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지가 무지 매력적이다.

품격있는 그린 톤에 스탠드 불빛이 매력적이다.

근데... 저 의자에 앉아서 책읽기엔 좀 불편하지 않을까?

그리고... 왼손잡이라면 몰라도... 전등은 책의 왼쪽에서 비추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디자이너는... 책벌레가 아닌 모양이다. ㅋ

책벌레였다면... 책상 위에 쌓아 둔 책들을 적어도 책등 정도는 보여주는 위트를 발휘했을 터인데...

 

이 책의 지은이는 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 방법으로 독서를 택한다.

어려서부터 독서에 길이 들어있긴 했지만,

살면서 책을 손에서 놓아버리기 쉽다.

 

한국 사회는 초등학교에서 독서 지도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독서는 여가 활동으로 자리잡는 일조차 드물다.

공부는 조선시대 과거처럼 정형화된 또하나의 작업인 셈이고,

독서를 통한 이해, 분석, 비판, 종합의 과정을 평가하지 않으므로, 독서는 가치를 상실하고 표류한다.

 

'책은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처이다... 표지에 적힌 이 말은 이 책을 대표하지 못하는 구절이다.

그 구절은 35쪽에 가서야 변명처럼 덧붙는 말이 나온다. 아쉽다.

"말은 살아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라고 평론가 시릴 코널리가 말했단다.

책은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라는 말만 잘라놓고 보면, 부정적인 반면,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라고 나열하면,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속표지에 적힌 카프카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는 구절이나,

'책은 정원이고 과수원이며, 저장고, 파티, 여행을 함께하는 동료이며, 카운슬러, 여러 명의 카운슬러가 되어준다.'를 요약해서 적어줬더라면 더 나을 뻔 했다.

 

이 책의 제목도 좋지만, 원 제목도 멋지다.

톨스토이와 퍼플 체어...

퍼플은 레드-바이올렛... 붉은 기가 도는 보랏빛을 일컫는 말이다.

톨스토이를 읽는 시간, 그리고 퍼플 체어는 소파까지는 아니더라도... 붉은 보랏빛이 도는 쿠션이 놓인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번뇌하던 지은이는 이렇게 독서의 변을 남긴다.

"나는 왜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라는 무자비한 물음에 대하여,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책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독서 도중에서 만나는 책들이 무지 반가운 것들도 있었는데,

특히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들...

 

칼럼 매캔은 어렸을 때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방문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나가 햄버거를 사주었는데,

역시 아일랜드 인이던 웨이트리스는 어린 소년이 런던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뺨을 어루만지고는 아이스크림 선디를 사 주었다.

그는 그 웨이트리스를 평생 기억했다.

그녀가 보인 친절함과 동정심의 순간 같은 것들이 바로 매캔으로 하여금

저 위대한 소설을 쓰도록 이끈 우연들의 연쇄관계였다.

그런 순간들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계속 유지되어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준다.

그것은 세상이 친절하고 용서하는 곳일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피어나게 한다.

그런 순간들이 아름다움이다.

 

이런 글을 읽고 나니깐,

이 책이 더욱 사랑스러워지게 된다.

Let the great earth spin.이란 제목이 '위대한 지구를 돌려라'라고 어색하게 번역된 거만 빼면...

책의 뒤편에서(84) '이 괴상한 세계는 계속 굴러간다'는 시구절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저 책의 제목으로 비슷하지 싶다.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에 나온다는 한 구절...

이 책은 완벽하고 진실한 심장에서부터의 소통이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낡은 보랏빛 의자에 기댔다.(83)

 

이런 구절을 읽노라면... 낡은 보랏빛 의자가 없는 표지가 더 아쉽다.

나도 아내가 갓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처형을 잃는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어려서... 세상을 몰라서...

아내에게 전적으로 애도의 기간을 주어야 한단 것을 몰랐다.

더 힘든 상황으로 밀어 넣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지난 그 시간이 미안하다.

이 작가는 그런 점에서 행운아다.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에서 작가의 독서가 의미를 깊게 한다.

 

엄마, 난 평소에 너무 빡빡한 일정에다 통제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지만

이 한 해 동안에는 그런 생활로부터 2만 마일 아랫쪽에 떨어져 있어요.

언니 덕분이에요.

난 물 밑에 있고, 내가 읽는 책의 저자들과 헤엄치고 있고,

그들의 말을 산소처럼 빨아들이고 있는데, 언니도 거기 있어요.

책 속의 삶들이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있어요.

새 생명 말이에요.

그래서 언니를 어떻게 하면 살아있게 할지 배우도록 도와줘요.(113)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삶이 갑자기 강렬해졌다.

 

페르 페테트손의 <시베리아로>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데,

주인공의 말이 기억할 만 하다.

 

나는 스물셋인데, 내게 있는 것은 나머지뿐이다.(121)

 

오빠를 잃은 여자 아이의 그 말이,

저자는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는 거다.

독서는 그런 것이다. 자신의 삶과 독자의 삶이 교감하는 것.

그 교감 속에서 영혼의 키가 한 뼘은 자라는 그런 것.

 

작가나 페테르손이나...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는다면,

눈물을 흘리면서 공감하지 않으려나?

 

모란이 지고 나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에즈라 파운드 역시 상실을 이야기한다.

 

남는다. 그 외는 하잘것없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그대로부터 탈취되지 않을 것이다.(122)

 

남는 자는 하잘것없이 느껴질 수 있으나,

좌절하고 포기하지만은 않는다.

 

슬프지만 찬란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것이 탈취되지 않을 것임을 믿고,

내가 남는 것은 나머지 뿐일지라도,

임은 갔지마는... 나는 임을 보내지 않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난 사랑에 빠졌어요.

굉장한 책과 사랑에 빠졌어요.

이런 사람이 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얘, 이 책 읽어봐~

하는 친구가 한 명 이상 있다는 것만도 행운이다.

 

365일 빠지지 않고 애도의 하나로 책을 읽는 사람.

없는 시간을 쪼개고 나눠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

 

책만으로 살 순 없다.

그러나, 책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어찌 절망으로 생을 끝내는 걸까?

 

이렇게 죽어간 언니를 애도하기에 성공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거다.

 

무더위에 지쳐갈 때면, 그는 추리소설을 읽는다.

 

추리소설을 읽고 싶은 허기를 자꾸만 느끼는 것도 바로 그런 질서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물론 좋은 추리물에서 지혜의 불꽃도 발견하지만,

내가 정말 찾는 것은 해결이니 말이다.

나는 우주의 질서 이상의 것을 원한다.

가끔은 의미가 거의 없는 세계에서,

추리물은 삶의 변형과 전환을 수용하고,

그것들을 결국은 의미가 있는 플롯으로 진행할 수 있다.

어떤 의문이 해결된다.

거기서 얻는 만족감은 엄청나다.(243)

 

추리물을 좋아하는 이는 많지만,

이렇게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적실하게 표현한 사람은 드물다.

문제의 속시원한 해결, 거기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짙은 페이소스...

마치 입맛에 꼭 맞는 짙은 담배를 만나 깊이 들이마쉰 뒤의 만족감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암튼, 여름철엔 추리소설 같은 장르 소설의 계절이다.

 

그는 살인사건을 해결했지만,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그리하여 셀프는 건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내가 그 결말이 부당하다고 불만을 품고 괴로워할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 더 적절한 결말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일임을 깨달았다."

 

<셀프의 살해>라는 슐링크의 소설에서 짚어낸 한 대목이다.

작가의 독서체험 기록은 상당히 깊은 사색을 묻어나게 한다.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올 여름, 무더위에 지치지만은 않고 힘을 내려고 파이팅을 외치는 맘을 먹게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경이감 속에서 살고,

열정과 염려의 순환 속에서 타오른다.(시인 캐럴린 키저, 281)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7-05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5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5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6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6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6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7-0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정원이고 과수원이며, 저장고, 파티, 여행을 함께하는 동료이며, 카운슬러, 여러 명의 카운슬러가 되어준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중 카운슬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친구가
책을 읽는 저보다 더 똑똑한 경우를 많이 경험해서 말이죠. ㅋ

글샘 2012-07-08 19:57   좋아요 0 | URL
똑똑하지만, 카운슬러가 되어주지 못하는 친구 많잖아요. ㅋ
들어주지 않고, 말하는 친구...
수용하지 못하고 반사하는 친구...
잘라리아들 사이에서 외로울 때... 뭐, 술병이 옆에 친구해주는 거보다 낫잖아요. ㅎㅎㅎ
 

제1강|김진숙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_CT-85 크레인 생존기
제2강|정연주 다시 언론의 자유를 말하다 _해직 기자라는 선택
제3강|홍세화 내 삶의 최종 평가자는 바로 나 _주체와 상황 사이에서
제4강|조국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을까 _검찰과 법원의 선택, 그리고 국민의 선택
제5강|정재승 당신의 선택, 믿을 만한가요? _뇌과학으로 풀어본 탁월한 선택의 비밀
제6강|한홍구 복잡한 건 길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다 _한국 현대사의 고비와 그 선택

 

 

김진숙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읽기만 해도 뜨겁던 2011년 여름이 생각난다.

 

한겨레 특강이 벌써 9년째다.

 

힘이 빠질 때,

나만 힘든가 생각할 때,

회의가 가득 밀려올 때,

든든한 친구를 만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정선용 엮음, 이미란 사진 / 일빛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조 선비들이 지은 한시들 중,

아내를 잃은 슬픔, 그 부재의 한을 읊은 시들을 모은 한시집이다.

 

저자의 아내는 사진찍기를 좋아하던 이였는데(사진이 참 똑 부러진다.) 사진 찍던 중 사망한다.

고전 번역을 하는 남편이 '아내의 부재'를 읊은 시들을 묶었다.

시들은 절절하게 슬프고, 흑백으로 엮인 사진은

시의 슬픔을

풀잎에 맺힌 이슬을 탈탈 털어내듯,

제 것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듯,

단정하면서 가지런한 빛으로 또렷하다.

 

사진 한 컷 한 컷이 마치 삶의 한 토막을 축소, 진하게 복사한 느낌이랄까?

 

아내 잃은 슬픔을 읊은 시는 많은데, 역으로 남편 잃은 슬픔을 읊은 시는 거의 없다.

이것은 조선조 양반 남녀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방증이리라.

조선조만 하더라도 질병에 취약하여 젊은 나이에 상부, 상처하는 일은 흔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쪽 문학만 가득한 것은...

문자를 장악하고 있던 편이 남자였음을 보여주며,

여자들은 남편없이 살아가는 것이 지옥도의 다른 그림이었음을 비스듬히 보여준다.

 

한편, 사랑과 관련된 시들도 3부에서 엮고 있는데,

이들 시편에는 이옥봉, 매창, 황진이 등의 여성들의 한시도 등장한다.

남자에게 보내는 애정은 어느 정도 기록에 남기도 했던 모양인데, 그들의 계층이 역시 기녀가 많다.

 

가을 밤은 어쩜 이리 쓸쓸도 한가

나의 마음 슬프고도 또 슬프다오

하얀 달은 휘장 사이 내려 비추고

찬 이슬은 잎새 가에 맺혀 있다오

수심 깊어 앉은 채로 잠 못 드는데

풀벌레는 벽 틈에서 칙칙 운다오

떠난 당신 그리워도 볼 수 없기에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꿈꾸오

 

열여섯에 혼인한 아내를 열아홉에 잃은 월곡 오원의 '추소독좌 - 가을밤 홀로 앉아-'이다.

아내와 함께한 세 해의 가을 밤... 환한 달빛 안고 두런두런 즐거운 밤이었을 터인데...

이제 하얀 달이 커튼 사이로 비추인대도... 찬 이슬만 잎새 가에 맺힌 듯... 슬픔만 차오르고...

당신이 있던 때도 풀벌레는 울었으련만, 새삼 오늘밤 더 속시리게 들리는 것은...

떠난 당신 그리워도 볼 수 없음에 외로운 밤 찬 서재서 생각키는 건 당연지사...

 

어찌 나의 좋은 짝일 뿐이었으랴

좋은 벗을 얻은 거를 내 좋아했소

 

신광하의 '고실만 - 죽은 아내에게 드리는 만시-'다.

군자호구 君子好逑는 요조숙녀 窈窕淑女라

신사의 좋은 배필은 정숙한 아가씨라 했거늘,

시인은 아내를 양우 良友라 불렀다.

생활에서 그러했던가? 시에서 미화한 걸까?

 

낙엽이 진 텅 빈 산에 밤 서리가 내리리니

추운 까막 조각달은 한층은 더 황량하리

당신 생전 만들어둔 솜옷 입고 있으면서

추울 당신 생각자니 이내 간장 끊긴다오

 

아내의 죽음을 쓴 '悼亡 도망'이란 제목의 시가 많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슬퍼하여 쓴 시를 '도망'이라 한다.

평소 눈여겨 보지 않던 것도, 늘 잃고 나서 슬퍼하는 어리석은 동물이 인간이다.

있을 때 잘할 노릇이다.

 

님께 소식 오랫동안 전하지 못해

이내 마음 헝클어진 실타래 같네

 

그나마 살아있는 이들의 노래는 절절해도 애절하진 않다.

희망이란 어리석은 녀석이 판도라의 상자 안에서 인간을 유혹하기 때문인지...

그 녀석은 왜 '온갖 질병, 죄악...'들과 동격인 것이냐...

희망이란 녀석 역시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긴 마찬가지이긴 매일반일 것인가?

 

황진이의 '상사몽'이나 이옥봉의 '몽혼'은 워낙 유명한 노래들이고,

이매창의 '규원'의 가락지 비유도 절창이다.

 

애타는 맘 말이 없는 가운데 다 들었거니

하룻밤의 시름으로 머리가 다 세었네요

그리움에 사무친 이 소첩의 맘 알려거든

제 손에 낀 가락지가 헐렁한 걸 보시어요

 

연애편지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ㅎㅎ

 

앞으로는 문 앞에다 부디 버들 심지 마소

인간 세상 이별 있게 하는 것이 얄밉다오

 

버들잎이 왜 이별의 정조를 대신할 수 있을까?

그것은 버들 류(柳)의 음과 머물 류(留)의 음이 같은 데서 인유한 언어 유희의 일종이다.

선비들이 쪽팔리게 '내 곁에 있어 주.'하고 표현하는 직설법은 시적이지 못하다고 여겨,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 놓고, 말 없이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정도 되면,

그걸 알아 먹어라, 이 맹추야~ 이런 적나라한 표현이다.

 

무식한 이야기 중에, 뭐 이성계가 바가지에 물 한 사발 달랬더니,

어떤 아가씨가 물 마시다 체하지 말라고 버들잎을 띄워 줬다는 말이 닿지도 않는 소릴 하는데...

버들잎 띄우기는 시쳇말로 '드러내놓고 들이대는 찐한 프러포즈'의 다른 말이었다.

 

동산에는 볼가 살구 꽃 피었건만

올해에도 좋은 경치 그냥 보내네

 

여자들이 꽃구경을 가는 일은 흔치 않아서,

남편과 함께 나서는 길이라야 인정받기도 했던 바,

좋은 경치를 그냥 놓치는 일은 임의 부재의 동의어다.

허 난설헌도, 규원가에서 '삼춘화류 호시절에 경물이 시름없다'고 했으니...

아무리 꽃피고 버들잎(또 나온다 ㅋ 들이대는 프러포즈) 돋는 봄이 와도,

임이 없으면 경치 구경이 덧없다는 뜻.

 

좋은 것을 보면 같이 보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의 부재로 허전한 맘... 그걸 옛사람들의 시에선

간결한 한자어로 표현해 더 애절하다.

 

그렇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문자는

기다리는 이에게 저주의 신기술이라지만...

기다리는 이는 자못 나름의 정신적 위안을 찾아 나가야 하리라.

 

잃고 나서 잊지 못해 '자기를 잊고 나아가 자기를 잃는' 지경까지 나아가지 않으려면,

나름의 정신적 승리법도 필요하리라.

이 책은 그런 정신적 승리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달이 뜨면 오마하고 약속하신 님

달 떴는데 우리 님은 아니 오시네

생각건대 낭군님이 계신 그곳은

산 높아서 달이 늦게 떠서이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2-07-0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사랑을 노래한 시로 한껏 충만해졌어요~~~~

글샘 2012-07-04 11:15   좋아요 0 | URL
아직도 감성은 10대 소녀같다는... ㅎㅎ
좋은 한시 참 많죠?
 

'진실의 문'과 '거짓의 문'...

'가진자의 문'과 '못가진자의 문'...

'권력의 문'과 '수탈의 문'...

문은 두 개지만... 문은 한쪽으로만 열린다.

 

그래서 이 파워게임은 영원히 반복된다.

이걸 두고 트로츠키 공산이론에서 <영구 혁명>이란 개념이 나왔을 것이다.

애초에는 부르조아와의 합종연횡을 염두에 둔 어휘였을 것이지만,

어떤 혁명의 결과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며,

그 혁명 역시 소수의 가진자를 양산할 것이므로 혁명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란 이야기...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단기간 온갖 복잡한 사회 구성체의 모순 덩어리>의 표본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최근까지 '봉건제'의 반상의 차별, 남녀의 차별 등 계급제가 명백히 실시되던 국가 제도에,

식민의 역사, 온갖 강대국의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 열전 이후 냉전 시기 최초의 국지전(한국전쟁) 발생에,

군사 독재를 지원하는 미국의 파렴치는 올림픽 개최 이후로 '저강도 정책'으로 경제를 통한 국가권력의 장악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세계화에 홀딱벗고 내주는 현실과 국내에서도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경쟁과 차별을 통하여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단적으로 제주도 4.3 학살로, 광주 5.18 학살로, 그리고 용산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진실을 은폐하는 거야, 한국 정치, 한국 경찰의 본연이 임무 비슷한 것으로 체질화 되어 있다.

한국 경찰한테 뭐, 진실을 말하겠니?

이런 거까지 바라는 건, 조직폭력배한테, 너 개과천선하면 안 되겠니? 이러고 묻는 순진한 전도사 비스름한 이야기라서...

하품난다.

 

그렇지만, <사법부>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뭐, 어차피 이미 '헌법'은 유린된 지 오래 되었지만 말이다. ... 헌법 전문에 있는 임시정부의 법통 운운은 개무시되기 일쑤며,

국민에게 '의무'는 있지만 '자유'는 없는 헌법으로 전환된 게 오래되었다.

 

사법부에서 '공개적으로 재판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 잘잘못을 따져야 할 사안'임에 분명한 사건을 두고,

경찰의 잘못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심지어 조사 자료 공개조차 하지 않음에도 이뻐해 주고,

판결은 청와대에서 지시한 대로... 농성자가 가해자고 가카의 퇴임 이후까지 찍소리 말도록 마춤한 4년이 형을 내려 주신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니미~ ^^ㅣ발~ 이런 게 국가라면, 국가가 왜 필요해?

행정부는 국민을 죽이고, 사법부는 그 살해를 묵인하고...

입법부는 그 견제는커녕 멍청하니 제 밥그릇이나 지키려고 들고... 이런 자괴감으로 심히 부끄러웠다.

 

이런 진실을 두려워하므로,

파업이 그토록 오래 가는데도, 방송을 장악하고 거짓보도만을 일삼고 있구나...

 

국민이 어리석어서,

그렇게 엉망으로 정치를 하는데도, 다시 그들에게 정권을 바친다면...

그런 국민은 짓밟혀도 깨갱 소리조차 못하는 미물이며 타죽어도 찍소리 못하는 존재가 아닐까...

이런 자조감으로 정말 정신을 잃도록 술이라도 마시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렇지만...

한용운 스님이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라고 썼음을 기억한다면...

온갖 권력이 연기처럼 허무한 것이지만...

진리를 탐구할까, 학문에 몰두할까, 회의적으로 포기할까 갈등하지 말고,

당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갖게 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그래... 모란은 지금 졌지만... 다시 핀다.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찌질하고 부족해보이는 힘이지만,

다시 기다리며 이를 악물어야 할 때다. 슬프지만 찬란한 봄이 도래할 것을 믿으며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 더 많이 보도록 알려야 하겠단 생각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slmo 2012-07-03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워게임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의미에서 제로 섬(zero-sum) 게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럴때는 힘의 이동 차원에서 한 쪽 끝을 살짝 건드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쪽엔 온몸을 흔적도 날려버릴 거대한 힘이 되기도 하고,
어느 쪽엔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상황이 되기도 하고,
좀 씁쓸하기도 하고, 어쩐지 쓸쓸하기도 하고~ㅠ.ㅠ

글샘 2012-07-04 07:15   좋아요 0 | URL
제로섬 게임이기도 하죠. 누가 독식하려고 드느냐의 문제니까...
그 힘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이런 폭력들이 난무하구요.

살짝 건드리는 걸로는 부족하지 않겠어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사는 나무란 말이... 씁쓸하고 쓸쓸하지만...
이런 영화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이란 몹쓸 놈도 거기 있을 거니깐요.

재는재로 2012-07-03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만 불리지 결국 똑같은 일의 반복이라고 생각되네요
조선시대 소론,노론 북인 남인 동인 서인 시대만 바뀌지 변하는 건 없죠
서인의 수장 송강 정철이 자신의 반대세력 동인을 학살하다 시피한것은 유명하고
친구였던 왕 조차 그런 모습에 치를 떨고 멀리하게 만들었으니 권력이라는 마물은 시대가
어떻게 되든 변함이 없는것 같네요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처럼..

글샘 2012-07-04 07:16   좋아요 0 | URL
그래요.
시대는 바뀔지 몰라도 세상은 그대로죠.
예수님이 핍박받던 시대가 지금 도처에 널렸잖아요.
아니, 그 시대엔 로마제국만 폭도였지만, 지금은 전지구가 하나의 제국이 되는 느낌...

아무개 2012-07-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제가 사는 시골에는 상영관이 없어서 주말쯤 서울가서 볼까 생각중이에요.
반년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될듯 ㅋㅋ

지금 강유원의 역사고전강의 읽고 있는데(글샘 리뷰 보고 읽기 시작 했어요^^::: 나의 삼촌 부르스리에 이어서~)
동서양 역사가 아니라 서양역사만 있는게 좀 아쉽기는 해도,
역사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꺼 같아요.

그런데.....역사는 말 그대로 힘을 가진 자들의 이야기일 뿐일까요?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서만 세상은 변화할까요? 진보든 후퇴든 말입니다.....


글샘 2012-07-04 11:16   좋아요 0 | URL
시골? ㅋ 전철타기 놀이 하죠 뭐~
강유원은 아직 리뷰 안 올렸는데~ ^^ 올려야겠다~ 마중물님을 뻥쟁이로 안 만들려면... ㅋ

아무개 2012-07-04 12:45   좋아요 0 | URL
리뷰가 아니고 페이퍼에 있었네요....ㅡ..ㅡ:::::::::::::::::::::::::::::::::::::::::
 
수민이의 왕따 탈출기 미래의 고전 29
문선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왕따는 가해자나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 아이들은 보통 일방적으로 잔인한 아이들로 묘사되기 쉽다.

피해자 아이들은 멀쩡한데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것처럼...

 

그런데 실상은 복잡하다.

피해자 아이들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가해자 아이들도 언제든 입장이 바뀌어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 아이들도 가해자 집단에 소속되기를 희망하는 준가 집단으로서의 관점으로 볼 필요도 있다.

 

피해자 아이들이나 가해자 아이들의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 가정의 문제는 부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가속화되는 비정규직의 문제까지 이 동화는 다루고 있다.

 

물론 해결책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 아이들이 화해한다...

말은 좋지만 좋은 해결책으론 좀 부족한 듯 하고...

 

피해자 아이들도 용기를 가지고

반 아이들도 '멈춰, 그러지 마!' 하고 해결이 된다고는 하지만...

왕따 문제는 개인적, 학급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문제다.

 

더 많은 지원책이 있어야 할 노릇인데,

국가는 엉뚱한 데 예산을 퍼부으면서,

문제 해결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려는 계획도 없음을 보면 안타깝지만 한심하다.

 

이런 책들을 아이들이 많이 읽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음 좋겠다.

 

-------------

작가의 말에서 고칠 부분 ...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방증...이 맞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