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씨의 최후
스칼렛 토마스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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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리고 나는 이해한다.

 

이 문장은 이 두꺼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무언가 이해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 것이다.

처음은 그 앞엔 필연적으로 아무 것도 없고, 그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발생하는 성질의 것이다.

이와 반대로, 끝은 필연적으로든 혹은 일반적으로든 그 자신이 다른 것 다음에 오지만, 그것 다음에는 아무 것도 오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신이 다른 것 다음에 오며, 또한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오는 성질의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런 하나마나 한 소리를 왜 적어 둔 걸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함부로' 던져져 있는 거 같은 '현실'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부족하여,

도대체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중간'에 위치하여 혼란스러워하기는 하지만, 과연 그 '처음'과 '끝'에 대하여 생각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모든 철학, 문학, 종교는 그런 지점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거기다가 근대 과학이 거만하게 세상을 환원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오만을 부렸지만,

양자 이론처럼, 세상은 기연가미연가 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다.

무엇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것이 혼재해있는... 그것이 양자 이론이다.

 

키스~ 쪼옥~!♥

 

이 키스는 백만 번의 키스다.

이 키스는 모든 키스다.

우리의 입술이 서로의 입술을 수만 개의 태풍의 힘으로 압박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혀가 내 혀와 조우할 때, 그것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전기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느린 동작으로 발생하는 백만 볼트의 충격이다.

한 번에 하나의 전자가 방출되고, 각 전자는 태양의 크기이다.

...

내모든 것이 사라졌다.

난 완전히 벌거벗어서 마치 피부조차 사라진 것 같다.

애덤의 군살 없는 몸이 내 몸 위로 내려온다.

그가 내 안에 들어올 때 마치 내 안과 밖이 뒤집히고 온 세상이 나를 파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모든 것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581)

 

키스와 사랑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바라보는 부분이다.

모든 학문의 범위를 넘나들면서 이치를 탐구하는 이야기는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나처럼 호기심 강한 사람이라면, 홀라당 빠져들 이야기다.

 

트로포스피어~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장치.(생각으로 작동되는 세계)

매트릭스나 인셉션, 아바타 같은 영화와 같은 실험 방식의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관계'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다.

생각이 물질이라면 실재해야 하고, 물질이 생각이라면 실재하지 않게 된다.

이 두 가지 발상이 동시에 사실일 수 있을까?(543)

이것이 양자 역학의 사고 실험인 바,

인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다양한 관계망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성립하면 다른 하나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 인간 관계가 아닌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은 기표로 가득하다.

어느 대통령 후보는 <국민통합>을 말한다. 그런 걸 기표라고 한다.

어떤 후보는 <민생>을 말한다. 그것 역시 기표다.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 오묘한 연결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의 <자의성>이다.

 

<국민 통합>의 기표를 '진심'으로 보든, '꼼수'로 보든 이해하는 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게서 드러나 있는 기표들만으로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

아무리 매일 '사랑해' 하는 하트를 뿅뿅 날린다고 해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줄 수 없다.

그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는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려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소통의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만이 사랑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일 게다.

 

애초에 무엇이 그것을 진짜로 만드는 거죠?(352)

 

그것이 진짜인지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말 그것 자체로 진짜일 수는 없으므로...

진짜 사랑, 을 보여주려면, 심장을 열어 보여주면 된다고 믿지는 않듯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자신을 잃고,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은 지옥이에요. 타인은 지옥...(348)

 

사랑이란, 결국 모든 사랑은 다름을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사랑은, 당신과 다른 사람의 사랑, 나와 다른 사람의 사랑과 다른 것이어서 유니크한 것이다.

모든 것은 애초에 '자의적 판단'으로 해석되는 것들이니 말이다.

 

진실은 '언어' 너머에~(210)

 

말로써 가벼이 확정할 수 없는 것들로 세상은 가득하다.

해석학이란 것 역시,

이해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다양함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이었을지 모른다.

 

실재계와 상상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계~

이런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설명하려 만들어낸 설명 도구에 불과할 따름이다.

 

Y 씨의 최후~를 읽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는,

돌려 말하면,

모든 인간은 시작과 동시에 'the end'가 예고되어 있다.

Why? 

Y 씨는 묻는다. 왜 그걸 끝이라고만 보는 건데?

 

결국 Mr. Y의 끝, 은 편협된 한 시점에서 바라본 이야기일 뿐이다.

의문을 가진 존재, Why? 에게 끝이란,

끝났으면서, 끝나지 않은,

마치 빛이란 존재가 입자이면서 파동일 수 있는 양자 역학적 사고를 우리에게 강요하듯이,

인간 존재의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이해는,

그리고 '당신과 나'라는 존재들의 관계 양식에 대한 이해는,

특정한 한 가지 시점에서 바라봐서는 크나큰 오해~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려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가 the end of Y(Why?)~인 이유를 곱씹으며,

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불사르러 가야겠다.

 

주인공 에어리얼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몸짓에 빠져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인간은 참으로 부질없는 몸짓, 그것으로라도 '존재의 고통'을 '느낌'으로써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흐릿하게나마 '이해'하려는 웃기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에어리얼에게 넌 왜? 그러는데? 하고 묻고 싶다면,

자신에게 그 꼬부라진 낚싯바늘같은 물음표를 돌려볼 일이다.

한 번 입 안에 들어온 낚싯바늘에서 빠져나가려 몸부림칠수록,

미늘이 더 날카롭게 자의식에 상처를 줄지 모른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지... 그 끝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다면, 순응해야 하는 것이리라.

 

금강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보시라지만, 금강경 역시 이름이 금강경일 따름임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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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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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친한 선배가 나를 크레믈린이라고 불렀다.

그 선배는 유독 나를 잘 챙겨 주었는데,

친하다는 것 이상으로 나를 알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나를 감추는 크레믈린이 아니었는데... 다만, 어떻게 내보여야할지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또 내보이기 싫은 것들로 가득한 내 삶에 대하여 떠벌이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소개해 보시오~

이런 물음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내 이름, 내 학력, 내 나이, 내 사는 곳, 내 가족 관계, 내 직업, 내가 읽고 있는 책...

어떤 것도 '나'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그런데, 나만 크레믈린이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살던 시대엔, 누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억압의 시대에 짓눌려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가족, 가부장적 문화, 거기서 대화의 광장이 펼쳐지긴 힘들었을 게다.

친구 문화 역시 삐뚤어진 방향으로 나가기 쉬웠을 게고,

어른이 되어서도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분노의 게이지가 높아갈수록 2차, 3차, 차수만 높아갔을 게다.

그렇게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고... 낙오된 삶에 눈물지었을 게다.

 

이 책은 첫부분에서 '사주 명리학 기초'가 논의되고 있다.

그래서 사주 명리학의 기본 개념을 통하여...

자신의 속성에 가까운 것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자신의 속성을 알게 되면, 자기를 드러내기 쉬워진다.

가족의 가난도, 가족의 불화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협화음으로 일삼는 자신의 일상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정신 세계도... 모두 '내 탓'이 아니라, '사주'의 영향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주명리학'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뒤집어쓰고 있던 원죄를 사하여 준다.

무의식 속에서 '내 잘못, 내 탓'이라고 가슴을 치던 것들이, '네 잘못이 아니야~' 하는 한마디로 위안을 받게 된다.

그 다음엔, 누드 글쓰기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래. 나는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살아 왔어.

근데, 이제껏 그걸 부끄러워해서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제보니 그게 나였더라~

근데 중요한 건, 그런 '명'보다 그걸 어떻게 살아가는지 하는 '운'이란 걸 이제 아니깐,

난 앞으로 잘 살거야~

그런 걸 '용신 用神'이라고 한다.

결국 '운 運'은 '움직이다, move'의 뜻이니 그 주체는 '나'가 되겠다.

 

용신이란 팔자를 잘 순환시키기 위한 매개항에 해당한다.

만약 금과 수로 가득차서 목기가 결핍된 사주가 있다면, 목이 곧 용신이다.(20)

 

운때가 찾아올 때까지 입벌리고 가만히 기다리자는 말이 아니다.

미리부터 나는 미래에서 나를 찾아오고 있는 뜨거운 불덩이를 쥐기 위한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이를 용신이라 한다.

용신은 치우친 사주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추와 같은 것이다.(77)

 

내 사주에는 금과 토가 결핍이다.

그걸 채우기 위해서... 금의 기운, 토의 기운을 애써 가져야 한다.

몸을 쓰고, 재물과 재능을 베풀고, 마음을 비우는 게 용신의 기본이라고 했다.

몸이 움직이도록 노력하고, 재물이 없다면 재능이라도 열심히 쓰고, 욕심내지 말고,

그렇게 금과 토를 찾아야 하는 거...

 

이런 글쓰기가 이 책의 소명이다.

뒷부분에 오행의 각각에 배치된 팔자 중에 집중된 항목, 강화된 항목이 두드러진 이들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늑대는 아무리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도 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기를 쫓고 있는 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눈앞의 위험을 직시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해 내려 노력할 때 위험은 오히려 그의 미래를 힘껏 열어 젖히는 힘으로 찾아올지 모른다.(72)

 

개는 낯선 물체가 달려오면 무조건 도망가고 본다.

고양이(늑대)는 그걸 주시한다. 그러다 '로드 킬' 당한단다.

사주 공부 역시 그런 거란다.

세상을 직시하고,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의미를 도출하려 한다면, 개운 開運 의 때가 도래한단 것...

 

왜 나만?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이렇게 되묻기만 한다면 어떤 고통에서도 배울 수 있는 건 없다.

오히려 세상과 사람을 향한 증오심만 키우거나 극단적인 자기 비하에 빠진다.

사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매 순간 다가오는 고통과 갈등을 내 공부로 삼는다면, 그는 진정 너그러운 사람이다.(101)

 

오행은 상생과 상극의 꼬리물기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이익과 손해로 볼 수만은 없다.

 

생과 극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기운이다.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변화하는 동사인 것이다.

불규칙한 동사의 용법을 체득하기 위해선 많이 입으로 내뱉어 보아야 하듯이,

생각의 원리 또한 몸과 마음으로 직접 익혀야 한다.

정녕 극이 극에 달하면 생이 된다. 그렇다면 극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극 많은 내 사주를 하늘의 선물로 여길 수 있으리라.(104)

 

그렇지만, 사주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정답'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삶은 주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 선택하고, 때로 포기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

 

사주를 공부하다 보면 애매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부 내 얘기같고, 그럴듯하게 끼워 맞출 수도 있을 법하다.

사주 팔자고 이 바쁜 세상에 '한 큐'에 정답을 찾고 싶을지 모르나,

변수가 많고 애매모호한 것이야말로 사주명리학의 미덕이라 주장하고 싶다.

애매하기때문에 보다 찬찬히 자신의 삶을 뜯어봐야 하고,

그 과정을 거쳐야 복잡하게 얽힌 인과의 고리를 비로소 엮을 수 있기 때문이다.(108)

 

내 사주는 '물'이다. 그것도 큰 바닷물이 아니라 '골짜기 물' 계수다.

그래서 스케일이 작고 좁다. 좁쌀도 이런 좁쌀이 없다.

그렇지만, 그래서 섬세할 수 있다. 차근차근 하는 일을 답답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할 수 있다.

쉽게 열받지 않고 천천히 갈 수 있다.

아이디어나 창의성이 그럭저럭 사주에서 받쳐주고 있으며,

물처럼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물이 극하는 '불'이 내 사주엔 가득하다. 넘친다.

그런데다, 내 이름에도 불 화가 네 번이나 들어간다. 아주 죽이는 팔자다. ㅋ~

그래서 내 삶에서 '일복'은 차고도 넘친다.

내가 가는 학교는 어디나 무슨 '연구학교'를 해야 한다.

아주 배타적이었던 학교라도, 내가 가면 반드시 뭔가가 큰 덤터기로 몰려든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차근차근 더 읽어보고 누드 글쓰기를 해야할 노릇이지만,

뭐, 어떤 점괘로도 내 운명은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겠다.

 

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운세도 바뀌어 갈 것임을...

지금, 여기서 내가 잘 사는 데 따라 미래도 복된 것으로 돌아올 것임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과 '나의 운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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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2-10-3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글 읽고 바로 주문해서 오늘 책 받았습니다.
그런데 땡스투를 깜빡! +.=;;;


글샘 2012-10-31 17:17   좋아요 0 | URL
이런, 중요한 땡스투를~~~ 제 통장으로 100원 입금해 주세요~ ㅋ~

Mephistopheles 2012-10-3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크레믈린이라고 불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무려 부모님에게요.

글샘 2012-11-02 18:57   좋아요 0 | URL
한국 사회의 중년들은 어린 시절, 크레믈린 많았을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자수하기 전까진 표나지 않죠. ㅋ

깐따삐야 2012-11-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글샘님. 꼭 그런 선생님이 있죠. 어딜 가나 일복이 차고 넘치는. 글샘님이셨군요. 저는 그 반대인 경우랍니다. 팔자도 그렇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 능력이 모자라서.^^ 저는 주로 능력있는 선생님들이 인내심을 갖고 곁에서 도와줘야 하는 타입의 선생. 갑자기 글샘님께 죄송스러워지네요.

글샘 2012-11-02 18:59   좋아요 0 | URL
팔자를 풀어 보면... 도와주는 '인성'이 가득 차 있을 거예요. ㅋ~
저는 일복이라는 '재성'이 무려 5글자나 되더라는... ㅠㅠ
능력있는 게 아니라, 일을 많이 하니깐... 능력있다고 옆에서 꾀면 넘어가요... ㅠㅜ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모리 에토 지음, 권남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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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참 이쁘다~

일본 여자작가들의 책 제목이 참 이쁜 편이라 생각하는데,

아마도... 출판사의 공이 클 거다.

 

이츠카 파라소루노 시타데...

해변의 파라솔... 그 아래서 맥주라도 한 잔 하면서 낮잠을 자면...

그럼, 오빤 강남 스타일~~ 뮤비가 떠오른다. ㅋ~

 

아주 엄격했던, 그것도 심하게 엄했던 아버지의 죽음 뒤로,

한 여인이 찾아와서,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은 자신이라고 밝힌다.

 

아들과 두 딸은, 그 아버지의 진심을 찾으러 나가게 되고,

아버지의 고향에 이르러 거의 미미한 흔적을 더듬으면서,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각각의 삶이 참으로 신산하지만,

누구나 신산함 속에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해하려 든다면,

자신의 삶에서 '살아있다는 행복'을 찾아볼 수도 있을 거란 위안을 주려는 이야기다.

 

옅은 구름이 길게 깔리기 시작한 탓인지 비취처럼 연한 녹색 빛이 도는 오늘의 바다는 반투명하게 흐릿하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마다

그 새하얀 빛은 일제히 올라갔다가 다시 가라앉는 물마루와 서로 얽혀서 그물눈 같은 무늬를 바다 가득 만들며 반짝거린다.

이따금 밀려온 큰 파도가 그 무늬를 흔들고, 땅울림 같은 신음을 울리며 물가로 유인한다.

파도는 내 발밑에 닿을 듯 닿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속도를 늦추어 아주 잠깐 정지했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파도가 해변의 모래를 사르르 끌고 갈 때,

소리도 없이 지면이 미끄러지는 듯한, 지구가 약간 기운 듯한 그런 기분이 들어서

나는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94)

 

소설을 읽는 맛은, 이런 문장을 만나는 일이다.

나도 바닷가에 서는 일을 참 좋아한다.

뽀얀 백사장에 서있기 가장 좋은 시간은 해가 지고 설핏 어둠이 끼쳐올 때,

또는 한밤중 한잔 걸치고 서있는 바닷가도 좋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가 주는 위안은,

그걸 즐기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눈앞에 있는 작은 먹구름보다 멀리 빛나는 파란 하늘을 생각하는 편이 낫다.(121)

 

이런 이야기로 이야기가 해피엔드로 진행될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곳곳에서 '어두운 피' 이야기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한 줄기 광선이 이 소설을 관통한다.

누구나 소설을 읽을 땐, 제 삶에서가 아니라도 좋으니, 행복이 거기 있기를 바라니까...

 

늘 그러던 것처럼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이 잘못됐네 어쩌네 투덜거렸더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자기 인생을 부모 탓으로 하지 마!

20대 초반이 지났으면 자기 엉덩이 정도는 자기가 닦아!(219)

 

요즘 고미숙의 '누드 글쓰기'와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같이 읽고 있다.

사주 명리학 이야기인데,

민증 까고 매일 술 마시며 이름밖에 모르는 직장 동료보다,

사주를 까고 인생을 '누드'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 감명깊다.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내 운명을 탓하고, 투덜거리는 어른이 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을 조용히 '관'하고, 자신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을 탓하고, 시대를 탓하고, 태어난 이 나라를 탓할 시간에,

조용히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행복하게 지낼 시간을 꿈꾸며 이런 소설을 읽는 일도 재미있다.

 

그러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즐겨야 한다고.

요즘에야 겨우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남은 인생동안 추억을 잔뜩 만들어서 저세상에 있는 아빠한테 보란듯이 뽐내야지.(254)

 

이 소설에서 주제문을 한 문단 찾자면, 이런 걸까?

 

프로이트나 융처럼, 어린 시절의 무의식, 집단의 무의식이 짓누르고 있는 자아는

늘 투덜이 스머프처럼 불만에 가득차 있을지 모른다.

고미숙이랑 데이트하면서,

홀랑 벗고, '누드'로 자신을 돌아보며, '용신 用神'을 위해 글쓰기에 매달리는 자신을 더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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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0-3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앞에 있는 작은 먹구름보다 멀리 빛나는 파란 하늘을 생각하는 편이 낫다.(121)

저도 작은 먹구름보다 멀리 빛나는 파란 하늘을 생각하는 편이어요.
왜냐하면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알기 때문. 살펴보면 감사할 일이 아주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때엔 불만투성이가 될 때가 있어요. 왜 내가 앉을 의자만 없는 거야?, 하면서 말이죠.ㅋ

글샘 2012-10-30 11:21   좋아요 0 | URL
왜 나만... 그럴 때 도움이 되는 책이 저 '고미숙의 누드 글쓰기'랑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입니다.
한번 천천히 읽을 요량으로 차근차근 읽어 보세요.
쉽지 않지만, 얻는 게 있을 겁니다.
 

매년 연초마다 모의고사 출제팀에서 '윤문' 작업을 한다.

모든 과목의 문제들을 읽어 가면서, 어색한 문장, 또는 한글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 등을 다듬어 주곤 하는데, 여러 과목에서 공통적으로 활용하는 유형의 하나로, 순서도(알고리슴)를 활용한 문제들이 있다.

 

선택의 기로(갈림길)에서 다이아몬드 표시 양쪽에 조건을 다는데,

영어라면, Yes/No 중 하나로 진행하면 되는 것인데,

우리말이라면, 예/아니오? 아니요? 이렇게 표시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과목 선생님들이 각기 출제하다 보면, '아니오'도 있고, '아니요'도 있다.

올해 국어 선생님 5명이서 내기가 붙었다.

당근 내가 이겼지만 ㅋ~

세 명이나 '아니오'가 옳다고 우기는 거다.

 

옆의 그림에서 '아니오'는 잘못된 표기다.

대답할 때, '예.'의 반대로 쓰이는 말은 '아니요.'이다.

 

'아니오' 가 쓰일 때는 언제냐면~

 

예스러운 표현 중에, 그렇소~ 아니오~ 이런 말이 있다.

그런 것을 '하오~체'라고 하는데,

봉이 김선달 이야기 중에 우스개도 있었다.

 

김선달이 시장을 지나는데 배가 고파, 상점 앞에 가서,

제 옷을 잡고 상인더러 묻는다? 이게 뭐요? 옷이오.

음~ 그 다음, 잣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건 뭐요? 잣이오.

헐~ 또 갓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건요? 갓이오.

음식을 막 주워먹고 가려는 김선달에게 뭥미??? 한 상인,

자기 입으로 [오시오, 자시오, 가시오]라고 했으니 당하고 말 뿐~

 

식당 현관에 놓인 신발털이에 적혀있는 문구도 잘 틀리는 것.

<어서 오십시요>

 

<하십시오>체로 한다면, '오십시오'가 옳고,

<하오>체로 한다면, '오시오'가 옳다.

 

이게 답이 맞는 것이오?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그것은 답이 아니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탄사'로 '예/아니요'로 답해야 할 경우에는 '아니요.'가 옳다.

 

접힌 부분 펼치기 ▼ 국립국어원 소식지에 실렸던 '아니오'와 '아니요' 구분법

 

8월 초 받은 국립국어원 소식지 [쉼표, 마침표.]가 '아니오'와 '아니요'의 구분법을 다루고 있네요. 가끔씩 혼동하여 잘못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조금만 생각하면 바르게 쓸 수 있는 어휘이기에 여기 소개합니다.

'~'는 문장의 끝에 쓰여 문장을 마무리하는 종결 어미이고, '~요'는 어떤 사물이나 있는 사실을 열거할 때 쓰는 연결 어미랍니다.

어린이에게 반말을 하는 건 올바른 행위가 아니오.
이 예문의 '~오'는 문장의 끝에 쓰여 그 문장을 마무리하는 종결 어미이므로 '아니오'로
적는 게 맞습니다
.
'어서 오십시오'의 경우도 '요'가 아니고 종결 어미 '오'를 씀이 올바릅니다.

그는 내 친구가 아니요, 같은 회원일 뿐입니다.
예문 ②에서 '~요'는 문장을 끝내지 않고 이어가는 연결 어미이므로 '아니요'로 쓰는 게
맞습니다
.
"양학선도 금메달이요, 기보배도 금메달입니다"와 같이 사물을 열거할 때에도
연결어미인 '
요'가 쓰입니다.

"저 남자가 그를 모함했나요?" "아니요. 이 사람이 그를 모함했어요."
예문 ③의 '요'는 높임의 뜻을 더하는 조사입니 다. 그러니까 의 '아니요'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감탄사 '
아니'에 조사 '요'가 붙어서 높임말이 되는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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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2-10-2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글샘님,,,참 도움이 되는 설명이에요..저도 우리말,바르게 쓰고 싶은데...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편달 바랍니다.^^

글샘 2012-10-30 11:19   좋아요 0 | URL
지도 편달 씩이나... ㅋ~
틀리잖게 쓰시면 좋죠~

순오기 2012-10-30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분명히 구별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글샘 2012-10-30 11:20   좋아요 0 | URL
이런 거 생각보다 어렵더라구요... 저도 원래 잘 몰랐던 게 많걸랑요. ㅎㅎ
 
가르친다는 것 (만화) - 교실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든 교사들에게
윌리엄 에어스 지음, 홍한별 옮김, 라이언 앨릭샌더 그림 / 양철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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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교사라고 부르는 것은,

한발을 관습과 주어진 관념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진흙탕에 담그고 사는 것과 같다.

나머지 한 발은 앞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세계를 향해 뻗으면서

헌신적이고 다정한 교사라도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재앙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랑의 행위다.(21)

 

윌리엄 에어스의 'To teach'를 만화로 옮긴 책.

이 책은 간결하고 재미있다.

 

장학사들이 교실을 방문해서, 교사에게 더 좋은 지침을 시달하려 한다.

결국, 그 지침은 쓸모없는 것이란 비아냥 속에 파묻힌다.

 

장학사들은 교실에 아이들이 규격에 맞게 반듯하게 앉아있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으로 살아가는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수치'일 뿐.

 

힘겹고 복잡하고 사람마다 다 다르고,

할 때마다 다른 교사의 일은, 본직적으로 지적이고 윤리적인 작업이다.

교직은 직업중의 직업, 다른 모든 소명들을 앞서 이끄는 소명이다.

극도로 실질적이면서도 초월적인 활동이며,

냉혹할 정도로 사무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창의적인 행위다.

가르침은 도전에서 시작하여 늘 신비로움을 간직한다.(103)

 

객관적으로 좋은 수업이란 없다.

왜냐면... 그 수업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에서 학생들이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남기려면,

학생이 중심에 선 교실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꾸 객관적으로 교실을 판정하려 드는 세상이 문제다.

그리고 한국의 학교는 자꾸 객관적으로 좋은 점수를 얻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아이들은 졸고 있고, 자꾸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이제 막 교단에 선 의욕에 가득찬 열정적 선생님이거나,

심드렁하게 월급이나 타면 되지~ 또는 왜케 교사의 월급은 적은 거냐~ 일은 넘 많은데~

이렇게 불평투성이인 선생님에게... 꼭 읽어 보게 하고 싶은 책이다.

 

아, 또 있다.

정말 열정적으로 교육 활동에 매진하였으나,

갈수록 피폐해지는 학교에서 지쳐버려 명예퇴직을 꿈꾸며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계신 선생님들께도...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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