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짓말 모중석 스릴러 클럽 14
리사 엉거 지음, 이영아 옮김 / 비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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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드라마 '내딸 서영이'가 무지 인기인 모양이다.

가난한 여자가 부유한 집에 가정교사로 들락거리다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을 인정받는 가정에서 아버지와 남동생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핏줄을 부정한 사람에 대한 불신에 대하여 문제제기하지만,

시청자들을, '그래, 베드로도 예수를 세 번이나 부정했잖은가. 누가 서영이에게 돌을 던지랴.'하는 분위기로 몰고가는 것이

이 드라마의 눈물 포인트인 듯 싶다.

 

세상은 절대선 또는 절대악으로 분리할 수 있는 혼합물의 세계가 아니다.

쉽사리 금그어지고 나뉘어질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도 오랜 시간 열과 압력에 노출되면 화학적 변화를 겪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삶을 절대적 잣대로 갈라보려 하면 어긋나기 쉬운 것이다.

 

이 소설의 상상력은 발칙하다.

잘 나가던 행복한 집안의 아~무 문제없던 딸내미가 글을 쓰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건을 통해서 온 세상에 유명하게 알려진 얼굴이 되고,

그로부터 엮이는 문제들로 자신의 '근본'을 뒤적이게 된다.

'근본'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내편'과 '적' 또는 '정상'과 '이상'을 가르는 구분의 두려움을 수반한다.

 

88올림픽 끝나고, 한국에는 족보 판매의 열풍이 불었다.

천민, 평민들의 후예들이 족보를 수백 만원에 구입하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은 양반들의 나라가 되었다.

모두들 무슨 가문의 후예들인 셈인데, 그것을 아직도 '자네 본이 어디인가?'하고 묻는 어른들을 만나면서 보게 된다.

이렇게 '근본'에 매이는 까닭은, '나'와 다른 '그들'과의 적대적 감정이 마음 속 어딘가에 담겼기 때문일 게다.

 

사건이 끝나고, 심하게 다친 여주인공이 남자에게 간다.
리들리를 걱정하는 남자에게 그녀는 말한다.

"그럴게요.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고 왔어요. 내가 옆에 있다는 걸요."(440)

 

리사 엉거가 이 소설을 쓴 이유가 이 한마디로 집약되는 느낌이다.

너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

내가 옆에 있다는 거,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거... 다만,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

세상은 아무리 외롭더라도 말이다.

 

믿을 놈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귀여운 작가는 이렇게 외친다.

 

바로 그것이 내심 우리가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랑을 찾고 있다고, 꿈을 따라가고 있다고, 돈을 좇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찾는 것은 우리가 속할 곳이 아니던가?

우리의 생각, 감정, 그리고 두려움을 이해받을 수 있는 곳.(359)

 

남녀의 심리상 상이점에 대해서도 그녀는 제법이다.

 

누군가를 믿고, 그 사람과 몸을 섞는다.

그가 나와 인생을 같이 하고 싶은 거라고,

육체관계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최종 목적을 이루었고, 게임은 끝이 난다.(190)

 

남자 - 인간이 최종 목적을 달성했을 때,

여자 - 인간은 믿음이 싹트기 시작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참 다른데, 그럼에도 그들은 또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날 규정지었던 것들로부터 갑자기 자유로워지고 나자,

지켜야할 경계선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우리의 교감 속에서 만들어진 쾌락에 몸을 내 맡기고 제이크에게 내 자신을 오롯이 내보였다.

그  순간 그곳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진짜 나였고,

이제야 막 내 인생에 들어온 그 사람은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알았다.(108)

 

이렇게 신뢰하는 여자에게 상처를 줄까,

읽는 내가 조바심을 했다. 작가 역시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 쇄골과 목 사이의 약간 움푹 파인 곳을 핥으면 어떨까 벌써부터 상상이 되는 사탕같은 입술,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47)

 

ㅎㅎ 감각적인 묘사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내가 믿고 있던 세계가 한 순간에 무너질 때,

우리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믿고 싶어진다.

의문부호 없이...

 

아무래도 정말 알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답보다는 질문이 더 안전하니까.(225)

 

이 한 마디는 이 책의 주젤 압축하는 문장이다.

답보다는 질문이 더 안전하니까,

연인들은 늘 질문을 하고, 답은 회피한다.

삶은 그런 것이다. 답은... 언제든 오답으로 판정날 수 있다.

선과 악, 역시 그렇듯...

 

슬픔이란 일직선이 아니라고 했다.

치유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괜찮은 부분이 망가진 부분보다 더 많아질 때까지 이리저리 갈지자로 힘들게 헤매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어느 일정한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슬픔과 공포 같은 감정들을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약간의 휴식이 필요하다.(229)

 

모든 것은 둘로 나누어지지 않고,

마음이란 나비처럼 일직선 아닌 곳을 통해 날아간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세상은... 그런 곳이라니 말이다.

사람은... 그런 것이라니 말이다.

 

 

263. 우리는 웃었다. 장례식에서 전혀 웃을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울분을 풀며 웃는 사람들처럼... 울분, 보다는 '회포'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장례식에서 울분을 푸는 건 쫌 아닌 듯...

 

414. 한번 맞춰보십시오... 맞혀보십시오...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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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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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쓰기는... 조급하지 않게 열심히,
욕심내지 말고 최선을 다해
고집하지 말고 자기만의 생각을 찾고
독선적인 글을 버리고 독창적인 글을 찾으며
고립되지 않고 고독한 창작의 열의를 불태우노라면...
누구에게나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리뷰 중...)

 

그래서 글쓰길 해보는 사람들은 좌절한다.
작가가 말하는 '개구리 언어'밖에 글이 되어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왜 글을 매일 쓰는 훈련을 하는데도, '왕자나 공주'의 글이 나오지 않는 걸까?
특히 이 책은 일반적 논설문, 논술문, 수필 등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시나 소설 등의 문학적 글쓰기를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아무래도 다양한 글의 예를 들려고 했겠지만,
외국 소설들을 번역한 것을 설명문의 사례로 드는 것은 좀 어색한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외국 작품들이라 하여도 그 아이디어를 빌려오기가 좋은 것들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 문장들은 외국 작가의 것이 아니라, 번역가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글은 문장으로 이뤄지고, 그 문장들이 하나의 주제를 위해 달려간다.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들이 취사선택되고, 여러 표현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주제를 제대로 드러내기란 요령부득... 쉽게 얻기 어려운 경지가 반드시 있다.

사랑이란 단순히 어떤 멋진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빠지면 웃음이 많아지고, 여유와 너그러움이 생기고,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지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기꺼이 자기 헌신을 감수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자신이 먼저 사랑스럽게 변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도 스스로가 사랑스럽게 변해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16)

이렇게 '멋진 글쓰기'를 사랑하도록 독자에게 위안을 준다.
멋진 글을 쓰고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애정인 셈.

어떤 경우든, 언어 사용의 실질적인 변화없이 사람이 변하는 경우는 없으며,
사람이 변하면 그 사람의 언어 또한 변한다.
내가 변하기 않고 문장 기술만 훈련하는 것은 글쓰기 공부가 아니다.
이제까지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나로서의 모험을 시작하는 경험이어야 '창작으로서의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30)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생각을 하게 되어야 하고, 결국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단 소리다.
글쓰기 공부는 결국... 삶의 공부인 셈.
이런 것을 모파상은 이렇게 말한다.

아주 작은 사물에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 담겨있는 법이다.
그것을 발견하도록 하자.
불과 들판의 나무를 묘사하려면, 다른 불이나 나무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앞에 서있어야 한다.(73)

연애편지를 써본 이들은 알 것이다.
자기 마음을 전달하려는 문장을 한 문장 이끌어 내기가 얼마나 수월치 않은 일인지를...
끝없이 주변을 관찰하면서, 자기 마음과 가장 비슷한 것들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읽고, 관찰하고, 편지지를 썼다 구겨 버리기를 수십 자,
그 뒤에야 아주 여리게나마, 일반적인 사랑 고백과 조금이라도 비슷하지 않아 보일 때까지... 써야한다.

그러나 글쓰기나 연애나, 매일매일 단위로 삶은 다른 일의 연속인 셈.
파스칼 키냐르의 언술을 동원하여 날마다의 생각을 적어보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랑에 빠질 때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뀐다.
소설을 쓰거나 읽을 때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뀐다.
과거란 그런 것이다.(88)

글을 쓸 때도, 일상 언어처럼 단순하게 발언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초점을 맞춰가려고 애써야 한다.
모든 사물을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던 조상들의 자세를 떠올려야 할 일이다.
그러노라면, 매일 매일은 같은 날처럼 보이지만,
매일 매일은 조금씩 나아가는 하루하루가 될 것이다.

글쓰기는 결국 작가가 발전하는 길이 된다.
연애 편지가 사랑의 발전을 기록하는 역사의 서술이 되듯...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단지 대상을 중립적으로 관찰하여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라,
동시에 나의 관점, 거리, 욕망, 태도 등을 함께 드러내는 일이다.
나의 모습도 함께 드러내는 일이어서,
대상과 화자가 동시에 생성되는 과정이며,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자신이 '언어화'를 통해 동시에 출현하는 일이다.(120)

글을 쓰는 일은,
하나의 세계관을 표출하는 작업이 된다.
연애 편지를 쓰는 일은,
자신의 면모를 이모 저모 드러내어, 상대와의 공감대를 넓히려는 모색에 대한 노력의 몸짓이 되는 것이듯...
인간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 소통과 공감을 나누는 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며칠 전, 우연히 책을 소리내어 읽어볼 일이 있었는데,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아들 왈,
"아빠, 옛날에 나한테 책읽어 주던 그 목소리다." 이런 소릴 한다.
갑자기 시간이 십 년 전으로 급속한 리와인드를 겪으며,
아직 젖살이 뽀얗던 아들의 어린 시절이 호명되는 경험을 했다.
잠시 아내도, 나도, 아들도...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별것 아닌 말 하나의 표명도, 한 세계를 오롯이 불러올 수 있는 힘이 있다

명작이라면,
훌륭한 문학이라면, 독자를 그 세계로 불러 올리고,
독자 역시 작가와 마찬가지의 세계에 대한 고민을 길어올릴 수 있는 두레박 역할을 해야 할 노릇이다.

어떤 사람이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보자, 아무도 없고 달팽이 한 마리가 초인종 위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달팽이를 떼어 잔디밭에 던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1년 뒤 다시 초인종이 울려 가 보니, 다시 달팽이 한 마리가 초인종에 붙어,
"당신, 조금 전에 나에게 무슨 짓을 했어!" 라고 항의하더란...(126)

이렇게 존재에 따라 바라보는 개념은 다르다.
인간의 1년은 달팽이에게 '조금 전'이 될 수 있는 일.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1년이 순식간에 쏜살같이 지날 수도 있으며,
지옥처럼 지겹게 기억하기 싫은 순간들로 점철될 수도 있으리라.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글쓰기를 위해 남들 앞에 글을 드러내야 하는 일도 필수란다.

말한다는 자체가 스스로 의식하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읽힌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연다는 뜻이며,
듣고 토론한다는 것은 함께 공감을 나눈다는 뜻이다.
어떤 문제일지라도 그것을 스스로 의식하고 마음을 열어 타자와 나누고 타자가 함께 공감해 줄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더는 치유불가능한 정신적 문제일 수 없다.(154)

합평 뿐만 아니라, 글로 드러내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고미숙, 등의 '누드 글쓰기'에 사주 팔자를 도입한 것도 그렇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열어 오픈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가지는 일은,
공동체적 사회여서 묻고 말고 할 것도 없던 삶 속에 살던 한국인들에겐 생소하고 낯선 일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파편적 개인들의 사회가 된 이상,
의식한 상태에서 마음을 열고 공감의 기회를 가지는 일은, 더없이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그는 사물의 실재를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긴 인상만을 기록하려 한다.
스탕달에게 있어 사건이란 그 자체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영혼을 자극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155. 슈테판 츠바이크, 차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중)

모든 세부를 다 적을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의 영혼이 짙은 감동에 젖었을 때,
그 감동을 전해주려 언어를 풀어 내는 일이 '사건'이 된다는 것이리라.
자신의 진한 인상을 담아, 사물을 실재에 가깝게 표현하고 묘사하려는 일은,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게 되는 것.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법한 글을 만났다.
은희경의 트위터에 있던 재치있는 글 한 줄.

'그러지 말았어야지'에서 주로 배운다.
'그렇게 하는 거구나'에서 배우면 좋을 텐데.
할 수 없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또 그럴 수도 있다니!'에서 배우지나 말아야지.(219)

인간은 늘 부족한 존재란 것이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공부해서 습득하면 좋으련만,
늘 잘못된 일을 겪고나서 후회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그렇지만 스스로 어리석은 것을 인정하면서 살아야한다.
다만, 한번 저지른 실수를 또 저지르지나 않고 겨우 살았으면 하고 바랄 뿐.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루어지는 확률이 극히 낮다~는 말이렷다.
인간은 세상의 참으로 많은 경험들을 전수받는 기회를 가진 동물인데,
그것에서 배우지는 못하는 존재다.
그런데, 더욱 어리석은 것은, 그 잘못을 반복해서 자꾸 저지르는 것.

시나 소설을 쓰는 이라면,
아니면 책을 집피하는 이라면, 적어도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이 책을 교과서삼아,
특히 3년~5년 동안 정진해야 얻을 수 있는 경지를 얻게 되도록... 애써보는 일도 힘겹지만 보람있는 일일게다.

사는 일 역시 그렇다.
정진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 세상에 하나도 없다.

 

172. 한자가 하나 틀렸다. 주식(柱式)...은 기둥의 예술 양식... 같을 때 쓴다.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하는, 일본어 가부시키... 영어로 stock을 가리키는 한자는 株式이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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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3-01-2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구입해 놓고 아직 읽어보지 못햇는데...글샘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늘 좋은 글 감사히 읽고 있어요~

글샘 2013-01-24 13:00   좋아요 0 | URL
첨 뵙는 거 같네요. ^^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구체적으로 글을 쓰고 있거든요. 어서 읽어 보세요. ^^
 
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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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작 '658, 우연히'는 참 재밌는 추리소설이었다.

제목이 이미 답이 암시되어 있는데도... 나도 그 시그널을 무시하고 읽다가 허를 찔렸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이 단초가 되고,

역시 스타 추리가 거니가 등장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읽게되는 건,

다시 말해 밑줄 그으면서 읽은 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친구를 옆에 두어야 하는가... 였다.

 

인생은 짧아. 그게 전부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야.(117)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주인공에게 아내 매들린은 인생에 대해 생각 좀 하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위기일발의 순간,

거니는 매들린의 말을 떠올린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배신할 땐 현재로 돌아와야 했다.

그것은 한결 같은 매들린의 조언이었다.(613)

 

그치만 그들은 달랐다.

 

그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너무나 달랐다.

그는 주로 사색을 통해 세상을 이해했지만 그녀는 그저 느끼는 것으로 세상을 이해했다.

그는 떨어져 있는 점들을 연결하는 데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녀는 점 자체에 매혹되었다.

그의 에너지는 고독에 의해 충전되고 사교생활로 소모되지만, 그녀는 반대였다.

그의 경우, 관찰을 통해 좀더 분명한 판단에 이르렀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어떤 것을 판단한 후 좀더 자세히 관찰했다.(120)

 

작가가 이 소설에서 스토리 전개에 못지않게 신경쓴 부분이,

거니와 매들린의 관계다.

그들은 다르면서 상호 존중으로 맺어진 관계다.

결국 사랑이란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사람은 다 다르다.

비슷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다르다.

성향이 비슷해도 환경이 다를 수 있고, 환경이 비슷해도 삶의 궤적이 다를 수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의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인연을 만난 사람이라면, 인생은 살 만하다고 믿을 수 있게 된다.

 

거니는 평화롭고 그를 이해하는 듯한 사랑이 깃든 그녀의 미소를 또렷하게 의식했다.

오직 그녀만이 갖고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가 지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를 감싸고, 그를 따스하게 하고, 그를 기쁘게 했다.

놀라웠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토록 선명하게 볼 줄 아는 여자가, 눈빛 속에 모든 빛을 담고 있는 여자가, 그런 미소를 지을 만한 무언가를 그에게서 발견했다는 사실이.

인생은 살 만하다고 믿게 만들기에 충분한 미소였다.(641)


매들린의 충고는 나도 유심히 들었다.

 

데이브, 당신은 두 명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일을 할 땐 동기도 확실하고 단호하고 방향감각도 있죠.

하지만 개인적인 삶에서는 키 없이 표류하는 조각배 같아요.(174)

 

워커 홀릭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한국인들...

심리적으로 표류하기 쉽다.

그치만, 이렇게 충고할 때는 분명한 애정을 담아서 해야한다.

 

당신이 하려는 일에 엄청난 힘과 용기, 정직성, 뛰어난 두뇌가 필요하단 걸 나도 알고 있어.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나도 안다고.

당신이 존경스러워. 하지만 그거 알아?

난 당신을 좀 덜 존경하고 대신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내가 알고 싶은 건 바로 그거야.

우리가 과연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190)

 

생명을 걸고 사선에 나서는 거니에게 매들린은 눈물을 머금고 윤허를 내린다.

 

하겠다고 한 일을 중도에 포기하지 마.

왜냐하면 당신은 형사니까.

당신한테 요술처럼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할 권리가 나한테는 없어.(511)

 

사랑의 이름으로 사람을 '새장'안에 가두는 일은 '요술'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 소설은 흥미로운 연쇄살인범을 찾아가는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나처럼 다사로운 '인간적인' 면에 눈길이 끌리는 사람이라면,

사건의 추이와 나란히 달리는 감정의 추이를 감상하는 방법도 나름 재미있는 소설일 것이다.

 

이 소설의 원제목은 '네 눈을 꼭 감아' 이다.

그 눈을 감는 것은, 살인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독자들과 형사들의 눈을 감게 만드는 트릭의 하나이기도 하다.

세상은 두눈 번히 뜨고도 속는 곳이다.

눈을 꼭 감으면, 마음이 열릴지도 모를 일...

 

3편, 악마를 잠들게 하라~도 기대된다.

 

번역이 조금 미진하다 싶은 부분 몇 군데...---------------

 

120. 연못에서 동쪽으로 1.6 킬로미터 정도... 미국은 마일을, 한국은 미터법을 쓰지만, 대략~ 어림잡을 때, 1.6킬로미터 정도...는 웃긴다. 그냥 1마일로 쓰든지, 대략 2킬로미터 정도~ 가 어울리지 않을지...

 

128. 마치 ESL 학생을 가르치듯... esl은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약자다. 이 책의 독자들은 이런 걸 알아야 한단 말씀? 주를 붙여 주지 않으면 불친절하다 느낄 사람이 있을 거다. 나처럼...

 

176. 알루미늄 호일을 씌운 그릇... foil은 '포일'이 맞는 표기다. ㅋ~ 잘 쓰진 않지만...

 

385. 있다 봐~ ... '이따 봐' 라고 적어야 한다. 시간이 흐른 뒤를 '이따, 이따가'라고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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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1-1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쩔땐 긴것 같이 느껴지고 또 어쩔땐 엄청 짧게 느껴지고.......
여튼 정작 생각해야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는것 같긴해요.

저는 한동안 심한 감기몸살로 고생을 좀 했습니다.
글샘은 감기바이러스로부터 무사하시길! ^^

글샘 2013-01-16 10:36   좋아요 0 | URL
감기 바이러스 이넘... 비열한 넘이에요.
내가 강할 땐, 슬슬 피하다가...
좀 힘들다 처져 있음, 집요하게 덤비걸랑요. ㅋ~
뭐, 생각해야 할 문제들도 어물쩡 넘기기도 하고 그런 거죠...
 
열세 걸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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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의 걸음걸이는 사람의 걸음걸이와 똑같지만,

참새는 그저 두 발로 폴짝폴짝 뛸 줄만 알죠...

참새가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걸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진다구~

한 걸음 내디디면 횡재수를, 두 걸음을 내디디면 관운을, 세 걸음을 내디디면 여복을...

열두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 아내와 애인이 화목하게 자매처럼 친하게 된다네.

하지만 절대로 열세번째 걸음을 보아선 안 된다네.

만일 참새가 열세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자네 머리 위로 뚝 떨어져 내린다지 뭔가!(423)

 

열세 걸음의 의미는 이렇게 드러난다.

이 소설의 스토리는 다소 난삽하고 짜증나게 시작해서,

초반을 진득허니 읽지 못하면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할 수 있다.

그런데,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시작도,

모옌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고 읽어 나가노라면,

소설이란 장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재미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줄거리가 통 안 잡혀 관둘까? 했던 독자라면, 뒷부분의 해설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줄거리를 안다고 스토리가 흥미진진하지 않아지는 소설은 아니니 말이다.

 

이 소설은 '너, 나, 그'가 마구 뒤섞여 쓰인다.

사회가 혼란스런 만큼, 존재의 주체, 객체성 역시 마구 뒤섞이고,

결혼 밖의 정사, 혼전 정사 등도 자연스럽게 욕망의 분출이 내비치도록 쓰고 있다.

초반부의 혼란만 넘기고 나면, 책을 손에서 떼기 힘들만큼의 모옌의 필력이 독자를 끌어들인다.

 

과연, 현대 중국은...

한 걸음, 두 걸음... 열두 걸음까지의 행복을 향유하고 있는 과정인데...

향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현실을 강화할 것인가?

자본주의와 결합한 특구뿐만 아니라 열세 번째 스텝을 내디딜 불안한 미래를 두 눈 뜨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정말 옛이야기처럼, 앞서의 행운이 곱절의 악운이 되어 떨어질 것인가...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담뱃갑을 들고 장사를 떠난 장츠추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

 

나이가 많은 사람, 적은 사람, 걸음 걸이가 둔한 사람, 잰 사람, 빨리 걷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

얼굴 표정도 저마다 달라 웃는 사람, 근심 가득한 사람, 무표정한 사람도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무표정한 사람들이었다.(452)

 

작가가 진단한 현대 중국의 고뇌가 여기 있다.

국가의 지도에 열정적으로 호응하던 시대는 끝났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던 시대는 끝났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시대... 현대 중국은 국가와 국민이 유리되고 있는 것이다.

장츠추와 팡푸구이는 개성을 잃고,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유령같은 '가오나시'들이다.

자기 존재감과 국가가 유리되어 불안한 삶을 살 때, 어느날 장츠추가 바라본 낙엽길은 쓸쓸하다.

 

그는 시멘트 바닥에 고요히 누운 황금빛 낙엽들을 차마 밟고 지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황금빛 낙엽들을 밟고 지나가야 했다.

왜냐하면 발걸음을 돌릴 수도, 길을 선택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517)

 

한번 선택하여 걸어가기 시작한 걸음은, 돌릴 수 없다. 더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국가의 흐름 역시 그렇게 강물처럼 나아가기만 할 뿐이다.

 

그것은 피가 흐르는 날개를 끌며 일어섰다.

참새의 피가 너의 눈에 홍채를 한 겹 덧씌웠다.

햇빛은 핏빛으로 붉고, 참새는 황금 같았다.

피를 흘리고 금빛으로 반짝이고, 비둘기만큼이나 커다란 참새 한 마리가 너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오기 시작했다.

걸음마를 배우는 갓난아기처럼 걸음걸이가 휘청휘청 흔들렸다.

그것은 너를 향해 오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그리고 너희를 향해 오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묵묵히 그것의 걸음 수를 세기 시작했다.

1-2-3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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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

        12  (마지막 페이지)

 

황금과 핏빛은 공존한다.

이제까지, '너, 그, 나'가 뒤섞여 혼란스럽던 주체 일탈의 중국인들에게,

'그것'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열두 걸음까지의 행복을 향유하는 것도,

열세 걸음의 곱절의 재앙을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힘이 있다.

이런 힘있는 상징을 구사하는 이가 있는 중국은 행복하다.

 

억압적인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상징.

개인은 더이상 자기 삶의 주재자가 아니고, 주체란 없다.

다들 본래의 자신을 잃은 채, 자신이 아닌 남이 되어 비극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파국을 맞는 것이다.(해설)

 

삶은, 사회에서 삶은 걸음을 걷는 일과 같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고, 오늘과 같은 내일은 없다.

뚜벅뚜벅 걸어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래는 갈수록 혼미하고 혼란스럽다. 전망은 불확정적이고 불투명하다.

 

한 마리는 호랑이 머리에 사자 몸뚱이,

다른 한 마리는 사자 머리에 호랑이 몸뚱이를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운명 같은 광경이 재현되고 있었다.

지난번은 역사의 재현이었고, 이번은 미래에 대한 예감 같았다.(190)

 

라이거는 불완전한 합체의 결과물이다.

어울리지 않는 두 개체가 결합하여 하나의 결과물이 탄생하지만, 그 결과물은 결국

불완전한 이식이고 결합이며, 그를 낳은 호랑이는 살해당하고 만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을 '흑묘백묘' 운운하면서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 쥐잡던 고양이가 이제 주인집 살림을 좌지우지하게 됐다면,

그 비유에 머리를 내두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수가 될 것이다.

 

살다보면 늘 돌발적인 사건 때문에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기 십상이지.

이렇게 틀어진 계획은 운명의 변화를 야기하고,

역사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날마다 모든 개인의 신상에,

모든 가정에, 모든 나라에 일어나고 있어.(119)

 

마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일처럼,

환상 속 이야기들 속에 진득허니 녹아있는 중국의 현실이 오롯이 전해진다.

여러 가지 야채들을 기름에 볶아 걸쭉한 탕 속에 넣어서 향을 내는 중국의 음식처럼,

그 음식을 먹는 일은 냄새만으로 판단할 것도, 느낌만으로 판단할 것도 아니다.

그 음식이 익숙해질 때까지 입이 적응할 때까지 느긋하게 맛보지 않으면 진미를 놓치기 쉬울 것이다.

이 소설은 무엇에 대한 비유라고 보기 힘들다.

중국에서 살아온 작가가 문화대혁명과 자본주의의 착상 과정을 보면서,

뒤틀려가는 인간 본질의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결과물이기 때문에,

쉽사리 이렇다할 본질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 소설에서 생기발랄한 부분이라면,

남녀의 감정을 묘파하는 부분에 있다.

회색빛 사회 속이라고 분홍빛 사연이 없을 수는 없는 것.

분홍빛이든 농염한 장밋빛이든, 풋풋한 사랑이든 육욕에 물든 사랑이든,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은 잿빛 사회에 대조되어 더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자본의 힘에 신체가 휘둘리는 것은 중국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경지일 것.

 

아무리 암담한 시절이라 해도 애인은 있는 법이니까.

'애인'의 동의어는 '간통한 남녀', '정부', 심지어 '간부' 처럼 부정적 의미가 포함된 말들뿐인데.

왜 사람들은 애인을 찾지 못해 안달일까?

'도덕이 문란해졌다'는 말 한마디로 명확한 답변이 될까?(61)

 

시대와 풍속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세대를, 시대를 불문하고 개인의 관심은 '사랑'에 있다.

잿빛 사회 속에서 중국의 대작가가 바라본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 찐득한 호기심 가득한 인간들의 눈빛을 읽는 일 역시 하나의 재미의 축을 제공한다.

 

이 작품을 수십 년간 기획하면서 작가 스스로 얼마나 울고 웃었을까?

말도 안 되는 '서술자'를 등장시키면서,

그 서술자는 일종의 '괴물'인데, 작가 스스로 '괴물'임을 자처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닫힌 사회의 발화가 얼마나 고통스런 것인지를 넘겨짚게 만들기도 한다.

 

장편 소설에 진득한 눈 묻어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

 

고치면 싶은 구절 하나...

 

164. 이렛날,...은 이튿날...의 오기가 아닌가 싶다. 제7일, 이레가 되는 날...을 이렛날이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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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1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0쪽이 훨씬 넘는 책이라 부담스런 책인데요, 저에게는...
저는 3백 몇 쪽의 책까지만 읽고 싶어요. 4백 쪽이 넘으면 부담 커요. ㅋㅋ
물론 그런 책도 읽은 적은 있지만 앞으로는 구입할 때 신중해지려고 해요.
작가나 출판사로 보아서 꽤 신뢰가 가는 책이긴 하네요.

"장편 소설에 진득한 눈 묻어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
- 이건 저인데요... ㅋ

잘 지내시죠?


글샘 2013-01-1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요즘 모옌이랑 사랑에 빠졌답니다.
페이지에 쫄지마셈
쫄면 집니다.

모옌 참 재밌어요. 읽어보세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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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83년 생이라니 이제 가득 서른이다.

시들이 신선하고, 맘이 깊어 보인다. 느낌이 좋다.

그이의 시들이 품고 있는 청파동, 연신내, 모래내, 수색... 모두 '물'과 관련된 지역들인데,

그 동네가 품고 있는 가난한 골목길들 속에서...

어쩜 통영의 동피랑 마을의 가난한 골목길들이 품고 있는,

다사로운 사람들의 정감 같은 것이 아릿한 아픔과 함께 묻어나는 느낌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기대된다. 앞으로의 시집들이...

 

세상은 참 찌질하다.

시인은, 그 찌질함을 넌지시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다.

 

뻔히 저기 있는 것을 알고 있으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세계에 살고 있는 고통(김현)

 

그 고통을 툭, 보여주는 언어로 던져주는 시인이 고마울 수밖에~ ^^

 

나는 오늘 너를

화구에 밀어넣고

 

벽제의 긴

언덕을 내려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말을 건네는 친구에게

 

답 대신 근처 식당가로

차를 돌린 나는 오늘 알았다

 

기억은 간판들처럼

나를 멀리 데려가는 것이었고

 

울음에는

숨이 들어 있었다

 

사람의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였다

 

너는 오늘

내가 밀어넣었던

 

양평해장국 빛이라서

아니면 우리가 시켜 먹던

할머니 보쌈이나 유천 칡냉면 같은 색이라서

 

그걸 색이라고 불러도 될까

망설이는 사이에

 

네 짧은 이름처럼

누워 울고 싶은 오늘

 

달게 자고 일어난 아침

너에게 받은 생일상을 생각하다

 

이건 미역국이고 이건 건새우볶음

이건 참치계란부침이야

 

오늘 이 쌀밥은

뼈처럼 희고

김치는 중국산이라

 

망자의 모발을 마당에 심고

이듬해 봄을 기다린다는

중국의 어느 소수민족을 생각하는 오늘

 

바람은

바람이어서

조금 애매한

 

바람이

바람이 될 때까지

불어서 추운

 

새들이

아무 나무에나

집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

 

나는 오늘 (오늘의 식단 - 영(暎)에게, 전문)

 

그의 우울과 젖은 눈빛이 어디서 연유한 것일지를 엿볼 수 있는 시다.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

까지를 듣는 시인의 귀...

그의 귀에 의탁한 세상을 들을 만 하겠다.

 

그의 시에는 '미인'이 자주 등장한다.

얼마나 예쁘기에... 미인이라고 부르랴마는...

예쁜 것은... 객관적인 데이터로 판가름할 수 없는 것이므로...

정말 사랑스런 사람이라면, '기룬 것은 다 님이요...' 하는 맘으로... '미인'이라 불렀으렷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마음 한철, 부분)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및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유월의 독서, 부분)

 

과거형 선어말 어미 '었'이 이렇게 밟히는 시도 있는 법이다.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

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환절기, 부분)

 

계절이 바뀌듯,

사람도 바뀐다.

누구나 다 '과거의 사람'이 되는 법이다. 언젠가는...

그럴 때, 너무 헛헛해 하지 말란다.

어떤 길은 말이다.

앞이 아니라,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해서 외워야 하는, 그런 얄궂은 운명의 길도 있는 법이라고...

그래도, 그런 운명이라도... 통, 통, 통... 통통배같은 통영에 갔다는 핑계로...

운명을 사랑해야지 않겠냐고...

그런 운명도 있다고...

 

삶의 빛은, 얄팍한 형식으로

어딘가에서 오는 빛을 되쏘는 것이 아님을...

삶의 광택은, 결코 빛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먹먹한 가죽을 닦고 닦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새, 살~ 빛을 내보이는 속내를

군대말투로 보여줄 줄 아는 사내.

이런 시 쓰는 사내를 좋아할 줄 아는 여자랑 이야길 하고 싶다. (살~은 경상도 사투리인데, '살짝' 이란 뜻이다.)

 

이게 진짜지 말입니다 물광이 빛나니, 불광이 깨끗하니

하는 얘기는 이제 고향 앞으로 갓, 이지 말입니다 이건 물

불을 안 가리는 광이라서 말입니다 제가 지난 휴가 때 용

산역을 지나는데 말입니다 거짓말 아니고 말입니다 바닥

에 엎어 자던 노숙자 아저씨가 제 군화 빛에 눈이 부셔 깼

지 말입니다

 

구선 구두 약통에 불을 질러버리고 말입니다 불로 지져둔

군화에 약을 삼삼하게 바르지 말입니다 바르고 바르고 약

이 마르며 또 바르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흠집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지 말입니다 깊게 파인 흠집

을 약으로 메우는 것은 신병들이나 하는 짓 아닙니까 그렇

게 하고 작업이라도 하면 그 약만 떨어져 나오지 말입니다

 

흠집은 흠집이 아닌 곳과 똑같은 두께로 약을 발라야지 말

입니다 벗겨져도 같이 벗겨지고 덮여도 같이 덥이는, 흠

집이 내가 되고 내가 흠집이 되는 저희 어머니도 서른셋에

아버지 보내시고, 그때부터 아예 아버지로 사시지 말입니

다 지난 휴가 때도 얼굴도 몇 번 못 뵙고 그나저나 이번에

효리 누나 춤 보셨습니까? 막 골반이 사시나무처럼 떨리

는데 말입니다 아, 다 바른 다음 말입니까?

 

이제 약이 이렇게 먹어들었으면 여기에 물을 한 방울씩 털

고 헝겊을 손가락에 두르고 같은 뱡향으로 밀고 나가야지

말입니다 김병장님 그런데 참 신기하지 말입니다 참말로

더는 못 해먹겠다 싶을 때, 이렇게 질기고 징하게 새카만

것에서 광이 낯짝을 살 비치니 말입니다 (光, 전문)

 

"라면 국물의 간이 비슷하게 맞는다는 것은 서로 핏속의 염분이 비슷하다는 뜻이야" (동지(冬至), 부분)

 

핏속의 염분이 서로 비슷한 사람...

그렇다면, 영혼이 내는 모음이 서로 비슷한 사람도 세상에는 있는 것 아닐까?

이 시의 冬至는 동음이의어 同志로도 읽을 수 있잖을까?

 

그런 동지라면...

손편지를 길게 주고 받으며,

그와 함께 낮달을 우러르며 '혼자 앓는 열'을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를 '미인'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앓는 열이

적막했다

 

나와 수간(手簡, 손편지)을

길게 놓던 사람이 있었다

 

인천에서 양말 앞코의

재봉 일을 하고 있는데

 

손이 달처럼 자주 붓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바람에 떠는 우리 집 철문 소리와

당신의 재봉틀 소리가

아주 비슷할 거라 적어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면

인천에 한번

놀러가 보고 싶다고도 적었다

 

후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에

흰 양말 몇 켤레를 접어 보내오고

연락이 끊어졌다

 

그때부터 눈에

반달이 자주 비쳤다

 

반은 희고

반은 밝았다 (인천 반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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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9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0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01-09 17:37   좋아요 0 | URL
메일 고맙습니다~ ^^