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밀란 쿤데라 전집 10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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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그리는 마음... 향수, 향수병...

좀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 말에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숨겨져 있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 20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로서 한국이라는 곳을 돈벌이할 곳으로 여기고 와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고,

많은 여성들이 노예 비슷한 결혼을 해서 말도 통하지 않는 남자와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

유학을 와있거나, 한국에 외국어 강사로 와있는 경우는 제법 고급노동자라 자의에 의한 것이라 큰 문제가 없다

 

많은 수의 이주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누구나 외국에 나가 살고 싶어하는 낭만적 마음이 있을 건데, 그건 어디까지나 낭만이다.

어쩔 수 없이 망명길에 오르거나, 이주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은,

늘 고향으로 달려가는 마음에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이 향수병이다.

 

불과 30년 전까지도 농업 사회였던 한국 사회,

무지 빠른 기울기로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다들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왔다.

아직도 명절이면 도로가 막힐 걸 알면서도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 역시, 향수병의 연장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문제시하고 있는 것은,

향수를 느끼던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렇게도 가고싶어하던 그곳은... 정작 그토록 그리던 그곳이 아니더라는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제 살던 곳을 버리고 수십 년간 다른 곳에서 정착해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려졌던 고향은,

이제 자기가 정착할 수 없는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는 증명이고,

결국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은 고향을 잃어버리고 방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샤갈의 그림에는 땅이 없다.

인물들은 늘 땅에서 소외되어 하늘을 날고 있다.

샤갈의 고향 벨로루시는 소비에트가 지배세력으로 군림하였다.

밀란 쿤데라의 고향 프라하 역시 소비에트의 지배로 1968년 프라하의 봄은 탱크에 짓밟힌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을 떠나 떠돌다 그를 사랑하는 '칼립소'란 여인과 7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고향의 여인 페넬로페에게로 돌아가지만...

페넬로페와 그는 칼립소에 비하면 깊은 사랑이 아니었고, 돌아간 고향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디아스포라>라고 이름붙인 사람들은,

고향을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그 향수의 결말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 각자의 삶을 그토록 탐욕스럽게 지배했던 것이 20세기 특유의 현상이다.(16)

 

슬픈 조국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랑스로 망명해야했던 밀란 쿤데라에게

공산주의란 폭력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삶을 지배했던 그토록 탐욕스러웠던 현상.

 

이십 년 동안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귀환만을 생각했다.

그런 일단 되돌아오자 그는 자신의 삶, 그 삶의 본질, 그 중심,

그 정수가 이타카 밖에, 이십 년 동안의 방랑 속에 있음을 깨닫고 놀랐다.(38)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행적을 고향 밖에서는 다들 궁금해하고 칭송했으나,

막상 그토로 그리던 꿈의 이타카에 돌아온 그에게 돌아온 건 무관심 뿐이었다.

결국 인간은 자기가 서있지 않은 곳(U-topia, 없는 곳)을 지향하게 마련이지만,

그 향수의 내용은 낭만적일 뿐, 현실은 냉혹한 것임을 오디세우스는 가르쳐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여 프라하를 뜬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며 돌아온 곳 프라하에서,

그들은 <침묵하는 이방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레나는 프라하와 빠리에서 사랑에 빠진다.

우연, 그것은 '운명'을 말하는 다른 방식이다.(105)

그녀는 '드디어'라는 말을 듣자 너무나 기뻐서 그에게 말한다.

'당신이 여기에, 나와 함께, 내가 있는 이곳에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라고...(106)

 

인간이 느끼는 운명, 우연, 사랑, 이 모든 것들은 <여기에, 지금> 있기에 의미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여기에 나와함께  드디어 네가 내가 있는 이곳에' 있을 때만이 의미를 갖는 것인데,

수십 년 떠나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사랑이란 하나의 고집스런 상징물에 불과할 것이다.

<향수> 역시 그러한 감정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작별을 놓친 사람은 재회에서 별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다.(138)

 

작별을 잘 해야 한다. 이별할 때, 분명한 이별의 이유가 있어야 하고, 반드시 재회의 기약을 가져야 한다.

버리듯 떠난 작별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지 못한 상태로, 재회하는 상황은 더 어색해지고만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이런 일련의 감정들을 모두 겪으며 아파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모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틀리게 마련이다.

인간은 현재의 순간만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인가?

인간은 진정으로 현재를 알 수 있는가?

그것을 심판할 수 있는가?(146)

 

그리하여 인간의 어떤 판단도 행복한 미래를 예약할 수는 없는 것이다.

향수 역시 그러하다. 고향으로의 귀환은 행복한 예전으로 자신을 되돌릴 것이라는 판단은,

늘 오류 앞에서 비틀거리게 마련인 것.

 

프라하를 떠나 덴마크에서 살았던 조제프에게 곤란한 질문이 떨어진다.

 

덴마크가 정말로 너희 나라라면, 너는 거기서 어떻게 살았니? 누구와 함께?, 말해봐, 너는 행복하니? 말해봐, 말해봐~!(161)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이주 노동자들에게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마찬가지로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주 결혼 여성들에게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하는 질문은 잔인하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거쳐 나누어야 하는 질문과 대답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들이 겪는 곤란으로 제한되지만, 곧 그 아이들이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에 투입된다.

그러면 다시 제2계급으로서의 디아스포라를 양산하게 될 터인데,

그때 발생할 사회적 비용을 지금 미리 투입하는 지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다른 별들로 여행을 가는 꿈이 그녀를 매혹했다.

우주 멀리로.

삶이 이곳과는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며 육체가 필요 없는 곳으로 타루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나 이 모든 놀라운 우주 로켓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코 우주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짧은 인간의 생으로 말미암아 하늘은 검은 죽음의 장막으로 변할 것이며,

인간은 항상 거기에 머리를 부딪히며, 살아있는 모든 것이 먹고 먹히는 땅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다.(197)

 

이 우주의 비유는 오디세우스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나 더 환상적인 세상을 향하여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곳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미지의 우주라고 여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짧아, 우주로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그 땅으로 떨어진다. 그 땅 역시 그를 반겨주진 않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쉽지 않다.

그의 주인공들은 일련의 사건에 연관되어 있지 않다.

각각의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의 은유는 비슷하다.

그러나, 그의 주인공들과 그의 서술은 산만하다.

이러한 문체는, 그의 정신 분열적 사고를 반영하는 것일게다.

 

향수를 제정신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역설적 표현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인물들은 망명한 나라, 거기서 자리잡고 튼튼하게 잘 사는 것이고,

 

근데... 맘이 허전하기 그지없는 거라.

 

그러니 샤갈의 그림이 발을 땅에 딛지 못하고,

 

밀라 쿤데라의 글이 한 방향으로 쏠려 나오지 못하고,

 

그저 허방다리를 짚는 마음,

 

그걸 빛으로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예술의 책무이리라.

 

그렇게 달려간 고향이었는데,

 

거기 20년만에 갔더니, 자기 삶의 터전은 거기가 아니더란 걸 깨닫고,

 

마음 아파한단 그런 이야기.

 

 

 

누구나 어디 살든,

거기가 낯설어 보이고,

 

더 좋은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어하지만~

 

자기 사는 곳이 가장 삶의 터전이 되고 있음을 깨닫고 잘 살잔 이야기.

 

세계화의 미명 아래, 자기 살던 터전을 잃고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세계인>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정신적 이해는,

아직도 관심 밖이기 쉽다.

이런 지점에서 밀란 쿤데라의 <향수>는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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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충격 - 지중해, 내 푸른 영혼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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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란 말을 읽고도 '부조리한 현실'에 치를 떨지 않는 사람은 실감을 하지 못한다.

난 고삐리때까지 당연히 착실한 모범생이었고,

대학생들이 왜 데모를하는지... 몰랐으며,

데모하면 집안 말아먹으니 대자보 옆에도 가지 말란 소릴 듣고 대학엘 갔다.

그러나 5월이 되었을 때쯤, 모든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교문에서 끊임없이 돌을 던지고 있었다.

불어로 '레트랑제'란 발음을 들은 뒤,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부조리한 세상'의 부조리에 치를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뫼르소의 머릿속은 지중해의 작열하는 태양 말고도 제국주의의 부조리와 식민지 현실이 자리잡고 있었던 거다.

 

Camus란 술이 있다.

몹시 쓰다. 위스키보다 오래 숙성시킨 블렌디의 일종인데,

술 이름에 카뮈를 붙인 건... 예찬일까? ^^

 

내 뒤를 걷지 말라. 이끌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내가 따라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내 옆에서 걸어가며 친구가 되어달라.

 

카뮈의 말이다. 이렇게 지중해를 걷는 김화영의 발걸음에는 카뮈의 목소리가 가득차 있다.

뫼르소의 어지러운 머리보다는, 경쾌한 지중해의 화창함이 이 책 내내 가득하다.

 

1975년. 박정희의 유신의 어둠이 가장 캄캄할 때,

그 때 엑상프로방스를 방문한 불문학도 김화영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1990년대 이후, 세계화를 빌미로 온갖 해외 여행이 유행한 이후, 해외여행기가 러시를 이루었지만,

그들의 해외 여행은 <체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암흑기 1970년대의 지중해를 본 김화영은 뫼르소처럼

그 지중해의 빛에서 <영혼의 충격>을 얻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기분으로 읽었다.

그래서

 

자정의 어둠 속에도

지중해는 항상 최초의 아침이다.

내 최초의 영원한,

내 최초의 청춘이다.

 

이렇게 붙인 프롤로그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슬펐다. 홍세화도 떠올랐고...

 

참으로 떠나는 것은 두렵다.

낯선 공간으로 이동하는 공포, 몸에 익은 공간으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자의 공포.

이 공포는 아마도 정신적 공포가 아니라 몸의 공포일지도 모른다.(22)

 

그 시절, 유럽은 하나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달콤한 시럽처럼, 씁쓸한 커피처럼, 강렬하면서 충격적인 맛을 본 그의 젊은 영혼이 이 책에 그대로 감광되어 비추인다.

인화지에 드러난 그림자는 그가 놓여진 위치의 흔적이지만,

빛이 투과되지 못한 부분이 빛을 감각하지 못하여 인화지에 다양한 형상을 그려내는데,

빛을 바라본 적이 없던 어둠 속의 인간은,

어떤 감광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기에, 더욱 공포로부터 출발하였을지 모르겠다.

 

파리에서 누군가에게 Aix(엑스)를 아느냐고 물으면 그는 물론 엑상 프로방스를 머리에 떠올린다.

'아름다운 도시', '다정한 도시'라고 대답하는 파리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꿈과 선망이 담겨 있다.

그 꿈은,

어느 여름 오후를 보낸 쿠리 미라보의 카페,

그늘지고 조용한 구시가의 작은 골목에로의 산책,

벤치 위에 내리는 햇빛의 반점들, 서점에서 만난 초록빛 눈의 처녀,

부활절 무렵부터 늦봄까지 피는 코클리코 붉은 야생화,

자동차로 십오 분이면 항상 눈앞에 출렁거리는 지중해,

근교의 푸른 하늘을 물들일 듯한 보랏빛 라벤더의 광활한 고랑들,

언덕배기에 자욱한 향료 텡(타임)의 그윽한 냄새,

토르네 성으로 넘어가는 언덕길,

양 옆의 숲 속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하얀 별장들,

작열하는 태양에 빛이 바랜 붉은 기와,

시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학생들이 이 소도시를 가득히 채우는 영원한 청춘의 설렘,

카페의 카운터 앞에 서서 낯선 사람과 어깨를 툭툭 치며 웃으면서 마시는 차디차고 독한 파스티스,

목마른 자에게 물의 정수를 맛보여주는 녹색의 박하수,

골목골목에 나직이 고요의 소리를 보태는 분수,

그리고, 아, 그리고 모든 것, 은밀하면서도 다정한 것들.

이 모든 기억들 쪽으로 그의 꿈은 남몰래 열려 있다.

 

그러나 엑상 프로방스는 능률을 찾는 자, 시간이 바쁜 사람, 견문을 넓히려는 교양인, 소유의 노예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일체의 환상을 거부한다.(37-38)

 

이렇게 아름다움을 발견한 구절을 묘사한 문구들을 다 베끼자면, 이 책은 독서를 거부한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거의 책 전부를 베껴야 할 거다.

 

사철 밝은 햇빛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베란다 위에, 풀밭에, 거리에, 카페에 잘도 내리 비치고,

소나무와 잡목림이 곳곳에 무성하며,

아름드리 가로수가 드넓은 포도 위에 그 너그러운 그늘을 드리우고,

아르크의 실개천이 엑스 시를 굽이돌며 그 빛 밝은 전원 풍경을 안고 흔들어 재우는 풍경...(47)

 

이렇게 묘사하면서도, 그는 불안감을 느낀다.

 

막연히 나의 육체, 나의 감각은 이 고장의 나무랄 데 없는 풍경과 기후에 저항을 느끼는 것이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나의 마음은 쉬 안정되지 않았다.

 

1970년대임을 생각한다면,

어둠 속에서 빛으로 걸어나간 이의 눈부셔함을 이해할 만도 하다.

찬란함을 오히려 견뎌하지 못하는 이의 애처러운 모습이 떠오른다.

 

불안감을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육체다.

속이 울렁거리고 위장이 먼저 반응을 보인다.

손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지중해의 맑고 다사로운 물에 그대의 젊은 살을 담아보라.

알 것이다.

참으로 그대의 살은 알 것이다.

생명이 간직하는 것은 오직 새로이 시작하는 현재, 오직 영원한 현재뿐임을.(63)

 

지중해의 짭쪼름한 바닷물에 젊은 살을 담가 보고서야,

살이 깨닫는다. 영원은 현재에만 드리울 수 있는 빛과 그림자임을...

 

프로방스인의 하나였던 장 지오노를 '가장 뜨거운 열정과 삶의 충동에 불타던 작가'라고 칭송하며,

삶의 현재성을 역설하는 부분도 참, 멋지다.

 

하루해는 어둠의 혼란된 시각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하루해의 모양은 길지 않다.

화살이나, 길이나, 인간의 경주처럼 어떤 목적을 향해 가는 긴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태양이나 세계나 하느님의 모양처럼, 영원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진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문명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향하여, 어떤 머나먼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설득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사는 것이며, 삶은 우리가 매일같이 항상 하고 있는 일이며,

하루의 매 시각 우리가 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목적을 다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문명인들은 날들이 길다고 말한다.

아니다. 날들은 둥글다.

우리는 그 어떤 목적을 향해 가는 것도 아니다.

왜냐햐면 우리는 바로 모든 것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날들은 과일과 같다.

우리들의 역할은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우리들 본성에 따라 부드럽게든 탐욕스럽게든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그 과일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섭취하여 우리의 정신적인 살을,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일, 즉 사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목적도 없다.

지상에 태어나 이 사물들을 본 필멸의 생명은 행복하여라.(79-81)

 

생의 감각을 일깨우는 프로방스와 지중해.

어둠에서 나가 너무도 찬란한 빛을 접한 그의 망막은 어쩌면 '충격'으로 한순간 먹먹했으리라.

책으로만 읽었던 자유와 평화와 삶과 죽음은 그 앞에서 혼란의 혼돈 속에 가득 잠겨 있었으리라.

40년이 다 된 책을 읽는 일은 그래서 더 많은 상상의 날개를 필요로 한다.

 

마르세유의 페스트와 전쟁, 그것도 삶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짓누를 순 없었으리라.

강렬한 '첫 키스의 추억'으로 남은 지중해는 그에게 영원한 낙인처럼 각인된다.

 

그 후 지중해의 행복한 섬처럼 내 달뜬 가슴이 밤중에도 더러는 출렁거린다.(145)

 

기억 속의 빛은 늘 상대적인 법.

다시 어둠으로 들어온 그의 홍채는 확장의 기능을 잃어버린 듯, 어둠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1974년 6월 수년 만에 돌아온 내 나라 공항에 내려서 한국어로 계원과 말을 주고받을 때 발견한

그 철통 같은 국경 앞에서 나는, 그리도 넘기 쉽던 유럽의 모든 국경들을, 가슴을 떨면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쯤 이 굳게 닫힌 국경의 문들이 세계로 열리고 그 시원하게 열린 문으로 세계사의 봄,

지구의 부활절이 우리에게도 찾아올까!

 

이제 이 땅에도 국경은 자유롭게 열렸다.

그러나 그 자유는 돈이 타넘어다니기 쉽도록 장치한 자유에 불과하다.

과연 부활절이 찾아올 날은 언제일지... 아직도 기다려야 한다.

 

이국의 징표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빛이지만, 사람을 가르는 것은 '언어'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 존재의 고독을 바로 불러일으킨다.

다수 앞에서 비로소 부재와 욕망이 오롯이 살아난다.

여행은 그런 것을 가슴으로 보여주는 행로다.

 

서로 헤어진다는 것이 바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다수의 세계,

그리하여 부재가 있고 거리가 있고 그로 인하여 다가가고 합일하려는 욕망도 있는 이 언어의 세계만이 우리들의 왕국이다.

그 따뜻한 왕국 위에 오늘도 좋은 부활절 햇빛이 내린다.

내 눈이 보고 내 살이 느끼는 이 햇빛과,

그리고 대낮과 밤의 세계 저 너머에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어느 것이 있어도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런 세계가 있다면 적어도 그곳에 언어는, 인간의 언어는 없을 것이다.(159)

 

영화 '코리아'를 볼 때,

하지원이 배두나를 보고 울며 말했다.

"언니, 헤어질 때,

편지할게, 전화할게, 이렇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

우린, 아니 나는 편지할게, 전화할게 이런 말로 인사하지 못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해?"

존재의 벽은 부재에서야 비로소 느끼는 상처다.

 

물의 도시 피렌체에 가서 카뮈가 스승 장 그르니에에게 바친 '사막'을 들춰본다.

 

산다는 것은 물론 표현한다는 것과 어느 정도 반대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침묵과 불꽃과 부동 不動 속에서,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증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의 참된 증거인 살과 뼈를 그 자체로서 바라보기 전에 우리는 그 사람의 신분, 이름, 그의 보이지 않는 생각과 인격에 따라서만 그 사람의 모습을 해석하려 든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이전에 사람의 얼굴은 생명이 약동하는 살과 뼈로 거기 있다...

의미 이전에 그의 얼굴이 바로 내 눈앞에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버리기 쉽다.

침묵 속에, 그 의미 이전의 생명이라는 불꽃 속에,

존재로 나타나기 위하여 잠시 육체가 정지하고 있는 부동 속에, 삶이 그의 전모를 드러낸다.

조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회화 속에는 그 세 번 증언 된 삶이 표현되어 있다.(174)

 

삶은 침묵으로, 불꽃으로, 부동의 몸짓으로 증언된다고 한다.

말해진 것은 존재증명으로서는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한 것일 게고,

존재 증명을 위해 내세우는 서류 나부랑이들은 불꽃같은 열정 앞에선 무용지물일 게고,

어떤 동작으로 오버액션을 취한다 하더라도, 부동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삶은, 말하지 않아도, 불꽃처럼 타올라도, 행동하지 않아도,

그 표정을 보면 알게 된다. 표현하지 않아도, 삶은 표출되는 것이다.

 

지중해는, 모든 것의 출발이고, 모든 것이 이르는 목적지이다.

그곳에 삶의 씨앗이 있고, 그 씨앗을 두꺼운 죽음이 감싼다.

모든 떠난 자들은 그곳으로 돌아온다.

모든 돌아온 자들은 그곳에서 떠나보낸다.

그래서 그 햇빛, 바람, 나무, 돌들의 시원 지중해는 덧없고 행복한 생명들의 '중심'이다.

모든 '중심'이 그러하듯 일몰의 시각이 다가오면 지중해는 둥글게 둥글게 익는다.

그 생명의 과일이 익는 시각,

아!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비로소 배운다.

 

해질 녘, 초록색의 황혼녘, 바닷가에 서면,

눈을 감아야 참으로 보이는 나의 별, 잘 익은 과일.

하루에 한 번 익은 지구가 바로소 내 가슴에 깊이깊이 들어앉는다.

내가 그 별 속에 살고, 그 별이 나의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전을 시작한다.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때 나지막이 발음해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 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229)

 

여행기도 아니고, 감상문도 아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간 탈출기이기도 하고,

그 빛에 매혹된 연애 편지이기도 하다.

그 연애 편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자가, 저 쓰디쓴 블렌디 카뮈였으니,

이 책을 읽노라면, 옆에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정도는 구비해 두고 읽으면 금상 첨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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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ㅋ~ 프랑스에서 프로방스까지는 멀다~ '빠리'에서가 아닐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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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7-26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아름다움을 발견한 구절을 묘사한 문구들을 다 베끼자면, 이 책은 독서를 거부한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거의 책 전부를 베껴야 할 거다.

다시 어둠으로 들어온 그의 홍채는 확장의 기능을 잃어버린 듯, 어둠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와~, 멋진걸요.
저 문구가 과장법인지 아닌지, 직접 읽어볼 밖에요. ㅋ~.

1975년이면 내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다섯살땐데,
그때 김화영 님은 저런 글을 쓰셨단 말이죠?
어쩔 수 없겠는걸요~--;
이 리뷰에 대한 헌사는 로맨티스트 김화영에게 돌려야 겠는걸요.
좋은 립 잘 봤습니다.^^


글샘 2012-07-26 13:31   좋아요 0 | URL
너무 뽐뿌질이 심했나요? ㅎㅎ
이 책이 발간된게 1975년이고, 쓰여진 건 아마 양철댁이 태중에 있었을 때쯤? ㅋ~

근데... 제 입술 lip 이 어딨나요? 아니면 갈비 rib 를 보신 거?

sslmo 2012-07-2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Lip service임을 눈치 채신거임?
아님, six pack을 만드셨는데 자랑할 곳이 필요하신거임?

전, lip도 rib도 다 궁금해여, 이 참에 함 대대적으로 공개를 하시던가, ㅋ~.


글샘 2012-07-26 16:11   좋아요 0 | URL
팁의 오타겠죠?
제가 립이 좀 이뻐서 공개하면 곤란하다는...
뒤의 립도 식스팩도 안 보입니다. 통통한 지방질이 폭신하게 감싸고 있어서요. ㅎㅎ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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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1937년,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 가장 성하였던 시절 나왔던 청소년 철학서임을 알고,

왜 지금 이런 책을 펴냈을까?

그것도 괜찮은 청소년 도서를 내기로 정평이 나있는 양철북에서?

이런 의문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있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를 미리 읽었더라면, 그런 의문은 미리 풀고 갔을 것이지만,

어쩌면, 그 과정을 몰랐기에 꼬부장한 눈으로, 이상한 구석만 나와봐라, 욕해줄 테다! 하는 자세로 읽게 되어

책을 더 비판적 시각에서 골똘히 읽었던 것 같다.

 

2012년 여름,

청와대가 수상하다.

미국이 제시한 것이 당연한 '한일 군사 정보 동맹 협정' 같은 것을 맺으려 한다.

일본에게서 한국이 읽어낼 군사적 정보가 많다면 모를까,

제1 교역국 중국과 비겨보자면... 좀 무모한 도전인상 싶은데...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한 사실을 잊었나?

아하~ 친일파들은 이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며 일본이 상륙해주길 기다리시나?

그런 거야?

 

일본이 군국주의에 미쳐 날뛸 때,

청소년들이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자라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일본 소국민 문고'를 16권 내는데,

그 첫번째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엊그제 안철수 원장이 힐링캠프에 나와서, 한국을 진단한 말.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나왔듯,

자살률로 보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품질의 삶을 누리는 현재,

출산률로 보아 세계에서 최악의 미래를 보장받는 사회.

뭔가 바꾸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동화 형식으로 되어있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묻고 대답하며 부딪치고 깨닫는 과정을 이야기 형식으로 제시하면서,

철학적 사고가 담겼으면 하는 부분을 삼촌의 노트로 기록해 주고 있다.

 

약 80년 전인데도, '작가 중심' 사고에서 '독자 중심' 사고로 전환한 획기적인 책이라 볼 수 있다.

1930년대라면 작가가 '나를 따르라' 하면 독자는 넵~ 하고 읽어야 하던 시대이니 말이다.

 

코페르란 이름에서 주인공 아이는 철학의 '반전'의 핵심에 다가선다.

 

당연한 것을 생각하는 건 절대로 우습지 않아.

알고 있다고 믿었던 어떤 것을 좀 더 깊이 파헤치고 생각하다 보면

절대로 알고 있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란다.(75)

 

생각은 이런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철학은 거기서 정지한다.

더더더~~~ 생각하는 자세는 '알고 있었다'는 말을 넘어 선다.

그것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될 거다.

 

흔히들 '고맙다!,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는 뜻으로 '고마움'이라는 말을 쓰고는 하는데,

그 말은 본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란다.

나는 본디 이렇게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분, 그게 바로 고마움이라는 마음이란다.

고마운 마음이 '고맙다'라는 말이 되어 나타나고,

그 말에는 고마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러나는 거란다.

이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지금의 너를 되돌아보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122)

 

일본어의 언어 철학의 일단을 볼 수 있는데,

'아리가토오~'보다는 '스미마셍' 또는 '스마나이'의 의미 풀이로 보인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일본인들은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란 말을 아주 많이 사용합니다.

대체로 아래와 같은 때에 사용을 합니다.

 

1.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경우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2. 타인의 집이나 가게에 들어설경우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3.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경우 "잠시만요, 실례하겟습니다"
4. 상대방에게 호의를 받은경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5. 타인을 조심스럽게 부를때 "저기요, 여보세요, 잠깐만요"

 

같은 말인데도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을 하는데,

도대체가 스미마셍이란 말의 정확한 뜻은 뭘까?

일본인들도 스미마셍이란 말의 어원 즉 그 말이 생겨난 배경을 두가지로 보는데,

'済(스마스)'와  '澄(스마스)'인데,

두가지 모두 '스마스'이긴 한데 뜻은 다릅니다.

済는 우리말로는 '제'로 읽으며 '이루다'란 뜻이며

澄은 우리날로는 '징'으로 읽으며 '맑다'는 뜻입니다.

일본인들은 두가지 한자를 모두 '스마스'로도 읽습니다.

그리고 'ません(마셍)'은 '않다'라는 부정을 뜻하는 말인바

'済みません(스미마셍)'은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뜻이되며

'澄みません(스미마셍)'은 '(마음이) 맑지 못하다'는 뜻이 됩니다만.

두가지 모두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다' 즉 '찜찜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은 상대방에게 충분한 감사를 하거나 사죄를 해야 하는데,

다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최대한 상대방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즉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어떤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NE007&qid=3JPrT&q=%EC%8A%A4%EB%AF%B8%EB%A7%88%EC%85%8D%20%EC%96%B4%EC%9B%90&srchid=NKS3JPrT <다음 '지식 검색'에서> 

펼친 부분 접기 ▲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위인이란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것은 당연지사.

 

영웅으로 또는 위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 가운데 진정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은

인류가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된 사람들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업적 가운데서 가치있는 업적을 꼽는다면

인류의 진보라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은 일 뿐이다.(169)

 

위인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지나치게 국가주의에 입각한 위인상을 내세우고 있다.

하긴 지폐에 대한민국 사람은 없고 순 조선인들만 가득한 나라다보니... 과거에 얽매인 성리학의 나라다.

현대 세계의 위인이란? 이런 것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크다.

 

뜰에서 느낀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명의 본능은 몇 천 년이라는 역사 속에서도 똑같이 움직여온 것이다.(256)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문화를 돌아보고,

그 면면한 역사를 발전,계승시켜나갈 후임자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야기는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건전한 삶의 지혜를 길러줄 필요,

현대가 될수록, 마마보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나는 지금 무언가 생산해내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하지만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예요.

이만한 일은 나도 할 수 있어요.

내가 이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요.(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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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7-25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내용이 청소년용?
저처럼 덜 자란 어른에게도 좋을듯 한데요^^:::

글샘 2012-07-26 09:58   좋아요 0 | URL
덜 자란 어른은 소주를 마셔야죠~ ㅎㅎ 자라게~~~
근데 넘 더워서 소주는 못 마시겠죠?

아무개 2012-07-26 15:14   좋아요 0 | URL
전 맥주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너무 아파서 가능하면 소주로 쭉~ 달리는 편입니당.
땀을 바가지로 흘려도 전 지글지글~ 삼겹살에 소주가 좋아요 ㅎㅎㅎ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팸플릿 시리즈 (자음과모음) 1
손철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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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의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란 책의 강의판.

 

출판된 책의 장점은, 도판이 제법 크고, 부분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경우 상세도를 붙여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손철주의 저 책은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작품이다.

짧은 분량 안에서 어쩜 그렇게 매력적인 품새를 갖추었던지,

읽으면서도 샘이 나서 그의 글솜씨를 질투하곤 했던 것이다.

다만, 책의 체재를 춘하추동에 맞추다 보니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줄기를 잡아 펼치지는 못하는 거여서,

독자로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손철주의 강의를 옮긴 책이다.

그러노라니, 손철주가 정말 마음 가득 사랑하는 그림들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화의 가장 특징적인 면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고르고 골라서 설명한 흔적이 확연하다.

 

손철주의 '옛 그림 보면~'이나, '다, 그림이다'를 읽은 이라면,

특별한 이야기를 더 들을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구수한 입담과 함께 그림 이야기를 킥킥대면서 듣기엔 이 책이 제격이다.

 

더운 날, 찻간에서 읽고 싶은 가벼운 책을 찾는다면, 바로 이 책이다.

표지화로 간택된 <서생과 처녀>의 절절함을 느낀다면 책을 결코 가격으로 귀함을 따질 수 없을 게다.

 

제1장에서 산수에서 느끼는 인생의 단맛 쓴맛을 보여준다. 최북과 이인상의 삶의 궤적은 고흐의 그것과 다름없다.

 

제2장은 손철주의 전공분야가 아닐까 싶은 '사랑' 이야기다.

아마 손철주랑 소주 한 잔 기울인다면, 사랑에 대해서 밤을 새도 이어지는 이야기에 빠질 듯 싶다.

 

제3장의 꽃이 속삭이고 동물이 노래하는 장면들, 자연을 그린 속에서 의미를 담아내는 선인들의 삶을 읽을 수 있다.

 

제4장, 선비는 숨어도 속세는 즐겁다에서는 선비들, 스님들 등의 삶에 얽힌 그림들을 재밌게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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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쪽. 삿갓쓴 사람 : 입부...는 한자로 삿갓 笠을 써야 옳다. 책에는 설 립 立이 적혀 있다.

 

127쪽. 소나무에 기댄 노인... 들고 있는 지팡이를 볼까요??? 지팡이 보이세요? 손 샘? 음... 아무래도 콜택시 불러 드려야겠네... 저거 지팡이 아니고 장죽이걸랑요. ㅋ~ 술값이나 계산하고 얼른 가셔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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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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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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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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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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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7 0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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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7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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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를 통하여 마음 치유도 겸했다던 1권에 이은 2권이다.

1권과 대동소이하다.

산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산이야 어느 산이든 오르고 내리는 것 뿐.

실제 걸어본 사람은 온갖 감동을 느껴서 이렇게 책을 쓸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걸 책으로 만드는 일은 ... 글쎄?다...

 

오로지 내 발로 내 온몸을 밀어야만 떠나듯 벗어나든 할 수가 있다.

그때까지는 이 고립과 한계를 기꺼이 흠뻑 즐기는 수밖에 없다.

그조차 산의 품에 깊이 안긴 이의 운명이자 축복이라 여기며.(252)

 

산행에 달인은 없다.

숙달되어 다른이보다 빨리 갈 수는 있지만, 그러면 많이 보고 느끼질 못한다.

아무리 훈련이 된 사람도 오르막길에서 숨차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기 페이스대로 뚜벅뚜벅 걸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행은 삶과 흔히 비유되는 것이고, 산행을 유의미하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결과주의와 성취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산을, 삶을 즐기지 못한다.(244)

 

산행에는 어떤 결과도 없다. 성취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발걸음이 나를 옮기고 있음을 순간순간 깨닫는 일보다 소중한 건 없다.

 

산에서는 불평불만을 터뜨려도 소용없다.

오르막이 힘들고 내리막이 미끄럽다고 투덜대봤자 제 입만 아프다.

비가 온다고 욕을 해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 덥다고 짜증을 부려도 갑자기 시원해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란 엄연히 정해져 있다.(215)

 

산이 가르치는 것. 겸손이다.

이번 책에서는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한 꼭지에 하나씩 시를 덧붙였다.

처음엔 신선했지만, 뒤로 갈수록 뒷심이 빠지는 기분이랄까? 암튼 그랬다.

 

대안학교 아이들과 부모들의 산행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부모들이 목적의식적으로 체벌과 사교육이 없는 민주적인 대안학교라는 온실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잡초처럼 치열하게 자신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를 바라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183)

 

대안학교는 학교의 대안이 아니다. 아직 실험이지만, 한국처럼 획일적인 사회에서 대안학교는 좀더 광범위한 실험을 요한다.

그것도 공교육 안에서 실험학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뭐, 산에 가면, 오로지 걷는 일만이 중요하다.

숨쉬는 일만이 중요하다.

시인 이성선은 그래서 '문답법을 버리다'를 썼다.

 

산에 와서 문답법을

버리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이제는 이것 뿐

 

여기 들면

말은 똥이다(이성선, 문답법을 버리다)

 

두타산의 '두타'는 두산타워의 준말이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로 '버리다, 비우다, 씻다'의 뜻이란다.

염화시중의 가섭 존자가 '두타 제일'로 불리웠다고...

산행이 고행에 가까운 것은 '버리고, 비우고, 씻는' 과정이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정희성, 태백산행, 부분)

 

나이는 상대적이다. 쉰일곱도 조오흘 때다~하는 소릴 들을 수 있다.

나이 탓하지 말고 걸을 일이다. 사는 일 역시 같다.

 

저 어린 꽃망울들 좀 보세요, 조것들

솜털 보송보송한 이마에 분들을 바르고

아휴, 조것들이 어디 있었을까요.

어떻게 나왔을까요?

대관절 무슨 힘으로 저렇게

푸른 하늘 향해

솟구쳤을까요? (윤제림, 어린 날의 사랑, 부분)

 

이런 걸 볼 줄 아는 게 산행의 묘미다.

 

산행은 덜고 빼기만 하는 '빼기의 게임'이고,

'고스톱'처럼 패를 받으면, 끝까지 달려야 하는 게임이다.

산행기를 읽는 일은 그래서 한편 허전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을 안고 있다.

이 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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