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치약 거울크림 문학과지성 시인선 401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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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김수영영영이고

김춘수는 김춘수수수이고

김종삼은 김종삼삼삼이고

왼발 다음엔 오른발

0 다음에 1, 2 다음엔 3이고

우 다음엔 울이라고


우는 빗줄기를 빗질하고, 울은 빗줄기를 써레질하고

우는 하얀색 운동화를 왼쪽에 신고

울은 하얀색 운동화를 오른쪽에 신고

나는 발잔등에 줄 끊어진 흰 새를 두 마리 덮고


그렇게 오도 가도 못했네(우가 울에게, 부분)

 

이 시집의 처음에 있으면서, 가장 인상적이던 시다.

이 시집을 몇 번 꺼내 집적대 봤는데도, 역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오도 가도 못했을 그이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어서 그랬나보다.

 

이 시집은 그렇게 내게 짠한 맘을 던졌다.

 

주체할 수 없이 몸이 커진다는 거...

다 죽어버릴 만큼 덩치만 크다는 거

이 햇별 작열하는 대로상엔 나밖에 없다는 거

나를 만나면 도망가는 것들밖에 없다는 거

걸어가면서 잠자는 거대한 회색곰처럼......

덩그러니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거

거리에서 쫓겨나고 쫓겨나면서

점점 커진다는 거

내가 세상의 비명으로 꽉 차 있다는 거

그것밖엔 아무것도 없다는 거(어미곰이 불개미 떼 드시는 방법, 부분)

 

뭔가 말하고픈 게 가득한 그에게,

또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그에게,

세상은 자꾸만 낯설어 지는 것 같다.

마치 어미곰이 불개미 떼 앞에서 겪는 당황스러움이 그렇다고나 할는지...

 

덩그러나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거...

 

그것의 고통을 현대인이라면 어느 정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을까?

 

슬픔을 참으면 몸에서 소금이 난다

짜디짠 당신의 표정

일평생 바다의 격렬한 타격에 강타당한 외로운 섬

같은 짐승의 눈빛


소금, 내 고꾸라진 그림자를 가루 내어 가로등 아래 뿌렸다

소금, 내 몸속에서 유전하는 바다의 건축


소금, 우리는 부둥켜안고 서로의

몸속에서 바다를 채집하려 했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염전이 문을 열었다

나는 아침부터 바다의 건축이 올라오는 소리 듣는다


나는 몸속에 입었다

소금 원피스 한 벌(내 안의 소금 원피스, 부분)

 

김명인은 '소금 바다로 가다'에서 삶의 허무를 극복하려 애쓰지만,

시인은 아예 '소금'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결코,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소금 원피스'를 입을지언정, 자신이 추구하고싶은 여성성은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애절하게 전달된다.

 

찰칵

 

우리 몸은 모두 빛의 복도를 여는 문이라고

죽은 사람들이 읽는 책에 씌어 있다는데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당신이 깜빡 사라지기 전 켜놓은 열쇠 구멍 하나

그믐에 구멍을 내어 밤보다 더한 어둠 켜놓은 깜깜한 나체 하나

 

백합 향 가득한 광야가 그 구멍 속에서 멀어지네(열쇠, 부분)

 

열쇠를 바라는 마음,

이해가 간다고 하면 오해일까?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한 세상의 열쇠지만,

또한 나를 열어줄 당신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닐는지,

또는 나를 열어준 당신에게 기대려는 존재가 아닐는지...

 

  그대에게만 가서 꽂히는/   마음 /  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

 

  그대가 아니면/   내 마음 /  나의 핵심을 열 수 없는(김선우, 꽃 이라는 유심론, 부분)

 

그의 대작, '맨홀 인류'에서 제법 멋진 구절을 만난다.

 

   내 구멍 속을 조리할 때 쓰는 동사는 '끓이다, 굽

다, 찌다, 졸이다, 달이다, 태우다'이다. 이 동사들

앞에 쓰이는 목적어는 배춧속, 순대 속, 마음속 같은

'속'이다. 당신이 내 속을 조리한다. 양파 속 같은 내

텅 빈 곳을 잘도 조리한다. 나는 내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멈출 줄 몰라 늘 보이지도 않는 심지를 태우고

야만다. 내 속을 끓이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 탈

이 난다. 당신은 '+ 열'과 '+ 물'한 동사로 조리하는

데, 그 동사에 '+ 열', '+ 시간' 할수록내 구멍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끓다, 굽다, 찌다, 졸이다, 달이

다, 타다' 순으로 내 마음이 조리된다. 최후엔 항상

몸 전체가 탄다. 당신이 내 마음을 태우면 내 몸도 탄

다. 마음과 몸의 가림판이 녹아내린다. 녹아내린 것

이 다시 피어오른다. 고체가 기체가 된다. 참고로 말

하자면, 꽃은 기체다. 붉은 수증기 한 송이다. 마음은

조리법인 동시에 조리된 것의 상태다. 내 마음을 태

운 연기가 당신의 구멍 속을 밀고 들어가면 당신은

저리 가, 고약한 냄새! 젓가락을 던져버린다. 그렇다

고 조리되지 않은 생선회처럼 저며진 마음을 좋아하

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맨홀 인류, 부분)

 

시는 '부엌'과 '안방' 사이의 사랑방이라고 한다.

삶과 문학 사이의 어디쯤, 그 언저리에서

시인은 오늘도 우가 울한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기도 하고,

울이 우한 장면을 말끄러미 지켜보기도 한다.

 

부엌에선 속이 끓고, 애가 닳고, 심장이 녹을 만큼 속이 타는데,

안방에선 태연하고 천연덕스럽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인류가 연속극을 보고 있다.

 

시는 그 사이, 사랑방에서,

애가 닳고 속이 타는 부엌의 사정을,

안방에서 들어주는 시간이 오기나 하려나~ 하면서,

오늘도 쉬 마려운 아이마냥 어쩔 줄 모르면서 우리 주변을 서성인다.

 

슬픔 치약이라도 입 한 가득 물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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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0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0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9-13 08:15   좋아요 0 | URL
인터넷으로 국어사전 찾아보면 이런 특이한 경우, 활용형도 다 나온답니다. ^^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 속도에서 깊이로 이끄는 슬로 리딩의 힘
이토 우지다카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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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던 '교육'부가,

'사람을 팔아먹을 자원'으로 파악해서 '교육인적자원'부 였던 적이 있다.

지금 정부에서는 아예 그 부서를 없애고, 정치의 시녀로 만들려다가,

교육-과학-기술부라는 웃기는 짬뽕으로 기형적 부서로 된 모양이다.

 

교육은 당장 결과를 내는 일이 아니어서,

어떤 좋은 의도라도 '부정적 반응'밖에 도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희한한 의도로 접근한 경우에도 '긍정적 반응'의 추억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 국어 교과서는 국가에서 정한(국정)의 틀을 벗어나, 다종다양한 사고를 담을 수 있게 되어있다.

획일성의 부정적 요인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국가가 만들지 않았다 뿐이지, 그것을 '검정'하는 절차를 통해 탈락시키고 하므로,

오히려 전보다 나아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70년대 교과서로 배운 우리 세대는, 충무공 이순신과 무인들의 칭송, 민족 교육이란 미명하에 온갖 충성심을 다 담은 시조들로 도배된 국어책을 배워왔다.

그렇지만, 전국이 유일한 '국어'란 바이블로 공부한 덕에,

지금도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하는 민태원의 청춘 예찬이나,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또는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못 들어 하노라' 같은 시조를 읊조릴 수도 있다.

 

특히 수능 세대는 교재보다는 새로운 텍스트를 만나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보니,

수업 시간에 한 텍스트를 골몰하여 다루는 것보다는, 다양한 텍스트를 빨리 읽고 소화하는 훈련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수업을 듣지 않고도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고,

과연 수업은 왜 하지? 이런 의문으로 교실은 잠자는 곳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일본의 한 옛날 선생님이 '슬로 리딩'으로,

변변치 않은 전후 일본 상황과, 국수주의적 교재를 사용금지당한 현실에서 출발하였지만,

대단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는 보고는 읽어볼 만 하다.

물론, 그 학교가 사립이었던 특수한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수능 점수는, 원래 똑똑한 아이들이 훈련을 통해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부산의 경우, 해운대 신도시의 경우, 언어영역 1등급을 10%, 외국어 영역은 15% 정도 만드는 일은 쉽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는 중하위권 남학교의 경우 4%여야 정상인 1등급은 거의 2% 미만으로 떨어진다.

더 낙후된 지역에서는 거의 없다시피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명하게 천천히, 빨리 달리는 사람은 넘어진다.(로미오와 줄리엣 중)

 

초등학생은 '도련님', 중고생은 '죄와 벌', 대학생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인은 '논어' 정도가 좋습니다.

장르는 서로 다르지만 각각의 세계가 있고,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가치관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41)

 

한 권의 책을 집중해서 탐구하고,

세상과 연결된 지점을 찾는 일은 큰 공부다.

그리고, 세상과 연결되는 탯줄을 갖는 역할을 할 것 같다.

 

'주입보다 추출'

 

이것이 하시모토 선생님의 모토다. ㅋ~

나도 한때 아이들의 쓰기, 표현을 중시하던 수업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아직도 연락을 한다. 맞다. 주입만 해서는, 남지 않는다.

느리게... 그러나 자기 생각을 추출하도록 수업하는 일... 배울 점이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로지 속도와 점수 비교, 발전만을 일삼는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서있는 지점이 힘든 것도 이 부분이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아이들에게 속도내서 나가도록 채찍질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나는 울고만 싶다.

아이들은 이미 엎어져있다. 채찍질한다고 나아갈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 답이 돌아온다. 지금 그런 논의를 할 단계가 아니란다.

그럼, 나는 운다.

 

청년과 노인의 격절, 이는 오늘날 시작된 문제가 아니다.

격절은 상호 이해의 노력없이는 메워질 수 없다.

교사와 학생의 단절도 마찬가지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교사와의 교류가 저조한 것보다도

전혀 없었다는 것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많다.

한탄한다는 것은 원했는데도 실천하지 못했음에 대한 회한 때문인지도 모른다.(168)

 

'너희들이 열중하는 것 중 쓸데 없는 일은 없다'

 

아이들을 믿지 못하면서 나무라기만 하는 일은, 이해보다는 격절을 부추긴다.

하시모토 선생님이 '결과가 나와서 다행입니다' 하고 말했을 때,

그 학교에가 일본 최고의 명문 학교가 되어서 그렇다는 줄 알고, 나는 살짝 비위가 상했다.

그러나, 역시 하시모토 선생님이었다.

 

함께 은수저를 읽은 학생들이 환갑이 지나서도 모두 앞을 보고 걷고 있어요.

그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그것을 알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았습니다.

결과가 나와서 다행입니다.(191)

 

아,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1:1 만남이 시작되는 수업.

그리고, 환갑이 넘어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신 노스승이 계셔서...

나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신발끈을 죄며 갈 길을 가늠해 볼 힘을 얻는 거다.

 

교실의 한 순간도, 헛된 순간은 없다.

아이들이 자라는 데 도움을 주거나,

아이들이 망가지는 데 도움을 준다.

내가 선 곳은 그런 곳이다.

 

 

----------- 수정할 곳

 

83쪽.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유례'로 수정

 

175쪽. 닭도 회에서 떨어질 때가... '홰'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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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겹의 자정 문학동네 시인선 19
김경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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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인이 되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며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직 하지 못한 일
지금 시인이 되고 싶은 이유
열두 겹의 자정을 지나
이 말을 박고 싶다. (시인의 말)

 

근데, 김경후는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다 못하고,

다만, 자꾸 말을 잃어버린다.

그의 실어증을 증명하는 시들로 이 책은 가득하다.

침묵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가,

아무도 활동하지 않는 고요한 자정, 그것도 열두 겹 속으로 침잠한다.

 

네 곁에 있기 위해/ 난 네가 필요 없다/

네 곁에 있기 위해/ 너조차 난 필요 없다/

말라 죽은 백나왕나무 냄새가 나는/ 너의 등 뒤/ 그 뒤/ 네 곁에 있기 위해/ 나는 내가 없다(곁,부분)

 

그미의 존재는 누군가의 곁에서 스르르 풀어져 버린다.

그것이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그미의 존재 방식이다.

 

네가 머물렀던 상처엔 내가 없었지/ 서로 보지 못하는 흔적들/

바닥의 붕대 위로 절뚝거린 발자국/ 서로를 끝없이 기다리며 우리는 헤어진다/

다시는 밤이 오지 않는다/ 이젠 그만(붕대, 부분)

 

나는 끝없이 부정되고,

그 존재 증명에는 붕대처럼 사라지기 위하여 존재하는 그런 소재들이 둘려 있다.

흔적은 남지만 보지 못하고, 헤어지지만 끝없이 기다리는...

세상은 언제나 시인의 의지와는 거꾸로 가는 것처럼 진심을 감추며 돌아간다.

열두 겹의 자정 속으로 진심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검은 웃음을 웃는다

 

그는 좌절한다.

 

유리벽 너머/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시들(밤의 카페, 부분)

 

그리고 그가 직조한 텍스타일들은 언제나 타인의 냄새가 묻어있어 더 눈물겹다.

 

쉿,

상어 가죽 독기 같은 타인의 혀가

나를 훑고 간다.(타인의 타액으로 만든 나의 풍경, 부분)

 

그러면 책상 서랍에 펜을 탁, 소리나게 넣어버리고 닫아버릴 노릇이지,

왜 쓰냐구?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라, 조금씩 자라는... 제로에 가까운 것이라 믿고 싶어서...

 

그믐의/ 마지막/ 빛/ 테두리

버려진/ 뱀 허물을 뚫고/ 자라나는/ 제로(자라나는 제로, 부분)

 

그믐의 달빛은 보이지 않는 은은한 테두리에 불과할지 몰라도, 분명, 기울었던 달이 차오르는 건 확실하고,

제로에 가까워보이는 삶의 피로도 자라나는 제로, 라고 호명하면

빙긋이 웃음지을 수 있는 긍정의 힘을 얻어올 수 있을 것도 같으니깐...

 

(나는) 모래의 악보

(너는) 백지의 탯줄

(그리고 우리는) 입을 다문다

말들의 십팔방위로 짜인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를

단 한 번 내기 위해(모래의 악보, 부분)

 

모래는 허망한 것. 모래 성처럼...

모래에 그려진 악보는 파도가 한번 쓸려왔다 나가면 스러져 버리고,

생명의 원천이었으나, 버려지면 그뿐인 탯줄처럼, 입을 다물고 기다리다,

단 한 번 지르는 비명같은 소리... 그게 그의 시다.

 

생리피로 꽃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 여자에 대한 소설을 쓰는 여자가

내가 아는 그 여자일지 모른다(라고 나는 쓴다)(크리스마스, 부분)

 

시선 안의 시선...

시인인 내가 아는 여자는 소설가이고, 그는 화가에 대해 쓴다.

액자 속의 액자처럼,

삶이란 세상 속의 세상인 셈.

그걸 어떻게 그릴 것인지는...

속절없이 마음만 아쉽게 만드는 '남편의 핀'과 '아내의 시곗줄'처럼

잡히지 않는 선물인 크리스마스 같이, 마음을 허전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을 바늘구멍에 끼우다

손목을 잘린 자가 쥐고 있는 칼

폭발을 견디는 근력

찢어진 나비 날개가 바람을 타고 나비보다 빨리 날아간다

공기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쓰지 않는

공기의 시인

번지는 금 속에서

흙은 처음 흙인 줄 알고 불은 불은 불을 알게 되지만

금만은 금을 모른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 흙

가장 오래 묵은 묵음

토막나지 않는 단 하나의

둘(금, 전문)

 

흙 위에 그어진 금.

거기 금은 있으면서 없다.

금을 그어 둘로 나누게 하지만,

모래라는 묵음의 언어 속에서 그 둘은 토막나지 않는다.

여럿의 파도가 결국 바닷물에선 하나가 되듯...

 

대기는 공기로 가득하지만,

'공기'란 말에서 보이듯, 텅 빈 기운이란 곧 부재의 동의어이고,

존재의 증명보다는 존재 부정에 가까운 아이러니한 단어도 세상엔 많다.

 

텅 비어 있다고 말하기 힘든 공기의 시인.

공기에 대하여 쓰지 않는

시에 대해서 쓰지 않는

그러나, 공기에 대하여 쓰지 않아도 세상은 공기로 가득한 존재임은 당연하듯,

시에 대해서 쓰지 않고, 묵음으로 기록하고 침묵으로 가득 채워도, 시인의 삶은 시로 빛나는 것.

 

모래로만 이어진 그 길을// 나는 실크로드라 부른다

지금 나는 부서지는 시를 쓰고 있다//

질식의 리듬, /그게 다/ 그것뿐인/ 시,

모래의 시, (모래의 시, 부분)

 

다시 모래. 날마다 언덕이 바람에 빌려 달라지는 사막의 모래.

단단한 존재로서의 시가 아닌, 모래 언덕의 시를 상정한다.

숨막힐 듯, 숨가쁜 리듬,

부서질 듯 하지만,

그게 다~이며, 그것뿐~인... 시인에게 그것은 존재의 이유다.

 

-- 난 번진다 퍼진다

-- 오늘도 넌 네게 갇히고 난 내게 갇히는 비 내리는 밤(얼룩, 부분)

 

언어는 얼룩이 지는 것과 비슷한가?

얼룩이 서로 번지고 퍼지듯,

너를 표현하지 못하는 너의 언어는 네게 갇히고, 나 역시 그런... 우울한 비오는 밤.

 

-- 너 아니면 내가(아니, 반드시 네가)

-- (아니, 너는) 묵음을 짚으며 비명을 건너고 있다(비밀과 턱)

 

비밀은 번지려 한다.

터은 그 번짐을 막아 선다.

그렇지만, 비밀은 말하여 지지 않아도, 턱을 넘어 선다.

묵음을 짚으며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비밀'

 

그 비밀의 비의를 찾아 나서는 자정의 행보가 이 시집이다.

 

여기서떨어지면시작이다간다(끝)

 

시작은 스타트~의 개념일까? 시 쓰기의 개념일까?

시작했던 일이 다 마무리 된다는 의미일까?

시가 다 써졌다는 의미일까?

 

김경후의 시들은 명쾌하지 않다.

스르르 풀어지는 번짐의 웅얼거림으로,

침묵과 비밀의 중얼거림으로 이 시집은 가득하다.

열두 겹이나 캄캄한 시간 속에서 똘똘 붕대감듯 감아놓은 시들은,

캄캄할수록 도드라져 보이는 별빛처럼... 그렇게 은은한 빛을 낸다.

그 은은한 빛은 두눈 부릅뜨고 찾아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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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5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5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 다른 생각, 그러나 다투어야 할 생각
이일훈 지음 / 사문난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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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하는 사람들은,

자를 대지 않고 조금 삐뚤삐뚤한 선을 긋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

해칭선을 긋는 일도 재밌어 하고,

공간과 공간의 채워짐, 비워짐 사이로 사람을 밀어 넣는 생각을 하기를 즐긴다.

 

이 사람의 책은 환경 문제에 대한 접근 같은 것이 앞서 등장하면서,

사회의 전반적 문제와 삶의 공간에 대한 문제를 견줘 보기도 하고 시각을 바꿔 생각하기도 한다.

근데, 내 맘에 쏙든 짓은,

책의 앞에 트레이싱지를 한장 밀어 넣은 거다.

ㅋ~ 그건 마치 김연아가 자기 스케이팅 하는 사진을 한 장 끼워서 존재 증명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내 이야기들이 어디로 튀어 가든 간에, 나는 건축하는 사람이야~!

이런 존재 증명을 트레이싱지 한장으로 깔끔하게 끝낸다.

별것 아닌 데서 유쾌함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존재???

 

1. 숲의 둘레, 2. 풍경의 둘레, 3. 건축의 둘레로 진행하는데,

개인적으로 1장이 가장 맘에 든다.

2장과 3장은 여느 비평서에서도 읽을 수 있는 생각들, 다양한 열린 사고들이 펼쳐진다.

 

숲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자연스런 이유가 있다.

휘어진 나무도 벼랑 위의 바위도 다 자연스런 이유가 있다.

휘어지는 것과 부러지는 것도 다 자연스런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자연스러우니 결과도 자연스럽다.

더하고 뺄 것이 자연 스스로에는 없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이유이며 이유 자체가 존재다.

숲에 한 가지 없는 게 있으니 그것은 과대 포장이다.

과대포장은 눈속임인 동시에 자연스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런 이유가 없으니 모든 게 억지다.

내용보다 크게 보이려니 상자도 커지고,

내용보다 화려하게 보이려니 쓸데없는 돈이 더 들어가고,

내용보다 세련되게 보이려니 요상한 형태의 디자인이 된다.

디자인은 껍데기만 다루는 것이 아닌데도 과대한 욕망은 껍데기에 치중한다.

숲에는 그런 과대한 허식과 허위가 없다.(88)

 

사람도 숲과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숲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꾸미지 않고도 다 내보일 수 있는...

꾸미지 않고도 다 보고 그걸 자연스러워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친구가 돼도 깊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다.

 

공익과 사익이 정반대인 세상은 후진 사회다.

공익과 사익이란 같이 가야 하는 것인데, 세상도 정치도 개인도 다 잇속 앞에 흔들린다.

혼돈...... 그 사회적 풍경, 우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141)

 

자연스럽지 못한 세상의 근원은 '잇속'에 있다.

자본주의는 자연을 거스르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나쁜 제도다.

거스르지 못한다면, 문제를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책에서 꼭 안고 가야 할 문제 의식은 <밀도와 속도>다.

과연 그렇게 고밀도의 삶의 현장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렇게 고속도의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 문제제기도 산뜻하고 사려깊다.

 

밀도와 속도 앞에 무감각하게 반응하면서,

녹색 성장이라는 둥, 환경 개발과 보존이라는 둥

반성없는 정책의 이름들에게서 밀도와 속도는 부끄럽게 세상에 침투한다.

 

그의 용어에 대한 관찰은 '다름과 다툼', '바르게 살자와 빠르게 살자', 사람 중심과 존재 중심, 숲과 자연의 관계 등

다양한 관계 성찰에서 언어를 다루는데,

건축가인가 싶게 사고가 경계를 짓지 않고 넘나든다.

 

생각이 시원하고 통쾌하며 명징하다.

 

근하신년, 연하장에 새겨진 글자처럼 정월에서 섣달까지 뭐든지 '삼가'는 태도를 갖자.(242)

 

참 좋은 말이다.

뭐든지 좀 진중하게 '삼가'는 태도를 갖고 산다면,

가벼운 잇속에서 나오는 비리는 없어질 수도 있을 터인데 말이다.

 

이문재 시에서 비추이는

과도한 인간의 욕망이 그의 글들을 내리 훑는 죽비소리가 되어 울린다.

 

철썩, 철썩, 처얼썩~!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 이문재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네거리
맨몸으로 돌아가 있는 가로수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나뭇가지에
수만 개 꼬마 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불현듯 불꽃나무! 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 놓은 권력들
내륙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해군 장군의 동상도 잠들지 못하고
문닫은 세종문화회관도 두 눈 뜨고 있다

엽록소를 버린 겨울나무들
한밤중에 이상한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
뿌리로 내려가 있던 겨울나무들이
저녁마다 황급히 올라오고
겨울이 교란당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광화문 겨울나무 불꽃나무들
다가오는 봄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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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을 보는데,

"이 대게가요, 저 읍내에서부터 공수해온 거예요."

 

음... 산골짜기라서 '공수'해 왔구나...

흔히, 힘들게 가져온 경우 '공수'해왔다는 말을 쓴다.

 

공수 부대와 이 '공수'는 같다.

 

공수(空輸, 빌 공, 실어낼 수) : 비행기나 헬리콥터 등 공중으로 수송함

 

아무리 힘든 길을 배로, 자동차로, 기차로 이동했더라도, <공수>해 왔다고 쓰는 건 아님.

 

또 하나, 흔히 재주있는 사람을 칭찬할 때

 

"저 친구, 우리 부서의 재원이야, 완전 엘리트 사원이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재원(才媛, 재주 재, 미녀 원) : 재주가 뛰어난 여자

 

남자에게는 쓸 수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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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09-0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한자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흔히 쓰이니 힘들게 가져온 건 다 공순줄 알았습니다.
글샘님의 강좌는 주욱 계속됩니다. (내 멋대로~~)
정말 유익한 강좌지요^^

글샘 2012-09-03 01:35   좋아요 0 | URL
ㅋ 문제는 아무리 유익한 걸 말해도 듣는 이가 소중하게 여기느냐 아니냐 거든요. ㅎㅎ
저도 내 멋대로 할 겁니다. ^^
제가 맞춤법에 관심을 가진 건, 어려워서... 저도 잘 몰라서예요.
모르는 채로 계속 가긴 싫더라구요. ㅋ~

아무개 2012-09-03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글샘 2012-09-03 16:25   좋아요 0 | URL
음, 수강료 내세요~ ㅎㅎ

아무개 2012-09-04 10:23   좋아요 0 | URL
오호~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