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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을 보고, '최소한의 사랑'?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소설이 시작하기 전 첫 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최소한을 지키기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왜 우리는 최대한의 욕망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점입가경~
여자들의 마음 속 세상을 헤쳐나가는 소설은,
줄거리보다는 '그 여자들의 마음 속' 풍경 구경에 몰두하게 했다.
계속 사랑의 '양'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파주(坡州)'이다. '坡'라는 글자는 '고개, 제방, 비탈'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파주에는 임진강, 예성강, 한강물이 몰려드는 '접경'이란 의미와 함께, 제방이 발달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 머릿속 파주는 '깨어질 파 破'의 파주처럼 자꾸 그려진다.
전쟁중인 국가에서 사는 콤플렉스인 모양이다.
파주는 그렇게 소외당한 사람들이 부평초 같은 삶을 사는 지역이고,
이 소설 속 인물들 역시, 뿌리라곤 없는 사람들이다.
문신하는 여자, 단추다는 여자, 죽은 새엄니의 부탁으로 이복 동생을 찾는 여자,
그리고 만나는 여자, 여자, 여자들의 공통점이라면, 부평초 같은 삶에 적응해버린 사람들이란 것.
멀쩡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여자를 남편은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거기, 최소한의 사랑조차 없다.
권태기라고 진단했다가 우울증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원래부터 그런 여자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자 그냥 아주머니가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주머니, 남편은 밤늦게 들어와 문득 그렇게 불렀다.(85)
그러면서 남편은 아내에게 불만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가면 가나보다, 떨어지면 떨어지나보다. 하고 무엇이든 쉽게 놓아버리지,
아무것도 붙들지 않잖아.(88)
애초에 어디서 어긋난 것일까?
가족의 '최소한의 사랑'의 '양'은 얼마만큼일까?
이런 남편은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치 집밥해 놓고 기다리는 아내에게, '회식있어~' 하면서 외식 한 번 하고 온 것처럼,
가정의 원상 회복을 기대한다. 꿈도 뚱뚱하다.
애초에 여자가 쓴 이 소설은, 여자들의 주파수에 알맞게 적은 글인지도 모르겠다.
욕망을 하면 쇼크가 오는 여자, 고독과 잠을 처방받은 여자,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무력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여자,
세속적인 삶을 방어해야 하는 여자,
열두 살 이후로 무엇을 가지려 한 적 없고,
무엇을 가지려고 하면 죄책감에 휩싸이며 몸이 아프고 성모상에 가위 눌리는 여자.
죄책감에서 놓여나기 위해 손을 벌린 채로 살아왔고,
벌어진 손아귀 사이로 모든 것이 모래처럼 숭숭 빠져나간,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는,
그런 여자...(169)
이런 여자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가슴 절절한 공감과 '그래, 그래, 나도 그랬다~' 이런 감탄을 연발하며 읽을지도 모르겠다.
소위 강남 스타일의 시크한 스탈과는 금을 그을 시대가 왔는지도 모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나는 나'라고 외칠 줄 아는 여자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그래 너,
그래 바로 너,
네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런 여자임을 들려주는 노래를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그 아저씨가 배 불룩 나온 저질코믹 춤을 추는 '사나에'라 하더라도 말이다.
창자마저 오그라든 듯 한데도 심장은 타는 듯 뜨거웠다.(174)
이렇게 살아온 여자들에게 든 병이 '화병'이다.
'화병'은 한국의 여자들에게만 있는 독특한 심리적 병명이다.
이 세상이 그런 세상이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사랑'마저도 허여되지 않던, 여자들에겐 캄캄한 지옥, 변방, 파주 같은 동네...
나는 왜 친구가 될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211)
한국에선 남녀의 이성 친구를 '불륜'으로 낙인찍는다. ㅋ~
그 '윤리'가 '아님'의 '금'을 그어 놓고, 거길 넘어가는 너희는 참 더러운 인간이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금은 '여자'에게는 무지 굵고 두꺼운 금이어서 넘어선 안되는 금기 구역이고,
남성에게는 돈만 있으면 '갈 때까지 가 볼까~'의 '싸나에'가 지나가는 지워져 보이지도 않는 금이다.
나이 들어서야, 친구가 될 수 있는 남자 친구의 존재에 대하여 아쉬워한다.
그렇지만, 그 역시 그 금을 넘지 못하고 움츠러든다.
아직도 여성의 삶은 '파주'의 변경 그대로다.
사람도 일도 생명도 매사가 인연이고, 인연이란 물질이 물질을 당기는 힘 자체였다.
인연의 순리에 비하면 이성도 주관도 객관도,
지식도 경험도 미망 속의 미망에 지나지 않는다.
믿을 것이라고는 인연을 느끼며 다가오는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성실과 겸허함뿐이다.(225)
국토철망 사장이란 남자의 입으로 외치는 인연, 내지 운명론은 이렇다.
여성들을 순리에 적응하라고 '철망'으로 둘러싸는 인습의 힘은 강고하기만 하다.
다 지어낸 이야기인 거야.
불교의 핵심이 그거잖아.
인생도 그래. 다 지어내는 거지.
사랑도 다 지어내는 거야. 하지만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가는 일이지.(245)
일그러진 철망 속에 갇혀 파닥거리는 여자의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구절도 만날 수 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힘이 필요한 것임을 보여주는 부분은 반갑다.
불교에서 부질없다, 부질없다... 고 하는 말은 힘든 이들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
그들에게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추상적으로라도,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그래야, 내 삶에 달콤한 향내 짙은 기억이 진하게 남을 것이라고 귓속말로 알려주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
교감신경 과민증,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과다분비증이 있어요.
스트레스에 저항하는 호르몬인데,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작은 자극에도 몸이 극렬하게 반응하게 되어 스스로를 해치는 거죠.
심지어 사랑도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병이래요.(284)
화병을 화학적 과정으로 분석한다면 이렇게 설명할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늘 결핍되던 유란의 자구책은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역시 다른 결핍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지만...
유란은 늘 사랑을 하려고 해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요.
몸과 마음을 다치면서요.
사실 가족이 없으니까, 더 그렇겠지요.
원래 사랑을 좀 무섭게 해요.
그 애의 사랑은 이상하게 출구가 없어요.
길을 잃어버리는 사랑이지요.
사랑하다가 그 속에서 죽으려는 사람 같았어요.
결국 사랑을 하면 쇼크가 일어나는 희귀병에 걸리기까지 했지만요.(288)
유란만 그럴까?
현대 한국에서 살면서, 애정결핍에 시달리지 않은 원초적 영혼의 상처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 얼마나 될 것인가...
사랑은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가 아닌가 싶고...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이런 시도 있다지만,
원래 이 말은 불경에서 나온 것이라지만,
사랑에 얽매이지 말고, 죽도록 자유자재한 상태에서 사랑하라는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사랑은 늘 아프고 고픈 것만은 아닌
달콤하고 자유자재한 것일 수도 있음을 배울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으랴~
이런 소망을 아련하게 갖도록 만드는 소설이다.
고칠 곳 하나...
87. 돈을 결재하자... '결제'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