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
박흥용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쓰쓰돈 돈쓰...

--. .-

요즘은 이모티콘으로 쓰이지만, 한때 모스 부호로 신호를 주고받던 때도 있었다.

저 제목은 '소리'란 뜻이다.

 

박흥용의 '어린 시절'은 몇 가지의 소리로 환기된다.

그것들은 한 해에 일어난 것일 수도 있고, 여러 해의 것들이 편집되어 기억에 남은 것일 수도 있다.

 

스피커와 라디오의 '소리'

그리고 이웃집 한 여성의 '장구 소리, 가야금 소리, 그리고... 소리'

스피커와 자전거 발전기를 활용한 '교신 소리'

무엇보다 끊임없이 빽구두를 고통스럽게 피눈물나게 하던 '마음의 소리'를 읽으려 애쓴다.

 

'소리'의 매력은 순간성에 있다.

소리를 잡아두는 녹음 기술은 최근에야 개발된 것이다.

인류는 거의 모든 시간을 '순간적 소리'를 기억하며 살아왔다.

그 소리에 대한 박흥용의 천착은,

내 의지가 내 눈을 가렸다...는 알듯말듯한 여운을 남기면서 이야기를 맺는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그의 옆에 깡촌에 불현듯 나타난 분냄새 나는 여자...

가난이 첩살이로 그녀를 몰아 넣었지만,

그녀는 장구, 가야금, 춤, 소리... 등으로 볼 때 80년대까지 있었다는 '방석집' 내지 '요정'의 기생이었을 게다.

그 노류장화의 시절이 싫어 돈 많은 영감의 첩실로 들어온 거지만,

삶은 피눈물이었다.

 

착청...은 의지가 만든 소리다.

환청처럼... 자신이 듣고싶은 소리를 계속 듣게되는 거...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하루도 부글거리는 '화'가 잠잠해질 날 없었다.

부모가 집을 비워 아이들만 남은 집을 빈집으로 여겨 담배를 피우러 들어왔던 그녀.

담배 연기로 부글거리는 고뇌가 조금이라도 상쇄될 수 있을리 만무.

 

그녀가 집착하는 것은 '소리'였다.

그러나, 결국 그 소리 역시 '의지'에 의해 고뇌를 표출하는 계기가 될 뿐...

 

다행인 것은...

모스 부호를 남기고 그녀가 떠나간 것.

실제 상황에선, 모스 부호처럼 낭만적 메시지는 남기지도 못한 채,

동네 고목에 매달린 채 발견되는 일도 흔했을 것인데 말이다.

 

잘 살아 보겠다는 스스로의 의지에 눈이 멀어,

권번에 발을 들여 놓았고,

산골 부자 영감의 첩실로까지 흘러들어왔던 인생이지만,

화툿장의 '비광'이 뜻하는 '손님'의 말씀처럼

운명 역시 자기 의지가 뜻하는 바처럼 흘러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고,

전파사 청년의 '착청' 역시 의지가 만드는 것이란 이야기에 감았던 눈을 번쩍 뜨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삶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일 게다.

자기 삶은 많은 부분 자신의 의지가 일궈 놓은 밭이나 마찬가지기 때문.

 

이런 복잡한 삶의 굴곡을 보내고

남은 소년의 심심하고 무료한 나날을 상징하는 소리가 바로 고무신 공기 압축 소리다.

 

그 '팡 팡 팡!' 소리는 아련한 어린 시절을 급격한 속도로 환기하고,

그 소리와 함께 미술부가 있는 학교를 가고 싶어하는 꼬마의 꿈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어린 시절...

한없이 심심했던 그 배고팠던 시절이

결코 풍요롭지 못했고, 오히려 결핍이 일상인 그 시절이

새삼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는 것은,

풍요로워 보이지만 외롭고 쓸쓸한 현대의 삶이 되찾아야 할 것이 도대체 무엇일지를 골똘히 궁리하는 과정을

가감없이 보여주려는 장치가 이 만화인 것이다.

 

그래서, 남자를 접하면서 눈꼬리가 살살 웃음기가 흐르는 반달눈을 만드는 부분이거나,

그녀가 생기있게 활달해지거나, 처절하게 좌절스러워질 때,

만화를 사실화의 세계와 뒤섞어 버린다.

평면의 인물이 갑자기 생뚱맞게 입체적 인물로 마치 만화 밖으로 걸어나와 분냄새를 풍기기라도 할 듯,

여성 호르몬을 담뿍 품은 여인이 되는 그런 장면에서,

작가의 '의지'가 돋보인다.

 

'소리'의 시대로 대변되던 그 시절...

그 시절의 결핍 속에서도 결코 무가치한 시간들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그 힘겨운 피눈물의 행군 속에서도

두눈 빛내며, 환상적인 음악과 춤과 소리의 예술을 담아냈던 예인들이 살아가고 있었음을...

기억해두기 위해서,

그는 녹음기를 들이대는 대신,

이런 장치를 이용하여 만화를 그리는 것이다.

 


빽구두를 부르는 '약한 소리'는 그녀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그 약한 신호는 내가 그 송신 지역으로 와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어. 컴온, 컴온 하면서 말야.

 

이 요동은 의지가 되고, 의지가 가렸던 눈을 다시 의지가 뜨게할 수도 있다.

 

의지는 어떤 일에 대한 적극적 욕심

 

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추억에 빠져들고 싶은 이라면 한번 만나보길 권하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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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12-12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년에 이어 쓰쓰돈까지~
저도 마노아님 덕분에 좋은 만화 순례를 했습니다.^^

글샘 2012-12-12 20:2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
역시 마노아 님이랑 단짝이시군요. ㅎㅎ
 
26년 3
강풀 지음 / 재미주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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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그림을 2003년 처음 보았다.

월, 목 쯤으로 기억되는데,

첨으로 웹툰이 올라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기도 했다.

그의 순정만화, 미심썰, 이런 것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마음 따스하게 읽었고,

바보나 그대를사랑합니다 같은 작품은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2006년 작품 26년이다.

 

1980년.

그 해의 광주는 한국의 현대사를 뒤집어 놓았다.

 

'독재자의 딸'이 이 멍청한 또는 불행한 나라의 다음 대통령이 될는지는 열어봐야 할 일이지만,

1970년 전태일이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죽어갈 때,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꿈꾸며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기 위해 애썼다.

 

그의 딸이 대선 후보를 나서면서 전태일 재단에 갔던 이유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의 영구집권이 저지되고 다시 혼란의 시절,

신군부가 집권하기 위해 타겟으로 삼은 것이 광주였다.

 

한국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오지였고, 그때만해도 사진 전송 등의 기술이 낙후되어 자료사진이 거의 없고,

반전 운동도 미미했던 냉전의 시대여서 세계의 관심을 갖지 못하였으나,

1980년 광주는 달랐다.

세계는 자국민을 섬멸하는 공수부대를 가증스런 눈으로 쳐다보았고,

그 필름을 유통시켰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자국의 군대가 자국민에게 총을 들이민 그 사건을 눈으로 보고

손에 돌을 들고 보이지 않는 대머리를 향해 돌을 던졌다.

 

이제 32년.

광주는 '민주화 항쟁'의 자격이 없다.

아직도 광주는 '사태'의 이름이 어울린다.

그때 봉기했던 사람들은 <폭도>의 이름이 적합하다.

그렇게 대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사태...

그 핏빛 5월이 잉태한 아이들이 다시 서울 연희동으로 간다.

'그 새끼'를 응징하러...

 

그 영화를 만들려 했더니,

전두환장군님을 사모하는 모임이라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압에 의하여,

영화제작은 계속 무산되었다.

 

지금 대선 정국을 앞두고 공백기를 틈타, 26년이 개봉되었다.

작품은 슬프고, 아프다.

이런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영화는 좀 정신없이 진행된다.

만화가 박진감 측면에서 더 심장 뛰게 한다.

 

그렇지만, 왜 다시 광주인가...

26년이 흐른 지금...

아니 거기서 다시 6년이 흐른 지금...

 

왜, 이땅의 사람들은 광주의 피를 잊고, 불타죽은 용산의 꿈을 잊고,

경찰이 개패듯이 사냥하던 뙤약볕의 평택 쌍용차를 잊어가는가...

2008년 촛불의 가능성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문재인을 비롯한 퇴물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안철수의 조용한 사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보는 이제 '소수정파 죽이기'에 질식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독재자의 딸이 국민투표의 결과로 대통령에 오르는 꼬라지를

두눈 뜨고 보아야 하는가?

 

가진자들의 나라로 진군, 또 진군하는 모습을,

못가진자들은 더 궁핍한 삶 속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두눈 번히 뜨고 못 보는 걸까?

 

텔레비전, 종이 신문, 인터넷 포털 등을 장악했다고 해도,

불쌍하게 총맞아 돌아가신 옛 임금과 영부인의 자녀로 그저 불쌍한 여자라서,

정치 철학도, 삶의 지혜도 없는 그 여자를 청와대로 보낼 작정인가?

 

26년에서 저격하고자 하는 그 새끼와,

그 여자는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다.(그 당시에 6억을 받았단다. 30년 전 6억...)

 

다만, '빠진 충치'처럼 생긴 그 당이 몰락하는 꼴을 내 살아 생전 보고 싶다.

내 젊은 시절 던졌던 돌들이 아무리 힘없는 돌팔매였다 하더라도,

'앓는 이' 쑥 빠져 속이시원한 꼴을 반드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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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2-12-09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영화보고 왔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막막하더군요 원작의 깊이 있는 내용이 영화의 시간때문에 삭제되어 내용을 전부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원작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전달되더군요 시간이 면죄부를 줄수는 없죠 범죄는 공소시효가 끝나더라도 남겨진 사람들 피해자들은 결코 잊을수 없습니다

글샘 2012-12-13 11:43   좋아요 0 | URL
정치적으로 처벌하지 않더라도...
빼앗을 걸 못뺏고 잘 사는 걸 보는 맘이 더럽죠. ㅠㅜ

다크아이즈 2012-12-0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으로 나온 만화도, 뭉근한 영화도 다 봤어요. 전 왠지 영화가 더 좋았어요.
원작 만한 영화 없는데, 만화 권하는 이의 추천 덕에 기대치를 넘 높였었나 봐요.
강풀은 스토리의 천재 같고, 요즘 최규석 만화 눈여겨 보는데, 구질구질한 감성에도 천재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도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글샘 2012-12-13 11: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최규석의 날카로움도 좋죠.
강풀의 시나리오는 좀더 길게 가면서 감동을 주고요.

감은빛 2012-12-1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 영화 제작이 무산되었을 때 무척 분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웹툰으로 연재할 당시에 눈빠지게 기다리다 보곤 했거든요.
올해 클라우드펀딩으로 소액투자자를 모을 때 참여했는데,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돈을 돌려주더라구요.
무척 아쉬웠습니다. 작은 돈이나마 보태고 싶었는데요.
어쨌거나 영화가 개봉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보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안타깝네요.

글샘 2012-12-13 11:45   좋아요 0 | URL
광주...가 아직도 '사태'인 한은... 이런 영화, 이런 주제가 더 많이 다뤄져야 합니다...
근데, 맨날 조폭 영화만 놔두는...
지하경제 활성화를 기하는 정권이 저렇게 표를 얻으니 참 답답하죠.
 

바야흐로 김장의 계절입니다~

김치 냉장고와 냉장창고 덕에,

배추도 겨우내 등장해 주시고, 김장을 담글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오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온난화 탓인지, 겨울이 따뜻한 해에는 김장이 필요없는 때도 있구요.

예전처럼 땅에 파묻을 장소도 도시엔 없구요...

 

김치를 (담가/담궈) 먹는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을까?/ 담글까?/ 담굴까?)

포도주를 (담가/담궈) 마시는 일 때문에 교도소에는 포도 반입이 금지되어있대~

 

사전에 '담그다'를 찾아 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담그다 (사람 김치 따위 발효 음식)재료 섞어 익도록 그릇 넣다.

 

'담그-'의 어간에 '-아'라는 어미가 결합되면,

'ㅡ'가 탈락되어 '담가'가 됩니다.

 

근데, 서울 지역에서도 '담궈' 먹는다는 식의 발음이 통용되는데요.

서울말이라고 모두 표준어는 아니랍니다.

 

'담궈'가 나오려면, '담구다'라는 어형이 사전에 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사전에 보면, '담구다'는 담그다의 잘못으로 표기되어 있죠.

그러니 '담궈'는 틀렸고, '담가'가 맞는 것입니다.

 

김치를 '담아' 먹는다~는 어떻냐구요?

그것은 어떤 특별한 그릇에 '담아' 먹을 수는 있겠죠. ^^

김치를 만드는 일은 '담가' 먹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 사례가 '문을 (잠가/ 잠궈) 두시오.'와 같은 경우인데요.

이 경우에도 사전에서 '잠그다'를 찾아 보시면 되겠죠?

친절하게 찾아 드립지요. ㅎㅎ

 

잠그다(걸거나 꽂거나 하여 열리지 않도록 하다

 

그럼 '잠구다'도 찾아 보고 싶으시죠?

 

잠그다의 잘못으로 나와있거나, 잠그다를 참조할 것~ 이렇게 등장합니다.

'잠구다'는 표준어가 아니란 말씀이죠.

 

그러니, '잠그- + -어'에서 역시 '으' 발음이 탈락하고,

(한국어 화자의 특징은 입을 가로로 길게 벌리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한국어의 '이'는 영어의 '이'발음과 아주 다르답니다.

영어 화자의 '이'는 입술을 가로로 길게 여는 소리입니다.

이런 한국어 화자에게 '으' 소리는 상당히 부담스럽죠. 그래서 툭~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 ㅋㅋ

툭~하면 '으' 소리가 '어'나 '아' 앞에서 탈락하게 되는 겁니다.)

 

'잠가' 주십시오. 처럼 쓰이는 거죠.

 

활용을 연습해 보자구요.

 

담그다. 담가, 담그니, 담가서, 담글까

잠그다. 잠가, 잠그니, 잠가서, 잠글까

 

날이 춥습니다.

날이 추울수록 봄이 가까워지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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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12-0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글샘님네는 김장을 했나요?
(기왕이면 가르친대로 활용해야지. 김치를 담갔나요? 아니지, 담그셨나요? ㅋ)
별 걸 다 묻는 일인. 울집 김장이 넘 싱거워서 일 년 농사 망친 기분이라 다른 동네는 어쩐가 궁금해지옵니다.

글샘 2012-12-13 11:42   좋아요 0 | URL
우린 김장 담그지 않고 ㅋ~ 얻어다 먹습니다.

테레사 2012-12-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정말 새겨듣겠습니다.

글샘 2012-12-13 11:42   좋아요 0 | URL
말 참 잘 들으시는군요. ㅎㅎ
 
그림 그리는 남자 - 마흔한 살,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마무라 도요오 지음, 송태욱 엮음 / 뮤진트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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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간염으로 활동을 접고 요양을 하게 된다.

남아 도는 시간에 당황하다가 소일거리로 집어든 것이,

중학생 시절에 활동하던 미술부의 연장.

 

마흔 한 살이 되어서 그린 그림이므로,

스스로 아마추어의 그림임을 강하게 피력한다.

 

아마추어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그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내놓을 수 없다.(238)

 

그렇지만 개인전을 열고, 사람들이 자기 그림을 다 사가 버리는 경험을 하고는 애석해 한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그림에 있어서 그 작품은 '유일무이함'이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써 복제해도 똑같은 작품은 있을 수 없는 것.

 

작은 아틀리에에서 이런 식으로 평온한 그림을 그리다 죽어가는 인생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243)

 

뭐, 어떤 인생은 좋고 나쁠 것은 없지만,

나름 행복한 길을 찾은 그가 부럽다.

 

신인 화가를 격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자코 그의 그림 한 점을 사주는 일이다.(188)

 

우리 학교 미술샘이 얼마 전 개인전을 열었다.

가난한 환경에서 지독하게 혼자만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라는데,

작품이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신선함을 담고 있었다.

한 점 샀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

 

매일 아침 그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의 삶을 눈여겨 봐 두었다.

 

아침 햇살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때까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 없었으므로 몰랐는데,

이른 아침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한참 동안 하늘에 가득한 빛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 있다.

오후의 지친 빛의 알갱이와는 딴 세상 것처럼 다르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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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빅토르 프랑클, 프리모 레비의 그 시대... 2차대전과 나치 포로 수용소가 배경이 되는 소설

그러나 첫부분의 성애 부분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그저 '야한 영화'로 인식했던 소설을 읽었다.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 소설을 '성애'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저급한 평론이 될 거다

첫 부분은 짜릿하고, 가운데 부분은 진지하고, 마지막 부분은 엄숙한 탐구형 소설...

그러면서도 책장이 줄줄 넘어가는 잘 쓴 소설.

 

영어로 reader는 독자란 뚯이지만,  독일어의 vorlesen은 읽어 들려주다, 낭독하다~ 이런 뜻이 있다.

그러니깐 원제목 Der Vorleser는 '리더'보다는 '책 읽어주는 남자'가 가까운 뜻이다.

영어로 만든 영화 제목이 '더 리더'여서 그렇게 알려진 것 같기도 하다.

그걸로 2% 부족한 뉘앙스를 살리려고 '책 읽어주는 남자'란 부제를 붙인 것.

 

이 책은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하는 사이면서도,

서로 맘이 통해있고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말이 많으면서도 말이 없는 접촉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던 해에

한나에게서 한마디 인사가 날아왔다.(198)

 

말이 많으면서도 말이 없는 접촉.

사랑하면서도 표현할 수 없는 사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면서도 편지 한 장 넣지 못하는 소통.

 

사실, 모든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랑'의 형식은 '소통'이기 때문이 아닐까?

통즉 불통, 불통즉 통...

소통하면 아프지 않지만, 소통하지 않으면 아픈 것...

그런 이야기...

소통될 때 아프지 않았지만(아니, 짜릿한 호르몬이 팡팡 분비되지만)

불통되면 아프기 그지없는 인류의 계통적 삶을

한 개체가 반복적으로 겪어내는 고난의 아픔을 쓰는 것이 바로 '연애 소설'인 셈이다.

 

그녀의 안부 편지와 나의 카세트테이프 교환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이루어졌고,

또 한나가 내게 전혀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게끔

가깝고도 멀리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자기 편의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것임을 나는 안다.(202)

 

어린 시절 육체적 사랑으로 만난 한 여자를,

우연히 법정에서 만나게 되고,

그 여자를 긍휼히 여기며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몸으로 먼저 만나 뜨거운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버린다.

그러다가 이별과 논리적 사고가 끼어들고...

글자 없음의 이해 과정이 나중에 글자가 매개된 이해의 과정으로 이행되는 도중에 소설은 끊기고 마는데...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저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넌 알 거야.

너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너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야.

그렇기 때문에 법정 역시 나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었어.(210)

 

이해받지 못할 삶을 살아온 한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삶에 적용되는 일반적 원리다.

인간은 하나하나 모두 '개별자'로서의 존재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는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당하다.

 

올 12월부터 '국민건강진흥법'에 따라 공공기관에서 금연이 의무화되었다.

나도 금연자이며, 담배 연기를 싫어하지만,

이런 금욕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독재', '파시즘' 국가의 증명서였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인간은 모두 '개별자'로 이해받아야 함을,

사람은 하나하나 정말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함을,

이 소설은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시대, 육신과 마음, 만남과 만나지 않음...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깊은 소설.

나처럼 이 소설을 야한 소설이라고 들어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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