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생각대로 성경읽기
이현주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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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의지가 강한 자들이 기독교인들의 당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예수님의 뜻을 모시지 않고,
교회와 권력을 좇아 따르는 세력으로 비쳐서 맘에 들지 않는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지가 벌써 이천 년이 넘었고,
성경은 불멸의 베스트셀러라고 일컫지만,
과연 성경을 읽어주면서 사람 사는 일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이는 얼마나 되는 것인지...
이현주 목사님은 결국 성직을 버리고 '소속된 곳 없는 아무개'가 되어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다. 

목사님이 제 자리를 벗으셨을 때 가지셨던 마음자리까지 읽어낼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성경을 읽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일임을,
성경은 역시 '고전'의 반열에서 읽어야 하는 마음공부의 고전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이다. 

이아무개의 넓은 품 안에서
노자와 장자도 성경에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뜻을 서로 비추이는 거울과도 같아진다.
물론 그 거울에 비추인 예수도 성경도 노자도 장자도 모두 허상임도 놓치지 않고 짚어 준다.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날이 갑자기 닥쳐 올지도 모른다.
조심하여라.
그날이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덫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가복음 21. 34-36)

허망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곧 조심하는 것이요.
마음을 챙겨 실속 있는 일에 모으는 것이 곧 깨어있는 것이다. 

기독교 교회들이 힘을 합쳐 장로 대통령 한 분 모시기 위하여 애쓰는 일도 의미있을 수 있다.
그 장로 대통령님이 진실로 훌륭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고,
국민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라면, 기독교 교회가 정치와 버무려진다고 손해날 일은 없다. 

그러나, 이 땅의 장로님 출신 대통령들이 이끌어온 환난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면,
가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도록 만드는 세상이다.
늘 깨어 기도하여라.
이런 교훈이 성경에 있다면, 왜 장로 출신 대통령님은 이런 좋은 성경 구절은 인용할 줄 모른단 말인가. 

   
 

쉴 때가 되었다. 고단한 자는 안식을 얻어라.
이제는 안심하여라.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이사야, 28, 12) 

어떤 생각이든 자기 생각을 그냥 가지고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들리지 않는 음성을 어찌 듣는단 말인가.
먼저 내 생각을 비우지 않고서는 내 몸에서 하느님의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왜 내게만 일이 이렇게 몰려드는가.
이런 헛된 고민을 안고 고민하는 나도 바보다.
내 생각을 비우고 내 몸에서 하느님의 그림을 바라야 하는 노릇이거든.
회사후소(繪事後素)라. 그리는 일은 비움 뒤에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큰 소리로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하고 외치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대답하셨다. (루가 11, 27-28) 

밖에서 찾지 말아라. 벗어날수록 네가 찾는 것에서 멀어지리니. 

 
   

늘 당신은 행복한데 나는 왜 이렇냐는 푸념...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아닌지...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 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만큼 된다."(마르코복음 4, 30-32) 

하느님 나라는 거창하게 나팔불고 선전하는 가운데 비롯되지 않는다.
겨자씨 한 알이 땅에 묻히듯, 소리없이 소문도 없이 하느님 나라는 시작된다.
매스컴의 조명을 받으며 요란하게 시작되는 그런 하느님 나라는 없다. 있으면 가짜다. 

 
   

아, 성경에 다 나와 있구나.
크기만 한 것. 다 부질없는 일임을...
겨자씨만 한 것이 자라고 자라서 하느님 나라가 되는 것임을... 아는 자가 예수님 제자다.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칠십 명을 데리고 올라 갔다.
그들은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사느님을 뵈었다.
그가 딛고 계시는 곳은 마치 사파이아를 깔아놓은 것 같았는데
맑기가 하늘빛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선발된 이 사람들에게는
야훼께서 손을 대시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뵈오며 먹고 마셨다.(출애굽기, 24, 9-11) 

하느님을 뵈었다면서 하느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무엇인 줄로만 날고 있는, 그게 탈이다.

 
   

아는 척, 잘난 척, 가진 척,
인간은 이 '3척 동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지만, 예수님 말씀을 읽으면서, 성경 속에서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인간될 첫계단을 오르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는 죄가 업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로마서 2,1) 

내가 나를 사랑하면 그것은 곧 남을 사랑하는 것이요.
내가 나를 미워하면 곧 남을 미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진실을 알든 모르든, 그렇다.

 
   

결국 내 몸에 딸린 안이비설신의, 이 외물에 의하여 파악되는 것이 객관일진대,
그 객관을 진실로 객관이라 믿는다면 잘못된 일이라. 

내 손이 만진 남의 신체나,
내 눈이 느낀 남의 외모는 모두 내 대뇌에서 연합하여 만든 형상일 따름인 것을...
알고 사는 일과 잊고 사는 일의 차이는 크다. 

그 차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는 말씀으로 가득한 성경이 옆에있어도, 지나치고 산다.
아무개님의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의 말씀이 친근하게 여겨졌다.
성경을 만날 시간을 찾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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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3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저는 기독교나 천주교인이 아니라서, 성경을 접한 일이 거의 없지만..
이런 책이라면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소개 감사드려요... 그리고
기독교 당을 만든다는 뉴스 저도 들었는데, '세금 징수'라는 두 글자가 왜 생각나는지 모르겟습니다.. ㅎㅎ

글샘 2011-08-31 16:0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교회는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성경을 읽는 일도 이렇게 좋은 선생님한테 배워야 하죠. ^^

2011-08-31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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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먼지를 일으키면서 질풍처럼 달려가는 아이와, 그 아이를 막아서면서 어리어리하는 아이도 있고,
질풍의 앞을 가로막으려 사방에서 달려드는 아이들과, 공과는 먼 거리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저쪽 편 골키퍼는 몸을 사리면서 긴장하고,
이쪽 키퍼는 어슬렁거리며 완전 빠진 상태로 서 있다. 

조용필의 노래를 듣는다.
아름다운 죄 사랑때문에 /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 겨울의 찻집)

산다는 일은, 그렇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거라는 구절에서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공을 차면서 돌아다니는 저 아이들에게 그 순간 축구공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사는데,
한 거리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 한숨, 웃고 있어도 눈물을 부르는 그 한 생각.
산다는 일은, 그렇게 뜬금없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바람의 노래)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것 같으면서도 / 텅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킬리만자로의 표범)

박민규가 좀 나이들었나보다. 
박민규를 읽으면서 계속 조용필을 탐닉하듯 들었다.
조용필 노래 가사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말은 '사랑'이었고,
박민규가 시니컬하게 욕하면서 찾아가던 곳도 '사랑'이었다. 

언젠가 퇴직을 하면... 하면서 삼십 년을 버틴 인간이,
퇴직하고 나면, 그 지옥같던 직장을 꿈꾼다는 이야기... 

죽음을 앞둔 사내에게 초등시절 사랑하던 여자아이가 접근한다.
맘을 졸이게 해 두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나 돈 좀 빌려줘... 라니... 

오랜만에 전화온 딸이 죽음을 각오한 아빠에게 한다는 소리가, 저 돈이 필요해요... 라니 

삶이 이렇게 조잡한 것임을... 알게 되는 일은 슬프고 피로한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직설적 질문을 소설에 들이 밀다니...
그 답이란... 이러하다.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 

그런데...
삶은 이렇게 비루한데,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 장 떨어 

진다, 떨어졌다, 왜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낙법도 없는 삶에 대하여,
그는 또 산다는 일이 뭔지를 묻는다. 

형, 산다는 건 뭘까요?
별 거 있냐? 먹고 자고 싸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지.
그러노라면 시간도 가겠지... 

인생은 저멀리 떠가는 제플린 비행선을 쫓아가는 일처럼
무의미하고 허무하지만, 하릴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임을,
박민규는 초라하게 울상짓지 않고 묻는다.
한민족에게 청춘이란 없었던 가엾은 사람들이란 관점을 지닌 박민규 정도라면,
징징거리지 않고 시니컬하게 또는 가볍게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어떤 작품들은 그의 <은하 영웅>처럼 상상력에 치우친 것이어서 취향에 맞지 않기도 하니,
취향에 맞춰 고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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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 완역본 올 에이지 클래식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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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집에 유일하게 이 책이 뒹굴고 있었다.
그림도 없던 계몽사 안데르센 동화집을 책장이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야외학습이라도 가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서 내 이야기를 듣던 기억도 남아 있다. 그렇게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준 책이기에 수십 년만에 읽는 이야기는 새로웠다. 

아이를 기르면서 간략하게 그림책으로 나온 이야기들을 읽었을 때 만날 수 없었던 즐거움.
특히 <눈의 여왕> 속 얼음이 박힌 심장과 눈동자 이야기를 읽노라니 마치 내가 열 살 내기 어린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제목을 원제목에 가까이 붙여 놓아 새롭기도 하다. 

'인어 공주'는 '막내 인어 공주', '나이팅게일'은 '밤꾀꼬리'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안데르센 동화집을 어른이 되어 읽으면서,
이 책은 꼭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는 아니고,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묘사의 섬세함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생의 의욕을 되찾는 이야기들은 아기들보다는 어른들의 팍팍한 삶에 위안을 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요즘 애매한 것을 정하는 남자, 애정남이 대세다. 

동화는 꼭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편견은 애매한 것 중의 하나다.
동화를 읽고 리뷰를 쓰는 이들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동화, 결코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님을,
안데르센이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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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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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 시장이 나쁜 투표를 실시했지요.
결국 졌으면서도, 25.7%에 머물러 실패했으면서도, 승리했다고 우기더군요.
순수함을 잃은 사람들.
어린 영혼들을 보고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투쟁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더군요.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만난 날,
이런 시집의 글을 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의 말들은 죄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놓인 순수함을 보지 못하는군요.
세계의 단단한 철판 위에 이성의 흔적을 새기는 사람들, 물의 말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틈새에서 잠들고 자라나는 어린 영혼을 보고는, 아이, 불결해, 눈살을 찌푸리기만 하네요.
하지만 물방울로 이루어진 당신의 말은 그 영혼을 투명하게 비춰주는군요.
물방울로 오로지 물방울과 싸우는 당신. 물방울의 정의를 행사하는 당신. 판결과 집행이 아니라 고투와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시집 뒤표지의 시인의 말) 

정말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을 내세우는 정치가라는 욕심쟁이 사람들은 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들에게는 오로지 힘과 숫자만 보이는 모양이죠.

시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란 실존의 대상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런 희망사항을 품고 있어요. 

당신은 말하죠. 인간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발명했어요. 사랑을 제외하고요.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마랗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시집 뒤표지)

요즘 김난도라는 작가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인기래요.
오죽하면 한국처럼 책 안 팔리는 나라에서 100만부가 팔렸다네요. 
저는 아직 읽어본 일은 없지만, 뭐, 제목만 봐도 88만원 세대의 고통 앞에 충고와 격려를 보내는 글인 모양입니다. 

어쩌면 '정의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읽은 사람도 없이 100만부가 팔린 것과 비슷한 현상인지도 몰라요.
차라리, 이 시집의 뒤표지처럼 '당신, 내 사랑'을 되뇌어줄 수 있는 시집을 읽는 게
훨씬 위로의 말과 포옹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런 영국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로 시작해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이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말로 끝맺는 책이랍니다.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계속 가라니...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답니까?
그렇지만, 또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게 삶이기도 한 건 거짓없는 사실이겠지요.
지금 유명한 음악가, 미술가들도 거의 생존시엔 굶주림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게 살았던 것처럼,
'내일'에 '내 일'은 무엇일지... 알 수 없는 것임엔 동의할 수밖에 없잖아요. 

눈앞에 없는 사람.
당신에게 시인은 자꾸 '말'을 던집니다.
눈앞에 없지만, 당신은 '부재'하는 존재는 아니에요.
눈앞에 없으므로, 당신은 더욱 '강렬하게 존재'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오히려...  

그렇지만, 부재한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언어'를 노래합니다. 

우리가 영혼을 가졌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은 그중 하나만 보여주마.
그리고 내일 또 하나.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말들) 

이 시집의 서시격인 첫 시인데, 이 짧은 글이 전문입니다.
오늘은 하나만 보여주고,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당신과 나의 영혼의 존재를 밝혀보고 싶다는 의지를 아주 '쎄게' 표출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그 의지는 쉽사리 실현될 수는 또 없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화자는 명확히 보여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는 걸로 눙치고 들려 합니다. 약하게스레... 

단어들이여.
내가 그늘을 지나칠 때마다 줍는 어둠 부스러기들이여.
언젠가 나는 평생 모은 그림자 조각들을 반죽해서
커다란 단어 하나를 만들리.
기쁨과 슬픔 사이의 빈 공간에
딱 들어맞는 단어 하나를. 

나의 오랜 벗들이여. 
하지만 나는 오늘 밤 지상에서 가장 과묵한 단어.
미안하지만 나는 그대들에게서 잠시 멀어지고 싶구나.
나는 이제 잠자리에 누워
내일을 위한 중요한 질문 하나를 구상하리.
영혼을 들어 올리는 손잡이라 불리는
마지막 단어만이 입맞춤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
로 끝나는 질문 하나를. (나의 친애하는 단어들에게, 부분) 

언어란
워낙 인간 존재가 부족한 존재이다 보니,
적확한 표현 하나 얻기 힘든 것이잖아요.
그러니, ?로 끝나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기쁨과 슬픔 사이의 머나먼 거리를 메워줄 단어를 찾아 나서는 셈인 거죠. 

그 단어가 하나일까요?
그리고 그 단어가 과연 몇 글자로 확정될 수 있을까요?
물론,
나와 너무 닮은 당신은 그 단어를,
콕 집어서 한 단어로, 혹은 몇 단어 속에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바심을 내겠지요.
ㅎㅎ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저는 독심술이라도 부리는 듯 다 알 수 있답니다. 

나는 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들려온
기침 소리와 기타 소리를 따라
환한 오후에 심장을 별처럼 달고 다닌다는
인간에게로,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질문을 던져 보자.
두 개의 심장을 최단거리로 잇는 것은?
직선? 아니다!
인간과 인간은 도리 없이
도리 없이 끌어안는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인간이기 위하여
사랑하기 위하여
無에서 無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초라한 간이역에 아주 잠깐 머물기 위하여 (지금 여기) 

'지금 여기'는 결국 '존재론'적 귀결을 놓칠 수 없지요.
두 개의 심장의 최단거리는 끌어안는 거라네요.
그게 곧 '사랑'으로 채워지는 '무에서 무로가는' 인식의 세계를 뛰어넘은 공간 의식이겠지요. 

그러나, 사랑이란 놈,
사랑... 그놈이 과연 실체가 있는 걸까요?
초라한 간이역 사이에 잠깐 머무는 존재인 주제에 말입니다. 

나는 너의 손을 움켜잡는다. 나는 느낀다.
너의 손이 내 손안에서 조금씩 야위어가는 것을.
마치 우리가 한 번도 키우지 않았던 그 자그마한 새처럼.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 마.
너는 날아갈 것이다. (새, 부분) 

눈앞에 없는 당신.
그러나 나와 너무 닮은 당신.
그래서 닮았음을 쉽사리 인정하기도 힘겨운, 낯선 당신.
그러나 또,
너무 낯설어 하여,
그것조차 나와 닮은 당신. 

당신,
반가워요. 

인간 human과 웃음 humor은 어원이 같다더군요.
당신에 대한 애정을 담아
우스개 인사 하나 덧붙입니다. 

 

이 인사가 뭐냐구요? 

반갑수다! 입니다. 

심보선 시는 음... 읽기 쉽게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어쩜 형상화를 거부한 개념적 유희를 즐기는 시이기도 합니다.
화자가 의도하는 바가 금세 와 닿지 않지요.
오죽하면 뒤표지의 글을 저렇게 가득 옮겼을까요. ㅎㅎ

장자의 '소요유' 편이 잠시 생각나는 시 한 조각 보여드릴게요.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오후예요.
머릿속에선 온갖 꽃들이 피로에 쩔어 시들어 가나 봅니다.
시계를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랍니다.
스스로도 '이상하게 말하기'라고 하고 있죠. 

고요함...
현재의 고요함을 응시함.
이런 마음과,
소요함...
복잡한 심사를 안고 어슬렁거리며 정처없이 떠돌며 거닒.
이런 마음이 반반인 사람. 

바로 당신이죠? 

그래요. 
나와 너무 닮아서 또 낯선, 바로 당신이죠.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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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 문구 너무 좋은걸요.
글샘님 서재에만 오면, 가지고 싶은 문구가 너무 많아서 큰일입니다. 다 욕심이 나는걸요.

그리고 반갑수다! 이거 좋은 인사말 같아요.
반갑고, 함께 수다 떨자 싶어서 진짜........ 하고 싶어지네요. ㅋㅋ

글샘 2011-08-25 18:13   좋아요 0 | URL
멋지죠.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말이죠.
인간의 뇌 치고는 참 멋진 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반갑수다에 수다가 들어있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11-08-29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 이 부분이 멋지네요.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 이 부분도요.
글샘님이 시를 잘 뽑으신 듯...

저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끝까지 다 읽었어요. 이거 자랑스러워해도 되지요? 아마 다른 책 세 권쯤 읽는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소감을 말하라면 시작은 웅대했으니 그 끝은 좀 시시하구나, 하는 정도.
그러나 인간이 현명하게 선택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들의 예는 아주 유익하고 좋았어요. 많이 팔린 만큼 읽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집, 요즘 많이 팔리고 있던데, 글샘님의 리뷰 보니깐 사고 싶어지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글샘 2011-08-29 13:37   좋아요 0 | URL
시는 어떤 구절을 입술에 머금고 있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유독 저 시가 입에 자꾸 머무르더라구요. ^^
그게 좋은 시죠. 자꾸 입에 남는 시.

정의란 무엇인가는 앞부분에서 재미있게 많은 이야기를 실어 두어서 좋다가 중간부턴 좀 지루한 느낌이 들더군요. 뭐, 한국처럼 정의...가 부조리와 야누스처럼 짝 붙은 나라에서 이런 책이 많이 팔리는 것 자체가 좀 웃긴 일이긴 하지만요. ^^

페크pek0501 2011-08-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신 :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의 시를 제 블로그에 옮겨 실었습니다. 시가 좋아서요.

글샘님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니까요. ㅋ

글샘 2011-08-29 13:40   좋아요 0 | URL
제가 이해할 수준의 옮기기가 아닌 성 싶네요. ^^

페크pek0501 2011-08-29 13:51   좋아요 0 | URL
아효, 걱정되어라. 화 나신 건 아니죠?


글샘 2011-08-29 13:57   좋아요 0 | URL
ㅎㅎ 화가 나긴요. ^^
제 글이 아니니 옮기셔도 무방하단 말이죠.
혹시 A 형이신가요?ㅋㅋ

페크pek0501 2011-08-29 14:03   좋아요 0 | URL
저도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반대쪽일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그래도 혹시 하고 확인한 것임. ㅋ

저 B형인데요. 좀 소심한 편. 그래도 친구들이 제가 잘 안 삐지는 성격이라 제가 한번 삐지는 걸 봤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별난 성격은 아니므니다. ㅋ 그저 조심성이 많다고나 할까요?
 
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꿈꾸는돌 1
루이스 새커 지음, 장현주 옮김 / 돌베개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구덩이'의 작가 루이스 새커의 청소년 소설.
얼간이란 별명의 어리숙한 게리 분은 코미디언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게리를 툭하면 괴롭히기 일쑤다.
교내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기로 마음먹은 게리는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출전하게 되고,
멋진 개그로 1등상을 거머쥐게 된다. 

이 책을 읽고는 며칠째 학교가 싫다고 등교 거부를 하고있는 우리반 Y가 생각났다.
Y 에게 이 책을 권해줘야겠다.
학교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아이들이 많다.
그저 다니나보다 하고 시계추처럼 오가기만 할 뿐이다. 

그 아이들에게 현재에 집중하라,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라,
현재는 너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이런 아무리 좋은 진리를 손에 쥐어 줘도 시니컬한 무응답만 돌아온다. 

내 이야기보다,
마음 아팠을 게리의 이야기.
아플수록 더 웃었던 게리의 이야기가 아이들의 마음 속에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힘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 이런 기사가 났다.
삶에서 필요한 자세가 이런 것 아닐까 싶어 스크랩해 둔다. 

이 책을 읽고,
Y가 내가 들려주려는 메시지를 알아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오늘 밤엔 오랜만에 기도를 좀 해야겠다. 

 

http://issue.media.daum.net/society/people/view.html?issueid=2735&newsid=20110824182811464&cp=newsis 

77세 늦깍이 동국대 석사신입생 승묘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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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2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7세 늦깍이 동국대 석사신입생 승묘스님 - 저도 이 기사 보고 좋았어요. 나이를 잊은 배움이라, 멋지잖아요.
그리고 제게 용기를 주는 것 같아서요.



글샘 2011-08-29 13:39   좋아요 0 | URL
한국은 너무 예의없이 일정 나이 이상 되면 '너 왜 시집 안 가냐?'묻곤 하죠.
제가 요즘 젤 싫어하는 말이 '골프 좀 치냐?'인 것처럼 말입니다.
고딩을 졸업하면 무조건 대학 가는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연세 드셔서 공부하는 것도 다 개인적인 취향이죠. ^^

페크pek0501 2011-08-29 14:14   좋아요 0 | URL
제 친구들 중에도 골프 애호가들이 있는데, 저는 평생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요.
운동량도 적고 시간과 돈은 많이 소비되고 괜히 폼이나 잡으려는 사람이 될까 봐서요.

아,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골프 치시는 분들, 오해 없으시길.) 제가 골프를 치면 겉멋이 들 것 같단 뜻이에요. 우선 골프 칠 때 필요한 골프채부터 옷입기까지 폼나게 마련하고 싶지 않겠어요. 환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곳에 가면 또 그곳의 사람답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당연히요.

사실은 제가 비용이 없어서 못 한다는 ...ㅋ, 그러니까 자기합리화인 셈인가요?

어쨌든 글샘님이 골프를 안 하신다니 좋습니다. 제 편 한 사람이 생긴 듯해서.

글샘 2011-08-29 20:11   좋아요 0 | URL
일단 저는 운동을 싫어하구요.
골프는 또 돈도 많이 든다니 더 싫구요.
저는 책이나 읽는 일이 딱 수준에 맞습니다. ^^

뭐, 골프 좀 치는 일이 수준높은 삶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습더군요.
언제부터 골프 좀 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