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목서 향기가 세상에 가득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모과향 비슷한 꽃향기로 대기를 가득채우는 꽃나무가 금목서인데,
금목서 향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걸 보면,
사람의 향기도 저렇게 넓게넓게 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금목서 향기가 흩날리는 풍경을 틈타,
치자꽃 향기를 음미해 보자. 

박규리의 '치자꽃 설화'를 우선 읽어 보렴.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박규리, 치자꽃 설화) 

설화는 구비전승되는 이야기야.
치자꽃에는 왠지 이런 서러운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다는 시를 쓰고 있지.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서 보내고는
돌계단을 올라가는 스님이 울고 있는 걸, 화자는 보고 말았어. 

캬, 요것만 가지고도 짠한 순애보(순수한 사랑의 기록)가 한편 떠오르는구나. 

 

스님은 고요한 법당 안에 들어가시고,
문 한 쪽만 열어 두고는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
빗물에 우는 소리처럼... 

사랑하던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야 하는데,
그 밀어내던 자신이 스스로 <못>이 되어
스스로의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처럼 여겨진대.
그렇게 목탁소리만 은은하게 이어짐으로써 스님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주지. 

화자는 스님의 슬픈 순애보에 가슴이 짠해서 계속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데,
여자는 돌아가지 않고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더래.
그러다 일어나더니
산길을 휘청이며
마치 물살에 떠내려가듯 휘청거리며 내려갔대.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도 듣고(떨어지고)
그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소리만 산허리에 가득하구나.
하필이면, 짝을 잃은 그 순간에 짝을 찾는 소리라니... 

화자는 내려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생각해.
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구나.
한 번도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구나. 

그러고 있는데,
방 안의 스님은
잿빛 승복만 입은 채
날이 저물도록 경을 읽는 소리로만 남았어. 

떠난 사람보다
더 서럽게 보이는 스님의 잿빛 등과 독경소리. 

아, 화자는 그만, 독경소리가 너무 싫어 졌나봐.
마치 자신이 버림받은 여자가 된 듯,
스님의 버리려는 독경소리가,
오히려 더 깊어가는 사랑인 것처럼 들려서
화자 역시 하염없이 산길에 앉아 있대. 

독경소리는 이렇게 중의적으로 쓰였지.
스님은 여인을 보내고 잊으려고 독경을 시작했지만,
그 독경소리 <저물도록 그치지 않는> 걸 보면, 마음 속에서 잊히지 않는 거야. 

그게 마지막 부분의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이란 표현과 딱 맞아 떨어지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을 돌려보내며 겪는 이별의 정한을
마치 멜로 드라마 한 편 보는 듯,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시란다. 

치자꽃이 나온 김에, 이해인 님의 시도 한 편 읽어 보렴.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 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 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이해인,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수녀님은 치자꽃을 보면서,
사람을 만날 때 설레는 마음을 계속 유지하였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기를 맡는다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그런다면 삶이 곧 꽃밭이 될 것을... 

이렇게 생각한단다. 

치자꽃 향기를 맡으면서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고
향기로운 날들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아,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만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거란다. 

오늘은 작년 모의고사에 난 시조 중에 아이들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던 시조를 한 편 읽어 보자.

우뚝이 곧게 서니 본받음 직하다마는
구름 깊은 골에 알 이 있어 찾아오랴
이제나 광야에 옮겨 모두 보게 하여라<제5수>

세상이 하 수상하니 나를 본들 반길런가
왕기순인(枉己順人)*하여 내 어데 옮아 가료
산 좋고 물 좋은 골에 삼긴 대로 늙으리라<제6수>

천황씨(天皇氏) 처음부터 이 심산에 혼자 있어
너 보고 반기기를 몇 사람 지냈던고
만고의 허다 영웅을 들어 보려 하노라<제7수>

소허(巢許)* 지낸 후에 엄 처사*를 만났다가
아쉽게 여의고 알 이 없이 버려 있더니
오늘사 또 너를 만나니 시운인가 하노라<제8수> - 박인로,「입암이십구곡(立巖二十九曲)」- 
*왕기순인 : 자기 몸을 굽혀 남을 좇음. 
**소허 :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상고 시대의 대표적인 은자(隱者).
***엄 처사 : 엄자릉(嚴子陵). 한나라 광무제 때의 은자(隱者).

이 시조는 박인로가 '입암(선바위)'을 대상으로 쓴 시조 29수의 5~8수가 되겠다. 

제5수, 7수는 화자의 말이고,
제6수, 8수는 바위의 말이라고 한다.
한 수씩 뜻을 살펴 보자꾸나.

제5수 [화자의 말]
우뚝이 곧게 서니 본받음 직하다마는
구름 깊은 골에 알 이 있어 찾아오랴
이제나 광야에 옮겨 모두 보게 하여라<제5수>

화자가 입암(우뚝 선 바위)을 보고 "너는 우뚝 곧게 서서 본받을 게 많다."고 했어.
그런데 도회지에 있지 않고 구름 깊은 골짜기에 있어 아는 이가 찾아오겠느냐고 한다.
이제라도 넓은 광야로 옮겨 모두들 보게 하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냈어.

<영월의 입암> 

화자가 바위를 보고 캬, 너 멋지군.
근데 이렇게 촌구석에 있음 누가 알아나 주겠냐?
야, 너 슈스케 한번 나가 볼래? 이런 거지. 

그랬더니 바위가 제6수에서 이렇게 대답했어.

[바위의 대답]

세상이 하 수상하니 나[바위]를 본들 반길런가
왕기순인(枉己順人)*하여 내[바위] 어데 옮아 가료
산 좋고 물 좋은 골에 삼긴 대로 늙으리라<제6수>

세상이 하도 수상하다 보니(어지럽다 보니) 나를 봐도 별로 반기지도 않을 거 같아.
내 몸을 굽히고 남을 쫓아서 어디로 가란 말이야?
그러니 산좋고 물좋은 골짜기에 생긴대로 늙고 싶다. 

그러니깐, 야, 슈스케 같은 데 나가봤자, 별거 있겠어?
세상은 노래 잘한다고 가수 만들어 주는 거 아니란말야.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지 잘 알면서?
사람들이 나 본다고 좋아할지 어떨지도 모르잖아.
피디한테 수구리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야 하고... 하이고...
차라리 산좋고 물좋은 여기서 숨어 사는 게 내 팔자에 딱 맞아.  

그러니깐, 다시 화자가 한 마디 거들지.

[화자의 말]

천황씨(天皇氏) 처음부터 이 심산에 혼자 있어
너[바위] 보고 반기기를 몇 사람 지냈던고
만고의 허다 영웅을 들어 보려 하노라<제7수>

아냐, 넌 정말 훌륭해.
네가 처음부터 이 산속에 혼자 있어서 그래.
너보고 멋지다고, 네 숨은 재주를 알아주고 반기던 사람이 몇이나 만났겠어?
하고 많은 영웅들의 이름을 들어서 너랑 비교해 보고 싶다.
화자는 정말 바위가 멋진 존재임을,
그래서 세상 누구라도 바위한테 홀딱 반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지. 

다시 바위가 대답하고 있어.

[바위의 대답]

소허(巢許)* 지낸 후에 엄 처사*를 만났다가
아쉽게 여의고 알 이 없이 버려 있더니
오늘사 또 너[화자]를 만나니 시운인가 하노라<제8수> 

소부와 허유, 소허는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은자들이지.
소부, 허유랑 지내다가 다시 엄처사를 만났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서 지냈단 거지. 

이제 소허와 엄처사를 아쉽게 이별하고
알아주는 이 없이 버려져 있은 지 오래였는데,
오늘에서야 또 나를 알아주는 너(화자)를 만나니,
시절 인연이 운이 맞는 것 같다.
우리 한 번 잘해보자. 

이런 거지.  

박인로가 '입암'더러 '은자'라고 추켜세우면서
너, 세상에 나가면 인기 좋을 거야.
왜 세상 사람들이 너를 몰라보는지 몰라...하고 아쉬워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투정인지도 모르겠다.
난 박인로가 투정부리는 것처럼 보이거든. ^^ 

왜 세상은 재주 많은 나를 알아보지 않은 거삼? 이러고 말이지. 

사람이 일단 뭐든 무기가 있어야 해.
나들보다 이것은 잘할 자신 있다... 이런 것.
그걸 갖고 있으면, 박인로처럼, 시절 인연을 기다리면 되겠지. 

만리 밖까지 향기가 퍼진다는 만리향, 금목서를 다른 이름으로 그렇게도 부르더구나.
향기가 듬뿍 담긴 사람이라면,
어디 숨어 있더라도,
누군가 알아볼 때가 있겠지?  

우리 아들이 금목서처럼,
만리향처럼
은은한 향기로 가득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아빠가 몇 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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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빠빠 - 어린 딸을 가슴에 묻은 한 아버지의 기록
저우궈핑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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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뉴뉴는 태어나면서부터 안구에 종양이 발견된 아기다.
1년 반을 살았다. 

그 짧은 기간동안 아빠와 엄마는 눈물로 밤을 지새곤 했지만, 
또한 뉴뉴로 하여금 웃음 지었던 시간들로 이 책은 가득하다. 

삶에 대한 회의와 불신감으로 가득하기 쉬운,
투병 일지에 대한 지루함으로 가득하기 쉬운 책인데,
아기 뉴뉴를 만지고, 아기 뉴뉴가 웃음 소리를 내고,
아빠 얼굴을 만지고 토닥거리는 느낌이 사라져버린 뒤,
다시 그 감각들을 살려내는 일은 아픔이었으리라. 

마지막 저자의 말에서, 그들 부부는 헤어졌다는 아쉬운 말이 남는다.
나도 아이를 잃는다면, 부부 관계가 끝날 수 있는 부부고 많을 거라고,
아니, 서로 가시나무가 되어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헤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거라고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 그들은 얼마나 날마다 아프고 얼마나 날마다 힘겨울 것인지.
해가 뜨려 하는 새벽이나, 저물 녘 황혼을 보는 일조차 심상하지 않은 일임을 아는 것은 얼마나 고통의 연속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식'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주는 효도는 일곱 살까지 다 한다고 한다.
일곱 살까지 아이가 자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을 주었던지를 생각해 보면, 

학교를 들어가고, 경쟁이 시작된다.
교실 앞 게시판에 붙은 포도송이에 스티커가 적게 붙은 아이는 위축될 것이고,
엄마가 한번도 교실에 나타나지 않은 아이들은 또 마음 크기가 줄어들 것이다. 

이제 성적표를 훌륭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부모에게도 평가절하되는 자식의 삶. 

자식의 삶 또한 제 몫이 있는 것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지,
계수 나무가 뽑힌 자리, 인공 위성이 앉던 그 날을 생각하듯,
세상이 상전벽해로 변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참 가볍게 변한다. 

뉴뉴의 삶과 짧았던 빛을 읽으면서,
삶은 어떤 존재의 그것이든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가 있을 것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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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스티커 - 제9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작은도서관 35
최은옥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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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는 소리뿐만 아니라 냄새까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어른이 되면 적당하게 움직이면서 해소할 수 있지만,
학생의 경우 수업 시간에 꼼짝없이 교실에서 실례를 할 수밖에... 

그래서 화장실에서 방귀를 뀌는 아이들을 위해서 선생님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아이들의 삶은 즐겁지만은 않다. 

아이들 역시 머리 복잡한 세상 속의 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동화 속에서라도 쉽게 살면 좋겠다. 

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아이들은 교실에서 방귀를 술술 뀌고
건강한 삶을 누린다.
마지막엔 역시 반전이 따른다.
방귀 상을 받는 아이는 가장 얌전해 보이는 아이였고,
돌아가던 아이가 선생님 수첩을 보니 선생님이 더 많이 뀌었다는 이야기. 

그림도 웃음이 슬슬 퍼지도록 재미있게 그렸다. 

현실도 이렇게 좀 해결책이 쉽게 나오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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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엔 여름같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환절기다.
요즘 계절과 계절 사이 '간절기'란 말도 있을 정도로
일교차가 크니 건강에 유의해야겠다.
(환절기라면 계절이 쉽게 바뀐다는 느낌인데, 간절기라 하니 제법 사이가 긴 느낌이지?) 

오늘은 정현종 시인의 시를 한 수 읽어 보자.
제목은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이야.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 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제목에서 주제가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지.
'공'이란 소재의 특징은 여러 거지야.
둥글고, 놀이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시인은 공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하고 있다. 

떨어지는 일은 좌절스러운 일이지.
살다 보면,
성적이 떨어지기도 하고,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기분이 떨어지기도(다운된다고 하지) 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럴 때, 둥근 공은
위 아래가 없으므로
쓰러진다는 개념도 없이
다시 회복하는 속성에 의미를 부여한 거야. 

첫 행,
<그래 살아 봐야지>가 화자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시 제목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과 첫 행 '그래 살아 봐야지'만 가지고도 주제가 확 살아나지?

공을 '쓰러지는 법이 없는 탄력의 나라의 왕자'라고 표현했구나.
왕자는 고귀한 존재잖아.
살면서 지쳐 쓰러지려할 때,
쓰러지는 법이 없는 탄력 100% 왕자가 되자는 멋진 표현을 오늘 만난다. 

둥근 공의 꼴은
언제나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찰력이 가장 작은 모습이지.
그리고 탄성이 강해서 가볍게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야. 

삶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을 무엇에 비유하면 가장 적합할지를 생각해 보니,
떨어져도 쓰러지는 법 없이 튀어오르는 공,
딱, 그것 같더라는 발견이 신선한 시란다.

그래 살아봐야지...하는 말에서
살기 힘겹다는 심상이 숨어 있어.
그렇지만, "떨어져도 튀는", "쓰러지는 법이 없는",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공의 속성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생에 대한 의지와 자세를 가다듬어 보자는 의도의 시겠다. 

실존주의 작가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어.
시지프스는 신의 미움을 사서 산 정상에 바위를 올려 놓으라는 형벌을 받아.
정상에 올려 놓으면 다시 밑으로 굴러가는 바위 때문에
시지프스는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그러나 시지프는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대로 바위를 굴려 정상에 올리려는 행위를 반복하게 돼. 

삶이란 이렇게 형벌과도 같이,
무의미한 삶을 날마다 반복하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야. 

그럴 때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본 '의지의 시'를 읽어볼 만 한 일 아닐까?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시를 한 편 더 볼까?
서정주의 시를 한 수 읽어 보자.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서정주, 꽃밭의 독백-사소 단장-) 

[원주(原註)] 사소(娑蘇) : 사소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수행을 간 일이 있는데, 이 글은 떠나기 전 그의 집 꽃밭에서의 독백.

이 시는 간혹 시험에 나오면 왕창 틀려 주시는 어려운 시 중의 하나 되시겠다. 

제목이 사소 단장이야. 사소 부인의 짧은 노래.
사소 부인이 산으로 신선수행 가기 전에 집 꽃밭에서 독백을 한 거래.

경주 선도산에 신모가 있는데 그 이름을 사소라 했다.
일찍이 신선술을 터득하여 멀리 바다 건너 서쪽 나라로부터 해동으로 들어왔다.
솔개가 날아가 내리는 곳에 집을 지으라는 계시를 받고서 선도산에 정착하여 신선이 되었다.
사소가 처음 삼한 땅에 이르러 자식을 낳으니, 그가 동국의 첫 왕이 되엇다.
무릇 혁거세와 알영의 유래를 말하는 것이리라.

서정주는 왜 이런 전설 속 이야기를 끄집어 냈을까?
도대체 설화 속의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주제를 연결해 보려 했던 걸까? 

이 시를 읽을 때, '꽃아'를 어떻게 소리내어 읽을까도 문제야. ^^
[꼬차] [꼬사] [꼬다] 등 다양하게 읽기도 하지만,
'-아'는 무엇을 부르는 '호격 조사'로 실질적 의미가 없으니 이어지는 대로 소리내는 게 맞아.
첫번째 [꼬차] 이렇게 읽는 거지.  

화자가 추구하는 바는 첫 행에 바로 등장한다.
<노래>가 그 중 가장 낫대.
무엇 중에서 가장 나을까? 비교 대상은? 뒤에서 생각해 보자. 

구름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바닷가까지 네 발굽을 치며 달려간 말 이야기를 보면,
화자는 말타기를 즐기는 신선 같다. 
말타기를 해도,
바닷가에 가서 '멎어버리고 말'았대.
이제 <노래>와 비교된 게 하나 나왔지. <말타기>
그 중에 노래가 가장 좋단다. 

계속 볼까? 

산돼지를 사냥하고, 매사냥도 했어.
그런 들짐승 고기에도 이미 입맛을 잃어버린 것.
또 하나의 취미가 나왔지? <사냥>
노래, 말타기, 사냥, 이런 것 중에 노래가 가장 낫대.
왜냐면... 화자는 사소 부인이지만, 시인인 서정주의 분신이니깐. 

그리곤, 뜬금없이 '꽃'을 찾는다.
아침마다 피어나는 꽃.
좋기는 꽃이 제일 좋대.
꽃이 피는 일은 한 세상이 열리는 <개벽>과도 같은 창조의 힘이 느껴지겠지. 

그런데, 화자는 꽃이 제일 좋은데,
헤엄을 자유로이 칠 줄 모르고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출 뿐인 어린애처럼,
꽃의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래. 

꽃이 피는 섭리를,
그 아름다운 향기와 그 찬란한 빛깔의 아름다운 창조를 꿈꾸는 화자에게
꽃은 문을 열고 그를 받아주지 않는 모양이야. 

그래서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이렇게 불러 보지만,
당근, 꽃은 열릴 리가 없지. 

아마도, 꽃을 여는 길은
자연의 섭리, 위대한 벼락이나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화자는 애처롭게 불러본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하면서... 

서정주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정말 최고의 경지란다.
그렇지만, 그도 추천사에서 그네에 매달린 존재처럼 한계 의식을 느꼈던 거야.
이 시에서도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뻔히 한계 의식에 직면하는 시인을 발견하게 된다.

주제는 우주의 비밀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 또는 그렇게 시를 잘 쓰고자 하는 열망.
가장 멋진 '노래'를 짓고 싶으나 좌절하게 되는 한계 의식, 같은 거라고 보면 될 거야. 

시를 잘 쓰고 싶은 화자.
노래가 가장 나은데,
그 노래는 마치 문 열리지 않는 꽃처럼, 화자에게는 막막한 대상이라는 좌절감. 

그래도 화자는 <벼락과 해일>만이 길이라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의식을 느끼지만,
제우스 신처럼 벼락을 쳐서 완전한 세계에 도달할 수는 없는 존재임을 명백히 알지만,
그래도 간절히 빌어 보는 마음이 애절하게 느껴지지. 

아빠도 무슨 일이든 이렇게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해.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가 '생생하게 꿈꾸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시크릿>이란 유명한 책에서도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고 말이야.
막연한 소망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간절히 바라고, 절절히 노력하면, 나머지 부분은 운명이 채워줄 수도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게 하는 시야. 

되튀는 공처럼 탄력성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힘을 내서 사는 자세.
오늘 한번 생각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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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9-2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오랜만에 문학수업을 들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전 쓰러지는 적이 없는 탄력의 나라의 공주가 될래요! ㅎ

글샘 2011-09-28 09:2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공주님 ^^
 
러시아 명화 속 문학을 말하다
김은희 지음 / 이담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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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은 내가 대학 시절만 해도 금지된 나라였다.
오죽하면 '먼 나라 이웃 나라'에도 동유럽과 소비에트는 제외될 정도였다.
세계사 속에서도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만 있던 나라. 

유럽 중심의 예술 이야기책은 많이 보았지만,
이진숙의 '러시아 미술사'를 읽은 일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책은 이진숙에 비하면 필력도 떨어져 보이지기는 하지만,
러시아의 그림들과 문학을 엮어 두어,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러시아 미술사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이 표지화로 등장하셨다.
이쯤 보면, 내 눈도 제법인가? ㅎㅎ 

레핀의 '볼가강의 인부들'에 얹힌 네크라소프의 시도 멋지다. 

볼가에 가 보라. 위대한 러시아의 강 위로
누구의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는지.
이 신음소리를 우리는 노래라고 부른다.
인부들이 예인망을 끌고 가는 것을...
볼가! 볼가! 물이 넘치는 봄에
우리의 대지가 위대한 민중의 슬픔으로 넘치는 것처럼 

당신은 들판들을 그렇게까지 넘치도록 물을 주지는 앟을 테지.
인민이 있는 곳에 신음소리가... 아, 심장을 에는 신음 소리가..(네크라소프, 화려한 정문 앞에서의 단상들) 

 

그리고 야로센코의 '어디나 삶'이란 인상적인 작품도 기억난다. 

 

창살 안의 인물들은 어디론가 먼 길을 기차로 가고 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수용소로라도 가는 기차 같다.
그 제목이 '어디나 삶'이라니...
반대편의 고독한 남자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 그림의 제목에서 vsudu를 '어디나'보다는 '어디로 가나'라는 뉘앙스로 보면 다른 맛이 있단다.
어디로 가나 삶은 놓인 것.
유형지로 가든, 민족의 재배치로 인한 이동이든,
어떤 삶이든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이 책에서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의 원본을 만난다. 

이 곡은 러시아 시인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붙이고
러시아의 국민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부른 노래이다. 

옛날에 한 화가가 살았네
작은 집 한 채와 그림들이 전부였네
그러나 그는 여배우를 사랑했네
그녀는 꽃을 사랑했네
화가는 집을 팔았네
모든 그림을 팔고 동전 한 푼도 남기지 않았네
그리고 전 재산으로 샀네
꽃의 바다를 

백만송이 백만송이 선홍빛 장미 백만송이
창문으로 창문으로 창문으로 당신은 보게 되겠지
사랑하는 이는 사랑하는 이는 진정 사랑하는 이는
자신의 삶을 꽃으로 화했네 

아침에 당신이 창문가에 서게 되면
어쩌면 당신은 정신이 아찔해질지도 모르지
마치 계속 꿈을 꾸는 듯
광장은 꽃으로 가득했네
마음이 서늘해지며
얼마나 갑부이기에
여기에다가
창문 아래엔 겨우 숨을 내쉬며
가난한 화가가 서 있네 

만남은 짧았네
밤에 기차가 그녀를 데려가 버렸네
그너나 그녀의 삶에는 있었네
꿈같은 장미의 노래가
화가는 혼자서 살아갔네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냈네
그러나 그의 인생에는 있었네
꽃으로 가득한 광장이 

이 내용은 원래 보즈네센스키가 러시아 작가 파우스톱스키의 단편집 '꼴히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꼴히다'는 서부 그루지야를 일컫는 말인데, 그 주인공 중 하나가 그루지야 화가 피로스마니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도 한다. 

아, 아름답지 않은가.
인도 사람들 넉살좋단 이야기 많지만,
러시아 사람들 넉살 또한 인도 사람 뺨칠 넉살이다.
어쩜 그렇게 수다스럽게 조곤조곤 쫄깃거리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지 말이다. 

문화의 힘은 이렇게 다양한 분야가 서로 통하는 일에서 살찌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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