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시인선 15
장석남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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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복이란 말이 있다.

맑을 청에 복 복. 淸福.

재물이나 부귀영화로 인한 세속의 복을 '열복 熱福'이라고 하는 반면,

부귀영화의 끄달림에서 벗어난 조금 외롭지만 높고 쓸쓸한 서늘함에서 느껴지는 복이 청복이다.

 

장석남의 마음 나비가 이즈음 청복에 붙어 앉은 느낌이다.

 

오늘 나는 가난해야겠다

그러나 가난이 어디 있기나 한가

그저 황혼의 전봇대 그림자가 길고 길 뿐

사납던 이웃집 개도 오늘 하루는 얌전했을 뿐

 

... 거짓마저도 용서할

맑고 호젓한 가계

 

오늘도 드물고 드문 가난을 모신,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의

서걱임

壽와 福의

서걱임(가난을 모시고)

 

가난함의 남루를,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로 형상화하였는데,

그 베개의 서걱임이라...

때 낀 베개의 수와 복, 그 가 닿을 수 없는 바람의 한끝에서 서걱이는 촉감과 소리가 마음에 남는다.

좋은 시는 오래 마음에 남는 영상과 청각 영상으로 느낄 수 있다.

좋은 사람이 오래 마음에 따스한 자국으로 남아 있듯이.

 

날이 맑다
어떤 맑음은
비참을 낳는다

나의 비참은
방을 깨놓고 그 참담을 바라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광경이, 무엇인가에 비유되려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몰려온 것이다
너무 많은 얼굴과 너무 많은 청춘과 너무 많은 정치와 너무 많은 거리가 폭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밝게 밝게 나의 모습이, 속물근성이, 흙탕물이 맑은 골짜기를 쏟아져 나오듯

그러고도
나의 비참은 또 지하 방을 수리하기 위해 벽을 부수고 썩은 바닥을 깨쳐 들추고 터진 하수도와 막창처럼 드러난 보일러 비닐 엑셀선의 광경과 유래를 알 수 없는 얼굴들과 악취들이 아니고
함마를 잠시 놓고 앉은 아득한 순간 찾아 왔던 것이다
그 참담이 한꺼번에 고요히 낡은 깨달음의 話頭가 되려 한다는 사랑도, 꿈도, 섹스도, 온갖 소문과 모함과 죽음, 저주까지도 너무 쉽게, 무엇보다 나의 거창한 無知까지도 너무 쉽게 깨달음이 되려 한다는 것이다 나의 비참은

나의 두다리는 아프고
어깨는 무너진다

방바닥을 깨고 모든
堅固를 깨야 한다는 예술 수업의 이론이 이미 낡았다는
시간의 황홀을 맛보는
비참이 있었다

아직도 먼 봄, 이미 아프다
나의 방은 그 봄을 닮았다
나의 비참은 그토록 황홀하다(장석남, 방을 깨다,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중)

 

먼젓번 시집에서 '방을 깨'어 놓고,

무람히 참담함을 느끼고 앉은 남자를 만났다.

아직도 먼 봄을 이미 아파하는, 비참한 속에서 황홀함을,

비참함이란 무엇인가,

인생이 하나의 비유인 바에야...

 

이번엔 담장을 두른다.

그리고 금을 긋는다.

그의 방이 내장을 드러내 놓고 파열의 아뜩함에 맞닥뜨렸을 때, 내맘은 불편했으나,

그가 말로 두른 담장에 나는 안도한다.

내 마음이 그런 편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흰 돌멩이 처음 그 자리에 앉던 시간의 문 따고 나오는 눈빛 따스하여 나는 그걸 알뜰히 모아 새 담장을 치려 한다.

 

문은 새삼 내지 않으려 한다. (담장)

 

그의 이 글에서 새삼 무문관의 치열함을 얻는 것은 아니나,

다만, 문은 새삼 내지 않으려 한다...는 담담함이,

왜 사냐건, 웃지요...는 비루함보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그의 담장은 문이 없으나, 닫혀있지만은 않다.

이 무슨 모순된 말이냐고 나무라는 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글을 읽고 나면 이해가 갈 것이다.

 

단추를 한 다섯 개쯤 열면 돼요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그리고

근심처럼 흐르는 안개를 젖히면 그만이에요...

 

단추를 한 다섯쯤 풀면

지나던 메아리가 멈춘 듯

어디서 왔는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그 호수를 찾는 일이 (호수, 부분)

 

안갯속 호수를 찾아 나서는 길은, 생의 근원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이 존재론...처럼 덜떨어진 말로 모질게 잘라낸 강파른 단면으로는 느끼지 못할,

안개와 호수가 서로를 품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감추어 두듯,

단추는 자신의 존재를 꽁꽁 감출 요량으로 만든 것이지만,

기실 단추를 한 다섯쯤 푸는 것으로 소통의 길을 열어둘 수도 있는 일.

실존의 허접하고 찌질함에 좌절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이런 시들이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내가 얻었던 그런 위안.

안갯속에 숨겨 있어도 될 법하고,

또 한 다섯 쯤, 단추를 풀어 젖혀도 뭐, 누가 나무라랴 싶은... 그런 마음... 아는 이는 알리라.

 

그가 마음 속, 자신만의 공간을 비집어 내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 삶이란 게, 누구나 이렇게 애써 가득찬 가슴 속 매운 기운을 밀어내면서

혼자 살 수 있을 만한 공간 좀 내어보는 그런 것인지... 생각한다.

 

조감도를

그린다 눈을 감고

빛이 오는 쪽을 바라보고 그림자를

앉힌다...

 

비가

온다 빗금으로 오고 김장 청무우가 젖는다

빗물받이 홈통에 한 줌씩 내려앉는

하늘의 기별...

집은 하늘의 귀를 가져서

빗물의 고백을 빠짐없이 듣는다

이슬의 노래를 듣는다

눈보라의 독백은

오래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

별과 별자리 움찔움찔 지나간다

 

그리고

집이 빈다 숨결은

상강 후의 칸나처럼 상부의 붉은 꽃대를 놓는다...

아무 보는 이 없이 피는 꽃이

더 짙은 까닭은

아무 보는 이 없기 때문

아무 보는 이 없기 때문

 

나는 매운 재로 누워서

눈을 감고 집을 짓는다

그늘 매운 집을 짓는다(물과 빛과 집을 짓는다, 부분)

 

삶은 매운 재로 살아가다 매운 재로 스러지는 것.

매운 재의 집을 짓는 헛된 몸부림이 실존의 이유인 것.

아, 상강 후의 칸나처럼 상부의 붉은 꽃대를 놓는...

그렇지만 그는 눈물짓지 않는다.

삶의 비애(悲哀)와 비의(秘意)를 생각하면서,

아무 보는 이 없기 때문임을 혼자서 되풀이하며 마음을 한번 더 질끈 동여맨다.

 

그리고,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그대는, 잘 지내고 있는지 말이다.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이른 봄빛의 분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목이 햇빛 속에 들었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저것이 아닌기 하는 물리(物理)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그 방에도 들겠는데

가꾸시는 매화 분(盆)은 피었다 졌겠어요

흉내 내어 심은 마당가 홍매나무 아래 앉아 목도리를 여미기도 합니다

꽃봉오리가 날로 번져나오니 이보다 반가운 손님도 드물겠습니다

행사 삼아 돌을 하나 옮겼습니다

돌 아래, 그늘 자리의 섭섭함을 보았고

새로 앉은 자리의 청빈한 배부름을 보아두었습니다

책상머리에서는 글자 대신

손바닥을 폅니다

뒤집어보기도 합니다

마디와 마디들이 이제 제법 고문(古文)입니다

이럴 땐 눈도 좀 감았다 떠야 합니다

이만하면 안부는 괜찮습니다 다만

오도카니 앉아 있기 일쑵니다 (안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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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아니?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아니
조정연 지음 / 국민출판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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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지은 래미안 아파트 광고였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는 네가지 없는 구절이 있었다.

올 래, 아름다울 미, 편안 안... 여기 와서 살면 이뻐지고 편해져요~ 하고 꾀는 문구다.

 

언어는 그만큼 중요하다.

이 책은 제3세계 아이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사는지를 그려주는 책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전쟁이 일상인 나라의 아이들에겐,

굶주림과 중노동, 장시간 노동과 인신 매매, 성적 학대 등이 일상처럼 다가온다.

 

자, 그 아이들에 비하면...

넌 네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어?

이 배불러 터진 자식아!

이런 말인가?

 

정말 네가지 없는 발상이 아닐까?

 

오늘 어떤 고등학교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강사로 불려갔다.

아이들은 빨리 집으로 갈 생각뿐이었는데,

나는 '공부하는 방법'을 강의해야 했다. 헐~

최악의 조건.

그래서, 한국의 교사와 부모들은 왜 공부하라는 말만 하느냐.

객관식.

1번. 미쳐서(애들이 1번, 을 환호했다. ㅋㅋ 그래. 미친 것도 같다. 사회 전체가...)

2번. 외계인이어서...(이건 아닌가보다 했다.)

3번. 한국인이어서...(이랬더니, 아이들이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을 찾았다.)

 

한국의 미래를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로 비유할 수 있다.

거기서 멍때리고 있으면 점점 비참한 경제적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한국의 어른들은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올라가라고 채찍질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뛰어 올라 가라고...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다고,

먹고 살 만 하다고,

나가서 중노동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그 나라 아이들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배부른 것, 편안한 것은 '행복'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다.

행복하기 위해선, 먹고, 쉬고, 즐겁게 일하고, 배우는 모든 것이 필요하다.

마치 베네딕트 나무물통의 널빤지 하나가 부러지면,

물은 가장 낮은 높이만큼만 채워지는 원리와 같다.

 

그러나, 배부르고 편히 쉬고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 사회가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기본 가정 생활을 누리는 데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분명히 <천>과 <귀>로 나뉜다.

정치, 이걸 엉망으로 하고,

너희는 북한 애들보다 행복해~ 이렇게 말하는 건 어폐가 있단 거다.

 

시에라리온처럼,

소년병을 죽이지 않고 팔다리를 잘라 장애자로 만드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국력이 약해지는 것을 획책하는 것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이 책엔 가득하다.

물론, 그 아이들은 행복이란 추상명사에 대하여 생각하기도 힘들 것이다.

난쟁이 가족들은 늘 지옥에서 천국을 꿈꾸었다고 하지만,

이 아이들에겐 꿈꿀 천국조차 사치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네가지 없는 제목이란...

 

이 책의 2권은 동남아, 중남미, 북한이야기란다.

그래, 그 아이들보다 행복해서 아이들이 죽어나간다는 이야길까?

제발, 똥은 뱃속에나 넣고 있는 걸로 만족했음 좋겠다.

머릿속엔 그거 대신 뇌를 탑재한 인간들로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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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hir 2012-02-2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제목이 너무 기가 막혀요.

글샘 2012-02-28 11:24   좋아요 0 | URL
그래요. 아이들에 대한 모독이죠.
 
일본의 걷고 싶은 길 2 : 규슈.시코쿠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2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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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야 김남희가 제길로 접어 들었다.

1권에서 홋카이도와 혼슈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엔,

순례도 아니고 여행도 아닌,

자연에 대한 경외도 아닌 친구와의 수다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들 모음에 불과해 보여 독서에 열심을 보일 수가 없었다.

 

2권에서 규슈와 시코쿠라고,

일본식 구분으로 이름을 붙였지만,

분명히 이름붙여줬여야할 오키나와엔 좀 미안할 것이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의 야마오 산세이와 조몬스기...

그 황홀한 삼나무와의 만남으로 시작한 2권은,

오키나와의 매혹 속에 독자를 홀딱 빠져들어 정신줄을 놓게 만들고,

마침내 시코쿠의 매력 속에서 미리 여행 계획을 서두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2권은 이 책보다 서너 배 더 많은 사진과 풍부한 글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 정도다.

그리고 꼭 시코쿠의 그 길을 걷고 싶다.

 

인생이라는 순례길에,

오헨로상이 되어

어디에서나 선물처럼 주어지는 오셋타이에 감사하는...

'영적인 삶'을 내 인생에 선물처럼 주고 싶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삶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장그르니에)

 

길을 걷다 잠시만 홀로 뒤처져도

인간은 나약하고 조급한 마음에 울상을 짓고 만다.

그 고통 속에서 충만한 삶을 느끼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대리만족, 간접체험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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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찬푸루' 정식은, '뒤섞다'는 뜻으로 오키나와 특유의 채소 고야(여주, 이거 참 이쁜 채소다.)에 두부, 계란, 햄 등을 넣고 볶은 요리라고 한다. 찬푸루... 짬뽕이 여기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

 

63쪽의 지나온 세월을 말업이 증거한다... 아, 난 이런 말투 정말 짜증난다. 증거한다는 교회식 말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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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옆 철학카페
김용규 지음 / 이론과실천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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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철학카페에서 읽기 시리즈의 '문학 읽기'와 '시 읽기'의 감동에 비하자면...

이 책은 참 재미 없는 책이다.

이 책 뒤로 반성을 열심히 하고 ^^ 2006년에 문학읽기를, 2011년에 시읽기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종이가 컬러 프린트도 없는데도 번들거려서 독서에 완전 방해가 된다.

그리고 종이 질이 좋은 만큼 책이 무거워서, 뒹굴거리면서 읽기가 힘들다.

누워서 읽으면 손목이 아프고...

그렇다고 이 책이 카페에서 정말 카푸치노 한 잔 앞에 놓고 읽어야 할 책은 아닌데 말이다.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성에 관한 담론을 펼치고 소개한다.

 

우선, 희망에 대한 이야기에서 오랜 고민을 다시 만났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에서, 보통 판도라의 상자 안에 남아있는 '희망'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세상에 온갖 재앙이 퍼져있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투의 착각을 하곤 한다.

'희망'을 나오지 못한 '재앙 중 하나'라고 읽어주는 이를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김용규의 글에서 의미를 고민하는 일단을 만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그래. '욕망이나 소망'처럼 물질적이거나 속물적인 것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

그렇지만, '희망'처럼 오지 않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재앙'으로 보아도 될 것인지...

'희망'이라는, '부재로 인한 존재'의 가치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희망이란 절망적 현실의 산물이다.(20)

어둠이 빛을 만들어낼 수 없듯, 절망이 희망을 만들 수 없는 것.

그래서 희망은 자연스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속한 일이고 의지에 속한 일이다.

인간은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존재.

 

역시 철학 카페에서 맛보는 '희망'은 '에스프레소'의 쓰면서 진한 맛, 제대로다.

 

성서 속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역설적, 고난적, 여정적 상황을 인간의 삶에 내재해있는 보편적 상황으로 일반화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기쁨이면서 고통인 역설이고, 고난이고, 그 삶의 여정은 신을 늘 의심하며 살게 한다.

 

그에 대해 '믿음'이란 믿을 만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역설적 성격이 '신의 약속'이란다. 재미있다.

 

'잠입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는 게 아니라, 오직 사랑하고 믿는 일이다.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앎을 전달한다.

곧 믿음이 없으면 내적, 도덕적 상태가 파멸에 이르고,

또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불행해지고 불만스러워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해주길 기다리는 왕자처럼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행복해지긴 언제나 어렵다.

분명한 것은 행복해지길 원지 않는다면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가 행복해지길 원하고, 이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알랭의 '행복론'을 들이밀면서,

적극적 삶이 행복을 지향하는 조타수가 될 수 있음을 속삭여 준다.

 

인간의 인식이란 세계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파악한 세계, 즉 임의로 만든 한 세계에 대한 재귀적 인식이다.

앎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앎인 셈이다.

삶은 그것을 아름답게 파악하고 있는 힘껏 싸워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어디서나 아름답다.

 

이런 이야기를 영화를 통하여 듣는 일도 쉽진 않다.

카뮈에게 '희망'이란 '치명적 회피', '투쟁의 기피', '기권', '철학적 자살'이라는 말로 등치되었다는데,

적극적 삶의 인식, 곧 '기투'에 대한 하이데거의 이야기가 나올 차례다.

 

삶이란 부조리를 버티는 유일한 길은,

사막(부조리)에서 벗어나지 않은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란다.

곧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우고,

구원을 호소함없이 살고,

쓰라리고도 멋진 내기를 지탱하는 것이 '기투'다.

 

사람은 부정 속에서는 살 수 없다.

그 부정을 부정함으로써 긍정에 이르고자 하는 용기.

실존이란 무의미에 의미를 주는 행위. 곧 앙가주망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러나 존재 자체의 기쁨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 바,

탐, 진, 치를 상징하는 저팔계, 사오정, 손오공의 '원을 그리며 도는 자기 파괴적 무한 욕망'을 돌아보게 한다.

八戒처럼 탐욕을 원할 때, <계율>이 필요하고,

悟靜처럼 성냄이 생길 때, <참선>이 필요하고,

悟空처럼 무지가 판칠 때,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경, 률, 론의 <삼장>을 주워온 것이 '서유기'란 이야기에 등장하듯,

욕망은 언제나 정신적 공복 상태에서 오는 것.

 

'매그놀리아'란 영화에서는 '우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생은 결국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의 <마주침>에 대한 현상들이고, <확률>게임에 불과할 따름인 바,

날씨 환경이 수시로 변화하듯, 삶의 궤적들도 수시로 멀어지고 가까워짐을 경험한다.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산다는 것.

 

이 한 마디로 축약하듯,

사람은 시간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찌질함도 인식하지만,

우연의 마주침, 그 우발성 contingency에 대하여 어찌하여볼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

철학 따위가 아무리 필연성 necessity 을 운운하여도, 그 삶이라는 사태는 어쩔 수 없는 것.

 

이런 고뇌를 보여준다.

결국 이야기는 <죽음>으로 번지게 되어있는데,

'나라야마 부시코'의 오린에게 죽음은

우연히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가능성의 종말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삶 안에 언제나 있었으며,

매 순간마다 그녀의 모든 행위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객관적 시간으로는 끝나지 않는 현존재의 기획 투사 Entwurf'라고 보는 것.

그래서 죽음에 대한 사고 역시 삶 전체의 유의미성이며, 고유하고, 뚜렷하게 높여진, 곧 인간에의 길로서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철학적인 시, 장석남의 '번짐'을 읽고 싶다.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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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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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글은 늘 별 넷이다.

감수성이 없는 것도 아닌데,

사진도 제법 잘 찍는데,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자연의 은총이 가득한데,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 생각해 보면, 글쎄, 알콜의 자유가 없는 정도랄까? ㅎㅎ

 

도보여행자 김남희가 이번에는 일본의 네 섬을 걸었다.

첫권에서는 홋카이도와 혼슈의 길들이 등장한다.

아, 올해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어딜갈까 하고 있는 참인데, 교토 인근에나 가서 푹 쉬다 오고 싶다.

 

지난 주 불현듯 길이 달리고 싶어서,

군산엘 가서 짬뽕집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짬뽕을 먹었다.

얼큰한 짬뽕 국물 맛은 일품이었지만, 그때 걸린 감기는 아직도 가래를 생산 중이다.

이성당 빵엔 곰팡이가 나서 버렸는데... 곰팡이가 피는 빵, 참 드물단 생각을 했다.

환경파괴의 산 증거, 새만금 방파제의 썰렁한 경치를 지나서 부안 내소사를 들렀다.

내소사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고요한 바람 소리조차 마음 가득 기쁨을 주었다.

내소사 앞 가게에서 히야신스와 백합 구근을 샀다.

구근을 파는 곳이 흔치 않아서 안 그래도 궁금했던 참인데,

올 봄엔 히야신스와 백합을 기대하며 한철 나게 생겼다.

 

어딜 돌아다녀 보면,

자연이 숨쉬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답답한 공기를 맡으며 살다가,

간혹 신선한 공기를 만나서 그런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김남희의 글이 철저하게 자연 속을 걷기를 바랐지만,

그래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나 중국을 걸을 때 그의 발자취를 뒤따를 때 느꼈던 고독감이 좋아 찾은 이 책엔,

지나치게 친구가 많이 등장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소심하게 비위가 상한다.

 

그의 친구 이야기도 물론 여행의 일부분이고,

이국적인 풍토를 보여주는 사건이긴 하다.

그렇지만, 정말 고독하게 철저한 방랑자가 쓴 글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놓치는 건 아닌가 싶어 아쉬움이 남은 책.

 

'즉흥적 충동에 따른 우발성'과 '우연한 인연에 따른 여행의 감미로움'이 잘 살아나는 글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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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새마을 노래는 '곰 보러 가세~'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건, 박정희식 애국주의 건전가요인 '잘 살아 보세'다.

340. 니홍고오 와카리마셍...의 일본어 표기가 니홍고아~로 잘못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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