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 - 세계 문학 주인공들과의 특별한 만남
정여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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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애도예찬을 읽으면서 다양한 소설을 통해 죽음에 접근하는 이야기들이 여운이 남아 집어든 책.

뜻밖의 수확이랄까?

우연히 집어든 책 치곤 어제의 독서에 이어지는 맛이 감칠맛을 더했는데,

분석은 유사하면서, 방향은 조금 다른, 그래서 더 읽는 맛이 더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커리큘럼을 따라서 독서 클럽을 만들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데미안 vs 호밀밭의 파수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vs 위험한 관계...

물론 책을 읽어와야 하고, 시간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많을 듯 싶다.

 

<소통에 대한 간절한 희구> 이런 것은 인간의 영원한 과제다.

<사랑>도 이 소통에 대한 치열한 한 방법에 불과하 수 있다.

넓게 본다면, <소통에 대한 간절한 희구와 좌절의 스토리>가 이 책의 테마를 포괄할 수도 있겠다.

 

내 말을 들어줄단 한 사람의 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맘을 속속들이 알아줄 독심술의 귀재는 없을까?

내 마음을 읽더라도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을 그저 내 마음의 무늬와 빛깔을 가만히 바라봐주는 사람은 없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왜 사랑이 필요하고, 오해가 생기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순애보(따라 죽는 사랑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그것은 모든 인간의 희망 사항이면서도, 하느님도 이뤄주기 힘든 요구사항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목숨을 걸고 붙잡아야 할 노릇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그럴 때 쓰는 말일 게다.

 

싱클레어(데미안)와 홀든(호밀밭의 파수꾼)의 힘겨운 방황이 끝난 후 그들이 얻은 것은

인생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아니라 더 많이 더 처절하게 방황할 수 있는 자유였다.

그 눈부신 자유의 속살이 가장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이었음을 깨달은 그들은,

가장 사랑하는 존재, 가장 그리운 존재가 내 곁을 영원히 떠난다 해도,

우리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속에서, 이미 떠나간 그 사람의 그리운 모습을 발견한다.

저 멀리 내가 꿈꾸던 그 어딘가에서 삶을 견딜 수 있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순간, 이 공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39)

 

사랑에 대한 매력적 소설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고 싶게 한다.

 

첫사랑의 매력은 사랑의 성공이나 결과가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과정 하나하나에 매혹된다는 것,

사랑이 선사하는 아주 사소하고 디테일한 매혹의 매순간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첫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사랑에 철저히 미숙하기 때문에 고수들보다 오히려 더 예민하게 사랑의 진풍경을 낱낱이 느끼는 것.

 

그래서 사랑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랑은 '독자적'인 것이고, '개별적'인 것이어서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대상보다

사랑 그 자체를 더욱 사랑하나.

그 순간 파괴되는 것은 <단지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의 내면>이다

 

이런 사랑은 집착이 되고, 현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쉽다.

 

천국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지옥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지옥 속으로 함께 들어갈 유일한 동반자를 찾는 일.

 

그런 집착에 대한 이야기가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오페라의 유령이다.

이야기들은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애석하게도 슬픈 결말을 맺는다.

 

사랑에 빠지기 전,

사람들은 한번도 자신의 날개를 제대로 펼쳐본 적이 없는 새들처럼 '자신의 전부'를 알 기회가 없다.

막상 사랑에 빠지면, 숨을 곳이 없어진다.

어떤 에티켓과 매너로 치장을 해도, 아무리 냉철한 척 포커페이스를 연출하려 해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다.

그 숨길 수 없음이 우리를 끝내 해방시킨다.

오만과 편견, 자존심과 자격지심은 사랑에 빠지기 전에나 누릴 수 있는 감정의 사치.

사랑에 빠지는 순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자존심을 챙길 여유도, 자격지심을 돌볼 계제도..

오만을 가꾸고 편견을 관리할 시간도 당연히 없다.

사랑은 내게있는지도 몰랐던 내 날개의 빛깔을 내 스스로 발견하게 만드는,

천변 만화한 빛깔로 매 순간 반짝이는 내 안의 날개를

세상 밖으로 한껏 펼치게 만드는,

오직 '나와 너'사이에서만 유효한 해방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제인 에어>와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아가씨들의 모습에 대한 변명이다.

소설 속 아가씨들보다, 정여울의 변명이 더 아름답다. 멋진 글이다.

 

<적과 흑>과 <춘희>의 안타까운 사랑을 보면서 '경이'와 '연민'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사랑은 한쪽의 경이 또는 다른 한쪽의 연민으로 시작된다.

어떻게 저토록 아름다운 사람, 저토록 대단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것이 '경이'의 본질이고,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어떻게 저토록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슬픔이 '연민'의 본질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사랑의 테두리 안에서는 경이와 연민이 동급의 감정이다.

그의 사소한 눈길에도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그의 하찮은 우울조차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그에 대한 경이가 커질수록 연민 또한 더욱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책에서 이렇게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구절들만 훑더래도 세계 문학이 추구했던 삶의 증명들, 그 철학적 함의에 대한 논의들이 충분할 것 같다.

 

<동물농장>과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규칙이 사람을 만드는 끔찍한 역설과,

인간보다 훨씬 나은, 인간 중심주의를 위협하는 우월한 존재들에 대한 경탄을 읽어낸다.

인간은 생태계의 다른 모든 존재들과 똑같은...

생태계란 그물을 구성하는 '단 하나의 그물코'에 불과함을 인정해야 하는 것.

 

반어와 역설로 가득한 <멋진 신세계>의 야만인 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가치.

 

야만인 존은

눈물없는 세계, 비극 없는 세계, 저항 없는 세계를 신뢰하지 않는다.

눈물이 없는 세계는 곧 슬픔을 통제하는 사회이며 과잉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이다.

그 감정의 과잉 혹은 잉여야말로 이야기의 원천이며 저항의 원천이고 나아가 예술의 원천이 된다.

 

세계는 갈수록 합리적 이성을 휘두르는 폭력주의자, 군산복합체 사회구성의 폭력에 길들어간다.

세계는 감정을 통제하고, 과잉을 제재한다. 빅 브라더의 시대가 이미 도래한 모양이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의 무대책 자유론... 숨 쉬고 싶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존재의 이유를 이렇게 외치는 사람도 필요하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주인공 아셴바흐의 행보도 읽어둘 만 하다.

 

영감을 떠올리기 위한 도구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쉼 그 자체를 위한 쉼이었다.

무언가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비우기 위한 여행.

그는 지칠 대로 지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계산없는 휴식임을 깨달았다.

 

이 책에서 눈에 띈 곳만 골라 추려 봤지만,

더 멋진 구절들도 많을 것이다.

 

소설들을 차근차근 읽고,

이 글들을 다시 읽을 수 있는 휴식을 가지다면,

정말 멋진 세계문학 기행이 될 수 있겠다.

 

이런 멋진 책을 권해준 멋진 친구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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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6-1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좋은데요. 시립도서관에 비치해달라고 신청해야겠어요.

어제 나의 삼촌 부르스리 1권을 대출받았어요.
지금 다른걸 읽고 있는 중이라서 목요일에 하루 월차 냈는데 그때 확~ 다 읽어 버릴려구요.
너무 기대가 되요. ㅎㅎㅎ

글샘 2012-06-19 09:35   좋아요 0 | URL
네. 애도예찬이랑 이 책이랑 참 좋더군요. ^^

나의 삼촌 부르스리 1권으로 월차가 메워질까요? ㅎㅎㅎ
여행이라도 가시지~

아무개 2012-06-19 10:27   좋아요 0 | URL
전 지하철 타고 책 읽는거 엄청 좋아하거든요.특히 여름 평일엔 시원하고 조용하고 아주 좋아요.
그래서 브르스 리를 가지고
여기 제가 사는곳 1호선 끝에서 전철타고 저쪽 끝 인천까지 갔다가
월미도 쫌 울쩍한 맘으로 봐주시고,
차이나 타운에가서 짜장면 먹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

왕복 5시간정도 걸리니까 쉬엄쉬엄 읽어도 1권은 다 읽을수 있을꺼 같아요~

글샘 2012-06-19 13:17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여행일 수도 있겠는데... 브루스리와 함께하기엔 너무 공공장소인데요. ㅋ
혼자서 좀 정신나간 듯이 웃을 수 있을텐데...
 
오늘의 지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과학으로 읽는 지구 설명서
김추령 지음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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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초록별 - 지구.

인간이 살고 있는 그 땅은 기후 변화가 갈수록 심각해 진다.

 

이 책에서는

1. 늘어나는 사막

2. 슈퍼 태풍

3. 탄소 순환

4. 해수면 상승

5. 극지방 열상승

6. 킬리만자로 설산 녹음

7. 생물종 다양성

8. 피크 오일

9. 적정 기술

 - 기타 찬반 논쟁

이런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놀랍게도 초등학생들이 접근할 수 있을 수준의 동화를 곁들이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고등학교의 언어영역 시험에나 등장할 법한 글들인데,

저자의 동화식 설명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기에 적합한 서술로 보인다. 멋진 선생님이다.

얼마나 고생했을지 상상이 간다. 뭐, 재미있게 작업했을 수도 있겠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동화식 서술의 장점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내용에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아이들의 옆에서 수업해본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식인데...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구를 바라보는 종합적 접근법을 단적으로 드러낸

200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할 때 가장 마지막에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을 가장 먼저 만들면 화요일이나 수요일쯤 죽을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월화수목금요일에 뭔가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가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인간은 지구의 마지막 날까지 다른 생명들과 조화롭게 살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동네 인근의 고리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식은 끔찍하다.

휴~ 내년에 그 인근의 학교로 옮길 예정인데... 좀 걱정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년이 다가오는 2012년 2월 9일,

고리원전 1호기에 12분 동안이나 전기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 사고가 일어났다.

물론 그동안 냉각수는 공급되지 않았다.

정전 시간이 길어졌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동일한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것.

그런데 이 사고는 한달 동안이나 알려지지 않았던 것.

도대체, 왜, 누가 이 사고를 쉬쉬하며 덮으려고 했을까?

 

핵은 언제나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은 욕심 앞에서 두려움을 잃는다.

제 혼자 죽지 않음을 믿는 겐가?

 

인간은 핵분열을 밝혀낼 만큼 똑똑하다.

또 핵분열을 실제로 일으킬 만큼 멍청하다.

 

1997년 교토 의정서... 효력이 올해까지란다.

국제 사회에서 책임을 질 조약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다들 모르쇠다.

자본의 힘 앞에서 환경은 힘이 없다.

 

이 책은 초등 고학년 이상 고등학생까지 널리 읽힐 만한 좋은 책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지 못할 바엔,

좋은 환경 책이라도 읽히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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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 2012-06-1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만든 편집자입니다.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쇄를 찍을 때 꼭 반영하겠습니다~!

글샘 2012-06-19 09:34   좋아요 0 | URL
당연히 2쇄를 찍어야죠. 좋은 책인데... ^^

지워버려도 되겠지요? 제가 설렁설렁 읽어서 요정도 찾았으니, 좀더 꼼꼼하게 살펴 주세요~ ^^
 

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너는 어찌되든지 나만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지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내 마음대로 네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다가 죽어야하는데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죽어야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나를 살리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한다

너를 살리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 하다가 죽어버려라

 

---------------------


정호승 시인의 시집 제목으로 유명한 시다.

원 시는 하정완이란 분의 시라고 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저귀지만,

가시나무 새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만 많은' 사람들이 많다.

 

뜨거운 시여서 옮겨 둔다.

뜨거운 시에는 데일지도 모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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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1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목에 끌려 정호승님의 시집을 읽은적 있어요.
원 시가 따로 있었군요.음~

전 이 시도 괜찮았는데,'추억이 없다'라는 제목의 시도 맘에 들어 따로 종이에 적어 둔 적이 있어요.
페이퍼에 올려야지~ 했는데...어찌 오늘!ㅋ
다시 읽어도 좋은 시네요.^^


글샘 2012-06-19 07:39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시집을 읽으면서 표제시가 왜 없지?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추억이 없다, 는 도종환 님 시던가요? ^^

시가 치열해 보이긴 하는데,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는 느낌???

복숭아 2012-12-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없이 읽다가 울다 갑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나봅니다.
 
북항 문학동네 시인선 20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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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함과 불투명의 사이, 명징함과 모호함의 경계쯤에 시를 두고 싶었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개판 같은 세상을 개판이라고 말하지 않는 미적 형식을 얻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말과 문체를 갱신해 또다른 시적인 것을 찾고자 하였으나

그 소출이 도무지 형편없다.

저 들판은 초록인데, 나는 붉은 눈으로 운다.(시인의 말)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한다.

시인의 말, 이 마음에 안 든다.

잘 되지 않았고, 여의치 않았고, 형편없는데...

그리고 '개판 같은 세상'인데, 저 들판이 '초록'이라니...

'개판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붉은 눈으로 운'다니?

 

시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뭐, 세상에 마음에 드는 게 뭐 있다고...

 

지난 봄, 백합 구근을 두 뿌리 사다 심었더니, 요즘 무척 자라서 꽃을 피웠다.

<원추리 여관>을 읽으면서 백합 생각이 나서 웃음이 실실 났다.

아는 사람은 아는 경지라서...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꽃대를 밀어 올렸나

원추리는 막바지에 이르러 후회했다

꽃대 위로 붉은 새가 날아와 꽁지를 폈다 접었다 하고 있었다. 원추리는

어쩔 수 없이 방을 내어주고 다음달부터 여관비를 인상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멀리서 온 것이나 키가 큰 것은 다 아슬아슬해서 슬픈 것이고

꽃밭에 널어놓은 담요들이 시들시들 마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어린 잠자리들의 휴게소로 간판을 바꾸어 달아도 되는지 면사무소에 문의해볼까 싶었지만

버스를 타고 올라오기에는 너무나 멀고 낡은 집이어서 관두기로 했다

원추리 꽃대 그늘이 흔들리다가 절반쯤 고개를 접은 터였다 (원추리여관, 전문)

 

시인은 키가 큰가보다. 그러니 이런 경지가 보이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을 이쁘게 쓴 시가 있다.

'폭'이다.

 

  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귓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 년 전부터 팽팽하다

 

  사랑이여

  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폭, 전문)

 

좀 한심하다. 왜 그걸 사랑한테 묻나?

자기가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말이다.

연필 같은 등대...를 바라보면서,

직선 하나 주~~~욱 그어버리고 싶은 마음, 견딘다.

주~~~욱 그어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팽팽하게 아리겠지.

 

그의 시집을 읽노라면,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 떠오른다.

그이 '벚꽃'은 송찬호의 '늙은 산벚나무'의 대작이다.

 

   코끼리가 간밤에 벚나무에 몸을 비비고 떠난 뒤에 벚나무

는 연분홍 코끼리 새끼들을 낳았다 이 기이한 착종에 의해

태어난 코끼리들은 울지 않았다 벚나무의 한숨이 십 리 밖

까지 번졌다

 

  이 소식을 듣고 맨 처음 달려온 것은 수의사와 식물학자였

다 그러나 그들은 둘러앉아 화투 패를 맞추었고 몇 순배 흰

술잔을 돌렸다 벚나무의 저고리 고름이 붉어졌다

 

  어린 코끼리들의 양육이 부담스러웠을까 석유 삼키듯 자

신을 탕진하고 싶었을까 아무도 세상을 무거워하지 않는데

벚나무 혼자 가지 끝이 찌릿찌릿 저렸다 바람이 불지 않았

는데 통증이 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그 순간, 어린 코끼리들이 벚나무의 사생아처럼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식물학자는 하강 속도가 초속 오 센티미터라고

짧게 기록했다 수의사는 삶이 삶을 벗어버리는 따뜻하고 슬

픈 속도에 취해 청진기를 꺼낼 수 없었다

 

  봐라, 벚나무 아래 뿔뿔이 돛대도 아니 달고 떠나는 저 어

린 코끼리들의 정처 없는 발자국 좀 봐라 (벚꽃, 전문)

 

 

앞으로 늙은 곰은 동면에서 깨어나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는 기라

동굴에서 발톱이나 깎으며 뒹굴다가

여생을 마치기로 했는 기라

 

그런데 또 몸이 근질거리는 기라

등이며 어깨며 발긋발긋해 지는 기라

문득, 등 비비며 놀던 산벚나무가 생각나는 기라

 

그때 그게 우리 눈에 딱, 걸렸는 기라

서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등 비비며 놀다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곰은 산벚나무 뒤로 숨고 산벚나무는 곰 뒤로 숨어

그 풍경이 산벚나무인지 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우리는 한동안 산행을 멈추고 바라보았는 기라

중동이 썩어 꺾인 늙은 산벚나무가

곰 발바닥처럼 뭉툭하게 남아 있는 가지에 꽃을 피워

우리 앞에 슬며시 내미는 기라 (송찬호, 늙은 산벚나무, 전문)

 

경북 사투리. 재미있다.

경상도 사투리라도 말맛이 다 다르다.

대구 사투리가 투박하고 우악살스러운 반면,

부산 사투리는 경쾌하고 소박한 맛이 있고,

안동 사투리는 ~능교를 깔면서 질펀한 맛이 있는가 하면,

경주 사투리는 ~니껴를 감돌면서 친근한 맛이 있고,

진주 사투리는 핵맹과 엄악실(혁명, 음악실) 사이를 헤매면서 웃음을 머금게 하는 멋이 있다.

예천 사람은 역시 예천 말을 써야 맛깔지다.

 

있잖니껴, 우리나라에서 제일 물이 맑은 곳이

어덴지 아니껴? 바로 여기 예천잇시더.

물이 글쿠로 맑다는 거를 어예 아는지 아니껴?

저러쿠러 순한 예천 사람들 눈 좀 들이다보소.

사람도 짐승도 벌개이도 땅도 나무도 풀도 허공도

마카 맑은 까닭이 다 물이 맑아서 그렇니더.

어매가 나물 씻고 아부지가 삽을 씻는 저녁이면

별들이 예천의 우물 속에서 헤엄을 친다 카대요.

우물이 뭐니껴? 대지의 눈동자 아이껴?

예천이 이 나라 땅의 눈동자 같은 우물 아이껴? (예천 醴泉, 전문,  단술 예, 샘 천)

 

해설자는 사족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시인이여, 늘 잘 쓰지 말라.

저 빛의 손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말이 더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연탄재처럼 뜨거운 시를 또 써줬으면 좋겠다.

그를 아끼는 독자인만큼 그의 빛이 손상되는 일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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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26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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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그대로의 모스크바 이면에 '다른 존재들'의 싸움과 '어스름의 세계'가 있다. '다른 존재'란 겉보기엔 평범한 인간이지만 타인의 정신을 조작하고 이차원을 넘나드는 등 여러 가지 특별한 마법력을 지닌 이들로서, 일단 자신을 인식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을 내려 한쪽 편에 들어야만 한다. 빛의 마법사는 오로지 보통 사람들과 세계를 위해 일할 뿐 자신을 위해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반대로 어둠의 마법사는 자신의 이익과 쾌락이라는 이기적인 동기를 좇는다.

빛과 어둠의 존재들은 유사 이래 장구한 투쟁을 계속해 왔지만, 결국 공멸을 피하기 위해 '대협약'을 체결하여 서로 상대방을 감시하게 되었다. 빛의 세력이 창설한 '나이트 워치(야간 경비대)'는 어둠을 감시하여 규칙을 위반한 흡혈귀나 변신 괴물, 악한 마법사들을 처단한다. 어둠의 편인 '데이 워치(주간 경비대)'는 거꾸로 낮 동안에 빛의 존재들이 약속을 어기고 지나친 선행을 하지는 않는지 감시한다. 이 두 경비대가 제몫을 다하는 동안에는 선과 악이 균형을 이루고 대립하지만, 자칫 균형이 어그러지면 러시아 혁명이나 제2차 세계 대전 같은 커다란 환란이 벌어진다.

이와 같은 설정 위에 야간 경비대 대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 <나이트 워치>는 3부로 구성되어 각각 중심 에피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데, 전편의 복선이 다음 편에서 꽃피는 복잡한 구조를 보여 준다.(알라딘 책 소개)

 

작가가 1968년 생이고, 이 작품이 1998년생이니, 30세이 젊은 나이에 쓴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 소설의 성공은,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납득시키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

이 작가가 작품을 발표할 당시인 1990년대, 세계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책이라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정책 브레인이라던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었다.

현실 사회주의의 혼란과 붕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탐욕과 세계화, 이 둘을 모두 부정하고 공생의 길로 나아가자는 것이 상대적 약소국 영국의 제안이었다.

 

정신적 자부심으로 가득하였을 소비에트 국가에서 살아오면서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란 예술 정신을 배워왔을 작가에게 세계의 변화는 복잡한 심사를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기회를 주었을 때,

그는 부딪치는 두 세력과, 또 하나의 세계... 아직 열리지 않은 세계이지만,

그래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스름 속에 잠긴 세계이지만,

그러므로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세계... <더스크> 속에 대한 궁금증을 만들어 냈다.

 

소설은 황당하게 시작해서 제법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나이트 워치>를 '야간 경비대'로 번역한다든지... 하는 어색함이 계속 거슬리긴 하지만,

(경비대는 아파트 야간 경비를 떠올리게 하여 좀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

파수대라든가, 수색대같은 좀 군사학 용어 같은 걸 연구했으면 좋을 뻔 했다.

'다른 존재'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개념인데... 좀 그럴싸한 용어로 번역해 주었다면 맛깔스러웠을 거란 생각이다.

'제3의 존재'라거나... 암튼, '다른'은 너무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라서 구별이 잘 안 간다.)

 

나이트 워치는 <빛의 존재>이다.

 

우리 목표는 암흑 세력을 박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목표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암흑의 세력은 인간들이 자기 속의 악을 이겨냈을 때에만 사라진다.

또는 인간들에게 빛보다 어둠이 더 좋다면, 그때는 우리가 사라지는 것이다.(상 80)

 

인간들이 자본의 환락을 선택하면 사라지는 공산주의처럼? 씁쓸함이 입안을 감도는 소설이다.

커피처럼...? 아니 담배맛처럼... ㅠㅜ

 

어스름이라는 영혼계는 옛날 영화다.

인류가 무사태평하게 잊어버린 아주아주 오랜 옛날 영화.

잊은 채 사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81)

 

주인공 안톤이 마법사 올가에게 주는 신뢰는 매우 강하다.

 

"믿어, 지금 이 순간부터. 그리고 영원히 믿을게."(101)

 

이런 신뢰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떤 판타지 속이든 헤치고 다닐 용기가 나겠다.

그러나 세상은 믿음을 저버리고, 불신이 승리한다.

 

"모든 영화 속에선 착한 이가 나쁜 놈들을 이기지.

얘야, 미신이란 위험한 거란다. 그런 것들은 거짓 희망을 불러일으키거든."(143)

 

붕괴된 모스크바 사회주의... 그 어둠을 바라보는 빛의 시선은 안타깝다.

 

곳곳에 텔레비전을 켜놓은 것이다. 이것은 이미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왠지 끔찍스럽고 초조할 때면 텔레비전을 켜놓고 홈쇼핑에서 뉴스에 이르기까지 닥치는대로 아무거나 시청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스름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의 접근을 느낄 수는 있다.(187)

 

검은 기둥을 찾아 싸우다 스베틀라나를 만난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폐쇄적이고 콤플렉스 강한 책벌레 같은 어린 아이,

그녀를 찾고 있으면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멋진 왕자님에 대한 아이같은 믿음과 우스꽝스러운 이상과 꿈을 가득 안고 있는 그런 아이같은 사람이었다.(197)

 

스베따에 관한 묘사를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형이 얼핏 보이는 것도 재미있다.

스베따에게 새로운 운명이 찾아왔을 때, 안톤은 '두 세계의 자유'에 대해 말해 준다.

평행 세계와 또 하나의 세계... 3부작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래, 자유에 대해서지. 그들은 모든 이가 삶에서 받을 자격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거라고 말해.

모든 동정심은 모멸적이며, 진정한 사랑은 눈먼 것이며, 진짜 선량함은 무력하며, 참된 자유는 모든 면에서의 자유라고 말하지."

"그건 거짓이지?"

"아니, 그 또한 진실의 일부야. 스베타,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고르지 못해.

진리란 항상 두 얼굴을 갖고 있는 거야.

우리가 지닌 진리란 더 불쾌한 거짓을 거부할 궈니야.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입장료로서 우리가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 진실의 일부를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선택의 문제에 놓이지 않아. 그들은 선량한 자도, 악한 자도 될 수 있어.

그런데 우리는 선택을 한 거야."(352)

 

평행세계는 두 세계가 모두 긍정된다.

선택의 문제이지, 진리의 문제는 아니다. 그 시절에 러시아에서 이런 문학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힘이다.

 

세상에는 많은 우연들이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예정이라는 것 또한 있는 것이다.(하, 57)

 

판타지를 납득하게하는 힘이 <새로운 세계의 설득력>이라면,

판타지의 설득력이라면 <세계관에 대한 수긍>일 수도 있다.

해리포터 류의 <악에 대한 선의 승리>는 단순한 수긍에 대한 압박이지만,

이 소설의 흥미는 평행 세계에 대한 오픈된 마인드가 힘일 수 있다.

물론, 절대적으로 수세에 몰린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온 작품이어서 안쓰러운 마음 감출 수 없지만...

스스로의 현실적 기반이 미약함을 느끼는 작가는 <암흑의 주술사>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

 

"당신들이 이중 게임이네, 간계네, 교사 행위네 하며 늘일삼는 어둠에 대한 비난들은 전부 한 가지 목표를 지니고 있지.

자신의 자생 능력 결핍을 애써 숨기고자 함이지.

세계와 세계의 법칙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종국에 와서는 인간에 대한 몰이해일 뿐이야.

어둠 측의 예상이 훨씬 더 정확하다는 걸 그저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인간 영혼의 자연스러운 욕망 추구는 결국에는 우리 편으로 그 영혼을 끌어들이는 게 되는 거라고 인정을 해야지.

그렇다면 너희가 말하는 도덕성은 어떻게 될까?

너희네 삶의 철학은 어쩌느냐 말이야?(106)

 

그래. 인간은 그 <욕망 추구>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그러나, 세계가 강제로 인간을 제어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힘을 믿어 보아야 한다.

 

빛이나 어둠의 편으로 인간들을 몰아 넣기란 너무나 쉽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행동할 때에만 가장 행복할 것이다.(109)

 

두 세계의 어느 하나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 스스로 행동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15년 전에, 러시아의 한 청년이 이런 생각을 했다면, 박수를 쳐 줄만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유는 세계의 압박을 받게 마련.

 

그들 어둠의 세력들은 자유라고 말하기를 얼마나 좋아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로에게 자유에는 경계가 있다고 설명하는가.

이 모든 게 아마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리라.

그저 사람들 가운데 살며 그들의 가능성을 앞지르지만

추구하는 바에 있어서는 인간들과 전혀 차이가 없는 우리, (122)

 

자본주의 세계에서 말하는 '자유'는 몰락에이 길이기도 하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유에도 경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제약.

평행세계에서 절대악도, 그 반대도 없다.

다만... 모든 게 절대적으로 옳을 뿐...

안톤의 좌절스런 독백은 그 세상에서 공허하다.

 

"언제나 현실에는 두 갈래 길이 존재하지.

미래는 결정된 게 아니야. 네 녀석은 이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알고 있지."(124)

 

그는 혼란에 대하여 '빛의 마법사'에게 호소한다. 빛의 길은 고통의 길이라고...

 

물의 요정에 관한 옛날 이야기 기억하나?

마녀가 그녀에게 다리를 주었지.

그리고 그녀가 걸음을 걷는데 그녀 발바닥에는 마치 불에 달군 칼이 꽂혀 있는듯 고통스러웠지.

이건 우리이 처지를 말하는 거야. 우리는 항상 칼날이 서 있는 길을 따라 걷고 있어.

그리고 이 고통에는 익숙해질 수가 없지.

안데르센은 단지 모든 것을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을 뿐.(147)

 

한국산 컵라면과 처용의 그림 등이 등장하는 것도 세계화의 한 그림자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 '보통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세계의 변화를 받아들임에 좌절한다.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온 정정을 다해 끊임없이.

그런데 왜 그들이 더 나아지지가 않느냐 말이야? 과연 그들 스스로가 어둠의 업을 행해서일까?

왜 그렇지? 우리가 무언가를 상실한 것은 아닐까?

빛의 마법사들이 군대를 죽음의 전장으로 파견하면서 스스로 최전방에서서 나가던 그 예전의 믿음을 상실해서가 아니냐고?

보호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뻐하는 능력까지도 잃은 게 아닐까?

만약 감옥의 벽이라면 이 단단한 보호막이 되는 벽이 다 무슨 소용이야?

사람들은 진짜 마법에 대해 다 잊었어. 사람들은 어둠도 믿지 않아. 그리고 빛도 믿지 않는다고.

우리는 병사들이지, 그래, 하지만 전쟁이 날 때에만 군대를 좋아하는 거잖아." (198)

 

스베타의 진지한 고뇌와 질문에 대한 안톤의 답은 시니컬하다 못해 미약하다.

 

"우리는 악을 바랄지도 모르지. 다만 우리의 선은 때때로 악과 전혀 다르지 않을 때가 있어."(208)

 

이에 대한 스베타의 생각은 현실에 더 가깝다.

 

어둠은 불평등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상태를 쉽게 극복해.(265)

 

한 세계에 대한 다른 한세계의 절대적 우위 내지는 승리가 판타지의 단순성이라면,

이 소설은 여러 세계, 특히 겹쳐지지 않으면서 대립하는 평행 세계에 대하여 이중적 사고를 진행하는 것이 독법의 묘미다.

 

왜 이런 식으로 되어가는 것일까?

왜 우리의 진실은 무력하며 우리의 것짓은 효력을 발휘하는가?

왜 어둠은 악을 창조하기 위해 진실만을 사용해서도 훌륭히 일을 해결하는가?

악은 누구의 본성인가?

인간의 본성인가, 우리의 본성인가?(288)

 

과연 이 소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제3의 길로 접어들 것인지...

자못 궁금하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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