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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님과 나는 이웃 사촌
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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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동상~

잘 지내지?

오랜만이야.

 

자네 가고, 책이 나왔더랬는데,

못 읽겠더라고.

그 글들은 이미 자네 서재에서 숱하게 봤던 것들이겠지만,

지금은 못 읽을 거 같았어.

 

왜, 그런 거 있잖아.

헤어진 옛사랑 생각하면

울컥, 치미는 맘이 있어서,

애써 딴생각 하는 그런 거 말이야.

 

근데, 어제 '쫌만 읽다가 맘아프면 안 읽으면 되지.'하고 책을 펼쳤어.

근데, 맘이 아픈 거보다는,

킥킥거리면서 읽게 됐다고. ^^

남은 아픈데, 왜 웃냐고?

이제 구박도 못하지만... 그래도, 이제 안 아프지?

 

자네 동생 만순이가 요즘에도 가끔 글을 올려.

만순이는 나랑 직업이 같지만,

(솔직히 만순이 글은 재미 없어. ㅋㅋ)

 

그래도 기특하잖아.

빈 의자 남기고 먼길 떠난 언니한테

꽃이 피었다고, 비가 온다고 안부도 전하고 하니 말이야.

 

아~

만두 동상이 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댓글도 달아주고 하던 시절이 그립다.

그땐 리뷰 당선되면 돈도 5만원인가 벌어서,

이벤트하고 하면 늘 이동네에서 놀던 동상도 잘 끼어들고 했는데... 그치?

요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왜, 알라딘 초창기에 '달인'이 있었잖아.

뭐, 내가 '달인'되고 서재 개편되면서 사라져버렸지만 말이지. ㅋ

그때 수학여행 사진인가, 토끼같은 앞니 내놓고 찍은 사진 올려뒀던 기억도 난다.

아마 빨간 점퍼 차림이었던가~.

 

이제 그 동네 간 지 햇수로 3년일세.

왜, 그동네 가면 전부 '학생'이라고 부르잖아.

올해 내가 '학생부장'이걸랑.

귀찮은 넘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혼내줄게. ^^

그리고... 좋은 넘 있으면, 확 잡아.

기회는 한번 가면 안 오잖아. ㅎㅎㅎ

 

외롭던 시절에... 알라딘이 있어서 힘이 됐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자네 책도 버젓이 나와서 읽게 되었지만,

자네의 빈 자리가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네.

 

장르 소설에 대한 애정도 자네를 따를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숨어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뻔뻔할까.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기 위해 누군가 피를 토하며 썼을 글을

읽지 않고 모른 척 외면한 죄,

책을 사랑하며 많이 읽는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이렇게 반성문을 쓰기도 했잖아. ^^

참 착한 마음이더라.

 

있잖아.

자네도 봤을지 모르는데,

'막 돼먹은 영애씨'라고 있거든.

김현숙 나오는...

그 드라마 보다가 난 가끔 자네 생각나더라. ㅋ

니네 엄마, 아빠, 만순이, 만돌이 가족이랑, 그집 식구 인원이 똑같아.

그리고 지지고 볶고 사는 거도 거기서 거기야. ㅎㅎㅎ

 

자네가 흥얼거린 유행가 가사들은,

너무 친근한 것들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슴에 젖어드는 가사들이야.

 

이 세상에 태어나 당신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돌아가는 이몸은 낙엽이라

아, 아, 떠나는 이몸보다 슬프지 않으리

 

야, 이거 읽다가 눈물이 확 나더라.

오라버니를 울리다니...

만두 동상, 이제 오라버니도 아닐세. 자네가 선배가 돼 버렸네.

 

그래도, 첫키스 이야기하면서 조용필 노래 하니깐, 왜 그리 웃기냐. ㅎㅎ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암튼, 누구라도 한번 꼭 껴안아 주길... 바랄 때, 못 안아줘서 미안해.

지금이라면 한번이라도 꼭 껴안아 주러 갔을 걸... 이러지만,

마음만이야.

 

만두 동생의 몸은 저질체력으로 맨날 고생했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깐,

왜 헤어져서 짠해가지고 생각도 안하던 옛사랑도,

앨범 같은 데서 사진으로 먼 훗날 지나보면,

참 좋은 시절이었구나...

이럴 수 있는 것처럼,

좋더라.

자네 글이 이렇게 책으로 나와 있다는 게 말이야.

 

부디, 아프지 않은 그곳에서,

이제 별다섯 가득찬 인생을... 맘껏 향유하길 바래.

어떻든간에 같이 만날 거니깐. ^^

뭐? 지옥가면 못 만난다고?

피~

그래. 나중에 나중에 만나면, 그땐, 내가 꼭 안아줄게.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기다리고, ㅋ

못 기다리겠으면, 만돌이 수준 하나 꼬셔서 잘 살고 있으라고~

 

오랜만에 말이 길다.

잘 살아~

나중에 꼭, 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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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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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던 대학 시절,

하숙집에서 고시공부하는 법대 형이랑 친했다.

그 형은 천재 스타일인데, 뭐 관심이 다양한 편은 아니었다.

가끔 내 방에 와서 놀다 가곤 했는데, 담배를 한두 대 피우곤,

이 책, <광장>을 빌려가며, 날 '운동권'으로 부르곤 했다.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을 뿐이지, 딱히 조직에 속한 운동권은 아니었던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진 않았다.

그 선배는 지금 고시를 패스해서 사법기관 어딘가에 근무중이다.

과연, 그 선배는 지금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난 광장을 만날 때마다,

서울 법대를 나와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인 사시를 패스한 그 선배가

읽었던 광장은 어떤 소설이었을지가 몹시 궁금하다.

 

죽기 전에 한번 만날 기회가 있기도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 한번 물어볼 거다.

 

선배에게 '광장'은 무엇이었고,

선배가 지금 선 자리는 어디냐고...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장용학의 지나치게 고압적인 관념어들과

손창섭 류의 밑바닥의 삶,

그렇지 않으면 초기 김동리의 토속적인 세계에 식상하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지적으로 충분히 세련된 문체로,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김현의 해설, ‘사랑의 재확인’ 중)

 

이정도면, 광장의 리뷰로는 더 쓸 말이 없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서정시보다 더 진한 감정적 결을 드러낸 문장들로 가득해서,

적어두고 싶은 감정이 가득 들었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바다는 그 쪽에서 활짝 펴진, 눈부신, 빛의 부채다.

 

 

펼쳐진 부채가 있다. 부채의 끝 넓은 테두리 쪽을, 철학과  이명준이 걸어간다.

다음에, 부채의 안쪽 좀더 좁은 너비에, 바다가 보이는 분지가 있다.

그의 삶의 터는 부채꼴, 넓은 데서 점점 안으로 오므라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안고 뒹굴던 동굴이 그 부채꼴 위에 있다.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친 그는 지금 핑그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이 소설의 시작에서, 바다가 부챗살처럼 눈부시게 펼쳐진다.

이 소설의 대미 역시, 부채와 바다의 은유로 마물려진다.

수미상관 기법이라도 운용하듯, 그렇게 소설을 쓴다.

그리고 지식인의 한숨이 회색인의 시대를 가득 메운다.

 

책장을 대하면 흐뭇하고 든든한 것 같았다.

알몸뚱이를 감싸는 갑옷이나 혹은 살갗 같기도 하다.

한 권씩 늘어갈 적마다 몸 속에 깨끗한 세포가 한 방씩 늘어가는 듯한,

자기와 책 사이에 걸친 살아 있는 어울림을 몸으로 느낀 무렵이 잇다.


“사는 것처럼 사는 법이 좀 없을까요?”

“자넨 아직 패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나?”

“패라니요?”

“왜, 미스를 할 때마다 패 하나씩 빼앗기는 놀이 있잖아. 자넨 아직 한 판도 안 했단 말일세. 아니 내가 잘못 알았나?”

“아닙니다. 아직 한 번도 미스가 없지요.”

“그러니 되지 않았나? 큰소린 치지만 내 손엔 남은 패가 사실은 한 장도 없어. 어쩌면 도대체 나한텐 패가 꼭 한 장 뿐이었는지도 모르지.”


예감이란 말이 있다. 자기가 애쓰지 않는데도, 어떤 일이 다가옴을 살갗으로 느기는 걸 예감이라 부른다.

자기 삶이 어떤 나무에서 익을대로 읽은 끝에,

곱다랗게 자리잡고 있던 가지에서 뚝 떨어지기 앞선 얼마 동안,

새로운 움직임을 마련하는 숨결이,

아무래도 본인에게 새어나게 마련.

두터운 벽을 가진 방안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듣는 사람에게 안타까움을 주는 게 사실이라면,

문득 귀찮아져서 엿듣기를 그만두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이 소설의 두 가닥은,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이념과 체제다.

작가는 사랑에 대하여 끝없이 천착하면서도 그 허무함에 도리질친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

그건 얼마나 큰 잘못인가.

사람이 알 수 있는 건 자기뿐,

속았다 하고 떼었다 할 때,

꾸어주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고 조르는 억지가 아닐까.

‘사랑’이라는 말 속에, 사람은 그랬으면 하는 바람의 모든 걸 집어넣는다.

그런, 잘못과 헛된 바람과 헛믿음으로 가득찬 말이 바로 사랑이다.

 

 

죽기 전에 부지런히 만나요, 네?


아,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나다니.

죽기 전에 부지런히 만나요, 네?

그래. 이런 마음이 사랑이다.

어차피 유한한 인생.

부지런히 나눠야 사랑이다.

 

그의 정치관, 체제에 대한 고민이 이 소설의 큰 고백인 바,

그의 고민이 적나라한 부분이 '인민의 역할'론이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린다.

 

인민이라구요? 인민이 어디있습니까?

자기 정권을 세운 기쁨으로 넘치는 웃음을 얼굴에 지닌 그런 인민이 어디있습니까?

바스티유를 부수던 날의 프랑스 인민처럼 셔츠를 찢어서 공화국 만세를 부르던 인민이...

그때 프랑스 인민들의 가슴에서 끓던 피,

그 붉은 심장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 붉은 심장의 설레임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우리 가슴속에서 불타올라야 할 자랑스러운 정열, 그것이 문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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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3-3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어떨까요?
죽기전에 부지런히 사랑하세요, 네?^^

글샘 2012-03-31 15:05   좋아요 0 | URL
그것도 좋네요. ^^
광장을 정말 여러 번 읽었는데, 이번엔 저 구절이 보이데요.

페크pek0501 2012-03-30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만나니 반갑네요.
"사람이 알 수 있는 건 자기뿐," - 저는 자기도 모르는 게 인간이라고 봐요.ㅋ
잘 정리된 글, 잘 읽고 갑니다. ㅋ


글샘 2012-03-31 15:06   좋아요 0 | URL
잘 정리된... 은 아니구요. ㅎㅎ
좀 오만한 시절의 최인훈이죠. 자기를 알 수 있다고 여기던...
 
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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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는 잠잘 때 쓰는 물건이며,

꿈나라를 받쳐주는 물건이다.

오래전부터 베개는 꿈의 내용에 일종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상상이 있었다.

그래서 베고 자면 신선세계를 노닌다는 유선침 游仙枕의 상상이 있었고,

베고 자면 원하는 꿈에 들 수 있다는 여의침 如意枕의 상상도 있었다.

그리 속 책 베개에 잠든 주인공의 모습은 무엇을 전달하고 있을까?

 

(이재관, 오수도)

 

책을 베고 잠든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 또한 재미있는 발상이다.

저 사람이 무엇을 희망하고 책을 베고 누웠던 것일까?

유유자적한 속에서 옛사람의 은은한 욕망을 상상해볼 만 하다.

 

이 책의 장점은,

각 그림의 세부도를 보여주면서 한시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도연명의 <귀거래사>

소식의 <적벽부>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적벽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

 

손님께서는 이 물과 저 달을 아십니까?

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아직 모두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나 끝내 줄지도 늘지도 않았습니다.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천지가 한 순간도 변치 않을 때 없으며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물과 우리가 다할 때가 없습니다.

무엇을 부러워하십니까

하늘과 땅 사이 모든 사물은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내 소유가 아니면 터럭 하나도 가질 수 없으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 밝은 달은

들으면 소리 되고 보면 그림이 되어,

가져도 말리는 이 없고, 써도 없어지지 않지요.

이는 조물주가 만든 무진장이니,

내가 그대와 함께 누릴 것이오.

 

손이 흔연히 웃으며 잔을 씻고 다시 술을 따른다.

생선안주 과실안주 다 떨어지고 술잔과 접시만 이리저리,   杯盤狼藉

서로를 베개삼아 배 안에 드러누워                                 相與枕籍乎舟中

동녘 하늘 이미 밝아지는 것도 몰랐더라.                         不知東方之旣白

 

정말 한번 저렇게 배반이 낭자토록

상여침적하여 배안에서 동방에 해돋도록 취하고 싶은 마음이다...

 

조선 후기 문인 홍길주의 '숙수념' 이야기도 재미있다.

 

가상 공간 숙수념을 다녀온 벗들은,

"내가 알겠소. 숙수념孰遂念 (누가 생각을 이루리)가 아닌 숙수념 夙遂念(일직이 생각을 이루었네)도 아닌

숙수념 孰睡念(누가 생각을 꿈꾸었나) 이었군?"

 

김정희의 불이선란의 '불이선'의 세계도 좋다.

보살들이 어떻게 불이법문에 들겠소?

나는 것과 죽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그러나 법은 본래 나는 것이 아니니, 멸하는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무생법인을 얻으면 불이법문에 들어가게 됩니다.

 

 

나지 않는 것,

생각을 내지 않는 것.

분별을 내지 않는 평상심.

나뉘지 않는 참된 존재.

 

그걸 얻기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동양화 속에서 만나는 한시들을 읽는 일도 재미있고,

옛 정취를 느끼는 일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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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교육 이야기 -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개정판
도종환 지음 / 사계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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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보려고 애를 써도,

교육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그걸 도종환 선생은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올리는 일을 하는 거나 같다고 말한다.

시지프스.

매일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밀어올림은 운명이다.

피할 수 없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예쁜 꽃이 피었어요.'하고 말을 걸면,

정작 어머니쪽은 '제게 무슨 꽃인지 아니? 00꽃이야. 잊어버리면 안돼.'하며

감동은 제쳐 놓고 우선 지식을 주입한다.

우리 아이에게 예쁜 꽃의 이름이 중요한지,

아니면 그 꽃을 통해 아름다운 세계관을 갖는 것이 중요한지 생각해볼 문제.(시나가와 다카노, 일본 아동심리학자)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어른들은 지식을 사랑한다. 자기 스스로는 무지하기 짝이 없으면서.

 

당신이 비를 내리는 일처럼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일러 주시고

아이들의 이름을 꽃처럼 가꾸는 기쁨을

남몰래 키워 가는 비밀 하나를

끝내 지키도록 해 주소서(김시천, 시인)

 

아이를 바라볼 때,

꽃 한 송이를 가꾸는 심정으로,

그렇게 가르치면 아이들이 덜 엇나갈까?

 

철학자는 삼단 논법으로 말하고,

화가는 형상과 화폭으로 말하며,

정치경제학자는 통계 수치를 이용하여 독자의 이성에 다가가지만,

시인은 생생하고 선명한 현실 묘사를 이용하여 독자의 마음에 다가간다.(벨린스키, 러시아 문예비평가)

 

사람마다 성격과 방향성이 다르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어른들을 판단할 때,

자기 중심적으로 충고하고, 탐색하고, 해석하고, 판단하지 말 노릇이랬다.

 

단과 대학별로 학생들의 만족도를 조사하면,

신학대학, 음악대학, 교육대학 순이고,

법학대학, 사회대학, 이과대학, 상경대학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 하고 싶어하는 일과,

부모나 학교에서 강요하는 것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결과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서울대를 하나라도 더 가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식한 일인지, 이 결과는 보여준다.

하버드 대에 진학하려던 학생이 떨어졌다.

의대에 가겠다는 아이가 헌혈 한 번 하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다이애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전문

 

인간이 용서받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

무한한 가능성 자체인 아이들은 끊임없이 용서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순연한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아무 조건없이 용서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 위에 군림하거나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길로 홀로 갈 수 있을 때까지 안내하고 뒷바라지하러 와 있는 까닭이다. (203)

 

교사는 어차피 '거대한 절망' 앞에 선 시지프스와 같은 처지다.

그러나, 교사들이 불안해할 때 아이들은 더 두려움에 떨 것이다.

교사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한번이라도 더 웃고, 행복해할 수 있도록,

교사들은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어야 한다.

아기를 뱃속에 넣고 사는 임부의 처지와

매일 아이들과 만나며 사는 교사는 같은 처지임을

아이들의 찡그린 얼굴을 만들면서 나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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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12-03-2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2 아들의 성적을 걱정하고, 초2 딸의 반항과 조급증에 짜증내고 절망한 아침,
글샘님의 글에 있는 '교사'가 '부모'로 보여... 읽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부모는 어차피 거대한 절망 앞에 선 시지프스와 같은 처지다.
그러나, 부모가 불안해할 때 아이들은 더 두려움에 떨 것이다.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웃고, 행복해할 수 있도록,
부모는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어야 한다... 책상 앞에 붙여두고 아침저녁으로 읽어야겠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는 한 주 되시길...

글샘 2012-03-26 10:37   좋아요 0 | URL
애들 금세 자랍니다.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지난 시절... 아이한테 불안해서 못할 소리 많이 했죠.
이제 대학생 되고 나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더라구요. ㅎㅎㅎ
책세상님도 좋은 것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으시길...
 
근사록 - 덕성에 기반한 공동체, 그 유교적 구상
한형조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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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의 인기 학문이라고 하면 양주와 묵적이었다고 한다.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해서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맹자)

 

양주는 '제 한 몸 건사함도 어렵다'는 쪽이고,

묵적은 '제 한 몸 희생함을 두려워 않는 겸애의 세상을 만들자'는 쪽이다.

둘다 주장은 다르지만 멋지다.

그걸 맹자는 봐주지 못하고 눈꼴이 시었던 모양이다.

 

시대가 다시 혼란스러워지자 '주자학'이 유교적 질서를 새로이 편성한다.

유교 시대의 사서 삼경 교과서를 새로이 관찰하려는 시도의 하나가 '주자학 텍스트'인 '근사록'이다.

 

논어의 자장편에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이란 구절이 나온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간절히 묻고 뜻을 가까이서 생각하면 인은 그 가운데 있다.

'뜻을 가까이서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대학의 '격물치지'의 '격물'에서 말한 '사물을 궁구하여~'와 비슷한 의도겠다.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통하여 진리에 다가가는 일.

 

 

그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다가가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역사적 저작이 있다.

바로 '주역'이다.

 

무위의 자연세계 혹은 마음의 내면세계로의 퇴행을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 유위의 인간세계로의 진취를 요구하는 애매성은 자연도덕주의의 불가피한 운명이다.(217)

 

자연 세계의 원리를 '태극'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음과 양'이 순환하는 것이 태극이라는 입장과,

'양이 있어 음이 있다'는 입장은 또한 상대적인 바,

이 책을 읽으면서, <음과 양>처럼 '유교'와 '도교', '유교'와 '불교'가 선 자리는

양면성을 띤 <상반성>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유사한 개념을 어떻게 끌어다 쓰느냐의 <상대적> 위치에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했다는데,

이 언표에서 가장 포인트는 <죽어도>라고 생각한다.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연인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그 사랑에 대한 <영원 불멸>이 자리잡은 것이다.

곧, 그 '도'는 <절대적, 필연적> 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처럼 <상대적> 위치에서, 그 도는 <우발적> 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공자와 성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언술 자체가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한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정말 사랑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로운 것일까?'하는 입장을 버리고 뛰어들어 들어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한형조는 서문에서 

 

손쉬운 동조는 위험하고, 쉬운 설득은 무력하다.

 

혹, 그동안 유학을, 너무 이너 서클에서 '당연하게' 설교하지 않았을까.

"한국의 전통이고, 거기 좋은 말씀만 가득하구나"의 안의함 같은 것.

무릇 이방의 사유는 이방의 것으로, '불가해하다'고 적어주는 곳, 거기가 소통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반대편의 경계도 잊지 않아야겠다. '낯설다'는 것이 혹 진리의 징후일 수도 있다.(7)

 

이렇게 읽기에 낯설어하거나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위험성을 짚어 주고 있다.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수험서, 개설서로 기능하였을 근사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역'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자연도덕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주역에 기대고 있는 사상인데,

때로는 읽으면서, 견강부회, 자기 합리화, 아전인수의 방식을 끌어들이기 가장 좋은 책이 주역이란 생각도 든다.

무한한 상상의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이 주역이라면,

그 상상의 바닷속에서 자기에게 도움되는 것만을 끌어들이는, 아전인수 역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중서는 위기지학을 '義'로, 위인지학을 '利'로 나누려 하지만,

그것을 상주고 벌주는 판단 주체 역시 부족한 인간 아닌가. 역시 견강부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어디에 포인트를 주어 써먹을 것인가, 그 철학의 입장이 중요한 것이지,

그 이론의 완성도는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조선의 성리학은 <왕권 강화>를 위한 유교적 질서를 <웅변>하고자 하였던 학문이었다.

그러나... 그 웅변의 시도는 '궤변' 취급을 받았다.

태조를 이은 태종도 '종법' 질서를 무시한 3남이었고, 세종 역시 형들을 제치고 승진한 케이스의 '3남' 이었다.

그렇지만 또, 성리학적 질서를 위하여 <문자 창조>까지도 불사하였던 세종과,

그 문자를 통한 '소학, 3강행실도' 등의 폭탄 투하는

<근사록>의 연구가 중국, 일본을 뛰어넘는 유일한 국가로 조선을 자리잡게 하기도 했다.

 

이이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가 <근사록>을 중시하였다면,

이황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는 <심경>을 중시하였다고 한다.

같은 출판사에서 심경도 연구한 자료가 있으니 읽어볼 법 하겠다.

 

이창일이 쓴 부분에서 매슬로와 비교한 부분은 재미있다.

기존의 병리학적 심리학 모델을 긍정적 인간발달론으로 긍정적 관점으로 바꾼 그는

자아 실현한 인간의 특성을 재치와 유머로 드는데,

근사록에서는 '근엄과 교훈'이 가득하다는 것.

왜 밥상머리 교육에서 그토록 근엄과 교훈이 가득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근사록>이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은 '극히 제한된 시기의 인간에 대한 증언'으로 읽어야 한다.

그것이 진리가 아님은 물론이지만,

그 시기의 인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배울 점이 많은 것이다.

 

특히, 조선 왕조가 500년을 넘게 연명하였고,

그 사상적 바탕이었던 성리학적 질서는 왕권강화의 다른 짝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리고 <한국은행 총재> 역시 아직도 <한국>의 사상적 바탕에는 이황과 이이가 중심이라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왕조시대, 왕조를 떠받치고 있던 사상적 기초자를 지폐에 떡하니 집어넣은 행태를 보면,

성리학에 대한 연구는 차치해 버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넓혀나가서, 성리학의 현대적 한계와 의의를 밝히는 일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기반이 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주자학의 현재적 의미를 발굴>하려는 시도로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

이창일 역시 '선험적 질서가 가져온 선험적 폭력에 대해서는 괄호 속에 넣고자 한다'고 명백히 밝힘으로써,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피상적 비판이 이 책의 주 논점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주역을 통한 자연론적 토대는 '가깝고 친근한 것에서 하늘과 땅의 의지가 관철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변한 근사록,

그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필연성에 기초>했다는 약점을 짚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리학에서 삶의 길을 바라보는 일도 필요하다.

 

완미 玩味, 에서처럼,

가지고 놀고 맛보는(완미) 감각적 경험처럼,

내적 자각에 이르는 즐거운 길, 도에 이르는 양식으로서 앎의 표준과 행동의 준칙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공부하지 않으면 늙고 쇠약해진다...는 선현의 가르침은 얼마나 지당하고 아름다운가 말이다.

 

함양 涵養, 에서처럼,

물에 젖고, 빠지고, 적시고, 담그는 행동을 통해서 주객의 일체를 경험하고, 사건과 환경이 일치되는 삶을 누리는 일은

또한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세상과 인간이 이토록 단절되어 있고,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완미, 함양같은 가치를 가슴에 품고 있다면,

          서로 물들고 번져서 소통의 세상을 꿈꾸는 일도

          다만 꿈으로만 치부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성리학적 질서를 설명하려는 <근사록>을 새로이 읽는 일,

역시 함양와 완미의 재미를 얻는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이 책의 다른 짝 <심경> 역시 언젠가 읽을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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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3-3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록의 리뷰도 근사한걸요~^^
전 심경을 읽고 퇴계 어르신이 쫌 좋아졌다는...
그 전에는 활인심방만 죽도록 외웠었다는...

글샘 2012-03-31 15:0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눈물젖은 김밥에 비하면... ^^
절문이근사.. 참 좋은 말이네요.
심경, 도 읽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