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심부름
채인선 글, 권사우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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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자책 중에는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는 책도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하다. 

이 책은 아이가 엄마 심부름을 가면서 타조, 곰, 염소, 수탉을 만난다는
좀 황당하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이라면 오히려 좋아할 소재들이 등장한다.
농부들이 수탉, 염소를 찾는 일은 흔하지만, 수의사가 곰을 찾는 건 좀 생뚱맞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어에서는 부정 의문문에 대한 대답은 영어랑 거꾸로 나와야 하는데, 좀 틀린 것 같다. 

수탉 못 봤니?
아뇨, 못 봤는데요... 

한국어에서는 '못~'이라는 부정 의문 뒤에서,
봤을 때는(아뇨, 봤어요.)
못봤을 때는 (네, 못봤어요.)
처럼 응답해야 한다. 

No, I don't. 이런 건 영어식 표현인데...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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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목걸이
최정애 지음 / 아동문예사(세계문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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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아토피라는 신종 질병에 시달린다.
모두 지구를 꽁꽁 시멘트 아스팔트로 묶어놓은 탓일 게다.
쌩쌩 자동차 연기가 공기를 더럽혀 놓은 탓일 게다.
아이들 옆에 산과 들이, 풀과 나무가 자꾸만 줄어들은 탓일 게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이고 바르는 일보다
아이들 먹을 거리를 유기농으로 먹이네, 비싼 분유를 먹이네 나서는 일보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공기, 달큰한 풀꽃 향기, 부드러운 흙이 약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마치 곱다른 흙을 체에 쳐서 손으로 맛보는 그런 느낌의 시들로 가득하다.
세상 많은 풀꽃들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러다보면,
꽃들마다 각기 가진 성질을 보게 되고,
그것을 그저 말로 옮겼을 뿐인 시들... 

아이들의 마음이 건강해 지려면,
피자 햄버거 핫도그보다는
벽돌가루 박박 갈고 사금파리 쟁반에 돌나물 얹어 먹는
상상 속 각시놀이 밥상이 특효약 아닐까 싶다. 

이 시집은 그린이 이한중의 그림도 퍽이나 아름답다. 

시집을 '전자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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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림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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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님의 입담을 듣고 있다보면... 참 말도 빨리도 하는데,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십 분 안에 어떻게 통제를 해? 우리도 다 위에다가 보고를 해 가지고 허락을 맡아야 된단 말이야! 일단 청장님한테 가 가지고 '청장님' 그러면 청장님이 '어, 자네 무슨 일인가' 그럼 내가 '지금 한국대교를 급히 통제해야 되겠습니다' 그럼 청장님이 '어, 그런가. 그럼 장관님한테 보고를 하도록 해' 그럼 내가 장관님한테 가 가지고..." 

아파트 물탱크에 독극물을 살포하겠다는 범인 때문에 반장을 찾아가 단수 조치에 대한 주민 전달을 부탁하면 "쉿! 집값 떨어지니까 절대 그런 얘기 하지 마이소, 잉? 내일 반상회 가서 얘기할 테니까!" 하는 싸늘한 반응만 돌아오고, 도로 좀 통제했다고 "우와~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한테 화를 내네?"  

사회의 비틀린 면들을 이렇게 가볍게 이끌어내는 것이 '비상대책위원회'의 힘이다. 

성석제의 '홀림'에는 모두 8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분석은 김만수의 해설에 잘 담겨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류의 무의미한 대사의 연속에서 느껴지는 희극과 비극의 교차,
웹브라우저처럼 '소가 풀이나 새싹을 조금씩 뜯어먹는다'는 어원같이 탈개성화된 이야기 구조,
잉여와 낭비를 인생의 중요한 에네르기로 파악한 바타유의 생각,
옷(衣)에 주름(谷)이 지면, 품이 넓어 넉넉한(裕) 글이 된다는 등... 

노름하는 인간, 술 마시는 인간, 소설 쓰는 인간...
이런 소설들의 특징은 인간의 '잉여적 여기'로서 소설과 노름과 술과 춤은 한통속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 텐데,
그 말발이 가히 김원효 본부장의 말투를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김원효더러 성석제 글을 낭독하게 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무지무지 빨리 읽을 수 있다. ^^ 

홀림, 붐빔과 텅 빔... 이런 소설에서는,
인간의 삶은 모두 거기서 거기이며,
겹치게 마련인데,
누구의 삶이든 돌아보고 씹어보면... 열심히 분열하는 세포의 흔적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바,
그의 말 속도에 홀려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에 이끌리듯 읽노라면 한세월 한숨만 쉴 일도 아닌 것이란 위안을 얻는다. 

꼭 해야할 일을 하고, 남은 시간은 휴식하고 느긋하게 쉴 것...
쉰다고 경찰 출동 안 하니깐, 불안해하지 말고 즐길 것... 이런 말을 툭, 던지는 것 같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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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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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무,섭,지,않,은,가 

이렇게 쓴 하드보드를 들고 섰던 여학생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이 이제 투표권이 생겼다.
이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의사소통을 한다.
소위 소셜 네트워크 세대다.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의 뇌물, 탈세를 빼면 비교적 범죄율이 낮은 나라, 한국 

치안은 잘 되어 있다.
더러운 범죄가 많다. 

2008년 촛불 집회가 억압에 의해 사그러들고,
2009년 용산에서 참사가 일어난 후,
김선우가 인터넷에서 연재했던 소설이다. 

나는 연재소설을 싫어하는 편이다.
감질나게 읽는 것도 싫고, 읽는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미루었던 책인데... 

김선우의 성향의 특징이 잘 살아있다.
생명에 대한 갈구가 소설에 가득하다. 
인간을 넘어선 동물의 생명에 대한 사랑까지 마음이 넓어진다.  

첫부분에 드러나듯, '운명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사랑론도 흥미로운 소재다.

촛불집회는 당위였다.
그렇지만, 왜 당위였는지,
촛불집회는 계급의 문제였음을, 한국의 정치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양반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음을,
작가가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 보이진 않는다. 

전체를 바라보기엔 청소년들의 시선이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촛불 집회에 대해서,
치열하게 싸웠으나 지치도록 힘들게 사라져버린 그 싸움에 대해서,
따스하게 토닥거려줄 필요도 있었으리라. 

많은 분석서들이 나왔지만, 이런 문학 작품도 한 편쯤 필요했으리라. 

그렇지만 조금은 아쉽다. 촛불의 동력이 6월 말 이후로 왜 힘이 빠지게 되었는지,
이 아이들의 사고가 미래 사회를 바꾸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좀더 깊이 사고해서 형상화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 

박각시는 영어로 '허밍버드 모스 hummingbird moth'라고 한다.
벌새 나방이란 뜻이다. 
벌새처럼 윙윙거리는 나방인데, 이 나방을 '팔랑, 팔랑' 날아왔다고 한 부분은 조금 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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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0-1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을 소재로 영화가 나온다면 '도가니'를 뛰어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준비하고 있을거라 기대하지만,MB정권 끝자락에 상영할 수 있다면 대박일텐데...

글샘 2011-10-13 11:05   좋아요 0 | URL
촛불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긴 힘들 거예요.
왜냐면... 그건 그들의 계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계절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실패한 운동에 대해서는 영화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난 그가 임기를 다 마치기를 기대했다.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처음으로 민선 대통령이 된 사람. 

그는 독재 정권하에서 치열하게 투쟁하였으며,
탄압받았지만,
그 독재 정부의 시녀인 언론들에게서 늘 빨갱이로 견제를 받곤 하였다.
그 시녀들은 대통령 당선자 앞에 '시대의 인동초'란 아부를 바치곤 했지만 말이다. 

그가 아쉽게도 2009년 후임 대통령의 의문사 후에 스러졌다.
물론 그의 재임기간 중에도 구조조정의 여파로 노동 문제는 악화되었고,
비정규직 문제 들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대중경제론 역시 맥빠지게 대중의 삶은 팍팍해지기만 했던 아쉬움도 남지만 말이다. 

대북 기조의 일관성이나 희망을 주는 정치에 대한 믿음이 있기는 했다.
그를 이은 대통령 역시 권위주의를 타파하려는 노력이나 복지에 대한 배려 등을 믿을 수 있도록 살기도 했다. 

전진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20) 

나아가려는 사람이게 가장 필요한 주제다.
주저하고, 초조해하고 낙심하는 자세는 비관을 낳는다. 

우리는 중요한 일과 중요한 것같이 보이는 일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후일에 되돌아보면 하찮을 일에 중요하다고 매달려
얼마나 많은 인생을 낭비했던가.(24)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린 나.
후일에 얼마나 후회할 것인지...
그리고 낙심에 빠질 것인지... 

이기심과 탐욕은 가장 큰 죄악이다.
이기심은 자기를 우상화하고
탐욕은 탐욕의 대상을 우상화한다. 

자기를 우상화하지 말며,
대상도 우상화하지 말 일이다.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일에 흥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흥미가 한 분야로 집중되면 그것을 관심이라고 한다.
관심을 체계화시킨 것이 연구다.
인류의 진보에 기여한 위대한 사상과 업적도 실은 이처럼 흥미를 갖는 아주 단순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86) 

인격의 바탕위에 서지 않은 학문은
천박한 지적 기술에 불과하다. (115) 

흥미, 관심, 연구...
나는 흥미는 많으나 연구엔 관심이 적다.
뭐, 그것도 그것대로 좋은 삶이라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은 연구는 아니니 말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남도 똑같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믿으며,
양심적인 사람은 남도 다 그런 것으로 알고 처신한다.
우리가 처세에서 실패하는 큰 원인의 하나가 여기 있다.(158) 

우리가 괴물과 싸울 때 가장 두려워할 일이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남도 다 나와 같을 것이라 착각하고 살면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성장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167) 

허균의 '호민'이나 마찬가지 이야기다.
가난한 사람은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억울한 사람은 저항한다. 

물질적으로 성장할수록, 억울한 사람이 늘면, 건강한 사회는 썩는다.
변증법적으로 그런 사회는 부정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마음 한켠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왠지 서럽고, 
대접받지 못하고 늘 쫓기듯 사는 내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못하지만 허둥지둥 사는 내가,
서럽고 안쓰러웠던 모양인데,
좋은 말들은 그런 안쓰러움 위로 살포시 눈이 되어 내려 덮어준다. 

고고함이란... 이렇게 살짝 눈발이 내린 북한산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그렇듯, 이 책의 글들은 고고하면서도 지적이고, 교훈적이면서도 명상적이다.

고고
      김종길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 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化粧)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新綠)이나 단풍(丹楓),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薔薇)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變質)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白雲臺)와 인수봉(仁壽峰)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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