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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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 지식채널 e - 정생)

 

 

글 중에서, 진짜인 체 하는 가짜가 많다.

권정생 선생님 글은... 가식이 없다.

자연스럽다.

그런 글이 진짜에 가까울 거다.

성함도 참... 그렇다. 바를 정, 살 생... 바르게 살자... 가 그분의 성함이시다.

조폭들도 존경하는... 조폭의 대부?

 

그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17)

흔히 동화에다 무리한 설교조의 교훈을 담은 것이 있는데,

과연 그런 동화가 얼마만큼 유익한지 알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은 훈시나 설교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 속의 인간보다

잘 보존된 자연 속의 인간이 훨씬 인간답다.

 

그이의 철학은 어렵지 않다.

슬프고,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연스런 삶의 자세다.

그렇게 살면 바르게 사는 것이다.

 

한국 전쟁에 대하여서도 관점이 정확하다.

 

반으로 나뉜 북쪽은 아예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게 박살을 내 버린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에 원자탄을 터뜨린다고 엄포를 놓았다.

눈보라 치는 흥남 부두의 비극은 그래서 일어난 것이다.(102)

 

흔히 동화 작가는, 생각 역시 동화스럽다고 여기기 쉽다.

또,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화 작가일수록 밑바닥까지 닿아 본, 투철한 철학가여야 함을 생각케 한다.

 

사람을 '일반'으로 보지 않고 '실존'으로 보아야 함을 그이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똥공장'에 불과한 인간이지만,

어떤 '실존'도 무시당해선 안될 가치가 있음을 그는 안다.

 

안골 김씨 아주머니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어 왕따로 지낸다.

한번은 개울에서 누군가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세히 보니 김 씨 아주머니였다.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몇 가지 옷을 빨면서 아주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로울 수도 있지만,

혼자 있는 쪽이 더 편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왕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괜히 사랑한다고 함께 있어준다고 애쓸 필요가 없겠구나.(120)

 

진짜 폭력은,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도로 시작되었건,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집 마당에는 고인돌이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다.

밤에 이 바위 위에 올라앉아 하늘을 보면 별빛이 한없이 반짝인다.

밝을 땐 보이지 않다가 어두워지면 나타나는 별.

세상엔 불을 밝히지 않아야만 할 때도 있는 것이다.(121)

 

그래. 진짜의 기준은 하나다. 진짜는 '자연스러운 것'.

 

풍요와 편리때문에 우리는 결국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178)

누군가가 말하길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라고 했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166)

 

현대인이 추구하는 것은, 진짜나 자연스러움의 반대로만 가는 청개구리와 같다.

이럴 때, 바른 삶...을 짚어주는 이가 없어 아쉽다.

 

강아지 똥, 다시 말해, 개똥이 개똥으로만 보이는 자들에게 자연은 더럽고 불편한 것이다.

개똥이 민들레를 북돋우는 순환의 과정이 '자연'임을 볼 수 있어야, '진짜'에 가까울 수 있다.

 

연일 뉴스에서 '유전 무죄'만 반복한다.

대통령 사저 매입... 과정의 불법 증여 사건... 혐의 없음...

이유는? 유전... ^^ㅣ바~! 검찰이 놀이터냐? 장난치고 자빠졌게?

삼척 동자도 웃을 일인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

 

텔레비전에서 온통 '가짜'들이 판을 치고 있다.

'가짜'가 '진짜'를 고소고발하고,

'가짜'가 '진짜'에게 실형을 선고한다.

'가짜'에 의하여 '가짜'는 무죄를 보장받는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의 슬픈 <홀리데이 - 휴일>은

<성스러워야 할 날 - holy-day>,

성스러워야 할 인생을 한판의 저질 코미디로 전락시키고 만다.

 

'가짜 무죄, 진짜 유죄'의 슬픈 홀리데이는 불행하게도 진실을 호도하고, 가짜를 옹호한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가짜가 진짜를 몰아낸다.

 

어린이가 읽을 정직한 위인 전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인생에서 무엇이 되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버나드 쇼는 한 소녀에게 동화작가가 되기 위해 이렇게 하라고 답장했다.

"첫째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둘째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셋째도 역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진달래는 진달래로서 아름답게 꽃피기를 바라지, 그 어떤 꽃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개나리도, 민들레도... 새들도...

책을 읽는 것은 좀 더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과학자, 예술가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다워져야, 인간다워져야 한다.

훌륭한 대통령은 훌륭한 인간일 때만이 가능하다.(201)

 

아, 이런 이를 대선 후보의 참모로 앉혀야 하는 일 아닌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스스로 터득해 가는 자유로운 교육이다.

학습은 곧 자습이어야 하며 주입시켜서는 절대로 안 된다.

태양이 붉은 색이 아니라 노란색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기본 자유이며 예술이며 종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실로 그런 자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231)

 

학교가, 교회가, 가정이... 모두 '가짜'를 위해 '위인'이 되라고 거짓 교육을 하고 있다.

어거지로 밀어넣으려고만 한다.

누구도 '진짜'에는 관심이 없다.

 

하느님 아버지, 참으로 들꽃은 착하고 아름답습니다.

제가 이곳 빌배산 밑에 혼자 살면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불쌍한 목숨이구나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착한 것은 들에 피어나는 작은 꽃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243)

 

그는 1967년부터 안동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다가,

1983년 빌뱅이 언덕 밑에 오두막을 짓고 여기서 2007년 작고할 때까지 살았다.

그렇게 낮은 곳에서 살았으면서도, 자신이 부끄럽다고 썼다.

가장 착하고 낮은 들꽃들에게 부끄럽다고 말이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진짜가 아닌가?

 

요즘은 하느님 아버지가 아주 신용이 없어졌답니다.

돈쟁이 하느님,

권력쟁이 하느님,

폭력 하느님,

어떻게 보면 하느님이 신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247)

 

'한국 교회'의 부패상을 이렇게 쉬운 말로 적은 이도 드물다.

김두식 같은 이는 교수출신이라 한국 교회를 비판하면서도 무지 어렵게 말한다.

그러나, 착한 권정생 선생님이 보면, 쉽다.

돈과 권력과 폭력이 난무하는 교회가, 씨바, 교회냐?

거기가 사탄이고, 지옥이지~!

이런 말이라고 내가 감히 번역해 본다.

 

환경에 관한 관심도 어렵지 않다. 환경도 삶을 떠나면 남의 것이 되니까...

 

강원도 지역엔 맥주 향료로 쓰이는 '홉'을 회사와 계약하여 재배하는 농가들이 많이 있다.

이 '홉'의 꽃향기가 맥주의 독특한 맛을 낸다고 한다.

이 꽃을 벌레나 균에 손상되지 않고 수확하기 위해 엄청나게 농약을 친다.

이들 농부들을 맥주 회사에서 초청하여, 맥주를 마음껏 마시랬더니 서로 꺼렸다는...

"농약에 절인 꽃을 꼭 짜서 술에 타서 마신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치더라."는 것이 농민의 말이었다.(270)

 

환경은 남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내 입에 들어올 것이 아니라서 마구 오염되어도 무시한다는 것.

미국산 소고기가 들어올 때, 전 국민의 저항에 부딪힌 일은 어디로 가고,

미국산 소고기는 분명히 호주산으로 둔갑하여, 또는 '미'자를 지운 '국산'으로 승급하여,

온 국민의 건강 증진에 허벌나게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환경 친화적인 '녹색 성장'의 대통령을 모신 덕이 이렇게 크다.

 

새출발하는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절절한 구절이 많은데, 그중 한 구절.

 

목사되는 것은 모든 권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당신이 걸치고 있는 가운을 벗으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알몸으로 전해야 합니다.

당신의 어린양들에게는 해방을 주고,

불의를 도모하는 권세자들을 향해 외치십시오.

그래서 고통을 느끼십시오.

성공하는 목사가 아닌, 외치다가 죽는 실패하는 목사가 되십시오.(288)

 

더러운 거미줄을 걷어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거미줄보다 더 더러운 게 호화판 교회 장식품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을 해야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을 그렇게 화려하게 모시고 싶고,

성도들의 사치한 예배당이 필요하다면,

이 세상 어디에나 똑같이 화려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312)

 

진짜는, 가짜를 죽여야 진짜가 남는다.

편한대로 가짜를 안고 가면서 진짜가 되기를 노리는 것을 기회주의자라 한다.

썩은 물은 비워야 새 물을 담을 수 있지, 썩은 물에 새 물을 계속 붓는다고 새 물이 되지 않는다.

아니, 되는 수도 있다. 새 물이 수백 배 많을 경우엔...

그러나, 썩은 물이 새 물을 같이 썩도록 하는 속도가, 양이 월등한 것이 세상 이치다.

정치하는 이들이,

교회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눈을 그분에게서 배워야 한다.

아니, 성경에 보면 답이 있는데,

한국 교회의 가짜들은, 성경 팔아 장사하는데나 눈이 멀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의 무심한 일상 생활이 얼마나 잘못된 허구적 욕망에 기반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갔다고 할 수 있는 '불쌍한 사람들 사이에 오히려 삶의 원리로서의 따뜻한 인정이 작동하고 있음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그건, 진짜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리스도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연고는

당신이 별나라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이 아니외다.

당신이 내게 가르치시기를

인간은

피와

눈물과

불안과

광명을 막고 닫혀진 문을 여는

열쇠와

연장을 가졌노라고 하셨기 때문이외다.

그러하외다. 당신은 인간은 하느님이라고......

당신처럼 십자가에 달린 가련한 하느님이라고.

골고다에서 당신 왼편에 섰던 못된 도적도

역시 하느님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때문이외다. (레온 필립 - 체 게바라가 가슴에 항상 지니고 살았다는 시)

 

낮은 곳에서 바라보아야, 높은 곳을 알게 되고,

작은 것도 크게 볼 줄 알아야, 큰 것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

 

자기 선 곳이 낮아서 불평이 많고,

가진 것이 적어서 세상이 싫은 사람은, 바른 삶의 길잡이, 권정생 선생을 만나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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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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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식물원,

일본에서 온 사에라란 소녀가 매일 등장한다.

그 아이는 식물을 그리고, 아끼고, 꺾기도 하다가 식물원의 일원처럼 생활하게 된다.

 

 

 

일본어에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을 가리키는 '꼬모레비'란 이쁜 단어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수채화일 뿐이지만,

400년 묵은 아카시아 나무나,

규화목 같은 것들을 만나면, 정말 생명력과 존엄함이 느껴지도록 한다.

 

 

 

 

 

흘림으로 그려진 그림에서도 자귀나무의 샛분홍이 두드러지게 보이기도 하고,

플라타너스의 열매들,

벽오동의 배를 타고 가는 듯한 씨앗들도 이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에 앞서,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읽은 이라면,

이쁜이 소피가 를리외르 아저씨와의 인연을 맺은 식물 도감에 힘입어,

식물원의 연구원이 되어있는 접점을 만나는 일도 재미있는 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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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12-07-1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세 히데코 작가의 작품을 쭉~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샘 님이 올린 글부터 잘~ 읽고 갑니다. ^^

글샘 2012-07-13 14:04   좋아요 0 | URL
수채화가 참 이쁩니다. ^^ 그쵸?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 2016 영광군민 한책읽기운동 선정도서 선정, 아침독서 선정, 2013 경남독서한마당 선정 바람그림책 6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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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을 그리고 쓰기 위하여 작가는 얼마나 많은 밑그림을 그렸을까?

아마 첼로 수천 장을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선이란 것은 한 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 책에서 만나는 선들은, 그저 물감이 남긴 흔적이라기보다는,

첼로의 아름다운 S 라인과, 첼로의 묵직한 음감이 남겨주는 환상적인 소리가 지나간 자취처럼 보인다.

 

1994년 가을,

난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고 있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인들의 만행을 읽으면서 너무 치가 떨린 나머지,

일본에 어마어마한 지진이라도 일어나기를 빈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그 이야기를 잠시 하기도 했는데...

이듬해 1월 17일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일어났고, 어쩜 내 저주가 효험이 있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피해가 무지 큰 것을 보고는, 아, 미워할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반성과 연민이 들었다.

 

암튼, 그 대지진을 추모하여 천 명의 첼리스트들이 연주회를 연다고 한다.

천 명의 바람이 모이면 힘이 될 수도 있을 게다.

 

일본의 얄미운 점은... 언제나 자기네가 피해자인 양 호도하는 데 있지만,

그 피해도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미워할 수만은 없다.

 

 

수채화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색감과 선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이세 히데코의 책을 몇 권 봤지만, 여느 수채화와는 다른, 여백의 활용이 눈부시다.

 

그리고 데생인 듯, 수채인 듯, 어울린 선과 색들이,

첼로 연주라는 내용과 하모니를 이루어 자연스럽게 미완성의 완성을 이루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따스해지고 행복해지는 그런 책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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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리외르 아저씨와의 행복한 만남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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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바로 '문화'다.

문화의 힘이란, 소녀도 아닌 소녀시대들이 야한 옷을 입고 묘한 표정의 묘한 노래를 불러,

선정적 매력을 발산하여 돈을 버는 거랑은 거리가 멀다.

노래를 부르는 듯 하다가 갑자기 런닝을 훌러덩 벗어서 목 뒤에 두르고 식스팩을 자랑하는 걸 문화라고 부르긴 넘사스럽다.

그들도 분명 문화의 일부이나, 돈이 되는 거랑, 문화적 힘은 다르다.

 

이세 히데코의 그림이 매력적인 것은 그의 그림책을 본 사람이라면 토를 달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선,

꼬마가 자기의 해진 식물도감을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과,

노 제본가가 느릿느릿 출근하는 장면을 오버랩시켜,

두 '세대'를 만나게 하는 스토리 역시 예술이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것, 그것이 문화일진대,

그 전해지는 것의 핵심이었던 '책'을 다시 묶어내는 노 제본가, 를리외르의 작업에 대한 경의가 가득한 책이다.

 

이세 히데코의 책은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 없으나,

책벌레라면 책장을 찬찬히 넘기면서,

아~! 하는 감탄사를 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 그것 역시 문화의 전승이 되겠다.

 

사진을 찍으려다가, '미나리' 님의 사진이 친절해서 트랙백으로 걸어 둔다.

혹시 보고 싶으신 분은 열어보시면 상세한 그림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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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벗과의 대화
안대회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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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엔 '인생론'이 대단한 건줄 알았다.

이제 나도 반푼은 꺾인 인생이 되고 보니, '인생론'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재밌게 살자."와 "잘 살자." 그리고 "현실적으로 살자." 정도...

그중에 내가 젤 좋아하는 건, 1번이다.

이건 뭐, 내가 찍기 세대라서 찍는 덴 자신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살아 보니깐,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 넣어놓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각들이 아무리 좋아도,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즉, 재밌지 않은 것이라면, 난 할 수 없는 인간이란 걸 나이 오십을 앞두고야 알게 되었다는 거다.

 

아들하고 나하고 참 다르고 달라서, 첨엔 아들을 미워했다.

왜 저자식은 날 안 닮았을까? 생긴 건 쏙 빼닮았는데, 공부는 전혀 안 닮아서 실망이다~

이래서 시작한 게 체질 공부다.

체질 공부를 하면서 아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나니, 아들이 사랑스러워졌다.

그래서 삐걱거리면서 아들과 같은 학교에서 3년을 한솥밥 먹고 살 수 있었다.

 

물론, '잘 살자'는 '건강한 웰빙'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올바른 삶도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 세대는 여기 너무 속박되었던 삶을 산 거 같다.

'현실적'에 대해서는 난 잘 모르겠다.

재밌게 사는 게 왜 승진하는 거보다 가치가 적다고들 여기는지 말이다.

승진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 일은... 난 딱, 질색이다.

 

안대회라는 한학자는 늘상 옛사람들과 노는 사람이다. ㅋ~

요즘 정민 선생이 '다산 茶山' 선생을 사숙하더니 '다산 多産'증에 걸리셨다. ㅎㅎ

읽는다고 부지런히 읽어도 도무지 그 자식들을 모두 일별해 드릴 수가 없다. ㅠㅜ

집에 쌓아둔 책들이 '황상과 나눈 편지(삶을 바꾼 만남)', '차이야기(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 '한국학(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등 수북하다.

안대회는 정민에 비하면 '과작 寡作'이다.

그렇지만, 글로 치면 정민 선생보다 조금 더 깔끔한 맛이 더하달까?

작품이란 게 '양적 팽창이 질적 도약'을 보증하기도 하지만,

차분한 속에서 '깊이와 넓이, 그리고 세련미'까지를 얻어내는 것이 안대회의 '멋'이라 본다.

 

이 책은 '소품'이다.

집을 꾸밀 때, 커튼이나 소파 등의 빛깔과 톤은 집안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지만,

막상 그 집을 꾸민 사람의 성정을 알아보게 하는 것은, 적절한 곳에 놓인 자그만 화분 하나, 장난감 하나일 수 있다.

거창한 작업에 몰두하는 정민 선생에 의하여 '다산'이란 거두를 우러르게 하는 작업도 의미있지만,

이런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인 정원이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유유자적 배회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책 속의 글들은 아기자기하다.

 

주제는 무지 방만하다.

그런데 그 다양성이 오히려 아름답다.

다양성이 생물 종의 보존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말처럼,

조선의 글들이 남긴 획일적 사상 (강상의 윤리)에 비하면,

그런 윤리,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탐구와 사유의 펼침이 참으로 다채로워 황홀하다.

그 빛깔이 어느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퍼지고 번지면서 어울린 모습이 마음을 아른아른하게 만든다.

 

홍길주의 <숙수념 : 누가 내 꿈을 이루어 줄까?>이란 작품처럼 '판타지'를 끄집어 내기도 한다.

희망과 절망의 판타지이면서 상상력과 교양의 저작인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박지원의 벗에 대한 편지도 아름답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것은 참으로 보통의 인연이 아니고 보통의 만남이 아니다.

수천 년 흘러온 세월 속에서 하필 그 사람을 벗으로 만나 사귀다니.

이덕무 역시 <느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면서 반색을 한다.

 

법구경에서, <건강보다 더 큰 은혜는 없으며, 만족할 줄 아는 마음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는 구절도 들려준다.

종횡무진, 온고이지신은 특정 방향이 없다.

 

이학규란 시인의 <비해>에서는 번민과 근심의 순간에 더 비극적인 순간을 떠올리면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 글도 재밌다.

번민이 찾아들 때에는 순장을 당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근심스러울 때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떠올려 본다...

 

송나라의 시인 육유에게서 빌려온 '서소'란 말은 참 정겹다. 책방도 아닌, 책 둥지라니... ㅎㅎ

 

내 방 안에는 책이 궤짝에도 들어있고, 앞에도 흩어져 있고, 침상에도 널려 있네.

상하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책 아닌 게 없지.

어쩌다 나가볼까 염을 내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들이 쌓아놓은 마른 장작처럼 포위해서 나가지 못할 때도 있네.

그런 때면 문득 혼자 웃고는 '이야말로 내가 말한 둥지가 아닐까!'라고 자문자답한다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웃고 넘길 수만은 없을 일이다.

이사라도 해보면, 일꾼들이 투덜대는 소리에 맘 약해져 한 오만 원이라도 얹어줘야 했던 기억도 날 거고 말이다. ㅋ~

 

추사의 노규황량사... 글씨는 참 예술이다.

노규(이슬 맺힌 아욱)와 황량(누런 기장밥)을 먹는 사람들의 모임.

얼마나 단출하면서도 정감으로 가득한 시회였을지를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성호 이익의 '삼두회'도 재밌다.

가까운 친척들을 불러 콩죽, 두부, 된장 등을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눴다는 이야기.

감옥 가는 일을 '콩밥 먹으러 간다'고 할 정도로 현대까지도 콩은 거칠거나 검소한 음식의 대명사였다.

양반이 지켜야할 검약에 대하여 생각할 일이다.

그뿐 아니라,

그 자리에 젊은이와 어른이 모두 모이자 해박한 지식과 굉장한 언변으로 옛일을 말씀하셨다.

자세히 헤아리고 분변하시니 말슴마다 법도에 맞아 구경하고 감화된 자가 많았다.

이런 회합이라면, 콩밥을 거칠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다.

널리 알려야 할 모임의 양태다.

 

이규보가 몸을 기대는 안궤의 부러진 다리를 고치고서 새긴 '기물명(記物銘)'도 이채로운데,

피곤한 나를 부축한 것은 너고,

다리 부러진 너를 고쳐준 것은 나다.

병든 이들끼리 서로 도와준 것이니 누가 공이 있다 뽐내랴?

의유당 김씨의 '조침문' 에 버금가라면 서러워할 감상 아닐까?

재밌다. 삶은 이런 자세로 살면, 힘들지 않잖을까?

옛글에서 이런 마음을 배우는 거... 그런 게 '온고이지신'아닐까?

 

소문으로 듣기만 했던 '마쿠라노 소시(枕草子)'의 세이쇼나곤이란 상궁을 만났다.

1000년 전 일본 여자의 삶과는 아무런 교섭도 없는 내게 이 수필집이 곰살맞게 다가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담백하고도 예민한 감각, 여성적 시선과 언어가 발산하는 멋이 매력적이고,

인생에 대한 통찰이 생동하여 이틀 만에 다 읽기는 했으나 너무 빨리 읽은 것 같아 종내 아쉽다.

 

방 한쪽 구석이나 장지문 뒤에서 들을 때, 식사 중인지 젓가락 소리와 숟가락 소리가 섞여서 들리는 것.

그런 때 주전자 손잡이가 탁 하고 옆으로 넘어가는 소리 또한 마음이 끌린다.

안 선생이 아쉬워할 만 하다.

이런 책이라면 나도 만나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넘친다.

 

스승 이용휴가 제자 이언진의 죽음을 두고 남긴 애도시...

평범한 작은 남자에 불과하지만, 죽고 나자 사람 수 줄어든 느낌일세.

세도에 무관한 사람들은 빗방울처럼 많기도 하건만.

박희병 선생이 중점 연구한 호동(골목길) 이언진이어서, 그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제자였지만, 지음의 죽음에 버금가는 아픔 아니었을지... 상상이 된다.

 

살구나무 꽃을 본 사람들은,

왜 고전의 클리셰에서 '도화 행화, 복숭아꽃 살구꽃'이 등장하는지 알 것이다.

내 본적인 고향 역시 '목행동'이란 살구꽃이 들어선지, 복숭아꽃보다 살구꽃이 더 정겹다.

 

 

 

이 책에서 재밌는 사실을 두 가지 찾게 되는데,

 

우선,

우리가 잘못아는데 널리 알려진,

<야설 野雪>을 서산대사의 글이란 김구 선생의 이야기를 바로잡는 부분이 있다.

 

눈발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가노니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를 말자.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

 

순조 연간의 시인 이양현의 작품이라고 바로잡는다.

어쨌든, 눈길의 벌판을 떠올리면서 아스라한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명문임엔 변함이 없다.

 

또 하나,

연암 박지원이 '벗은 제2의 나'라고 했는데,

박지원은 이수광으로부터, 이수광은 마테오리치로부터,

키케로의 유명한 로마의 속담을 전해 들은 것을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옛글 속에는 옛사람들이 들어 있다.

허나, 그들은 고리타분하고 고색창연한 사고에 얽매인 '옛사람'만인 것은 아니다.

그들의 글을 통해 그들 역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상상과 발견'의 묘미를 느끼며 살아갔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안대회처럼 그들의 삶을 읽어주는 이를 통하여,

삶을 '즐길 줄 아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일이야말로 독서의 묘미가 아닐까?

 

 

독서를 통해 새로운 인생관을 확립한단 건 억지일 수 있으나,

"재밌다~"는 삶을 살려는 이에게도,

"현실적" 또는 "잘 살기"를 추구하는 이에게도,

역시 독서는 한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일이니,

천년 전 벗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관'을 배우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독서...

한 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한 줄기 소나기일 수도 있는 일이다.

 

이 책은 그런 한 줄기 소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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