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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인상적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왜 저런 제목을 붙였을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원 제목, The sense of an ending... 결말(파국)의 예감(느낌)은 이야기를 함축할 수 있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는 이 소설의 전개와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
뭔가 예감하는 일이 등장하고, 그로 인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 소설일까? 했는데,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만, 그건 예감(예언)이라기 보다는 악담이어서...
글쎄... 여기 적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 소설의 첫 문장.
특별 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첫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이 소설은 '기억'과 '사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사이에서 '진실'의 해석을 문제시하는데, 그건 쉽지 않음을... 첫페이지에서 선언하는 셈인지...
기억이란 것은 왜곡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삭제되거나 엉뚱한 것들이 조합되기도 하는 괴물같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쉽사리 까마득한 어둠 속에 파묻어 버리곤 한다.
영화 '올드 보이'를 보던 날의 아득함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도대체 최민식은 왜 15년이나 갇혀 있어야 했는가?
그러나 유지태는 묻는다. 왜 15년이나 가둬두었는지를 묻지 말고, 왜 너를 풀어주었을지를 생각해 보라고...
그 동창생(올드 보이)들의 악연은 최민식에게서 지워진 기억, 그러나 유지태에게 트라우마가 된 기억의 교차에서 시작된다.
이 소설에서 그런 작용을 하는 기억이 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여자 친구에게는 트라우마로 작용하게될 기억이,
주인공에게는 까마득하게 잊혀진 것이었다는 사실.
주인공의 조숙한 철학자 친구 에이드리언은 철학적 언술에 능하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어쩌면 이 언술은 역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에서도 역시 적용되는 것이리라.
우리의 기억은 늘 부정확하다.
남아있는 문서 역시 불충분하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늘 확신에 가깝다. 어리석게도...
이런 것들이 이 소설을 미스터리 소설처럼, 성장 소설처럼 묘한 분위기와 추리극의 분위기를 띠게 만든다.
늘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친구 아들의 그룹명, 노래명, 가사인 <모든 날이 일요일>은 그래서 순간을 잡아라 (seize the day!)로 읽을 수도 있다.
어차피 기억 속에서, 문서 속에서 남아있는 것으로 '진실'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일요일인 오늘>을 즐기는 외에 무슨 여한이 있으랴...
주인공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면서 이렇게 외친다.
누가 말했던가.
살면 살수록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고...
올드 보이에서 최민식(오대수)이 저지른 사소한 실수는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기억은 유지태의 기억 속에선 악몽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오래오래 원수를 갚는데 시간을 보낸다.
이 소설에서도, 도무지 기억나지도 않는 자신의 어린 시절 치기어린 실수로 인하여,
나이 들어서, 마치 치매에 걸린 인간이 애써 과거를 돌이켜 보려 헛된 노력을 하듯,
악몽 속을 헤쳐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결국 부옇게 흐려지는 결말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사라져만 간다...
인생은 베로니카가 복사해 보낸 마쳐지지 않은 편지의 마지막 구절처럼,
열린 형태로, 그 자세로 그대로 닫혀버릴 수도 있다.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그 밖에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나?
..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이 소설의 엔딩이다.
결말이 주는 예감(느낌)은 바로 이것이다.
인생은 완결편으로 마쳐지지 않는다.
인생은 마지막 페이지가 복사되지 않은 채, 우리에게 던져져 궁금증만 유발하고 마는 편지지의 끝줄처럼,
열린 채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혼란에 휩싸인 채... 엔딩을 맞게 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