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한유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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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을 읽고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아이들에게 '소설은 작가의 생각을 특정한 이야기 구조를 통하여 들려주는 전해주는 이야기'라고 가르친다.

소설은 특정한 이야기의 플롯이 중심이고(그 플롯 안에서 인물들이 특정 배경에서 사건을 저지르는 구성이 짜여진다.) 거기에 작가의 문체와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거라고 말이다.

 

근데, 한유주... 얘, 괴물이다.

이 책을 소설집이라고 이름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 소설이 기존의 소설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말이다.

우선, 이 소설에선 <서사>가 없다.

하다못해, 이상의 소설에서도 서사가 중심이어야 그것이 소설이다.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한도 안에서라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책을 <소설을 쓰는 사람의 소설>이라지만, 암만, 소설쓰는 사람이래두... 아닌 건 아닌 거 아닌가?

이 책을 두고 '잘 쓴 소설'이라고 하는 건, '벌거벗은 임금님'더러 화려한 옷에 대한 치사를 늘어놓는 꼴 아닌가 말이다.

내 의견은 그렇다.

 

그럼, 이 책을 왜 읽었냐구?

이뻐서. 책이 참 이뻐서 읽었다.

그리고 제목이 매력적이어서, 그래서 읽었다.

 

근데, 읽고 나니... 뭐, 다 읽지도 못했다.

절반 정도의 작품을 건너뛰며 읽었는데, 머리에 쥐나는 줄 알았다.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오늘 왕의 입은 고요하고 왕의 필경사는 왕의 명령을 기다린다.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오늘 왕은 피곤하고 왕의 필경사는 제 낯에서 피로를 감춘다.

나의 왼손이 드물게 말하므로 나의 오른손은 드물게 받아쓴다.

나의 오른손이 나의 왼손을 베끼는 동안 왕국은,

몰락의 징후를 드러내거나 혹은,

힘겹게 지속된다.

 

시라고 해도 난해한 시에 속할 터인데,

소설에서 이건 언어를 통한 폭력 아닌가?

 

음의 변화와 소리의 변화를 즐기는 음악에서도 헤비메탈의 지경에 가면 도리질을 치게 되는 수도 있듯,

달콤해 보이는 언어 속에서 <몰락의 징후>를 힙겹게 지속하는 <서술만 하는 서술자>를 대하기는 힘겹다.

그 핑계를 읽어보면 이렇다.

 

내가 계속해서 같은 말들을 강박적으로 반복적으로,

되돌아오고 되돌아 가는 말들을 되풀이하는 까닭에 대해,

아무리 공을 들여 당신에게 설명한다고 해도,

나의 언어와 당신의 언어는,

언어라는 단어를 분명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대한, 나에게서 당신에게로의 소유권 이전이 쉽지는 않았고,

소유격이라는 문법의 상황이 변하지 않으므로,

나는 더 이상 자력으로 변호할 수가 없다.

언어를 소유하다니, 언어도 사물인가.

나는 문득 쓰기를 멈추고 당신에게 묻는다.(농담 중)

 

이런 생각을 날걸로 드러내는 건...

언어학자들에게 맡길 일이고,

소설 쓰는 사람은 말이다.

이 이야기를 '그' 또는 '그녀' 아니면 '그 아이'에게 투영시켜 서사를 지어내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나?

 

하다못해

왕이 있었다. 그에겐 왕의 명령을 따라 베껴 쓰는 필경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필경사의 전치사 한 단어나, 미묘한 수사법에 의하여 재물들이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것이었고,

사람의 목숨도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었다.

그 왕과 필경사를 지켜보던 신하가 그 전모를 파헤치려 왕의 명령과 필경사의 문서를 대조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신하가 기록한 메모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엔 왕의 명령과 필경사의 문서 사이의 차이점 못지않은 의견 차이가 들어 있어서,

과연 의사의 전달이란 게 가능하기나 한 건가?

고민하다가 그만 떡을 먹고 떡이 막히고, 숨을 쉬다가 기가 막혀 죽고 말았다~

는 이야기~

라도 들어 있어야... 소설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기적처럼,

아니, 이런 사소한 일들에 기적이라는 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신기하게도, 그래, 신기하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지.(머리에 총을)

 

언어가 사용되는 현실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그것도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로 서로 다른 종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은 말이다.

그렇지만, 그걸... 바벨탑 이야기...로 써야 소설가 아니냐?

그게 기적이야~ 이러면... 수다쟁이거나, ㅋ

거기다가 '머리에 총을' 들이대도 할 말은 한다는 배포는 인정하지만...

좀 그렇다. ^^

 

단어들을 읽거나 들을 때마다 나는 그것들의 그림자를 본다.

나는 그런 그림자들을 쓰고 싶다.

그러나 그림자들은 씌어지는 순간 다른 단어들이 되어 버린다.

그림자들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사물이면서도 사물이 아니고, 사고이면서도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추상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다.

잃어버린 문장을 되찾고 싶지는 않다.

문장은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림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

모든 것들은 이미 잃어버렸거나 곧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이 정도 배포라면, 앞으로 기대되긴 하는데...

이 책은 실패작이다.

소설집으로선 말이다.

 

라캉처럼 말이다.

나는 쓰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쓰려면... <언어의 감옥> 뭐, 이런 책에서 이야기해야 자연스런 거 아닐까? ㅋ

 

소설을 쓰(려)는 이의 소설이라는 말 자체가 소설스럽지 않고,

문자도 있고 문장도 있으나, 서사적 글쓰기가 부재한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이름붙이긴 어렵다.

마치

인간도 있고 관계도 있으나 서사적 삶의 인간관계가 부재한 현대인의 알레고리처럼,

인간 사회의 몰락의 징후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었다손 치더라도...

인간 사회를 베끼고 받아쓰는 존재에 불과한 <필경사>의 목소리가 너무 울려퍼진다.

뭐, 어차피 '왕'은 귀환하지 못할 게 뻔해 보이지만,

그 왕을 '벌거벗기고' 놀려먹을 거까진 없잖을까?

 

나는 단어를 쓰고 싶고,

문장을 쓰고 싶다.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고 소설을 쓰고 싶다.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근데 왜 그렇게 설명이 많은 걸까? 내 눈엔 소설은 없고, 다 설명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모든 달라짐은 영원히 현재형이다.

믿음은 아무 것도 담보하지 않는다.<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날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인 건 아니다. 세상은 말야.

이제 서른 된 아가씨가, 넘 시크하고 쿨한 거 아냐?

좀 말랑한 가슴으로 세상을 봐주면 안 될까?

소설가의 가슴은(그 가슴 아님 ㅠㅜ) 세상의 눈물도 흠뻑 빨아들일 수 있는 스펀지라도 좋지 않느냐구.

 

그래. 맞어.

모든 달라짐이 영원히 현재형이지.

어떤 믿음도 뭔갈 담보할 수 없어.

인생무상.

그치만 말야.

 

저런 멋진 제목을 지어낼 줄 아는 당신이라면...

인력에 이끌린 두 사람을 꾸며낼 줄 아는 언어의 밭도 가슴 속에 품고 있을 거 같고...

척력에 가슴 찢어지는(오늘 왜이리 가슴 남발? ㅠㅜ) 연인의 눈물조차도 흠뻑 품어줄 수 있을 거 같단 말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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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2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태용 작가의 '숨김없이 남김없이' 란 소설 혹시 보셨는지요. 제 경우 상당히 힘들게 읽었는데, 이 책도 그러한 시도였을까 궁금해지네요.

글샘 2012-06-27 17:06   좋아요 0 | URL
그 책은 모르겠네요. ^^ 암튼, 이 책은 소설은 아닌 듯...
 
행복의 발명 - 유준상의 유쾌하고 엉뚱한 일상 모험
유준상 지음 / 열림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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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여배우가 어떤 사람(남자겠지?) 집에 가서 80만원짜리 지갑에 든 현금 80만원과 수표 백여만원을 '가지고 나와' 수표를 은행에서 바꾸려고 하다가... 잡혔다.

도대체 어떤 사이기에 그 남자의 허락도 없이 수백 만원을 그냥 가져나와 써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내 한 달 월급을, 저런 여자가 가져다 써도 되는 사이?

그 남자는 도둑이 훔쳐간 줄 알고 신고를 했다가, 그여자가 가져간 걸 알고 처벌할 필요 없다고 했단다.

참 편리한 사이다. ㅎㅎㅎ

 

배우란 사람들은 남들의 이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소위 출세한 배우들은 줄을 잘 서서, 또는 연기를 좀 잘 해서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가~~아끔, 좀 멋진 배우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요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란 드라마의 좀 어색한 귀남이 역할로 등장하는 유준상...

난 그의 연기를 보면, 아무래도 좀 브라운관에선 어색하단 생각이 맨날 드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 음... 좀 멋지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은 그의 기록 정신 때문이다.

내가 읽고 쓰는 일이 하나의 '기록 정신'의 소산이므로, 그의 기록 정신을 기꺼이 사랑해줄 자세가 되어있는지도 모르지만,

암튼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이 소화하는 캐릭터에 대하여 기록하는 일은... 소중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남겨둘 수 있는 것은 스케치다.

유준상은 뭐, 그림을 잘 그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림에서 필~이 살아 있다.

그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느낌이 그림에서 오롯이 살아있다.

기록 정신의 승리다.

 

우리네 인생에서 삶와 예술에 진정한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깔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샤갈)

 

이런 기록을 남겨두었다가 표현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가끔 피아노도 친단다.

 

요즘 나를 피아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곡이 바로 쇼팽의 녹턴 C# minor

한 음을 칠 때마다 정확한 음을 치세요. 라는 아내의 전문가 이상의 조언을 들으면서...

 

난 일단 악보를 구하기 전까진 치지는 못하지만...

cd가 닳도록 쇼팽의 녹턴을 듣고 또 들었다.

그를 읽고 듣는 쇼팽의 녹턴은 참 '정확한 음'의 모음이란 생각을 하면서 듣게 한다.

 

나랑 하는 짓이 비슷한 구석도 있다. ㅎㅎ

화장실 휴지 삼각 접기... 나도 가끔 해보는데, 아내한테 물어보진 않았다. ㅋ

아내는 그걸로 한 번도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가 없다. ㅠㅜ

 

아무런 피드백이 없지만 나는 다시 휴지를 접는다.

 

ㅎㅎㅎ 이런 기록을 남기다니... 음... 일기의 힘인가부다.

난 주로 리뷰 위주로 글을 쓰노라면, 내 생각은 기록되지만, 거기 일상은 휘발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일기를 쓸 염도 내기 어렵다.

노트도 옆에 두지 않고... 가끔 스케치나 그림을 그릴 뿐...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

내가 진짜 여유를 갖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맞어. 여유... '진짜 여유' 말이다.

저 문장에서 '진짜'가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부사어가 아니라, 여유를 수식하는 관형어로 느껴지면서,

'진짜 여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뭘 해도 자유로운 시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풍족한 마음... 아, 그게 있기나 했나? 돌아보게 한다.

 

이별!

사랑과는 또 다른 류의 사랑

조금씩 세차게 다가오는 감각.

 

그래. 이별은 사랑의 한 조각이다. 이별은 사랑과 대척점에 선 다른 존재가 아닌 거다.

이별은, 그래. 감각이다.

사랑은 감정이라면... 이별은, 감각이다.

이런 걸 느끼는 사람이라면... 무지 까칠하기도 할 거다. ㅋ

감각을 건드리는 거만으로도... 확 발을 내지를지 모른다. ㅠㅜ

 

사랑!

다가오거나 사라지는 미묘한 차이

그차이의 관계 속에서 얻는 결실.

 

사랑은... 다가오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미묘한 마음의 울렁거림..

그 울렁거림이 어디서 오냐면... 오거나 사라지는 <미묘한 차이>에서 온단다.

와~ 사랑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신기하다, 이 남자.

사랑은 감정이 울렁거리며 움직이는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시각적 거리감으로 현실화해놓고 나니...

비로소,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거리>에 놓인 상관관계가

신비로움을 벗고 <객관적 사물>처럼 관찰과 고찰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멋지다.

 

그는 어쩜 그런 것들을 다 볼까? 궁금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답을 달아 준다.

 

천천히 가다보면 보게 된다.

그 느낌, 그 풍경들, 그 찰나의 움직임.

언덕에서 바라본 도시는 어제는 별이 되어 떠 있었고,

오늘 아침은 땅에 들어가 있다.

 

반복은 여유를 만들고 여유는 쉼을 만든다.

 

뭐, 삶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마주치는 숱한 '주제'들을,

골목을 돌 때마다 우리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잊고 산다.

그 '주제'들을 기록해두고, 스케치해 둔다면,

충분히 어떤 타이밍에선 <변주>로 되살릴 수 있을 노릇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을 지겨워말고, <여유> 또는 <쉼>과 연결지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속도감만을 내세우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선 안 된다.

천천히 가야 보게 된단다.

 

내 인생도, 천천히 보면, 멋진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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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7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6-27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은 노력하고 언제나 지치지 않고 발전하려는 게 멋진 것 같아요
글샘님은 당연히 멋지신데요 ~ 모르셨죠?

글샘 2012-06-27 10: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노력하고 지치지 않으려는 거...
당연히 멋지다뇨~ ^^
 
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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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단풍잎이 큼직하니 붙어 있다.

캐나다 작가란 시위라도 하는 듯. ^^

(안 그래도 어제 외무고시 합격한 제자랑 한잔 하다가,

야, 외교관, 이 책이 어느나라 소설 같냐? 이랬더니... 캐나다? 하고 딱 맞히더라. ㅋ)

 

Still은 '정지된, 소리없는, 차분한, 나즉한, 거품없는' 등의 다양한 뜻이 있다.

그런 다양한 뜻이 변주된 소설이다.

 

코지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기분좋은 유쾌함이 지배적인 미스터리다. 섬뜩한 살인사건은 등장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사랑스럽다.

 

칙릿 스타일(20대 여성을 겨냥하여 쓴 소설 등, 칙 Chick은 계집애란 말+리터러쳐)이라고도 하고,

후더닛 미스터리라고도 한다.(whodunit, Who done it?)

후더닛 미스터리는 내용과 줄거리가 범죄와 그 해결에 주력한 유형의 미스터리다.

 

정지된 듯 고요한 시골 마을 쓰리 파인스.

거기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의 할머니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살해의 도구는 그 마을 사람들이 사냥 도구로 사용하는 화살.

 

문제 해결을 위해 등장한 가마슈 경감은 지혜롭고 냉철한 추리력과 인품을 가진 매력남이다.

아마 작가 루이즈 페니가 사랑스러워 죽겠는 인물을 창조하려고 밤낮을 가리지않고 주물럭거려 창조한 인물일게다.

 

악은 특별하지 않고 언제나 인간적이어서,

우리와 함께 자고 우리와 함께 먹는다.(40)

 

이야기의 초반부에 제인이 한 말이다.

그래서 범인은 차분한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란 복선을 깔아 주는 건데...

 

사람들 마음 속에 어떤 악이 도사리고 있는지 누가 압니까?(109)

 

결국 한 사이코가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삶에는 언제나 악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음을 조용히 드러낸다.

 

단풍나무들은 선명한 색으로 빨갛고 노랗게 물들었고,

세찬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도로와 도랑에 태피스트리처럼 펼쳐졌다.(175)

그는 차를 몰고 들어갔다. 커다란 단풍나무들이 진입로를 따라 늘어서서 보석 터널을 이루었다.

 

캐나다의 풍광이 눈에 선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어리석음 외에는 죄가 없다고 했지요.(209)

 

이렇게 범인과 관련된 반짝이 가루들을 소설 전반에 흩뿌린다.

코지 미스터리는 이렇게 반짝이는 소설이다.

심리적으로도 깊이가 있다. 가마슈의 심리.... 한 토막.

 

가마슈는 겁먹은 소년을 만날 걸로 예상했었고,

그는 두려움이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격성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화를 내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건방진 태도, 눈물, 겉보기에는 침착하지만 긴장한 손과 눈, 무엇으로든 두려움이 드러나기 마련이다.(275)

 

맨날 졸병 니콜을 구박하는 가마슈에게 작가는 애정의 한큐를 날린다. ㅋ

 

그러니까 니콜에게 그녀가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셔도 좋습니다.(417)

 

살인 사건 이면에,

소름끼치는 인간성이 등장하기보다는,

재미있는 사람들의 우왕좌왕 사이에서 우리 심리 내부의 긴 집, 자아의 알레고리로서의 집,

그리고 낯설어 보이는 거울과 자화상...

이런 장치들을 통해,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이렇게 짓궂게 묻는 작가의 목소리가 귀엽게 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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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행복전하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3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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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마지막 권...

 

참 사소한 이야기지만, 문제도 많고 해결책도 다단하다.

 

태산 같은 기막힌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자꾸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그러니까 놓아버려요.

사연은 자꾸 만들면 점점 더 기구하게 만들어져요.

이왕 일어난 일이면 좋은 사연을 만드세요.

그래서 크게 마음을 내고 털어버리세요.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42)

 

소위 인간 극장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있다.

인간 극장에 1주일 방송되면 돈을 좀 준다.

 

10년 전쯤, 루게릭 병으로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장애학생 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하였는데,

그러자 인간 극장에서 돈을 몇천 줄테니 촬영을 하자고 했다.

루게릭 병은 결국 그 병으로 약해지다 죽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 어머니, 아이를 3년간 안고 교실을 오르내렸는데... 방송촬영을 거부했다.

자기 딸의 삶이 그렇게 방송에서 떠들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기가 막힌 삶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 가난한 가정과 가족간의 불화에서 시작된다.

가난은 질병과 가족문제를 심화시키면서 각 개인의 삶을 파괴한다.

그런 기막힌 사연에 휘말린 자신의 삶을 원망하고 한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놓아버리고 사는 수밖에...

 

하느님, 왜 저를 이렇게 시련에 들게 하시나이까?

할 거 없단 말이다.

로드킬 당한 강아지 역시 마찬가지 생각으로 죽어갈 터이니 ...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어릴 때 따뜻하게 보살피는 장점은 있지만,

아이를 자립시켜야 할 때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정을 떼주지 못하기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식을 못 키우는 사람에 속합니다.

그래서 늙어죽을 때까지 자식 때문에 늘 근심 걱정이 많죠.(86)

 

그렇긴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분명 사회적으로 지나친 개입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남들은 다 전세에서 시작하는데 나만 월세에서 시작하면 남들보다 삶이 훨씬 팍팍하다.

정말 숨만 쉬고 살면 10년이면 전세 구할 수 있다.

그러면 뭐하나~ 젊은 날은 다 지나가 버린 걸...

 

권위만 버리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노년에 필요한 삶의 자세다.

무슨 일이든 하려 해야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말할 때 주의할 점,

아이가 받아들일 만한 처지에 놓였을 때 적절한 말을 해야 한다.

답답해서 도움을 주십사 하고 요청할 때 적당한 얘기를 해주면 효과가 나타난다.

본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하면 좋아하지 않을 것.(154)

 

사랑에는 약간의 아픔이 있어야 한다.

일어나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도와주고 싶은 것도 자제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 건 욕망이지 사랑이 아니다.(156)

 

그렇다. 자식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불교의 화두는 하나다.

 

'나'란 무엇인가?

'내 마음'이란 존재가 있는가? 답은 '무'다.

그냥 없는 게 아니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요, 제법무상이다...

 

수십 수백 수천 가지를 모아서 자기로 삼고 있을 뿐,

하나하나 따져보면 거기에는 나라고 할 어떤 실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깊이 관찰하지 않습니다.(184)

 

그러니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제법무상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늘 내 마음을 바라볼 일이다.

 

내 마음은 지금 쉬고 싶다. ㅋ

이제 월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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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6-25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낸디....이런 비슷한 경상도쪽 사투리가 있지 않나요?

글샘 님, 월욜이니까 당연히 더 쉬고 싶은 걸꺼에요.
저도 월욜엔 늘 손님들에게 평상시보다 훨씬 더 불친절해요 ^^:::::::::

글샘 2012-06-26 10:40   좋아요 0 | URL
화욜인데 안 당연히 더 쉬고 싶어요... ㅠㅜ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2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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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언가 결핍되어 늘 가지고 채우려 애쓰는 존재다.

불법은 그 마음을 알아차리라는 가르침이다.

채우려는 생각을 버리라 그러면, 허전함도 사라지리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여 늘 더 나은, 더 좋은 걸 바랄 때,

그럼 현실을 그만두라고 단언한다. 그러면, 현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바로 깨닫게 된다.

 

성장기에 사랑을 상실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늘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될 때, 쉽게 좋아하고 금방 그만둡니다.(37)

 

결혼이든 뭐든 자기 뜻대로 하려면 다른 어떤 것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49)

 

세상 만사는 늘 길항의 연속이다.

작용엔 반작용이 있고, 순기능엔 역기능이 따라붙는다.

반작용을 제거하더라도 부작용은 또 생기게 마련인 거.

 

참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 즉 꿈속에 있는 것이다.

사로잡힌 상태를 사로잡힌 줄 알고 놓아버릴 때부터 '수행'이라 한다.(72)

 

개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흙덩이만 쫓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흙덩이를 던지는 사람을 쫓습니다.

허전하다고 뭔가 채울 것을 찾는 것은 개가 흙덩이를 쫓는 것과 같아요.

사자가 사람을 쫓듯이 망상을 쫓지 말고 허전한 마음을 탁 꿰뚫어 봐야 합니다.(114)

 

사자가 될 것인가, 개가 될 것인가... 인간은 왜 늘 개가 되어 사는가?

 

법문을 듣고 깨침이 있어서 각자의 업을 바꿔야 하는데

귀로 듣기만 하면 몸이 잘 따라가지 않는다. (166)

 

늘 내 생각 내려놓기를 하면서, 훈련하고 연습해야만 허전한 마음도 놓아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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