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나의 세컨드는 - 김경미 시집
김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에의 지독한 어색함이라는 부적격의 고통을 달래주는 거의 유일한 도구, 시

이것이 김경미의 '시론'이자 '시에 대한 변명'이다. 

김경미의 시를 읽다 보면,
아, 이 아이디어 좋다, 또는
야, 이런 사고 방식이 맘에 드네.
그래서 베껴두고 싶어지고 한다. 

그의 시들이 가진 제목은
방명록, 비망록 이런 말들이 덧붙어 있다.

아, 따뜻한 식빵에게 안겨봤으면...
식빵을 안고 길을 걷는 것도 황홀한데,
식빵에 안겨봤다면...

넓고 따뜻한 식빵에게 안겨봤으면 좋겠어
분꽃 그 작은 대롱 속에 들어가
종일 꽃의 내부를 살아봤으면 좋겠어

진실을 눈썹처럼 곰곰히 만져 봤으면
좋겠어
한장의 풍경과 침묵과 나.
셋이서 나직이 약혼 했으면 좋겠어
추억이 돌아서서 타조처럼 다시 뛰어와
용서의 밤을 얘기하고
오늘도 생각하고
내일도 생각하면 좋겠어
당신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방명록 )

풍경,
침묵,
그렇게 셋이서 약혼했으면... 

방명록이란 건,
누군가가 방문했음을 남기면서
꽃다운 이름을 적어두는 첩인데,
자신이 살았었음을,
침묵하면서도 웅변으로 남겨둘 수 있는 방명록을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왜 극장처럼 어두워서야
삶이 상영되는 느낌일까
 
극장 매점의
팝콘처럼 하얗고 가벼운
나비 같은 생은 어떤 감촉일지
 
가끔씩 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병아리 깃털이나 잎일 수 있는지
후, 불어보고 싶어진다 (방명록 2)

통상 속편은 원본만 못한 편인데,
방명록 2는 1보다 좀더 감각적이어서 좋다.
어두워서야 상영되는 사람.
팝콘처럼 하얗고 가벼운 나비같은 생을 꿈꾸는,
그래서 자신을 병아리 깃털이라 상상하고 후, 하고 불어보는 사람.
그런 이름이 남아 있다.

쓸쓸함에 대하여

-비망록

그대 쓸쓸함은 그대 강변에 가서 꽃잎 띄우라
내 쓸쓸함은 내 강변에 가서 꽃잎 띄우마
그 꽃잎 얹은 물살들 어디쯤에선가 만나
주황빛 저녁 강변을 날마다 손잡고 걷겠으나
생은 또 다른 강변과 서걱이는 갈대를
키워
끝내 사람으로는 다 하지 못하는 것 있으리라

그리하여 쓸쓸함은 사람보다 더 깊고 오랜 무엇
햇빛이나 바위며 물안개의
세월, 인간을 넘는 풍경
그러자 그 변치않음에 기대어 무슨 일이든 닥쳐도 좋았다

자꾸 이렇게 적어 댄다.
방명록에는 <자신이 존재했음을>
비망록에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기억의 존재를> 남기기 위하여 적는다. 

인간은,
인간은 그에게, 어색하고 부적격스러운 것.
그래서,
깊고 오랜 쓸쓸함,
세월,
풍경,
이런 변치 않는 존재들에 비하면, 스스로는 어색함과 부적격의 고통으로 울고 싶어지는 것.
그런 순간을 잊지 말자고, 이를 악물고 연필에 힘주어 비망록에 적었나보다.  

나, 돌아오지 않는 나,
일회의 나, 그 삶, 되돌아온들
아무것도 모를 현생의,
한 번의 나, 그 시간들, 나의
지나감들일뿐(저기 옛 애인들 지나간다, 부분)

이 시에서도 역시 스스로는 지나감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한숨짓는다.

그렇지만, 김경미의 시가 늘 이렇게 세상을 낯설어하는 것만은 아니다.
간혹 <돌파>처럼 치열한 시도 돋보인다.

송곳 끝을 밀어내는 습자지 뭉치
덤프트럭을 통과해내는 채송화
포크레인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개미
톱니바퀴를 물어뜯는 카네이션
총알의 중심부를 가르는 촛불

여기 이곳을 끝끝내 돌파하자고 내 영혼이여 (돌파 )

지독한 어색함과
부적격의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
거기를 어색하지만 끝끝내 돌파하자고
자신의 영혼과 다짐을 한다. 아자!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실물은 전부 헛된 것
만나지 않는 동안만 우리는 비단감촉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죽도록
만날수록 동백꽃처럼 쉽게 져버리는 길들
실물은 없다 아무 곳에도
가끔 편지나 보내어라 

선천적으로 수줍고 서늘한 가을인 듯
오직 그것만이 생의 한결같은 그리움이고
서역이리니 (나의 서역)

이 시 역시 <방명록>류의 시다.
스스로를 선천적으로 수줍고 서늘한 가을, 이라고 명명하고,
생의 한결같은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자가 남긴 꽃다운 이름. 시. 

만날수록 쉽게 져버리는 길.
만나지 않는 동안은 그래도 비단처럼 아름다운 존재들.
그 존재들에 대한 반신반의.
그 답은, 편지. 가끔 편지'나' 보내는 행위.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이 아니라 늘 다음,인
언제나 나중,인 홍길동 같은 서자,인 변방,인
부적합,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나는야 세컨드 1, 전문)

그래서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세컨드'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세상의 세컨드.
목숨 놓고 싸울 필요 없는 세컨드.
슬슬 웃음이 난다.
밀교다. ㅎㅎ  

 

끝내 넘볼 수 없는 조강지처, 그 천생연분 버티는,
넘보는 순간 끝장인,...

그리하여 언제나 나날을 두 집 살림으로 남몰래
서럽고 파릇파릇 격렬케 하는, 빈 집처럼 외롭고

헛헛케 하는, 들키면 머리채 뽑히게 하는, 그리하여
그날까지, 이곳에서의 생,
세컨드, 그
첩질이게 하는, 생의 본처,
그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영원한 언약, 배신 없는
사랑, 그 영광의
오직 본댁, 은
죽음, 인 것을...... (나는야 세컨드 2, 부분)

세컨드임을 커밍아웃하고 나면,
본질이 보이는 모양이다.
본질을 보고 나면,
그 본댁은, 죽음, 인 것. 

세상은 단지 두 집안으로 나뉜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박찬호- 마이너리그 때는 외로웠어요 혼자라는 생각에(마이너리그에는 사람 수도 훨씬
많은데…)
마이너리그 사람들은 사소한 모욕엘수록 목숨껏 화를 낸다
요즘 시 안 쓰나봐요, 안부를 물으면, 속으로
경멸한다. 천한 것들. 밥 먹는 것 못 봤다고 요즘 통 식사
안 하시나봐요 하다니 청탁이 없다고 시인이…
… 열등감만한 무기가 어디 있으랴
일 다녀보면 메이저리그의 수위 아저씨는
마이너리그의 사장님보다 더 무섭고 당당하다
미국인 선생을 위해 영어학원에서는 이름을 간다
아이 엠 톰 유 아 린다
꽃일수록 서양풍으로 처신해야 한다 그래도
마이너리그의 의자 수는 소파
메이저리그의 의자 수는 못임을 위안하지만
나라가 토끼 형상이라
우리는 유난히 눈들이 빨갈까 지구는
어디나 그럴까 우리가 아무래도 유난할까

덤으로 마음도 늘 메이저와 마이너로 나뉜다
거기서는 항상 먼지가 붕새를 쪼아 죽이곤 하지만(나는야 세컨드 5, 전문)


먼지가 붕새를 쪼아 죽이곤 하는 세상.
지독한 패러독스가 가득하다.
유난히 눈들이 빨간
토끼 형상의 나라 사람들.
세컨드로 삶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
그것이 운명임을 감지한 것일까?

가을에 알맞은 시를 찾았다.
오늘 아침에 읽기에 마춤한 시였다.
새파란 하늘에 나풀거리며 걸려든 솜사탕처럼
풀어진 솜사탕 갈래처럼 하늘에 얹힌 구름 몇 점. 

아침에 일어나면

어떻게 하면
어제보다 좀 덜 슬플 수 있을까
생각해요...."

오래 전 은동전 같던 어느 가을날의 전화.
너무 좋아서 전화기채 아삭아삭 가을 사과처럼 베어먹고
싶던. 그 설운 한마디. 어깨 위로 황금빛 은행잎들
돋아오르고. 그 저무는 잎들에 어깨 집혀 생이라는
밀교. 밤의 어디든 보이지 않게 날아다니던. 돌아와
찬 이슬 털며 가을밤. 나도 자주 잠이 오지
않았었다. (가을 통화, 전문)

가을을 타면,
자전거처럼 가을을 타면,
자전거 페달에 발을 얹고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즐기듯,
가을을 타는 일은 조금 게으르게 사는 일이다. 

가을은 낙엽처럼
얼굴 빨갛게 물들 줄 아는 일.
그리고 낙엽처럼
가볍게, 덜 먹고,
뭐, 맥주에 소주 조금 타더라도 얼굴 그래서 빨갛게 되더라도,
가볍게 내려앉을 줄 아는 마음 갖는 일. 

맥주에 소주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가을을 타고,
그렇다고 속은 태우지 말고... 

남들 다 듣는 샤콘느보다 헤비메탈도 듣고,
그렇게 자신만의 가을을 타는 법을 배우는 것도
가을을 농익게 즐기는 법인 게다. 

시인처럼,
식물처럼 깊어갈 줄 아는 존재. 

그런 존재라야, 제대로 가을을 탈 수 있을 게다.

―선배도 이젠 고상한 음악 좀 들으세요.
나이도 있는데…… 온 국민이 다 재즈 팬인데……

돌아와 또 메탈 볼륨을 올린다 드럼 채가 튀어 식탁을
두드리고 신발장 안의 구두들 일제히 날아오른다
미안하다 이웃들이여 나 진심으로 그대들 사랑한
적 없다 서로 사랑하지 말고 묵묵히 멀리 있자고
그것만이 진실이리라고
나도 이렇게 시끄러운 볼륨을 높이니

고백건대 국산도 말고 외제 메탈만 듣는다
멀리 있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
상처가 되지 않는 거리
라벤더와 제라늄 식의 먼 명칭들
고백건데 저녁 무렵이 되면 신데렐라처럼
소리치고 싶어진다 돌아가야 해요 난 실은
사람이 아니에요, 난 식물이란 말예요!

매일 몇 마디씩이라도 하는 내가 때로 시끄러워 견딜 수 없다 침묵과
슬픔과 내향만이 내가 아는 메시아이므로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나는 무겁고 묵묵하게
그 고요하고 슬픈 음악을 들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식물처럼 깊어질 때까지 (헤비메탈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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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2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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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22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웃었네요~~ ㅋㅋ

순오기 2011-09-22 06:20   좋아요 0 | URL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치 저를 들여다보신 듯 맞춤으로 보내주셨어요.^^

마노아 2011-09-22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고기3형제 어쩌나요.ㅋㅋㅋ

pjy 2011-09-2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웃고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1-09-2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 덕분에 잠시나마 즐거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 열 번쯤 웃고 갑니다. 감사~~~.
 

 

사람이 보이면 쏠로고,
두 사람의 키쓰신이 보이면 커플이라는데... 그럼 난 쏠론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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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2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글 먼저 보고 키스신 찾으려고 했는데 한 사람 얼굴이 먼저 보였어요 ㅠㅠ
에궁 갑작스레 들어와서 실 없는 소리를 하네요. 뭔가 아쉬운 그림이군요 ㅎㅎ;;

순오기 2011-09-22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왜 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난 두 사람이 잘 보이는데요.ㅋㅋ

책가방 2011-09-2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을 미리 알려주셔서 재미가 반으로 줄어버렸잖아용~~
글 먼저 읽고 그림보는 스탈이라...^^
 
저녁의 슬하 창비시선 330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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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두고 오래 손때를 묻히고 싶은 시집.

이라고 쓴 뒤표지 손택수 시인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이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는...
사람을 쬐다, 이다. 
처음 이 시를 읽을 때, '사랑을 쬐다'로 읽었다.
읽다 보니, '사람'이었다.  

사람이 서로 만나 '미음'이 닳고 닳으면 '사랑'이 된다더니,
사람을 쬐어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씨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눈가가 짓물러진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사람을 쬐다, 전문)

 

맨 뒤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직접'이란 말이 11번이나 반복 언급되고 있다.

직접은 무모하고
위험해
직접은 힘들고 고달픈 거야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시인이 되고 교사가 돼?

직접이 재밌고
직접이 즐거워 

내 피부로 직접 저 햇살 받는 행복!
내 귀로 직접 저 물소리 듣는 기쁨!

그만큼 그는
직접 얻는 경험.
직방으로 한 소리.
이렇다저렇다 군소리 줄줄 붙이는 거 사절!
그래서 그는 '주석없이'란 시를 썼더랬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 때
너는 전반부 없이 이해됐다
너는 주석 없이 이해됐다
내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첬다
가시나무 울타리를 나는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1초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린 나를 이해해 다오

가시와 가시 사이
탱자꽃 필 때

나는 너를 이해하는데 1초가 걸렸다 (주석없이, [나는, 웃는다])

'나는, 웃는다'라는 이전 시집에 수록된 시라고 한다.
삶은 구구절절이 말을 들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단 1초만에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런 직감, 주석없이 사는 태도에 대한 예찬은
역시 직방으로 던지는 '강속구'처럼 타석에 선 독자에게는 당황스럽기도 한 것인 바. 

   
 

묶인 불은, 차갑다(묶인 불)

개의 아가리에 텁석, 사람의 것이 물려 있다(사과를 반으로)

문득 어디 생리중인 여자가 있어 울며 그녀와 살 섞고 싶다(어머니의 자궁을 보다)

매화나무 아래에서/ 머리에 못이 꽂힌 고양이를 본다(네일 건)

봐, 손톱을 깎아/ 쓸어담아 놓고 보면/ 코스모스 씨앗처럼 생긴 이것들/ 들판에 휙 뿌려도 되겠어(손톱깎이 이야기)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고양이에 가깝고/ 공에 가깝고/ 뭉쳐놓은 것에 가깝다네 그는 가장 작고 온순하다네(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이런 시의 구절들을 대해야 하는 타자에게
선구안이 필요한 것인데,
그 선구안이란 것도 결국은 투수의 손가락에서 공이 떨어지는 순간,
이번 공은 어떤 코스로 올 것이라는 '직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리하여 빠른 공일수록
작용에 대한 반작용도 큰 법이어서,
직감이 맞아들어갈 때 큰 거 한 방이 나올 수 있는 것.
그리하여 최고의 쾌감을 맛볼 수도 있는 것. 

그 선구안과 직감을
주석을 붙여서 '야구를 잘하기 위하여'라는 매뉴얼을 쓸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또,
인간이란,

이 물렁한 살의 아래에 구더기, 구더기, 구더기가 무더기 지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마디에
<저녁의 슬하>를 돌아보게 되는 시집. 

저녁의 시간은 이제 삶이 슬슬 저물어 가는 시간이고,
황혼이 지고 나면 캄캄한 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고,
주변의 이런저런 인연들이 툭툭 끊어져 가는 시간이다.
오로지 캄캄절벽 한밤중을 위하여
독거,
혼자서 갈 준비를 한 시간이다.

고인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고인의 슬하에는
고인이 있나 저녁이 있나
저녁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저 외로운
지붕의 슬하에는
말더듬이가 있나 절름발이가 있나
저 어미새의 슬하에는
수컷이 있나 암컷이 있나
가만히
돌을 두드리며 묻는 밤이여
가만히 차가운 쇠붙이에 살을 대며 묻는 밤이여
이 차가운 쇠붙이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이 차가운 이슬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이 어긋난
뼈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이 물렁한 살의 슬하에는 구더기, 구더기, 구더기가 살고 있나(슬하, 전문)

나의 저녁에는
과연 무엇이 있나?
밤이 묻는다.
도대체 무엇이 있나? 무엇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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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여름이 가을로 넘어갔다.
마치 달력 한 장 넘어가면 한 달이 넘어가듯. 

이제 수능도 50일 남았구나.
50일이면 공부를 하자면 짧은 기간이지만,
또 준비 없이 보내기엔 긴 기간이다.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면 좋겠다. 

오늘은 '추운 겨울의 친구'를 생각해 보고 싶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양갔던 시절,
2차례에 12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했다. 

그 외롭고 쓸쓸하던 시절에,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의 변함없는 의리를
날씨가 추워진 뒤 제일 늦게 낙엽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답례로 그려준 것으로 유명한 <세한도>. 

 

요즘 제주도의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놓는다고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훼손이 많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풍자의 그림도 올라 있더구나.
 
 

한적하고 쓸쓸하던 제주도를 포크레인이 파헤치고,
전쟁의 공포를 심어주는 기지를 만들겠다 하니,
인간의 가공할 힘이란... 징그럽다.  

우선 곽재구의 '세한도'를 한번 읽어 보렴.             

조합신문에 내 시가 실린 날
작업반 친구들과 소주를 마셨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친구들은
매듭 굵은 손으로 석쇠 위의
고깃점들을 그슬러주었지만
수돗물도 숨차 못 오르는 고지대의 전세방을
칠년씩이나 명아줄풀 몇 포기와 함께 흔들려온
풀내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나는 또 쓰고 싶다
방안까지 고드름이 쩌렁대는 경신년 혹한
가게의 덧눈에도 북풍에도 송이눈이 쌓이는데
고향에서 부쳐온 칡뿌리를 옹기다로에 끓이며
아내는 또 이겨울의 남은 슬픔을
뜨개질하고 있을 것이다
은색으로 죽어 있는 서울의 모든 슬픔들을 위하여
예식조차 못 올린 반도의 많을 그리움을 위하여
밤늦게 등을 켜고
한 마리의 들사슴이나
고사리의 새순이라도 새길 것이다 (곽재구, 세한도)

우선 '세한도'라는 제목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읽기 힘든 시다.
춥고 배고픈 고난의 시절,
함께 위안이 되어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훨씬 용기를 낼 수 있겠지. 

이 시의 화자에게 그것은 '아내'란다.
화자의 시가 '조합신문'에 실리고 친구들과 소주를 한 잔 한다.
화자는 노동자인 모양이다.
화자가 쓴 시의 소재는 아마도,
함께 고생해온 아내의 이야기인 모양이야. 

경신년은 1980년이겠다. 따져보면...
경-으로 시작하는 해는 항상 뒷자리가 0이 되는 해야.
1980년이면 광주에서 슬픈 학살의 소식이 들렸던 두려웠던 해다.
그 해엔 여름 내내 한 번도 더웠던 적이 없었구나.
하늘도 무심하지 않은 듯... 

그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화자는 혹한으로 기억하고 있다.
눈이 내리고 화로에 칡차를 끓이는데,
아내는 뜨개질을 하고 있어. 

옷을 뜨고 있겠지만,
왠지 그 옷을 뜨는 광경이 가족을 위한 다사로운 풍경으로 비추이기보다는
슬픔을 뜨개질한다는 구절에서 보이듯,
'은색으로 죽어 있는 서울의 모든 슬픔들'을 위하여 뜨개질을 하고 있다고 그래.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시의 특징이지.
그러나,
예식조차 못 올린 이 땅의 가난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내는 밤늦게 뜨개질을 한대.
그 뜨개질에서 들사슴이나 고사리 새순처럼 소박하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창작물이 탄생하는 거지. 

아마 시인은 아내와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어느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모르지.
시인 자신이 그런 처지였는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그 가난하고 힘겹던 시절,
서로 위로하고 서로 기대던 위안으로 남은 시절.
그 시절을 떠올리면,
옹기 다로에서 끓고 있을 '칡차' 내음과,
밤늦게 등불 켜고 뜨개질하고 있던 아내의 은은한 정경이 떠올라 가슴이 훈훈해 지는 것 같다.

세한도는 이렇게 힘들 때의 친구를 생각나게 하는 모티프로 작용한단다.
다음은 최두석의 세한도를 읽어 보자.       

  고드름 기둥
  층층이 얼어 붙은
  층암절벽에
  소나무 한 그루
  눈을 이고 서서
  희망과 절망의 수십년 세월
  안간힘으로 뻗어간 
  뿌리의 용틀임과
  뿌리가 엉키는 자리에 터잡은 
  어린 진달래의
  녹두만한 꽃눈을
  바람 타고 나는
  기러기 소리 들으며 
  시리게 바라보네.  (최두석, 세한도)

이 시에서 역시 고난의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자. 

절벽에 겨울이 와서 고드름 기둥이 층층이 얼어 붙었어.
그런데, 거기 소나무 한 그루 눈을 가득 이고 섰대.
수십 년을 좌절하며 살았을 소나무 한 그루.
힘겨웠던지 뿌리가 뒤틀리고 줄기가 비틀려 뻗어있는데,
그 뿌리 곁에
녹두콩처럼 작고 작은 어린 진달래 꽃눈이
보이지도 않을 것처럼 작은 봄의 꽃눈이
시리게 부는 바람소리 타고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 들으며
나는 봄이 오면 진달래 필 곳을 바라본다...는 이런 시야. 

정말 한 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시지?
곽재구의 시를 한 편 더 읽어 보자.           

황사바람 이는 땅끝에 와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보다 먼저
한 송이 꽃을 바치고 싶었다
반편인 내가 반편인 너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히죽 웃으면서
묵묵히 쏟아지는 모래바람을 가슴에 안으며
너는 결국 아무런 말도 없고
다시는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은 바위 앞에서
남은 북쪽 땅끝을 보여주겠다고 외치고 싶었다
해안선을 따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아우성 소리 끊임없이 일어서고
엉겨 붙은 돌따개비 끝없는 주검 앞에서
사랑보다도 실존보다도 던져 오는
뜨거운 껴안음 하나를 묵도하고 싶었다
더 지껄여 무엇하리 부끄러운 반편의 봄
구두 벗고 물살에 서 있으니
두 눈에 푸르른 강물 고여 온다
언제 다시 이 바다에서 우리 참됨을 얘기하리
언제 다시 이 땅끝에서 우리 껴안아 함께 노래하리
뒹굴다가 뒹굴다가 다투어 피어나는 불빛 진달래 되리( 곽재구, 땅끝에 와서) 

이 시의 땅끝은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토말(土末)'인 땅끝이기도 하고,
또는 삶의 극한인 땅끝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
중의적으로 쓰인 표현이지. 

땅끝마을, 또는 삶이 너무 힘든 가장자리에 섰을 때,
화자는 꽃을 바치고 싶더래.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엔 왠지 부끄러웠는지도 몰라. 

'반편'은 '온전한' 인간의 반쪽이니 '병신'이란 말이지.
온전하지 못한 사람, 어딘가 많이 부족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
왠지 반쪽에서 분단의 이미지가 묻어 있구나.
병신같은 내가 병신같은 너에게
그러니깐 삶이 힘겨운 사람들끼리 서로 위안을 주고 받는 약한 존재끼리
마주보며 힘을 주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거야. 

눈물을 글썽이듯 힘겨운 삶이지만
서로 상처를 주는 존재지만
또 히죽 웃을만큼 재미도 있는 거니까는... 

세상은 모래바람 쏟아지듯 냉랭하고 쓸쓸한 곳일지라도,
그리고 너는 말도 없고
입을 다물어버린 바위같은 침묵 속에서
북쪽 땅끝도 보여주고 싶다고...

남과 북이 지금은 반쪽으로 나뉘어 침묵하는 현실,
서로 차가운 눈길 나누는 지금,
바닷가 따라
아우성소리 들리듯 무서운 현실. 

바윗돌에 엉겨붙은 돌따개비들의 주검처럼
분단은 죽음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사랑이라든가,
한 사람의 존재가 가지는 무게감이라든가 하는 관념보다도,
뜨겁게 껴안는 경험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다는 화자. 

화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껴안고 노래하고 참된 이야기를 나누고,
뒹굴다가 진달래 피어나는 환한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구나.

곽재구의 '세한도'와 최두석의 '세한도'는 모두 힘겨운 세월,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시였구나.
곽재구의 '땅끝에 와서'는 국토의 최남단에 가서
분단의 아픔을 느끼며 쓴 시일테고 말이야. 

요즘 제주도의 가장 아름다운 해안 구럼비 해안을
깨부수는 작업이 한창이란다.
아마도 미군이 주둔할 해군 기지가 필요한 모양이지.
중국이 앞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설 그때를 미리 대비하는 것 같기도 해.
미국 공군기지는 제주도 밑의 일본 섬 오키나와에 이미 있거든.
해군기지가 필요하겠지.
그래서 제주도 강정마을을 멋대로 해군기지로 만들겠다는 거야.
참 아름다운 곳인데 말이지.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참 팍팍한 곳으로 변했다.
조금만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버렸어.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선 왼손잡이를 바른손잡이로 고치려고 애쓰곤 한단다. 

김광규의 '왼손잡이'란 시를 한번 보렴.

남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글씨 쓰고
방아쇠를 당기고
악수하는데 
왜 너만 왼손잡이냐고
윽박지르지 마라 당신도
왼손에 시계를 차고
왼손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왼손에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느냐
험한 길을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한 손으로 짐을 들고
또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어야 하듯
당신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나에게도 오른손이 필요하다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당신은 지금 왼손으로
면도를 하고 있고
나는 지금 오른손으로
빗질을 하고 있다  (김광규, 왼손잡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을 하고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획일적 사고와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시야.

오른손잡이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왼손과 오른손은 인간에게 똑같이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임을 들려주면서
시각을 바꾸어 세상의 다른 것들에게 이해와 포용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들려주는 시지.
이 시에서 '거울'은 우리의 시선의 각도를 돌리게 해주는 소재고 말이지. 

세계화는 강대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편하려고 하고 있구나.
필요하면 약소국에 군사 기지를 만들면서 환경을 파괴하기도 하고...
그렇게 중요한 일을 국민들이 알면 시끄러워지니깐, 그런 사실 자체를 알리려 하지도 않고 말이야. 

세상은 늘 자기 중심으로 바라보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
'다른 것'은 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이제 아들도 태어난 지 만 18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어진 것들만 하면 되는 시기가 끝난다는 거라고 생각해.
어른은 뭔가를 자신이 만들어 가야하는 존재거든.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원숙한 가을을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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