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 - ★공고 학생들이 쓴 시
류연우 외 77인 지음, 김상희.정윤혜.조혜숙 엮음 / 나라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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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정말 공감이 간다. 

아이들이 실업계 고교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실업계란 말이 안 좋다고 전문계라는 말을 쓰는데,
뭐, 그러자면 전문 대학은 왜 없앴는지... ㅎㅎ 
실업자 만드는 실업계나 전문성 없는 전문대나 마찬가지다.  

전문계 고교생도 80% 이상 대학으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반계(인문계)로 진학해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큰일이다.
아침 일찍부터 빡빡하게 돌아가는 입시 지도에 하위권 학생들은 허덕거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4년 전에 만나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수업이 안 되고,
그렇다고 의욕도 없고,
남는 시간을 어쩔 줄 모르고 게임에나 빠져 살던 아이들... 

나도 그 아이들과 글쓰기를 제법 했었는데,
교지로 묶는 일을 했기때문에 교지에 아이들 글이 많이 실렸더랬다. 

요즘은 특성화 고교를 만든다고 하는데,
거기도 전문성 없거나 취업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교육이 서야 나라가 산다고 하지만,
여야 대립을 떠나서 제발 우리 아이들 살리는 정책 좀 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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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면 어디론가 훨훨 날아갈 것 같은 가을날이다.

오늘은 김명인의 <그 나무>란 시를 읽어 보자.
삶이란 게 꼭 남들보다 '일찍' 뭘 많이 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난 늘 한다마는,
너는 어떤 생각인지 시를 읽으면서 느껴 보렴.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 구석으로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燒紙)**,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김명인, 그 나무)


*소신공양 : 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침.
**소지 :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태워서 공중에 올리는 종이

화자는 '벚꽃 가로' 를 따라 걷고 있었대.
벚꽃은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우는 것이 특징이지.
그런데, 어떤 나무 한 그루는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듯,
늦되게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단 거지. 

그걸 보고 화자는 깨달음을 얻게 돼. 

"아, 우리는 너무 기다릴 줄 모르는 거 아닐까?
남들이 꽃필 때 꼭 따라서 꽃피는 것만이 최선일까?
나무에 따라서 늦된 것도 있듯,
사람도 조금 이를 수도 조금 늦될 수도 있는 것을,
사람들은 제 기준에 따라 늦된 것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뭐, 이런 느낌. 

그 나무는 왠지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진 것처럼,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대. 

그렇지만, 그 나무 역시,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멍울들을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것이었어. 

늦된 나무도
조금만 기다려 주면
비로소 환하게 꽃불 성화를 밝혀 들고
환하게 타오를 것임을 생각하고
화자는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서 반성해 보았단다. 

봄이 된 지 두 달 넘도록 헤매고 다녔던 것처럼 보이는 늦된 나무.
그 나무도 꽃이 지면, 푸릇한 잎새 매달겠지?
청록으로 여름이 지나는 시절이 되면,
불타듯 몸사르며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의 계절이 되듯,
그 나무 역시 몸바쳐 낙엽을 떨구일 수 있겠지? 
그렇게 되길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나도 아들이 남들보다 훨씬 앞서 나가길 바라지 않는단다.
다만 부모의 마음은 남들보다 아들이 활짝 꽃피울 날이 언젠가 오길
늦되지만 자신의 속에 담긴 꽃망울이 화사하게 피어난 모습을 자랑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일 거야. 

나무가 꽃망울을 맺히게 하고, 꽃을 피우고,
녹색 잎사귀로 치열하게 광합성을 하듯,
이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런 치열한 삶이 담겨있다면,
늦된 나무라 하더라도 완성된 나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엔 '작은 것들을 노래하는 시인' 이건청의 '하류'란 시를 읽어 보자.

거기 나무가 있었네
노을 속엔
언제나 기러기가 살았네
붉은 노을이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면
거기 나무를 세워두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네
쏟아져 내리는 은하수 하늘 아래
창문을 열고 바라보았네
발뒤축을 들고 바라보았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희미한 하류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었네
나무가 아이의 잠자리를 찾아와
가슴을 다독여 주고 돌아가곤 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일만 마리 매미 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네
모든 대답이 거기 있었네
그늘은 백사장이고 시냇물이었으며
삘기풀이고 뜸부기 알이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이제는 무너져 흩어져 버렸지만
둥치마저 타 버려 재가 돼 버렸지만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던 노을
스쳐가는 늦 기러기 몇 마리 있으리
귀 기울이고 다가서 보네
까마득한 하류에 나무가 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이건청, 하류) 

이 시는 '거기 나무가 있었네'를 반복하는 사이사이에 생각을 밀어넣고 있어.
그래서 한 연으로 된 시인데도,
마치 연 구분이 된 것처럼 느껴지지. 

'거기 나무가 있었네'의 반복으로 아쉬운 마음이 반복되어 강조되기도 해.  

기러기 날아가던 노을. 
금빛 붉은 노을이 찬란하게 퍼지던 저녁
집으로 돌아와 은하수를 바라보던 시절.
유년 시절의 추억 속에 가장 인상적인 소재는 '나무'지. 

그 나무는
희미한 강물 소리 자장가 삼아 잠들던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가슴을 다독여 주는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위안을 받던 존재였지. 

여름이면 수만 마리 매미 울음과 함께 그늘을 지어 주고,
그 고향, 그 나무 아래서 '모든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해.
결국, 지금은 어디서도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아쉬움을,
그 시절과 대비하여 나타내고 있어 보인단다. 

그런데, 이제는 그 나무가 무너져 흩어지고 말았대.
나무 둥치마저 타 버려 재가 되어버렸대. 

사라져버린 유년 시절의 추억을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던 노을>이라고 해서 공감각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시각적 노을을 청각적으로 울림처럼 표현한 거지.
예전에 있었던 기러기 역시 그리움의 대상이야. 

귀 기울이고 다가서서
까마득한 옛날,
그 하류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 화자가 상상되니? 

너는 어린 시절이라면 어떤 추억이 남아있을까?
이 시의 주제는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거란다.
사람은 누구나 유년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여기기 쉽지.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면 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야.  

이제 '하류'처럼 고요하게 물소리 들리지 않던 시절을 지나서,
콸콸거리는 상류 지역을 통과해야 할 삶의 고비를 맞게 될지도 몰라.
직업을 선택해야 하고,
배우자도 선택해야 하는 '청춘'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시기란다.
식물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듯,
인간에게도 청춘은 잔인한 계절이야. 

부지런히 양분을 흡수하여 꽃을 피우고 생명력을 쭉쭉 퍼뜨리는 식물의 봄처럼,
인간의 청춘 역시 삶의 생명력으로 가득차 넘쳐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엘리엇은 <황무지>란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쓰기도 했단다.
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을 황무지에 비유한 시였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엘리엇, 황무지)

겨울이 오히려 안정적이었고,
봄에는 뿌리가 활동적이어야 하듯 봄은 힘든 시기이기도 한 거야. 

무엇이든 꽃피우고 열매맺는 일은 편안하지만은 않은 거란다.
고단한 삽질에서
수고로운 땀방울에서
인생이든 꽃나무든 꽃도 피우고 열매도 열리는 게 삶의 섭리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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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 창비시선 314
정철훈 지음 / 창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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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읽노라면 박정대의 시가 떠오른다.
박정대의 끝없는 방랑길에서 만난,
그래서 산만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불빛의 그늘 속에 숨겨진 감은 눈에서 읽히는 눈물.
또는 담배 연기의 낯설지만 익숙한 조우 같은 거... 

그렇지만, 박정대의 시보다는 더 생각의 골목을 복잡하게 하진 않는 시여서 좀 익숙하다.
시의 골목길은 언제나 낯설지만,
또 모든 골목길들이 가진 속성상 다소 마음편하게 익숙함을 제공하기도하는 그런 느낌(?) 

시집 제목에서부터 뻬쩨르부르그라는 러시아 제2의 도시가 독자를 상상의 라인 밖으로 몰아내는 느낌이다.
모스크바도 낯선 판국에 뻬쩨르부르그라니... 

도착할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연착 방송도 없고
당신은 오지 않고 난 먼지 자욱한 대합실에 앉아 책을 뒤적인다(아직 도착하지 않은 당신, 부분) 

시인의 시간과 공간 감각에 대한 예민함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도착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불안감과
연착하였을 거란 불신감.
그 가운데 삶은 늘 먼지 자욱한 대합실처럼 불확정성 속에 놓인 것처럼 말이다. 

살림이란 게 설거지에서 완결된다지만
완결이란 말이 아프다
설명보다는 실명에 가까운 고적한 설거지(고적한 설거지, 부분)

누군가가 설거지에서 살림이 완결된다는 이야길 했을까?
그런데, 삶에서 완결이란 게 있기나 한 건지, 화자는 그 말이 아프다.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화자에게 설거지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잃는 실명과도 같은,
완결을 도무지 감각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하는 모양이다. 

언덕이 내게 가르친 건 살아갈수록 위기라는 엄연한 사실이다(만리동 언덕길, 부분) 

영혼같은 게 있다면
영혼은 밝으면 별반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에
나는 영혼이란 놈이 좀 어두컴컴하게 숙성되기를 (누에의 꿈, 부분) 

구정이다
2월에 1월을 다시 맞는 난쎈스의 계절이다
나 태어나 4.19와 5.16이 있었지만
그건 간밤에 내린 비와 같다
내가 직접 맞지 않은 비로 인해
내가 걸어온 반세기의 길은 내내 젖어 있었다(구정의 상념) 

로맹 가리는 돌아오지 않는 수영법에 대해 쓰고 있다
헤엄을 치다가 너무 멀리 나아가면
다시는 육지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다는 위험한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번역하고픈 것은 귀환하지 않는 삶에 관한 가능성이다
이른바 로맹 가리 식 귀결 
귀환은 진부하다
진부해진다는 건 죽음이다
실제로 그는 죽음을 준비하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진정 그가 이국땅에서 운명하길 바란다
귀환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귀환할 때와 귀환하지 않을 때를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로맹 가리를 읽는 밤, 부분) 

삶은 확실히 슬품과 중력의 자식일 것이니
기차가 슬픔을 길게 가로질러가듯
이 모든 것 너머에 우리는 존재한다(감자를 벗겨 먹는 네 개의 입, 부분) 

한 바퀴라는 이 순환이 삶의 배후라는 게 비극 아닌가(저녁 먹고 한 바퀴, 부분)

그의 시에서 베낀 언어들을 따라가노라면
삶의 저켠에서 걸어가는 그림자들이 보일 것도 같다. 

그리고, 이켠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골몰하는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순환과 귀환,
도착과 연착의 운명, 그 비극에 대하여 그는 쓰고 나는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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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9-2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엄을 치다가 너무 멀리 나아가면
다시는 육지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다는 위험한 기분이 드는 때" - 정말 이런 기분일 때 있을까요?

"시간과 공간의 순환과 귀환,
도착과 연착의 운명, 그 비극에 대하여 그는 쓰고 나는 읽는다" - 글샘님은 쓰고 나는 읽는다.


 
처음 만나는 세계 지도 그림책 처음 만나는 그림책
무라타 히로코 글, 데즈카 아케미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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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세계지도는 아마도 누나의 사회과 부도였을 것이다. 

그 세계 속에는 뒤죽박죽 선들 사이에 놓인 땅덩어리들이 연둣빛으로 놓여있었다. 

주로 나라 이름 외우기와 수도 외우기를 많이 하며 놀아서 지금도 대략 수도는 외우고 있다. 

이 책은 어린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지구 상에 얼마나 많은 나라와 문화가 존재하는지를 그림과 함께 보여주고,
시간도 서로 다르게 약속했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 

그 나라들의 전통 이야기나 인사말도 재미있다. 

즈드라스트브이체...라는 러시어 인사는 처음 들었다.
브에나스 타르데스...는 스페인 인사란다. 

아이들이 보는 만큼, 이 첫 그림 지도책이 어쩌면 평생 남을 수도 있는 강렬한 기억이 될 지도 모르는데,
두어 군데 틀린 글자가 보인다.
전량 회수는 못하더라도, 스티커라도 붙여 판매하는 것이 좋겠다. 

<유럽>편의 핀란드를 <아일랜드>로 오기한 부분과,
<남아메리카>편의 볼리비아의 '유우니 염습지'는 <우유니> 사막의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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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 역사 바로 찾기 2 : 동북공정의 비밀을 찾아라! - 중국 역사왜곡 2편, 개정판 반크 역사 바로 찾기 2
이다 글, 키네마인 기획 / 키네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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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나라도 괴물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것이 20년 전인데, 중국은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내홍중이다. 아니, 계속 내홍중이었고, 앞으로 더해질 것이다. 

티베트나 신장 지구의 독립운동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이 늘 불붙은 도화선이다. 

엑스포나 올림픽을 유치하였지마는 아직도 중국 인민의 '문명'을 외치고 있는 수준이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합은 중국의 존립을 뒤흔들었고,
이후 중국은 동북공정에 안간힘을 쓴다. 

통일코리아 이후 조선족자치주의 독립 문제는 전중국의 소수민족을 들깨울 여건을 마련해주는 도화선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선족은 '대한민국'이라는 가장 잘 사는 친정을 가진 소수민족이며,
이미 수십 만명의 조선족이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는 현실은 중국을 흔들리게 만들 것이다.

아직도 공산당의 통제가 엄연한 현실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인민들에게 먹혀드는 반면,
남북의 화해무드가 깨어진 것이 이미 수 년, 중국은 한숨 돌리고 있는 형상이다. 

역시 역사를 바로찾는 일의 시작은,
선거를 바로 하고, 국가를 바로세우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친일파들이 득세한 세상에서 바른 역사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는 개가 풀뜯는 소리에 불과하니 말이다. 

이런 책의 위험성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국수주의적 성향을 심어줄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몇몇 극우단체의 데모나 자해 등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올바른 정부의 대응이 기본이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 

몇몇이서 대사관 앞에서 데모하는 웃기는 짓은,
독도 밀약을 둘러싼, 아직은 기다려 달라...는 등의 정치적 암막 뒤에선 우스개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시민으로 기르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치 문화가 바른 사회를 만들고,
삐뚤어진 역사를 바로세울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교육도, 역사도, 사회문화도 모두 정치에서 돈을 배분하고, 정치에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깨어난 국민만이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사회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선진 복지국가에서도 우익 테러리스트들이 발호하는 현실에서,
후진 각개약진 국가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열폭하는 날에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무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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