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매미 같은 여름 푸른도서관 51
한결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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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맴맴 운다고 울음소리에 명사 만드는 접미사 '-이'를 붙여 이름을 만들었다.

매미는 굼벵이로 7년인가를 나뭇속에서 살다가,

매미가 되어 며칠을 울다가 죽어간다고 한다.

그 한살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더 오랜 기간을 나뭇결 속에 파묻혀 산다고도 한다.

 

보통, 매미의 존재를 불쌍하다고 이야기한다.

쓸데없는 오랜 기간동안 나뭇속에서 살다가, 겨우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을 맴맴 울면서 살아간다고 말이다.

그 판단의 기준은 오로지 인간에 의한 것이다.

매미의 일생 역시 '자연스러운 것'일 따름인데,

매미는 한평생을 즐겁게 나뭇속에서 뒹구는 재주를 부리며 굼벵이로 살아가다가,

번식을 위한 짧은 기간을 목청 높여 짝을 부르는 일을 한다고 보면, 매미는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한국의 청소년들을 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목적도 없이 오로지 같은 모양의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불쌍한 매미이기도 하지만,

부모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줘서 편안해 배가 터져 죽겠는 배부른 굼벵이이기도 하다.

그 시선은 모두 어른들의 것이다.

 

어떤 인생이든 살아갈 가치가 있다.

그 삶의 궤적은 비슷한 점이 대부분이지만, 디테일에서는 각기 다르다.

사람의 심리적 결이 다를 수 있기때문에, 같은 삶에서도 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세 가정은 모두 환경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렇지만, 그 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고민은 대부분 비슷하고,

또 많은 경우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고민들이다.

 

아이들은 그 고민들을 공유하는 경험이 중요한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어 불행하지만은 않다.

 

여느 성장 소설과 비슷하게 부모의 환경이 열악하고,

가출하여 성장하는 플롯이 식상한 부분도 물론 있지만,

다양한 가정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임을 펼쳐 보이는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가정의 문제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

아이에게 지나치게 매달리는 엄마,

직장에만 매달려 가정을 도외시하는 아빠,

아이를 버리고 떠나가버린 엄마,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알콜리즘 아빠,

아내를 잃었고, 젊은 시절 주먹깨나 썼지만 성실하게 짜장면을 마는 아빠,

이런 어른들의 삶을 통해서 어른들도 위로받을 수 있고,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어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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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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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처 치유에 대한 청소년 소설

 

왜 중2가 문제가 되었는지, 한국의 15년 역사를 뒤집어 올라가 보면 빤히 보인다.

경제 위기 이후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해 졌는지.

그 경제 위기는 한국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세계화에 편승하려고 얄팍한 경제정책에 기댄

자율성 잃은 경제의 부산물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영화 '집으로'가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엄마가 할머니 집에 아이를 유기하고 간다.

영화에선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오지만, 현실에선 '집으로'가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완료진행형일 거다.

 

직업을 잃은 아버지가 아이를 때리고, 형은 동생을 때리고, 동생은 개를 때린다.

한때 유행처럼 애완 동물을 기른 붐이 일기도 했지만,

'애완'과 '동물'은 창과 방패처럼 어울리지 않는 모순된 역설의 언어들이어서,

'사랑스럽게 데리고 논다'는 뜻과, '자연의 품에서 자유롭게 산다'는 뜻이 어불성설로 얽힌 그 동물은,

결국 비극적 결과를 얻게 된다.

 

대부분의 '애완'을 목적으로 사온 동물이 '유기'로 결말을 맺는다.

유기된 동물들은 거의 '안락사'시키는데,

'안락'과 '죽음' 역시 모순 어법에 충실한 인간의 동지다.

 

동물 커뮤니케이터가 동물 농장에서 신기한 현상을 보여준 일이 있다.

이옥수는 가정 폭력의 문제와, 소통 부재의 상황을, 동물 커뮤니케이터와 연관지어 풀어내려 한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소통의 부재를 낳고,

소통의 부재가 문제를 양산한다.

 

소통의 부재라는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회 경제적 환경>이겠지만,

각 개인의 문제에는 <노력 부족, 방법에 대한 무지>도 담겨 있다.

 

이 소설에서는 소통 부재의 상황과 정신적 혼란을

동물 커뮤니케이터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연관지어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청소년인 자식이 속을 썩여 맨날 욕을 입에 달고 사시는 부모님이라면, 이 책을 자식에게 권해주기 바란다.

안 보면, 11,000원 버리면 되지만, 읽게 되면 회복의 물꼬를 트게 될 수도 있다.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아이들의 이면에는 반드시 사회적 환경의 문제,

그리고 개인적 해결을 위한 노력 제공 부족의 문제가 함께 한다.

 

그게 복지의 하나인데... 복지를 '거지 밥 주는 거'라고 멍청하게 이해하는 '지식인'들이 너무도 많다.

공부 좀 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 책이 도움이 된다.

공무원들, 특히 복지 관련 공무원들도 이런 책 좀 읽고 고민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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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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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결혼한 황민웅-정애정 부부...

그러나 화학 약품에 중독되어 백혈병에 걸린 황민웅은 죽고 만다.

정애정은 삼성이란 괴물과 싸운다.

 

그러나, 대한민국 법원, 졸라 훌륭한 법관님들의 2009. 5. 15일 판결.

 

황민웅은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은 인정되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법원은 일관성이 있으시다. 무조건 삼성 편이니깐.

 

법원 : 증인은 가스가 나오는 걸 직접 보셨나요?

증인 : 저... 가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요.

법원 : 그런 상황이면 방독면을 왜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증인 : 그게... 현장이... 왕따 당하게요? ㅎㅎ

 

참 저질 공장이다.

그런데, 저질 인간들이 들어앉아서,

인간에게서 떨어질 먼지나 걱정하고 있다.

 

인간하나 죽든말들... 법원이 감싸주니 지들은 무죄다.

 

이 만화에선 전문 용어가 너무 많이 등장하여 이해를 방해한다.

좀 얇게 정리되더라도 반도체 생산 공정을 꼭 필요한 용어와 기술만 정리해줄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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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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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의 서랍을 가진 책상,

이정록 시인의 집에는 없다.

이 책상은 '그레이트 하우스'란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다.

이정록이란 느직한 충청도 말로 들려주는 이야기 시인의 산문집이다.

 

무엇보다 절창인 시는,

그와 어머니의 대화이고,

그걸 풀어 놓은 수필이 가장 쫀득거린다.

충청도 사투리는 빠르지 않지만 찰진 말맛이 일품이다.

느린 속에서 느긋하게 생각하지만 깊은 의중이 담긴 언어다.

 

충청도 양반이란 것도, 다 그 언어의 특징을 살린 표현일 게다.

그의 시 중에 옻나무 젓가락이 그이 시어를 잘 반영한다.

 

 십 년도 더 된 옻나무 젓가락

 짝짝이다.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한쪽만 몰래 자랐

나? 아니면

 한쪽만 허기의 어금니에 물어뜯겼나?

 

 어머니. 이 젓가락 본래부터 짝짝이였어요? 그럴

리가. 전 그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간데요. 저런 싸

가지를 봐. 같은 미루나무라도 짧은 쪽은 네 놈 혓바

닥처럼 물 질질 흐르는 데서 버르장머리 없이 크다가

물컹물컹 제 살 아무 데나 쓸어 박은 것이고, 안 닳은

쪽은 산 중턱 어디쯤에서 나마냥 조신하게 자란 게지.

출신이 모다 이 어미라도 동생들 봐라. 물컹거리는

석 있나? 장남이라고 고깃국 먹여 키웠더니, 뭐? 그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가라고? 배운 놈이 그걸 농

이라고 치냐? 젖은 혓바닥이라고. (옻나무 젓가락, 부분)

 

이 산문들을 읽으면서, 그의 시를 다시 찾아봐야 겠단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말들이 '구라'라는 생각에서 '정말'이란 시집을 썼단 사람을 말이다.

 

윗방에서 안방 어머니 친구들의 온갖 야담을 다 들어가며 썼던 시들.

그 언어 유희와 삶의 지혜를 만나려면,

이 산문집으로는 모자란다는 생각에서다.

 

농사를 짓는 어머니께서 '농사는 그늘 농사'라고 하신다.

보통 농사라면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어야 한다는게 일반론이라면,

가로등 불빛 아래서 턱없이 빨리 자라는 토마토나,

그늘진 곳에서 시름시름 열리지 못하는 풋고추의 참맛을 보면서,

삶의 비의를 깨친다.

 

인생농사도 그늘 농사라고 혔지.

아내 그늘, 자식 그늘,

지 가슴 속 그늘,

그 그늘을 잘 경작혀야 풍성한 가을이 온다고 말이여.

 

어머니를 관찰하는 시인의 눈 역시 어머닐 닮을 수밖에 없다.

 

삶이란 게 본시 기름병 주둥이처럼 흘러넘치는 주변머리 없는 것이지만,

어머니는 식구들의 열린 병뚜껑을 닫아주시고 거친 손과 투박한 입술로 병 모가지를 훔치고 핥아주셨다.

하지만 당신 자신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부엌에 드시는가.

 

세 자식을 앞세우고 술로 삶을 지새우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교무수첩에 받침없는 연애편지를 쓰신다는 낭만적인 어머니.

 

그래도 매일 밤 잠들라고 하면 막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설렌다는 어머니의 삶.

 

세찬 비바람에 웅크리고 있는 나무는 작은 충격에도 문풍지처럼 운다.

남들보다 약하다 느끼는 순간, 주위의 모든 바람이 제 바람의 세기를 그 작은 나무 앞에 와서 툭툭 가눠보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쓸쓸히 우는 산정의 작은 나무들.

나는 춥고 보잘것없는 나무였다.

 

동그랗고 작은 코스모스 봉오리는 톡 터트리면 맑은 물이 흐른다.

'너는 왜 우니? 날 흉내내는 것이니?'

얄미온 코스모스 봉오리를 훑어 신작로에 흩뿌리다가, 코에 대고 향을 맡는다.

'아, 이리도 서러운 눈물의 향이 있구나.'

 

시인의 어린 시절은 서러움과 외로움의 기록으로 남는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 그의 삶은 다른 것이었을 수 있다.

그 사람의 삶의 의미를 남이 읽어줄 수 없다. 자기가 쓰는 수밖에...

 

아버지 지팡이에 새겨진 글자를 보면서...

 

"한 글자에 오백원씩 오천원 줬다.

느낌표는 보너스여. 그 느낌표가 중요헌 거여.

사람이 한 세상 접을 때에는 느낌표가 있어야 혀."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 속에서 밀려오는 삶에 대한 애정은 깍쟁이처럼 보이는 서울말보다 진해 보인다.

느릿한 말투지만 관찰하는 눈이 느린 것은 아닌 법이어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깊은 인간의 사념의 저수지를 거닐 수도 있어 행복한 산책길을 만나게 된다.

 

언제나 정지된 시간과 사물 속을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다면 사랑의 출발은 순조롭다.

로맨스는 벗어날 때 발동하는 것,

가족이란 굴레에서 빠져나와 가족과 충돌하고,

일상이란 틀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삶의 질서와 휘청휘청 싸우고,

상식에서 벗어나서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궤변과 씨름하고,

밤낮과 밤낮없이 싸우고,

빛과 어둠이 섞여서 하루에도 열두 번 빛과 어둠 중 어느 한 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우뚱기우뚱 쏠리는 것이다.

 

누나의 연애담에 얽힌 연애론은 제법 날카롭다.

시어에 대한 탐구도 재미있다.

 

부유하는 삶은 흐리다.

정처가 없다.

정처가 없으면 뿌리가 내리질 않는다.

뿌리를 기르지 않는 풍경은 힘이 없다. 바닥이 없다.

오늘 나느 작은 거울에 입김을 불어 넣고 이 말을 쓴다.

'물끄러미!'

아, 저녁 같은 이 말의 촉촉함에 나를 비빈다.

내치는 것도 아니고, 와락 껴안는 것도 아니다.

'물끄러미'라는 말 속에는 적정한 거리가 있다.

대상이 녹아서 나에게 스며들 때까지의 묽은 기다림이 있다.

째려보는 것도 아니고 쏘아보는 것도 아닌, '넌지시'가 있다.

몰아세우고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안쓰러운 대상에 안쓰러운 나를 보리밥에 열무김치처럼 비비는 것,

비빔밥 옆 찬물 한 그릇의 눈을, 가슴에 들이는 것!

물끄러미, 오래 젖을 것!

풍경에 나를 덧대고, 내 안에 서려온 그늘이나 설움을 오래 문대며 들여다볼 것!

 

세상을 관조하는 그의 깊은 마음을 한 단어로 찾자면, 이것이 될 것이다.

물끄러미...

 

마지막 장은 시인들에게 한 강의록인 모양인데,

자신의 문장을 다 읽고 스스로 거른 문장 다섯은 이와 같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구름이 아름다운 건 폐허를 꿈꾸기 때문이다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내 관으로 쓰일 나무가 어딘에서 하늘을 보고 있다

혈서는 마침표부터 찍는다

 

근데, 문장은 뭐하려고 낳나?

이 글귀들도 구름처럼 사라지리라.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렇지만, 시인은 자신의 서랍에서 새로운 것을 꺼내어 보고,

궁글리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 보다,

또 새로운 것을 주워 서랍에 넣어도 보다,

쉼표와 마침표, 물음표와 느낌표, 여는 괄호와 닫는 괄호 사이를

계속 도돌이표로 뺑뺑이치면서 관조의 쳇바퀴를 힘겨워하는 존재이기도 한 거다.

 

이 책을 통해서 시인의 뺑뺑이치는 삶의 노고 또한 들여다볼 수 있다.

시인의 서랍을 열어 보면,

그럴듯한 시들의 이면에 무질서하지만 감수성 예민한 그들이 주워들인 많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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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5-0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청도 말의 맛~~~~~을 저는 알지요.^^
시집 '정말'도 정말 좋았는데, 이 산문집도 사야겠네요.
글샘님 TTB광고와 땡스투도 꾹 누르고~~~~ ㅋㅋ

2012-05-06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5-07 06:59   좋아요 0 | URL
저도 원랜 충청도유~ ㅋ
이 시인 시집도 읽어볼규~
땡스투가 들어오면 누님 거라고 생각할게요. ㅎㅎㅎ

충청도 말이 짧은 속에서 임팩트가 있어요.
'보신탕 드실 줄 아세요?'를 두 글자로 말해요. ㅋㅋ









개, 혀?

아무개 2012-05-0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개, 혀? 정말 짦고 굵게 한방! ㅋㅋㅋ

글샘 2012-05-07 22:37   좋아요 0 | URL
그게 충청도의 힘이유~ ㅎㅎ

하늘바람 2012-05-08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 언니가 여기서는 누님이 되네요.^^
제 서재에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글샘님 생각하고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2012-05-08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8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나무 2012-05-0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맞는 책일 거 같아 보관함에 담아 갑니다. 읽어보구 싶네요. 감사해요

글샘 2012-05-08 20:15   좋아요 0 | URL
봄나무... 하고 잘 어울릴 만한 책이네요. ^^ 반갑습니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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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그늘에 오래 있으면 '돌꽃'이 핀다.

세상엔 양지와 음지가 애초에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햇볕이 내리 쬐는 곳은 양지고, 햇볕이 내리 쬐지 못하는 곳이 음지가 된다.

음지는 원래 음지가 아니라, 햇볕이 내리 쬐도록 조건을 바꿔주면 양지가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렇게 양지와 음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세상에는 '나'와 '타인'이 있다.

세상의 나와 타인들은 원래 이분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고,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타인은 지옥'이 되고 만 셈이다.

인간이 자기 중심의 관점을 바꾸기만 하면, 타인에 씌워진 지옥이란 그림자 역시 사라질 수 있는 거다.

그렇게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류시화의 시집들이 가진 시어들은,

좀 아기자기하고, 가슴을 알싸하게 하는 것들이었다면,

오랜 세월 바람의 소리를 듣고 다니면서

모래 사막의 모래 알갱이들이 부딪치면서 휘파람 소리를 내고,

짙푸른 호수의 물결들이 바람에 날려 솟구쳐 오르면서 온갖 변화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쓴 느낌이랄까.

이 시집에선 거친 광야의 냄새와 인간에게서 느끼고 싶은 온기가 함께 담겨 있다.

돌 속에서, 꽃 속에서...

 

물결 모양으로 퍼져가는 유연함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 빛을 찾아나가는 본능적 지성

다른 꽃들에 변두리로 밀리면서도 그 자신은

중심에 서있는 존재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불에 덴 것처럼 놀라는 인간들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장미가 이 닭의장풀보다 귀하다는 것을 안다

신의 눈에는 그 반대일 수 있다는 것도

오늘 나는 달개비에 대해 쓴다

묶인 곳 없는 영혼에 대해

사물들은 저마다 시인을 통해 말하고 싶어한다

나비가 태어나는 곳이나 생각의 틈새에서 자라는

이 마디풀에서 배울 점은 다름 아닌

신비에 무릎 꿇을 필요

신비에 고개 숙을 필요(달개비가 별의 귀에 대고 한 말, 부분)

 

어쩌면 이 시집의 서시로서도 손색없을 시다.

시는 무엇인지, 시를 왜 쓰는지,

무엇보다 우리는 시를 왜 읽어야 하는지,

시를 읽고 어떤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을지...

이 시를 읽고 생각해 보는 일도 좋을 것 같다.

 

돌의 내부가 암흑이라고 믿는 사람은

돌을 부딪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에 별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은

돌에서 울음을 꺼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냉정이 한때 불이었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다

돌이 무표정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안으로 소용돌이치는 파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무표정의 모순어법을(돌 속의 별, 부분)

 

얼마나 오래 구르고 부딪쳤으면 이렇게 둥글어졌나

얼마나 몸 부비며 눈물 흘렸으면 이렇게 둥글어졌나

손에 들고 있던 돌 내려놓으니

더 무겁다

이것을 그저 닳아서 둥그어졌다고 할 것이냐

속으로 단단해지지 않은 물돌 보았느냐

물독 속에 가부좌로 앉은 사람

긴 강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으니

함께 부딪치며 서로를 둥근 아픔으로 깎아주던

다른 돌들까지도 품고 있으니

자신의 생 내려놓는 데 한 생애가 걸렸으니

그래서 둥근 돌에 우리가 기도문을 새기는 것이니(물돌에 대한 명상, 부분)

 

바닷가나 강가에서 오래 닳아 둥글려진 조약돌 하나쯤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마음이 뜨거워와 부질없이 흔들릴 때,

가슴 속 불길이 머리 위로 솟구쳐 화병이라도 날 것 같을 때,

조약돌을 가만히 쥐어보면, 그 냉철함이 전해지면서 우주의 신비로 나를 이끈다.

나도 한때 큰 바윗돌이었어.

파도에 쪼개지고, 자갈끼리 서로 부딪치는 고통 속에서 지금까지 수천 만년을 닳고 닳아,

지금의 조약돌이 온 거지.

넌, 이제 몇 년 부딪쳤다고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슬퍼하는 거야? 아프긴 아픈 거야?

내 속으로 들아와 봐.

그리고 가만히 너를 봐.

네 속의 울음도, 성냄도, 웃음도... 내 안엔 다 있고, 어쩜 다 없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은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부분)

 

세상의 사전들은 너무 딱딱하다.

객관의 이름으로 가장한 그 풀이들에는

사람의 마음으로 곧장 들어올 풀이라곤 없다.

 

시란, 에둘러 가면서도 사람의 마음으로 곧장 들어가는 문을 두드리는 언어들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사전을 만드는 일 역시, 직지인심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물론, 듣는 귀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고,

열린 가슴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겠지만...

 

전화번호부엔 등장 인물이 많지만 줄거리가 없고,

사전에는 숱한 사건들이 많지만 주제가 없다.

시인이 편찬한 이 사전에 주제를 구태여 부여하자면, 사랑이 되었으면... 하고 시인은 바란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자세는 어떠한 게 좋을까?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비목처럼,

눈이 한쪽에만 있어서,

두 마리가 붙어다니는 불완전한 사랑을 그는 말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인가

무표정에 갇힌 격렬함

불완전함 속의 완전함

너무 오래 쓰고 있어서 진짜 얼굴이 되어 버린

가면

혹은, 날개가 아닌 팔이라서 날 수 없으나

껴안을 수 있음(직박구리의 죽음, 부분)

 

오랜 세월

한 세상을 에둘러온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껴안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랑은,

'껴안을 수 있음'으로 족하다.

사랑은 머리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이 가슴으로 느끼는 온기여야 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 사랑 역시 완전할 수 없고, 온전할 수 없다.

인간이 유한자이기 때문이고, 인간은 늘 변덕스럽기 때문이겠다.

 

우리를 만지는 손이 불에 데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을 꺼내다가 그 불에 데지 않는다면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첫사랑의 강, 부분)

 

사랑의 추억은 늘 불과 같아서 한 마음을 살라버리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불을 꺼내보려 해도,

그 불은 식지 않은 뜨거움으로 화상을 입힌다.

사랑은, 마음에 '화인 火印(불에 덴 상처)'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꺼낼 때마다 화들짝 놀라 데이고 마는,

과거 완료, 과거진행형, 현재진행형, 미래진행형, 미래완료진행형인 것이라야,

사랑했다고 할 수 있다는 건데...

시를 읽는 일만으로도 마음을 데일 수 있다는 것이 기껍고 뜨거운 마음으로 읽게 한다.

 

그 화인은 아프고만 마는 것이 아니다.

기억을 꺼내다 델 수도 있지만, 기억은 그 화인에 데이기를 좋아하는 매저키스트이기도 한 놈인데...

 

어느 생에선가 한 번은 그랬었다는 것을

기억하겠지 당신 몸에 난 흉터를 만지는 것을

내가 좋아했다는 것을

흉터가 있다는 것은

상처를 견뎌 냈다는 것(홍차, 부분)

 

흉터에서 데인 화자는

그 흉터를 끝없이 어루만진다.

상처를 견뎌냈다는 대견함과,

그 흉터에서 느껴지는 간절한 뜨거움이 자기 손을 데이게 하는 줄도 모른 채...

 

내가 보내는 신호를 당신이 알 수 있을까

바람 없는 날 물 위에 이는 잔무늬를

공중에 잠시 정지한 봄날의 낙화를

유난히 당신 이마에서 녹는 눈송이를(봄은 꽃을 열기도 하고 꽃을 닫기도 한다, 부분)

 

요즘 세상엔 들판에 꽃으로 가득하다.

경주 반월성에 가면 유채, 모란이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고,

길가를 뒤덮은 꽃잔디나 앵초들도 제 존재를 알리려 떼를 지어 수런거리고 둘러섰고, 

빨갛고 하얗고 분홍으로 불타오르며 제 인생의 가장 뜨거운 한때를 외치는 철쭉들로 온 강산이 몸살을 앓는다.

그 꽃의 외침이 들리는가?

봄비가 내 이마에 부딪쳐 오는 시원한 감촉을 통하여

어느 영혼이 내게 부딪쳐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가?

그 뜨겁고 다정한 사랑의 신호를...

 

자주 기다린다 시를

단어들의 번쩍이는 비늘을

까맣고 까만 밤의 바다에서

集語燈을 켜고

파도 속에 등 푸른 물고기 떼처럼 밀려오는

詩魚들 상상하며

멀리 돌을 던지는 것을 좋아한다(자화상, 부분)

 

그의 시집에 담긴 것은 '까맣고 까만 밤의 바다에서 잡아올린 단어들의 번쩍이는 비늘'들이다.

그 물고기의 비늘을 사랑하고 않고는 소비자의 마음이다.

그 비늘을 쓸어 보면서,

그 비늘이 오기까지의 까맣고 까만 밤의 바다,

그 바다의 집어등,

집어등을 향해 치닫던 시어들...

그리고 내게까지 와 닿은 이 단어들의 번쩍이는 비늘...

다만, 그 작은 살아있는 비늘의 '생생한 비린내'를 사랑하는 이가 시인이다.

그 비늘이 죽어 말라비틀어지고 나면... 생생한 비린내 대신 고린내만 풍기게 된다.

 

화양연화, 란 영화가 있었다.

불륜에서 출발한 슬픈 사랑 이야기였는데,

화양연화 花樣年華 단어는 참 이쁘고 슬프다.

화양~은 '꽃인 양, 꽃 처럼' 이런 형용사고, ~연화는 '좋은 날, 좋은 나이, 좋을 때'다.

'기쁜 우리 젊은 날'과 같은 의미겠는데,

이 단어는 기쁨으로만 추억하기 아픈 시절들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그 애절함으로 금세라도 눈물이 뚝, 듣을 듯 하지만,

그 젊음에 대한 추억은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래서 꽃 처럼~ 이란 이쁜 말이 붙을 수 있는 거겠지.

지나온 시절에 대하여, 시인은 쓴다.

 

그 때가 나의 화양연화였지(화양연화, 부분)

 

나의 화양연화는 지금일까?

지금 나는 먼훗날 돌아볼 화양연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가?

참 많은 생각을 들려주는 한 마디다.

 

같은 눈송이를 바라보는

이 아침

서로 다른 이불 속에서 잤을지라도(일곱 편의 하이쿠, 첫 수)

 

어젯밤 윤삼월 보름달은 무척이나 크고 밝고 둥글었다.

그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사야 다 다르겠지만,

같은 달을 바라보며 멀리서 그리는 이들의 마음이야 한 가지 아니었을까?

마치, 이 아침 흩날리는 눈송이를,

같은 눈내리는 아침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이불 속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그러나, 사랑은 늘 빗나가고 엇박자를 내는 게 취미인 놈이어서,

에로스란 사랑의 정령은 활쏘기를 다시 배워야 할 모양인데,

그 비껴나간 사랑의 화살이 꽂힌 마음에서 흐르는 아픔보다,

화살을 맞지 않아 건강하다는 사람이 과연 나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시가 되어 나온다.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은 사람보다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생각한다

불이 태우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깃 가장자리가 닳은 되새 떼의 날갯짓을 생각한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곳에 왔음을 생각한다 (되새 떼를 생각한다, 부분)

 

시인의 발걸음 만큼이나,

그의 삶의 여정 또한 떠돌이였을 것이다.

숱한 여인네들에게 찝적거렸을 것이고,

또한 숱한 여인네들이 찝적거렸을 것이고,

그 역시, 여인네들 역시, 상처받을 일 많았을 것이다.

그런 삶에서 심장이 타오른 일 역시 많았겠지만,

그래도 상처받았으나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말할 수 있는 그는 역시 천상 화양연화의 떠돌이 바람둥이다.

 

적신호에도 멈추지 않는 사랑을 좋아한다

빛을 들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어둠을 알 수 없다고 말한 시인을 좋아한다

어둡게 들어가야 어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의 모든 시들보다 아직 써지지 않은 시를 좋아한다(독자가 계속 이어서 써야 하는 시, 부분)

 

적신호에도 멈추지 않는 사랑, 불에 덴 상처를 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의 시가 품고 있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고,

양지가 아니라 음지다.

세상은 양지와 음지로 나뉘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음지를 알 수 없다.

음지는 바로 양지가 있음으로써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둡게 들어가야 어둠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아직 써지지 않은 시를 통하여 새로운 시에 대한 혜안을 밝히며 그는 웃는다.

 

그가 그저 바람둥이기만 하다면,

이런 연애학 개론을 강의한다 한들,

수강생이 몰려들 까닭 없다.

 

그의 방랑과 방황에서 묻어온 바람의 내음새 속에는

때로 웅숭깊은 시선이,

때론 따뜻한 삶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기 때문인데,

내가 이 시집에서 얻은 위로는 이것이다.

 

대패로 깎을수록 속 깊은 결 더 뚜렷해지는 나무를 부러워한다

그 향기 나는 편향을

소나무의 많은 옹이들을 부러워한다(불혹에, 부분)

 

대패질을 해보면, 그 매력에 폭 빠지게 된다.

바로, 대패로 깎을수록 드러나는 깊은 속의 나뭇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몸을 한 번의 대패질로 얇게 저며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드러낸 매력적인 삶의 결, 그리고 그 향...

불혹에 얻은 이 한 마디로, 이 책에는 별 다섯 아깝지 않다.

 

불혹은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데,

나뭇결의 매력은 굳이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그 흔들림까지도 오롯이 기록되어 있음과

그 흔들림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서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흔들리지 않으면 바위지, 풀나무가 아니다.

흔들려도, 그래서 꺾이고 부러져 생긴 옹이, 상처, 화인들을 끌어안고 견디는,

그래서 두고두고 향을 풍기며 살아내는,

그 속 깊은 나뭇결을 끌어안게 되어 이 시집을 다시 쓸어보게 된다.

 

그는 많은 문인들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것을 밝히고 있는데,

'시골에서의 한 달'처럼 밝히지 않은 것도 있다.

실수겠지만, 밝혀야 할 것이다.

뚜르게네프의 소설이자, 영화, 연극 등으로 유명한 작품이니 말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행복한 사랑을 모르는 이들이여,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고 큰 소리로 외쳐라.

 

그런 확신만 있으면 살아가는 일도, 죽는 일도

한결 견디기 쉬울 테니까.(행복한 사랑, 부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리.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그보다 더 알지 못하는,

결국엔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에게.(끝과 시작, 부분)

 

[출처, 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문학과지성사]

 

사람들이 유명한 시를 읽고, 소설을 보고, 영화와 연극을 대할 수 있다.

그러나 류시화처럼 촉수가 예민한 사람처럼 보고 읽을 순 없다.

그의 촉수를 거쳐 얻어지는 분비물들을 어루만지면서

그 미끈거림에 행복해할 수 있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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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냐냐 2012-05-08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를읽는이유가 이런이유같네요..읽어도읽어도 새로읽는책같은기분...한구절 한단어도 무시할수없는게 시인것같습니다..
좋네요..

글샘 2012-05-08 20:07   좋아요 1 | URL
좋지요. ^^
가슴에 새기면 한구절 한단어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시... 맞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06-12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넘 예리하셔서 존경하옵니다~ 한마디로 아포리즘 남발하는 작가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다, 이런 거지요?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내뱉는 건 함량 미달일 수도 있는 거지요? 이래저래 글쓰기는 넘 어렵습니다. 휴~~

글샘 2012-06-12 07:35   좋아요 1 | URL
근데 김연수 댓글을 왜 여기 다신 거? ㅋ
예리해서 칼날이나 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ㅠㅜ
아포리즘도 좋은데요... 주제를 일관되게 이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던 거겠죠.
알랭 드 보통 같은 경우는 철학적 글쓰기로도 소설이 나아가거든요. ^^
글쓰기, 참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