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 변종모의 먼 길 일 년
변종모 지음 / 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가 배우던 유신시절의 국어 교과서에 '이조년의 다정가'란 시조가 있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ㅣ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주제를 봄방의 정취, 정도로 외우고 말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 남자의 마음이 가슴에 맺힌다.

배꽃이 달밤에 환하고 은하수가 깔린 한밤중,

꽃가지 잡고 잠못이루는 청춘의 마음을 소쩍새가 어찌 알겠느냐마는,

다정한 마음 갈피를 잡지 못하여 잠 못 이루는 마음이여...

 

변종모의 글을 읽노라면, 이 남자, 참 감성이 풍부하다.

 

사랑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고통을 진정시키고/ 죽음을 떼어 놓고/ 사랑과 관련되지 않은 관계들을 해체하고/

낮을 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파스칼 키냐르)

 

여행은,/ 맨발을 빨리 뛰게 하고/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얽매임을 떼어 놓고/ 내 삶에 그어진 선들을 해체하고/

모험과 미소를 증가시키고/ 불행을 단축시키며/ 행동을 대담하게 만들고/  내 영혼을 빛나게 한다.

 

이런 귀여운 패러디로 이 책은 시작한다.

여행이 작가에게 주는 의미를 함축한 시다.

 

잘못된 과거란 없다. 다만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재가 있을 뿐.

아픈 것도 내 추억이며 슬픈 일도 내 추억인데 왜 말하지 못하고 왜 울지 못했던가.

나는 그렇게 우는 연습도 제대로 못한 채 어설픈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겁하고 나약한 마음이 새벽 강가의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내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하늘이 강 위를 떠다닌다.(27)

 

아, 이 남자, 뼛속 깊이 소음인일까?

'어설픈 어른의 비겁하고 나약한 마음'을 관조하는 그가 나는 십분 이해가 된다.

 

사랑은 속으로 상처를 내는 일이다.

그 상처가 단단해져 행복하거나 시들어 병들어 가는 것.

오래된 것들은 사라지고 없어질 줄 알았으나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일이 분명 있다.(49)

 

그의 여행은 사랑에 대한 상념과 여행에 대한 상념의 대위법으로 이루어진다.

생활의 집을 버린 여행자의 한없는 외로움과,

사랑이 집을 버린 자의 끝없는 쓸쓸한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는 걷는다.

 

생각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리는 법.

낯선 곳에서 방향을 잃으면 당연히 당혹스럽겠지만, 그것은 길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고 생각이 흔들리는 것이다.

잠시 심호흡 한 번 하고 하늘 한 번 쳐다보면 될 것을

나는 살면서 사소한 일에 당황하는 일이 잦았다.

 

이 사람, 소음인 맞다.

늘 흔들리는 나침반처럼, 생각이 흔들리는 사람.

그렇지만, 마음이 흔들릴 때, 소음인은 흐름을 타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작은 기운의 장점은 그런 것이다.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이별한 적도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꿈을 꾸며...

막연하지 않은 막막함, 설레는 익숙함, 덤덤하면서도 가슴뛰었고, 불안하면서도 확신이 있었다.

 

쿠바행을 이렇게 달뜨게 표현했다.

그래, 이런 사랑도 있는 법이다.

오히려 이런 사랑이 더 뜨거운 법이다.

 

서늘한 공기가 구름에 섞여 공중을 산책하고 있다.

나는 잠시 그 구름 속에서 눈을 감는다.

나는 왜 내가 만든 상상 앞에서 실망하는가?

아무도 내게 먼저 사랑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115)

 

환상의 도시 마추픽추 앞에서 그의 겸손.

그는 어지간해서 '풍경' 사진을 찍지 않는다.

웃는 사람, 아이들, 실루엣, 아름다운 표정이 조금 비친 뒷모습, 이런 인간을 그의 프레임 속에 가둔다.

그렇지만, 그도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 앞에서는 무장해제 당하고 '풍경'에 매료된 모양이다.

프레임도 없이 찍어댄 것이 그대로 하나의 앵글을 이룬다.

 

세월은 떨어지는 꽃가루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이렇게 어두컴컴하게 남는다.

누구의 시간인들 그 떨어지는 꽃가루들을 피할 길 있겠는가.

모두가 떨어지고 나면 흔적 없이 쓸려나갈 시간 앞에 무기력한 마음이 무겁다.

화무십일홍 인불백일호,

꽃은 열흘 붉은 것 없고 사람 백일 한결같이 좋을 수 없다 했으니,

영원하지 못할 것들 앞에서 함부로 애틋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나는 오늘 이 축제의 뒷골목에서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나는 왜, 저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도 영원하리라 믿으며 사는 것일까?

그리 살아도 되는 것일까?

 

무연하게 앉아 병을 파는 할머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 할머니도 '사람을 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출발지와 목적지의 중간에서 자신을 생각해보는 시간.

그 시간들은 여행보다 간절하고 여행보다 현명한 시간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여행을 따라다니면서 얻는 이런 생각들은 독자의 시선을 깊어지게 한다.

 

나의 외로운 시간과 외로운 마음을 달래러 왔다가

또다른 외로움을 느끼고 마는구나.

그래도 이런 종류의 외로움은 참 따뜻하다.

당신들의 선한 마음이 나를 참 외롭고 따뜻하게 만드는구나.(243)

 

여행에서 만나는 따뜻함. 외로움 속의 온기.

그것이 인생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느끼고 싶어하는 온기일 거다.

 

빨리 만나고 빨리 이별하고 질감없이 사랑하고 상처없이 이별하는 세상.

답답하면 갈아 신으려 하고 싫증나면 교체하려고만 하는 세상.

온몸을 다해 부딪쳐본 적 있었나?

그 맨발로 누군가를 업어본 적 있는가?

그렇게 대신 걸어본 적 있는가?

자신도 아프면서 상대방에게 다가간 적 있는가?

이제 맨발처럼 살아보리라.

거친 길에서 아파도 하고 부드러운 길에서 수굿하기도 하면서

그래서 피가 나게 다시 사랑도 해보고 굳은 살이 박이듯 호들갑스럽지 않게 지난날도 잊어보리라.(255)

 

그의 굳은 사랑론이 오히려 쓰라리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든든하기도 하다.

 

사는 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설명이 될 수 있기는 한가?

나는 설명서에 친절하게 적힌 방법론을 부정하고 산 지 오래다.

따라해본들 완벽한 치유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니까.(332)

 

그의 여행기는 어머니의 부음으로 중동무이되고 만다.

삶은 그런 것이다. 매뉴얼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

 

여행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구를 몇 바퀴 돌아도 세상을 몇 번을 살아도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여행은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익숙한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333)

 

이 마지막 구절,

꼭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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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1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3-2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꼭 새겨둘 좋은 말이네요. ㅋ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어쩌면 그 할머니도 '사람을 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짠하네요.


글샘 2012-03-21 11:42   좋아요 0 | URL
제 서재의 카테고리에 '마리 여사' 코너가 있습니다.

대단한 책, 강추~
프라하의 소녀시대, 강추~
교양 노트, 읽어볼 만 하실 겁니다. ^^

2012-03-21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3-21 11:58   좋아요 0 | URL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씨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눈가가 짓물러진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사람을 쬐다, 유홍준, <저녁의 슬하>에서)
 
꽃으로 말해줘
버네사 디펜보 지음,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내 기억에 따르면 나는 지금까지 서른두 곳을 전전했고 그 모든 집의 공통점은 바로 소음이었다.

밖에서는 버스 소리, 브레이크 소리, 화물열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안에서는 여러 대의 텔레비전 소음, 전자레인지나 젖병 데우는 기계의 신호음, 초인종 소리, 욕 소리,

자물쇠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아이들의 소리도 있었다.

아기 우는 소리,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형제들이 울부짖는 소리,

너무 차가운 샤워기 물줄기에 지르는 비명, 룸메이트가 악몽을 꾸며 흐느끼는 소리,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집은 달랐다.

황혼의 포도밭처럼 엘리자베스의 집안은 고요했다.

열린 창문으로 가냘프고 높은 윙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 소리는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의 소음 같았지만

나는 그것이 자연의 소리라고 상상했다.

이를테면 폭포 소리라든가 벌떼 소리같은.(56)

 

고아 소녀 빅토리아는 거친 성격으로 입양을 거절당하다가

포도밭을 하는 엘리자베스와 만나게 된다.

 

빅토리아는 꽃에 대하여 비상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꽃을 고르는 안목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빅토리아는 인간의 언어보다 꽃말로 의사전달을 하려는 방식을 생각해 내지만,

꽃말 사전에 따라서 다르게 풀이되어 있는 해설로 인하여 오해를 사는 일도 생기게 된다.

 

빅토리아가 소리에 대해서 저렇게 민감한 것이,

인간의 언어의 한계를 체득하여 다른 방향으로 안테나를 돌린 이유일는지도 모르겠다.

 

"빅토리아, 꽃말은 타협이 불가능한 거란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모든 꽃은 꼭 한 가지 의미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야. 로즈메리처럼. 로즈메리의 꽃말은?"

"기억. 셰익스피어가 그랬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맞아. 그리고 매발톱 꽃은?"

"버림."

"호랑 가시나무는"

"예지"

"라벤더는?"

"불신."

"매러디스는 왜 네가 학습능력이 없다고 했지?"

"학습 능력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하여 빅토리아의 재능을 발현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엘리자베스와 코드가 맞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빅토리아들은,

이런 질문을,

자신을 알아봐줄 수 있는 질문을 가슴 속에 가진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 내지는 '학습 능력이 없는 존재' 취급을 받으며 외로이 고개 떨구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도대체 몇 번이나,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엉뚱한 말을 했던 것을까?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112)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이야기도 있고,

개와 고양이의 의사 표현 이야기도 있다.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의 의사 표현 방식을 나름대로 갖추고 있게 마련인데,

그 번역기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오해하거나, 적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이 생길 것이다.

 

이 소설은 소녀 취향의 꽃말 사전을 즐겨 찾던 이들이라면 반갑게 맞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지만, 이야기 템포가 빠르지 않고 빅토리아의 내면이 발현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걸 기다려주는 참을성 정도는 가지고 읽어줘야 한다.

 

그걸 참지 못한다면 빅토리아한테 꽃 한 송이는 건네 받아야 할 것이다.

 

엉겅퀴 한 송이.

 

인간에 대한 불신, 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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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백 무협 단편집 - 마음을 베는 칼
좌백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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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좌백의 무협소설집이다.

단편도 있고, 중편도 있고

중원의 무협 이야기도 있고, 현대적으로 개조된 이야기도 있다.

 

무협지의 존재 기반은 '연민'이다.

고난을 겪는 주인공과 배고픈 시절의 고된 훈련,

고난의 극복과 페이소스 넘치는 결말은 반드시 해피엔딩만은 아니다.

독자에게 씁쓸한 삶의 묘미를 남기는 것이야말로 무협을 읽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연민은 위로, 동정, 격려와 유사하게 쓰이는 것 같지만,

위로, 동정, 격려와 무협지는 전혀 가까이 있지 않는 단어 같다.

연민은 그 고난이 자신에게도 끼칠 수 있을 것 같을 때 독자를 휘감는 감정이라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무협 소설은

중독성 면에서 로맨스 소설과 상통하는 면도 있을 수 있다.

 

마음이 더 아프고 마음쓰이는 것.

타자를 통해 나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결핍을 느끼는 '연민'

 

무협 속의 세상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건조함에서 독자가 읽는 것이

이런 연민으로 보인다.

 

글쎄, 이런 느낌은 이 분야에 관심이 적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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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당신의 반대편에서 415일
변종모 지음 / 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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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에게 꿈이 있다면,

나이든 어른들에게는 '로망'이 있다.

'로망'이라고 하면 '로망스'처럼 사랑 이야기를 이루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배나온 아저씨가 '벤츠 600시리즈' 운운 하거나,

보톡스 맞은 아줌마가 '무슨 백화점 스파 회원권'를 거론하는 속물적인 거 말고,

'로또'라고 걸리면 해보고 싶은 '로망'들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나의 '로망'이라고 한다면,

혼자서 훌쩍 한달쯤 세상을 버리고 산티아고 가는 길에 오르는 것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매년 몇 권씩 산티아고를 마음 속으로 읽으며 걷는다.

그리고, 곧 쉰이 다가오는데, 쉰이 오기 전에 꼭 산티아고엘 가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긴 쉽지 않고, 아쉬운대로 영어라도 좀 해야겠단 생각도 있는데, 언어가 문제는 아니다.

 

변종모의 글은 달콤쌉싸롬한 초콜릿 맛이다.

속에는 조금씩 위스키가 담긴 초콜릿.

잇사이에 살짝 물고 혓바닥 위를 궁글리면 끈적한 초콜릿이 달착지근 묻어나오다가도,

와삭~ 씹는 순간 쌉쌀한 위스키 향이 입을 가득 메우는...

 

여행은 모든 것을 잊고 가자고 걷는 길이다.

치유를 목적으로 모든 뗏목을 두고 걷기 위해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

그러나, 뗏목은 머릿속에 늘 늘어붙게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외침이 진실되다.

 

여행지에 가서 거기 자기 친구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처럼 외로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럴거면, 거기 왜 갔니? 이렇게 묻고 싶다.

 

여행을 갔더니, 그리움을 떨쳐버리려고 갔더니,

거기서 극한 그리움을 만난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쿨한 마음으로 걸으려던 애초의 마음은 소실되고,

그리움에 몸부림치는 자신을 만나... 거짓말의 담배 연기만 씁쓸하게 내뿜는 책이다.

 

확신이 없어도 가능성이 희박해도 믿어보는 것.

그것이 약속의 의미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나는 그대로 움직여 보는 것.

그리고 확인해 보는 것.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지난 일.

어디 세상의 약속 중 과거가 있겠는가.

약속은 미래이며, 미래는 희망이다.

그리고 희망은 결국 우리 발로 찾아가는 것.(29)

 

약속은 미래다. 참 멋진 말이다. 희망적이고.

 

결국 이렇게 만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그동안 당신과 나 사이에 머물렀던 한 뼘의 간격은 얼마나 먼 것이었는지요.

우리 허물어버릴 것이 있다면 빨리 허물고 말죠.

괜한 오해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지.

각자의 앞만 보고 서로 등 돌려 사는 동안 당신이 그리워했을 나와

내가 그리워했을 당신은 더 이상 말하지 말기로 합시다.

이렇게 만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왜 그랬을까.

어차피 볼 거라면 하루빨리 만나지기를 바랍니다.(31)

 

그리우면 만나야 한다. 그러길 바란다.

알고보면 우리는 모두가 잠시 여행자... 이므로.

다음, 을 기약하기 쉽지 않은 존재들이므로...

 

"우리, 껌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말아요."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행복할까?(55)

자두의 '김밥'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그저 순간인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어쩌면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만 기억하며 살아도 짧은 인생이다.

그 짧은 순간, 섬광처럼 빛나는 불꽃을 보면서 오래오래 행복했던 밤.

우리는 자주 슬픔에 밀려 행복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며 산다.

당신이 외롭거나 힘들거나 괴로워도 당신이 품고 있는 행복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69)

 

정말 그럴까? 잘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 어떤 기분인가요?"

"반쯤 불안하고 반쯤은 행복하지요.

                     ...

        불안하지 않으면 행복하지도 않지요."

 

그렇다. 여행의 묘미는 불안감과 행복감의 혼합에 있다.

그 비율의 묘한 차이에 따라 여행은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한 것.

 

'같이'라는 말은 참으로 가치있는 말이다.

나는 결국 '같이'를 가치있게 지켜내지 못했지만,

가치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가치 있어야 진정 같이 있는 것.

 

있을 때 잘해. 이런 유행가 가사가 진리다.

 

반짝하고 잠시 마주하는 것에만 열광한 채 늘 가슴에 두어야 할 것들을 머리로만 생각하고 살았다.

나는 자주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소외시키며 살았다.

가끔 먼 곳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도 허전했던 이유.

 

왜 인간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불행한 동물일까?

 

삼백원을 주고 지어온 몇 봉지의 알약을 털어 넣으며 흔들리는 커튼을 쳐다봤다.

낡고 오래된 커튼은 도망갈 수 없는 운명처럼 억지로 붙들려 있는 듯 보였다.

때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숙명의 시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그러다가 그 마음 속의 시간들을 불쑥 몸이 대신 말해 주었다.

몸과 마음은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나는 또 이렇게 지나간 시간을 익숙하게 앓아내야 했다.

어느 날, 당신 생각이 나면 이유없이 며칠을 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정말로 아프기 시작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그림자처럼 붙잡고 아파하는 일.

순전히 당신을 위해 앓고 싶었지만,

어쩌면 나는 나를 위해 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라는 사람.

참...

그렇군요.

 

말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생각을 줄여야 했다.

상대방의 생각을 나의 의도대로 함부로 읽지 말아야 했다.

나의 생각이 나만의 것이 되지 않게 발설하는 일을 신중히 해야했다.

나는 자주 내 말에 내가 상처를 입었다.

"그때 차라리 침묵하며 당신의 말을 들었다면,

침묵으로 당신을 존중했다면,

나의 마음이 지금처럼 무겁지는 않았을 텐데."

 

어떨 때는, 몹시 미안할 때도 있다.

비트겐 슈타인의 침묵에게 말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던...

 

방금 헤어지고도 다시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한 적 없는데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멀리 있지만 항상 마음에 두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득히 멀어졌지만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자주 못 볼 사람이지만 꼭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사람.

당신은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나의 마음만 자꾸 부풀던 일.

그래서 가끔 반대편을 바라보며 위로하던 일.

결국 당신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전부인 일.

그것은 모두 내가 사랑한 일.

그랬으니 괜찮다.

십년 뒤에도 당신일 것 같으니.

그 하나의 사랑일 것 같으니.

 

천 년의 사랑...은 뻥이 심했지만,

십년 뒤에도 당신,

그 하나의 사랑, 이라고 현실적으로 말하니,

그 십년이... 현실적으로 아프다.

 

그대, 사랑하시오. 당신이 사랑한다면 사랑하시오.

그렇게 하시오. 당신은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오.

다만,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그대를 사랑해주기 바라지 않고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사랑하시오.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그리 오래도록 당신 곁에 머무는 것은 아니라오.

그러니 때로는 당신 마음이 그렇다 할지라도 한 번쯤 그 마음을, 그 말을 비밀로 묻어두는 것도 좋을 일이오.

그대, 언젠가 그대도 꼭 그대 같은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오.(225)

 

사랑, 에 대하여 이렇게 명령형을 쓸 수 있을까?

예수님도 아니면서...

그렇지만, 이렇게 명령형으로라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사랑, 그 앞에서 인간은 용기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저기, 당신의 시선이 끝나는 그 끝에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풍경들, 시간들.

그리고 그곳에 닿으면 그곳은 어느새 출발점.

아무리 걷고 걸어도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이 삶.

끝까지 걷는 것을 중요시 여길 것이 아니라

그곳까지 가는 동안 만나는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당신의 의지가 멈추지 않는 한 길은 끝나지 않으므로,

당신의 의도로 걷는 그 길 위에서 의도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또 걸어야 하는 일.

삶은 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는 것이다.

생이 끝날 때까지.

 

그의 사진은 어둡고 슬프다.

그렇지만, 그의 앵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사람이다.

 

결국 앵글에 사람으로 채우느냐, 풍경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여행의 목적은 달라지게 된다.

그가 사람으로부터 입은 상처의 치유는,

결국 사람이 도와주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앵글을 가득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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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변종모 (A lie of yearning for nobody)
    from 512 2012-10-14 14:57 
    노련한 여행자의 솔직한 이야기.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한국에 돌아오면 제일 처음으로 읽고 싶던 책. 다른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친구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몇 장을 읽고,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과 술을 한잔 마셨습니다. 목구멍까지 술이 차올라 찰랑거렸으니, 어쩜 술 한잔이라 하기엔 좀 과할 정도였을지도 모르겠군요. ...
 
 
 
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클리나멘 :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학 흐름'에서 알튀세르가 그 존재를 부각하기 전까지 비주류였던 루크레티우스가,

                세계는 형성되기 이전에 원자들이 비처럼 평행으로 떨어지는 상태에 있었다고 생각.

                평행으로 떨어진다는 조건은 원자들 사이에 어떤 마주침도 없는, 무의미한 상태

                어느 순간 이 원자들 가운데 어떤 원자가 평행에서 조금 이탈한 운동을 하게되고,

                평행으로부터 어긋나는 미세한 차이, 이 미세한 편차를 '클리나멘 Clinamen' 이라고 부른다.

                이 원자는 다른 원자와 마주치고,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을 읽으면 일상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난 생각들을 만나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테드 창의 이 책 역시 상당한 사고적 일탈을 맛보게 하는데,

그 일탈이 가져다 주는 것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철학적 의미의 고찰을 담고 있다.

아무튼, 궤도를 이탈하는, 어쩌면 주류를 포기하는 순간이라야만,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 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이 소설집에는 8편의 소설이 있는데, 중편에서부터 콩트까지 길이가 다양하다.

주제도 다양한데, 과학적, 수학적, 철학적 함의가 가득한 소설들의 내용을 SF나 판타지로 규정짓기엔 협소해 보였다.

말을 굳이 해야한다면 <사고실험 확장 소설> 정도가 될까?

환상적 사변의 확장을 통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를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읽기 쉽지 않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계속 했다.

이 소설을 영어 원문으로 읽는다면, 훨씬 감동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가 이런 수준의 소설을 영어로 읽을 수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영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수준은 더더군다나 아니지만,

문장, 문단들의 유기적 논리성이 신선한 통찰을 불러옴을 읽을 때,

특히 고딕체로 강조한 용어들이 한국어의 문맥에서는 전혀 '강조'의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해 안타까울 때,

왜 이 소설이 그토록 칭찬받아 마지 않았던 책인지를 읽어 내려던 내가 품는 의문은, 저것이었던 모양이다.

영어로 된 이 소설을 영어로 읽었을 때, 그 감동이 훨씬 컸을 것이라는... 번역의 한계.

 

여드름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병처럼 보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입니다.(340)

칼리그노시아 조치를 받은 사람들은 패션이나 미의 문화적 기준 등에 대해서 결코 무감각하지 않습니다.(341)

 

이런 고딕체 단어들을 만날 때마다, 동명사나 부사어가 맨 앞에서 문장 전체를 감고 있을 영어 문장이 떠오른 것이다.

 

가장 재미있는 사고 방식을 만나게 된 소설들은 책 제목이 된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와 '72 글자'였다.

(단편과 책 제목의 차이를 구별하려는 의도는 읽히지만, 굳이 '네 인생의 이야기'와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구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어차피 소설집 제목은 'Story of your Life'에 '그 외'를 덧붙인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였으니 말이다.)

 

영어 알파벳, 한글 등을 쓰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표의문자>의 체계일 것이다.

한자는 한 글자로도 하나의 사상을 담고 있을 수 있으며, 그 복잡한 한 글자 속에서 다종다양한 의미를 풀어낼 수 있는 언어다.

중국계였던 작가가 한자를 잘 이해하고 있어보이진 않지만,

그의 <어의문자>라는 개념은 <표의문자>인 한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글자가 뜻과 대응되는' 표의문자와는 또다른 의미를 담는다.

그 문자는 '어순'과 발화'와 무관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관계처럼, 글자를 보고 직관적으로 그 내용을 알 수도 있다는 상상력.

언어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면서 '비음운적 언어로 사고한다는 개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하다.

인간의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발화와 이해의 방식은 동일한 것.

 

인과적이고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세계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 세계를 문법화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사고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고실험 확장 소설>이란 이상한 범주를 만들어 본 것일 뿐이다.

 

'72글자'에서는 '이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천착한다.

 

이름 자체는 그것이 아무리 강력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경험할 능력이 없는 초심자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다.

인간은 이름의 산물인 동시에 매개체이고, 내용물인 동시에 그릇이다.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반향 과정 속의 메아리로서 '이름'은 인간에게 존재한다.

 

그래서 시뮬라시옹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 이름을 버린다.

아바타를 내세우듯, 새로운 이름 속에 새로운 '내용물'을 담으려 하는 것이다.

그 '새로운 이름' 안에서도 '유지되는 자신'이 있지만, '새로운 울림' 속의 메아리로서 이름은 기능한다.

 

'이해'에서도 새로운 언어 설계를 꿈꾼다.

입 밖에 내지 않는 언어 커맨드를 통해, '말'을 직감한다는 상상력.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는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다.

평범하고 당연하다는 생각에 의문을 던지고,

우리의 사고는 '얼마나 의아한 세계인가?'를 묻는 것 같다.

종교와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충고를 주는 소설.

 

'바빌론의 탑'은 묘사가 아름답다.

태피스트리처럼 보이는 경치를 묘사하지만,

인간 하나보다 더 가치로울 수 있는 벽돌 한 장의 의미,

결국 인간의 사고, 욕망이 인간의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시스템이란 비판도 읽을 수 있다.

 

'영으로 나누면'은 수학은 트릭이자 오류이며 자가당착의 모순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세상은 살펴 보면, 모순된 체계의 반복이란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한 순간, 모두 환영이었음을 깨닫는다면,

글쎄, 세상은 끔찍하지 않을까?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는 재미있다.

루키즘에 반대하여 '칼리그노시아'를 끌어들인다.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시스템.

그래서 '칼리를 끄면' 못생긴 것도 괜찮게 보인다는 가정을 한다.

결국 칼리를 끄는 것은 상상이고, 철학을 통하여 <멍청이 회로>를 꺼야 하는 것이다.

 

그의 외침은 독자에게 깨달음의 순간을 준다.

 

"안돼, 너희들이 지금 뭘 가지고 있는지, 알아?"

 

이 말, 시타르타가 했던 말의 오마주겠지?

 

 

다시, 루크레티우스로 돌아가서,

모든 것이 '평행'할 때는 무의미하던 것이,

'클리나멘'의 순간 이후, 모든 것에서 새로운 의미와 질서를 발견할 수 있게된다.

테드 창의 이 소설들은 지적인 독자의 대뇌 속에서 '클리나멘'의 순간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기에 충분하다.

 

결국 테드 창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거다.

 

'상상해,

거기 새 세상이 펼쳐지고 있어.'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

거기서, 상상을 시작해야 한다.

한 마리 눈먼 작은 벌레가 되어서...

 

어느 해 늦가을 어느 날 오후,

나는 경부선 급행열차를 타고 있었다.

 

열차가 수원을 지날 무렵,

서호에 반사된 현란한 저녁해가

차창 가득히 어떻게나 눈부시던지,

 

나는 골든 델리셔스라는

사과덩이 속을 파고드는

한 마리 눈먼 벌레가 되었다.

 

추수가 끝난 들녘도

잎이 진 잡목숲도, 인가도,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과육 속이었다.(김종삼, 저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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