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상대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유정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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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말은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놓여 소통의 문을 연다.

그렇지만 상대의 말을 듣기 싫을 때, 또 말은 벽이 되기도 한다.

 

내가 볼 때, 박근혜처럼 한 말 또하고 또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내 귀에서 흩어지고 말지 대뇌까지 전달되지 않는데,

어느 식당에서 박근혜를 무지 사랑하는 아줌마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비방하는 말을 들으니 또 그이에겐 박근혜의 말들은 생명수와 같았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말'은 소통의 기능보다는 벽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의 폭풍은 김용민이었는데,

조중동이 악의적으로 확대해석 한 것을, 특정 집단이 과대포장하여 방송까지 도배한 것으로

김용민은 최단 시간에 최악의 정치가로 등극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bird-world-party는 급조된 것이므로 무시하고)이 제1당이 된 것은,

박근혜의 승리라고 볼 수 없다.

야당 제1당인 민주당이 너무도 바보스런 행보를 보였기에, 국민은 '차악'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와중에 김용민이 당하는 걸 보고, 속수무책 얻어터지고 있었던 걸 보면... 한심한 당이다.

김용민의 발언이 정상적 발언은 아니지만,

미군이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적군에게 폭행과 추행을 범했을 때 있었던 욕설이었다는 맥락에서 보면,

전범에 대한 욕설로 볼 수 있는 개연성이 더 큰 것이다.

그걸 맥락 제거하고, 여성을 강간하는 변태로 해석해버리고, 언론은 그걸 대서특필한 거라고 하니, 한심하다.

 

그렇지만, 김용민과 김구라의 '언어 행위'는 기록으로 남아 그들의 발등을 찍었다.

도대체 정치적 비판의 언어가 제대로 소통된다는 것이 한국에서 가능한지... 의문이다.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에 힘입어, 이번엔 소통과 공감에 대한 책을 썼다.

(요즘 서울대 교수들 신났다. 책의 품질에 비하여 판매고는 무지하다. ㅠㅜ 곽금주, 김난도, 최재천, 유정아까지... ^^)

이 책은 뭐, 뾰족한 매력이 넘치는 책은 아니다.

그리고, 말하기에 큰 도움을 주는 책도 아니다.

이명박의 월요일 주례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그의 언어 행위가 주는 한계를 적었다.

(참 힘들었겠다. 그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일은... 휴 =3)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믿는 놈은 바보다.

정치적 언술, 특히 대통령의 말은 번지르르한 '수사'로 뒤범벅이 되었기 때문에,

언표의 겉을 휩싸고 있는 질펀한 조청의 늪을 걷어 내야 속내가 보이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싼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였다... 의 속내는 미국이 소고기 사라고 졸라 압박했다... 이며,

국가 경쟁력을 위하여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의 속내도 미국이 무지 압박했다... 이고,

언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미디어법을 통과시켰다... 의 속내는 미래를 위하여 언론을 장악하겠다... 처럼

앞의 수사는 뒤의 속내를 은폐하기 위한 위장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순진하신 유정아 님은...

대통령보다 무지하게 고매하신 조선 임금의 정치적 언술을 고대로 믿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걸로 보아서,

현대적 비판 능력은 발달되어 있으나, 조선 시대의 봉건적 충성심은 그대로 간직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훈민정음 글자가 역병처럼 번져나가 시중의 어여쁜 백성들이 익히고 깨닫고 알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고 싶은 것이 생기도록, 욕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왕의 대사.

설령 그것이 기존의 체제를 위협하더라도말이다...

그건 내가 여태까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킹스 스피치였다...(14)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세종이 훈민정음으로 찍어낸 책이 바로 조선건국의 피비린내를 정당성으로 왜곡한 '용비어천가'이며,

백성의 행복은 안중에 없고, 성리학적 질서의 충, 효 수직질서를 강요하기 위하여 '소학 언해, 삼강행실도, 두시언해' 등을 마구 찍어 돌렸음을 볼 때... 기존의 체제 위협 운운은 '킹스 스피치'의 수사를 그대로 믿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세종 실록을 보면, 세종 시절에 합법적 사형집행이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공포정치, 공안정치의 선도 주자.ㅋ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벽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다.

 

극한의 어려움을 겪은 일이 없을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낮은 곳까지 떨어져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힘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간혹 낭만적 경항도 보인다.

 

넘치지 않되 함께 달콤해질 수 있는 삶.

 

이걸 진정한 연대의 삶..이라고 이름 붙이긴 좀 낯 간지러운데...

이 땅의 천대받는 용산, 평택, 강정마을에 연대...의 소통을 보내진 못할 망정, 함께 달콤해지는... 이야기는 좀 그렇다...

소통을 물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다만 진행되는 것이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고, 수정되고 반성하면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노력과 반성이 찾아가는 자리는 역시 낮은 곳이기 어려운 모양이라 많이 아쉽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격조있는 스피치>가 밑바닥 삶과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서 모르는 것인지 몰라도, 진정한 평등함에 다가가는 모습이 아쉽다.

 

소통에는 이명박의 한계를 말함으로써 다가설 수 없는,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나누는 모습을 보여 줘야 비로소 문이 열리는 것도 있는 법인데...

(민주당이 하는 뻘짓이 그렇다. 이명박의 한계를 말하지만,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거나 누구와 비교 대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로서 존재한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비로소 입을 뗄 수 있게 된다.

그 자신감을 되찾는 길이 바로 입을 떼고 좋은 스피치를 하는 시작이다.(132)

 

이것이 한국인들이 말하기에 능하지 못한 이유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작가는 개인적인 문제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 조지 6세를 굳이 들먹이며 이야기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내세우다가는 왕따 당하기 쉽다.

조직 내의 조용한 일원, 쥐죽은 듯 찍소리 말고 있어야 하는 회의 자리.

여기 적응하는 일이 더 시급한 게 한국의 회의 문화 아닐까?

말 많은 놈 빨갱이고 감옥가던 시절은... 옛날이 아니다. 김용민과 김구라를 보면 된다.

현재 진행형으로 <나>의 스피치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유정아가 가장 멋진 강의를 펼친 것으로 기억되는 건, <질 나쁜 연애>란 시를 낭송한 그 강연이었을 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눈높이에 맞춰, 온실 속의 화초가 가능한 한 낮게 <질 나쁜> 사람들 이야기를 들먹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배에게 배우는 공통 화제가 궁할 때, 벗어나는 법, 이건 좀 배워둘 법 하다.

그 사람의 하루를 생각해 보는 것.

그래서 또 영화 써니를 끄집어 들인다.

소통을 위하여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야 함은 기본이다.

 

김훈이 <내 젊은 날의 숲>에서 '꽃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디 그러한 것'이라고 했단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단다.

무엇이든, 온몸으로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말하는 일에는 언제나 결핍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 겪어본 자만이 지적인 언어, 격조높은 언어는 아닐지라도,

삶의 언어로 말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교수의 번드르르한 말보다,

시골 아낙의 투박한 몇 마디가, 인생의 묘미를 함축하고 있는 수도 있는 법이다.

 

불통의 시대, 공감하지 못하는 시대를 만나, 소통과 공감에 대한 책을 쓴 것은 가상하지만,

작가가 온몸으로 꿰뚫고 지나간 이야기를 쓰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신경민 앵커의 코멘트가 그립기도 한 것이다.

 

손석희가 밝힌다.

솔직히 말해 두 번이나 추천사를 쓸 생각은 없었다.

역시 손석희다.

 

김정환 시인이 말한다.

아나운서의 본분이... 투명하게 하고 더 나아가 영롱하게 하고, 갈수록 그 영롱을 심화하는 거.

그러나, 그러므로, 하여 '당신은 상대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이 책으로 유정아는 말하기에 대한 글쓰기,

혹은 글쓰기에 대한 말하기 장르를 개척한 첫 아나운서이자 작가가 되었다고 할 만하다.

뭐라는 겨?

 

내 평은 이렇다.

작가는 대한민국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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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0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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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 못갖춘마디 문예중앙시선 15
강연호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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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푼크툼 :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저서인 "카메라 루시다"에 언급된 용어.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스튜디움(studium)과 푼크툼 (punctum)으로 나누고,

코드화 되고 일상적인 것을 예를 들어 어떤 사진속의 여인이 아름답다든지 하는 정보에 관한것이라 든지 이런것을 스튜디움이라 하였고,

코드화 될수 없는 사진의 어떤 작은 요소가 자기의 마음을 찌르는것 , 작은 구멍, 작은 반점 , 작은 흠을 푼크툼이라 하였다.

 

  타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이 자신에게는 가슴을 찌르고 오랫동안 응어리가 지는 요소를 푼크툼이라 하였다.

 

시집 제목은 '기억의 못갖춘마디'다.

'못갖춘'이란 말은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갖춘'이 세속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사는 듯하다면, 그 상대편에서 왠지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어휘다.

 

이 시집의 곳곳에서 '나'를 본다.

그 '나'는 내가 아니어서 낯설기도 하지만,

내가 아닌 그에게서 발견하는 '나'는 새로운 만남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시들의 곳곳에서, '나의 가슴을 찌르는 작은 얼룩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저 생경한 단어 푼크툼을 끌어들이게 되는 거다.

 

금 이쪽도 저쪽도 마음에 안 들었다

선택의 강요는 언제나 내게 숨가빴다

나는 금 위에서 머물고팠다

나는 금 위에서 아슬아슬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일 많이 얻어맞았다

일단 선을 죽 긋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넘어야 한단다

노선은 분명해야 하고

탈선이란 선을 벗어나는 것이다

내 분명한 노선은 탈선이 아니다

금의 본색은 아슬아슬하다는 데 있다

금은 왜 밟으면 안 되는가

금은 꼭 넘어야 하는가

금 위에서 오래 서성거리다(금 위에서 서성거리다, 부분)

 

세상에 이런 사람 참 많을 건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 드물다.

세상과의 대결에서 내가 입은 상처들, 그 얼룩들,

세상이 내게 내고 만 흠, 구멍, 반점, 딱지들...

그것을 강연호의 글에서 만나니,

반갑고 아련했던 추억을 간직하였던 잊고 살던 친구와의 해후처럼 들뜬 맘이 드는 게다.

 

유난히 '그늘'이 많다.

그늘의 속성이 '양지'에 상대적으로 개념되는 것이어서 그럴지 모른다.

그렇게 치자면,

그늘 역시 양지와의 '금 긋기'에서 발생한 서성거림일 수 있다.

일음일양을 도라고 한댔던가. 양과음은 그렇게 서로 번지고 물들어 바뀌어가는 것인데,

세상은 그걸 금긋기 좋아한다.

금 위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그 많은 사람들을 이편저편으로 가르려 한다.

 

오후의 그늘 아래 당신이 앉고/ 당신의 그늘에 기대 나는 누웠지

그늘에 그늘이 깊어 잠들기 좋았으나...

그늘은 심심해서/ 시샘해서/ 조금씩 자리를 바꿔 앉네

오후의 그늘은 문득 늙고/ 당신의 그늘은 자취가 없네

누울 자리가 없네/ 앉을 자리조차 없네(영원의 그늘, 부분)

 

하기는 젊음이나 늙음이나

하나의 받침으로는 견딜 수 없는 게 있기는 있나 보다

받침 하나로는 감당하지 못할 두 시절(꿈, 부분)

 

찬밥에 온도가 있나 / 밥의 온도야말로 /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밥의 그늘/ 당신의 그늘 / 당신, 이라는 그늘

 

사내의 입속/ 그늘이 깊다(밥의 그늘, 부분)

 

사람의 그늘을 만난 지 오래다/ 어디 그늘이 없었을까, 눈 흐려진 탓이다

나이 들면 자꾸 멀리 보게 마련이고/ 멀리 건너다 보는 시력으로는/ 사람의 그늘도 흐리게 뭉개지는 법

 

그늘을 헤아리는 심사는/ 어느 늙은 나뭇가지 사이로/

한때 무성했던 세월이 구름처럼/ 뭉텅뭉텅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서늘했던 그늘/ 그 어두웠던 눈 밑으로/ 문득 흔들렸을, 잠깐 반짝였을

불빛인지 물빛인지를 놓치지 않았으나/ 그저 놓치지 않았을 뿐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애써 멀리 외면했던

그늘의 길이를, 마침내는 깊이를 /이제 와 곰곰 되짚는 일이다

 

그러나 눈 흐려진지 오래/ 한뼘 두뼘 겨우 더듬을 뿐/ 사람의 그늘을 재어본 지 오래다(사람의 그늘)

 

그늘에 앉아서 영원을 생각한다.

영원이란... 없는 거라고, 그늘이 가르쳐 준다.

언제나 그늘인 곳은 없으니까...

그늘에 누우면 편히 쉴까... 하지만, 영원한 그늘은 없다고...

당신의 그늘 역시 영원하지 않다고... 그늘이 가르친다.

 

영원은, 하나의 받침으로 떠받들지만,

젊음이나 늙음이나 받침 하나론 부대낀다.

 

밥을 먹는 사내의 처지,

만물상이지만 세상 만물로부터 차가워진 신세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음과 양, 그늘과 양지...

금 역시 절대적이지 않은 걸...

 

그 그늘이 사람의 그늘로 흘러들면서는,

마음이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추억으로 흘러간다.

말로는 눈 흐려진 탓을 하지만,

'지금은 없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애써 멀리 외면했던',

그러나 '문득 흔들렸을, 잠깐 반짝였을'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그늘에 들인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지나간 옛사랑의 그림자에 드리운 그늘은 애수에 젖어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라는 안부를 건넬 틈도 없이

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전화 저쪽에서 그녀는 오래 울었다

이쪽에서 나는 늦도록 침묵했다

그녀의 울음과 내 침묵 사이로도

바람과 강물과 세월은 또 흘러갈 것이었다

그동안을 견딘다는 것에 대해

그녀와 나는 무척 긴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아니 그녀나 나나 아무 얘기도 없이

다만 나뭇잎과 나뭇잎처럼 귀 기울였을 뿐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나보다는 건강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울음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슬픔에도 건강이 있다

그녀는 이윽고 전화를 끊었다

그제서야 나는 혼자 깊숙이 울었다(건강한 슬픔, 부분)

 

마치 줄거리를 엮듯, 이 시의 통화와 침묵 부분만 걸러 적었다.

시를 읽는 나는 시적 화자가 낯설지 않다.

너무도 낯설지 않아, 도리어 이제껏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이 돌출되어 드러난 것 같아,

당황스러움이 오히려 낯설었다.

그래, 나는 이렇게 우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그 깊숙한 울음은 건강하지 못한 슬픔일 수 있었구나... 이런 것을 바라보는 무연함이란...

 

여느 사랑 노래가 명랑하고 건강한 데 비하여,

그의 사랑은 역시 그늘에서 나온 탓인지, 조금 우울하고 조금 어색하다.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는 사랑.

왠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30도는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린 사랑.

 

잘 지내고 있지? 설마 외로운 건 아닐 테고

옷깃만 스치는 날들이 지나가서 나는 이윽고 담배를 끊었다

내 기억의 못갖춘 마디 속에 꼭꼭 도돌이표를 찍어놓고

이쯤에서 우리 그만두자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적어를 명시하지 못한 객기는 조금 불안했다

옷깃만 스치는 생의 말엽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다만 잘 지내지? 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어주는 게

그나마 세상의 인연을 껴안는 방식이라는 것

설마 외로운 건 아니었으면 싶다 나는 또 담배를 끊었다(중언부언의 날들)

 

그의 사랑법은 끝없는 관심, 그러나 따뜻한 시선을 건네지 못함, 오랜 시간을 견딤... 이런 것이다.

어느날 문득, 사랑니 빠진 자리에서 허방다리를 짚는 혓바닥처럼,

문득, 지나간 인연을 껴안지 못했던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옷깃만 스치는 인연이 외롭지 않기를, 잘 지내고 있기를 괴로워하며,

그는 이윽고 담배를 끊고, 또 끊는다. 그의 사랑은 끝없는 관심으로 골똘한 그것이다.

명확하게 결론지어지지 않은, 목적어가 명시되지 않은 못갖춘마디처럼 중동무이된 사랑은,

그의 마음 속에서 도돌이표를 만나 자꾸 떠오르지만, 담배를 끊음으로써 중언부언 하는 마음을 갈앉힐 뿐.

 

그렇게 불꺼진 창 밖에서 서성거리던 그의 마음 안에도 늘 '불끄고 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사랑과 삶에 대한 태도를 읽을 수 있는 시여서 한 마디도 빼지 않고 옮기게 된다.

그의 마음에 불 꺼진 창, 그걸 아쉬워 한다고 불 켜라고 할 수 없었다.

불 꺼진 창, 그 밖에 서성거리는 것이, 그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에 불 꺼진 창이 있었다

 

그는 늘 밖에서 어둡게 서성거렸다

그리고 누군가/ 내 안에서 불 끄고 우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연애는 언제나 깜깜했으나/ 돌이켜보면 그래서 결국 환했다

 

나를 서성거리게 할

누군가를 내 안에 남겨둔다는 것

그것을 알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을 뿐/ 그동안 아프게 늙었을 뿐

언제라도 만나고 싶어 간절했으나/ 막상 창을 열고 불을 켜면/ 텅 비어 있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불 꺼진 창이 켜놓은 연애가 환하려면

불 꺼진 창을 불 꺼진 창으로 남겨둘 것

밖에서 오래오래 서성거릴 것

열지 말 것

 

마음에 불 꺼진 창이 있었다(불 꺼진 창)

 

그래. 침묵할 것.

사랑법은,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는 거랬나.

실눈뜨고 볼 것.

관심은 가지되, 배놔라 감놔라 할 일이 아닌 것.

열지 말 것.

불거진 창으로 남겨둘 것.

괜찮은 사람이다.

괜찮은 시고...

 

그의 마음에 잠시 사랑이 찾아오면,

그는 마음을 곧게, 가지런하게, 단정하게 곧추세운다.

도덕교과서 그대로다.

 

그래요 옷깃만 스쳤던 거예요

이 난데없는 격렬함은 말하자면

일종의 나비효과 같은 것이겠지요

나비 한 마리의 팔랑거림이

태풍이 될 수도 있다지요

그 역도 성립하겠지요

곧 가라앉을 평지풍파 앞에서

나는 수선을 피운 적도

빈틈을 내 보인 적도 없는데

어느 새 내 속에, 당신 참 날렵하군요

틈새 공략이 성공했다고요

하지만 그대는 다만 무례하게 비집고 들어온

잠시의 파문일 뿐

그래요 우리는 옷깃만 스쳤던 거랍니다(틈, 전문)

 

격렬한 냉정함이 반짝인다.

틈새 공략에 성공한 그대를 무례하다고 굳이 내쫓는다.

황진이가 화담 선생 앞에서 절할 때,

이런 마음을 읽었던 것일는지... ^^

 

새벽 두시인데 아니 세시인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끈질긴 울음처럼

전화벨이 운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한참을 울다 겨우 잦아드는 전화벨

그러나 그 뒤끝을 채며 이제는 냉장고가 운다

시곗바늘이 운다 보일러가 운다

유리창을 흔들며 바람이 엉엉 운다

울음은 전염병이다

한 아이가 우니까 다른 아이가 따라 우는 격이다

정말 어디선가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온 도시가 끈질긴 울음을 우는데

그 속에서도 악착같이 잠을 청하는 나

나란 놈이 싫어지는 밤이다(울음, 부분)

 

세상이 남자보고 울지 말라고 한다.

웃기는 세상이다.

온 세상이 울고 있는데, 온 세상에 아파하는 이 아무도 없다니...

그나마, 악착같이 잠을 청하면서, 자신을 싫어하는 양심의 금속성이라도 만날 수 있음은... 축복이다.

 

그의 시는 단정하다.

책상 앞에 이황 선생의 심경이라도 펴놓고 읽는 듯,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한 터럭도 흐트러져선 안 된다는 듯,

애써 단정하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의 달뜬 몸살기가 맘에 드는지도 모른다.

몸이 겪는 살기는,

애써 단정하려는 모습조차도 잠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에서 인간미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인간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

 

뜨겁고 춥다, 이 모순의 육체는

그럭저럭 매력적이다

약 기운 때문인지 지면에서 얼마쯤

붕 떠 있는 느낌, 금방이라도

곤두박질칠 듯 아슬아슬한 공중부양 같다

들뜬 청춘 같다

 

초봄이 한겨울보다 매서운 건

세상 움트는 것들의 통증 때문이다

연초록은 원래 비릿하고

청춘은 불량을 무기로 내세운다

이빨 사이로 찍찍 침을 내뱉거나

면도날을 질겅질겅 씹기도 하는

 

그 시절 지나면 몸살이란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팍 불이 나간

백열등 같은 것, 잠시 미련처럼 빛살이 어려

알전구를 귀에 대고 흔들어본다

이 어둠을 어찌 돌이킬래?

누군가 속삭인다

끊긴 필라멘트마냥 파르르 오한이 온다

 

추워서 뜨거웠고 어두워서 환했던

기억이 있다, 그 불량의 시절인 듯

연탄불처럼 다시 층층 포개지고 싶다

포개져 마침내 화르륵 타오르는 체위이고 싶다

나중에는 부엌칼로 갈라야 하더라도

가르다가, 앗 뜨거라 불투성이로 깨지더라도

 

몸살이란, 그 기억에 살이 낀 것이다

혼자 열없이 열 오른 것이다(몸살, 전문)

 

몸살이 걸릴 정도로 온몸이 사랑을 느껴 부들거려야,

그제서야 조금,

끊긴 필라멘트 정도 미약한 정도로 오한을 느낀다.

 

추워서 뜨거웠던, 어두워서 환했던

그 추억은 연탄불처럼 <깨지더라도 화르륵 타오르는> 기억이지만,

<부엌칼로 갈라야 할 정도로, 깨지더라도 포개지고 싶은> 사랑이었지만,

이 모순 속에서

혼자 열없이 열 오른 거라고 중얼거리며 독백하는 그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나는 한번 꼭 껴안아 주고 싶은 것이다.

 

왠지 낯설지 않아서,

왠지 외롭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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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마, 씨 - 시로부터 사랑이기까지
강정 지음, 허남준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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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찾아 읽으면서, 콤마의 절묘한 쓰임에 유난히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이번에 강정의 콤마, 씨란 장르가 애매한 책을 읽으면서, 나 말고 또 콤마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을 만나 일견 반가우면서,

일견 책이 별로였다는 생각을 한다.

 

강정이 몇 사람의 시를 오랫동안 곱씹으면서,

그 구절들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난 후,

자기만의 문법으로 그 이야기들을 자기 이야기에 녹여 낸 책이다.

 

시인 강정이 낸 시집도 아니고, 잡문도 아니고, 장르가 애매한 책이다.

내용 역시 그닥 뾰족하게 훌륭하지도 않다.

 

표지에 둥글 넙적한 콤마 그림이 반짝거리는 코팅이 되어 쓸어 보다가,

아~ 나는 보고 말았다.

콤마 안에 담긴 작가의 섬세한 마음을...

내가 생각하던 콤마의 모습 속에 담긴 '태아'의 가능성을...

작가는 콤마 안에 희미한 초음파 사진처럼 담아 두었던 것이다.

 

달 안에서 팔분음표 반짝임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듯,

콤마 안에서 태아의 그림자를 보는 눈도 누구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

열명이면 열명 다 희한한 놈 다 보겠다며 눈을 흘길 것이기에...

그런데, 그런 넘이 여기 있었다니... 통쾌하다.

 

(남자, 여자)... 세상을 이렇게 양분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세상은 남자와 여자로 양분되지 않는 거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그림자처럼 '콤마'가 들어앉아 있지 않은가.

그걸 재해석해 보자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남자도 아닌, 또 여자도 아닌, 남자이기도 한, 또 여자이기도 한'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관찰자는 '콤마'로 부르기도 한 것이다.

 

접두사로 생각하자면, 'inter-'의 의미를 담고 있는 콤마 되겠다.

 

콤마는 이렇게 둘 사이의 완충지대 내지는 점이지대를 포괄하는 융통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엄밀하게 갈라내는 분리의 칼날처럼 보일 때도 있다.

원래 분리와 통일은 한 몸뚱아리의 두 이름이라 했으니,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콤마는 때로 감정의 폭주, 경이로움과 경탄의 마음을 담아내기도 한다.

 

아, 이런, 어머나, 놀랍기도,  이런 뒤에 반드시 콤마를 찍어 줘야,

그 문장의 경이로움은 완성된다.

때로 느낌표보다 뛰어난 감정의 대리인이기도 한 것.

 

콤마의 생김새는 참 이쁘다.

올챙이처럼 생긴 콤마. 그러나, 그 콤마의 꼬리는 한쪽으로 쏠린 느낌이다.

좀 빼딱한 놈인 셈인데...

만약에 올챙이처럼 꼬리가 한중간에 있다면... 콤마의 느낌이 솜사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콤마의 속성은 솜사탕처럼 달콤한 미사여구보다는 한쪽으로 쏠린 경이로움, 삐딱함에 가까워 보인다.

고집을 부리고, 나름의 편향을 내세우며, 심리적 쏠림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것이 콤마의 소신이라면 소신이고, 철학이라면 철학일 거다.

 

꼬물거리는 태아가 자궁에 착상해서 자라나는 모습을 올챙이처럼 볼 수도 있다면,

콤마 안에서 초음파 사진처럼 희끄무레한 태아를 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게다.

안 보이면, 이미 마음이 어두워진 벌거벗은 임금님의 세계 속 어른이 다 된 것일 거고...

간혹 정자의 생명력 또는 약동 역시 콤마와 유사해 보인다.

정자미인이라고, 예전에 정자 안에 인간의 설계도를 가진 작은 인간의 모습이 들었을 거라고 추측하였다는데,

그것 역시 태아의 축소된 모습과 다르지 않다.

 

두 홑문장 사이에서 대구를 이루도록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도 역시 콤마의 것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때, 콤마가 없다면, 무게중심을 쉽게 보기 어렵다.

균형 감각의 달인, 콤마의 미덕 중 빼어난 거 하나다.

 

살다가 보면,

문득 콤마처럼 생긴 녀석들을 만나고, 무척 반가울 때가 있다.

오이를 생으로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꼭지를 삐져냈는데, 오이 끄트머리에 패인 부분이 있어,

잘린 단면이 콤마처럼 생겼을 때도 있고,

은행을 살짝 볶아서 껍질을 벗겨내거나 호박씨를 까먹으려다,

제대로 쪼개지지 않은 녀석의 모습에서 콤마를 찾아낼 때도 있다.

 

손이나 발의 굳은살을 떼어내려다 만난 내 살 아닌 내 살 역시 그넘처럼 생겼을 때가 있고,

빵에 바르려고 나이프로 푹 떠낸 생크림이 그넘처럼 부드럽게 감겨있을 때도 있다.

 

콤마는 비실거리지 않는다.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렇다고 남들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지 지켜보면,

무연히 먼 산 바라보며, 휴지(休止)의 미덕을 즐길 줄도 안다.

 

쉼표라고 읽을 때 역시 콤마는 제 기능을 다하는 것 같지만,

오선지 위에 콤마가 놓였을 때,

숨표의 기능은 악상을 잠시 쉬게 함으로써 더 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녀석이다.

이렇게 고전적인 또는 유유자적한 시간을 부여하는 콤마는 자기 안에 탱탱한 긴장감을 가득 채우는 귀여운 녀석이다.

 

그렇지만, 때론 발레리나가 힘찬 도약 후에 잠시 정지한 듯한 순간을 연출하듯,

점프의 세련됨을 보여주기도 하는 바,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에서 처럼,

침울한이 담은 뜻을 훌쩍 건너 뛰어 '소중한 이'에게 전달시켜 주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중한 이'를 아끼는 맘을 한껏 도약의 기쁨으로 승화시키기도 하는 듯 하다.

 

마침표, 느낌표, 물음표처럼 문장의 성격을 규정짓는 주연의 역할을 하진 못하지만,

콤마는 훌륭하게 조연으로서 감초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부차적인 역할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하룻강아지에 불과하니 말이다.

콤마처럼, 조연에 불과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자리에서 하는 역할들이 각기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아주는 사람이야 말로,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고 실제로 무서운 사람이다.

 

아무리 많은 말을 늘어 놓더라도, 콤마는 지쳐하지 않고 다 들어주는 적극적 경청, 수용의 자세의 달인이라 할 법한데,

그 넓은 아량은, 여느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로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여유라 할 만 하다.

말줄임표 정도가 콤마의 열거법에 이해의 감정을 표할 수 있겠지만,

콤마의 인내심에 비하자면, 말줄임표는 부끄러워할 것이다.

 

살면서, 콤마같은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콤마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날도 있다.

 

쉼표처럼,

숨표처럼,

수용의 달인이면서,

조연의 감초인,

도약 후에 오는 휴지의 긴장을 아는,

균형미 속의 생명력의 약동을

그 다이나믹함을 사랑하는...

 

콤마 같은,

그런 삶을 바랄 때가 간혹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만, 아쉬웠던 점은,

콤마를 그렇게 사랑하는 이가, 콤마 대신 내려찍는 점()을 페이지마다 그려 넣은 점은 강한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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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완벽한.
장윤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를 읽고, '가비'란 영화를 만든 감독 장윤현.

그가 천착한 '커피'의 향기를 듣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문 조어가 '문향 聞香'이다.

조용필 노래에도 나온다.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향기를 맡는다...에서는 킁킁, 거리는 속물스러움이 묻어나지만,

향기를 듣는다...에선 고요히 내리깐 서늘한 눈매와 들이쉬듯 내쉬는 정지한 듯 움직이는 고요한 가슴의 움직임을 따라서,

조용한 공기의 흐름이 정지된 공간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 하기도 하다.

 

그의 커피 예찬론은 어마지두(놀라서 정신이 얼떨떨하여) 커피의 깊은 세계로 자신도 모르게 따라 들어가게 한다.

나도 커피를 멋모르고 마신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요즘 맛들인 커피는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 그 앙증맞은 잔에 담긴 황갈색 액체의 표면에서 우러러 올라오는 향기는,

커피를 마시기 전에 우선 눈으로, 코로 그 향기를 듣기에 충분하다.

아메리카노의 밍밍함에 비하면, 그 톡 쏘는 커피향이 일품인데,

간혹은 두 잔을 거푸 마시기도 한다.

낮잠이라도 잔 날이면, 에스프레소의 향정신성 카페인 성분에 취해 잠을 못이룰 수도 있지만,

대부분 피곤한 날이면 커피와 상관없이 잠들 수 있다.

 

각 지역의 이름이 붙은 커피에 대해서는 맛을 구별할 수준이 못 되고,

라떼처럼 걸죽하거나, 더치처럼 차가운 것은 취향이 아님을 확인한 정도다.

혈압이 높아 다방커피 단맛을 멀리한 것이 몇 년 되었고, 그러노라니 자연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곤 하는데,

가끔, 정말 어쩌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커피에 중독되었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삶에서 뭔가에 필이 꽂혀 그 뭔가에 천착하는 일도 멋진 일이겠다... 싶은... 그런 것.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한 가지에 몰두하면, 그 한 가지가 너무 좋아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책이 좋아서 책에 몰두하는 줄 알지만,

그건 몰두할 것이 없을 때 여가를 보내는 것에 불과하다.

한 1년 넘도록 피아노에 몰두할 때, 책은 잠시 접어둔 적도 있었고,

이즈음에는 그림그리기에 몰두해 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 나의 단점은 몰두하는 기간이 그리 오래 가진 않아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뭐, 어떤가. 내 맘이다.

 

술도 몰두하기에 멋진 장르인데, 술은 같이 마시는 사람과 대화의 격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형 음주문화는 나를 끌어들이기 힘들다. 1차는 내가 좋아하는 술을 즐길 수 있지만, 노래방과 맥주와 3차, 4차의 한 이야기 또하기 버전의 고통은 다음날, 갈릴레이가 왜 목숨을 걸고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는지 확인하기까지 즐거움은 별로 없다. 하루를 공치는 고통도 크다.

 

담배야말로 남자들의 로망이다. 그것도 짧고 굵은 타르가 1.0 이상 되는 담배로... 그런데, 담배를 피우면 너무 피곤해진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끊은 이후, 냄새도 싫고, 더러워서 싫다. 그렇지만, 대화 도중, 적절한 타이밍에 담배를 자연스럽게 꺼내 탁자에 톡톡 두드리다 깊이 한 숨 들이마실 때의 흡연은 매력적일 수 있다. 어쨌든 담배를 탐구하기엔 몸이 안 된다.

 

커피는, 바리스타가 될 정도로 배울 생각은 전혀 없다. 아무 커피나 즐기는 수준이면 좋다. 장윤현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커피는 굿이다.

 

장윤현의 미감은 '가비'라는 영화에서, '접속'이란 영화에서 보여주듯, 분명히 동영상인데도 '스틸 컷'같은 매력적인 장면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가비'에서 장 감독의 앵글은 자주 김소연의 단아한 모습에서 멈추는데,

'접속'에서 전도연과 한석규가 어색하게 비를 긋던 모습들과 오버랩되면서,

장 감독의 '스틸 컷'을 추구하는 동작 화면의 매력을 상상해 본다.

김소연에 대한 장 감독의 애정은, 이 책에서 아주 조금 나온다.

그렇지만 영화에선 김소연을 가득 담은 프레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책도 그렇다.

장윤현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가서 마신 에스프레소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영화 이야기까지 망라되는 역동적인 이야기들 사이로,

마치 조용한 수필집처럼, 또는 단아한 한 편의 시집처럼,

스틸 컷으로 자리잡은 그림같은 화폭들에 시 같은 구절들이 들어앉아 있다.

참 좋은데, 뭐라고 말로 할 수가 없다. ㅋ

 

'낯섦'의 또 다른 이름은 설렘,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은 떨림이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 아무것도 아니지만, 27쪽의 그림을 보면, 설레고 떨린다.

낯설고 두려운 세상을, '설레고 떨림'으로 바꾸는 매력.

커피 한 잔으로도 그런 힘이 주어질 것만 같은...

 

 

 

지금도 나는 에스프레소의 강력한 마법을 믿는다.

그리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절박하고 허약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또다시 그 마법에 의지하고플 것이다.

쓴맛을 왈칵, 듬뿍 안겨준 뒤에 아주 인색하게 아주 잠깐 달콤한 맛으로 위로해주는 에스프레소는 인생을 참 많이 닮았다.

실패의 좌절감, 위기의 순간 느껴지는 긴장감,

그 속에서 거짓말처럼 솟는 용기까지... 지난하고 불확실하기만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우연을,

운명을 마주할 때 삶은 달콤해진다.

그러니 당신, 그 스쳐 지나가는 달콤함을 맛보고 싶다면, 설탕없는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견뎌보길.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는 생각인데,

그는 역동적 시나리오보다, 정지 화면같은 수필을 쓰는 것이 어울리는 남자란 생각이 든다.

 

커피 이야기 중에, 김태정 시인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이란 시가 있다.

 

물푸레 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 나무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잔잔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여기서, 조화와 어울림을 생각한다.

조화와 어울림은 넘쳐나는 것을 쳐내거나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중에도 빛나는 어떤 것을 서로에게 얹어주는 것.

개성이 너무 강한 원두끼리는 피하되,

너무 순해서 주목받지 못하는 원두끼리 슬쩍 더해보는 블렌드 커피의 기본과도 닮은...

 

그가 최상의 커피를 만들면 물푸레나무의 이름을 붙이고 싶댔지만, 그건 아직이고,

다만, 이 책의 표지에 두툼한 트레이싱지에 풀빛인듯 쪽빛 바닷빛인듯,

비리디언과 인디고 투명한 빛을 섞어 만든 수채물감같은 표지를 만든 것으로 만족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조지 오웰의 시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커피는 위로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커피나 차는 원래부터 세련, 낭만, 멋과 친했던 건 아니다.

그 옛날, 커피나 차는 힘들고 외로운 사람의 위로제였다.

시공간을 초월해 누구에겐들, 커피는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구절과 조지 오웰을 읽으면서, 왈칵, 서러워졌다.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들어서는 커피전문점은...

결국 힘들고 외로운 삶의 씁쓸한 위로제로서의 은유였단 말인가 싶어서 문득, 외로움이 밀려든 거다.

 

영화 <블루>를 들먹이며 들이미는 커피 이야기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녹여낸 짙은 향이 있다.

 

치유 과정의 고통을 묵묵히 참아낸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는

커피의 뒷맛처럼,

상처를 한 꺼풀 덮으며 오래도록 진한 향기를 남긴다.

 

그는 커피를 로스팅하는 과정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그 경지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경지다.

 

가열하지 않은 생두처럼,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는 수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 수분이 몸에서 분리되는 과정이 바로 죽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생두의 죽음이 원두의 시작이 되듯,

때때로 무언가의 끝은 새로운 변화를 예비하곤 한다.

 

이 남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사랑론까지 운운한다. 재밌다.

 

한 웹진에 시인 심보선이 이런 글을 썼다.

"우리는 사랑에 빠져있을 때 약해진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밀고당기기를 하느라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전쟁같은 삶을 버텨왔던 힘이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블루마운틴을 마실 때, 나는 그런 사랑에 빠진다.

그저 한없이 약한 자세로, 모든 찬사조차 생략한 채 평안한 맛의 균형을 즐길 뿐.

 

이 책의 옥의 티, ㅋㅋ

 

다 읽고 나면, 함께 보면 좋을 책들... 을 소개해 준다.

뭐, 뾰족한 구분없이, 장 감독이 좋아하는 책인 모양.

근데, <우리는 같은 병을 고 있다>는 책이 소개되고 있다.

ㅎㅎ 웃자고 쓴 거라면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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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러운 그녀 - 테마 2 : 성과 사랑 청소년을 위한 소설심리클럽 2
김해원 외 지음 / 우리학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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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애매한 나이다.

어린이, 소년도 아니고,

젊은이, 청년도 아니고... 청소년이라니?

그리고 봄(sex)을 새파랗게 누리는 청춘이 아니고,

그저 생각만 해야 하는 '사춘기'라니... ㅠㅜ

 

아이들에게 '성'은 미지의 영역이라 더욱 관심의 대상이다.

우리 학교에서 실시하는 특강 중에서 가장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호응하던 프로그램이 바로 성교육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름다운 우리들의 성' 이란 주제로 구성애 선생이 강연했던 적도 있지만,

아직도 청소년들에게 성이란 주제는 아름답지도, 우리들이 것도 아닌,

궁금해 죽겠고, 은밀하며 음침한 소재이고, 야동에서 보듯이 엽기적인 것이며, 그들의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성적인 능력은 예전에 비해 훨씬 활발할 것이고,

어린 나이에서부터 온갖 동영상 등에 노출되어 아이들의 관심은 더욱 많은 것이 현실이다.

고교생이지만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간혹은 실수로 임신하는 아이들도 생길 수 있다.

요즘은 임신중절 자체가 불법이기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런 문제들을 소설로 잘 풀고 있다.

 

청소년의 임신 문제.

성폭력의 시작과 파장 문제.

미묘한 스킨십으로 시작하는 이성 교제의 짜릿함.

호기심은 있지만 성적 표현을 할수 없는 아이들의 사랑.

장애인 청소년이 사랑.

경제적 어려움으로 몸을 돈과 바꾸는 청소년들... 그리고 동영상 유포의 문제...

 

이런 것들을 소설로 꾸며 놓아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읽고 토론할 수 있도록 구성해 두었다.

이야기가 짧아서 오히려 아이들이 아쉬워할 것 같다. ^^

 

읽고 나서...를 덧붙여 두어서,

중고생의 수업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독서 토론이 활발한 요즘, 이런 책들이 교사와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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