고 결국 전공투는 해산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는 후예를 기약하는 것이었다.
전공투를 이끌던 세대들,
그러니까 일본의 68년 주도세력이 사회의 주축이 된 1980년대,
과연 그때의 순수했던 정신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런 의문을 아이들의 반란이라는 형식의 소설로 풀고 있다. 

스토리 라인은 아주 간단하다.
한 중학교 학급의 남학생이 몽땅 어떤 폐공장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어른들의 치부를 드러내며 1주일간 생활하는데,
친구의 유괴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고위층 인사들의 추잡한 뒷거래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들은 버림받은 노인(전쟁세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빚쟁이 유괴범에게 돈을 벌 기회를 주기도 한다.
결국 어른들은 패배하고, 그들은 아름답게 승리한다. 

일본의 68혁명 세대가 보여주었던 순수함이 온데간데 없이
기성세대의 오염된 세계 속으로 녹아들면서,
더욱 심화된 사회의 문제에 무기력하였던 모습에 대한 반성이라고 읽으면 되는 소설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소설은 청소년들에게 읽히기보다는 어른들에게 읽히고 싶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완벽하게 자신들의 '해방구'를 만드는 일은 불가능한데,
소설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도 크겠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1980년대,
광주에서 촉발된 부조리에 대한 저항은 치열했다.
그러나 소위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30대였던 1990년대 후반의 386이라 불리던 세력은,
정치권의 구도 변화를 이끌어 오기도 했고,
그리하여 최초로 민간인 대통령인 김대중, 노무현을 만들기도 했지만,
자기 자식만은 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에는
일제 강점기의 무지한 농사꾼 부모보다 더욱 모진 역할을 맡게 된다 

입시 구조는 더욱 공고화되었으며,
사회 양극화는 점차 심화되었다. 

물론 그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세계화의 시대. 강대국이 물리력을 행사하던 고강도 정책에서,
경제적 제재와 환경문제 등을 통한 우회적 침탈이 강해지는 시대를 만난 탓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촛불 집회에도 그렇게 열심히 나올 수밖에 없었던 386 세대들에게 이 소설은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그때, 너희가 가지고 있던 순수함은
과연 세상에 얼마만큼의 빛이 되었는지를 말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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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19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희가 가지고 있던 순수함은
과연 세상에 얼마만큼의 빛이 되었는지를 말이다. " - 이 말이 가슴 찡하네요. 저도 386세대라서인가요?




글샘 2011-08-21 13:39   좋아요 0 | URL
지난 시대를 많이 반성하게 했던 소설이었습니다.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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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니콜 크라우스의 '그레이트 하우스'를 읽고, 사랑의 역사를 읽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 책은 이미 5년 전에 나온 책이며 많은 사랑을 받은 책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한 스토리라인을 그리는데,
거기서는 '사랑'에 대한 생각도 '역사'에 대한 생각도 읽어낼 수 있도록 품고 있는 맛이 있다. 

제법 인기를 끌 법한 제목을 붙였으며,
이야기는 뜬금없는 '미로' 속을 헤매게 만드는 일종의 미스터리 형식을 띠고 있다.  

<사랑의 역사>라는 텍스트를 둘러싼 이야기는 여러 인물들이 직조하는 실타래처럼 꼬이고 꼬인다.
그리고 그 텍스트가 직조된 언어도 원래의 이디시어에서 스페인어로 다시 영어로 옮겨지고 번역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가 읽는 텍스트는 그 소설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만나게 되는 것이고... 

한때 한 소년이 있었다. 

레오 거스키가 사랑하는 알마에게 이디시어로 적어준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과거지만,
그의 사랑하는 여인이  낳은 아들은 유명한 작가가 되고,
또 죽음을 맞게 되어 과거라는 이름의 역사(history) 속으로 바래어 간다. 

과거의 이름 알마는 텍스트를 돌고 돌아 어린 알마에게로 돌아와
레오폴트 거스키와 동물원 앞에서 만난다.
만남까지의 이야기는 미스터리로 엉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것처럼 독자를 유인한다. 

그렇지만,
풀리지 않은 미래의 의문(Mistery)인듯 보이는 퍼즐 조각들은
이미 여러 차례 만나도록 작가는 구성해 놓고 있다. 

레오가 누드 모델로 서던 날...
커다란 스웨터 차림의 여자아이도 있었다...고 적었는데,
알마는 부친 사후, 그해에 나는 아빠의 스웨터를 42일 내내 입었다...고 적는 등,
직조에 공을 들인 태피스트리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우연 속에서 <마주치>던 사람들은,
<사랑의 역사>란 텍스트를 둘러싸고 긴밀하게 <만나>게 된다.
마주침과 만남이 반복되는 속에서 인간의 '사랑'은 깊어가고, 그것이 또한 역사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미스터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니콜 크라우스란 이름을 기다릴 법도 하다.
평범하게 스토리 중심으로 직조해도 복잡한 이야기일 것을,
다양한 인물의 시점으로 복잡하게 얽어 놓아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키면서
몇 가지의 단서를 중심으로 매듭을 풀어가도록 구성에 힘을 쏟는 니콜의 복잡한 두뇌를 따라가면서 헐떡거리는 경험은
마치 힘겹게 산악 전문가 뒤를 따라 오르는 등산처럼 정신없게도 하지만,
산에 오른 뒤의 상쾌함이 그 모든 힘겨움을 일거에 날려버리듯,
독서의 과정에서 직조된 아름다운 이야기의 아련함 역시 헷갈리는 독서의 땀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경험을 줄 것이다.

이디시어와 유태인의 문화에 낯선 독자에게 67, 283 페이지의 반복되는 단어들은
뭔가 관련된 고리가 아닌가 관심을 갖게도 되는데, 특별한 설명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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