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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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밌다~

사랑이 달리다!!!

사랑은 제 맘과 다르게 달려간다.

환경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어느날 불현듯 일어난 사랑은 막 달린다.

 

표지에 그려진 그림엔 네 사람이 등장하는데,

운전대를 잡고있는 손의 선으로 보나, 넥타이와 머리 길이로 보나 그는 정욱연이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차마 고개는 돌리지 못하고 눈길과 온 마음만 던지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은 모두 정욱연에게 관심을 가닥 가지고 있다.

스카프를 두른 생머리 여자,

노출에 대담한 긴 머리의 부드러운 웨이브의 여자,

단정한 단발에 진주목걸이, 링귀고리를 하고 손잡이를 잡고 있는 전문직풍의 여자,

모두들 그의 마음을 잡아보고픈 욕망으로 이 공간은 무지 밀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정작 남자는 정면을 주시할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

 

심윤경의 소설은 재밌다.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그래서 성석제와 천명관 같은 말발을 내가 좋아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소설들은 남성들의 눈으로 바라본 것들이 많아서,

여성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들이 드물다.

남성들이 그리는 여성의 이미지는 '사랑'에 목을 매는 스탈이고,

남자의 사랑 외에는 '자기애'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여성이 그리는 여성은 다르다.

'칙릿' 소설이라고 얕잡아 부르기도 하는데,

여자 마음 여자가 아는 게 당연지사다.


심윤경의 이번 소설에선 '가족'의 허위를 잘 까발리고 있다.

여자들은 모여서 '자신'의 자존심을 깎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편과의 서먹한 관계도 늘 매끄럽게 포장하고,

자식과의 냉랭한 관계도 늘 화려하게 포장한다.

자존과 관계없는 문제라면 '시- 패밀리'에 대한 험담 정도랄까?

 

물질에 오염된 큰오빠, 또라이 작은오빠, 공주 주인공 혜나, 공주 원본 엄마,

노년에 정력맨이된 아빠... 가히 콩가루 집안의 표본이라 볼 수 있다.

 

주인공인 공주과 혜나가 결혼한 남자는 서울대 나온 회사원이다.

회사에서 오창이란 시골로 전출을 당하여 주말부부가 되고...

혜나의 마음엔 '부유함'에 대한 욕망이 끓어넘치기 시작하고,

결국 아빠의 카드, 엄마의 남자의 카드, 자신의 카드(엄마의 남자가 준 직장)로 도배한 사람으로,

거기다 정욱연이란 매력남과 사랑에(근데 과연 그게 사랑일까? 난 의심인데~) 골인한다는,

여성들의 로망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누구에게도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자신이 가장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116)

 

이런 남자라면 매력에 빠져들 법도 하겠다. ㅋ~

 

무한대의 카드 석 장과 병원장 매력남과의 결합...

그 <속도감>에 부러움을 던지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이지만,

과연 이 글을 읽는 여성들의 '사랑'은 부유한 환경일 뿐인지... 궁금했다.

 

그가 남편 같아 보이지 않고 약간 모자란 남동생 같아 보이는 것이 우리 관계의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성민에게 다소 귀찮은듯한 애틋함을 느꼈다.(172)

 

이런 맘이 들 수도 있지만,

과연 오창으로 가버린 성민을 그렇게 찬밥 취급해버려도 좋은 것일까?

그리고 병원장과 육체적 관계로 맺어져버린 얄팍한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그리고 유명 사립대를 나왔다고 해서 작은오빠는 그렇게 수십 억의 사기를 계속 저지를 만큼 이 사회가 말랑한가?

감옥에 가버렸다고 이혼을 결심할 만큼, 과연 가정이란 것의 무제가 증발해버린 것일까?

뒷맛이 씁쓸한 소설이었다.

 

새아버지가 될 박진석의 매력도 잘 쓰고 있다.

 

그는 신기하게도 처와 딸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남자였다.

나는 그에게 꽃을 뿌리고 싶었다. 선루프를 열고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237)

 

여성들이 남성에게 매혹되는 점은 젊음, 외모와는 다른 '성격 - 캐릭터'란 것을 알겠다.

 

이 소설에서 '속도'는 중요한 소재다.

김학원 - 작은 오빠의 스포츠카가 감당하는 '속도'는 가히 '마하'에 가깝다고 뻥을 칠 정도다.

 

"속도 줄여, 이 미친놈아! 날아갈 뻔 했잖아!"

 

다들 그렇게들 달려가고 있다.

혜나 역시 정 원장에게 달려만 가고 있다.

조용히 좀 돌아보게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혜나와 정 원장이 친해지는 것도 좋은데, 그렇게 불나방이 되어버린다고 행복할까, 과연?

이런 '속도'에 대한 우려는 나는 자꾸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동차의 속도만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인간과 인간의 근접 속도 역시 적정 속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할 거다.

특히 나이 들어 만나는 '인연'의 사이에는...

 

인생을 건 진짜 사랑은, 그 자체로 훈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헤어지기 마련이니까.(312)

 

사랑은 비명보다도, 운명보다도 빨리 달린다.

 

그래서 말이다.

두 번째 사랑이라면, 사랑이 비명을 지르며 '죽이게 좋은' 상황이라도,

그 사랑이 운명보다 빨리 달려서 다가오는 만큼 빨리 달려서 사라질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야하지 않을까?

'진짜 사랑', '인생을 걸 정도로, 훈장 같은 사랑'인지 아닌지...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닐까?

진짜 사랑을 만난다면, '속도'가 문제가 아닌 것 아닐까?

정말 훈장 같은 사랑이라면, '달리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결혼에 '골 인'하는 일이 소중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소중한 거 아닐까?

 

'한 번만 척 보면 아는' 직관을 가졌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사랑이 달리는 속도에 압도되어 버렸던 일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다시 사랑이 달리는 데 압도되어버린다면, 해피엔딩으로 열렬한 사랑의 결말을 짓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소설의 가치는 '작가의 말'에서 드러난 여기 있다.

 

혜나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내려 놓아야 했다.

그런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몸에 지닐 수가 없었다.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대단치도 않았다.

그것들을 내려놓고서도 나는 끄떡없이 달렸다.

반면 내가 대단치 않게 여겼던 것들이 실제로는 중요했다.

예를 들자면, 나 자신.

혜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가족의 일상을 발라낸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혜나를 따라서 달리다가, 서른아홉의 나를 다시 만났다.

서른아홉, 내 아이를 보듯이 나 자신을 보는 법을 배웠다.

매일매일 나 자신을 만나는 게 고역스럽지 않았던 건 처음이었다.

혜나와 작별한 뒤에도,

나를 보는 이 시선만은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작가의 말' 중)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나 자신을 보는 법'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신사의 품격'을 보면서,

네 남자가 뿜어내는 각각 다른 아우라에 감동과 감탄과 탄식과 열광을 하다가 돌아본 곳,

거기서 졸고 있는 남편을 마주하면 '정말 치졸한 자신'이 되어버린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남편'과 '아이', '부의 척도'를 통해 증명하려 하기 쉽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사의 품격' 말고, 그 신사를 바라보는 '아줌마의 품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한국의 위대한 아줌마들의 사랑의 새 지평을 열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심윤경이 마흔아홉, 쉰아홉이 되어 갈수록,

한국의 여성의 '품격'은 높아가고 깊어갈 듯 싶다.

 

'아줌마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시 한 편 붙인다.

내가 신사의 품격에 마주하여 '숙녀의 품격'을 이야기하지 않고, '아줌마의 품격'을 들먹이는 건,

사랑에 들뜬 여성의 마음에 대한 가치도 인정해야 하지만,

여성의 힘이 담뿍 담긴 '흙'과 '물'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건 '아줌마의 힘'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김 현 승

 

온 세계는

황금으로 굳고 무쇠로 녹슨 땅,

봄비가 내려도 스며들지 않고

새소리도 날아 왔다

씨앗을 뿌릴 곳 없어

날아가 버린다.

 

온 세계는

엉겅퀴로 마른 땅,

땀을 뿌려도 받지 않고

꽃봉오리도

머리를 들다

머리를 들다

타는 혀끝으로 잠기고 만다!

 

우리의 흙 한 줌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가슴에서 파낼까?

 

우리의 이슬 한 방울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눈빛

누구의 혀끝에서 구할까?

 

우리들의 꽃 한 송이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얼굴

누구의 입가에서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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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3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8-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벌써 읽으셨다니... 리뷰까지 벌써 쓰셨다니... 빠르기도 하셔라.
글샘 님의 속도에 제가 기절하겠어요. 저는 이 책을 이제 주문하려고 하고 있는데(ㅁ님의 페이퍼를 읽고서)...
한편으론 글샘 님 같이 빠른? 분을 알고 지내서 좋습니다.

"나를 보는 이 시선만은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고..."
"아줌마의 품격..." .....................저를 돌아보게 해요.

오늘 저, 너무 더워서 더위 잊으려고 책을 몇 시간이나 봤어요. 어떤 책을 봤는지는 비밀...
당연히 한 박자 늦게, 남들 다 읽은 책을 읽고 있어서요. 이걸 이미 검증된 책이라고나 할까...요...ㅋ

글샘 2012-08-03 18:22   좋아요 0 | URL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니깐요~ ^^
사람의 '품격'을 생각해야 하는데, 맨날 폭력적인 국가의 품격만 따지는 세상에 살고 있죠.

어떤 책을 읽으시면서 더위를 잊으셨을까요? ^^
한 박자 늦는 독서는 없지 않나요? 자기에게 도착한 책을 읽으면 되는 거죠. ㅋ~
 
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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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범죄 추리물로 시작해서, 한참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다가,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독자를 이끄는 힘이 있다.

 

난 장르 소설이래도,

지나치게 피가 튀기는 종류 싫어하고,

일본의 '링' 종류처럼 무섭고 두고두고 엘리베이터에서 생각나는 '착신아리' 같은 거 싫어한다. ^^

겁은 없는 편인데, 그런 종류는 음습하고 싫다.

 

이 소설은 제목이 좀 생뚱맞다.

원 제목인 Shutter Island는 '닫힌 섬, 밀폐된 섬, 폐쇄된 섬' 같은 느낌일 터인데~

'살인자들의 섬'은 드라마틱한 반전까지를 포괄하기 어려운 제목일 듯 싶다.

뭐~ 독자들의 호기심을 소설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제목에 낚였더라도,

전개가 조금 다르지만~ 암튼 소설은 훌륭하니깐... 패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추리물이 암호를 풀어가는 건데, 이 소설이 암호를 푸는 식으로 전개된다.

결말에서 이야기하는 <자아를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성찰은 인간에 대해 돌이켜 보게 한다.

 

결국 인간의 생각이란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뇌'가 조망하는 조합된 '대상'을 보는 것이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나 '정직', '평가'는 모두 왜곡되어 보이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네 주장이 맞다는 증거를 하나만 내놔봐~"

 

어린 아이가 "Why?"하는 질문으로 일관하던 재밌는 광고를 본 기억이 난다.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왜?"하는 질문 앞에서 대답은 궁색해진다.

그건 어떤 과학이나 학문적 성과도 한방에 무너지게 하는 겸손을 가르치는 질문이다. 왜?

 

결국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없다.

나는 계속 변화하고 있으나, 내가, 또는 주변 사람들이 나의 지속성을 믿어주는 것이 유일한 증명일 뿐.

누구도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실이고 진실이라 증명해도, 세상에 내보일 순 없다.

독재자를 위인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에게 사실을 들어 보여줘도 변화되지 않는 것처럼...

 

일단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미쳤다고 생각해 버리면,

다른 경우에는 그 사람이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었을 행동조차

미친 사람의 행동으로 간주해요.

그 사람이 자기는 미치지 않았다고 멀쩡한 정신으로 주장하는 건 '부인'이 되죠.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마땅히 가질 만한 두려움은 '편집증'으로 간주돼요.

생존 본능에는 '방어 기제'라는 꼬리표가 붙고요.

무슨 짓을 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죠.(363)

 

이렇게 사람은 사실보다, 조망적 관점에 따라 진실을 만들어내는 존재에 가깝다.

 

이 소설에서 만난 쇼킹한 구절.

 

"한국 전쟁 참전했다가 돌아온 불쌍한 친구들 본 적 있어요?

그 녀석들은 자기가 왜 거기 갔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 해요.

하지만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막아서 수백만의 목숨을 구했죠."(204)

 

그래. 동족 상잔의 살육이었던,

그리고 유엔군의 무차별한 학살에 불과했던 한국 전쟁이 그들에게는 이렇게 '불쌍한 친구'를 양산할 뿐인 이유없는 전쟁이었구나... 하고 깊은 한숨을 쉬게 한다.

 

빗줄기가 가늘어져 있었다. 마치 비가 숨을 고르면서 지원 병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122)

아파트가 하도 커서 중앙 통로의 길이가 미식 축구장만큼 길게 보였다. 그런데 그 아파트를 둘로 접으면 이 방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106)

바깥의 공기는 마치 누군가가 잔뜩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이 임신을 해서 배가 불러오는 것처럼 공기 중에 숨어있는 폭풍이 점점 부풀어 오르면서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100)

 

이런 신선한 구절들을 만나면서,

요런 구절들은 영어로 어떻게 생겼을까? 이런 게 궁금해졌다.

 

"내 얼굴 위에서 그 손을 다시 느낄 수만 있다면, 난 이 세상 전부를 팔라고 해도 팔 겁니다."(263)

 

뜨거운 사랑도, 열정도, 인간의 대뇌가 지령하는 전기 신호와 자극의 연속이다.

대뇌가 전기 신호와 자극을 보낼 수 있을 때까지, 뜨겁게 살아 주기를 바라는 소설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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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3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3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3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을 바꾼 동물 - 동물은 기록하지 못하는 동물들의 세계사 세계사 가로지르기 5
임정은 지음 / 다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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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복날~

복날이면 어김없이 '보신탕'집과 '삼계탕'집이 돈을 벌게 되어있다.

워낙 더원 여름날이라 보양식이 제격인데,

이런 날이면 또 식용 반대 집회도 열리곤 한다.

 

 

광우병 사태,

식용 개뿐만 아니라, 잔인하게 길러지는 닭, 소, 돼지들과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으로 인한 살처분...

각종 약물이나 화장품등을 위한 실험으로 인한 상해와 사망...

 

인간 중심의 사고에 의하여 동물들의 생존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어떻게 보면, 육식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먹이 사슬에서 본다면 육식을 반대할 일이 아니라,

<공장식 사육>, <살처분 금지>, <동물 실험 금지>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할 노릇이지,

그저 강아지가 불쌍해~ 차원의 집회는 초점 일탈의 해프닝으로 보일 뿐이다.

 

이효리란 가수가 표절사태로 방송을 중단했다가,

언제부턴가 갑자기 유기견의 대모처럼 떠올랐다.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를 보는 시선은 따갑다.

그의 복귀가 문제가 아니라, 과연 그가 동물사랑의 최전선에서 의식적으로 활동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거두지 못하는 것인데, 그가 가죽치마를 입고 나왔다가 혼쭐이 난 것을 보면 의식이 방송을 따라가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런 동물에 관련된 문제 제기는 성인보다는

어린 아이나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이다.

 

동물원, 가축의 문제, 사육과 질병...

이런 역사들을 통틀어 배울 수 있는 책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다양한 관심거리를 만날 수 있어 특히 동물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단비같은 소식이 되겠다.

 

이 책의 특장점은 마지막에 붙은 '참고 문헌 목록'에 있다.

무지 두껍고 산만한 자료들을 차근차근 쌓아 두었다.

관심을 가지는 청소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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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곳 하나.

 

207쪽에선 동삼동 패총 전시관으로 바로 기록하고 있는데, 28쪽에선 <동산동>으로 잘못 적고 있다.

부산에는 <동상동 고분군>이 가야와 신라의 고분이 다수 출토된 곳으로, 지금은 <복천동 박물관>이 관리하고 있고,

영도의 패총박물관이 있는 곳은 <동삼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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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7-3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이사슬이란 말이 있으니 편히 먹어도 되겠죠? 이 여름에 삼계탕을 안 먹을 수 없잖아요...ㅋ
하지만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동물 중심의 사고로의 전환도 필요하단 생각을 해요.
특히 고통을 주는 문제에서 되도록이면 고통을 덜 받게 하는 쪽으로 마음 쓰는 것, 필요한 것 같아요.
공장식 사육은 정말 끔찍합니다. 그 결과가 고스란히 우리 인간들에게 피해로 오잖아요.

글샘 2012-07-31 21:28   좋아요 0 | URL
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은요. 병아리를 40일 기른 거예요. ㅠㅜ
닭고기가 젓가락으로 휘저으면 살코기가 다 발라지잖아요.
닭 기르는 축사에 들어가보면... 닭고기 먹고 싶은 생각 없어진다는...
우리 4촌이 닭을 길러서 많이 봤거든요.
저도 고기는 사죽을 못쓰지만, 생각해보면, 못할 짓이에요.

순오기 2012-08-01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은 흑산의 형님에게 개를 잡아 몸보신 하라고 적극 권하며
개를 잡아 요리하는 방법까지 편지에 자세히 쓰고 볶은 들깨까지 보내 주었지요.^^
저는 광주와서 살면서
시누이 시댁에서 잡아 보낸 것을 우리집에 가져와 탕으로 끓여줘서 처음 먹었는데~~~~맛이 좋았어요.
여튼 시댁 형제들 모일 때 두어번 먹어봤지만 나쁘지 않더라고요.ㅋㅋ

글샘 2012-08-01 07:50   좋아요 0 | URL
육식 자체가 문제가 아닌데요... 요즘에 육식을 위해서 과도하게 짐승을 '비짐승적으로' 그리는 바람에 육식이란 거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보이죠.
개고기도 일종의 단백질 보충원이었는데, 요즘엔 위생 관리나 유기견, 애완견의 도축까지 일어난다니... 찜찜할 따름이구요. ^^
 
불멸 밀란 쿤데라 전집 7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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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에 기대어 무더위를 통과하고 있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 L'immortalite'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상징'에 대한 이야기이고, '소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사랑, 상징, 소설'은 모두 '인생'에 대한 변주곡일 따름이다.

 

소설은 결국 인간의 삶의 한 측면을 이미지화하게 마련인데,

그 단면을 단적으로 말하면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데 작가의 생각은 미친다.

 

"지금 자네가 쓰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

 

"소설 속의 소설이요, 내가 써본 것 중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가 될 거야. 자네 역시 그 이야기를 읽고 슬퍼할 걸세."

 

"그 소설의 제목은 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니, 그 제목은 이미 써먹지 않았는가."

 

"그래. 써먹었지! 하지만 그때 난 제목을 잘못 달았어. 그 제목은 지금 쓰는 소설에 붙여야 했어."

 

 

 

이 소설에선 '이마골로그'란 단어가 등장한다.

번역 과정에서 그 뜻을 각주로 붙여주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지만,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대~충 의미를 때려잡게 된다.

이미지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고착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이 말은,

결국 '삶' 역시 이마골로그들에게 농락당하는 것 아니냐? 뭐, 이런 비꼼의 감정이 담겨있다.

 

'내가 써본 것 중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라고 스스로 골격을 드러내는 소설가.

이 소설은 그래서 소설에 대한 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그 사랑이 슬픈 것은,

사랑은 늘 '불멸'을 추구하지만, 삶의 혼란 와중에 그 사랑의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다뤄지기도 하다는 걸,

인간의 '사랑'이란 말과 '사랑'이란 감정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지를 반문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흘러간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한줄한줄 촘촘히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근데...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평하는 대목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말러의 교향곡에서 아무리 주의깊은 방청객이라 해도, 아마 그 교향곡에서 포착하는 건 거기 담긴 내용의 100분의 1 정도일 겁니다. 말러가 보기에 가장 중요하지 않은 100분의 1 말입니다."

너무나 온당한 이 생각은 그를 기쁘게 했으나, 나는 점점 더 슬퍼졌다.

만약 독자가 내 소설을 한 줄이라도 건너뛴다면 소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그렇지만 행을 건너뛰지 않는 독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행과 페이지를 잘 건너뛰는 사람 아닌가?(533)

 

자신 역시 자신의 작품의 한 줄조차 건너뛰지 않는 독자를 만나고 싶어한다.

허나 그것은 불가능함을 스스로 깨닫고 있다.

독자 속에서 자신의 작품이 불멸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70년대, 낭만의 시대에 유행했던 시 낭송 중에 박인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길을 걷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뭘 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턴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밤 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단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얼굴 / 박인환 詩)

 

인간은 왜 사랑에 매혹되는가?

그건 다 유전자의 지령이란 과학자의 심드렁한 반응에 따르든,

인간의 열정이 서로를 탐욕스럽게 추구하기 때문이란 낭만주의 애정학에 근거하든,

인간의 사랑이 지향하는 것은 '불멸'이다.

 

인간과 인간의 '감정-사랑'이 육체적으로 파르르 불타오르고 나면,

오르가슴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사랑의 허무함에 눈물흘리면서도,

'나를 잊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불멸에의 추구'가 인간의 유전자에 담긴 허영의 한 단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걸 찾아나서는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에...

사랑에 그토록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랑에는 우아하고 성스러운 것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추구하는 '불멸의 성스러움'을 파괴하는 것이 인간성의 회복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헤밍웨이의 작품이란 위장된 헤밍웨이의 삶일 뿐이요.

그 삶이 우리 중 누구의 삶 못잖게 하찮다는 걸 증명했어야 합니다.

말러의 교향곡을 산산조각 내, 화장지를 청할 때 쓰는 음악 재료로나 사용했어야 합니다.

불멸자들의 횡포를 영원히 끝장냈어야 합니다.

모든 '파우스트'의

모든 '9번 교향곡'의 그 도도한 권력을 처부수었어야 했다는 거요. (535)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가장 핵심 고리로 여기고 소설의 초점을 맞춰나갈 수밖에 없는 것을 고백하는 바,

그 이유을 이렇게 쓴다.

 

사랑에 대한 모든 정의에는 언제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랑은 뭔가 본질적인 것이요, 삶을 운명으로 바꿔 놓는다는 점이다.(478)

 

본질적인 사랑이 있는 반면, 에피소드적인 '사랑 저 너머'에 존재하는 매력적인 'love affair' 들도 있지만...

사랑은 역시 삶에서 가벼운 소재가 아님을 확인한다.

삶 역시 별것 아니지만, '존재'가 사랑스러운 것을 확인하는 일은 소중함을 확인하듯이...

 

산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산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자아를 나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샘으로,

온 우주가 따뜻한 비처럼 내려와 들어가는 돌 수반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412)

 

이 복잡하고 어려운 소설에서 내가 알아먹겠는 말은 이런 것이다.

삶은, 사랑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나도, 소설가도 모른다는 거...

그치만,

당신의 존재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리고 나의 존재가 당신의 삶을 고통스럽지 않게 한다면,

그것은 내가 샘터가 되어,

내게서 솟아나는 샘물은 온 우주가 품고 있는 에너지를 가득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 삶의 행복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것.

 

결국 인생의 '불멸'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다만, '느끼는' 것에서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어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치통을 과소평가하는 지식인의 말이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야말로 모든 생물을 포괄하는,

훨씬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이다.

나의 자아는 사유에 의해서는 당신의 자아와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은 많으나 생각은 적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의 발을 밟는다면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나 혼자다.

자아의 토대는 사유가 아니라 고통, 즉 감정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감정인 것이다.

고통을 당할 때는 상호 교환이 불가능한 자신의 유일한 자아를 의심할 수 없다.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세상은 흔적없이 사라지며,

우리들 각자는 자기 자신과 홀로 남는다.

고통이야말로 자기 중심주의의 위대한 학교인 것. (325)

 

작가는 '로라'와 '베티나'를 통하여 자기중심적 사랑의 일단을 보여준다.

 

로라, "사랑은 그냥 사랑일 뿐이야. 사랑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 (293)

베티나가 "진정한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관계-사랑이 아니라 감정-사랑이다. 그런 사랑은 부정을 모른다.

대상이 바뀔지라도 사랑은 여전히 하늘의 손길이 피운 똑같은 불꽃으로 남는다.(310)

 

이들의 욕망, 몸짓에 대하여 작가는 부정적 이미지를 담은 이마골로그가 되어 이렇게 평한다.

 

베티나와 로라의 그 몸짓을 불멸에 대한 욕망의 몸짓이라 명명하다.

큰 불멸을 갈망하는 베티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현재와 더불어, 현재의 온갖 근심과 더불어 사라지길 거부한다.

나는 나 자신을 초극하여 역사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역사는 영원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불멸을 희망할 뿐이지만, 로라 역시 같은 것을 원한다.

자기 자신을 초극하고 자신이 겪는 불행한 순간을 초극하여,

자신을 알았던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머무르기 위해 뭔가를 한다는 점에서...(267)

 

그러나 작가가 애정을 담아 애써 긍정적으로 그리려고 하는 아녜스 역시 사랑에 대하여 고뇌하지만,

결과는 희망적이지 않다.

아녜스와 대화를 나누는 외계의 이방인과의 대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얼굴이 있나요?"

"아뇨, 얼굴은 여기, 당신들 혹성에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구분하죠?"

"그곳에서는 말하자면, 각자가 자기 자신의 작품입니다.

각자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만드는 거죠."(71)

 

사랑하는 남편 폴과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나겠느냐는 진지한 질문에, 그는 더이상 만나지 않는 편을 택한다.

 

그렇게 그녀는 사랑의 환상 앞에서 소리 나게 문을 닫아 버렸다.(73)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왜 이 소설에 붙여주고 싶어했는지...

가슴을 저미는 공감이 생긴다.

인간이 서로 같아지려고 성형수술을 하는 현실을 돌아본다면,

'얼굴'의 무의미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자아'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비추어 본다면,

얼마나 참을 수 없이 존재는 가벼운 것인지가... 가슴을 후려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진정한 사랑'과 '사랑의 환상'의 거리가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은 <존재를 가볍게> 한다.

'존재'는 현재 여기에서 어떠한 '느낌'을 가지는가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무게를 갖는다.

now-here 재밌게, 신나게 인생을 살지 않는다면,

no-where 어디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는 것.

불멸을 추구하는 일은 하찮고 무의미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

 

중요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는 것.

얼굴보다는 잊혀진 사람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고 싶지 않은 '몸짓'이 필요하다는 것.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아녜스를 통해 보여주려하는 '관계-중심'의 사랑과 '빼기'의 사랑,

이런 것이 '여자'로 대변되는 사랑의 중심 축일 수 있다.

 

세 가지 불멸에 대한 추구 모두 사소하다.

첫 번째는 작은 불멸.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

두 번째는 큰 불멸.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것

세 번째는 우스꽝스런 불멸.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는 한 우화로 탈바꿈하는 것

 

 

소설가 또는 '나'로 대변되는 서술자 역시 남자이며,

여자를 ABC로 나열시키는 루벤스 역시 남자다.

남자들의 섹스에 대한 순간의 탐닉에 대하여 서술자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루이 아라공의 시구를 집어넣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고...

그래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불멸의 추구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이야기에 대한 침묵'을 위반한 하나의 부조리에 불과할는지 모를 일...

왜냐,

존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임 역설한 이가 작가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미를 탐구하는 밀란 쿤데라의 일련의 소설들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물들을 읽는 일보다는 천천히 나아가지만,

재미에 있어서는 결코 덜하지 않다.

느리게 통과하는 무더위 속에서,

느리게 지나가는 시간을 누리면서,

느리게 읽기엔 그의 소설들이 제격이다.

오죽하면 그의 소설엔 '느림'도 다 있을까?

다음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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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30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30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7-3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이미 나와 있군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나서
'불멸'을 구입하려고 했더니 그땐 절판이더라고요. 그 후 새로 나왔나 봐요.
제가 모르고 있었네요.
꼭 읽어봐야징...ㅋ

글샘 2012-07-31 21:24   좋아요 0 | URL
네 작년에 민음사에서 밀란 쿤데라 전집을 찍기 시작한 모양이더군요.
재밌어요. 읽어 보세요~
 

2009년 쌍용자동차 2,646명의 해고 발표와 뒤이은 77일간의 옥쇄파업. 파업은 인간사냥과도 같은 경찰의 진압으로 끝나고, 어제까지 함께 울고 웃으며 일했던 동료는 오늘, 의자에서 쫓겨난 자와 의자를 잡은 자 두 편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쫓겨난 자도 남은 자도 살았으되 죽은 자일 뿐 웃는 자는 결국 1%의 그들이었다.

77일간의 뜨거운 파업의 순간부터 22번째 죽음까지 작가적 양심으로 써내려간 공지영의 쌍용자동차 이야기.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작가에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듯이, 오늘 우리가 쌍용자동차 사태를 묵과한다면 또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8월 6일 출간...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앉았던 의자에,

내가 앉아 본다.

 

등허리가 서늘해 지고, 눈매가 촉촉해진다.

두렵다.

햇빛을 보러 나가기가 두렵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고, 내 새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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