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베할라 - 누가 이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앤디 멀리건 지음, 하정임 옮김 / 다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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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베할라에도 인간은 산다.
필리핀의 한 도시에서 일어난 부정부패와 그를 둘러싼 활극이야기다. 

꼬마들은 경쾌하고 약삭빠르며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이다.
밀려드는 공포를 이겨낼만큼 충분히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반면 추악한 어른들은 돈이 없으면 아무 힘도 없는 약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힘차게 이끌어내는 것은 시점의 변화다.
지갑을 줍게 되는 라파엘의 관점, 그 친구 가르도의 관점,
범죄지능 최고단수인 래트의 관점을 넘나들면서 사건은 동력을 얻게 된다. 

물론 이야기가 비약이 심하긴 하다.
아이들 앞엔 언제나 홍해가 갈라지듯 해결책이 손들고 나서고,
위험따위는 사소하게 치부해도 좋을 정도로 부패는 멍청하다.
현실 속의 부패는 치밀하고 성실하기 그지없는데도 말이다.   

이 나라에선 어리석어도 값을 치르고 가난해도 값을 치러요.(135)  

가난뱅이들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어리석고 가난함의 대가로 인생이라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상원의원 자판타는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긁어 모아 지하 금고에 모으지만,
그의 더러운 돈을 훔쳐내려는 하인으로 가장한 호세 안젤리코에게 털리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타락한 현실과,
긍정적 에너지의 대립이 밀도있게 스릴러를 꾸며가는 이야기 속에서,
어린 아이들의 삶의 지혜도 깊은 신뢰감을 가지게 한다.
지혜는 책에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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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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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은 뛰어나다.
그의 뛰어난 점은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꼼수다, 란 프로그램과 이 책을 통하여 보게 된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장점은,
한국 사회의 정치가들이,
특히 진보 정치가들이 국민이 알아먹지 못하는 자기들만의 방언으로 주절거린다는 한계를 가져 대중성을 잃을 때,
김어준은 '무학'의 정신으로 누구나 알아먹을 수 있는 말로 풀어주고 요약해준다는 데 있다. 

그의 무학은 그 자신이 학력이 부족함을 뜻하진 않는다.
그는 배운 사람의 용어로 국민을 '계몽'하려는 진보 정치가들에게는
왠지 '재수없음'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싸가지 없다는 소릴 듣는 유시민과 진중권이 그런 케이스일 거다. 

김어준의 코멘트야 말로 예의 범절이나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
씨바, 졸라는 정겨운 감탄사와 부사로 승화되었고,
방송의 절반은 컥컥거리고 웃는 소리로 때운다.
그렇지만, 그의 방송의 최대 장점은,
옆에 앉은 게스트나 정봉주, 주진우의 장황한 설명을
적절한 대목에서 '스무 자 이내'로 요약해 내는 데 있다. 

이적지 이렇게 '무학의 설명'을 간명하게 내린 정치학자는 없었다.
그가 내세우는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한겨레 21이나 시사IN 같은 취재보도 주간지들에 늘상 등장하는 것인데,
이런 진보잡지들의 가장 큰 약점은 그 매체를 볼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나 읽고 앉았다는 데 있다.  

인간이 없는 진보가 어떻게 진보야, 진보도 강박이 되면 진상 되는 거라고...(212) 

정치는 연애와 같다.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다.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이라며.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데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뭔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원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조건과 대출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내리지.

그렇게 연애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 놓는다는 거.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는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들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 버리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택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 

노회찬은 "삼겹살 굽는 불판을 갈아야 한다."는 대중언어를 구사한 진보정치인이었다.(213)

김어준은 현실 정치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 가카께 무한 감사를 느낀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 끼어들 틈입 지점을 누구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시대의 아픔을
라디오 방송이라는 그것도 스티브 잡스의 은혜를 입은 아이폰의 시대를 틈타서,
나는 꼼수다라는 희대의 인기 프로그램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나꼼수는 언론 통제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알기 쉬운 언어로 정치의 맥을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의 다양한 계파와 인맥이 보여주듯,
한국 사회의 구조는 역사의 물결이 흔적을 남겨 놓았다.
70년대 유신의 잔재부터, 80년대 개발독재의 잔재까지...
80년대 저항의 문화와 90년대 혼란의 문화가 오롯이 흔적으로 남은 것이
21세기 한국 정치의 지형인 것인 바,
박영선, 박원순, 홍준표도 찍소리 못하고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는 방송.
그렇지만 정말 궁금한 것은 파헤치고 마는 방송. 

이것이 나는 꼼수다의 최대 특장이다.
닥치고 정치가 계속 1위를 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것은 부가적 기능밖에 못한다고 본다.
일단 방송에 입문한 사람들은 계속 자가 발전을 하여 정치에 관심을 가진 존재로 진화할 것이고,
김어준, 김용민, 정봉주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통하여 조금 더 맥락을 깊게 읽을 정도의 보조 교재로 보인다. 

5개월 남은 총선과 12개월 남은 대선에서 어떤 꼼수가 등장할지,
그 꼼수를 어떻게 해석하면서 <쫄지 말아야> 이길지,
국민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매체를 가졌다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그 방송이 근엄하거나 비장한 맛은 하나도 없고,
유쾌하고 경쾌하고 통쾌하고 명쾌한 방송이니 그 방송의 힘은 무궁무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유수 대학원들에서 특강까지 잡혀있다고 하는데,
정봉주 전 의원의 여권을 안 내주는 웃기는 꼼수까지 등장한다.
국제적으로 인권을 탄압하는 표본이 되는 사건이 되시겠다.  

눈을 깔고 있는 김어준의 모습과 검은 넥타이(노빠로써의 근조란다.)도 포스가 느껴지지만,
일단 읽고 보면 김어준의 논리적 전개의 배경에는 치밀한 사실들이 배경으로 깔려있고,
소설처럼, 사건의 인과관계를 엮어내는 그의 힘은,
저들이 그토록 감추고자 하는 사건들의 고리를 일거에 명약관화하게 드러내는 파워가 있다. 

제목도 '닥치고 정치'라니 참 잘 지었다.
우석훈처럼 명랑을 입에나 달고 사는 사람들에 비하자면,
박원순처럼 권위를 팽개친 지식인이거나,
김어준처럼 애초에 권위따윈 없었던 지식인이 인기를 끄는 시대를 산다는 것에 희망마저 느낀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까지 묻는다.
"선생님, 최효종이 고발당했다는데요..."
아, 강용석, 그 사람 웃긴 사람인데, 그 배경을 나꼼수를 통해 알고 있으니 재밌게 이야길 나눌 수도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일반적으로 '혐오감, 피로감'으로 남기 쉽다.
디테일한 뒷이야기들을 모두 찾아 읽고 나만의 구도로 사고를 정리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유쾌하게 쌈빡하게 정리해주는 방송, 무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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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군산복합체를 '군사복합체'로 쓴 곳이 있습니다.
김용민 피디님, 주국을 조국으로 바꾼 거만 방송하지 말고 이거도 고쳐 주세요~^^ 

212. 동변상련... ㅋㅋ 똥이 같으면 서로 안타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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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1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샘님, 마지막 한 줄 때문에 아침부터 웃음보터져서
꺼이꺼이꺼이 거의 흐느끼다 갑니다요. ^^

글샘 2011-11-18 17:12   좋아요 0 | URL
음, 알라딘 수준이 동변상련 정도군요. ㅋ
그동안 제가 너무 수준높고 심도있는 리뷰를 올린 것 같아 반성하고 있습니다.

pjy 2011-11-1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변상련~ㅋㅋㅋㅋㅋ어쩌란말입니까^^

글샘 2011-11-18 17:13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정말 어쩌라구요. ㅎㅎ

saint236 2011-11-1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정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다는 거죠. 만화책 읽듯이 술술술...마지막 줄은...ㅋㅋㅋ

글샘 2011-11-18 17:13   좋아요 0 | URL
수정하면 김용민 목사아들돼지 피디님이 말해 주시겠죠?

마녀고양이 2011-11-1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제목 참 잘 지었어요...
최근에는 방송도 못 들었는뎅... ㅠㅠ.

이 책 지난번에 만지작거리다 스케줄에 밀려 못 샀는데, 오늘 나가는 길에 사서 봐야겠어요.
알라디너 몽땅 한번씩 읽으시는 책인듯~

글샘 2011-11-18 17:14   좋아요 0 | URL
저도 조금씩 방송 듣는데, 끊어가며 들어도 재밌더군요.
요즘 이 책이 인기가 좋습니다. 읽어 보세요~!

순오기 2011-11-1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며칠전 받았는데 나꼼수 매니아인 남편이 먼저 읽는다고 챙겨갔어요.
처음 몇 장만 봤는데도 빨려들었어요.
꼼꼼한 글샘님한테 걸려들었군요, 동변상련~~~ ㅋㅋㅋ

글샘 2011-11-18 17:15   좋아요 0 | URL
닭, 꼬꼬!
치고, 퍽@ㅜ@
정치...
저한텐 왜이리 오타가 잘 뵈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양장)
김려령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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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이들의 동화로만 취급하기엔 어른의 상처까지 어루만진다. 

주인공 오명랑 작가는 생계적 사유로 책읽어 주기 과외를 시도한다.
모이는 고객은 단 세 명.
남매와 작가지망생 여학생 한 명. 

건널목 아저씨와 이웃들 이야기를 읽어주는데,
중간 부분부터 엄마가 태클거는 대목을 거치면서,
왠지 자전적 소설일 것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상처투성이인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의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일도 흐뭇하고,
작가 오명랑이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는 일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완득이에서 기도발을 내세우는 대목이 웃기듯,
이 책에선 제자의 어머니에게 뒤통수를 부탁하는 대목이 웃긴다.
김려령의 롱런을 위하여 꼭 한 번은 거쳐야 할 징검다리였을 듯 싶다.
이 책이 작가에게는 큰 마음의 감기약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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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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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와 이주은이 그림을 두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세대 차이가 나고,
전공이 동서양화로 다르고,
감성이 다른 두 사람의 글을 오가며 읽는 일은 마치 연인의 편지를 엿보는 듯한 설렘을 주는 듯 하다.
글의 어디에도 쓴 사람의 이름이 없어서,
어디가 다를까를 찾았다. 색깔이 달랐다.
손철주는 초록으로, 이주은은 보라로... 

자고 나면 날마다 빈 화폭과 마주서는 자들은 고통 속에서 복되다.
빈 화폭은 귀순하지 않은 자유의 황무지이다.
그 화폭은 인간의 세상 속에 펼쳐져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빈 화폭은 아직 경험되지 않은 낯선 공간이고 태어나지 않은 의미의 잠재태이다. 

그 잠재태의 공간이 인간을 손짓해 부른다.
빈 화폭은 그 안에,
살아있는 인간의 흔적을 담아서 이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빈 화폭은 의미나 빛이 발생하기 이전의 우주 공간을 유동한다.
화가가 붓을 들어서 그 화폭에 맨처음 붓질을 할 때,
화폭은 인식 가능한 인간의 영역으로 돌연 바뀌는 것인데,
그 자유의 공간에서 인간은 부재하던 것들을 불러들이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김훈의 서문에서) 

김훈의 서문도 멋지다.
그림이 화가와 맺는 관계를 '복됨'과 '고통'의 역설법으로 표현하면서,
빈 화폭이 그림이 되는 '텍스트성'을 부재에서 존재로, 우주 공간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표현이 멋있다. 

손철주의 말맛은 이미 정평이 난 바이고, 이주은의 삶의 이야기들은 아기자기하다.
아직 글맛이 제대로 그림을 품고있지 않지만, 손철주의 리드에 이주은은 성실하게 화답하고 있다. 

'그리다'는 움직씨이고 '그립다'는 그림씨입니다.
'묘사하다'와 '갈망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지요.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됩니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어디서 옵니까. 아무래도 부재와 결핍이 그리움을 낳겠지요.
없어서 애타고 모자라서 안타까운 심정이 그리움입니다.
그리워서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은 부재와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일 테지요. 

보는 이도 그립디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그립습니다.
그래서 공감합니다. 공감은 그린 이와 보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일어나는 작용이겠지요.(손철주 프롤로그)

 허구헌날 '색즉시공'의 세상에 붓질을 하는 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손철주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음미하고 싶은 것은
배가 부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풍부하게 해주는, 그래서 다 먹고 난 뒤에도 혀로 입맛을 다시게 되는 그런 맛.
그림도 그렇게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신선하고 순결한 과일로 술을 만들어 건조한 우리의 일상에 촉촉함을 선사했던 바쿠스의 포도주처럼...(이주은 프롤로그) 

이주은은 건조한 삶에 바쿠스의 포도주를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한다. 

글을 읽으면서 두 저자와 나와 셋이서 포도주를 흠뻑 마신다면 어떨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의 '소울 푸드'는 '소주'이지만, 이주은이 포도주 이야길해서 주종은 불문하고 따르기로 했다.
나는 포도주를 음미하지 않고 훌쩍훌쩍 마시고 앉았는데,
손철주 선생이 능청스러우면서도 청승맞은 그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대작을 한다.
옆자리의 이주은 선생은 마른 몸매 그대로 술도 깨작거리면서 잔만 들었다 놨다 시늉만 하다가 손선생 이야기에 간혹 끼어들곤 한다.
알지도 못하는 푼수에 이런저런 주워들은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나를 보면서 손 선생은 장단을 맞춰 준다.
둘이서 마시는 술에 그림 이야기는 점점 깊어가지만, 이 선생은 말똥말똥 우리를 보다가 홀짝대다가 시계를 보다가 한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의 시작은 엄숙했다.
와이어스의 '결혼'을 이야기하면서 '앙드레 고르'의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가 등장했으니 말이다.(D에게 보낸 편지) 
거기 덧대 손 선생이 술잔을 기울이며 한 소리가 이인상의 와운이다. 병약한 이인상은 네 자식이 모두 참척을 당하고 아내도 먼저 죽는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은 하염없이 기울어진다. 

나이 불문, 자리 불문하고 남녀가 어울렸을 때는 러브 스토리가 또 술안주라.
목마른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손 선생이 '서생과 처녀'의 애절함을 시조에 얹어 노래한다.
사람이 사람 그려 사람 하나 죽게 되니/ 사람이 사람이면 설마 사람 죽게 하랴/ 사람아 사람 살려라, 사람 우선 살고 보자. 

이 선생은 일본의 분분한 낙화 그림과 더불어 그리스 신화의 데모폰 이야기를 뒤섞었지.
오랜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데모폰은 필리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집으로 갔고, 기다리다 지친 필리스가 고통과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리에 피어난 아름드리 아몬드 나무, 그 나무를 끌어안고 '미안해, 미안해'하며 입을 맞추자 울음을 터뜨리듯, 봇물 터지듯 아몬드 나무에서 꽃잎에 돋아나는 반고호의 '아몬드 나무' 이야기까지, 

와이어스의 '비상'을 들면서 이 선생은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 선생처럼 공부 잘한 사람은 모른다며 손선생은 조선의 풍류로 넘어간다.
풍류 하면 주류 불문, 안주 불문, 원근 불문... 술이 빠질쏘냐.
오늘도 좋은 날이 이곳도 좋은 곳이/ 좋은 날 좋은 곳에 좋은 사람 만나 이셔/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놂이 좋아라.
이렇게 시조로 주흥을 돋우는 거다. 

술에 불콰하니 취하면 늘 나오는 손 선생의 버릇은 능호관 이인상 얘기다.
절벽에 바싹 붙어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교목 아래 늙은이.
벼슬을 매양하랴 옛 산에 돌아오니/ 구릉에 솔바람 더러운 내입 다 씻었다/ 솔바람아, 세상 기별 오거든 불어 도로 보내라
손 선생과 마시는 한 잔은 칼칼하다. 

포도주 홀짝이던 이 선생도 삘 받았다. 시조는 없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한 구절~
Is this the real, is this just fantasy? 이거 장주여, 나비여? 킬킬대며 멋지다고 건배 한 잔! 
Mama~ just killed a man... mama, life had just begun, but now 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 사고치고 나니 삶이 뭔지 고민 되네... ㅍㅎㅎ 역시 어른이 되긴 어렵죠?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일은 역시 한 잔 마시고야 들이닥칠지도... ㅋ 만취 담날 깨어나는 게 장주의 꿈 같을라나 ㅎㅎ
풀린 눈에 보여주는 조지 베레스포드의 '버지니아 울프'는 왠지 삶을 슬프게 느껴지게 한다.
이건, 술의 힘인지, 예술의 힘인지...  

나랑 띠동갑 손 선생과 나보다 세 살 아래 이 선생과 나이 이야기로 접어드니,
늙었다 물러가자 마음과 의논하니/ 이 임 바리고 어드러로 가잔 말고/ 마음아 너란 있거라 몸만 먼저 가리라
하면서 손 선생 또 늙은 티를 낸다. ㅋ 
윤두서의 바위에 기대 달을 보는 노인 그림 이야기는 곧장 이백의 '월하 독작'을 떠올린다. 

이 선생은 프라고나르의 '사랑의 샘물'에 얽힌 이야길 한다.
이 샘물을 맛보면 갈증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다.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만큼 고통스런 게 있을까. 나이 먹을수록 갈증은 더해지는 모양이다. 

행복을 이야기하다가 김득신의 성하 직리를 보여준다.
시골집 낡은 질동이보고 비웃지 마소/ 거기에 술 거르며 아들손자 다 길렀네
은주전자에 술 따를 때 부럽겠지만/ 취한 뒤 대 뿌리에 자빠지기는 마찬가지. ㅋㅋ
음주 예찬을 떠드는 우리를 흘겨보면서 이 선생은 '빵 굽는 사람'의 고소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예'에서 느껴지는 순종적 질서와 '기타 연주자'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외로움 사이 어디엔가에 행복은 줄타고 있을는지...
아슴한 이 선생 금세 울 거 같다. ^^ 

손 샘은 술 좀 되더니 드디어 음양산수도 얘기를 꺼낸다. 삐뚤어져 보자는 거삼? ㅋ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러 가노라, 반쯤 피었을 때
아이, 손샘, 옆에 이 선생 앉았구만...
대쾌도와 유곽쟁웅 얘기하면서 술 좀 깹시다.
술깨는 데는 남들 쌈 구경이 제일이라. ㅎㅎ 

일탈에 대해서 이 선생, 소심하긴 ㅋㅋ 무작정 물가에 철퍽 주저앉는 작은 일탈에도
옷이 젖으면 어쩌지, 속옷이 젖으면 어쩌지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속수무책이란 네 글자가 해답이 될 수도 있다고요?
아이고, 이선생... 완전 범생이같은 이야기고만 ㅎㅎ (손 샘, 2차는 아무래도 우리 둘이 가야겠어 ㅋㅋ) 

취미, 취향 이야기에도 손 샘, 계속 음란하긴...
어느 해 선녀가 한쪽 젖가슴을 잃었는데/ 어쩌다 오늘 문방구점에 떨어졌네
나이 어린 서생들이 서로 다투어 어루만지니/ 부끄러움 참지 못해 눈물만 주룩주룩(무릎 연적)
무릎이 아니었구만... 헤헤... 어이, 보쇼, 이 선생 얼굴 빨개졌구만 ㅎㅎ, 뭐? 포도주 땜이라고 ㅎㅎㅎ 

이런, 이 선생.. 취미가 만화 그리기였다굽쇼? 우아하긴...
근데, 아, 손 선생... 점입가경이올시다.
금준에 주적성과 옥녀 해군성이/ 차양성지중에 어느 소리 더욱 좋으리/ 아마도 월침삼경에 해군성인가 하노라
아, 금잔 술따르는 소리와 미녀의 고름푸는 소리가 뭐가 좋냐구요... 달빛 비치는 한밤중 치마 고름 푸는 소리라니...
야해, 야해... 상상력이... ㅎㅎ 봐요, 이선생 뾰루퉁 해졌다구요. 책임져!!  

근데, 손 선생, 이제 아무도 못 말리겠구랴. 에라, 나도 모르겠다.
임제와 한우 나왔으면 갈데까지 간 거요. 이제 곧 종점이외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 비 온다/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임)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한) 

ㅋㅋ 질펀한 사랑 이야기 했더니 이 선생도 끌고 나온 게,
봐요, 소녀 취향이라니까는... 큐피드와 돈 후앙 정도라니깐...  

술 취하여 엄마 이야기가 나왔는데,
손 선생, 엄마 이야긴 냅두고, 할애비 손 잡은 허난설헌의 그림 얘길세.
이제 손자 귀여울 나이신가 ㅎㅎ
엥, 근데 웬 땡중 그림? 이를 잡는 데 왜 엄지와 검지가 아니라 검지와 중지?
아, 미물에 대한 사랑이라굽쇼? 헐, 술 다 깨는 한 소식을 듣는구랴. 

이 선생, 역시 엄마는 엄마군요. 부엌에 있는 여인이란 안나 안처의 그림은 환한 등불 같아요.
그리고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오르막길'은 영락없는 이 선생 만화 취향이라니까요. ㅎㅎ 놀려서 미안. 

자, 이제 오늘은 이걸로 마치고, 손 샘, 우리끼리 2차로 간단하게 맥주 한 잔! 

에이, 손 샘, 2차왔는데 개구리와 달팽이 그림 한 장이라니요.
흐리멍텅한 정신과 풀어질대로 풀어진 육신을 만든 이유는 바로 이거죠.
딱 하나, 세상을 복잡하게 볼 필요 없다는 거.
삼세제불 일구탄이라뇨.
전생 금생 내생의 부처들을 한입에 삼킨 개구리라니...
아무리 뜻이 중요하다지만,
인생에서 허접한 것들은 줄이고 줄여서 '감필'해야 한다지만,
부처를 다 삼켜버린 당신, 이제 집에 갈 시간이우. 

손샘, 저기 택시 옵니다. 빠이빠이, 끅~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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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11-1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김훈과 손철주만 골라 편식하듯 읽었어요.
이주은은 뭐랄까...
자기가 가진 음식의 본맛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상대의 음식도 깨작깨작하는 느낌이었어요.
영혼을 나눈다는 닭고기 수프가 되더라도 이주은과는 같이 하고 싶지 않더라구요~ㅠ.ㅠ

서울은 쫌 추워요.
이 리뷰 읽으니, 이따 저녁에 뜨듯한 국물에 소주 한잔 해야겠어요~^^

마녀고양이 2011-11-15 23:44   좋아요 0 | URL
또 술마시게? 음, Y양 술꾼되려구 그러시나? 홍홍.

글샘 2011-11-16 09:32   좋아요 0 | URL
남쪽 지방은 덜 춥답니다. ^^
저는 아직도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서 해롱거리고 있어요. ㅠㅜ
아, 뜨끈한 국물 생각납니다.
이주은은 뭐랄까... 쫌 그렇죠. ㅎㅎ

마녀고양이 2011-11-15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이런 페이퍼는 곤란하단 말이예요!
제가 요즘 술을 멀리하는데다,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못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술 한잔이 너무나 그러워지는 페이퍼, 이런거 정말 슬프단 말이예요!

거기다, 서울에서 일산까지, 또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요즘 택시비가 얼만줄 아세요! 흑흑.

글샘 2011-11-16 09:34   좋아요 0 | URL
저도 왜 이런 음주 페이퍼를 썼는지 모릅니다만,
손 선생님 글이 그렇더라구요. 술 마시고 수다떠는 것처럼요. ㅎㅎ
술 마시면 택시비 따윈 걱정하지 않는 대인이 되죠.
 

 

베스트셀러 1,2,4위가 김어준, 김용민, 정봉주일세... 

암튼, 대단한 기세다. 

그나저나, 조국현상을 말한다... 아직 조국은 때가 아닌가벼~  

주진우 기자는 분발 바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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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1-11-15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나죠. 나꼼수 출연자들의 책 판매지수가... ^^ 종교화되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포맷입니다.

글샘 2011-11-15 14:44   좋아요 0 | URL
<광신자들>이 보는대로입니다. ㅋㅋ
뭔 이런 잡스런 방송에 이렇게 인기가 끓는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페크pek0501 2011-11-1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치고 정치를 찜해 놓았어요. 제목 끝내줘요. ^^

글샘 2011-11-17 10:55   좋아요 0 | URL
김어준 다운 발상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