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평화 발자국 9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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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모든 걸 가졌다.

돈도, 땅도... 그리고 권력과 그 시녀들도...

그러나, 삼성이 가지지 못한 것 하나, 바로 사람 냄새.

 

삼성 반도체에서 새파란 청춘들이 백혈병으로 쓰러져 죽어갔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아이들이

그 팔팔한 피가 식어가는 동안,

삼성이 한 일은... 사기와 회유, 회피와 협박... 이런 더러운 짓이었다.

돈을 준다고 하고 사표를 종용한 후, 돈을 안 준다. 치사한 새끼들.

산재 처리 해달라고 하면, 개인적 질병이라고 안 해준다. 더러운 새끼들.

 

이 책에선 백혈병으로 죽어간 유미의 아버지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뛰어다닌 기록과,

삼성이 어찌하여 최고의 기업 이미지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하여,

노조를 억압하여 왔던지를 만화로 표현하고 있다.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난다.

그 젊은이들의 아픔에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난다.

이런 꼬락서니의 나라에서 그 기업에 뽑혀가는 것을 최고의 출세로 여기는 세태에 속이 뒤집어진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 죽음의 공장 앞에 이력서는 끝모르게 높이 쌓여만 간다.

이력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기업의 이윤도 쌓여 가고...

 

반올림(SHARPs) 이란 단체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밝혀 산업 노동자의 노동건강권을 확대하자는 목표로 모인 사회, 인권 단체들의 연대체라고 한다.

Solidarity(연대), Help(지원), action(직접행동), Research(연구), Public relation(더 많은 홍보를 위한 선전)의 약자다.

 

이 젊음들의 죽음에 답해야 하는 것은,

꼭 삼성만은 아니다.

삼성의 독주를 알면서도 방기한 정치권 뿐만 아니라,

그런 사회를 만들어 놓은 모든 어른들에게도 책임을 묻고 답하라고 캐물어야 한다.

 

왜 투표하러 오지 않느냐고 꾸짖을 것이 아니라,

제발 좀 찍고 싶은 놈들이 정치를 하라고 꾸짖어야 한다.

또다시 진보세력 물어뜯기가 이전투구의 뉴스를 흘리고 있다.

똑같이 더러운 놈들이라고 묻어가려는 소행임이 안 봐도 비디오다.

 

가진자들을 위하여 온갖 연대, 지원, 행동, 연구, 홍보를 아끼지 않는 <삼성>과 <정부>에 맞서,

많이도 말고, 반음만 올려서 인간답게 살자는 반올림(#) 운동이 질 수밖에 없는 다윗의 싸움인 것도 뻔하지만,

결국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은 다윗들의 의지다. 다윗들의 연대이고, 다윗들의 관심이다.

 

세상은 우연성에 의하여 촉발된 일들 투성이지만,

부정부패에 맞서 싸운 이들이 전진을 위하여 십보 후퇴 일보 전진하여온 것들이 역사의 기록들이지만,

다윗들의 연대는 늘 전진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도록 일깨워주는 좋은 책이다.

 

어차피 더러운 세상, 이러고 관심을 접으려는 이들이 한번쯤 고민하며 읽으면 좋은 책.

그래서 총선은 기권했어도, 대선은 꼭 찍으러 가겠다는 맘을 들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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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6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8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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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 빨리 어른이 되어서 안정을 찾기를 바랐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예정대로 직업을 갖고, 결혼을 했고, 그렇게 살고 있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삶이 고정된 것은 아님을 이제 알겠다.

어른은 무엇이든 안다는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임을 알겠다는 소리다.

 

이금이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래서 중편 소설을 하나 썼는데, 영 미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소설을 풀어헤쳐서, 열다섯 딸과 마흔다섯 엄마의 이야기를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 나니, 자기 가슴에 뭉쳐져있던 것들이 다 튀어나와 버렸다.

결국, 작가의 말에 쓸 말이 하나도 없음을 실토하게 할 정도로...

이 소설은, 어른의 성장 소설이다.

 

성장 소설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과정을 쓰는 소설을 일컫는다.

그래서 당연히 아이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선 어른의 시점에서,

어른 역시 변화의 도중에서 갈등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처음으로 자기 고백에 도전한 셈일 것이다.

여느 소설들이 도식에 맞게 착착 진행되었던 데 비하면, 이 소설을 쓰면서 참 오래 걸렸을 것이고,

머리털을 쥐어뜯던 밤들이 참 많았을 것임이 책에서 읽힌다.

이금이 선생님의 소설에 새로운 시기가 열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반갑게 읽었다.

 

어른들조차 잊고 살기 쉬운 한 가지 진리.

아니 어른들이 애써 회피하고 외면하는 진리, 메멘토 모리. 죽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은 '신기루'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욕심에 매여 그 신기루를 좇으며 하루하루 사막을 헤매는 것이 인생이다.

 

요즘 씁쓸한 농담 중에, 북한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게 있다.

바로 한국의 중2 때문이란다.

중2는 원래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그런데, 왜 중2가 문제인가?

중2는 1998년 생이다.

1998년하면 떠오르는 사건은? 바로 IMF 구제금융 사건이다.

그 고초간난의 시기를 겪으면서, 가족 해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인 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오로지 경쟁과 승리만을 추구하도록 '노란 승합차'에 태워 학원 뺑뺑이를 시작한 시기...

사회의 독소를 그대로 받아안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들이민 건,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신기루'였다.

 

엄마 친구들 중, 튀는 캐릭터가 있다. 춘희다.

벌써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 직업은 작가다.

문학 소녀들이었던 중년 여성들의 여행에서도 춘희는 자유를 찾아 벗어난다.

 

나는 춘희와의 이별을 듣는 순간 휩싸였던 기분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 애가 품고 있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시샘이었다.

그건 가지 않은 길들에 대한 회한이기도 했다. (167)

 

이렇게 작가의 속내를 빤히 드러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른들을 위한 성장 소설과, 치유의 문학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별이 몽땅 들어앉은 듯 가슴 속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72)

 

딸의 시점에서 바라본 미남 가이드에 대한 사랑이 이렇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문득 찾아온다.

그때, 가슴 속은 무척이나 넓어지는데,

그 속이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갖는다.

그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데,

인간은 더 욕심내고 그릇을 엎어치기 일쑤인 어리석은 존재다.

 

한국에 왔다가 산재를 당하고도 추방당한 가이드 니르구이는 그래도 한국을 긍정한다.

좋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나쁜 사람도 금방 불쌍해지는 이유는... 사람은 모두 죽기 때문이라고...

 

지나치게 긍정적이거나 낙천적인 사람은 그만큼 자신을 위로하거나 속이고 싶은 일이 많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137)

 

내는 내 운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느그들 내가 지독한 니힐리스트였던 거 모르제.

겉으론 열심히 사는 체 했지만 실제로는 컴컴한 동굴 속에 들어앉아 있었던기라.(145)

 

이 구절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자기 가슴 속 우물을 참으로 오래 들여다 보았을 거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두레박질을 했을 것이다.

더 가득 자신의 우물물을 길어내기 위해, 두레박을 첨벙~! 빠트리고는 마구 흔들어 댔을 것이다.

그리고 길어올려진 두레박 속의 시원한 우물물을

정말 가슴속까지 시원해 하면서 들이켰을 것이다.

허나, 갈증은 여전할 거다.

삶의 갈증이란, 한 바가지의 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이금이 선생님의 마음이 이렇게 빤히 보이는 것은, 저 이야기가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삶의 가운데쯤에서... 1년으로 치면 8월이나 9월 정도의 시기에서...

9월의 이틀, 쯤되는 반짝이는 시기를 만들어 보는 것, 참 좋지 않을까?

어차피 삶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기관차처럼 멈출 수 없는 것이지만,

저 멀리 비추이는 '신기루'를 따라서 희망을 갖기도 한다면 신기루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을 거다.

하지만, 그 신기루가 오로지 '욕망'과 '소유'를 위한 집착을 불러온다면, 결과는 슬프다.

 

Do your best. 란 말은 흔히 쓴다.

하면 된다. 최선을 다 하자. 급훈으로 많이 걸려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최선이... 욕망과 소유를 위한 뻔한 클리셰(식상한 관용적 표현)에 불과하다면,

과연 왜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왜 그렇게 기관차처럼 달려가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질 필요도 있다.

 

Be your best.

최선을 다해 살아라. 베스트 인생을 살아라. 그런 존재가 되어라.

이 때의 최선은 '욕망과 소유'보다는 '발견'이다.

똑같은 인생에서도 발견하는 안목에 따라,

삶은 가치있는 것도, 무가치한 것도 될 수 있다.

 

이왕이면, 가치로운 삶으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기 보다는,

최선의 '인간 존재'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소설을 권해 준다.

 

이 소설은,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

부귀영화나 명예가 항상 부족해 헐떡거리는 사람에게,

또는 그걸 얻었다고 해도 항상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에게,

특히, 자식 기른다고 십여 년을 쎄빠지게 고생했는데,

남은 거라곤, 쾅 소리 나며 걸어 닫힌 자식의 공부방 문 손잡이 뿐인 아줌마들이 읽어보길 권한다.

나이 마흔이면, 불혹이라고도 했고, 부록이라고도 했는데,

남은 게 껍데기뿐인 월급봉투거나, 닫힌 자식의 문 손잡이 뿐이라면,

참 쓸쓸하지 아니한가?

 

쓸쓸한 그대가 고비 사막으로 날아가지 못한다면, 이금이를 만나 보라고 권해 주고 싶다.

 

-------- 생각해볼 표현.

 

15. 내 악어 눈물에 넘어간 아빠는... 악어의 눈물은 '가식적으로 눈물을 흘림'의 의미인데, 악어가 잡아먹은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물샘이 자극되어 나는 것일 뿐임에서 나온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딸이 아빠에게 연기를 펼치며 눈물을 보여 여행을 따라가게 되는 상황이어서... 악어의 눈물... 이 담고 있는 가식적 이미지, 가증스런 정치인의 레토릭(수사)로서의 눈물(전에 이 모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보인 눈물이 딱, 이거다.)과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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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2-05-0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귀영화가 부족해 헐떡거리는 사람 여기 있어요~~ 요즘 제 화두.어떻게 해야 돈을 벌까? ㅎㅎ
우석훈은 불혹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시기라고 하는데,
전 혹시나 부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아직도 살고 있네요. ㅠ
읽어보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어요^*^

글샘 2012-05-06 12:52   좋아요 0 | URL
충분한 월급, 세상엔 없다는데요 ^^
혹시나, 로또를 사세요.
역시나, 꽝이겠지만요. ㅎㅎㅎ
 
마지막 증언 1
존 카첸바크 지음, 김진석 옮김 / 뿔(웅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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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계 광장에서 촛불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최근 미국에서 광우병이 재발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아무런 조치없이 미제 소고기를 수입하겠다 했고,

그 반발로 촛불이 재점화된 것이다.

올해는 대선이 있는 정치의 해이므로,

먹거리를 소재로한 이런 촛불집회를 초반에 제압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지만, 역부족일 것이다.

왜 정부는 촛불 집회를 방해하는지?

형식적으로 촛불 집회를 가로막는 어버이 연합, 경찰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

집회가 열리고 반대자가 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치 않다.

그 이면에 깔린 음모와 저항의 부딪힘의 접점을 읽어내는 '진실'을 파헤치는 일이 중요한 것인데,

언론이 통제된 지금 방송은 진실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팟캐스트 방송으로 힘을 얻던 나꼼수도 정봉주 구속과 김용민 멘붕 사태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억압은 계속된다.

그러나... 사실 보도만도 제대로 하는 기관이 없을 때, 국민은 '진실'을 읽기 힘들게 된다.

 

지난 주 부산에서 수십 년만에 공연된 '미스 사이공'을 보고 왔다.

사이공(지금의 호치민 시)의 킴이란 아가씨는 미군들에게 몸을 파는 처녀다.

전쟁 중에 양공주가 많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이 아가씨는 한 미군과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전쟁이 끝나고 미군은 본국으로 돌아간다.

킴은 미군의 아기를 임신하여 낳은 뒤 기르는데, 나중에 미군 크리스는 헬렌과 결혼한 후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갈등 사이에서 킴은 목숨을 버리게 된다는 이야긴데...

이야기의 '관점'은 철저하게 미군의 시점을 유지한다.

미스 사이공은 그저 불쌍한 전쟁 희생양처럼 그려지게 된다.

베트남 전쟁이 추악한 미국의 욕심이 저지른 범죄행위였다는 진실은 은폐한 채로...

또 베트남 전쟁의 '진실' 속에는, 그 숱한 미스 사이공들 뒤에는 '따이한'의 자식들도 숱하게 버려지고 왔다.

그 진실은 아직도 어두운 베일 속에서 잠자고 있다.

 

사실은 은폐되기 쉬우며, '진실'을 밝히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제를 펼치기 위하여,

존 카첸바크는 징그러운 연쇄살인범들을 등장시킨다.

절대악인 살인범들 사이에서 '진실'은 조작되며 왜곡되고, 매슈 코워트란 저널리스트는 그 사이에서 이용당하기도 한다.

 

원 제목 just cause는 '정당한 이유, 공정한 사유'라는 뜻이란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중심리의 통제를 위해 범인을 지목하고,

속성으로 수사와 소송을 진행하여 얄팍한 결과를 내보이는 사건 처리의 과정은,

통념으로 속고 속이는 현대사회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알라딘 설명)

 

알라딘 설명과는 다르게, 내 생각엔,

Just Cause를 제목으로 달았을 때, 저자의 생각은,

<올바른 동기>, <동기는 좋았으나>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주제를 드러내는 제목이 한국어로는 의미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제목을 다시 달았는데,

'마지막 증언'은 사건을 이끌고 가는 가장 핵심적 소재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주제를 드러내기엔 적합하지 않다.

제목 선정에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흑인이란 이유로 범죄자의 낙인이 찍히기 쉽다는 통념을 이용해,

저널리즘의 선정성을 활용하면서 연쇄살인범의 '마지막 증언'은 그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사건은 계속 복잡하게 꼬이지만, 결국 해결을 보여주기보다는,

진실은 미궁으로 들어가는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실마리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재가 흥미롭고, 사건 전개가 반전을 보여주면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두 권으로 분책되어 있는데, 1권이 330쪽, 2권이 400쪽이다.

1권에서 거의 사건이 해결되는 듯한데, 아직 더 두꺼운 2권이 남아있으니, 분명히 어떤 반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여지없이 또다른 반전의 가능성을 심어두는 재미를 잊지 않는다.

 

흑인 피의자 퍼거슨은 기자를 만나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면 모질게 싸워야만 한다는 걸 그땐 깨닫지 못했죠.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선 안 된다는 걸요."(57)

 

그러나, 다시 퍼거슨은 이렇게 묘한 말로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정말로 저에 대해 아시는 게 뭔가요?"

 

연쇄살인범 설리번은 코워트에게 묘한 말을 던지는데, 여기서 이 소설이 추구하는 진실의 문제가 밝혀지기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말해봐, 코워트, 자네도 살인자지?

생명을 없앤 적이 있느냐고. 가량 군대에서라든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법한 나이로 보이는데...

아내나 여자 친구에게 낙태를 강요했던 적은?

마약을 하진 않았나? 그러는 동안에 사라지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말해봐, 자네 역시 살인자지?"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을 담 밖으로 밀어내고 담장 안의 사람들은 무죄라고 선언한다.

그렇지만, 그 담의 경계에 대한 진실은 은폐되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밝혀지고 나면 명백하게 담장이 허구였음을 알게 된다.

 

얼마 전, 여자를 토막내 살인했다는 조선족 이야기가 신문을 도배한 적이 있다.

곽노현이나 노무현, 한명숙처럼 표적수사를 당하는 경우에도 피의사실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법률의 abc 조차도 지켜지지 않게 된다.

사실을 밝혀 진실을 캐내는 데, 선정적인 언론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여론을 호도하여 정권이나 언론이 이끌고 싶은 방향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3년 전, 용산 참사 이후, 강호순 사건으로 도배된 신문이나, 작년 한미 FTA 이후로 학교폭력으로 도배된 신문...

올해 총선 전, 김용민 사태로 도배된 신문들을 보면, 도저히 언론이라는 공적 도구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다.

 

언론의 진실은 그렇다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었는지에는 별무관심이란 이야기다.

흑인으로서 성실히 살아온 브라운 반장의 이야기는 시니컬한 목소리로 주제를 변주한다.

 

"세상일이란 건 말이야. 사람들 생각만큼 단순하게 또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아.

항상 혼란이 생겨. 의문은 늘 남고, 의심도 사라지지 않아."

 

같은 주제를 설리번의 독설로 옮기면 이렇다.

 

"얼마나 고집이 세냔 말이야. 아무리 보여줘도 전혀 보지 못하는 족속들이 있어. 그렇잖나?"

 

그 주제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여형사 셰퍼가 퍼거슨의 허름한 집을 찾아갔을 때

퍼거슨이 남긴 말에 들어있다고 읽었다.

 

"사람은 자기 안에서 살죠.

세상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요.

사형수 감방에서 배운 첫 교훈이 그거예요.

많은 것 중 첫 번째였죠.

감옥에서 배운 것을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전부 잊는다고 생각하세요?"

 

사람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다.

세상에 그래서 '사실'과 '진실'은 판별되기 어려운 것이다.

죽음을 직면하게 되면, 진실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본질임을 알게 된단다.

 

돈도, 명예도... 삶에서 중요하다는 사실 역시 죽음 앞에선 무화되듯이 말이다.

 

---------------------------- 번역에서 조금 어색한 부분 몇 군데

 

1-243. 2-41. 대량 살인범...

1-280. 연쇄 살인범... 요게 더 흔히 쓰이는 표현인데...

 

2-120. 신발 자국이... 리복 농구화로, 275센티미터에서 330센티미터 사이의 사이즈였다.

          원문에선 11인치에서 13인치 사이의 사이즈라고 나왔을 법 한데... 그걸 센티미터로 옮기니 좀 웃기게 되었다. ㅎㅎ

          어느 한국인 형사가, "범인의 발은 275~330센티미터 사이입니다." 이러고 말하냔 거다.

          그리고 심각한 건 말이다. ㅍㅎㅎㅎ 275센티미터는... 2미터 75센티다. 음... 미쿡인 농구화 절라 크다. ㅋㅎㅎㅎ

          밀리미터의 오류인데... 아무리 문과 출신이 옮겼어도... 이런 산수에서 틀리면... 쩜 그렇다.

 

2-123. 신호가 세 번 울리자 수화기 너머에서 신음성이 들렸다. ... 신음성? 신음소리나 한숨소리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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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5-0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과 진실이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었었는데 말입니다.

사실 조차도 제대로 알수 없는 현실에서 진실을 어떻게 찾을수 있을지 흠흠.

지금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을 읽고 있는데 팍팍 혈압상승 중입니다.
이러다가 퇴근시간때 쯤엔 코피 뿜는거 아닐지 모르겠어요.

글샘 2012-05-03 14:48   좋아요 0 | URL
사실은 fact고 진실은 truth인데...
한국에선 fact조차도 밝히기 쉽지 않죠.
하긴, 미국의 9.11 조차도 자작극이라는 둥 하니깐...
9.11이 일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 뒤에 숨은 진실은 누구도 모르죠. ㅎㅎ

위키리크스... 저도 그거 읽다가 터질 뻔 했다는...ㅠㅜ
 
숲에서 온 편지
김용규 지음 / 그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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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왜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요?"

"무슨 말씀인지..."

"다른 여자들은 키스를 할 때,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저는 여태 키스를 할 때마다 단 한번도 종소리를 듣지 못했거든요. 왜 그런 걸까요?"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개척하고 즐기고 누리는 김용규에게 어떤 여인이 묻는다.

김용규의 자세는, 어떤 질문에서든 배울 점을 찾아낸다는 자세.

역시 김용규 답게, 답을 몇 개 내놓아 본다.

 

"키스를 머리로 하시는 모양이지요. 가슴과 몸이 먼저, 그렇게 아래로부터 차오르는 황홀감이 머리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

그것이 달콤한 키스의 정석 같은데요."

 

머릿속으로는 환경 문제도, 세상 문제도 해결책을 많이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몸은 그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삶을 살고 있기 일쑤다.

문제는 몸이다.

 

이 책에서는 머릿속으로만 궁글린 생각이 아닌, 자연 속에서 보고 얻은 관조들을 무료로 얻을 수 있어

푸짐한 음식 앞에서 미리 포만감을 즐기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기쁨을 얻는다.

 

산중에 홀로 살면 두렵지 않느냐? 외롭지 않느냐? 묻는단다.

두려움은 알아가고 느끼는 것 앞에 사라진다.

외로움은 사람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하며, 무수한 생명과 사물 속에 내가 스며들지 못하는 데서 찾아오는 것임을 알게 되면,

곁에두고 잘 어루만질 수 있단다.

 

좁고 찌든 마음을 열어 천천히 내 밖의 세계인 자연과 연결하는 마음을 살려내면 웬만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21)

 

이 논조는 이 책을 꿰뚫는 화두와도 같은 것이다.

 

아궁이 불지피면서도 이 남자, 참 생각이 많다.

 

연소의 첫 번째 원리는 바로 작은 것을 태우는 데 성공해야 큰 것을 연소할 수 있다는 것.

연소에 실패하는 또 다른 원인은 서두름에 있다.

다음 원리는 직접 체험해봐야 하는 것인데, 전체가 활활 타오르려면 불이 사방에서 고르게 타오르는 균형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옵션이 '부지깽이'. 산소 공급을 위하여 조금만 공간을 열어주면 된다.

부지깽이는 좋은 스승의 역할.(28)

 

아궁이에서 연기만 웬수처럼 여기게 되기 십상인데, 이 남자는 이런 걸 배우려 든다.

이 남자가 나무를 기르면서, 가지치기를 처음엔 하다가 나중엔 냅둔다.

그 이치가 웅숭깊은 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억압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람 역시 마음껏 제 가지를 뽑아 올려

드디어 제 꼴을 향한 삶의 질주를 제 속도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억압하는 면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희로애락의 균형의 추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네 가지 감정선 중에서 어느 측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헤아려 보는 것.

예전의 나는 분노와 슬픔에 민감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표현은 늘 부러진 날개처럼 꺾여 있어 부실했습니다.

 

그대는 어떤지요.

희로애락에 대한 반응에서 어떤 부분이 자유롭고 어떤 부분이 부자유한지요.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요.

혹시 어느 한쪽 부러진 날개를 접고 비대칭의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러다가 평생 그렇게 늙고 시들어가는 것은 아닐지요.(164)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면, 우울근이 많이 발달해서 행복근이 맥을 못추게 하는 억압의 기제가 발달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근육처럼, 행복근을 발달시킨다면... 우울근을 조금 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바다와 산이라는 개를 기르고, 숱한 벌들을 기르며 꿀을 얻는 농부다.

이 동물들과 겪는 에피소드도 재밌지만,

182쪽처럼 짜릿한 느낌을 주는 말은, 역시 그의 관조가 내뿜는 힘이다.

 

숲에서 필요한 것은 유심히 보기, 고요히 듣기입니다.

 

감나무 껍질이 얼마나 이쁜지...

세상 모든 게 그렇다. 유심히 보고, 고요히 들으면,

그것은 곧 애정을 가진 자세이므로, 모두 이뻐보이게 마련이다.

나태주의 풀꽃이란 시처럼...

 

 

 

 

 

그는 농담삼아 인간과 사람을 구별해 본다.

 

농사해 보았으면 사람, 아니면 인간.

자신혹은 타인의 자식을 포함해서 생명을 길러본 이는 사람, 아니면 인간.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해본 이라면 사람, 아니면 인간.

위 세 가지중 하나라도 자신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면 그는 사람, 아니라면 인간.(216)

 

재미로 만든 말이지만, 삶은 생명에 대한 애착 없이는 의미부여하기 힘든것임을 강조하는 말이겠다.

 

인생에서 겨울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이겨내야 좋을까를 묻는 후배에게 그는 계절론으로 갈음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여서 우리 삶에도 종종 겨울이란 시간이 찾아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겨울이 찾아온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겨울을 맞았는데도 자신의 삶에 꽃이 피어나기를 바란다.

고통은 거기에 있다.

겨울을 맞아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겨울이 온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나온 봄날처럼 여전히 꽃피기를 바라는 데 우리의 불행이 있다.

나무를 보라.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들은 가장 붉거나 노랗거나 저다운 빛으로 잎을 물들인다.

단풍은 나무들이 자신의 욕망을 거둬들이는 모습이다.

이제 곧 성장을 멈춰야 하는 시간을 맞으려는 으식이 단풍이다.

그들은 마침내 봄날부터 피웟던 모든 잎을 버려 겨울을 맞이한다.

벌거벗는 의식이다.

나무들은 나목이 되어서도 자신을 지켜낸다.

겨울엔 오로지 자신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 이상 소비도 생산도 하지 않아야 함을 알기에, 나목은 무언가를 생산하려는 시도를 멈춘다.

당연히 소비도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한다.

간결해지는 것이고, 가벼워지는 것.

어쩌면 다만 버티는 것.

자연에는 그렇게 버티는 것만이 가장 큰 희망이고 수행인 시기가 있다.(228)

 

박노해의 <삶의 나이>에서는 이런 말을 인용한다.

그렇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몇 개의 금을 그었는가?

지금 나는 금을 긋고 있는 중인가?

 

삶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있는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 것.

그가 지상을 떠날 때,

묘비에 금을 세어 숫자를 새겨두는 것.

이것이 참삶의 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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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터 - 나희덕, 장석남 두 시인의 편지
나희덕.장석남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중국 전국시대 때 초나라 태생인 유백아는 성연자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스승 성연자는 제자인 백아에게 수 년 동안 음악 기초를 배우게 했다.

그런 다음 태산으로 그를 데리고 올라가서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우주의 장관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봉래의 해안으로 데리고 가서는 거센 비바람과 휘몰아치는 도도한 파도를 보여 주면서 바다와 비바람 소리도 들려주었다.

 

백아는 스승의 이러한 지도로써 비로소 대자연이 어울려 화합하는 음성과 신비하고 무궁한 조화된 자연의 음악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련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백아는 저 위대한 금곡인 천풍조, 수선조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백아에게는 입신출세의 길이 열려 진나라에 가서 대부의 봉작을 받게도 되었다. 그러나 그의 금예가 도달한 참된 경지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음악가로서의 그의 불행이었으며, 견디기 힘든 고독이 아닐 수 없었다.

 

백아는 진나라에서 20여 성상을 보낸 다음 고국에 돌아와 자기에게 음악의 진경을 터득케 해준 스승 성연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음악이 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스승은 돌아가시고 고금일장만 유언으로 남아 백아를 맞이해 주었다.

백아는 몹시 상심하여 강을 따라 배를 저어간다.

때마침 언덕에는 가랑잎이 지고, 강을 따라 갈대밭에는 갈대꽃이 만발하여 고독한 나그네를 더욱 수심에 젖게 하였다.

 

백아는 기슭에 배를 대고 뱃전에 걸터앉아 탄식어린 거문고 한 곡을 탄주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스럽게도 어디선가 바람결에, 유백아가 뜯는 거문고의 탄식에 맞추어 어떤 사람의 탄식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이 깊은 가을 저녁, 넓고 적막한 강기슭에서 누가 나의 탄식 깊은 거문고를 들어주었단 말인가? 

그때 백아 앞에 나타난 사람은, 땔 나무를 해 팔면서 사는 가난한 나뭇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땔나무를 하기 위해 산천을 다니며 평생을 사노라 자연의 음성과 자연과 교감하는 음악의 참된 경지를 알아들을 줄 아는 종자기라는 사람이었다.

 

백아는 수십 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을 만난 지라, 거문고의 줄을 가다듬고 아끼는 수선조 한 곡을 뜯었다. 백아가 수선조를 다 뜯고 나자 종자기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도도한 파도는 바람에 휘말려 넘실거리며 흘러가고 있군요”라고 말했다.  백아는 이처럼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해 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천풍조를 뜯기 시작했다.

종자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천풍조를 다 감상하고 나서 “장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군요. 가슴속엔 해와 달을 거두어들이고 발아래는 무수한 별무리를 밟고 서 있군요. 높으나 높은 상상봉에 의연하고 도저하게 서 있군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찌 더 이상 주고받을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를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닌가. 유백아와 종자기는 다음해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때가 되어 백아는 종자기를 찾았으나, 종자기는 병들어 죽고 없었다. 백아는 종자기의 무덤을 찾아가 통곡을 하였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그의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오직 하나뿐인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거문고를 뜯어 무엇 하느냐고 백아는 슬퍼했다.


백아가 “종자기 같은 지음(知音) '내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 이 없으니 연주를 해서 무엇하랴' 라고 하면서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이야기이다.

 

지기지우... 知己之友... 나를 알아주는 벗.

내가 울고 싶을 때,

내가 술 마시고 싶을 때,

내가 술 마시기 싫을 때... 그런 나를 인정해주는 그런 벗이 있다면 세상 아무리 험하고 더러워도 살 만 하겠다.

 

그런 백아도 종자기가 죽자 끝내 거문고 줄을 끊어버린다.

진심을 나누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

진심을 나누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용기를 내서 확 잡아야 한다.

놓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바보다.

 

나희덕과 장석남이 백아와 종자기가 되어 편지를 주고 받는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시인들이어서 편지 역시 우아하고 단아하다.

그러면서도 자연에 대한, 세상에 대한 관조의 시선이 살아있다.

이런 지기를 만날 수 있다면... 세상사는 것도 행복할 노릇이다는 생각이 들어 샘이 날 정도다.

 

삶이 외롭다는 것을 짐작한 지 꽤 여러 해 되었습니다만,

그 외로움을 이겨 나가는 한 요령에는 자기 마음을 무턱대고 보여주는 것도

가끔 크게 우는 것만큼이나 효력이 있는 줄 압니다.(10)

 

연암의 '통곡할 만한 자리(호곡장)'가 이렇게 되살아난다.

내 마음을 누구도 들여다본 일 없다.

누구에게도 내 가슴을 오픈한 일이 없었다.

내 마음을 무턱대고 보여주어도 좋을...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삶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뒤편을 감싸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뒤편에 슬픔 것이 많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마치 비 오기 전 마당을 쓸듯 그의 뒤로 돌아가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주는 일이다.(36)

 

문태준 시인이 천양희의 시 <뒤편>에 덧붙인 단상이라는데...

참, 절절하게 마음이 움직인다.

누구에게나 뒤편에 슬픔이 가득하다.

그걸 무턱대고 보여줄 사람을 만나는 일도 요원하거니와,

누군가의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줄 수 있어야 한다니...

사랑을, 득도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편지글이다.

 

'김영민의 공부론'이란 책을 함께 공부한댄다.

이 책을 인이불발(引而不發, 활을 당기되 쏘지 않는다)로 압축한다.

무협지의 제자가 절간에서 빗자루질부터 하듯,

공부는 진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버텨 내며 힘겹게 에둘러 가는 것이어야 함을...

이 부박한 시대에 필요한 싸움이 그런 공부임을 배운단다.

 

정조의 화성 축성에서 '아름다움이 힘'이란 말이 나온다.

실용적이면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은 힘이 된다. 충분히.

 

포은 정몽주의 호 풀이, 포 자가 텃밭, 채마밭이란 뜻이란다. 圃

채마밭에 숨으련다... 오호, 가열차게 아름답구나... 이런 발견, 적어 두고 싶다.

 

하나 더 있다. 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올 때, 그것을 과감 果敢 하다고 한단다.

좀 억지이기도 하지만, 일리가 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이 그런 소리 잘 한다.

 

식물들에게 장마는 큰 시련이자 성장의 발판이니,

사람의 일생에서도 한 번씩 찾아오는 사랑은 그와 같은 역할일지 모른다...

세상은 사랑을 두고 이루어지니 그렇지 않니 운운하기도 합니다만

생각해보면 사랑으로 무얼 이루겠습니까.

결론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사랑일까 되물어 보기도 합니다.

쉽게 생각해서 결혼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거라면 사랑은 참 쉽기도 한 셈이죠.(139)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통하여 얻는 성장의 발판이란 소리... 쉬운 말이지만... 실천하기 참 어려운 말이다.

 

아무리 평탄해보이는 연인 관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사랑하는 쪽과 덜 사랑하는 쪽이 있게 마련.

또 두 사람 중에서도 강자와 약자, 또는 현실적 강자와 약자가 있구요.

무슨 관성처럼 두 사람 사이에 한번 정해진 역할이나 질서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그런 불균형이 지속되고 심화되는 과정...

사랑의 기울기를 감지하는 순간부터 고통은 찾아오고,

그런 자각 자체가 사랑의 기울기를 더 경사지게 만드는...

그런데, 그 기울기 때문에 사랑은 거래와은 다른 것이 됩니다.

사랑의 저울은 늘 이렇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죠.

그 맹목적인 불균형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사랑의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147)

 

사랑의 어려움을 기울기, 배의 기울어짐을 비유로 들어 표현한다.

뭐,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암튼, 사랑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서로의 감정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겠는데,

속된 말로 밀고 당기기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인데...

사랑의 저울은 늘 이렇게 불균형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법인 모양이다.

그 저울질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되면, 속된 말로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삶에서도, 사랑에서도,

늘 깨어있는 자신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일깨우고,

더불어 종자기와 함께 걸어나갈 미래를 향해 나란히 눈길을 두는 것.

그것이 삶의 바람직한 자세이자, 사랑의 자세이겠다.

 

백아에게 종자기가 꼭 필요했듯,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은 꼭 잡을 일이다.

두 시인의 편지는 많은 생각을 뿌려주기에 좋은 책이다.

좋은 생각들을...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생각에서 만들었는지도...

 

 

104. 차별이 없는 무등의 정신... 이라고 했는데... 무등(無等)은 최상급이다. 견줄만 한 것이 없다...는 최고라는 의미다. 평등으로 바꾸는 게 적절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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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5-02 11:05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쿠폰 쓸줄을 모른다는... ^^

반딧불이 2012-05-0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생각이 담긴 좋은 책을 좋은 리뷰로 소개해주셨네요. 그런데 우리말을 골라쓰고 아끼시는 분들이 왜 제목을 외래어를 썼는지...

글샘 2012-05-02 11:06   좋아요 0 | URL
제목이 좀 그렇죠? 러브 레터도 아니구요. ㅋㅋ
제목은 뭐 출판사 편집자들이 만들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