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첫사랑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2
웬들린 밴 드라닌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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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전체가 부분을 합친 것 이상이라는 아빠 말을 이해할 수 있어요."

 

줄리는 이사간 동네의 브라이스를 사랑하게 된다.

그렇지만, 브라이스와는 자꾸 엉뚱한 측면에서 충돌하게 되어 사이가 엇갈린다.

 

동네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오른 줄리는 그 나무가 잘리게된 위기를 맞아 저항하게 되고,

그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보던 브라이스는 줄리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무지개 빛깔을 내는 사람이 있단다..."

 

브라이스의 외할아버지는 줄리의 특별한 면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 소설의 원 제목인 'flip'은 '뒤집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뒤집어 보면, 이런 진실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얼마나 진실에 다가서지 못하고 어리석은 것에 얽매여 살고 있는지...

이런 푸념이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작가의 눈일 수 있겠다.

 

브라이스와 줄리의 시점으로 뒤집히는 각 챕터를 읽으면서,

사람을 바라보게 되는 관점도 다양하게 변주된다.

사람을 보는 시점을 하나로 보는 것에 비하여,

다양하게 변주된 관점에서 보는 일,

그것이 바로 '플립'의 장점이자

무지갯빛 인생을 이해하게 하는 삶의 지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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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 정류장 창비시선 338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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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는 키가 야트막하면서도 동그마한 잎사귀 단풍도 이쁘게 든다.

그래서 빠알간 자두 열매와 함께 집앞을 꾸미곤 하던 나무다.

정류장에 자두나무가 한 그루 있다면,

버스를 기다릴 때,

하염없이 바라보는 도착안내 표지판보다 훨씬 위안이 될 수 있겠다.

 

이 책에선 또 '이팝나무 우체국'도 있고,

'살구나무 변소'도 있다.

시골 생활의 운치를 삶 속에 그대로 번지도록 살며시 떠올리는데,

한지에 옅은 색상으로 무늬가 번져 오르듯,

시상이 웃음으로 환하게 번져가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시집이다.

 

그의 목젖은 '목놓아 울 때/ 나에게 젖을 물려주는' 것이 되고,

그의 배꼽은 '생명의 근원으로 입과 다르지 않은' 것이 된다.

그의 '어떤 품앗이'에서는 삶의 전통이 녹아 있어 궁핍 속에서도 풍요롭던 기억을 호명해 내곤 한다.

 

'바닥'처럼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 내기도 하고,

'밤비'처럼 봄, 밤, 비가 한꺼번에 떠올라 혼란한 마음을 더 몽롱하게 만들기도 한다.

박성우의 살림이 더 이 땅과 하나되어 유쾌한 땀방울 가득한 문학으로 거듭나길 기원하고 싶은 시집.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린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다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 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바닥, 전문)

 

댓돌 털신에 개구리가 든 밤이다

 

밤비에 나온 개구리가

덜 깬 겨울잠을 털신에 들어 털고 있는 추운 밤이다

 

겨울비라고 썼다가 봄비라고 썼다가

겨울비를 긋고 봄비를 긋고, 그냥 밤비나 움츠려 긋는 밤이다(밤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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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 불교 최초의 경전
법정 옮김 / 이레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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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교를 '유아론적 사고'의 극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유아론은, 실재하는 것은 자아 뿐이며, 다른 것은 자신의 의식 속에 존재할 뿐이라는 말이다.

극단적 형태의 주관적 관념론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이, 세상이 내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

암 것도 없지.

 

숫타니파타는 소승 경전 중 하나다.

여시아문,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 하고 증언하는 기록들인데,

중국을 거쳐 대승 불교가 삼국에 전파되다 보니,

소승 불교의 원뜻을 개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류를 구원하겠노라는 '대승'적 차원의 큰 수레에 비하면,

제 혼자 고통을 벗어나려는 '소승'적 작은 수레는 보잘것 없다는 것인데,

나가르주나의 '공' 즉 있는 그대로 보라. 뭐가 있다는 것인지,

이런 잔혹극 속에서 대승의 승리는 쫌, 우스워보이기도 한다.

 

소승불교가 요즈음 다시 인기를 얻었었는데,

위빠사나라든지, 틱낫한 스님처럼,

한국 현상의 독특한 토착 불교인 '혼합 종교'로서의 불교의 성격을 버리고,

자신에게로 돌아가자는 반성이 일으킨 현상이겠다.

 

8정도가 소승 불교의 중심 계율인데,

특수 계층의 초창기 불교가 주가 되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잔혹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세상을 어떻게 혼자서 가는데... 너무 래디컬한 모습이기도 하다.

 

8정도 대신 대승에서는 6바라밀의 단계를 설정한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경지...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며, 수모를 견디어 나도, 중생도, 오래 사는 사람도 없음을, 곧 텅빔을 관조하란 것.

그러기 위하여 정진하며, 지혜를 얻기 위하여 선에 들고, 드디어 지혜로운 자가 되어 반야의 눈을 얻는 것.

계, 정, 혜가 말은 좋아 보이지만,

호국 불교, 가르침의 불교, 이렇게 보편 종교를 지향하노라면,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것은 하나도 구하지 않겠다는 것과 모순적으로 통하는 구석도 생기게 되는 것.

 

소승의 자신을 위한 수양을 넘어서

대승의 아미타(과거불), 미륵(미래불), 정토사상 등은 애초의 종교 사상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초기 승려들은 탁발을 하였는데,

구걸을 하는 일은 모든 수모를 견뎌내겠다는 자세라고 한다.

삶에서 이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야하는데,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비우라>고 하고 있다.

<텅 빈 배, 虛舟>가 와서 부딪힌다면 그 배한테 화를 낼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상대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되는 것.

자신을 닦는 일은 스트레스를 안으로 삭여서 '사리'를 만들라는 노릇이기도 해서,

정신건강상 좋지 않을 수도 있어 보인다. ^^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어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법이다.(247)

 

스스로를 닦는 일이 우선인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선공후사, 멸사봉공'의 정신이 아름다운지,

글쎄, 실존의 인간에게 '공'적인 사상의 강요는 또하나의 폭력이었던 것이 인간 역사의 결론임을 보면,

호국 불교로서의 종교 행위는 초기 종교의 정신을 배워야 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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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스이카 놀 청소년문학 4
하야시 미키 지음, 김은희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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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학교폭력에 연루된 중학생이 자살하자 일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교육과학기술부께서는 엄청 많은 일을 하셨는데,

젠장, 장장 80페이지가 넘는 '학교폭력 대책 매뉴얼'을 공문으로 하달하시었다.

새로 학생부장을 맡아야 하는 나는 그 매뉴엘을 2쪽, 양면인쇄해서 던져두고 욕지기가 난다.

 

그 공문 표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수요일날 술 먹지 말고 집에 가서 가족과 대화 해라.

ㅍㅎㅎㅎ

그럼 수요일은 학원 못열게 할 자신 있니?

수요일은 아이들 야자 안 시켜도 부모들이 교장실로 전화 안하겠니?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자면, 대응책이 저질 코미디 류라서 하품도 안 나온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다양하다.

불안정한 사회 구조의 변화로 인한 가정의 파괴.(영화 집으로에서도 가정 파괴로 할머니와 살게된 아이의 갈등이 그려진다.)

학부모의 고학력화에 따른 학교 경시 풍조.

경기 악화로 인한 실업자 양산과 취업 악화.

그로 인한 부모의 과도한 개인학습 강화와 학교 행사의 축소.

교사들에 대한 업무 과중으로 인한 상담 시간 전무.

 

이런 모든 것들이 한국 사회의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다.

아직도 일본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한국 아이들은 착하지만,

교실에서 조금 특이한 학생들에 대한 집단 놀림은 일상적이다.

 

집단 놀림을 아이가 웃어 넘기거나, 짜샤, 까불지 마~ 하고 넘어가면 다행인데,

그 수준이 심각해지면 가정이나 학교에서 대응하기 힘든 수준으로 급속히 진행된다.

 

한 아이에 대한 여러 아이의 폭력.

이것은 처음엔 대부분 장난으로 시작된다.

이지메 대상 학생 역시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삶 자체가 지루한 아이들에게 그 장난은 심각한 놀이가 되고,

결국 피해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하게 된다.

 

이 책은 열네 살 아이가 쓴 책이다.

자기가 겪은 이지메의 경험을 살려서 주인공 스이카의 죽음을 통하여 학교폭력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이지메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교사가 아이들의 갈등 사이에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뚜껑이 뻥, 하고 터질 수 있는 존재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높은 것이다.

 

학교에는 '교사의 지도'로 교화되는 학생도 있으나,

중장기적 '상담'이 필요한 학생도 있고,

간혹 '특수 상황'이 발생하면 병원이나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학교에는 '상담 교사'가 없는 현실이다.

상담 교사 배치에는 돈이 많이 들기때문에,

그리고 간호학회처럼 힘센 압력단체가 없기때문에,

학교에 상담 전문 교사는 거의 없다.

 

상담 전문 교사와 수업 도우미 등의 '인 풋'이 없이 '아웃 풋'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동족방뇨, 언 발에 오줌 누기고,

하석상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의 미봉책이며 고식지계, 임시방편일 뿐이다.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에게, 이런 책들을 읽히는 걸로 벌을 대신할 수 있겠다.

마침 필요한 좋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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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2-02-29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폭력 대책 매뉴얼'이란 단어만 듣고도 콧웃음을 쳤었습니다.
저런 걸 메뉴얼을 만들어서되는 일일까?싶기도하고
일터지니 뚝딱뚝딱 만들어 내놓은 것이 얼마나 심도깊은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으랴 싶기도 하구요.
복사해서 던져두고 욕지기 날만 하십니다요.

글샘 2012-03-01 20:18   좋아요 0 | URL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수요일날 술먹지 말고 가정에 가면 해결이 될까요? ㅎㅎ
 
주역, 인간의 법칙 - 64괘에서 배우는 인간과 자연의 지혜
이창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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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주역에 대하여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몇 번 있었으나,

강론을 들을 기회가 없는 처지에선 산의 초입에서 길을 잃고 만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개중에 주역이 놓인 위치를 알려주는 책이 있었다면, '주역의 과학과 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주역의 과학성을 상징체계에 의지하여 설명하려 했던 책이었는데, 비교적 재미있었다.

 

이 책은 64괘에서 배우는 자연의 지혜란 부제로 풀이되고 있는 바,

주역은 자연의 지혜를 배우기 위하여 64괘를 활용하고 있는 체계이며, 그것은 '삶의 법칙'을 찾으려는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라는 제목으로 명쾌하게 내용을 요약하여 준다.

 

춘추전국시대의 피바람이 불던 시절,

진시황은 황제의 나라인 '진'을 건국한다.

그러나, 각 지역에 할거하던 호족들을 견제하려 지나친 순수(돌아봄)에 몰두하다 과로사하고 나라는 망한다.

진시황이 국가를 다스리려하였을 때 내세웠던 프로그램은 토목공사를 통한 노동력 창출로 인한 경제 부흥이었을 것이고,

그 결과 만리장성, 운하 등도 건설붐을 이루었을 것이다.

 

진시황이 오랑캐 호(胡)자를 두려워하여 만리장성을 쌓았으나, 자식(호해)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진시황을 타산지석 삼아 이후의 정권을 잡은 한나라는 단순한 '프로그램' 차원에서 경제부양을 시켜봤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중앙집권을 위한 봉건제, 군현제 등을 실시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체제 유지의 동력이 됨을 생각했을 것이다.

 

주역은 '우발성'으로 점철되는 인간의 운명을 단순한 '프로그램' 하나로 그때그때 넘기는 고식지계를 거부한다.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일들은 어떤 '시스템' 속에 내재된 법칙이 있을 것이며,

그 법칙을 알아내서 대비하는 것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인간의 자세를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장자의 제물론에 조삼모사 이야기가 나온다.

송나라(모지란 놈은 맨날 송나라야 ㅋ) 저공이 원숭이한테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앞으론 아침에 3개 저녁엔 4개 주겠다 했더니 원숭이가 화를 냈고,

저공이 다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제안하자 원숭이가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보통 조삼모사는 조령모개, 임기응변으로 남을 속임, 협잡꾼 등으로 쓰이기 쉬운 말이지만,

장자의 원문에는 이야기 뒤에 이런 구절이 덧붙는다.

 

명분과 실질이 변함이 없는데 기쁨과 노여움이 일게 되었다.

이는 시비에 구애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시비를 떠나 조화롭게 하고 도리에 맞게 처신한다.

이러한 것을 양행(兩行)이라 한다.

 

'먹이가 부족하게' 된 시대.

한국은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한다.

그래서 노여움이 하늘을 찌르지만, 권력자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성인이라면, 양쪽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和>일 것이고, <不同>일 것이다.

양편이 모두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의사소통에서 온다는 이야기겠다.

원숭이들이 화를 낼 때,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정현종의 시 중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가 있다.

사람에겐 가지 못한다. 내거 너일 수 없고, 네가 나일 수 없다.

그렇지만, 군자는 '네가 이만큼 와, 내가 이만큼 갈게, 우리 섬에서 만나자'하는 '화'를 활용한다면,

소인은 '일로와 인마, 짜슥이 죽어 봐야 저승을 알지?'이렇게 자신과 같지 않은 존재를 처벌한다.

 

주역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통하면 오래 간다'는 말이다.

조삼모사에서 변화의 '양행'이 상생의 길이 되고 소통이 되어 오래간다는 이야기이고,

사람들 사이의 섬에 가려는 자세가, 소통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겠다.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치부하기엔 소문이 너무 많이 났다.

특히 공자가 죽간으로 된 주역을 읽는데, 하도 여러번 폈다 접었다 해서 세 번이나 줄이 끊어져 새로 가죽끈을 묶었다는 위편삼절의 책이다. 공자가 머리 싸매고, 주역의 <시스템>적 사고를 국가 운영에 도입하려고 골머리를 앓았단 근거겠다.

 

주역은 괘와 효의 풀이를 통하여 삶의 기운생동의 법칙성을 풀이하려는 시도다.
그 풀이에는 무식한 놈도 알아먹을 수 있는 <형상>을 들이미는데,

그게 관조의 법칙이다.

원리를 형상을 바라보고 비춰보는 데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비유가 워낙에 상징성이 강하기때문에, 이현령비현령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만,

서양의 생각이 이원론 또는 사원소론 정도로 분화되는 데 비하자면,

주역의 64괘의 384개의 효를 설명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고의 증폭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네 개의 화구로 불을 때던 중국의 봉수대와 다섯 개의 화구를 갖춘 조선의 봉수대가

약속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16개와 32개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던 것에 비하자면,

이원론이나 사원소론에 비하여 주역의 괘사와 효사의 <상징성>이 가지는 힘은 가히 폭발적이다.

 

 

    연기의 도시, 중국 옌타이(燃台)의 봉수대                                   한국 천성산의 봉수대

 

 

 

그런데 384개의 효사가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한글의 천지인 세 가지 획으로 한국에서 발음되는 21개의 모음을 이어 붙이는 마법처럼,

효들이 아래위로 뒤집히기도 하고, 아래위의 괘가 뒤바뀌는 연상작용도 의미를 가진단다.

더 환장하겠는 것은, 비슷한 효들이 이어져 있으면, 뭉뚱그려서 이건 하나야~ 이렇게 보는 호연지가가 담겼으며,

여섯 개의 효 중에서 3-5효와 2-4효를 취하여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음까지 상상한다면,

이건 뭐,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음양에서 사상으로 팔괘까지 퍼뜨린 뒤에 다양한 운용법을 활용하여 태극의 변화 원리를 하나의 원리 속에 꿰뚫으려 한 방대한 사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끊임없는 '예스'와 '노'의 길을 따라 걷게 되는 알고리슴의 지루한 순환과 전진을 나는 주역 속에서 본다.

'노'의 렉에 걸린 알고리슴의 지루한 반복은 어느 값이 채택되는 순간,

'예스'의 수로를 타고 미끈하게 다음 단계로 전진한다.

그러나 다시 '노'의 반복 속으로 빨려들게 되는 컴퓨터의 원리가,

상징적으로 본다면, 인간의 시지프적 삶과 상통하는 거나 아닌가 싶다.

 

 

주역은 우리에게

 

네 마음이 저 자연의 영원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네 마음은 저 천지와 일월의 움직임에 따른다고 가르쳐준다.

점을 묻는 것은 자연의 흐름을 다시 음미하여,

그 안에서 마음의 있는 그대로의 흐름을 찾아내고 확인하는 행위이다.

주역의 괘들은 모두 역,

즉 한번 음이 되었다가 양이 되는 자연의 변함없는 흐름이 자연이나 인간의 마음 모두를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울처럼 비춰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흐름이 괘를 낳고, 점을 쳐 그 괘를 얻어,

그것의 의미를 묻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지금 어느 때에 있는 것이고, 어디로 변해갈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통해야 할 곳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멈춰야 할 곳에 서있는 자신을 반견한다.

통하지 않고 서있는 자신을 뉘우치고,

 

멈춰서는 안 되는 자신을 독려하게 된다.(229)

 

 

그래서 주역은 개인적인 삶에도 중요한 관조의 요소를 부여하기도 하는 셈인데,

솔직히 그 많은 원리들을 읽어나가는데 나는 게을렀다.

이 책만으로 그 원리들을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으므로, 그 부분은 스킵하였다.

상세한 내용은 주역1,2와 계사강의를 더 읽는 수밖에 없다.

 

거북점은 '확정적인 상징'이며 주역점은 '오르고 내리며 가고 오는 상징, 승강왕래'가 있다고 한다.

이것이 주역의 힘이고, 원리의 탁월성인 지점이다.

 

심리학자 '융'이 주역에 빠진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mbti처럼 간단한 도구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마음 나도 몰라~ 이런 것이 인간이지, 나는 내향성이야, 라고 단언할 수 있는 스타일은 없는 셈이다.

 

 

오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생각하지 좋아하는,

 

깊이 생각하고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 적합한 책.(337)

 

 

 

이라고 융은 기꺼이 주역의  판촉 사원이 된다.

 

 

 

주역의 상징성이 다양하다는 것이 장점이 된다는 주장에,

그것이 무슨 법칙성이냐는 비판이 붙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반박으로 주역을 감싸안는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모시고 와서...

 

은유는 하나의 사물에 그것과는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은유에 정통하는 것이다.

이것만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성의 징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훌륭한 은유는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에 대한 '직관적 지각'을 함축하기 때문이다.(시학)

 

상징성의 관조로 이뤄진 물상, 그리고 변화의 방법론인 호체, 추이, 변효 등의 상세한 설명은 어렵다. 스킵이다. ㅠㅜ

그렇지만, 물상, 호체, 추이, 변효 등에서 주역의 활용 방안은 무제한으로 메가톤급 폭발력을 발휘한다.

 

융의 관심은 마음의 고통에 대한 치유,

그를 위한 자각, 결국 마음을 찾아나서기를 권유하고, 자각하여 삶을 온전히 누리라는 제안을 하는 셈이다.

 

융의 주역에 대한 접근은

마음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자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각이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항상 '각성'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깨어있다'는 비유는 여기에 참 적절한 표현이다.

대부분 잠들어 있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움직임이 밝게 자신에게 알려질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병적 조건들은 그 자체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고통이라는 실체가 파괴되고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을 알기때문에 더이상 고통으로부터 연유되는 불필요한 삶의 짐을 지지 않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깨어있는 우리들은 슬픔때문에 슬프고,

기쁨때문에 기쁘며,

노여움때문에 노여워하고

즐거움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다.

그 느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슬픔과 분노를 감추거나 은닉하고, 다른 대체물로 그것을 소외시키는 몽매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울고, 웃으며, 기뻐하고 화낼 줄 아는 인간이 되자는 것이 그네들의 최상이지만 평범한 목표이다.(421)

 

자신의 삶을 대체할 수 있는 시뮬라시옹은 없다.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서, first-person shooter (FPS) 게임처럼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들썩거려 봤댔자,

또는 롤플레잉 게임(RPG)처럼 특정한 능력을 구비하여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쓰며 만렙이 되어봤댔자,

본인은 소외될 따름인저.

 

이 책은 주역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알아듣겠는 부분은 밑줄 그어가며 공부하고,

아, 쫌 복잡한데, 하는 부분은 스킵해서 다음 챕터부터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도움이 되고 재미있는 부분도 있는데, 괘사의 물상 설명이나 특히 효사의 호체, 추이 등은 지나치게 깊이 들어가면 머리가 아프다.

머리 아픈 부분은 뛰어넘고, 취할 부분은 취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 읽고 뒤표지를 보니 'CEO를 꿈꾸는 리더라면 그 어떤 책보다 주역을 먼저 읽어라!

리더의 안목을 높여주는 행복한 주역읽기'라고 상업적 문구를 붙여 두었다.

ㅋㅋ 아마 실패했을 확률이 높다.

왜냐면, 그런 리더들이라면, 본제목과 부제에 그 구절이 적힌 책들을 샀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들이 이런 변화의 원리를 공부하면서, 세상 변하는 걸 탐구한다면 아,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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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 글 중간에 작게 삽입된 괘들이 이어졌는지 끊어졌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것들도 많아 읽기 곤란했다.

 

그리고 맨 뒤에 덧붙여둔 (455-) 괘사표는 복사해서 붙여놓고 공부하기에 좋은 도표인데,

화수기제, 수화미제는 좀 그렇다.

불이 위에 있고 물이 아래 있으면, 불은 훨훨 날아가고, 물은 더 아래로 갈앉는다.

가정이 이러면 절단난다. 남편은 바람다고 아내는 우울증 거리는 셈이다.

불이 아래 있고 물이 위에 있어야, 서로 <소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화수미제이고 수화기제여야 할 것이 그 뒤편의 460쪽 그림에서도 화수기제, 수화미제로 그려져있다.

그 도표에서도 선이 가늘어 맘이 쓰이고 계속 불편했다.

 

427쪽에 호체괘를 호괘 분석이라 쓰고 있다. 줄여서 그렇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색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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