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단편 소설의 백미를 뽑으라면, 나는 이문구의 '우리 동네'를 뽑겠다.
연작 소설이지만, 한편 한편은 그대로 단편 소설인데,
단편 소설이 인생의 한 단면에서 비추이는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문학 장르라면,
이문구의 소설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단면에서 언뜻언듯 비치는 상처와 흉터,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양태가 오롯이 살아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성석제의 이 소설집은 뭐, 일반적으로 단편 소설이 갖춰야 할 형식적 요소를 떠나서,
말 그대로 '작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 놓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단편 소설집 따위의 장르론을 걸쳐놓을 수 없이, 그저 '소설'로 마친 것이다. 

사노라면,
삶은 고해라지만,
매 순간 고통의 연속인 것도 아니고,
삶은 살 만한 것이라지만,
또 삶은 얼마나 비루하고 천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싸구려 감정의 천박한 테를 낼 수도 없고 젠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을 때에는,
누구나 언덕배기 금세 해가 진 자리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넓적 바위 하나쯤
가슴 속에 품고 살자는 마음이 들기도 하게 마련인데,
성석제는 특유의 말재주로 삶의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성석제의 이야기는 유쾌하다.
그렇다고 통쾌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삶의 애환들 속에서 놓치지 않고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성석제의 소설이 남겨주는 뒷맛은 아무래도 약방할매 바위같은 온기일 것이다.
따스한 온기가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순간,
그의 잡담과 구라는 소설이 된다. 

그의 찬양, 에서처럼
인간은 얄팍하다.
남이 써준 글을 가지고 상을 받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뻔뻔스러움이 인간이다.
그래서 그의 찬양, 이 가지고 있는 반어적 힘은 강하다.
그의 웃음 속에선 삶에 대한 비의가 쿡,쿡 웃음 속에서 서럽게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가을 바람이 소슬하여 외로운 사람은, 성석제를 만날 일이다.
성석제가 들려주는 우스개 소리를 친구삼아,
좀 넓적한 바위에 앉아 지는 노을이라도 바라볼 일이다. 

어느 순간, 번쩍하고 황홀한 순간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찬바람이 소슬하게 분다.

꺾이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도
이렇게 한 순간 바뀌어버리는 걸 보면
삶도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름 동안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보니 오래 쉰 것 같다.
삶도 관성이란 게 있어서,
한번 안하기 시작하면 다시 돌리기가 어려운 거야.
뭐든지 할 때 잘하는 게 필요할 게다.
공부도 그렇고, 매사가 다 그런 거야. 

아빠도 이제 인생이 90이라면 절반 가량 산 셈인데
사는 게 물질 세계나 사회 돌아가는 것과 별다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등산길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
인생도 부침이 있고, 
즐거운 날이 있으면 괴롭고 힘든 날도 따르는 순환처럼,
고진감래 흥진비래의 날들도 항존하는 법이지. 

그래서 비유(빗대어 쓰기)도 쓰고, 유추(유사한 상황 추리)도 하고,
문학도 성립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지난 9월 모의고사에 났던 시를 두어 수 읽어 보자.
우선 김종삼의 '술래잡기'다.

심청일 웃겨 보자고 시작한 것이
술래잡기였다.
꿈 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인
오랜만에 제 또래의 애들과
뜀박질을 하였다.

붙잡혔다.
술래가 되었다.
얼마 후 심청은
눈가리개 헝겊을 맨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술래잡기 하던 애들은 안 됐다는 듯
심청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김종삼, 술래잡기)

이 시는 1학년 시험에 났던 문제야. 

모티프는 간단하단다.
심청이는 원래 아버지를 돌보느라 친구들과 노는 일처럼 사치스런 행동을 하기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아이들이 심청이를 웃겨 보자고 술래잡기를 시작했대.
늘 외롭고 심심했던 심청이도 오랜만에 즐겁게 놀았지. 

근데,
2연에서 먹먹한 슬픔이 느껴지는 게 이 시를 읽는 묘미란다.
심청이가 술래가 돼.
다른 아이들은 술래가 되면,
어떻게 하면 친구들을 잡을지에 골몰하게 되잖아.
그런데...
심청이는 눈가리개 헝겊을 매고,
꼼짝도 않고 서 있었던 거야.  

앞이 캄캄해진 심청이는,
비로소
아버지가 이런 상태로 평생을 살아 오셨구나.
아, 이런 아버지가 자기를 빌어 먹이려고 그 험한 산길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돌아다니셨구나.
그러다 다리에서 떨어져 낙상까지 하게 된 아버지가 불현듯 떠올라,
아니, 아버지의 그 막막하였을 인생이 한 순간 이해가 되면서
꼼짝도 못하고 서있었던 거야. 

이런 거.
삶이란 건 이렇게 한 순간에 감정에 포획되는 것 같아.
도무지 남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던 사람도,
한 순간, 그 사람이 이해되고
너무나 그 사람의 상황에 공감이 가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줄줄 흐를 수도 있는 겉 같아. 

한자로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잖아.
같은 병을 앓아본 사람만이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말.
엊그제 슈스케 3을 보는데,
신나게 노래하던 밴드의 한 사람이 암에 걸렸다더라고.
그런데도 당당해서 멋있었어.
아, 암이라니. 그것도 심한 상태던데... 

병원에서 '당신은 암입니다. 이 병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사람만이 같은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 아닐까? 
또 그런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 세상은 살 만 한 것이고 말이야.

이 시는 '심청전'이라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음으로써,
동병상련의 심사를 한 순간에 독자의 가슴에 밀어 넣는 데 성공하고 있는 시야. 
말이 많이 필요없어 여백의 미를 잘 살리고 있지.

다음엔 춘향가의 춘향이 마음을 생각해 보는 시를 한 수 읽어 보자.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그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산과 언덕들의 만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수정가, 박재삼)

이 시는 춘향이 마음을 노래한 거야.
춘향이 마음을 맑고 투명한 '크리스털(수정)'에 비유한 거지. 

춘향이 마음이 얼마나 깨끗한 사랑으로 가득했던지를...
집으로 치자면,
날마다 소원을 비는 정화수의 신선한 물방울 같은 거였거나,
윤이 반들거리는 마루 끝 평상과 차분한 뜨락 같은,
어디선가 시원한 물냄새라도 금세 날 듯한 그런 춘향이 마음이었을까? 

춘향이 마음은 그렇게 찬찬하고 신선한 집처럼 여기 그대로 있는데,
서방님 마음은 바람 같대.
그것도 어려운 바람.
마주치기도 어렵고 만나보기도 어려운 바람. 

2연에서는 춘향이 마음의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지.
이도령을 기다리며 얼마나 산 언덕을 바라보았을까.
그러면, 또 그때마다 그리움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도 했으리라 

아, 이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가득한, 수정같은 마음이
춘향이 이도령을 바라던 맑디맑은 마음이었단다.  

그 그리움이 어찌나 깊은지,
푸른 바다처럼 '푸른 그리움'이 되었구나.

이도령이 출세해서 돌아오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하나도 없었겠나마는,
정말 호의호식하길 바랐다면,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할 필요가 없었겠지. 

이 시에서도
이도령만을 사랑하는 순수한 춘향의 기다림의 간절함을
한국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춘향전'에 기대어 표현했다.  

 

이 시의 특징은 '감정의 절제'에 있어.

갈까 부다, 갈까 부다, 임 따라서 갈까 부다.
천 리라도 따라가고 만 리라도 갈까 부다.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다 쉬어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 갈까 부다.
이제라도 어서 죽어 삼월 동풍 제비 되어,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밤중이면 임을 만나 만단 정회를 허고 지고,
뉘 년의 꼬임 듣고 영영 이별이 되려는가?
어쩔거나 어쩔거나. 아이고, 이를 어쩔거나.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이런 판소리 구절에 비하자면,
감정이 아주 조심조심 표현되고 있는 거지. 

다음은 너희 3학년 시험에 났던 시를 한 편 읽어 보자.
정일근은 중학교에 '바다가 보이는 교실'이란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시인이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정일근, 어머니의 그륵)

화자는 시인이다.
시인은 '언어'를 통하여 '삶의 비의(숨은 뜻)'을 드러내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런 시인이 어머니의 '언어 생활'을 통하여 '비의'를 발견한다.
역시 시인의 눈은 날카로운 관찰의 눈이다. 

표준어 '그릇'에 담긴 가지런함과 정련됨 대신
어머니는 사투리 '그륵'을 쓰신다.
어머니의 그륵,에는 
어머니의 삶은 <표준>처럼 살아지지는 아니하였으나,
그 속에는 교과서나 법령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다사로운 <사람의 체온>이 담겨있던 것이었음을 시인은 발견하고 있어.  

 

어머니의 삶을 통해 체득한 <지혜>의 눈.
화자가 책을 읽고 학문을 통한 간접 체험으로 얻은 <지식>의 눈에 비하면,
<무지, 비표준>인 '그륵'의 힘은 훨씬 인간적이지.

시인이 시를 쓰는 일은
<말을 빛나게 쓰고 살아남도록 하는 일>인데,
그 시는 <삶과 언어가 하나가 되는 인생>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인데,
시인은 그저 머릿속에서 시를 지어내고 있었음을 반성하고 있어. 

어머니의 삶을 통해 살아남은 '그륵' 하나에도
어머니의 삶이, 사랑이 오롯이 담겨있음을 느끼면서 말이야.
그 그륵, 속에서라야,
그륵 가득 맑은 물 정한수 떠놓고 비시던 어머니의 마음도 느껴지고,
제 혼자 먹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도 느껴지는 거지. 

화자는 자신이 시인이라고,
시인은 일반인이 하찮은 것들이라고 여기는 것들도
세세한 마음으로 뜨겁게 바라보고
거기서 새로운 인생의 비의를 찾아내야 하는 것인데
시인의 시어는 '국어 사전' 속의 표준어처럼 인생에서 '저만치' 떨어진 것이 아니었나 싶은 반성. 

시인이 발견한 것은
삶은 이렇게 '한 가지 기준'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거야.
'표준어'라는 것이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폭력임을,
'사투리'라고 치부되는 것들 속에 담긴 사람들의 낮은 삶의 풍부한 의미를 소거시키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그리하여 삶은,
인간들은 다채로운 세계 속에서 어울려 사는 것임을 잊게 되는 것임을 드러내 보여주려고
어머니의 그륵을 활용하고 있지. 

이런 짧은 시가 있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신 나태주 시인은
해맑은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이런 시를 쓰셨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그렇잖아.
얼핏봐서는 별것 없어 보이는 사람도,
친해지고 오래 만나노라면
익숙해지고 친해지고,
급기야는 못생긴 얼굴조차 사랑스러워지곤 하지. 

정일근 시인의 시 중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담은 시가 있단다.
한번 읽어 보렴.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가을 들어 쑥부쟁이꽃과 처음 인사했을 때
드문드문 보이던 보라빛 꽃들이
가을 내내 반가운 눈길 맞추다 보니
은현리 들길 산길에도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꽃이
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이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
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 (정일근, 쑥부쟁이 사랑) 

우리가 들국화라고 알고 있는 풀들이 있어.
그런데 쑥부쟁이란 풀이 있단다.   
쑥부쟁이란 들꽃을 알고서 그를 바라보니
그게 그냥 '들국화'가 아니었음을, 쑥부쟁이란 이름을 올바르게 불러주게 된 것을 기뻐하는 시야.   

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들꽃.
그러나 알고 바라보고 나면
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대. 

삶이 이런 거지.
들풀 하나를 보면서도,
인생과 유사한 비의를 찾아내며 사는 삶. 

어때?
시를 읽으면서
삶의 은유를 찾아다니며 사는 삶도 멋진 삶 같지 않니?  

네 삶을 사랑하면,
네 삶 속에서 꽃피어날 씨앗이 네 눈에 비추일 거 같지 않아?
비록 지금은 대학의 무슨 과를 가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겠지만,
맑은 물그릇을 바라보듯,
네가 살아온 시간들을 관조하노라면,
언젠가는 꼭꼭 숨어 피어있을 그 꽃들이 환히 빛날 날이 올 수도 있을 거야. 

이제 수능 며칠 안 남았다.
최선을 다하는 경험을 남은 날들동안 얻어보기 바란다.
날이 차다.
감기 조심하고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렴.


댓글(2) 먼댓글(1)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9-19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글샘님의 문학수업을 읽으니, 너무 좋네요...

춘향가의 글귀가 참 이뻤군요. 푸른 그리움이라니. 가끔 저런 아름다운 문구를 보면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그냥 놔두었으면 좋겠다 싶어져요. 춘향이 진짜 있었는가, 방자전 머 이런거 말구.

그런데 그 밑에 있는 판소리는 무슨 판소리예요, 저는 애절하니 참 좋은데 말이죠.

글샘 2011-09-19 16:47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죠. ^^

저 소리는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갈까부다'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인터넷에서 갈까부다 동영상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춘향가는 상놈들이 양반들에게 핍박받고 천대받던 시절에,
민중의 꿈이 담긴 노래가 아니었을까,
비록 춘향의 사랑이 '열녀'라고 유교적 색칠을 입을지언정,
목숨을 건 춘향의 사랑은 '선택'이기도 했으니 민중들은 그 노래를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었겠죠.

이제 시대적 상황이 다른 만큼,
박재삼의 시처럼 필요한 부분을 차용해서 형상화하는 모티프로도 훌륭하게 작용하지 싶네요.
고전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춘향이가~ 허며는, 별 말 없이도 애절한 사랑이 가슴에 콱 떠오르는 그런 거 말이죠.
푸른 그리움도 그런 맥락이겠죠.
 
출발! 청소년 한국미술사
박갑영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사 교과서는 지나치게 잡다하고 유구하다. 그래서 재미보다는 공부가 힘겹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고대시대에 지나치게 몰두한다.
그러자니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생활상은 놓쳐버리기 십상인데... 

이 책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삼국, 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미술 교과서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다.
중요한 작품들을 되도록 많이 실으려 노력했고,
시대적 배경도 꼼꼼하게 적으려고 한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치 꼼꼼한 역사책을 읽듯이 읽어 내야 하는데, 청소년들에게 과제로 던져주기에 적합한 책으로 보인다.
어떤 시대의 역사와 예술을 정리해 내기에 좋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겸재 정선의 그림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남아서 이 책에 담긴 겸재의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사의 시대 흐름이 바뀌는 구비마다 세계 미술사의 대표적 작품들을 함께 수록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세계 역사에서 고립되거나 중국 역사에 부속적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분명히 시대 정신이라는 것은 통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국 미술사에서 만나는 레핀의 '볼가강의 배를 끄는 인부들' 같은 그림은 반갑다.

그림 돋보기라는 꼭지를 통해서 작품을 상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훌륭하다.
그렇지만, 본문의 그림들은 책의 페이지 수를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지나치게 작은 경향이 있다.
또 설명에 비해 상세도가 좀더 들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아쉬움은 미술 책을 볼 때마다 드는 아쉬움이다.  

 

<박생광, 십장생>

그리고 천경자 박생광 등의 그림이나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좀더 소개되었더라면 하는 바람도 남았다.
이 책의 독자들은 이미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서 '천전리 벽화'나 '산수 문전'은 들어본 일이 있었을 테고,
정선,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도 숱하게 봤을 터이지만,
현대 미술의 흐름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터이니 말이다. 

한국사 교과서가 늘 조선후기까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제 강점기의 피해상 이후로는 용두사미 격이 되어버리듯,
이 책도 현대 화가들의 활동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여 아쉬움을 남기지만,
학생들에게 역사 공부를 하는 한 방식으로 이렇게 미술 분야를 훑도록 하는 일도 흥미로운 일일 거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을 담은 잔소리 통조림 1218 보물창고 4
마크 젤먼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이란 게 뭐 대단한 건 줄 알고, 철학 개론,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들입다 읽었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철학이란 건 금속 공학보다 별게 아니었다.
아니, 철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들을 대상으로 따지는 논리적 언술활동이기때문에
명확하게 안다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대학을 들어간 이래 책을 읽어오면서,
인간의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많이 갖게 되었다.
그런 일련의 사고의 경험, 사고 방식의 형성이 일종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철학 서적들은 '인식론'부터 시작해서 '실천론' 이니 뭐니 늘어놓거나,
주관과 객관, 이론과 실천이니 본질과 형식이니를 둘러대곤 하는데,
이 책은 아이들이 노상 듣게 되는 잔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예를 들자면, 깨끗한 속옷을 입어라!는 잔소리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도 보이는 부분만큼이나 좋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투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
잔소리 속에는 부모의 애정이 담겨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부모의 잔소리를 아이의 성장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훌륭해 보인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잔소리 대신,
이 책을 책상에 슬그머니 놓아 줄 일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9-1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예전에 철학에 대한 개요라도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좀 읽었는데
제가 실리적인 부분이 강해서 그런지, 읽을 때 머리로는 오는데 가슴으로 느껴지질 않아서
읽고나면 까먹는거예요. ^^ 그런데 심리는
좀더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곳에다 인문이 접합되어서 그런지 팍팍 와닿고....

새로운 관점으로 부모의 잔소리를 아이 성장에 활용하는 시도라는 말씀에 끌립니다. 읽어보고 싶네요.

글샘 2011-09-17 21:59   좋아요 0 | URL
철학 서적이란 게, 뭐 개념만 늘어놓고, 이 개념하고 저 개념은 이렇게 다른 거 아닌가 하고 논쟁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책들을 읽는 일은 두뇌 회전시키기엔 좋은 방법이 아닌 거 같더라구요. ^^
심리학은 사회 과학 중에서도 가장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야니깐 가깝죠.

그렇지만, 그 심리학으로 뭘 할건지는 역시 철학적 접근이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인간을 이렇게 저렇게 분류하는 기법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철학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래저래 나눠서 차별화 정책을 펼치려는 교육철학을 가질 수도 있으니 말예요.

이 책은 철학을 실생활에서 설명하는 좋은 책입니다.
 
가랑잎 대소동 자연그림책 보물창고 7
조너선 에메트 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가을이 오고,
청설모 쭈르는 자기네 집 떡갈나무에 변화가 생긴 걸 감지한다. 

빠알간 잎들이 떨어지는 게 안타까워서
도로 나무에 잎들을 되돌리려 해보지만,
바람 한 방에 다 날려버리고 만다. 

엄마가
나무는 가랑잎들을 떨어뜨리고
얼마 동안 휴식에 들어가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돌아올 기약을 하면서,
가랑잎 몇개 줍는데,
아름다운 가랑잎을 든 쭈르가 동생 쪼르에게 남긴 말은, 

"이것 좀 보세요, 가랑잎들의 빛깔이 저녁 노을 빛깔과 똑같잖아요."이다. 

청설모 가족도 참 이쁘고,
무엇보다 노랗고 붉게 물든 나뭇잎들의 빛깔이 폭 빠져들게 이쁘다. 

아이들과 이 가을, 아름다운 빛깔에 빠져들어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