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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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그 도시의 숨은 빛, 이계삼 선생.

그가 우리교육, 한겨레, 프레시안 등의 지면에 발표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우리에게 고향이 있는가

육신의 탯줄을 도회에 묻었을지언정,

우리가 뿌리내릴 정신의 고향은 있는가

가치로운 것이라면 뿌리부터 뽑고 보는

이 기막힌 시대에

몸 둘 곳 하나 없는 이 가여운 시대에

마음의 정처를 찾아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나는 거듭 묻는다

다들, 고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과연 다들, 고향이 있는 사람들일까?

녹색평론에서 도정일 선생이 <시장 전체주의>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어떤 주의도 아닌,

시장 전체주의라는 것.

오로지 시장의 무자비한 경쟁 원리만이 하나의 이즘이 되어 뿌리박혀 있다는 것.

 

두려운 일이다.

한국 사회처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곳에서,

국민들은 각개 약진을 위하여,

제 새끼 제가 알아서 먹여 살리는 시스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학교는 날이 갈수록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이계삼 선생은, 그 지점에 서서 다소 낭만적이지만 구체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그 조직의 무기력함, 분열상에 좌절하고,

촛불집회, 용산 참사, 지율스님의 천성산 단식, 황새울과 새만금 등의 모든 사회,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려는 아이들이 줄어들지만,

그래도 고향이 힘이 될 것임을 믿으려 애쓰는 선생님.

그렇지만 소도시의 한계 역시 시장 전체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를 위하여 상담을 하면서도, 180도 달라질 수 있는 학과 선택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힘든 진로 지도,

희망과 기대를 배신당하며, 학교 현장에서 '교육 불가능'을 절감해야 하는 엉망진창 교육 정책,

갈수록 질곡으로 쏠려가는, 아이들을 왜곡된 자기장 속으로 쏟아붓는 학교라는 희한한 공간.

 

그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어깨가 활짝 펴졌을 리가 없다.

 

일본의 정치사상가 후지타 쇼조가 오늘날의 일본인들을 두고 'human-nature 인간성'에서 'nature'는 사라지고 'human'만 남았다고 했다고 한다. (현대 일본의 정신)

 

현대인의 인간성에서 본성의 영역, 이를테면 자연에 대한 천부의 감각이나 상식이라는 이성적 현실 감각,

혹은 양심이라는 도덕적 감각, 그것도 아니면 그저 분노와 같은 자연스러운 야생의 정서가 거세된 것이다.

그리고 멍청한 '인간'만 남게 된 것.

 

아이들의 얼굴에서 환한 낯을 만나는 날은 흔하지 않다.

소풍날 아침에 지하철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낯이나, 체육대회날 축구 경기를 앞둔 머시매의 낯 정도,

졸업식날 속 시원해하는 아이들의 낯 정도에서나 환한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환한 낯을 돌려주는,

인간의 본성 - 인간성을 살려주는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닥치고, 정치, 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가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한 순간에 아이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기는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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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3-1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광주에서 엄기호, 이계삼 선생님 강연회 때 뵜는데 좀 수줍어하는 선생님이던데 활동은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그때 '교육불가능의 시대' 구입해서 골라봤어요.

글샘 2012-03-18 21:57   좋아요 0 | URL
저는 글로만 만나고... 사람은 몰라요. ^^
선생님들이 원래 좀 수줍어 하죠. ㅎㅎ 아이들 앞에서나 왕처럼 군림하지.
참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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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명인사들의 칼럼집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칼럼이란 것이 보통 시사적이기 쉬워서 그때그때 읽지 않으면,

아무리 저자의 사후에 모은 책이라 하더라도 엉성하기 쉽다.

그렇지만 김규항, 홍세화 같은 이들의 칼럼집을 또 사서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가진 사고의 명료함, 세계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식견들은 시대가 변해도 바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심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유명 작가의 온갖 잡문들을 그냥 끌어모은 건데, 값은 14,800원이라니...

 

그렇지만, 역시 세계적 작가의 글들 속에선 위트와 그 특유의 정확한 표현들,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대목들을 만나게 된다.

 

오브라이언이란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소년 같은 소탈한 아저씨' 느낌의 사람이란 표현을 쓴다.

아, 소년 같은 소탈한 아저씨로 나이들어 갈 수도 있구나...

 

오늘 낮에 문태준의 '먼 곳'이란 시집을 읽으면서,

나이들어 아름답기는 힘든 노릇이다...라고 리뷰를 올렸는데,

하루키 이야기 중에,

폼나게 나이들기는 어렵다... 는 구절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나는 아름답게 늙기보다, 폼나게 나이들기보다,

정말, 소년 같은 소탈한 아저씨가 되고 싶다. 가능할까? ㅎㅎ

 

그는 작가보다 독자의 몫을 중시하는 소설가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이라면서.

그것을 맨 뒤의 인터뷰에서 '열린 결말'이라고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탁견인 구절을 발견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87)

 

그렇다. 결혼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고, 나쁠 때는 어쩔 수 없다.

이게 결혼의 진리다. 주례사로 꼭 맞춤한 구절.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용기있는 말을 했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91)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것도 예루살렘상을 받으러 가서 한 말이란다.

 

나도 늘 궁금하던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ㅋㅋ

원래 제목은 Knowing She Would 였단다.

가사가 Isn't it good, knowing she would?

멋지잖니? 그녀가 해줄 거라는 걸 아는 일은... (아, 얼굴 빨개지는 내용이야...)

그런데 규제가 심해서 음반 제작이 불가했다고...

존레넌은 노잉쉬욷..을 금세 비틀어 노르위전 욷...으로 바꿨다는... 설이 있다는...

뭐, 미친놈(싸이)의 '완전히 좆됐어'가 '새됐어'로 변신한 거나 마찬가지다.

 

하루키도 젊은 시절, 재즈 카페를 하면서 음악에 빠진 적이 있다.

뭘 해도 잘 풀리지 않던 날, 존 레넌의 노래를 읽는다.

 

Isn't he a bit like you and me...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이나 나나 좀 닮지 않았나요..

 

재즈카페의 추억을 떠올리다 어느 여인과의 마지막 대화 후,

 

나는 좀더 제대로 된 말을, 뭔가 좀더 확실하게 마음이 담긴 말을 건넸어야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내 머릿속에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런 가사가 아름다웠던 날들...

매일의 이별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에...

 

번역가로서의 그가 레이먼드 카버를 인터뷰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구절도 인상적이다.

 

이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소설로도 인품으로도.

말수가 적고, 안절부절 못하고,

새우등을 점점 더 둥글게 말며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한다.

생각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따금 우스운 말을 던지고는 수줍은 듯 빙긋이 웃고,

그러고 나서는 매우 심각하고 떫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대화중에 홍차를 턱없이 많이 마시고, 이따금 창밖으로 보이는 태평양을 눈이 부신 듯 바라보고...

 

아, 이런 사람이 '소년 같은 소탈한 아저씨'로 분류되는 그런 사람일까?

 

은희경은 '생각의 일요일들'에서

문장의 탄력에 대해 궁리해야 한다...고 했는데, 하루키의 문장론도 멋지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잃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요컨대 적확한 어휘의 배열이 뒤따른다.

그것이 매끄럽고 아름답다면,

더 바랄게 없다.

그리고 하모니, 그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

그다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뒤따른다. - 즉흥 연주.

특별한 채널을 통과한 이야기가 내부에서 자유로이 솟구쳐 오른다.

나는 그저 그 흐름을 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온다.

작품을 다 마치고 맛볼 수 있는

내가 어딘가 새로운, 의미있는 장소에 이르렀다, 는 고양된 기분이다.

그리고 잘만 풀리면, 우리는 독자 = 청중과 그 고조되어가는 기분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는 멋진 성취다.(406)

 

재즈 피아니스트 탤로니어스 멍크란 이가,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는 연주를 하나요?"하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단다.

 

It can't be any new note.

When you look at the keyboard, all the notes are there already.

But if you mean a note enough, it will sound different.

You got to pick the notes you really mean!

새로운 음은 어디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406)

 

그래.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이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의미를 담는 것이 중요한 음이 된다.

 

특별하게 울리는 연주를 위한 비법은 평범한 것이다.

곧, 특별한 삶을 사는 비법 역시 평범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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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창비시선 343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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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의 가재미는 납죽 엎드린 존재다.

가장 낮은 곳에서, 눈을 둥글리며 세상을 보는 존재.

그 가재미와 소통하기 위해 시인은 납죽 엎드렸던 존재다.

 

이제 그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낮은 곳에 대한 연민과 애타는 마음 역시 스러진 것은 아니지만,

삶의 미련이 숨통을 옥죌 때,

하루중 때때로 이유없이 느닷없이 막막한 심사를 만들 나이,

먼 곳을 응시하는 남자의 뒷모습은 외롭다.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이라 불리는

저 섬은 (섬)

 

70년 개띠인 남자가 나이들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

그의 뒷모습은 하나의 섬 같아 보인다.

 

또 하나의 객지(客地)가 저문다(망인, 부분)

 

죽음 역시 낯설지 않은 그림자로 남는다.

 

그 남자가 사랑하는 법은 이렇다.

서로 넘나들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물들어가는 사랑법.

서로 외면하면서도, 아름다이 나이들어가는 사랑법.

쓸쓸하다.

그러나, 사랑이 듬뿍 묻어남은, 

그대와 나 <사이>가 있기 때문인지...

그 사이엔 초원이 있어도 무방하고, 지평선, 대양이 있어도 무방하리라.

 

나이들어 아름답기는 힘든 노릇이다.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 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 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나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 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옮겨가는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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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8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8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 이학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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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퇴근하고 아내랑 동네 곱창집엘 갔어요.

강신주를 읽고 곱창집에 간 게 잘못이지. ㅎㅎ

곱창집엔 곱창도, 소주도, 아내도, 시래기국도 있었고,

그 곱창집은 강신주를 타고,

국가와 자본과, 결혼과 세계화의 모순들이 지글거리는 장소로 확장되어 있었지요.

 

곱창을 구으면서, 이 곱창을 제공한 동물을 사육한 인간의 제도적 살상을,

소주를 나누면서, 소주 업계를 장악하고 있을 조폭들의 세계를,

아내를 쳐다보면서, 결혼이란 제도의 모습을,

겉저리의 향긋한 참기름 내음에서, 농업과 세계화를,

시락국과 겉저리를 배달해다주는 주인 아주머니를 보면서, 자본에 봉사하는 삶을,

그리고 한가롭게 곱창을 굽고 있는 것도, 국가라는 괴물과 연관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철학은 '낯설게 하기'라고 해요.

삶의 모든 국면들은, '세계내존재'로 당연한 듯 여기며 살고 있지만, 사르트르 말로는 '즉자적' 으로 대응하며 생각없이 살게 되지만,

철학은 그 국면들을 '세계밖존재'로, '대자적'으로 대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지요.

 

사랑의 아픔을 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관조하기 힘든 마음을, 방향없이 튀어대는 짬뽕공같은 마음을

말끄러미 바라볼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 줘요.

 

요즘 '스탠스'란 말을 많이 쓰더라구요.

자기가 선 자리의 시점에 따라,

다양한 것을 보게도 만들고,

못 보게도 만드는 게 바로 스탠스 인 거 같아요.

 

독서 역시 다양한 스탠스를 경험하고 사유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이 되겠지요.

 

혼자서 읽는 독서에 비하면,

타인의 독서를 바라보면서 함게 읽는 일도

사유의 대위법을 구사하는 확장된 철학적 사건을 만들 수 있겠다 싶기도 하네요.

 

니체가 말했대요.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

 

수천 년 뒤에도 지금같은 상황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상상의 지평을 넓혀 보래요.

지금 내가 비겁하게 살면, 수천, 수만 년 뒤까지 이 비굴함을 반복해서 맛보고 살아야 한대요.

당당하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겠구요.

미적거리다가 좋아하는 것을 놓치는 일도 만들지 말아야 하겠지요.

 

영원히 후회하는 삶을 살 거라고 겁을 주는 니체 형님의 말은 곱씹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영원회귀라... 무서운 말이네요. ^^

 

세계 상류층 20%가 세계 GDP의 86%를 얻고,

       하위 20%는                 고작 1%를 얻으며,

       중간 60%는                 겨우 13%만을 얻는다.

전세계 200대 부자들의 수입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수조 달러나 늘어 두 배가 되었다.

세계 3대 부자의 자산은 가난한 48개국의 모든 소득을 합한 것보다도 더 많아졌다.(윌리엄 탭, 부도덕한 코끼리)

 

이런 통계자료들은 무섭죠? 무서워요. 세상은...

그렇지만, 아는 것은 힘이 돼요. 싸워야 얻잖아요.

 

동양의 '덕'은 서양의 'virtue'와는 별로 상관없는 개념이래요.

한자 德은 '얻을 득 得'과 '마음 심 心'의 합자인데,

타인의 마음을 얻는다는 의미가 된다네요.

 

단하 스님 이야기는 자주 인용되는 것이죠.

 

추운 겨울날, 단하스님이 혜림사를 갑니다.

그 절의 스님은 단하스님을 차가운 마룻바닥에 자게 해요.

밤에 본당이 환해져 스님이 가보니, 단하스님이 불상을 쪼개 태우고 있다죠.

"아니 어떻게 스님이란 사람이 불상을 태울 수 있소?"

"불상에서 사리가 나오는가 보려고 태웠습니다."

"아니, 나무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다는 거요?"

하고는 혜림사의 스님이 크게 깨달았다는 이야기.

 

원효 이야기랑 비슷하죠.

해골물이나 불상의 사리나...

중요한 것은 마음먹기라는데...

 

오늘 아침,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알라딘의 기능이 어느 날 마비되어, 모든 글이 한 순간 삭제되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끔찍한 생각을...

 

사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요?

한 순간의 회로 마비로 모든 것이 날아가듯,

한 순간의 심장 마비나 뇌 구조의 마비로 삶은 끝날 수 있잖아요.

 

오늘을 마지막 날을 살듯이 살아야하겠단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오늘 '우발적'으로 내게 닥쳐온 일들을,

오늘 '우연히' 나에게 쇄도한 당신이란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당신도,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구요!

 

----------------- 오타 한 자

270.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처럼 환 알고 있다고... ㅋㅋ 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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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3-14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좋요....하지만 소주에 곱창이 더 좋죠? ^^

글샘 2012-03-14 21:2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철학 에세이' 수준이라서 재미는 없더라구요.
그래도 이 책을 읽은 후유증으로, 세상만사가 무지하게 얽혀있단 생각을 잠시 하면서 곱창을 먹었습니다.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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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일요일들...

일요일의 생각들...

생각은 일요일.

 

두번째 것은 평범하고, 첫번째 것은 신선하다. 세번째 것은 욕망이 가득해 보이고.

생각의 회로에는 정말 다종다양한 것들이 뒤얽혀 있는 게 인간의 두뇌 회로다.

그걸 의학자들은 이런저런 영역으로 분화되어 있다고 연구하지만,

그 생각들을 요일별 속성에 맞게 나눠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의 '일요일' 속성에 모인 것들을 모아낼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는다.

 

작가의 글들이 꼭 '일요일'스럽지만은 않다. ㅋ

그렇지만, 작가가 일요일을 주장하며, 일요일을 고집하고, 일요일을 외치는 건 눈에 띄게 보인다.

 

햇살이 화안한 일요일 아침.

혼자서 넓은 창문 가득히 펼쳐진 햇살의 향연을 누린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향이나 차의 향기로 가득한 그 햇살의 공간에서,

게으른 고양이의 기지개마냥, 태양을 우러르는 요가 동작이라도 따라하며 척추를 맘껏 이완시켜 본다면...

푹신한 침대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시 온몸으로 파고드는 햇살의 따끔한 키스를 만끽할 수 있다면...

은은한 미소를 입꼬리에, 그리고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도 같아.

 

트윗과 페이스북, 카카오톡 들로 건조한 이야기나눌 공간들이 많다.

무책임할 수도 있고, 소통 부재의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선 작가의 소설 연재와 관련된, 또는 무관한 이야기들이 단속적으로 등장하지만,

역시 작가의 통찰이 묻어나는 구절들은 아름답기도 하다.

 

일요일 아침에 만난다면 아름다울 문장들도,

쓸쓸한 금요일 저물녁에 만난다면 눈물이 핑 돌면서 서쪽하늘 우러르게 할지도 모를 일들인데...

이런 책을 12,000원이나 주고 사기는 아깝다는 치들도 있을 수 있고,

이 속에서 몇 문장 건져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에겐 소고기 1인분 안주로 궈먹을 돈도 안되는 돈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밤에 혼자서 고요한 작업을 하는 이어선지, 빗소리 타령이 많다.

그 빗소리를 들으면 황인숙이 떠오른다.

비가 온다구! 난 빗방울이 되었어요... 하면서 통통 튀어들던 황인숙의 목소리가...

 

참 빗소리가 좋군요.

 

비 오시네요.

왜 '오신다'고 했을까, 반가웠을까, 이를테면 지금 같은 봄비.

 

바람이 섞인 빗소리 너무 좋아 잠들기 아깝다.

 

간혹, 먼 곳에서 그 사람이 잘 있는지, 궁금해 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문장을 만나면, 괜히 그가 안심된다.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잘 있어요.

 

트윗, 누구라도 대답해주면 어두운 계단을 가는데 센서등이 켜진 것처럼 잠간은 주변이 환해지거든요.

고마워라, 센서등.

 

사람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침묵'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인 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다가 꼬여버린 소통의 정체기에,

이런 한 마디는 소통의 물꼬를 트게도 한다.

 

시간을 좀 주세요.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수없이 많은 배선이 엉켜 있어 생각이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많다 보니 그중에는 분명 이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도 있을 거예요.

 

작가론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

글을 쓸 때, 문장의 탄력에 대한 한 마디.

공감 백 배이며, 내 문장에 없는 것을 깨닫게 되는...

 

문장의 탄력에 대해 궁리해야 한다.

 

시뮬라시옹의 인터넷 세상에서,

시뮬라크르에 대한 소통의 꼬임 역시 유사하다.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구나...',

그리고 '생각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라는 비관적인 속단도 잘 하구요.

하지만 또 그게 아닌 것 같으면 급 방긋,

역시 그 사람이야! 라거나, 역시 날 좋아했어!

고장인 줄 알았다가 아니니 너무 좋다, 이러면서 짝짝짝.

 

혼자있는 시간이 사랑의 환상을 가장 달콤하게 완성해주고 그런 뒤에 가장 가혹하게 해체해 버린다.

 

이런 웃긴 표현도 있고,

 

왜 소설을 쓰는가?

'연애편지를 쓰다가 들키면 소설이라고 우기려고.'

 

이런 멋진 말도 있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삶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내 잘못이 아니다.

틀을 만든 세상의 잘못이다.

 

아, 정말 세상은 잘못투성이! ㅎㅎ

 

또 이런 황홀한 말도 있다.

그야말로, 생각의 일요일들이 가득 묻어나는 햇살의 작은 입자들이 가득 튀어다니는...

 

게으름도 생산이다. 긴 시간의 무위와 허비라는 예열이 아니었다면 이 집중력이 생겨났을 리 없다.

나를 게으르게 만드는 취미, 독서와 짝사랑.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진행각이 틀어지게 마련이다.

여전히 진행하고 있어 보여도, 지향점이 조금 달라진, 똑같은 사람은 아닌...

 

여행에는 그게 있어요.

돌아오면 역시 또 그사람으로 살겠지만

나, 떠나기 전과 100% 똑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나만의 새로운 변주, 대위법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는,

 

혼자서 단선율로 연주하는 삶이 지루하고 따분할 때,

대위법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만나거나, 일거리를 만나는 일은 삶에 활력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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