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미래 -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
노무현 지음 / 동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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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무현이 인기를 잃자, 한나라당은 내홍을 앓던 끝에 친이계가 승기를 잡고,

2007년 대선 승리, 2008년 뉴타운 공약에 힘입은 총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렇지만, 이명박의 지나친 친미 퍼주기로 08년부터 바로 촛불의 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 촛불의 배후로 민주주의자 노무현 죽이기를 실행에 옮긴다.

 

2008년 퇴임 이후,

노무현은 경남 진영 봉하마을이란 조그만 공간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노무현은 물론 실패한 정치인이다.

권력 재창출이 정당 정치의 목적이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죽고, 새로운 현상이 생겼다.

대한문 앞에서 시민이 상주가 되어 눈물의 국장을 치렀고,

봉하 마을 순례객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대선의 시즌이 돌아왔다.

통합민주당은 이제 다시 한명숙, 문성근의 친노가 앞장서고 있고,

통합진보당도 유시민처럼 친노의 적자가 앞에 서 있다.

 

노무현이 현실 정치인으로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크지만,

현실 정치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고통이 더 크다.

 

그러나, 그는 멀리 보았던 사람이었다.

새로운 민주주의 세상을 위하여, 쉬이 오지 않을 그 날을 위하여,

그는 이런 교과서를 쓰고 있었던 것인데,

정치 검찰과 파렴치한 정권은 그를 파국으로 몰아 넣고 만다.

 

이 책이 감명깊은 것은,

맨 앞에 그가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분이다.

한국은 왜 아이를 낳지도, 입양하지도 못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는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세상을 <국경은 무너지고 주권은 제약된다>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과연 그러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국가 내 불평등조차 극심하다는 데 있다.

법의 위에 선 재벌들과 서민들의 정서는 '서로 다른 에스컬레이터'를 탄 비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진보'와 '진보 단체'의 진보는 개념상 혼선이 짙다.

그러나, 진보와 수구, 민주주의와 욕망의 개념을 어디에 두든,

아이들의 행복을 염두에 둔다면,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부실한 하드웨어 탓에 '렉'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교육 분야에서 'NEIS'라는 행정적 렉이 걸렸다고 해서 교육개혁의 청사진 자체를 펼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크다.

 

노무현이 살아있었다면...

그의 청사진이 조금이라도 더 상세히 그려진 상태에서 다음 대통령이 정책을 수행한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사실 지금 친박쪽이나 통합세력 쪽이나 정권 획득에만 눈이 멀었지, 정권 창출 이후에 대한 그림은 미약하다.

2030년 정도까지는 내다보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일을 하려던 사람이 노무현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미국의 입장에서도 제거해야할 걸림돌이 맞다.

 

다음 대통령은,

제발 이런 책들을 서가에 꽂아 두고 고민하며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나라'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제발, 김어준처럼 얄궂은 인간들의 '괴담 파일'이나 들으며 다음 선거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불행한 국민을 양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 따위야 얄궂은 너희들에게 다 맡겨 둘테니,

우린 그냥 아이들 기르며 즐겁게 살기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대통령은,

제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감명 깊게(?) 읽지 않으시는 분이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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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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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치적 디테일을 잘 모른다.

예전에 신동아 같은 잡지에서 주로 다루던,

정치권 인사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고 그래서 모른다.

 

노무현이 대통령하던 시절, 문재인이란 사람도 몰랐다.

그러다 2009년 5월 23일. 문재인이란 사람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노무현이 비서실장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었고,

지금 안철수 다음으로 대권 후보로 지명도를 얻은 사람이다.

 

이 책은 몇 자로 요약하면 이렇다.

문재인의 운명은 노무현을 만나기 위하여 지침이 정해져 있었고,

노무현을 통해 세상의 큰 힘을 쏟을 수 있었고,

노무현의 죽음을 거쳐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2라운드다.

몹시 지쳐있음을 이 책에서 알 수 있지만,

차기 대권 후보로 유력한 현 시점에서 그가 물러설 곳은 없어 보인다.

 

안철수, 박경철과 문재인은 어쩌면 정통 정치인 스타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노무현의 카리스마와 독단적 행동처럼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태도로 밀어붙일 힘이 적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 안,박,문 같은 사람들이 한국 정치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이적지 너무도 많은 자들이 독단적인 잘못들을 저질러서 권력 창출에 실패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치야말로 블루오션임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래에 희망을 갖게 만들고,

열심히 살면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도록 국가가 돌봐주고,

그래서 국민은 열심히 애기 기르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가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그러나, 한국처럼 외세와 시류에 의존적인 국가임에랴...

쉽지만은 않은 일이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현실 정치의 어려움에 대하여 이해심을 갖게 된다.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대통령일 땐,

이런 여유로운 관점의 정치 서적이 없었다.

괴물과 치열하게 싸우노라면,

어느덧 함께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

 

격동의 2012년.

문재인의 거취가 어떻게 정해지든,

이 책은 한국 정치사가 어떻게 흘러왔던지를,

최근의 현대사를 바라볼 수 있는 정치교과서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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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 청소년을 위한 소설 창작 강의
이문영 지음 / 우리학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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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은 내면의 열기가 뜨거워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버스를 타면 중년들은 창밖을 보는 대신,

청소년들을 만화를 보거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뭔가를 써보게 할 수 없을까?

청소년들은 분명 가슴 속에 한가득 담긴 것이 있을 거다.

덩치는 어른만 한데, 취급은 꼬맹이 취급이니...

 

그리고 독특한 사회에 살아가는 청소년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올라가야 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빨리 뛰라고 요구한다.

그렇지만, 제각기 걷는 속도가 다른 아이들에게 부담은 크다.

 

한때, 자기 표현의 하나로 사이월드가 인기를 끌었지만 그것도 시들하다.

컨텐츠의 부족을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시간이 적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은 카톡의 세상에 빠져있다.

아이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줄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한다면,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다양한 사례 중심으로 글을 쓰지 않고 이 책처럼 원론적 이야기가 많다면,

꼰대라고 재미없다고... 툴툴대는 소리 들을 각오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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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 포스트 글로브 시대의 철학 에세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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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될 때, 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처럼 시끌벅적 하더니...

9.11과 온갖 더러운 전쟁으로 세상은 오염되었다.

 

문은 열리기 위해 존재하는가? 닫히기 위해 존재하는가?

 

21세기, 글로벌 빌리지는... 과연 열린 사회인가?

한미 FTA는 과연 프리하게 트레이드 하도록 열어둔 어그리먼트인가?

아니면, 자본의 흐름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닫힌 알고리슴을 가진 닫힌 사회인가.

 

철학자는 다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여주는 사람이다.

미운 오리는 오리 세계에서 '왕따'였다.

오리 사회는 닫힌 사회다.

그가 백조임이 밝혀지고 그를 받아들이는 백조의 세계도 닫힌 사회다.

21세기 한국의 화두가 '왕따'가 된 것은, 한국 사회의 닫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사회는 꽁꽁 닫혀 있다.(일본 역시 비슷할 것이다.)

성글게 구멍 투성이인 '소통'의 자리는 '회식'문화를 빙자한 새로운 닫힌 구조를 양산한다.

 

<문화적인 것>은 삶에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책은 '양서류같은 책'이라고 한다.

'사이'는 두 가지가 있다. inter와 intra...의. 공간적, 물리적 사이와 관계적 환경적 사이의 차이.

새로운 물결로 규정되던 '제3의 물결'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제2의 물결의 부분적 파장에 불과한 것.

 

제3의 물결이 오지 않은 자리를 차지한 것은 <욕구>였다.

 

복제되는 것이 예술이 되는... 미적 인식의 패러다임이 변화된다.

권력은 '정치'에서 '문화와 경제의 결합'으로 옮아 간다.

'정치'적 대통령은 희화화의 대상이 되지만,

'문화와 경제'의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관조'의 미를 '소유'의 미로 기준 자체를 바꿔버린다.

내가 사입어야 '미'다.

기능에 플러스 알파가 있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척도다.

그래서 '명품백'이 불티나게 팔리고,

아이들의 '노스페이스'가 교복이 되어버리는 것인 모양이다.

 

텔레비전에서도 <닥치고 본방 사수>의 닥본사 부대가 생긴다.

어린왕자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유의 인간, 문화적 비자유

 

유토피아...는 유... 없다는 뜻... 플러스 토피아 ... 장소(곳)의 의미다.

이와 상대적 개념으로

유크로니아란 용어를 사용한다.

유... 없는... 크로니아... 시간... 이상시... 이상적이라 여기는 시간.

 

인간은 노예에서 해방되어가지만,

선진국이 될수록 장시간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지만,

그 해방된 인간이 가는 곳은 <비자유의 공간>인 <문화 공간>이다.

바로 텔레비전이고, 상품 시장인 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비밀.

김용석은 <돌쩌귀의 비밀>을 들려준다.

 

열기/닫음을 가능하게 하면서 표가 나지 않게 하는 돌쩌귀.

기축의 기능을 가질 뿐, 통제적 기능을 가진 중심에 있지 않은 돌쩌귀.

 

그러나, 새 시대의 <문화>는 여닫을 때마다 자신에게 힘이 실림을 고스란이 감내하는 돌쩌귀처럼 세상의 중심축을 지지하고 있는 아틀라스가 되어가고 있다.

 

정치를 까는 것도 예전처럼 광장에서 촛불만으론 안 된다.

물대포, 연행만으로 시민을 옭아맬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팟캐스트에 올려둔 파일 하나가,

스티브 잡스 형님 덕에 가카의 치부를 홀라당 빨가벗겨 버린다. 그게 새로운 문화다.

 

<문화는 새로운 돌쩌귀>다.

어떻게 건강한 문화를, 인간적인 문화를 만들 것인가.

이상적인 시대를 기획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 기획의 중심에 서야하는 것은 미래를 살아가야하는 '나'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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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1-21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나왔던갓 같은데 다시 나온건가요?

글샘 2012-01-21 10:02   좋아요 0 | URL
네. 한 10년 전에 나왔던 걸 하드커버로 냈네요.
 
파리의 우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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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악의 꽃', '내면 일기'나 이 책 '파리의 우울'을 그냥 읽으면 좀 어리둥절 하다.

도대체 그 당시 작가들의 머릿속에선 어떤 사고 기제가 작용하였기에 이런 글들을 마구 적어대고 있는지...

그림이 환하게 그려지지 않아서다.

보들레르의 시대를 읽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사를 공부해야할 것인데,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섬세한 해제를 붙여두고 있다.

 

글마다 붙어있는 해제에서는 보들레르의 다른 시집에서 다루고 있는,

유사한 소재, 유사한 주제가 담긴 작품들을 나란히 실어 두고 있어서 독서에 도움을 준다.

 

겉모습은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만, 속물적인 사고로 가득한 여자들에 대한 그의 혐오는 정말 시니컬하다.

 

<마음을 털어 놓고> 하는 이야기에서 그의 여성 경멸은 대단하다.

여성의 무감각과 정신성의 부재를 대놓고 깐다.

이런 것을 두고 여성비하론자라고 비판할 순 없다.

그것이 그의 시대였고, 그 시대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사회주의 문학관에서 내세우던 것이니 말이다.

 

<시는 도덕과 독립되어야 한다>는 말은 의미있다.

시가 가진 세계는 인간의 내면의 반영이므로,

신과 사탄의 세계를 향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니, 도덕성의 잣대를 거기다 들이대는 일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키마이라(괴물)를 등에 짊어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잔인한 짐승에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 기묘함>을 가진 존재라고 읽는다.

 

그는 '나선과 포물선, 나사와 만화경'라든가, '갑자기 던져진 조약돌의 파문' 같은 선을 좋아한다.

그 선들은 유연하면서 충분히 거친 불협화음의 욕구의 세계를 감지하는 자신의 마음과 어느 지점에선가 교차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속한 물질주의와 거짓 자만심, 비겁으로 가득한 인간의 세계에 침을 뱉는 보들레르의 글에선,

위선, 인간의 무지가 드러나는 낮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정적, 휴식, 고독이 드러나는 밤이 인간의 내적 성찰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으로 느낀다.

 

아, 별 수 없는 개새끼. 배설물 꾸러미나 좋아하는...

너 역시 대중과 다를 바 없다. 그들에게는 절대로 은은한 향수를 줘서는 안 된다.

오물이나 잘 골라 주면 된다.

 

속된 대중의 성향을 애완견에 빗대었다.

<악마>의 이미지를 띠는 보들레르의 시들은,

충동적인 패덕성과 불건전함의 매력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영화에서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말이다.

잔인함의 극치를, 더럽고 비겁한 인간의 형상화를 갈데가지 가도록 만드는 데서,

우리는 '관음증'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런 것이 예술임을, 예술은 인간의 내면 세계를 환하게 밝혀서 자유를 던져주는 것임을,

보들레르는 '유리장수'에 대한 폭력적 언설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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